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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1월
평점 :
사라진 것들을 품고 살아가는 일, 그것이 인생의 묘미가 아닐까.
어떤 인생도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비교적 굴곡 없는 인생'을 살았다 하더라도 굽이굽이 어떤 국면을 맞이하는 법이다. 그건 누구나 겪게 되는 아동기-청년기-장년기-노년기의 흐름과 그에 맞춰 일어나기 마련인 사건들(학교 입학, 졸업, 취직 등)에서 기본적으로 발생되지만, 완전히 비자발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특별한 사건/사고에 의해서 발생되기도 하며, 어느 정도 자발적인 계획 하에 행한 결정에 따라 발생되기도 한다. 마지막 예는 결혼과 출산이 대표적이리라. 또한 특별히 어느 시점을 꼭 집어 말할 수 없지만 조금씩 변화한 흐름이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향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앤드루 포터는 미처 인식하지 못한 채 접어든 새로운 삶의 국면에서 문득, '사라진 것들'을 깨닫는 미묘한 시점을 포착한다. 그건 말할 수 없이 쓸쓸한 순간이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구분하는 시각을 잃어버렸으며 살인과 죽음 같은 문제라면 그저 다 슬플 뿐"(<오스틴>)
"허공에 대고 고함을 지르는 소리(...)를 내"던 나(<오스틴>).
"저녁의 끝은 늘 함께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거나 소파 위에서 서로를 꽉 끌어안고 뒤엉킨 몸으로 맞이했"던 시간(<담배>)
"떠난 뒤에는 두 번 다시 그림을 그리지 않"은 마야(<넝쿨식물>)
"어떤 순간에는 꿈이나 무아지경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환히 밝아지던" 내털리 (<첼로>)
이제는 들여다봐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는 앨범(<라인벡>)
"이안이 더 어렸을 때 우리끼리의 의식처럼 자주 가던 서점"(<숨을 쉬어>).
한때는 친구였던 사람..(<실루엣>)
"대화의 공백을 게임으로 채울 필요가 없었던, 서로 얘기를 나누기 위해 밖에 나가 술을 마시지 않아도 되었던" 시절..(<알라모의 영웅들>)
"그때 나는 갑자기 깨달았다. 우리가 다른 단계로, 좀더 깊은 단계로, 끝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벌>)
혼란 그 자체인 인생에서 안식처였던 음식..(<포솔레>)
"우리는 항상 웃었고 늘 밤을 더 오랫동안 즐길 방법을 찾았다. (...) 둘 다 자신을 예술가라고 여기며 위대해질 운명이라 믿었던 그때의 우리" (<히메나>)
그리고 마지막 표제작, <사라진 것들>을 읽으며, 나는 이 사라진 친구 대니얼, 건강하고 아름다고 운 좋은 이 친구가 앞서 본 작품들 속에서 '사라진 것들'을 표상하는 게 아닐까 했다.
"대니얼이 의도적으로 이렇게 되기를 원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해봤어요?"
"사라지기를?"
(<사라진 것들>)
사라진 것들은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사라진 것들이 없는 인생은 스스로 사라질 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 아름다운 소설집을 읽으며, 내게서만 사라진 것들이 아님을 위로 삼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