유전자 조작 밥상을 치워라
김은진 지음 / 도솔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누구도 GMO 밥상에서 안전하지 않다.

밥상을 치울 것인가, 다시 차릴 것인가.

 

며칠 전 집에서 음식을 잘 하지 않지만 오랜만에 음식이라 할 수도 없는 도너츠를 만들기로 했다. 지난 설에 들어온 식용유 세트를 처리하자는 것이 첫번째 이유였고,  명절에 전부치다 남은 밀가루도 처치곤란이라 해결하자는 것이 두번째 이유였다.

밀가루와 찹쌀 가루를 체에 쳐 내리다가 며칠째 진도는 나가지 않으며 밤마다 펼쳐든채 잠이 드는 책, '유전자 조작 밥상을 치워라' 가 생각이 나는건 당연한 수순이었을까.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는 책에서 저자의 힘있는 말이 내내 머릿속을 떠나니던 참이라

누구나 좋아하는, 특히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너츠에는 어떤 일이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우선 밀가루는 100% 호주산과 미국산이었고 도너츠를 튀겨내는 기름은 100% 수입산 콩이었다.

비교적 간단하고 집에서 만든거라 안심할 수 있다고 믿었던 도너츠였으나 조금만 들여다 보자면 실상은 GMO 덩어리를 GMO에 튀겨 내어 먹었던 것이다.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진 콩, 단지 그 콩을 사다가 음식을 만들어 먹지 않으면 안전할 것이라고 믿는 무지함이었다.

유전자 조작이자 변형된 콩은 이미 우리 밥상에 버젓히 올라 와 있는게 아닌가.

만들어지는 단계에서 이미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는 GMO.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거대한 자본으로 그들 나라보다 자본적으로 우수 하지 못한 나라들에 압력을 가해 자국의 국민들은 먹지 않는 위험 천만한 식품들을 만들어낸것이다.

유전자 조작을 한 콩을 심고 수확에 소나 닭의 사료로 사용하고, 그 소와 닭을 인간이 먹는다는 참으로 당연하면서도 모순된 진실이 과연 나중에 인간에게, 동물에게 또 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그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다만 유전자 조작이 가져다줄 엄청난 부와 파급효과로 얻어지는 자본의 잠식력만을 생각할 뿐.

생명공학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위장했을뿐 그  실상은 GMO를 통한 자본의 잠식이 목표인것이다.

육류를 소비하고자 가축을 기르고 가축을 먹이고자 더 많은 땅에 더 빠른 시간에 적은 노동력으로 더 많은 수확을 하고자 하는 욕심이 낳은 유전자 조작이 환경과 사람들에게 어떠한 위협이 되는지, 이 유전자 조작이 식량문제에 가장 효율적인 대안이라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생각밖의 일인것이다.

 

생산만하고 책임은 지지 않는 무책임함.

김순권박사의 슈퍼 옥수수는 인간이 자연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만들어낸 땀과 노력의 산물이지 유전자 조작이라는 과할 기술의 산물은 아니다. 즉, 자연 상태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스스로 조합해보는 노력 끝에 얻어진 결실이다.P.212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유전자 조작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관련 책을 읽었으나, 보고 들을 때마다 김순권 박사의 슈퍼옥수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슈퍼옥수수가 유전자 조작이이자 변형이 아닌 자연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활용한 땀과 노력의 산물이라는 정의를 스스로 내릴 수 없는 무지함이었기 때문에 김순권 박사의 슈퍼 옥수수에 대한 의문이 참 많았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며 유전자 조작이 아닌  인간이 자연에서 자연을 활용하여 만들어낸 노력의 산물이다 라는 명확한 글을 읽으며 한편으론 의문이 풀림에 시원했고, 한편으론 나같은 일반인들은 이렇게도 잘 모를 수가 있겠구나 하는 걱정이 들기도 했다.

