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날들에 필요한 말들 - 단단한 마음을 만드는 25가지 방법
앤 라모트 지음, 한유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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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오면서 즐거웠던 일보다 괴롭고 힘겨웠던 일이,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 몸부림쳤던 나쁜 날들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의식이 선별적으로 기억해서인지 모르지만 과거나 지금 닥친 일들 가운데 유독 그런 일과 날들이 더 또렷이 다가오는 것이다. 작가 앤 라모트는 이렇게 우리가 늘 부딪히는 나쁜 날들에 대해 공감과 위로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삶의 좌표를 잃어버렸다든지, 자신이 의미 없다고 느껴진다든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 같은 너무 아픈 사건이 일어난다든지, 또는 지나간 실패를 도무지 회복할 수 없다고 느끼는 우리에게 슬몃 말을 건넨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몇 대목을 소개하면, 우선 나쁜 날들에 몸서리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극히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이들에게 들려주는 위로의 말이 떠오른다.

“둔감한 사람들도 있지만 넌 그렇지 않단다. 그건 네가 열린 마음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때로 고통스러울 거야. 하지만 그건 이 세상에 제대로 반응하는 거란다. 치러야 할 대가가 클 수도 있지만 연민이 많은 사람은 축복받은 존재지. 하지만 7학년이 되면 이런 고통을 더 잘 견딜 수 있게 될 거야.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렴.” (64)

그리고 나쁜 날들을 외면하려고 억지로 애쓰지 말라고 위로한다. 좋은 날이 있다면 당연히 나쁜 날들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빛이자 그림자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에게는 밝거나 어두운 면을 비롯한 다양한 모습이 있다. 우리는 밝고 빛나는 존재로 길러졌다. 그렇기에 때로는 어두운 모습을 외면하고 억지로 밝아야 한다고. 나에게는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하고, 나는 반드시 남들보다 행복해야 한다고 되뇐다. 하지만 인생에 어두운 부분이 없을 수는 없다. 우리 내면에도 자괴감, 질투, 실망 등과 같은 어두운 면이 늘 자리 잡고 있다. 일부러 이런 것들에 눈감을 필요는 없다. (183)

앤 라모트는 나쁜 날들을 견디며 이겨내는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는 우선 스스로 아픔을 이겨내라고 권고한다. 부모가 아이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고생하는 것을 못 본 척 하듯 신도 그럴 거라며 자신이 당당히 맞서라고 한다.

죽은 사람의 마른 뼈가 부활하는 환상을 본 예언자 에스겔은 이 뼈들이 생명을 되찾아 다시 사람이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의 연민과 시선은 뼈들 사이로 스미는 실바람, 성령, 에너지, 다시 말해서 삶 그 자체였다. 그는 뼈들을 일으켜 스스로 서게 했다. 신은 선지자나 불타버린 작은 마을의 사람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람들이 그렇게 하도록 선택한다. 거기에서 다시 일어서도록, 스스로 치유하고 주변을 돌아보도록 한다. 사람이 사람을 이끌고 사랑하도록 한다. 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게 우리를 키우고 있다. (123)

또 하나 해법으로 제시하는 게 서로 연합하여 슬픔을 이겨내는 에너지를 얻자는 것이다. 다른 천 조각처럼 제각각인 사람들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바늘땀에 비유하고 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아무리 혼란스럽더라도 서로서로 꼭 붙어 있어야 한다. 마치 다채로운 색과 크기와 모양의 천 조각들이 모여 아름다운 퀼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천 조각들을 잇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바늘땀이다. (이 책의 원제는 “바늘땀stitches"이다.) (194)

그래서 앤 라모트는 살다보면 어쩔 수 없이 나쁜 날들과 만나게 되어 있으니 너무 좌절하지 말고, 또 억지로 벗어나려 애쓰지 말고 자신의 감성을 존중하며 스스로의 에너지를 세우고 더불어 타인과 연대함으로써 슬기롭게 이겨내라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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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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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이 경제학계를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은 좀처럼 퇴치할 수 없다. 유령을 떠받드는 이들이 언제나 학계를 좌지우지해왔기 때문이다. 유령 숭배하는 자 특유의 배타적인 도그마에 빠져 안하무인으로 전권을 휘둘러온 것이다. 그 도그마는 경제학이 가치 판단을 배제한 명료하고 논리적인 과학이며 숭배자들만이 본령에 접근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또 시장 기능은 완벽하며 국제거래는 으레 자유무역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이를 확신하며 도그마를 확산시키려 하고 있다. 이렇게 공고화된 경제학계의 지적 전통에 딴지를 거는 이는 그간 거의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제학은 그렇게 대중과 유리된 채 그들만의 리그로 굴러갈 따름이었다.

