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너의 논변은 텍스트를 역사적으로 이해하는 방법과 관련한 기존의 두 가지 접근 방식을 공격하면서 시작한다. 첫 번째 공격 대상은 대상 텍스트의 논변을 그것이 집필되었을 때의 경제적·사회적·정치적 맥락에 결부시키고 그런 요소들에 의존해 텍스트의 사상을 설명하려는 접근법이다. 그런 접근법의 옹호자로 지목된 이는 학술지 《비평론집Esays in Criticism》의 편집자였던 문학연구자 F. W. 베이트슨이었다. 스키너는 그런 접근법이 역사 속의 관념들이 지닌 의미를 설명하는 데 무용하다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요점은 텍스트의 맥락에 초점을 맞추는 일이 그 자체로는 연구자로 하여금 해당 텍스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즉 맥락은 어디까지나 이차적으로만 도움이 될 수 있다. - P109

두 번째 오류는 텍스트 자체가 그 의미를 풀어내는 열쇠가 된다는 관점에 입각한 접근법으로, 이에 따르면 연구자들은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그저 언제든 텍스트를 읽고 또 읽어야만 한다. 스키너는 이런 접근법 때문에 ‘불후의 지혜‘로 이루어진 보편적 관념들을 찾아내려는 잘못된 시도가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 P109

스키너는 이들이 공유하는 방법, 즉 텍스트에만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따르다보면 필연적으로 텍스트의 저자들이 했을 리 없는 주장들을 그 저자들에게 부여한다는 점에서 ‘다양한 형태의 역사학적 부조리들’과 ‘신화들‘을 낳게 된다고 서술했다. 이런 저자들은 엄밀한 학적 토대에 기초해 도달할 수 있는 검증 가능한 사실들이 아닌 신화들을 유포할 뿐이었다. - P110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나타나는 첫 번째 문제는 스키너가 ‘가르침의 신화mythology of doctrines‘ 라 부른 것이다. 〔이런 신화에 빠진〕 역사가들과 철학자들은 과거의 다양한 텍스트에서 현재에 통용되는 관념을 발굴하고 이와 연관된 교의들을 찾아내는 일로까지 나아갔다. - P112

스키너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방금 언급된 저자들이 자신들이 옹호했다고들 하는 가르침을 실제로 옹호한다고 썼을 리는 없다. 왜냐하면 해당 교의를 구성하는 관념들은 그 시대 이후의 지적 발전에 따른 산물이며, 따라서 저자들이 해당 관념들을 활용하기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완전히 다른 시기에서도 비슷비슷한 주장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믿음은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데, 그건 바로 〔서로 다른 시공간에 속한〕 위대한 저자들이 서로 연결된 논쟁을 주고받는다는 주장이다. - P113

이 주장은 다시금 과거의 텍스트에서 후대에나 중요해지는 논변들을 예견하는 맹아를 찾아내야 한다는 강박, 그리고 과거의 저자가 현대의 관점에서 중요한 특정한 관념들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을 낳는다. 이제 아직 열등한 과거의 맹아적 형태에서부터 우월한 현재의 완성된 형태에 이르는사상의 점진적인 발전 과정을 측정하는 일이 가능한 것처럼 전제된다. 동시에 과거의 저자들은 (후대의 계승자들이 좀 더 명확히 개진하게 될) 사상을 충분히 명료화하지 못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비판받게 된다. 예를 들어 플라톤은 공공 여론을 고려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며, 로크는 보통선거권에 관해 분명한 입장을 정하지 않아서, 홉스의 경우 기독교에 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인 게 잘못이다. - P113

텍스트만을 따로 연구하고 서로 다른 텍스트를 시대를 뛰어넘어 연결하는 연구 방법이 초래하는 또 다른 결과로는 스키너가 ‘정합성의 신화mythology of coherence‘라 부르는 것이 있다. 이런 전제에 따르면 위대한 저자들의 저작을 평가할 때, 저자가 다른 뛰어난 사상가들과 공유했을 중요한 개념적 쟁점들을 다룰 때 해당 저작들이 어떤 정합성과 깊이를 보여주는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여기에는 어느 저자의 사유를 항상 전체적으로, 즉 오랜 시간에 걸쳐 각기 다른 환경에서 출판된 작업을 서로 이어진 문제의식에 기초하고 있는 하나의 정합적인 전체와 같은 것으로 전제하여 읽으려는 충동이 존재한다. - P114