 

수영 선수가 수영을 잘하기 위해서, 기록을 앞당기기 위해서 어던 수영복을 입어야 하는 가에 대한 연구나 육상선수에게 맞는 신발을 연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수영 선수의 기록을 앞당기기 위해 물고기 유전자를 이용하여 손이나 발에 지느러미를 달 수는 없는 법이다.  또 육상선수에게 더 잘달리라고 치타의 유전자를 집어 넣을 수도 없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결여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아니라 수영이나 육상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먹는 작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P219~220 

 

 너무나도 명확하고 쉽게 설명된 말이 아닌가 한다.

GMO 에 대해서 물론 먹는 사람 누구나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하겠지만 솔직히 많은 사람들이 GMO 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장담 할 수 없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것이 마땅하겠지만 우루과이 라운드나  WTO 같은 일만 보더라도 국가가 국민의 먹거리에 안전함을 보장할 수 있다는 기대는 접어야 할런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폐혜라면 사람이 먹고 마시는, 생명연장을 위한 일차적인 순위에 마져 자본주의의 논리와는 뗄수 없음이 아닐까.

 

책에서는 안전한 먹을거리와 바람직한 먹을 거리를 선택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우리땅에서 난 우리에게 맞는 농산물을 먹고, 친환경과 유기농산물에대한 이해와 판단-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 간의 관계, 생산자와 소비자의 관계의 바람직한 형성을위해 노력하며 현재 어느단계까지 와있는지를 파악하여 유기농산물을 골라야한다.

또, 소비자와 정부가  해야하는 원산지 확인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음식쓰레기 문제에대한 근본적인 의식전환을 일깨우고 있다.

 

 나 한사람이 안먹겠다고 선언한다 해서 안먹을 수 없게 되어 버린 작금의 유전자 조작밥상으로 부터 안전 할 수 있는 길은 아마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불가능 할 지도 모르겠다.

초국적 기업의 종자독점 욕심에서  지금 우리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GMO 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은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우리의 씨앗을 지키는 것에서 부터가 안전한 밥상을 지켜내는 최소이자 최대의 노력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계를 움직인 미녀들의 신화
김남석 지음 / 우리책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계를 움직인 미녀들의 신화.

 

세상의 반이 여성이고 반이 남성인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바, 어찌 세계를 움직인 여성들이 없겠는가. 책은 그 여성들 중에서 제목 그대로 미녀들의 신화에 주목한다.

불같이 타오르던 사랑으로, 아름답던 외모와 육체로, 전설로 남은 사랑으로, 죽음보다 강했던 사랑으로.

미녀들의 신화는 사랑과 성과 그들에게 남은 예술과 죽음마저 건너뛴 사랑으로 살다간 미녀들의 신화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불타는 사랑 재가 되어 예술로 남고- 아름다운 외모로 불타는 사랑을 가슴에 껴안은채 살아가며 그 사랑은 예술로 세상에 남아있다.

이사도라 덩컨, 코코사넬, 에디트 피아프, 마리아 칼라스, 프랑소와즈 사강, 프리다.

마성의 육체 뒤에 남은 슬픔- 불꽃같은 그들의 삶은 아름다운 육체로 인해 정열적이거나 혹은 파괴되기도 한다.

마리네 디트리히, 브리지트 바르도, 카트리느 드뇌브, 엘리자베스 테일러, 비비안 리, 마릴린 먼로

사랑은 전설이 되어- 그들의 매혹적이고도 치명적인 사랑은 전설이 되어 오랜 세월을 지나고도 살아 숨쉰다.

양귀비, 그레이스 켈리, 다이애나, 심프슨 부인, 에바페론

죽음보다 강한 사랑- 사랑하기에 단지 그 사랑에 충실했고 그 사랑은 죽음보다 강렬했다.