 

우상 숭배와도 같은 이런 맹신을 경계하고 지적하며 대안을 제시하기란 예사 각오로는 어림도 없다 하겠다. 학계에서 매장당할 게 빤히 보이는 짓이니 말이다. 그런데 여기 좌충우돌하는 이단아가 있다. [사다리 걷어차기]를 필두로 주류 경제학계의 아성에 도전하는 행보를 꾸준히 이어오고 있는 장하준 교수가 바로 그다. 기성학계의 거센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는 오늘도 고스트 버스터를 자처하고 있다. 이번에 장하준 교수의 포커스는 대중에게 맞춰져 있다. 난해한 암호 같은 경제학이 아닌 일반인의 지적 수준으로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경제학을 지향한다. 이를 통해 그는 대중이 도그마에서 벗어나 이성을 회복하게끔 이끈다. 어느 정도 지적인 수준을 갖춰야 하는지 정의적으로 어떻게 결단해야 하는지 일깨우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한마디로 대중들이 학계를 배회하고 있는 유령과도 같은 주류 경제학자들의 도그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녀야 할 지적 정의적 매뉴얼이라 하겠다. 여기서 장하준이 꼽고 있는 경제학계의 도그마 몇 가지를 짚어보자.

 

1. 가치 판단을 배제한 순수과학이라는 도그마

 

학자들, 특히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은 경제학을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가치가 배제된 순수 학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어떤 정치적 의도나 윤리적 정당성과도 무관하게 냉정한 과학적 법칙이 작용하는 대상을 수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라 맹신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 정책을 결정하는 이는 정치인이요, 그는 특정 이념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경제 영역에 외부 요소가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며 사회적 약자가 배제되고 있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논의가 무성하다. 그런데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편적 복지, 부자 증세 논쟁 등은 다분히 가치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다루고 있는 재정 및 금융 정책도 이런 맥락과 궤를 같이 한다. 따라서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처럼 현실과 유리된 순수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주장을 우상처럼 신봉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 장하준은 통렬하게 질타하고 있다. 인용하고 있는 돔 헬더 카마라 대주교의 발언은 그래서 울림이 깊다.

 

“어쩌면 우리 모두 약간은 ‘공산주의자’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이 조건이 ‘좋지 않은’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만큼 절박하게 만든 환경을 용인할 것인가를 물어야 하는지도 모른다.”(341)

 

2. 학자들의 전유물이라는 도그마

 

“경제학의 95퍼센트는 상식에 불과한데 단지 전문 용어와 수학을 동원해서 어렵게 보이도록 한 것뿐이라는 말까지 했었다.”(13)

 

경제학은 난해한 학문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것은 신고전주의 학자들의 학풍에 영향을 받은 바 크다. 그들은 모든 문제에 올바른 하나의 답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이를 검증하기 위해 수학과 통계학의 방법론에 과도하게 매달렸다. 그 과정에서 현실 적합성과는 별개로 내적 논리 일관성 추구에만 매몰된 것이다. 그러니 점점 복잡다단해져서 대중의 지적 수준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이 되어버렸다. 경제학자들 끼리의 외계어 같은 용어와 논리로 현실 경제 현상을 설명하니 대중은 그만 마음 문을 닫을 수밖에. 점점 경제학과는 담을 쌓게 된 것이다. 장하준은 이렇게 학자들만의 리그에 머물고 있는 경제학의 문호를 대중에게 활짝 열자고 제안하며 대중의 눈높이에 맞는 경제학 이론을 펼치고 있다.

 

3. 숫자 맹신 도그마

 

“숫자 자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생산량이나 소득 통계가 생활수준을 정확히 나타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230)

 

그는 경제학자들이 즐겨 인용하곤 하는 숫자를 너무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생산량이나 소득처럼 간단한 숫자에도 가치 판단과 생략과 과장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을 집계하는 과정에서 주부의 가사노동이나 자원봉사처럼 시장 가격 형성이 되지 않거나 선의로 무상 제공하는 용역 등의 가치는 빠져 있다. 중요한 경제 활동임에도 말이다. 또 국민 소득이 높다 해도 명목상인지, 구매력 평가 조정을 거친 자료인지 엄밀히 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숫자만으로는 정확한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은 습관적으로 이런 피상적인 숫자를 열거하며 이론을 펼쳐나간다. 어떻게 보면 자만이고 한편으론 지적 안일에 빠져 있다 할 수 있겠다. 그렇다고 장하준은 경제학에서 숫자의 가치를 도외시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제2부 경제학 사용하기는 온통 실제 숫자의 나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매 항목마다 수치화 작업을 통해 자신의 논리를 검증하고 있는데 이때도 숫자의 의미부터 살핀 다음 진정한 가치를 추적하여 과장된 논리를 바로 잡고 자신의 논리를 정당화하고 있다. 숫자를 너무 부정하지도 그렇다고 맹신하지도 않는 것이다. 이런 태도를 지녀야 도그마를 깰 수 있지 않을까?

