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경, 중구난방식으로만 책을 읽지 말고, 관심 가는 주제 하나를 정해서 꾸준히 읽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주제독서. 첫 주제가 젠더퀴어였고 원래 계획은 두달 정도씩 주제를 바꾸는 거였다.
그러나 읽다보니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한달에 읽을 수 있는 책이 한정되어 있는데다가 또 딱 이 주제 책만 읽는 건 아니니, 결국 기간은 계속 연장되었다.
2022. 1.경 <퀴어이론 산책하기>를 완독한 후, 사둔 젠더퀴어 관련 책들 중 <퀴어, 젠더, 트랜스>, <조선의 퀴어> 두 권을 완독하지 못한 상태로 일단락 짓고 다른 길로 빠져버렸다.
사 읽은 관련 책들을 처분하기 위해 책탑을 미리 사진 찍어두면서, 빨리 나머지 두권을 마저 읽고 마무리 페이퍼를 써야지 했던 것도 어언 1년이 넘은 지금.. 드디어 마무리를 했다!
우선 책탑 사진부터.
후후후, 다른 분들 책탑 사진 보며 부러워하기만 하던 나날..
드디어 나도 책탑 사진을 올려본다. 물론 한번에 산 책들은 아니다.
맨 위의 책부터 간략히 소개하고, 마지막에 몇 권을 추천드릴 예정.
1. <내 이름은 샤이앤>, <내 이름은 말랑> (에세이/만화)
아주 가볍고 친근하게 트랜스젠더에 대해 알려주는, 트랜스젠더가 직접 만든 만화다.
예전에 남긴 백자평을 보니 샤이앤을 먼저 읽고 말랑을 읽는 편이 낫다고 써 놨다.
트랜스젠더가 뭔지 궁금하고, 그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입문용으로 좋다.
2. < 같이 산 지 십 년> (에세이)
타이완의 동성커플 이야기다. 이들은 결혼한지 10년만에 법적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소설가인 저자가 써내려간 사랑의 기록이며, 타이완 동성혼이 법적으로 인정된 결말에 기뻐하게 된다. 별로 재미있지는 않다..^^;
3. <올랜도> (소설)
ㄷㄹㅂ님에게 완독의 기쁨을 좀체 안겨주지 않고 있는 문제의 그 작품.. 올랜도! 버지니아 울프 작품 중에서도 재미없는 편에 속하는 듯하다^^;; 몇백년에 걸쳐 성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아주 상징적인 작품인데, 모든 걸 이해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아름다운 문장과 모험적인 시도에 멍하니 집중하면 읽어나갈 수 있다..;;;
4. <몽마르트르 유서> (소설)
힘들게 읽었다. 화자가 같은 여성인 연인과 헤어진 후 그녀를 향해 쓰는 편지 형식인데, 군데군데 아름다운 문장들이 눈에 띄었지만, 기대했던 만큼의 아련함이나 감동은 없었다. 어쩌면 내가 사랑과 이별에 대한 감성이 메말라서일지도...
5. <딸에 대하여> (소설)
이 소설은 레즈비언인 딸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엄마의 시선에서 쓰였다.
"내 딸은 하필이면 왜 여자를 좋아하는 걸까요. 다른 부모들은 평생 생각할 이유도, 필요도 없는 그런 문제를 던져 주고 어디 이걸 한번 넘어서 보라는 식으로 날 다그치고 닦달하는 걸까요. 왜 저를 낳아 준 나를 이토록 슬프게 만드는 걸까요. 내 딸은 왜 이토록 가혹한 걸까요. 내 배로 낳은 자식을 나는 왜 부끄러워하는 걸까요. 나는 그 애의 엄마라는 걸 부끄러워하는 내가 싫어요. 그 애는 왜 나로 하여금 그 애들 부정하게 하고 나조차 부정하게 하고 내가 살아온 시간 모두를 부정하게 만드는 걸까요." -84쪽
이런 시선은 다큐영화 <너에게 가는 길>과 일맥상통한다. 두 작품 모두 좋았다.