그처럼 잘못된 방법론에서 ‘예기의 신화mythology of prolepsis‘가 비롯되는데, 이는 어떤 행위가 획득한 사후적인 의미와 해당 행위의 원래 의미를 혼동하는 것을 뜻한다. - P115

스키너에 따르면 이런 논리는 마찬가지로 허황하다. 플라톤이든 루소든 자신들의 사상이 이후의 역사에서 어떻게 사용될지 알 리 없었을뿐더러, 자신들의 사상이 본인들이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쓰인다 해도 그것이 전혀 그들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 P115

스키너가 ‘편협함의 신화mythology of parochialism‘라 명명한 또 다른 난관이 있다. 이는 텍스트가 시대를 넘나들며 다른 텍스트와 대화하고 있으며 따라서 서로 영향을 준다고 전제한다. - P116

이와 같은 신화들을 나열하며 스키너가 말하고자 했던 요점은, 텍스트의 저자들이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에 속한 특정한 용어들을 사용하기 때문에 오직 텍스트에만 기초해 사상을 연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언어는 행위이며 언어의 의미는 현실의 용법에 따라 좌우되었다. 따라서 언어의 의미는 언어가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적 맥락에서 사용될 때마다 바뀌었다. 어떤 텍스트도 그 자체만을 보아서는 저자가, 가령 홉스나 피에르 벨이 모호하게 혹은 아이러니하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혹은 그렇지 않은지를 입증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텍스트 자체만 놓고는 어떤 주제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동일한 방식으로 검토되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일반적인 의미든 구체적인 의미든 관념의 의미는 불변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고려할 때, 전통적인 사상사는 잘못되었다. 언어를 통해 표현된 관념들은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서로 다른 것들을 의미했다. - P117

스키너의 방법은 텍스트 내의 발화가 의미하는 바와 해당 발화의 발화수반적 힘illocutionary force을 구별 지어 이해하는 데 기초하고 있었다. 스키너의 주장에 따르면, 저자의 진술 배후에 있는 의도를 이해할 때는 후자를 고려해야만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 의도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 - P118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논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논변이 어떤 의미로 발화된 것이었는지, 그리하여 (설령 넓은 의미 - P119

에서 같은 맥락을 공유하고 있더라도) 다양하고 상이한 형태의 진술들이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했다. 달리 말해, 어떤 발화가 가진 힘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당대의 (다른) 텍스트들(혹은 이후의 표현을 빌리자면 해당 발화의 이데올로기적 맥락)을 반드시 참고해야만 했다. - P120

스키너는 텍스트를 이해하는 작업의 핵심이 저자가 텍스트를 쓰면서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데 있다고 결론짓는다. 이를 위해서는 "특정한 발화의 배경에 있는 언어가 어디까지 의미할 수 있는지" 재구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사회적 맥락이 ‘의미가 가진 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겠으나, 절대로 그것이 의미 자체를 결정할 수는 없다. - P120

사유의 역사가 "시대를 초월한 진리 또는 절대적 기준들을 향해 진화하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음을 알게 될 때, 연구자는 ‘스스로에 대한 앎‘을 획득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깨달음은 현재의 사상들이 반드시 과거의 사상들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역사적 행위자들이 표명한 모든 견해는 필연적으로 지역적·우발적이며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 P120

스키너의 방법에는 저자들의 의도와 그 배후에 있는 이데올로기에 관해 생각하는 일 또한 포함된다. 이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내에서 특정한 논리가 형성되고, 그런 논리가 다른 대안적인 이데올로기들을 논박하는 줄거리를 구성하는 작업까지 수반한다. 해당 이데올로기가 저자의 논변 위에서 이후에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추적하고, 그것이 동시대의 논쟁적 지형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읽어내는 일은 필수적이다. - P122

스키너의 주장에 따르면, 과거의 중요한 저자들이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지 더 상세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작업은 인간 사회가 어느 때에 어떤 문제들을 마주해왔는지, 그리고 당대의 철학적 언어들이 어떻게 그 문제들의 해법을 특정한 범위 내에서만 사고하도록 제약했는지 등에 관한 지식을 생성해낼 수 있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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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 우리는 과거의 역사가 여러 관념 간의 경쟁을 통해 구성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으며, 바로 그때 지성사 연구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지성사는 인간들이 경험했던 혹은 경험하고자 하는 대안적인 미래에 관한 사변까지도 포함하는 분과가 되었다. 달리 말해, 인간의 삶에 정해진 본질 같은 것은 없으며 구체적인 경험들이 구체적인 관념들을 발생시켰다는 사실, 그리고 인간이 살아낸 경험 및 그 경험에 뒤따라 나오는 것들을 형성하는 데 관념들이 나름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인식되기 시작했을 때 지성사는 하나의 고유한 분과가 되었던 것이다. - P64