 

4. 신고전주의 일변도 도그마

 

경제학계에는 아홉 개 이상의 학파가 존재한다. 그런데 영미 계통의 주류 경제학에선 으레 신고전주의를 바탕에 깔고 논의를 전개하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 알프레드 마셜이 체계화한 이후 경제학의 지적 정통성이 그들에게 있다는 자만감에 잔뜩 빠져 있는 것이다. 그들은 경제학의 여러 영역 가운데 생산 부문 보다는 소비 영역에, 정부 부문 보다는 시장에 방점을 찍고 있다. 그런 신고전주의 일변도의 이론과 정책들이 무분별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들은 극도로 배타적인 포즈를 취하며 여타 대안적 사조들을 폄훼한다. 유일신을 떠받들 듯이 말이다. 장하준은 ‘망치를 쥔 사람’은 다른 연장이 있다는 것조차 모를 수가 있다며 그런 편협한 색맹이 되지 말고 다양한 임무에 맞춘 서로 다른 연장이 달린 스위스 아미의 나이프를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비유를 들어 말한다. 특히 그는 상황별로 그에 걸맞는 다양한 경제학 사조들의 조합을 제시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를테면 경제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면 MDKI(마르크스주의와 개발주의와 케인스학파와 제도학파)를 두루 아우른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며 기업 작동 원리를 살피려면 SIB(슘페터학파와 제도학파, 그리고 행동주의)를 통합하여 접근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야말로 백화제방에 이종교배를 권장하고 있는 것이다.

 

5. 시장 신봉 도그마

 

경제학자들, 특히 주류 신고전주의 학자들은 시장의 자동 조절 기능을 맹신한다. 거의 신앙 수준이라 보면 될 것이다. 이런 도그마에 젖어 있으니 다른 현상이나 대안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밖에. 시장의 실패가 뻔히 드러나도 정부의 실패보다는 낫다는 식으로 애써 외면한다. 그러니 경제 침체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재정, 금융 정책에 대해 무용론을 제기하며 쐐기를 박는다. 분배 정의나 공정 거래를 위한 개입도 바라지 않는다. 역효과가 크다는 논리를 내세워 시장 자율로 모든 것을 맡기자고 강변한다. 이런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탓에 세월호가 침몰하고 중소기업은 몰락하고 소비자는 비싼 독과점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으며 분배에서 소외된 자들은 기아선상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인데도 말이다. 장하준은 특히 분배 불공정이나 불법 금융관행 등에 대해 정부의 강력하고 단호한 개입을 주문한다. 그래야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가 건전하게 운영될 수 있다고 믿는다.

 

6. 자유무역이 유일한 원리라고 믿는 도그마

 

[사다리 걷어차기]에서부터 장하준은 자유무역이 유일한 무역정책이 아님을 강력하게 설파해왔다. 오늘날 자유무역을 신봉하고 있는 미국이나 영국도 한때 극단적인 보호무역 정책을 폈던 전력이 있음을 보여주며 말이다. 그런데 주류 경제학자들은 리카도의 비교우위설부터 이어지고 있는 지적 전통에 입각하여 자유무역이 모든 나라에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산업이 유치 단계에 있는 개발도상국이 선진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링 위에 오른다면 승부는 불을 보듯 뻔할 것이다. 그래서 나라별로 발전 단계별로 무역 전략을 다르게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호무역이 한 나라의 경제 성장을 가로막는 암적인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으로 경제 성장을 촉진하는 발판이 될 수 있음을 역사적 사례를 들어 증명하고 있다.

 

7. 금융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는 도그마

 

최근 경제학의 인재들은 거의 금융계로 몰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금융업이 아직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금융업계는 파산해도 종사자는 인센티브를 챙기는 등 도덕적 해이도 극에 달하고 있다. 장하준은 이런 경향에 준엄한 일침을 가하고 있다. 그는 작심한 듯 월스트리트에서 개발된 신종 금융상품에 대해 일종의 신용 사기라고 단언하고 있다. 그러면서 산업, 특히 제조업이 거세된 금융 중심의 성장 모델은 사상누각임을 역설한다. 그의 논리는 자연스레 금융업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8. 그러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장하준은 경제학계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도그마를 하나씩 짚고 이것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법을 제시한 다음, 그럼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실천적 대안 쪽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정통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보기 드문 정의적 영역에 대한 논의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한마디로 대중들이 능동적인 경제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능동적 경제 시민이란 경제 문제에 의식적으로라도 관심을 가지고 경제학을 전문가들의 영역으로 치부하여 백안시하지 않으며 기초적 경제이론 학습에 참여하는 깨어있는 존재라고 상정한다. 이런 능동적 경제 시민은 자신만의 견해에 빠져 다른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고 보았다. 경제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도그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모색하고 추구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애쓸 때 비록 암울한 현실에 직면하여 지적으로 비관할 수밖에 없을지라도 의지적으론 낙관하며 상황에 맞설 수 있게 된다고 그는 주장한다. 이런 변화가 이루어지는 과정에 의식화된 경제학자와 정치인의 선도적 역할이 필요함도 그는 놓치지 않는다. 이를테면 쉽고 단순한 금융 상품이 개발되도록 지도하고, 경제 정책을 펼 때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정하는 것 등을 통해서 말이다. 하여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도그마에 젖어 있는 경제학계와 대중들에게 맹신과 아집에서 벗어나 이성을 회복하고 정의적인 결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맞춤형 매뉴얼로 손색이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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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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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가 소설 창작의 에센스를 담은 책을 냈다기에 잔뜩 기대에 부풀었는데 제목을 보곤 솔직히 의외다 싶었다. 이게 뭐람, 시큰둥 볼멘소리도 새나왔다. [소설가의 일]이라니, 그렇다면 소설가의 일상을 다룬 에세이란 말인가 하는 지레짐작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마루야마 겐지의 [소설가의 각오]가 슬몃 오버랩되기도 했다. 갸웃거리며 읽어나가다 어느 순간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모르게 바짝 당겨 앉게 되었다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뭘 해도 김연수는 김연수였다. 아니 오히려 전작들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내밀한 육성을 듬뿍 담고 있는 제대로 된 물건이었다.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 부끄러운 고백까지 곁들여 아득하게 만들기도 했는데 살짝 미안한 감도 없지 않았다. 자신은 멀쩡한 채 상대의 밑바닥까지 봐 버린 당혹스러움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1. 살짝 깨놓는 업계의 영업 비밀

