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심리를 잘 묘사한 수작

살의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39
프랜시스 아일즈 지음, 유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거의 모든 미스터리가 피살자나 살인자가 아니라 진상을 추구하는 탐정이나 형사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는 데 비하여 「도서미스터리」는 범죄를 저지른 살인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는 것이 특징이다. 아무리 완벽하게 진행된 살인 사건이라 할지라도 살인자의 사소한 실수 때문에 사건의 진상이 밝혀진다는 플롯으로 짜여진 「도서미스터리」가 범죄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는 것은 당연하더라도 독자들은 가치관의 혼란을 겪게 된다. 납치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납치된 사람들이 납치범을 이해하고 협력하게 된다는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범인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소설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살인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살인자가 잡히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살인자인 비클리 박사가 부인을 살해하는 심리를 설득력 있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들은 잠시 살인자를 이해하고 공범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부인을 살해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마들레인에게 '아내는 죽었소.'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한번의 살인으로 그쳤더라면 형사 처벌받는 일은 없었을 텐데 등등 살인자를 이해하고 동정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대다수의 미스터리가 범인을 찾고 범죄를 입증하는 데 중점을 두는 나머지 심리 묘사를 등한히 하는데 비해 이 소설은 범죄자의 심리를 잘 묘사한 점에서 수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세기 초반의 영국의 시골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한 점으로도 이 소설은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 시골 사람들의 미묘한 계급 의식과 신사 계급의 생활을 생생하게 그려내 그 시대 사람들과 그들의 생활을 눈으로 보는 듯하다. 비클리 박사의 부인은 나이도 많고 돈도 없지만 출신 성분 때문에 성공한 시골 의사인 남편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업신여기고 무시한다. 결국 그것 때문에 비클리 박사는 부인 줄리아를 죽이려고 마음 먹고 실행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권력이 주어진 사람은 철저하게 법률적, 제도적으로 감시해야 한다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되었다. 왜냐 하면 우리도 때로는 특정한 사람을 죽이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 죽일 놈을 없애기 위해 살인 방법, 법망을 피하는 방법을 공상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 그러나 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인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살인을 하려고 해도 수단과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독살하려고 해도 약물에 대한 지식도 없고, 약물을 얻기도 쉽지 않다. 총으로 쏘아 죽이려고 해도 총을 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의사는 약물을 쉽게 구할 수 있고, 군인은 총기를 쉽게 구할 수 있다.

이러한 범죄의 수단과 방법이 용이한 사람들을 법률로나, 제도로 감시하지 않으면 큰 범죄를 저지를 수가 있는 것이다. 종종 군인이 무기를 빼돌려 강도 사건을 저지르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프랜시스 아일즈의 「살의」는 살인자의 심리를 잘 그려낸 점과 범인을 미리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책을 읽게 하는 긴장감, 마지막의 극적인 장면 등 빼어난 미스터리 작품의 요소를 골고루 갖춘 작품이다.

추리 소설이 아니라 유모어 소설이네

도버4/절단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45
조이스 포터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미스터리는 지적 유희이다. 수수께끼 풀이가 중심이라는 이야기이다. 미스터리는 독자에게 지적 즐거움을 주기 위하여 살인 방법, 해결 방법, 탐정의 캐릭터 등에 걸쳐 늘 새로운 시도를 한다. 이 새로운 시도가 성공하면 성공하고 그렇지 못하면 실패한다. 그런데 살인 방법, 해결 방법, 탐정의 캐릭터 등을 무한하게 찾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수수께끼 풀이라는 미스터리의 본령에서 벗어난 아류 미스터리도 많다. 이 도버 4/절단은 아무래도 미스터리라기보다는 경관이 등장하는 유머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듯하다.

아류 미스터리도 미스터리 못지 않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도버 4/절단이 동서문화사에서 펴낸 미스터리 60권에 끼인 것이 이상하기만 할 따름이다. 우선 주인공인 도버는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엉뚱한 해결책을 내놓고 엉뚱한 소동을 벌일 뿐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다. 사지절단 시체와 절벽에서 뛰어내린 경관의 자살원인을 부녀회원들이 성적 문제를 일으키는 남자를 거세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경찰을 동원하여 소동을 벌이나 알고 보니 부녀회원들이 문화영화를 감상하고 있다는 줄거리도 그렇다.