포콕, 던, 스키너는 모두 텍스트를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의 산물로 읽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때 구체적인 역사적 맥락이란 언어적 실천을 통해 형성된 여러 이데올로기적 맥락을 의미했다. 텍스트의 의미라는 게 무엇인지를 숙고하면서, 던과 스키너는 저자의 의도가 텍스트의 본질을 파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길잡이라고 보았다. 비록 저자의 의도라는 것이 지적 대상으로서 문제적인 측면이 없지 않으며, 어떤 저자의 저작을 이해하기 위해 의도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여기서 포콕은 다른 둘과 달리 의도보다 패러다임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키너는 역사가의 목표란 특정 텍스트의 저자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드러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때 저자가 ‘하고 있는‘ 일의 범위에는 저자가 무엇을 하고자 했으며 무엇을 달성했는지가 포함되는데, 이는 다른 저자들이 그에 보이는 반응을 통해 해석할 수 있었다. - P100

포콕과 던, 스키너의 가장 중요한 주장들 중에서 특히 포콕이 자신의 모든 방법론적 저술을 통해 강조한 바는 다음과 같았다. 저자가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기 위해 채택하고 활용하는 일련의 전제를 언어 혹은 담론이라고 할 때, 저자가 활용하는 언어 혹은 담론이 저자의 주장 자체에 제한을 가한다는 것이다. 언어 또는 담론은 문법과 수사, 그리고 관념의 용법과 함의에 관한 일련의 전제로 구성되어 마치 복잡한 구조물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언어 사용자들이 공동체를 구성한다고 할 때, 그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저자들은 기존에 존재하는 언어들을 혁신하고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일은 언어라는 복잡한 구조물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인 현재 및 물질적 현재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명료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미 존재하는 언어를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포콕, 스키너, 던은 모두 인간 본성에 관한 메타이론적 전제나, 불투명한 혹은 비역사적인 이론적 어휘, 그리고 역사를 분석할 때 고정된 개념 등을 당연하게 전제하는 접근법들에 반대했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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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사 연구의 핵심은 역사 속의 행위자가 남긴 발화와 주장을 진지하게 탐구함으로써 과거를 조망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 P6

지성사 연구를 통해 언제나 우리는 과거의 행위를, 왜 누군가가 특정한 기획 또는 실천을 옹호했는가를, 왜 누군가가 어떠한 입장을 취했는지를, 그리고 우리의 선조들에게 어떤 선택들이 가능했는지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 - P7

지성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는 숨겨져 있는 것, 즉 후대인들이 폐기하거나 거부해 역사에서 잊힌 과거의 관념과 사상을 찾아 읽어낸다. 지성사가는 사라진 세계를 복원하고 과거의 폐허로부터 여러 관점과 관념을 다시 찾아내며 과거의 베일을 걷어내 어떻게 그런 관념들이 당시에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옹호자들을 설득할 수 있었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관념과 그것이 만들어낸 문화와 실천은 과거를 이해하려는 모든 시도에서 꼭 필요한 토대가 된다. 뛰어난 철학자들, 예컨대 자유, 정의, 평등 같은 개념을 그들이 어떻게 사용했는지 명료하게 풀어내 이해해야 하는 탁월한 이들이 철학적 행위를 어떻게 수행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은 관념이다. 어떤 사회에서든 문화적으로 중요한 인물들, 그리고 형식을 불문하고 대중문화를 해설하는 이들의 작업이 어떤 행위인지 보여주는 것도 마찬가지로 관념이다. - P30

비록 경기 순환이나 인구 변천 단계, 수확고 등등을 연구하는 경우에서처럼 인류의 역사에서 관념의 역할을 생략하는 게 가능해 보일지도 모르겠으나, 실제로 인간사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관념의 존재와 역할은 결코 도외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사고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생각을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제시한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사람들이 특정한 관념을 이야기할 때 이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념이 자신을 빚어낸 더 넓은 이데올로기적 문화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역사적 상황을 섬세하게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즉 관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내는 과제는 오직 역사적 해석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 P34

