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종의 2대조 혜가가 구도행을 청하는데도 무덤덤한 스승 앞에
자기 팔뚝을 잘라 바치며 간절하고 굳은 뜻을 펴보였다는 입설단비 고사. 이를 젊은 시인이 노래한 것을 보고 섬뜩하게 인상적이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청년의 기개, 서릿발 같은 결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그 김선우 시인이 어느새 불혹을 훌쩍 지나버렸다. 하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펄펄
끓고 있다. 시인이 언제나 청춘인 까닭은 어디 있을까?
그리하여 어쩌면 나도 꼭 저 나무처럼
파묻힐 듯 어느 흰 눈 오시는 날
마다 않고 흰 눈을 맞이하여 그득그득 견디어주다가
드디어는 팔뚝 하나를 잘라 들고
다만 고요히 서 있어 보고 싶은 것이다 (입설단비
중에서)
불혹이라면 이제 번잡한 세상사에서 물러나 초연해질 때라고 다들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해묵은 이 말이 여전히 유효할까? 시인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발언하고 있다. 연륜을 깊어갈수록 오히려 떨림과 혼돈과
안타까움이 더해가야 한다고 전언한다.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는 그런 시인의 대사회 발언인 셈이다. 시절이 엄혹하고 삶이 팍팍한데 어찌 뒷전으로
물러나 나이 든 태를 낼 수 있겠냐고 항변하는 선언문 같다. 시인의 감성으로는 구조적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의 안락을 위해 외면하고
방관할 수 없다고 말이다. 눈밭에 서 있는 자가 따뜻한 방을 찾기보단 오히려 자신의 팔뚝이라도 잘라 세상을 녹여야하지 않겠냐고. 시대가 이러니
계속 청춘의 흔들림으로 머물 밖에 없다고 단호하게 결기를 세운다.
시인은 때론 자신의 무기력을 자책하기도 한다. 질곡의 세상에서 달리
뾰족한 수도 없이 드립만 날리고 있는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곧 결기를 다잡고 시대의 방향을 질타한다. 우선 소유욕으로 점철된
자본주의 체제에 딴지를 건다. 모든 것을 사적 소유 개념으로만 바라보는 천민자본주의 행태를 꼬집는다. 그러면서도 대안 제시를 잊지 않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소유하지 않고 사랑하고 공유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얘기하고 있다.
말이야 천만번 못하겠는가 내 마음이 당신을 이리
사랑하는데
그런데도 나는 [당신꺼]라고 말하지 않는다
햇살을 곰곰 빗기면서 매일 다시 생각해도
당신이 어떻게 내 것인가 햇살이 공기가 대지가
어떻게,
내 것이 아닌 당신을 나는 오 늘 도 다 만 사 랑 한 다...
([내꺼] 중에서)
시인의 시선은 또 낮은 자,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로 향한다. 그들의
세밀한 음성에도 귀 기울이고 있다. 아직 얼어 죽고 굶어죽은 자들이 존재하는 이 시대의 비정한 현실을 얘기할 땐 담백하고 냉소적인 것 같지만
실은 축축하게 젖어 있음이 읽힌다.
그지 같아! / 응? / 거지 같다구 사는 게 / 거지가 뭐
어때서? / ......가자 / ......그래 가자 (중략)
약수터에서 물 한 통 받은 두 사람 벤치 앞을 다시 지난다
눈많은그늘 겹겹이 쌓인 벤치 밑, 나비가 호호 발을 분다 이 벤치엔 비밀이 많다 가장 가까운 비밀은 일주일 전 눈많은그늘할아버지, 사흘째 잠에서
깨지 않은 채 딱딱해진 그를 나흘째 경찰이 와 마대자루에 담아갔다 지겨운 거지들! 벤치 밑의 눈많은그늘나비가 사람에게서 배운 그늘의 말이었다
(눈많은그늘나비 중에서)
아픔을 노래하면서도 시인은 생태적 감성을 잊지 않는다. 나비가
사람의 말을 배우며 발을 호호 불고 인간은 나비의 이름으로 불린다. 새로운 세대의 감성은 자연과 인간이 별개의 존재가 아닌 공존하고 소통하며
더불어 어우러지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시인의 감성과 의식의 지향이 이러하니 또 청춘의 모습 아니겠는가? 이런 세상에 시인은 달리 줄 게
없어 헌혈이라도 하겠다고 나선다. 그런데 대상을 인간으로만 국한하지 않는다. 돌고래, 펭귄, 자벌레, 심지어 외계 얼음 종족까지도 혈액형을
알려주면 기꺼이 자신의 피를 내어 주겠다고 나선다. 이 피는 물론 생물학적 혈액일수도 있겠지만 심정적 공감과 공유, 모든 살아있는 것들과의
연대를 말하고 있는 것일 테다.
그녀의 떨림과 흔들림은 언제쯤 잦아들까. 아마 영원히 그러지 못할
것이다. 또 어떤 이가, 무슨 가녀린 것들이 시인을 아프게 할지 모르니 말이다. 그런 여린 시인, 세상 모든 것들의 감각에 감정을 싣는 시인이니
언제나 청춘의 감성이랄 밖에. 그런 시인의 숨결이 배어 있는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는 영원한 청춘의 노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