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러브 소설Q
조우리 지음 / 창비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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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덕질'을 하는가. 어떤 대가를 바라기 보다는 나만의 만족에서 끝나는 경우가 더 많은데도, 우리는 우리를 알지도 못하는 상대방에게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그 상대를 위해 무제한적으로 에너지를 쏟아낸다. '덕질'을 하는 사람에게 물어본다한들 답이 나올 수 없는 질문이건만, 그보다 확실한 건 어쨌거나 많은 이들이 '덕질'을 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취미생활 정도로 치부될 수 없으며, 하나의 취향으로 단정짓기에는 우리나라 연예계는 물론 문화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덕질'이리라.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덕질'을 하다가 재능을 발견하여 '성덕'이 되는 경우도 있고, '덕질'과 관련된 일을 통해 돈을 버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덕질'을 하는 사람들조차 스스로에게 큰 의미 부여를 하기보다는 주변 시선을 더 의식하진 않았을까.

<라스트 러브>는 제로캐럿이라는 가상의 걸그룹 이야기와 그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팬픽이 교차되어 전개되는 독특한 소설이다. 팬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지면서 (한 가지 성만으로 존재하는 아이돌 그룹 특성상) 동성애 코드가 빠지지 않는 팬픽이 메이저 출판사의 소설로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놀라웠다. 모든 팬픽이나 인터넷 소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아마추어가 사심을 가득 담아 쓰는 소설은 팬들을 위한 것이지 불특정 다수를 위한 것은 아니기에 활자로 인쇄되어 서점에 꽂힐 것이라고 여겨지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그 중에는 정말 능력자들이 있어서 팬들 사이에서는 출판을 직접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여성 작가가 쓴 여자 아이돌 팬픽이라니. 그동안 남자 아이돌만 좋아했던 나로서는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소설 제목인 <라스트 러브>는 제로캐럿의 데뷔곡이자 첫 콘서트(이자 마지막이 될) 제목이기도 하다. 콘서트를 준비하고 콘서트가 마무리되는 순간까지의 시간 속에 단순히 팬심 담긴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을지 모르는 '여자 아이돌'에 대한 편견이나 불합리, 알게 모르게 그들에게 쏟아지는 언어적, 비언어적 폭력들이 곳곳에 나타나있다. 팬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아이돌들에게 보기 좋은 캐릭터를 씌우고 그것을 강요하는 모습들도 있다. 현실이 반영되어 자칫 어두워질수도 있는 이야기 사이사이에는 이것이 픽션임을 증명하듯 제로캐럿이 등장하는 팬픽이 등장한다. 제로캐럿이지만 동시에 제로캐럿이 아닌 그들은 학생이 되었다가, 편의점 알바생이 되었다가, 회사원이 되기도 한다. 자신의 재능을 맘껏 발휘하고자 꿈을 꾸었던 소녀들은 현실이 아닌 팬픽에서 오히려 더 자유로워진다.

등장인물 중 하나이자 제로캐럿의 팬픽 저자인 파인캐럿은 제로캐럿의 오랜 팬이다. 파인캐럿은 제로캐럿 초창기부터 팬이었는데 '최애'였던 재키가 없음에도 제로캐럿을 응원하고 팬픽을 계속해서 쓰는 골수팬 중 하나이다. '최애'가 탈퇴한 뒤에도 제로캐럿을 응원하는 파인캐럿은 제로캐럿 팬들 사이에서 꽤나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는 캐릭터이다. 아마도 S.E.S.의 오랜 팬이자 S.E.S. 팬픽을 썼다는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아닐까 싶다. 파인캐럿을 통해서 <라스트 러브>는 그들만의 리그로 치부될 수 있는 이야기를 상대적인 제 3자의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준다.

그래도 아이돌을 좋아해 본 적이 없는 이들이라면 이 소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요즘 '덕질'을 해 보지 않은 나에게도 낯선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한들 이름도 전체 몇 명인지도 모를 아이돌들이 매해 쏟아져 나오는 케이팝 시장이 있는 한, <라스트 러브>는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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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소설Q
최진영 지음 / 창비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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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이 있다. 어떤 주제를 다룰 것인지 알기 때문에 읽기 전부터 두렵고 걱정이 되는 책.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등장인물에게 언제 그것이 닥칠지 몰라 읽는 내내 조마조마 마음을 졸이게 되는 책. 조금만 더 읽어서 그것이 나오면 너무 힘들 것 같은데 어느새 정이 든 등장인물들을 생각하면 함부로 외면할 수 없는 책. 최진영 작가의 <이제야 언니에게>는 내게 그런 책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포털 뉴스 기사 제목에서 너무 흔해져버린 단어들- '성폭력', '피해자', '가해자'. 언제부터 우리 주변에 이런 일이 많았나. 원래 많았는데 인터넷 덕에 이렇게 흔한 일이 되어버렸나.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답답하고 피하고만 싶어진다. 내가 겪은 일도 아닌데 너무 두렵고, 또 두렵다. 하지만 과연 내가 그들의 마음을, 생각을, 괴로움을, 고통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아니, 전혀. 이 책을 읽고 나는 조금도, 아주 조금도 그들을 이해한다고 함부로 말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가장 가혹한 것은 그 사건 자체일테지만, 그보다 더 한 폭력은 피해자들에게 추측성으로, 비자발적으로 씌워지는 사회적 편견이 아닐까 싶다. 아마도 나 역시,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그들에게 '꽃뱀', '밝히는 x' 등으로 사건의 본질을 왜곡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더 무겁다. '여자애라서' 나 역시 존중받지 못한 때가 있었을텐데 나 스스로도 '여자애라서'라는 생각에 나를 가둔 것은 아니었나도 생각해보게 된다.