지성사가에게 관념은 그 자체로 사회현상에 대한 일차적인 정보이며, 관념을 통하지 않고는 기술될 수 없는 우리의 세계에 관한 여러 사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관념은 그 자체로 사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힘이다. 다른 요인에 의해 관념이 형성되는 예도 있으나, 반대로 그런 관념이 우리의 세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이런 사항을 제외하고는 지성사가들 사이에 별다른 방법론적 합의점이 있지는 않다. - P38

지성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먼저 현재 스스로를 지성사가로 부르거나 지성사에 관심을 표명하는 학자들이 어떤 주제를 연구하고 있는지 훑어보자. 정치이론과 국제관계학처럼 전통적으로 지성사와 연결되어 있던 분야 외에도, 정체성, 시간과 공간, 제국과 인종, 성 sex과 젠더, 학술적·대중적 과학, 몸과 몸의 기능, 식문화, 동물, 환경과 자연세계, 민중운동과 관념의 전파 등에 대한 역사적 탐구와 함께, 출판의 역사, 사물objects의 역사, 예술사, 서책사history of the book 등의 다양한 영역에서 지성사 연구가 수행되는 중이다. 이처럼 엄청난 다양성을 고려하면 지성사가 무엇인지 규정하기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 P45

그중에는 거의 모든 역사학은 대체로 과거에 작성된 문헌을 연구하면서 과거의 관념을 다루니 만큼 독립된 학문영역으로서의 지성사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역사가도 있다. 물론 이는 오해다. 역사 연구에 관념을 다루는 과정이 포함되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관념의 내용, 전파, 번역, 확산, 수용을 체계적으로 연구한다는 점에서 지성사는 하나의 고유한 분과 영역이 된다. - P48

루소의 정치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그가 《사회계약론》 전후에 썼던 저술들을 읽을 필요가 있다. 루소는 특히 서신을 통해 끝없이 밀려오는 조언 요청뿐 아니라 많은 비판자들에게도 답변했다. 만약 《사회계약론》만을 읽고 정작 루소가 쓴 다른 저술들 혹은 그가 논쟁을 벌였던 다른 (이들의) 문헌들을 연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과는 전혀 다른 루소를 만들어내게 된다. 더 나쁜 사실은 우리가 그의 주장 중 어느 것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이다. - P54

또 다른 사례로는 애덤 스미스를 꼽을 수 있다. 그의 《국부론Wealth of Nations》(1776)은 종종 근대 경제학과 신자유주의의 기원으로 여겨지곤 하지만, 스미스는 자신의 저작 전체에 걸쳐 상업사회에 매우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영국의 중상주의적 체제가 탄생시킨 세력, 즉 지나치게 강력한 힘을 보유하고있는 무역귀족trading aristocracy으로부터 당시 유럽의 부패한 상업이 비롯된다고 말했다. 스미스는 시대적 변화를 거부하지도, 자유시장경제를 옹호하지도 않았다.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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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음속에서 먼저 일어난 역사, 즉 아이디어에 의하여 추진된 역사를 다룬다. 이것은 우리 인간의 기록이 왜 변화로 가득한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 P6

새로운 아이디어는 불안을 조장하며, 심지어 위험하기조차 하다. 이것들은 현재의 상황에 대한 좌절감을 야기하거나,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상상력은 분명 인류만의 재산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력이 특출하게 풍부한 것은 맞는 것 같다. 필자는 대부분의 역사적 변화는 아이디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아이디어는 물질적인 위기, 경제적 필요, 환경상의 제약, 다른 모든 것들만큼이나 강력한 변화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 P6

이 책은 일종의 카탈로그이다. 소위 지식인들이 경멸하는 장르인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있다. 이 책에는 튼튼한 줄거리가 있다. 주제는 세계를 현재의 모습으로 만든 ‘아이디어들‘ 이다. 그리고 다양한 지역에서 태동한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포함시킴으로써 ‘서구중심주의‘ 를 탈피하려고 노력했다. - P7