 

처음엔 소설 작법에 관한 작가만의 특별한 노하우를 기대하고 있다가 한 방 제대로 얻어맞았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어찌 보면 당연하고 심하게 말하면 한심한 수준의 얘기를 집요하게 늘어놓고 있으니. 말인즉슨 주인공의 캐릭터 같은 것 정하지 말고 플롯도 정교하게 짜지 말고 토 나오는 수준의 글이라도 무조건 쓰라고 강변한다. 무대포도 이런 무대포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생각하지 말자. 구상하지 말자. 플롯을 짜지 말자. 캐릭터를 만들지 말자. 일단 한 문장이라도 쓰자. 컴퓨터가 있다면 거기에 쓰고, 노트라면 노트에 쓰고, 냅킨밖에 없다면 냅킨에다 쓰고, 흙바닥뿐이라면 돌멩이나 나뭇가지를 집어서 흙바닥에 쓰고, 우주공간 속을 유영하고 있다면, 머릿속에다 문장을 쓰자.(199)

 

그러다 질릴 때쯤 슬몃 진의를 말하기 시작한다. 소설 작법이란 결국은 쓰고 생각하고 다시 고쳐 쓰는 작업의 연속이니 우선 원본 텍스트부터 마련해야 될 게 아니냐고. 그러려면 일단 생각나는 대로 끼적거리란 얘기다. 이 대목에서 작가는 슬쩍 업계의 영업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한다. 오르한 파묵의 전언을 빌어 혹 소설가협회에서 자신을 제명하더라도 감수하겠다는 각오(?)까지 밝히며 말이다.

 

삼십 초 안에 소설을 잘 쓰는 법을 가르쳐드리죠. 봄에 대해서 쓰고 싶다면, 이번 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쓰지 말고, 무엇을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는지를 쓰세요.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쓰지 마시고, 연인과 함께 걸었던 길, 먹었던 음식, 봤던 영화에 대해서 아주 세세하게 쓰세요. 다시 한 번 더 걷고, 먹고, 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은 언어로는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우리가 언어로 전달할 수 있는 건 오직 감각적인 것들 뿐 이에요.(217-218)

 

일견 대단찮아 보이는 얘기 같지만 이런 방식으로 자신이 처음 쓴 토 나올 것 같은 글에다 뼈대를 잇고 살을 붙인 다음 피가 돌게 하여 결국은 [밤은 노래한다]나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같이 완성된 작품으로 탈바꿈시킨 과정을 보여주었을 땐 아, 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그가 이끄는 대로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겉껍질이 벗겨지고 뽀얀 고갱이가 드러나듯 소설 창작의 얼개가 서서히 그려지는 것을 느꼈다.

 

2. 영업 비밀 세부 스펙

 

그는 내친 김에 화끈하게 업계의 영업 비밀을 깨놓고 있다. 이러다 정말 레드카드를 받는 건 아닐까 걱정(?)될 정도로. 작가는 우선 나름의 공식과 방법론으로 소설 창작의 지난한 과정을 견뎌내는 비법을 알려준다. 그가 소설 창작의 공식이라 규정한 것부터 색다르다. 소설이란 [보고 듣고 느끼는 사람 + 그에게 없는 것 / 세상의 갖은 방해 = 생고생(하는 이야기)]로 진행된다는 설명이 처음엔 생뚱맞게 들렸는데 갈수록 딱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대개 주인공의 캐릭터와 그가 처한 결핍의 상황을 전제하고 거기에 좌절을 수반하는 외적인 환경이 곁들여지면서 생고생하게 구조로 짜여있다는 것을 새삼 절감했다. 이 공식에 따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왜, 어떻게’라는 의문을 풀어나가다 보면 배경과 디테일이 어우러진 완성품에 이르게 된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작가는 또 기상천외한 제안으로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는데 문장 표현법과 관련하여 ‘빈도수 염력사전’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의 가상적 사전을 거론하며 이를 활용하여 어떻게 글을 써야 바람직한지 일깨우고 있다.