이 사회에서 비난 받아야 할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다. 우리는 왜 이 당연한 사실을 너무 쉬이 잊어버리고 있을까. 우리는 왜 그럴까. 우리가 생각하는 합리화는 대체 누구를 위한 합리화일까. 잔인한 현실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가해자의 편에서 편함을 추구하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무서운 것은 사람이다. 그것은 아마 몇 천년이 지나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작가님의 편지에서 제야에게 편지를 쓰려고 했지만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과연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나 역시도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조차도 제야에게는 상처가 될 것만 같았다. 아니, 이런 생각부터가 제야를 상처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제야만의 길을 택한 것이 대견하고 또 고마운 마음이다. 이 마음이 내가 제야에게 보내는 편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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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살의 여름
이윤희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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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핸드폰이 생긴 해는 2000년이었다. 당시 고1이었는데, 우리 반 친구들 절반 정도가 핸드폰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팩트(!)를 빌미로 첫 핸드폰을 가졌더랬다. 첫 핸드폰의 기능은 그야말로 '연락용'이었다. 전화와 문자, 그게 전부였다. 핸드폰으로 쉽게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게 언제였던가. 아마도 대학교에 들어온 이후였던 것 같다. 지금은 안 쓰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든 카톡은 또 어떤가. 카톡이 없었을 땐 어떻게 대화했나 싶을 정도다.

요즘 중고생들을 보면 (아니 초등학생들도) 핸드폰이 없는 친구가 없다. 사진 찍고 카톡하는 것이 어릴 때부터 이미 일상이 된 아이들. 그들은 나중에 학창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졸업앨범을 들춰보거나 친구들과의 쪽지, 편지, 교환일기를 모아놓은 박스를 열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클라우드 계정에 접속해서 해당 년도의 사진을 불러내거나, 대화 백업 내용을 열어보지 않을까?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한 사진을 불러내고, 방금 나눈 듯한 따끈따끈한 대화를 되짚다 보면 학창시절에 대한 기억은 더욱더 또렷해질까? 아니면, 오히려 언제든지 열어볼 수 있고 불러낼 수 있기에 그저 인터넷상 어딘가에 저장해 놓을 뿐, 기억에 대한 애틋함을 잊고 살아갈까?