그리고 도버의 성격묘사도 개성을 가진 경찰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로테스크한 경관의 성격과 행동을 나타내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듯하다. 부인과 부하에게 하는 행동은 억압과 폭력에 다름 아니다. 폭력에 미소를 짓는다면 성격 이상의 다른 표현이다. 이 소설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도 내놓지 않는다.

그로테스크한 주인공의 성격과 말도 안 되는 소동을 소개하는데 주력할 뿐이다. 해밀튼은 왜 죽었는지, 코클란 순경은 왜 자살했는지 이 책을 읽어도 알 수가 없다. 아무런 설명도 없다. 도버의 설명이 유일한 설명인데 이는 소동 끝에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그리고 서장의 7일간의 실종과 성격 변화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 내가 영국식 유머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인가?

우리가 본격 미스터리만 읽을 필요는 없지만 조이스 포터의 도버 4/절단은 본격 미스터리를 사랑하는 매니아들에게 배신감만 안겨 준다. 그것이 이 미스터리의 진짜 미스터리일까?

추리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흥미로운 인간과의 만남

엉클 애브너의 지혜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36
멜빌 데이비슨 포스트 지음, 김우탁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추리소설을 읽는 즐거움은 지적 유희에 있다. 소설을 읽으면서 범행 과정, 동기, 증거 등을 음미하며 작가와 두뇌 싸움을 벌이는 데에 추리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추리 소설을 읽는 데는 다른 즐거움도 있다. 흥미로운 인물을 만나는 즐거움, 이국적인 사회를 대하는 즐거움도 있다.

탐정 엉클 애브너는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다. 정말 그렇다. 구체적인 직함이 없으므로 사립탐정이나 아마츄어 탐정으로 볼 수 있지만 랜돌프 치안관을 도와 사건을 해결하는 점에서는 보조적 형사라고도 볼 수 있다. 탐정 엉클 애브너는 19세기초 미국 사회에나 있을 인물이다. 사건의 해결 과정도 그렇고 범인 처리 과정도 그렇다.

살인범을 형사처벌하지 않고 신의 섭리에 맡기는 점에서 엉클 애브너는 일면 동양적 사고 방식을 가진 인물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살인범을 풀어주는 것은(하느님의 사자) 성경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신앙심 깊은 인물이므로 신의 뜻에 맡기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요즘처럼 삭막한 세상을 사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엉뚱한 결말이기도 하다.

이 추리 소설에는 19세기초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 미국의 지역사회에 사는 매우 흥미로운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소설의 성격을 띠기도 한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큰 목장을 경영하는 지주 계급, 지주는 아니지만 치안관을 하는 지주 대우를 받는 사람 등의 상류 계급과 지주들의 시중을 드는 흑인 부부 등 하층 계급의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많은 돈을 상속받았기에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는 파락호도 만날 수 있고, 대부호의 상속인이면서도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기에 상속 자격을 잃고, 나중에 동생을 협박하는 사람도 나온다(보물찾기). 동생을 협박하여 유언장을 위조하고 살해한 형도 나온다(손자국).

19세기 미국은 변화가 느린 매우 안정적인 사회였지만 그 사회 내부에는 살인, 탐욕, 사기 등 온갖 범죄가 저질러지는 것이다. 엉클 애브너는 이러한 범죄 행위를 날카롭게 파헤쳐서 진실을 밝혀내는 탐정이면서도 그 시대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하느님의 가르침으로 바로잡으려는 사회개혁가이기도 한 것이다. 추리 소설을 범죄소설로만 보면 우리는 일면만 보는 것이다.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다양한 사회와 매력적인 인물을 만나는 즐거움을 결코 놓쳐서는 안된다