 

대화 속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단어와 표현은 앞쪽에 있고, 한 번도 써보지 않은 단어와 표현은 뒤쪽에 있다. 이 사전의 페이지는 손이 아니라 생각의 힘으로만 넘길 수 있다. 그러니까 갈피를 넘겨서 뒤쪽의 단어와 표현을 보려면 더 많은 생각의 힘, 그러니까 염력이 필요하다. 초인적인 염력을 발휘해 남들보다 훨씬 뒤쪽의 단어와 표현을 쓸 수 있다면, 그의 문장은 훨씬 좋을 것이다.(76쪽)

 

참신하고 생생한 문장을 만들려면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하여 상투적인 요소들을 배제해나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 부분에서 소설가의 진정한 일이 무엇인지, 그들의 힘겨운 싸움이 어떤 대상을 두고 벌어지는지 짐작이 되었다. 염력을 발휘할 집념과 끈기가 없다면 애저녁에 소설쓰기를 그만 두어야 한다 생각하니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는 듯했다.

 

작가의 각론은 갈수록 치밀하게 전개되어 플롯 구성, 감정이입 방법의 비법까지 구석구석 건드린다. 무림의 비급을 전하듯 말이다. 그 과정에서 플롯은 가급적 행동과 액션 중심의 3막 구조로 하는 것이 좋으며 이때 플롯의 생명은 현실을 얼마나 개연성 있게 그리는가 하는 핍진성 여부에 달려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한다. 핍진성이 있어야 감정이입이 가능하고 내용에 몰입하게 될 수 있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3. 영업 비밀을 말하는 방식

 

작가들의 소설 창작론은 대개 고담준론으로 흐르기 쉽다. 우월한 지위에서 하수들을 내려다보며 시혜하듯 일러주는 갑질(?)의식이 알게 모르게 배어 있게 마련이다. 그런데 김연수 작가는 이런 예단을 무색하게 만든다. 보기 좋게 또 한 방 먹은 셈이다. 시시껄렁한 너스레를 늘어놓으며 괄호 안에 차마 내뱉기 뭣한 얘기를 담기도 하고 요즘 청소년들이 사용하는 외계어와 이모티콘까지 남발하며 자폭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젠체하지 않고 스스로를 내려놓으니 읽는 이도 절로 무장해제할 밖에. 스스럼없이 그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된다.

 

그 이유란? 원래는 뭔가 데리다적이고 라캉스럽고 폴 드 만다운(“얘, 지금 뭐래니?” “제가 지금 졸다가 뭐라 그랬나요?”)(94)

 

어떻게 하면 소설가가 될 수 있는가를 더 고민했다. 어떤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원양어선을 타보란다.(‘차라리 인간이 되겠습니다. ㅠ ㅜ’) 또 다른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먼저 라캉이나 데리다부터 공부하란다.(‘에잇, 원양어선 쪽을 다시 알아보자.’)(99)

 

작가는 또 쉽게 말한다. 복잡한 원리와 구조를 또렷이 파악하여 진면목을 제대로 꿰고 있으니 대중의 눈높이에 맞게끔 재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핍진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서사적 허구에 사실적인 개연성을 부여함으로써 그것을 수용하는 관습화된 이해의 수준을 충족시키는 소설 창작의 한 방법으로, 구체적으로는 동기 부여나 세부 묘사 등의 소설적 장치를 들 수 있다.’(80)라며 머리에 쥐 내리는 수준의 담론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진실처럼 들리게 말하는’(81) 것이라는 누구든 쉬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풀어주는 식으로 말이다.

 

작가는 또 도형을 그려가며 이해도를 높이는 남다른 방식도 취하고 있다. 소설 속의 말을 다루는 방식을 얘기하면서 동심원 다섯 개로 형상화한 그림을 제시한다. 도형 안쪽에 놓여있는 욕망, 사회적 감정 등 빗금 친 부분은 제외하고 원 바깥에 위치하고 있는 표정, 몸짓, 행동, 말 같은 구체적 수단으로 서사를 이끌어가야 함을 빤히 보이도록 생생하게 일러주고 있다. 이렇게 특이한 화법으로 리얼하게 들려주는 영업 비밀의 세부 사항을 접하니 다시 소설을 쓸 수도 있겠단 생각에 고무되기도 했다.

 

4. 영업 비밀이 찡한 이유

 

그런데 작가는 소설 작법을 형식 논리와 기교 중심으로 이끌고 가지 않는다. 한 결 같이 인간의 삶과 결부시켜 발언한다. 소설 창작의 소재뿐 아니라 창작 기법을 다루는 부분에도 삶의 지혜가 잔뜩 녹아 있다. 소설은 삶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소설을 쓰는 일은 ‘인생이라는 게 원래 뭐 그따위’라는 사실을 깊이 이해하는 일로 시작한다는 말은 이런 뜻이다. 처음부터 잘 사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그건 소설도 마찬가지다. 모든 이야기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소설은 시작된다.(92)

 