이 소설은 내게 첫 이달의 리뷰 당선의 기쁨을 안겨주기도..ㅋㅋ
6. <고독의 우물>1,2 (소설)
FTM(Female To Male)을 주인공으로 다룬 소설이다. 작가 래드클리프 홀 그 자신이 반영되었다고 보인다. 1928년 출간작으로, 위의 <올랜도>와 같은 해에 나왔다. 당시 여성인 스티븐이 '감히' 남성 흉내를 내는 것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응징당하는지 잘 보여주는, 슬프고 아름다운 소설이었다.
7. <젠더 모자이크> (사회학/여성학)
이건 나의 주제독서와는 결이 좀 다른 책이었고, 글이 별로였던 기억이 난다.
8. <LGBT+ 첫걸음> (사회과학)
음? 내가 살 땐 이 표지가 아니었는데..
젠더스펙트럼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책. 처음엔 흥미롭게 읽다가 뒤에 가서는 너무 다양한 젠더가 등장하는 바람에 머리가 어질어질 해지긴 했는데.. 이렇게 다양할 수 있어?? 하면서, 내 안의 젠더이분법적 사고를 흔들어 볼 수 있는 책이다.
9. <조선의 퀴어> (역사/사회과학)
주제독서의 대미를 장식한 책!
근대 조선의 성규범, 젠더규범을 꼼꼼하게 분석한 책으로, 아주 흥미롭다.
10. <퀴어, 젠더, 트랜스> (사회과학)
생각보다 가볍고 쉬운 책이었는데, 의외로 잘 읽히지는 않았다. 16년전 출간된 책이어서 버틀러의 이론 해석 등에 오류가 있음을 해제에서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이론을 간단간단히 쉽게 설명해주는 건 좋지만, 이론에 관심이 있다면 아래에서 소개할 <퀴어이론 산책하기> 쪽을 추천한다. 이 책은 퀴어 운동에 앞장서온 운동가가 쓴 책이니 그 점에 주목해 본다면, 젠더라는 문제가 다만 규범에서 벗어난 소수의 트랜스젠더만의 문제는 아닌데도 페미니즘 운동도, 동성애 운동도 그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쉽게 받아들여주지 않는 현실에 문제제기 하는 내용을 곱씹어 볼 만하다.
11.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 (사회과학)
한국의 성소수자 문제를 총망라한 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젠더퀴어가 겪고 있는 어려움에 대해, 이들이 벌이는 운동에 대해, 뭐가 문제인지에 대해 알 수 있다. 여러 사람이 한꼭지씩 썼기에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좋았다.
12. <퀴어 이론 산책하기> (사회과학)
퀴어 이론을 총망라한 개론서!
이 두꺼운 책을 다 읽고 "이제 하산해야겠다.." 싶어 주제독서를 접었었다..ㅋㅋ
산책이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 두껍고 본격적이긴 한데, 저자가 글을 잘 썼다. 한국 학자가 썼기 때문에 글이 잘 읽혀서 좋고, 예시가 착착 이해되어 좋고, 악평이 자자한 버틀러 저작들의 번역오류를 꼼꼼하게 지적해주어 좋다(그렇다고 내가 버틀러를 읽겠느냐 하면 그건 아닌데.. 이 저자가 번역해준다면 읽어볼 생각이 있다..).
휴, 많이 읽은 것 같은데 12권이고 막상 추천할 만한 책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론 입문용으로는 <내 이름은 말랑>+ 샤이앤 시리즈, 한권만 읽는다면 말랑이 더 나았던 듯. 그리고 <LGBT+ 첫걸음>을 추천한다.
조금 더 자세히 이론을 알고 싶다면 <퀴어 이론 산책하기>! 벽돌책이지만 감히 추천해본다.
이론보다는 사회운동, 정책 분야를 알고 싶다면 <무지개는 더 많은 빛깔을 원한다>를 추천.
소설 중에는 <고독의 우물>과 <딸에 대하여>를 추천한다. 고독의 우물은 분량이 많아 조금 부담스럽지만 역사적 의의가 있는 작품이므로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듯.
그리고 두루두루 누구에게나 일반적으로 추천할 수 있을 책은 <조선의 퀴어>. 한번 읽어보시랑게요!
*진한 표시는 특히 추천하는 책들*
책탑 사진을 그냥 버리기 싫어서 늦게나마 쓴 주제독서 정리 페이퍼. 여기서 끝~ 다음 주제로 다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