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라틴아메리카 사이의 주요한 차이는 사회적으로 배제된 인구의 비중이었다. 미국에서는 흑인이 전체 인구의 7분의 1을 차지했던 반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토착민과 흑인의 비중이 전체의 3분의 2였다. 미국이 전체 인구의 70퍼센트를 흑인에게 하듯 다루었다면 그 결과는 단지 더 큰 규모의 불공평만이 아니라 국가적 실패였을 것이다. 그렇게 교육이 제한적으로 제공되었다면 미국은 결코 경제 강대국이 될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 P143

오늘날 아프리카가 왜 가난한지 이해하려면 1500년에 아프리카가 왜 가난했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에 대한 대답은 지리, 인구 그리고 농업의 기원이다. 1500년의 사회경제구조가 세계화와 제국주의에 아프리카가 어떻게 대응할지를 결정했고, 그러한 대응이 아프리카를 계속 가난하게 만들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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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년부터 1870년 사이에 산업혁명은 영국에서 대륙으로 매우 성공적으로 확산되었다. 서유럽 국가들은 선도국을 따라잡았을 뿐 아니라 이후로는 세계의 첨단기술을 진보시키는 혁신 그룹의 일원이 되었다. 물론 북아메리카도 19세기에 산업화되었고, 곧 이 혁신 클럽에 가입했다. - P66

서구 선진국들은 더 높은 임금이 노동절약적인 기술의 개발로 이어지고 이 기술을 사용하면 노동생산성과 임금이 상승하는 발전의 궤적을경험해왔다. 이러한 사이클은 반복된다. 오늘날 가난한 국가들은 엘리베이터를 놓쳐버렸다. 이들 국가에서는 임금이 낮고 자본비용이 높아서, 낡은 기술로 생산을 해야 하고, 따라서 소득이 낮다. - P82

그리고 석탄과 상업 때문에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는 캘리포니아 학파의 주장은 올바른 것이다. 아시아의 역사에서 주목할 점은 그러한 촉발 요인들이 없었다는 것이다. - P88

지금도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는 농업의 고용이 압도적이고 이는 다른 가난한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곧 우리가 살펴보겠지만, 19세기에 가난했던 몇몇 국가들은 표준전략을 따르고 또한 그것을 넘어서는 것을 통해 빅푸시를 실현하여, 20세기에는 훨씬 더 잘살게 되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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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사는 사회과학의 여왕이다. 경제사의 주제는 애덤 스미스의 위대한 저작의 제목인 ‘국부의 본질과 요인(국부론)‘이다. 국부의 요인을 경제학자들은 시간을 초월하는 경제 발전 이론들에서 찾지만, 경제사가들은 역사적 변화의 동적인 과정에서 찾는다. 경제사가 던지는 근본적 질문—왜 어떤 나라는 부자이고 다른 나라는 가난한가?—이 다루는 범위가 전 세계로 확장된 이래 경제사는 특히 흥미로워졌다. 50년 전 그 질문은 ‘산업혁명은 왜 프랑스가 아니라 영국에서 일어났는가?‘였다. 그러나 중국, 인도, 중동에 관한 연구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이 문명들의 내재적인 동학을 강조해왔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경제 성장이 아시아나 아프리카가 아니라 왜 유럽에서 (p. 9) 시작되었는지 물어보아야만 한다. - P8

오랜 과거의 소득에 관한 데이터는 정확하지 않지만, 1500년경까지 국가 간 번영의 차이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의 차이는 주로 바스코 다 가마가 인도로 항해하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한 이래 나타났다. - P9

높은 임금은 노동자들의 건강을 유지하고 교육을 확대하여 경제성장에 기여했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역설적으로, 최저생계 수준은 한 국가가 경제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경제적 동기를 제거한다. 하루의 노동으로부터 더 많은 산출을 얻어내야 하겠지만, 이 경우 노동이 너무 값싸서 기업들이 굳이 생산성을 높일 기계를 개발하거나 도입할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이다. 최저생계 수준은 빈곤의 덫이다. 산업혁명은 바로 높은 임금의 결과였다. 산업혁명은 높은 임금의 원인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 P24

세계는 왜 점점 더 불평등하게 되었을까? 지리, 제도, 문화 같은 ‘근본적 요인‘과 ‘역사의 우연‘ 모두가 역할을 했다. - P26

제도, 문화, 지리는 언제나 경제성장의 배경에 숨은 요인이었던 반면, 기술 변화, 세계화, 경제정책은 불균등 발전의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 P29

산업혁명(대략 1760년부터 1850년까지)은 세계사의 전환점이었다. 경제 성장이 지속되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이름에서 느껴지는 급격한 단절이 아니라 앞장에서 논의한 초기 근대 경제의 전환의 결과였다. - P44