황진이, 앤 블린, 마타하리, 윤심덕

 

21인의 미녀들의 신화는 그들의 성장과 사랑, 일, 삶에 있어서 얼마나 열정적이 었고 얼마나 불꽃같이 타올랐는지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남자로 하여금 왕관을 버리게 만든 심프슨 부인과 창녀에서 퍼스트레이디가 된 에바 페론의 열정적인 삶,

사랑하므로 유부녀이지만 사랑하는 남자와 도피한 프리다와 마지막까지 자존심만은 놓지 않으며 딸을 여왕으로 만든 앤블린의 삶,

매력적인 육체로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이중간첩이 된 마타하리와 살아생전 두왕의 총애를 받을 만큼 미모가 뛰어났던 양귀비의 삶,

남성들에게 영원한 섹스심벌 마릴린먼로와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하므로 영원히 함께할 죽음을 택한 윤심덕의 삶,

꼿꼿한 자존감과 열정으로 명품패션과 향수의 여왕으로 불린 코코샤넬과 죽어서도 아름다운 미의 대명사인 그레이스 켈리의 삶.

 

미녀들의 삶은 사랑과 미모와 육체를 결코 벗어날 수는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들의 삶속에는 아름다운 미모와 육체, 그리고 사랑이 있었으니 사랑과 전설을 남긴 그녀들은 자신들이 진정원하는 사랑을 삶을 위해 기꺼이 온몸을 내맞겼다.

세상을 뒤흔들만큼 치열했던 그들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며 상당한 괴리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미모와 아름다운 육체로 명예와 부를 차지했으나 결국에는 사랑을 찾으며 고민하는 인간적인 모습의 미녀들의 이야기는 어쩌면 불과 반세기에서 몇백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그들의 삶이 이야기를 넘어 신화가 될수 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남성 저자가 쓴 미녀들의 신화는 남성적인 시각에서 본 미녀들의 이야기라는 인상이 강하다.

사랑과 외모와 성에 대부분의 조명이 맞춰진듯 해서 읽는 동안 살짝 고개를 갸웃하긴 했으나, 불꽃 같은 시대의 미녀들의 삶은 매혹적이었다.

분명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불꽃같은 정열과 사랑 또는 성공적인 신화의 주인공들이 있을 것이다.

 

미녀들의 신화는 세상에 여성들이 모두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 될 것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과씨의 맛
조경수 외 지음 / 상상공방(동양문고)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가뭄이 들면 바닥을 드러내며 말라버리는 강을 건너면 강둑 보다 낮은 사과밭이 있었다.

요즘같이 개량된 품종의 사과 나무가 아닌지라 뻗은 가지는 세월을 담아 굵고 가지 팔은 넖게 펼쳐진 봄날의 사과나무밭.

들어서면 초록을 머금은 사과꽃 향기가 아련하게 피어오른다.

푸른 열매 달고서 여름을 지나 붉고 탐스러운 심장같이 붉은 열매를 매달고 깊이 뿌리 내려 서 있던 그 사과밭, 그 붉은 사과.

 

요즘에는 잘 나오지 않는 아삭하고 신 홍옥이 주렁 주렁 열리던 그 사과밭을 생각해본다.

사과 씨의 맛......

어떤 맛일까, 약간은 과일의 비릿한 맛이 나기도 하고 입안에 남던 쓴, 사과씨의 맛.

과일 향기가 공기 중에 흐를 것만 같은 외할머니 베르타의 죽음으로 장례를 치른 이리스는 외할머니의 집을 상속받는다.

옛기억이 공기처럼 흐르고 있는 외할머니의 집.

외할머니와 어머니, 이모들이 태어나고 자란 외할머니의 집을 상속받게 된 이리스는 외할머니의 장례식 후에 그 집에 머무르면서 집을 둘러싸고 흐르는 옛기억들과 그 속의 어머니와 이모, 외할머니 그리고 사촌 로즈마리를 떠올린다.

구석 구석 묻어있는 그들의 기억에 이리스는 때로는 아련한 추억에 젖어 상념에 빠지기도 하고, 살아가며 망각속에 재워두었던 비극적인 죽음을 떠올린다.

