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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웰즈의 죄 ㅣ 판타스틱 픽션 골드 Gold 5
토머스 H. 쿡, 한정아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처음에 몇 장을 읽자마자 느낌이 왔다. 오랜만에 나 푹 빠지겠구나 하고.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애엄마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이 책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1980년대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씌어진 이 작품을 보면서
내가 그동안 얼마나 우물안 개구리같은 삶을 살았는지.
세상에는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알려고 한 적도 없는 사건과 죽음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여실히 깨달았다.
불안정한 시대에서 한 개인의 인권과 목숨 따위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
작가의 섬세한 묘사는 그 시대로 나를 끌어들였고
난 책 속의 인물처럼 함께 호흡하고 공포를 느꼈다.
왜 줄리언 웰즈라는 젊고 촉망받는 미국인이자 재능을 갖춘 젊은이가
그렇게 어둡고 암울한 사건과 인물들 속으로 숨을 수밖에 없었는지.
조심스럽지만 당당하고 순박하지만 현명했던 마리솔.
두 젊은 미국인의 마음을 빼앗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던 그녀가 아무 이유도 없이 사라진다.
이념적 대립때문에 납치, 실종, 고문, 살인이 무자비하게 자행되던 그 시대의 아르헨티나.
책을 읽는 내내 줄리언 웰즈가 그렇게 된 계기를 누구보다 궁금해하며.
그 아르헨티나 사건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상상력을 키워나갔다.
마리솔이 천사의 얼굴을 한 폭력조직의 거물이라는 결론을 얻어나갈 즈음,
갑자기 궁금해졌다.
속았다는 배신감과 분노가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정도인가?
책은 계속 그 쪽으로 내용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고
단서 하나가 나올때마다 수여러번 생각하고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결론은 나의 뒷통수를 칠 정도의 반전이었다.
한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결론.
그제서야 줄리언이 했던 말들, 그가 책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내용들.
그리고 왜 자기 생을 그렇게 마감할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아르헨티나의 상황이 그렇게까지 위험하지 않았다면..
각종 악연들이 그렇게 얽히지 않았다면..
마리솔에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거다.
하지만 시대의 불행은 한 소박한 여성의 삶을 송두리째 박살낼 수 있었다.
미국 이라는 안전한 보호망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펼치는 인생을 살고 있는 줄리언으로서는 상상도 못했을 일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념이라는 방패 아래 자행되는 잔악무도한 일들.
인권, 사람의 생명이라는 소중한 가치들이
이념 앞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되어버리는 무서운 현실 속에서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당연한 행복들을 지키기 위해서 더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