우리가 사이코패스와 시선을 안 마주치려는 이유는 그자가 우리의 심연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없이 저열하고 하찮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오직 살인하고 죽이기만 하는 소설을 우리가 싫어하는 까닭은 심성이 착해빠졌거나 그게 인간의 추잡한 일면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서사적으로 완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세 살배기도 악을 저지를 수 있듯이 한 번도 제대로 글을 안 써본 사람이라도 살인하고 죽이기만 하는 소설은 쓸 수 있다. 서사적으로 봤을 때 그런 이야기는 단순한 구조라 쓰기 쉽다.(158)

 

작심한 듯 들려주는 작가의 얘기를 듣다 소설 창작 기법보다 더 값진 깨우침을 얻은 것 같다. 냉랭한 논리보다 숨결이 느껴지고 온기가 배어있는 글은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법이다. 작가의 얘기를 듣는 동안 여러 번 울렁거렸다.

 

5. 역시 김연수 작가답다

 

하여 작가의 소설 창작론은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지침서가 결코 아니었다. 소설과 삶을 아우른 곡진한 진실을 담고 있었다. 잡스런 데 한 눈 팔지 말고 오로지 치열하게 쓰고 생각하고 고치는 게 소설가의 일임을 단호하게 밝힌 대목에선 [소설가의 각오]가 어른거렸다. 세부적인 창작 기법을 삶과 연계하여 들려주는 그의 목소리는 다정다감 살갑게 다가와 시종 울렁거리며 공감하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작가와 비밀스런 부분을 공유한 듯 어느새 그의 심경이 나의 그것이 되었단 고백도 해야겠다. 마치 작가가 전 대통령을 생각하듯 말이다.

 

다시 2009년 4월 말의 일로 돌아가자. 친구와 언쟁을 벌이고 난 뒤에도 나는 내 마음을 바꿀 수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좌절과 환희를 지켜본 나는 어느 틈엔가 그의 이야기에 감정이입된 독자와 같은 처지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를 통해서 좌절과 환희를 맛봤다면, 치욕이라고 왜 맛볼 수 없겠는가는 생각이 들었다. 꼭 남몰래 연애를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를 욕한대도 나만은 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감정이입이란 그런 것이다. 이성적이지도 않고, 논리적이지도 않다. 그건 마치 사랑 같은 것이다. 몸으로 느껴지는 것이지, 머리로 설명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한 달 뒤, 나는 지난 일을 생각하다가 불쑥 눈물을 흘리곤 했는데, 정말이지 그건, 사랑을 잃은 느낌 같았다.(163~164)

 

김연수 작가에 감정이입이 된 듯 읽는 내내 눈가가 촉촉했다. 울렁거렸다 촉촉해졌다 하는 건 사랑에 빠졌을 때 나타나는 반응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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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 불멸의 인생 멘토 공자, 내 안의 지혜를 깨우다
우간린 지음, 임대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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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형식이어서 좀 뜬금없다

 

사람은 얼마만큼 바뀔 수 있을까? 성형외과 광고는 경이로울 정도로 외모가 달라지는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성형 전과 후, before와 after를 대조하여 변화의 효과를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말이다. 외모뿐 아니라 인간의 의식, 정신세계도 급격한 개조가 가능할까? 요즘 출간되고 있는 많은 실용서들은 내면도 뜯어고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과학적 원리를 토대로 한 행동양식 몇 가지를 유형화하여 제시한 다음 누구든지 이를 따르기만 하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권고한다. 이 책도 일견 그런 부류의 실용서로 읽힌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다르다. 아니 뜬금없단 생각이 들 정도로 실용서의 정형화된 문법을 깨뜨리고 있다. 오늘 여기 우리에게 적용 가능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려면 당연히 시의적절한 소재와 근대적인 방법론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천여 년 전 생존했던 공자와 그 제자들의 삶에서 비롯된 훈수라니! 이게 과연 먹힐 수 있을까 하는 의문부호부터 떠올랐다. 물론 동양 정신사, 아니 인류 문명사 전체를 통틀어 공자만한 분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위상은 절대적이라 하겠다. 유가의 창시자로 한문학이나 동양철학뿐 아니라 인류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스승이라는 것은 불문가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어쩜 그의 케케묵은 생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하는 점이다. 회의가 앞섰다. 시대착오적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갸웃거리며 앞부분을 읽어나가는데 어느 순간 끄덕거리며 따라가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우간린의 필력이, 아니 그의 내공이 공자 사상의 유의미성을 살려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공자와 제자들의 사상이 오늘 여기 우리에게도 적용가능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낡아빠진 고루한 관념이 아닌 생명력 있는 지혜로써 말이다.

 

그는 특이한 형식으로 공자와 우리의 내면을 잇는 연결고리부터 마련한다. 고답스런 공자의 사상과 참신한 스타일에 목매다는 현대 독자와의 간극을 메워야 그의 사상이 살아있는 지혜로 다가올 수 있겠다고 헤아린 때문이리라. 그의 대안은 역발상 그 자체라 하겠다. 스토리텔링과 화자의 내레이션 기법을 사용하여 낯설지 않게 공자를 오늘 여기 우리 삶의 현장으로 불러낸다. 이천여 년 전 실존인물들의 모습을 픽션을 가미한 에피소드로 엮어내고, 그 얘기를 슬몃 오늘의 상황에 접목하여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도출하는 방식으로 풀어나간다. 내러티브 화자가 공자가 아니라 제자 자공이란 점도 이채롭다. 그는 시점을 넘나들며 공자의 삶과 제자들의 다양한 모습이 어우러진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려주고 있다. 파격에 파격이라 하겠다.