스웨덴에 핀 경찰 소설의 꽃

웃는 경관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23
펠 바르.마이 슈발 지음, 양원달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추리소설 하면 영국과 미국을 떠올리는데 스웨덴에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오고 있어 행복하다. 이 작품은 전에 문고판으로 나왔을 때 읽었었는데 다시 읽으니 새 작품을 읽는 듯 작품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부부 작가가 쓴 웃는 경관은 여느 미국이나 영국의 추리 소설 작품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수작이다. 탄탄한 구성, 개성을 가진 인물(경찰)의 등장, 스웨덴의 겨울에 향수를 품게하는 묘사 등. 재미와 품격을 갖춘 미스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6년전의 사건을 해결하는 경관이 버스 안에서 범인의 공격으로 다른 승객들과 함께 참살당하는 장면에서 시작하는 대량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경찰의 끈질긴 추적이 돋보이는 추리소설이다. 마르틴 베크가 지휘하는 살인과 형사들은 사소한 단서도 놓치지 않고 두 달 여 동안 살인범을 추적하는데 인물의 성격을 잘 묘사하여 전혀 억지스럽게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팀워크를 이루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이 흥미로운데 특기할 점은 우리 식으로 명령 하달식으로 살인과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형사 개개인이 자신의 장기를 바탕으로 수사하는 점이 흥미로웠다. 어느 조직이나 조직을 강조하면 조직원의 개성은 말살되고 역동성을 잃게 된다. 조직의 책임자는 조직 구성원이 개성과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재량을 부여하는 데에도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무능한 지도자일스록 자신의 방식과 주장을 고집하여 조직 구성원들을 절망하게 하고 조직을 와해시킨다는 것이 나의 견해다.

그리고 사건 수사 단계마다 형사들이 토론으로 중간중간 점검하면서 수사를 진행하는 토론의 활성화도 흥미있었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경찰의 끈질긴 추적을 읽으면서 우리 경찰의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 경찰도 사건이 없어 한가할 때 16년전의 미제 사건을 추적할 수 있을까? 경찰은 바빠서 집에도 잘 들어가지 못하는 한국의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별로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한국 경찰은 시간도 없지만 과학 수사보다는 강압과 자백을 주무기로 해온 부끄러운 전통 때문에도 소설 속의 경관처럼 사건을 끈질기게 수사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치과의사 모녀살해사건, 김순경 사건 등의 경우를 보면 한국의 경찰은 과학 수사가 아니라 강압수사를 계속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우리 경찰도 과학 수사, 조직원의 개성 존중, 토론의 활성화 등으로 열린 자세로 사건을 해결하는 선진 경찰이 되었으면 한다.

토니판디-역사적 진실을 찾아서

진리는 시간의 딸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48
조세핀 테이 지음, 문용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1월

토니판디는 역사적 사실이 잘못알져 후세사람들이 역사를 잘못 알게되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이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토니판디에 비무장 경찰을 보냈는데 기자들이 악의적으로 무장 경찰이 발포한 것으로 보도하여 파문이 일었던 사건에서 나온 말이다.

훌륭한 군주였던 리차드3세가 조카를 죽인 살인마로 알려지는 것을 병원 침상에 누운 형사가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바로잡는다는 재미있는 착상을 줄거리로 하는 이 소설은 영국 역사를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한 장의 초상화에서 출발하여 역사적 진실을 캐내는 작가의 재치가 돋보이는 우수한 작품이다.

그리고 역사 교과서에 기술된 역사가 반드시 옳을 것은 아니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신돈이나 광해군이나 견훤을 보는 새로운 연구가 최근에 나오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역사를 새로운 사료로 재평가하려는 노력은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는 훌륭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영국의 경우는 개인의 기록물들이 많이 남아있어 이러한 작업이 가능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는 훌륭한 기록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체제의 눈으로 역사를 쓴 관찬 역사다. 개인의 눈으로 사건을 본 당시대의 기록이 남아있다면 토니판디는 훨씬 줄어들 텐데... 불행하게도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있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나마 남아있는 개인의 문집 등도 공개되어야 마땅하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개인의 문집은 한문으로 씌어진데다 문중 등에서 보관하기만 하고 일반에 공개하지 않아서 역사 연구에 걸림돌이 된다.

끝으로 동서문화사에서 1000권의 추리소설문고를 펴낸다니 엄청나게 고무되어 있다. 부디 지금까지 펴낸 소설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을 펴내 추리소설 독자들을 기쁘게 해줬으면 한다.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