오늘날에 존재하는 중요한 아이디어 대부분은 그 기원이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필자는 그 사실을 반영하기 위해 통상적인 관습을 버렸다. 많은 아이디어들은 문자가 발명되기 전에 인간의 마음속에 최초로 떠올랐다. 그런 아이디어들은 오로지 고고학적 연구와 드물게 나마 살아남은 예술 작품과 상상력을 통해서만 재구성할 수 있다. 아이디어의 역사를 다룬 대부분의 이야기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한다. 기껏해야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시작된다. 이것은 이중의 오해를 낳는다. 우선 그것은 서구 전통에 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역사를 왜곡하고, 다음으로 역사에서 가장 긴 시대를 배제한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독자들은 그리스 현자들의 아이디어에 도달하기 전에 책 전체 내용의 4분의 1이상을 지나온 것을 발견할 것이다. - P7

나는 이 책이 나름대로 독특하고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 책에도 한 가지 중요한 한계가 있다. 그것은 이 아이디어들이 개인적으로 선별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선택의 문제는 오로지 필자의 책임이다. 필자는 마음속에 두 가지 기준을 가지고 책을 썼다. 우선 필자가 이해하는 아이디어들은 순수하게 정신적인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사회적 운동이나 발명, 발견, 정신세계 밖에서 일어난 일은 포함시키지 않고 인류, 우주, 초월적인 세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 아이디어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이 책은 아예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하는 거의 모든 일이 하나의 아이디어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라면 포함시켜야 할 아이디어들의 목록은 끝이 없다. 예를 들면,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위대한 기술적 혁신과 발명을 포함시키고 싶은 유혹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발명이다. 그리고 발명에는 또 그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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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은 공동주택의 성장에서 나온 익은 과일이다. 자유를 얻기 위해 가정을 희생한 세대나 모국의 이익을 위해 모국을 떠나온 세대의 구속에 대한 본능적인 적개심을 물려받은 갱이 공동주택에서 싹을 틔운 것이다. 공동주택은 그 씨를 거두고 키웠다. 격한 미국인 기질은 그보다 차분한풍토에서라면 흔한 ‘싸움꾼‘ 정도에 머물 사람을 살인자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 뉴욕의 갱단은 오랜 억압과 새로운 억압 모두에 맞서는 반항의 본질을 대변하면서 슬럼이라는 비옥한 토양에서 성장했다. 이런 조직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영국인, 아일랜드인, 독일인의 자식들로 구성된다. 갱단은 그 기원이 되는 공동주택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한다. - P330

여성 노동자들을 향한 변함없는 신뢰에 대해 말하자면, 가는 길이 거칠고 삶과의 전쟁이 절망적일지언정 그들이 타락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들은 용감하고 고결하며 성실하다. 뉴욕의 방탕한 여성들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같은 여성들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 뉴욕의 여성 노동자들은 자존심이 센 만큼 용기가 있다. "미국 여성은 절대 징징대지 않는다"는 말은 이미 오래전에 속담이 되었다. 군말 없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이들은 매사 최선을 다하는 한편, 필요하다면 한끼 혹은 하루 식사의 절반을 희생하면서 소중한 자립생활을 유지한다. 공동주택의 가정과 어린 시절의 전통은 이 여성들에게 사치를 가르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작업장보다 집안일을 더 좋아하는 기질을 단련시키지도 않았다. 이들의 용기는 보상받을 것이다. 여성의 직업이 더욱더 많이 사회 계획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신념이 서서히 확산될수록, 더 나은 날이 밝아온다. 일하는 여성들의 동호회, 노동조합, 이익단체의 조직은 비록 그런 움직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증명하고 있다. 이들은 더 가난했던 앞선 세대의 대의를 이룬 이타적인 희생에 따라, 불공정한 세상으로부터 너무도 오랫동안 여성을 거부해온 정의를 쟁취하기 위해 한층 더 노력할 것이다. - P361

그러나 궁극적이고 가장 큰 요구 즉 실제적인 구제는 그 원인—‘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는 계층’을 위해 지어졌고 그 목적을 100퍼센트 달성한 공동주택—을 제거하는 것이다. 공동주택 개혁이야말로 뉴욕의 빈민 문제를 해결할 핵심요소이다. 우리는 결코 공동주택도 빈민도 없앨 수 없다. 이 둘은 언제나 뉴욕에 공존할 것이다. 하지만 공동주택을 개혁하는 것은 지금까지 찾지 못했고 앞으로도 없을 방법들을 총동원하는 것보다 빈민을 없애는 데 더 효과적일 것이다. - P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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