 

의외의 내용에 눈을 뗄 수 없다

 

형식뿐 아니라 서사도 범상치 않다. 흔히 떠올리는 스테레오타입과는 동떨어진 것이어서 걱정스럴 정도였다. 성인군자의 전형이요, 화자의 스승인 공자의 모습을 신랄하달 정도로 가감 없이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게 윤색하여 성스럽게 부각시키려는 의도는 전혀 엿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적나라하게 까발리다 혹시 후손들이나 학계의 지탄을 받는 건 않을까 저어되었다. 자공의 눈에 비친, 아니 우간린이 되살려 낸 공자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초인이 결코 아니었다. 제자들과 같이 울고 웃고 더불어 호흡하며 인간적인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는, 더도 덜도 아닌 평범한 인간이었다. 사소한 일로 제자들을 꾸중하고 더러는 호통을 치다 밖으로 내쫒는 등 육체적 체벌도 가했다. 자주 흥분하여 분노를 표출하고 심지어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이렇게 진솔한 모습을 고스란히 그리고 있으니 어찌 빨려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연 이야기에 몰입할 수밖에. 또 눈길을 끄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을 단순히 학문이나 철학적 차원에서만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에 비추어 우리 삶에 활용 가능한 원리를 발굴해내고자 애쓰고 있다. 그래서 공자의 사상이나 행적이 결코 박제된 이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지혜이자 여전히 유효한 행동지침임을 우간린은 증명하고 있다 하겠다.

 

배웠으면 바뀌어야 한다. (증삼의 경우)

 

스토리 라인을 맛깔스럽게 살리고 있는 것은 제자들의 다양하고 독특한 성향과 행적이다. 자공의 관점에서 그린 행단의 동료, 후학들의 일화에는 인간사 모든 면모가 녹아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문수학하는 이들 가운데는 매력적인 인물이 여럿 등장한다. 정의롭고 무술에 조예가 있지만 물불 가리지 않는 성미 때문에 결국 비운의 최후를 맞은 자로나 유상(儒商)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외교와 화술의 대가 주인공 자공 등 숱한 인물이 우뚝 다가온다. 그런데 칠십이 명의 도반 가운데 유독 한 명이 계속 눈에 밟혀 그의 행적을 예의주시하며 쫓곤 했다. 왠지 증삼에게 자꾸 마음이 쓰였던 것이다. 그는 행단에서 가장 꾸지람을 많이들은 제자이다. 그만큼 결함이 많다는 얘기다. 그런 나약한 모습에 연민의 정이 느껴졌던 것일까? 안쓰러운 모습을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첫 에피소드부터 증삼이 호되게 당하는 얘기로 시작된다. 아비가 매를 때리는데도 저항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며 효를 실천했다고 얘기하는 증삼에게 공자는 일갈한다. 무모하게 버티다 자칫 아비를 살인자 만들 뻔 했다고 질책하며 문밖으로 내쳤던 것이다. 이야기는 증삼의 경우를 교훈삼아 학문의 유연성을 길러야 하겠다는 자공의 깨달음으로 마무리된다. 그러면서 꼭지 말미에 붙인 필자의 코멘트가 인상적이다.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남의 경험이나 방법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융통성을 잃게 된다. 살아 있는 지식을 배워 활용해야 한다.(32쪽)

 

증삼은 또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분에 넘치게 값비싼 돼지를 잡기도 하고 과일을 삶아달라는 시어미의 말을 듣지 않았단 이유만으로 아내를 내쫓는 등 목석과 우둔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아둔한 증삼을 공자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교육시켰다. 꾸중을 많이 했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증거고 그만큼 변화의 가능성도 엿보인다는 판단에서일 게다. 공자는 사안이 발생할 때는 물론이고 평소에도 각별하게 증삼의 교육에 골몰했다. 특히 융통성 있게 실용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부터 가르쳤다. 좋은 동기라도 바람직한 효과로 이어져야 한다며 인(仁)과 지(智)의 조화를 여러 차례 강조했던 것이다. 또 시를 짓고 예악을 즐기는 등 인간 본연의 정서에 충실할 것도 권했다. 지, 정, 의를 두루 아우른 통합적 교육을 실천한 셈이다. 이는 다른 제자들을 지도한 방식과는 차별성을 보이는데 오늘날로 치면 개별화 교육에 해당한다 하겠다. 공자는 원리원칙에 얽매어 꽉 막힌 유자가 결코 아니었던 것이다.