기술 변화가 산업혁명의 동력이었다. 증기기관, 면방적기와 면방직기 그리고 나무 연료 대신 석탄을 사용하여 철강을 제련하는 새로운 과정 같은 유명한 발명들이 나타났다. 또 모자, 핀, 못 등 그다지 첨단은 아닌 산업에서도 노동생산성을 상승시킨 갖가지 단순한 기계가 등장했다. - P45

제국주의는 고임금 경제의 기초였고, 고임금은 다시 노동을 절약하는기술 변화를 촉진하여 경제 성장을 가져왔기 때문에 노동자들도 제국주의로부터 이득을 얻었다. - P47

가장 강력한 변화는 도시화와 상업의 발전이었다. 이로써 읽고 쓰는 능력과 계산력이 더욱 중요해져 대중의 지식이 발전했다. 18세기에는 장인, 기능공, 상점주인, 농부의 아들 대부분과 노동자의 아들 일부가 몇 년 동안의 기초교육을 받았다. 그 결과 전례가 없을 만큼 대중들이 신문을 읽고 정치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 P49

결국 노동이 비싸고 자본이 싼 곳에서 기계를 사용하면 이익이었는데, 영국이 바로 그런 곳이었다. 다른 어떤 곳에서도 기계가 이익이 되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이유이다. - P54

산업혁명의 최대 업적은 18세기의 발명들이 이전 세기의 발명들처럼 일시적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18세기의 발명들은 계속되는 혁신의 물결을 촉발했다. - P59

증기력은 다양한 용도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을 일컫는 범용 기술의 사례였다. 다른 범용 기술은 전기와 컴퓨터 등이다. 범용 기술의 잠재력을 발전시키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기 때문에 이 기술은 발명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야 경제 성장에 기여를 할 수 있다. 증기력도 마찬가지였다. 뉴커먼의 발명 이후 100년 가까이 지난 1800년이 되어서야 증기력은 영국 경제에 아주 작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이 되면서 교통과 산업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어 결국 그 잠재력이 실현되었다. 19세기 중반 영국 노동생산성 상승의 절반은 증기기관 덕이었다. 이러한 장기적인 이득이 경제 성장이 100년동안 지속된 중요한 원인이었다. 또다른 원인은 여러 산업 분야에 과학이 더 많이 적용되었다는 점이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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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과 디지털 역사 등 새로운 분야의 출현은 역사가 미래를 예견할 수 없으며 그 미래가 불러일으키는 변화의 혜택을 입을 뿐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미래 예측은 우리의 상상력으로만 가능하며 미래가 현재로 다가오기 전까지는 어떤 예측이 옳은지 알 수 없다. 반면 과거는 불완전한 모습이라도 파악할 수 있으며 과거에 닿기 위해 타임머신을 탈 필요도 없다. 그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호기심과 앞서 세상을 살아간 사람들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배우려는 의지다. 왜 그래야만 하는지에 대해서 2,000년 전 활동한 로마의 정치인 키케로Cicero는 이렇게 설명했다. "태어나기 전에 일어난 일에 무지하다면 어린아이로 남아있는 것과 다름없다. 인간의 삶이 역사의 기록을 통해 선조들의 삶과 엮이지 않는다면 무슨 가치가 있을까?"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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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여러 질문거리를 던지고 그 질문에 답변할 방법을 살펴볼 것이다. 역사란 정의상 발견해나가는 과정이지 확립된 도그마가 아니기에 이 책이 모든 골칫거리를 말끔히 해결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 어느 때보다 오늘날 역사가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이유를 제시할 수는 있을 것이다. - P10

기이한 주장이라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이유만으로 대대적으로 유포되고 어느 정도의 신빙성을 얻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역사적 진실을 고집하기란 시민으로서 용기를 발휘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 P15

기념물은 기념하기 위해, 즉 과거를 회상하고 그 과거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일으킬 목적으로 제작된다. 그 결과, 리 장군의 동상처럼 비록 세속적 성격으로 제작되었더라도 불가피하게 종교적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다. 하지만 기념물은 언제나 정치적 목적으로 제작되며 교회, 종파, 정당의 권력이든 남부연합과 같은 정치적 대의든 권력을 주장한다. 이처럼 권력에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종교적 변화나 정권의 변화에는 기념물의 제작과 더불어 과거 기념물의 파괴가 뒤따른다. - P22

기념물은 절대로 명쾌하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 누구도 박물관에 둘러싸여 살기를 원치 않기 때문에 과거의 유물을 모두 보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물의 일부는 시간을 관통하는 연결성과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보존해야 한다. 문제는 무엇을 보존할지인데 이 질문은 불가피하게 정치적인 성격을 지닌다. 우리는 스스로를 어떻게 인식하며, 어떤 과거에 가장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가? 과거의 어떤 부분을 보존해야 하는가? 각 사례별로 결정할 문제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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