<열세 살의 여름>은 열세 살 해원이가 여름방학에 가족과 부산 바다에 여행을 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확히는 부산에서 일하시는 아빠를 만나기 위해 엄마와 언니, 해원이 함께 아빠를 찾아갔다. 바다에서 놀다가 먼 발치에서 우연히 발견한 같은 반 남자애 산호.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그러하듯 적극적으로 아는 채는 하지 못하고 서로 힐끔거리기만 한다. 해원의 모자 사건으로 둘은 인사를 나누지만, 개학 후 서울에 와서는 그것조차 다시 어색해진다. 우여곡절 끝에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하지만 그것도 초등학교 졸업과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열세 살의 여름>은 평범한 초등학교 6학년 소녀의 학교, 가정, 일상을 잔잔한 시선으로 쫓아간다. 굵은 체의 그림은 화려하진 않지만 열세 살이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을 과하지 않게 그려냈다. 친구와의 교환일기, 집으로 걸려오는 전화, 비디오 대여점 등 1999년도를 배경으로 그 당시에만 경험할 수 있었던 일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초등학생 버전' 느낌도 없지 않다. 그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주로 유효한 '매직' 같은 소재지만, 21세기의 초등학생들의 감정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이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조차 어색하고 이상할 뿐아니라 부끄럽고, 자칫하면 놀림거리가 되고 마는 그런 마음들을 어떻게 표현할 줄 몰라 갑갑했던 때의 느낌이 과하지 않게 잘 담겨있다. 여러가지 에피소드들이 빠르게 지나가지만 여운은 오래 오래 남는, 열세 살의 마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하는, 시원하지만 따뜻한 <열세 살의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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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 나가 놀자!
로랑 모로 지음, 이세진 옮김, 김신연 감수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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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 적 생각해 보면 날이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밖에 나가서 놀았다. 놀이터나 근처 야산(?)에서 흙놀이도 하고 곤충도 잡고 그랬다. 내가 살았던 곳이 시골도 아니었고 바닥에 아스팔트 잘 깔린 아파트 단지였지만 주변이 산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자연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어디서 놀까? 엄마가 되어 보니 날씨 때문에, 미세먼지 때문에 아기를 데리고 밖에 나가지 못하고 망설이고, 키즈카페나 놀이방 등 실내 놀이터를 찾아 다니곤 한다. 아파트 놀이터 바닥은 안전 등의 이유로 흙이 아니고, 관상을 위한 수목들 외에는 아이들이 '자연'이라고 느낄 만한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로랑 모로의 <밖에 나가 놀자!>는 '밖에 나가 놀라'는 엄마의 한 마디로 시작된다. 하얀 벽지의 밋밋한 집 안에서 뛰어 놀던 남매는 온갖 색깔로 펼쳐진 자연으로 나가게 된다. 남매는 가까운 집 앞에서 시작해서 가축들이 노니는 강가로, 각종 새들과 산 동물들이 있는 산으로, 낙타와 모래 바람이 있는 사막으로, 여러 야생 동물들이 사는 정글로 거침없이 나아간다. 그리고 즐거운 여행을 마치고 그 동물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글밥이 많지 않지만 결코 금방 읽어 내려갈 수 없는 그림책이다. 페이지마다 가득 채운 자연과 동물들은 강렬한 원색이 아님에도 시선을 잡아끈다. 사인펜으로 그린 듯한 삽화는 단순한 듯하지만 동물들마다 특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 양면을 가득 채운 다채로운 색의 자연과 다양한 동물들 못지 않게 자연 속에 녹아들어 색다른 모험 중인 남매의 모습을 찾는 것도 재미 요소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책에 등장했던 모든 동물들이 도감 형태로 실려있다. 동물 이름들부터 낯선 것이 많은데 실사 동물은 아니지만 동물 이름과 함께 간단한 정보도 실려있어 보다 관심있는 동물은 나중에 아이와 함께 찾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여기 나온 동물들이 대부분이 멸종 위기에 놓여 있는데 '관심이 필요해요', '살아남기가 쉽지 않아요' 등으로 위험 정도를 표시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알록달록하고 사랑스러운 이 책을 어디에 두어야 아이가 더 잘 볼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책과 별개로- 이 시대의 아이들은 티비나 인터넷, 책이 아닌 어느 곳에서 동물을 서슴없이 만날 수 있을까? 동물원, 사파리처럼 인위적인 공간이 아닌, 자연 속에서 그야말로 '자연스럽게' 자연과 만날 수 있는 건 정말 '동화 속 판타지'가 된 건 아닐지 아쉽고 씁쓸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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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함께하면
브리타 테큰트럽 지음, 김경연 옮김 / 창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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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와 무언가를 ‘같이’ ‘함께’한 게 언제일까.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마다 생각과 마음이 다르기에 내 편인지 아닌지 따져보게 되고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관계를 맺게 되는 것 같다. 사회도 언제가부터 그것을 인정하고 권하고 있다. 혼자 먹는 밥, 혼자 보는 영화, 혼자 마시는 술... 오히려 마케팅적으로 활용되며 많은 사람들이 혼자, 각자의 시간을 더욱 당당하게 누리게 만든다. 점점 더 그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고,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기만을 바라며 사는 것은 아닌지.

그런 어른들에게 브리타 테큰트럼의 <다 같이 함께하면>은 귀여운 그림체와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익숙하지만 이제는 낯설기도 한 시선을 선물한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기이다. 혼자보다는 같이, 함께한다면 많은 것들을 해나갈 수 있다는 메세지와 함께 그 안에서도 하나하나 특별하고 다양한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 같이 함께할 수 있고,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 독립된 존재로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 책장마다 뚫린 구멍(!)을 통해 하나씩 늘어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신선하면서도 귀엽고, 모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독립된 개체로서의 아이들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늘어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어찌보면 예술작품 같은 느낌도 든다.

자칫 맹목적으로 보일 수 있는 메세지를 아이들의 시각에 맞춰 자연스럽게 제시한다. 자연의 여러 현상과 모습들이 배경으로 펼쳐지며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도 보여주며 인간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님을 시사한다. (다소 아쉬운 것은 다양한 색감으로 인해 텍스트가 많이 묻힌다. 밝은 배경에서는 괜찮지만 진하고 어두운 배경의 페이지에서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ㅠ)

어른들에게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한다. 내가 누군가와 무언가를 경쟁없이 순전한 마음으로 함께했던 것이 언제였을까. 그리고 ‘다 같이 함께’해서 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내게 남아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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