 

내 귓가에는 때때로 선생님이 시를 읊던 소리, 거문고를 타던 소리, 그리고 껄껄 웃던 소리가 맴돌고는 했다. 분명 선생님은 교육자일 뿐 아니라 감정이 풍부한 분이기도 했다.(66쪽)

 

이렇게 잘못된 상황마다 문제의 본질을 짚어가며 하나하나 교정해주는 스승의 각별한 지도와, 지정의를 아우른 총체적인 교육을 받은 증삼은 나날이 학문이 무르익고 인간적으로 깊어갔다. 그런 성숙과 발전 과정을 지켜본 공자는 손자인 자사의 공부를 증삼에게 맡기며 그를 칭송했다. 증삼은 더욱 갈고 닦아 유교 4대 경전 중 하나인 대학을 저술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괄목상대란 말은 이런 경우를 위해 생겼다 할 정도다. 그의 학문 수련 전과 후, before와 after를 비교해보면 사람을 알아본 공자의 혜안과 맞춤형 교육과정의 탁월성에 무릎을 치게 된다. 공자는 학문을 넘어 전인격적인 변화를 꾀했던 것이다.

 

증삼을 넘어 복자천을 바라보다. (나의 경우)

 

우둔하고 고집이 세기로는 증삼을 뺨칠 정도인 나에게 공자의 교육 방법과 지혜로운 지침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간 꼬치 속에 웅크리고 있는 애벌레마냥, 배운 데서 한발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자탄(自歎)만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꽁생원 증삼을 훈계하던 공자의 일갈이 짜릿한 전율로 사무친 것이다. 한 가지에만 빠지지 말고 다른 측면도 살피라는, 완전히 새로운 관점으로 접근하여 일의 성격과 진행과정을 심사숙고하라는 음성이 귓전에 쩌렁쩌렁 울리는 것 같았다. 선택의 고비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머뭇거릴 때마다 공자의 음성이 생생하게 되살아났으면 좋겠다.

 

스스로 돌아볼 때 자존감이 낮다는 것을 절감하곤 한다. 여러 모로 미흡하단 생각에 쭈뼛거리기 일쑤다. 그런데 공자가 제자들을 평가한 대목에서 잠시나마 위로를 받았다 할까? 그 고명한 제자들도 하나같이 결함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다시 생각해보니 오히려 심란해졌다는 게 더 맞겠다. 조목조목 든 제자들의 단점이 딱 나의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안회는 성실하지만 융통성이 없고, 자공은 총명하지만 굽힐 줄을 모르고, 자로는 용감하지만 두려움이 없고, 자장은 위엄이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섞이기가 어렵기 때문에 나는 이 넷을 다 함께 갖고자 하느니라.(353쪽)

 

전언(傳言)의 요지는 허물에 매몰되지 말고 인의와 지혜를 갖추란 얘기다. 그런 측면에서 내가 꼽는 이 책 최고의 캐릭터는 복자천이라 하겠다. 공자는 그를 현명하고 능력 있으며 덕성을 갖췄을 뿐 아니라 용맹하기까지 하다고 칭찬했다. 공자가 행단에서 가르친 커리큘럼은 어쩜 제2의 복자천을 길러내기 위한 과정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지난(至難)한 일이겠지만 복자천 같은 단계에 이르려면 우선 안회, 자공, 자로 및 자장의 결함을 반면교사로 삼는 게 급선무다. 유연하게 굽힐 줄 알며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분별하는 지혜를 기르고, 타인과의 관계성을 중시하는데 진력하는 것 말이다. 특히 사회성 결여가 우려되는 나로서는 특단의 대책과 노력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퍼뜩 떠오른 게 다른 이가 다가오도록 기다리기보다 나부터 먼저 손을 내밀어 경계를 풀고 마음을 열게끔 이끌어야겠다는 것이다. 우선 주변 가까운 이들부터 시작하여 낯선 이들에게까지 진정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언젠간 내 마음이 전해질 거라 믿으며. 또 다른 이의 단점을 비판하지 말고 혀를 너그럽게 관리하란 충고도 곱씹어야할 대목이었다. 사회성을 기르기 위한 덕목으로 말이다. 일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기 보다는 뒷전에서 평가하고 분석하는 타입인 내게 타겟을 맞춘 경고의 메시지 같았다. 굳이 남을 끌어내려야 내가 돋보이는 게 아닐 테다. 남이 미처 알아주지 않더라도 원망하지 않고 자강불식하라는 권고를 뇌리에 붙박이도록 새겨야 하겠다.

 

그런데 이런 다짐이 일회성으로 그쳐선 안 될 텐데 걱정이다. 견조한 리듬을 유지하려면 종종 각성시켜 줄 자극제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우간린의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를 재독, 삼독해야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격하지 않고 부드럽게 조근조근 이야기하듯 세상 이치를, 나의 나됨을 일깨워주는 그의 얘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내면이 정리되고 조금씩이나마 발전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래서 늘 손에 닿는 곳에 놓아두고 마음결 출렁거리고 심사가 흐트러질 때마다 꺼내 읽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공자와 나를 이어준 우간린의 지혜로운 전언을 되새기게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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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4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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