 

사랑의 열병으로 일찍 죽은 이모할머니와 사과나무에서 떨어진후 기억을 잃어가는 외할머니, 손끝에서 별처럼 전기가 떨어지던 잉가 이모, 눈을 감고 비행 하던 하리에트 이모, 언제나 집을 그리워 하던 이리스의 어머니, 그리고 로즈마리

 

3대에 걸친 한집안 여인들의 사랑과 삶, 죽음 그리고 망각의 이야기들은 여기저기 숨어 있다가 집안 곳곳에서 이리스와 마딱드리며 이리스는 그녀들의 사랑과 죽음과 아픈 망각을 느끼게 된다.

 

사과 꽃 향기가 나는 그녀들의 신비한 사랑이야기와 비극적인 죽음, 그리고 추락과 함께 찾아오는 그녀들의 망각을 이리스의 눈을 따라가며 무겁지만은 않게 그려낸다.

마치 한편의 몽환적인 필름 영화처럼 그들의 사랑  이야기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기억과 망각은 순서대로 오고 가지 않는다.

자신이 얼마만큼 깊은 애정을 가졌거나 혹은 노여운 일일 수록 기억과 망각의 순서는 자유로울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한 집안 여성들의 사랑과 삶과 죽음과 기억과 망각의 이야기 책이다.

그 안에서 나는 사랑과 삶과 죽음 보다 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오랫동안 서성였다.

화창한 날 바람에 나풀거리는 하얀 천과 따뜻한 봄날의 봄바람에 흩날리던 사과꽃을 생각했다.

사과 나무가 붉은 심장 같은 열매를 매다는 날, 아삭거리는 신맛이 나는 사과를 통째로 씹어 먹겠다는 생각과 함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족보 - 하나님의 인간 경영 백서
황의성 지음 / 바보새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구속사의 발자취

-하나님의 인간 경영 백서

 

어릴적 신약성경을 읽을때면 낳고 낳고 낳고... 하던 단어의 반복이 재미있는 마태복음으로 친구들과 웃었던 기억이 난다.

시골의 한 마을 전체가 한 교회에 다니는, 어릴적 부터 기독교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런 마을에서 자랐더랬다. 이삼십년 전에는 포장도 안된 시골길을 사십분씩 걸어서 주일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교회에 가는 그런 맹목적이고도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동네였던 것도 같다.

맹목적이고 당연시 되는 믿음들 속에서 신앙적으로 작은 의문이 생기거나 할 때면 그저 믿기만 하는 사람들에게선 후련한 대답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단지 어린아이와 같이 믿지 못한다는 질책과 함께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요받았던것이다.

그랬기에 머리가 자랄 수록에 쌓여가는 의문들은 하나 둘씩 늘어만 갔고 해답은 찾을 수 없어 혼란스럽기만 했다.

 

마태오 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족보를 단지 그들만의 족보라 치부해버리지 않았더라면, 족보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과 참 모습을 그려내어 보는 눈이 있었더라면, 나의 신앙은 그렇게나 흔들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족보를 따라 인간으로 오시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에게서 눈높이 사랑의 참모습을 보게 된다.'p.59

인간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 그리고 인간의 죄를 대속하신 그 눈높이 사랑.

예수님의 족보는 믿음의 족보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시는 증표이기도 하다.

바르고 아름다운 자들로만 이어지는 족보가 아니라- 미련한것들을 택하시어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고, 약한 것들을 택하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하시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해서 있는 것들을 폐하시어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 만이 지혜 곧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심을 선포하는 현장인 것이다p.52

 

땅의 지혜로 하늘에서 오신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듯이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 겸손이 필요하다.

예수님의 족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펼쳐진 하나님의 마음이며 사랑이고 희생이고 열망이다.

하나님의 언약위에 세워진 예수님의 족보의 인물들이 모두  완벽한 자들이 아니었듯이 그 안에 담긴 이들의 나약함과 어리석음에도 언약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족보 안에 담겨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충만한 감정으로 힘주어 설교하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는 것 처럼 책, 족보는 읽힌다.

