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다락방님, 단발머리님과 리처의 여섯 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자니, 갑자기 리처 이야기를 하고 싶어져서 서재에 접속했다.
리처의 여섯 번이 무엇인고 하니, 그것은 <어페어>에서 리처와 데버로가 짝짜꿍을 한 횟수를 말하는 것이다.
아니 무슨 우리가 변태처럼 리처랑 데버로가 짝짜꿍 몇번 했나 세어 본 게 아니고, 리처가 말해줬다.
그는 한번 한번의 짝짜꿍을 소중히 여기는 남자니까.
근데 날짜 지난 거 보면, 얘네 거의 매일 한 것 같애.
리처는 그렇다 치고, 데버로도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심지어 열차 지나갈 때 맞추려고 시간 재는 거 보소. 리처의 머릿속 시계가 제대로 일을 했다. 게다가 얘네 막 밖에서도.. 그래.. 30대 초중반이니 한창 때긴 하지(먼산).
<어페어>의 도입부는 리처가 상위지시자를 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내가 이름을 알아냈다'고 미끼를 던지고는 펜타곤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 며칠 전으로 시간을 돌려, 리처가 상급자로부터 지시를 받고 일반인(이라기보다 퇴역군인같은 사람)으로 위장하여 육군주둔지인 켈헴에 가는 내용이 나온다. 거기에서 만나게 된 것이 지역보안관인 데버로, 대단한 미인에 전직 해군이다.
만나자마자 정체를 간파 당해 버린 리처는 데버로와 함께, 지역에서 일어난 여성 살해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하는데, 데버로는 살인범이 군인 중에 있다고 생각해서 리처가 수사를 방해할까봐 경계하지만, 리처의 뛰어난 수사력에 도움을 받으며 그를 믿기 시작한다. 파고들수록 밝혀지는 수상한 점들- 과거 일어났던 두건의 비슷한 여성 살해 사건, 주둔지 근처에서 총을 맞은 기자, 마찬가지로 주둔지 근처에서 사망하게 되는 한 소년...
그 과정에서 리처는 '군을 위해 사건을 덮어야 하는가, 진실을 밝혀야 하는가'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전모를 밝히기 위해 도입부에서 나왔던 펜타곤 진입이 시작되는 것인데..
아니, 리처는 저 많은 일들을 3일 만에 했다니까요? (제가 잘못 읽은 거 아니죠?)
켈헴을 떠나면서 3일 전에 여기에 왔던 걸 회상하는 장면 보고 깜짝 놀람.
아니, 사흘 만에 너는 이 많은 진상을 밝혀 내고 마을 최고 미녀와 짝짜꿍까지 했단 말이냐..?
너란 남자.. 대단한 남자..
얘기가 자꾸 짝짜꿍으로 가는데, 흠,
스토리에 대한 감상은 - 원서로 읽어 이해가 부족한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약간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데버로에 관해 풀어야 하는 이야기 때문에 데버로의 수사력을 너무 미약하게 만든 건 아닌지 싶고, 사건을 덮으려고 이렇게까지?? 싶은 부분들도 있었으나- 요즘 돌아가는 거 보면 권력이란 어디까지 하게 만드는가 예측 불가능한 힘이라는 생각이 들긴 함- 그래도 전반적으로 리처가, 리차일드가 하고자 하는 얘기는 좋았다.
흑인 여성이 두 명이나 죽었는데도 별다른 수사가 없다가 백인 여성 한 명이 죽자 갑자기 수사가 진행되는 부당함, 흑인 소년을 대하는 리처의 진실된 태도, 군인으로서 받은 명령과 양심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끝끝내 양심을 저버리지 않는 리처의 결정, 그리고 여섯 번의 짝짜꿍....(?)
이 책에서 다소 씁쓸하게 느껴지는 지점은 리처처럼 전공이 화려한 군인도 30대 중반쯤 되면 이제 나가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저런 일들이 겹치니 결국 리처는 군을 떠나 우리가 아는 정의의 떠돌이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원서 읽기로 쉽지 않은 레벨이었다. 중상급 이상의 분에게 추천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