성경속 족보의 인물들의 이야기와 다정한 해설은 알았으나 깨닫지 못한 많은 것들과,  생각지도 못했던 인물들의 삶과 믿음을 족보라는 이름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짓고 사랑하시는 인간들을 어떻게 사용하시고 어떻게 그 삶을 이끌어 내시는지 족보속의 인물들을 통해 알수 있었다.

 

사이비 종교인이라  밖에 말 하지 못하는 사람임에도 요사이 종교 관련 서적을 몇권이나 읽고 있다.

아.......

하고 돌굴러 가는 소리가 절로 들리지만, 지금 알게되고 느끼는 것들을 혼란 스러웠던 그때에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신앙인들에게 예수님의 족보에 대한 이해와 믿음을 도와줄 책이 아닌가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다시한번 일깨워준다. 

지금도 흔들리고 있는 얕은 믿음일 뿐이지만, 뿌리채 뽑혀나갈 것같은 마음의 위기가 올때 마다 책장을 넘겨보아야겠다는 생각이든다.

 

눈을 비벼 다시 한번 예수님의 족보를 보아야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을 말해줘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원제가  조용한 폭탄이라한다.

조용한 폭탄, 소리없이 조용한 그 폭탄을 말함일까 조용함 자체가 폭탄이라는 말일까 고개가 갸웃 거려졌다.

조용한 일상이 사소한 것들로 폭탄이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우리 주변에는 크고 작은 폭탄들이 잠복해 있다 는 옮긴이의 말을 가져와 본다.

소리없이 조용하게 나의 그 무엇이 폭탄이 되어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다.

실로 현실에서 조용한 폭탄을 만나게 된다면 나의 반응은 어떨까.

 

한적하고 조용한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게된 쿄코와 슌페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고요함 속에 살아가는 쿄코와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온갖 소리를 접하고 그 속에 살아가는 슌페이.

이들의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그들의 이야기는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평범한 누구나들 처럼 우연찮게 만나고  서로 다르지만 상대에게 맞춰 이해해가며 만남을 이어가지 않는가. 이 사소한 일상들에서  귀가 들리지 않는 쿄코와 슌페이의 대화는 필담이다.

말로써 전해지는 소통과 말로써 이해 할 수 있는 깊이를 가진다는 점에서 필담으로 나누는 그들의 대화는 한계를 가지게된다.

슌페이 역시 필담의 한계와 조용한 세계의 쿄코에게서 소리로 가득찬 현실 속의 자신을 위로 하기도한다.

 

언뜻보면 쿄코와 슌페이의 필담으로 나누는 사랑과 다큐를 제작하는 슌페이의 대불 폭파사건은 전혀 연관을 찾기힘들수도 있겠다. 그러나 세계 문화 유산의 폭파라는 잔혹한 만행이 사랑의 소통과 언어의 소통, 들어주지 않는 세상에 듣지 않는 자들이 폭파라는 행태로 만들어진 결국은 소통의 불가를 전하는 것은 아닐까.

필담으로 나누는 대화의 한계는 말로 전해지는 그것보다 훨씬 축약적이며 동시에 많은 뜻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러기에 쿄코와 슌페이는 서로의 감정들을 밑바닥까지 알기엔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들리지 않는 쿄코이기에 필담이 아닌 말로써는 일방적일 수 밖에 없는 슌페이. 그들의 필담으로 나누는 대화와 소통은 대불 폭파 사건이라는 실제 사건의 소통의 부재와도 맞닿아있어  책장을 넘기는 손이 오래도록 졸지 않았다.

 

사랑과 사랑의 일방적이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삶에서는 사랑해 라고 말하는것과 사랑해 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 말하는 것이 들리지 않고 말할수 없을때가 있을 것이다.

슌페이와 쿄코는 두 사람의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을까 생각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