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버지니아 울프 - 한 사람의 인생이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까지
수사네 쿠렌달 지음, 이상희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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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의 복잡한 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도록 압축해준 책. 울프 책의 구절들을 중간중간 삽입해주어 좋았다. 하지만 압축되지 않은 긴 글로 읽고싶은 마음이 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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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3-24 2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저도 오늘 드디어 완독했습니다.ㅋㅋㅋ

독서괭 2023-03-25 08:30   좋아요 1 | URL
어제까지 백자평 마감이라 해서 급하게 썼네여 ㅋㅋㅋ
 
전국축제자랑 -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김혼비.박태하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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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 때마다 한꼭지씩 아껴 읽었다. 처음에는 훗훗 하면서 한번씩 웃다가, 음성품바축제에 이르러서는 그장 전체에 배꼽을 잡았고, 완주와일드푸드축제에서는 김혼비의 박력에 반했으며, 양양연어축제에서 숙연해졌다가, 마지막 산청곶감축제를 읽으며, 아-젠장, 역시 난 김혼비가 너무 좋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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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02-09 15: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두 김혼비 좋아요. 한 권 밖에 안 읽었지만요 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2-09 15:31   좋아요 3 | URL
뭐 읽으셨나요? 저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 <아무튼, 술>, <다정소감>, 그리고 이 책을 읽었습니다. 다 재밌어요!

단발머리 2023-02-09 15:32   좋아요 2 | URL
저는 다정소감 읽었어요 ㅋㅋㅋㅋ 김혼비 화이팅!! ㅋㅋㅋㅋ

독서괭 2023-02-09 15:59   좋아요 1 | URL
다정소감이 제일.. 덜 웃깁니다!! ㅋㅋ

건수하 2023-02-09 15: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좋아해요 김혼비!

전 이거 빼고 세 권 읽었는데 아무튼 술이
제일 좋았어요 ^^

독서괭 2023-02-09 16:00   좋아요 2 | URL
오 수하님도 김혼비 작가 개그코드가 맞으시는군요!
이렇게 네권이 단행본 전부니까, 저는 다 읽은 찐팬 ㅋㅋ
수하님도 세권 읽으셨으니, 이 책도 읽어보세요^^

미미 2023-02-09 1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호 저도 김혼비의 책을 읽어봐야겠어요! 괭님이 반하신 김혼비의 박력 어떨지 궁금해요ㅋㅋㅋㅋ

독서괭 2023-02-13 12:49   좋아요 0 | URL
와일드푸드축제에서의 박력이라면, 뭔가 예상되지 않으십니까? ㅋㅋㅋ 미미님도 김혼비에 입문해보시죠^^

공쟝쟝 2023-02-09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 입에서 젠장이라는 형용사(ㅋㅋㅋ) 나오다니요!!! 저는 축구 넘 좋았는데… 아무튼 술 읽고 실망했어요…너무 착한 사람이더라고요… (내가 술마시고 한 개짓을 생각해보면….) 작가님 너무 착해서 맘에서 멀어진 거지, 특별히 재밌는 에세이란 것엔 동의합니다ㅋㅋㅋ 축제자랑 킵킵!

독서괭 2023-02-13 12:51   좋아요 1 | URL
음 제가 젠장이라는 말도 안 쓰는 얌전괭으로 이미지를 잘 관리하고 있었군요 ㅋㅋㅋ 아무튼 술에 실망하시다니 무슨 일? 했는데 ‘너무 착해서‘라니 ㅋㅋㅋㅋㅋ 쟝쟝님은 술 취해 많은 일을 하셨나봅니다 ㅋㅋㅋ 김혼비 개그가 취향에 맞으시다면 축제자랑도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singri 2023-02-09 2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상한데 진심 딱이네요ㅋ웃길꺼같습니다ㅋㅋ

독서괭 2023-02-13 12:52   좋아요 1 | URL
네 엄청 웃기고요, 지역축제에 대해서도 고민해보게 하는 글들입니다. 싱그리님도 함 읽어보시죠^^
 
가치 있는 삶
마리 루티 지음, 이현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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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삶>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어떤 이는 나처럼 꼰대의 일장훈계를 연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접어두어도 된다. 이미 마리 루티라는 저자에 대한- 읽지도 않았지만 북플로 인해 가지게 된 - 신뢰가 있기에 예상은 했지만, 도입부의 이런 문장은 내 마음에 쏙 들어왔다.



나는 기질이 우리가 누구인지를 최종적으로 결정짓는 고정적인 핵심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진정성"이란 특정 성격의 특성이나 속성이 아니라 삶의 방식,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진정성은 우리 존재에 대한 어떤 영구적인 진리가 아니라, 인간의 삶의 특징인 계속되는 변화의 과정에 우리가 어떻게 발을 내딛을 것이냐 하는 문제다.  - P33


누구나 알 만한 풍자의 대상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인 "나다운 게 뭔데?"라는 항변을 철학적으로 번역한 게 아닐까. "너답지 않다"라는 말에는 "나다운 것", 나의 기질, 나의 속성, 나의 핵심, 이른바 진정한 나 자신이라는 것이 고정불변하게 존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거기에 대항하는 "나다운 게 뭔데?"는 나에 대해 니가 얼마나 안다고 건방진 소리를 하냐는 방어적 태도 뿐만 아니라, 나다운 건 변화할 수 있다는, 기존에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나다운 것으로서 내가 형성해나가는 내 모습의 한 과정일 뿐이라는 답이 들어있지 않은가? 


이 책은 기질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나의 기질의 부름을 듣고 그에 따라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지를 차근차근 펼쳐가며, 우리를 가치있는 삶에서 멀어지게 하는 방해요소들-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현란한 광고들,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반복강박 등 - 에 대해서도 분석한다. 

전체는 3부로, 각 부는 3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장은 7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 내가 꽂힌 라캉의 'the Thing' 이론은 앞서 다른 페이퍼에서 언급한 바 있다. the Thing 이론과 함께 이 책에서 다룬 기질, 반복강박 등은 계속 뇌리에 남아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떠올리게 된다.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을 정리해 본다. * 숫자와 순서는 책의 목차와는 관계 없습니다. 



1. 성숙한 자아는 유연하다.



 가장 "성숙"한 자아란 경계를 확실히 알고 긋는 자아가 아니라, 경계를 계속해서 재설정할 줄 아는 자아다. 가장 "발달된" 자아는 고도로 구조화된 자아가 아니라 가장 덜 구조화된 자아로, 다양한 정체성의 차원을 유연하게 이동할 수 있다. - P67


2. 불행은 삶을 이루는 하나의 구성 요소다. 



질병, 사고, 기타 불행과 같이 우리 힘을 약화시키는 것들조차도 삶에 새로움을 가져다 주며, 우리가 그러한 시련에 맞춰 자신을 재정비할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시련을 쇠퇴의 징조로, 우리 자신의 어떤 중요한 부분을 잃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삶의 과정이라는 것이 언제나 더 나아지기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우리의 힘이나 능력을 앗아가는 역경조차도 삶이라는 과정의 중요한 구성 요소로 여길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좋냐 냐쁘냐 또는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그 자체의 문제다. 인간의 삶은 그렇게 이루어져 있으므로 맞서 싸운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 과정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다양한 자극과 어떻게 상호 작용을 할 것인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 P72, 73



3. 인간에게 결여란 근원적인 것이며,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완전한 자기만족은 세상에 대한 우리의 호기심을 앗아 간다. 따라서 우리는 완전히 행복해질 수 있고 세상과 완벽하게 조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결코 실현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실현할 수 없는 환상이 우리 인간이 지닌 원대함의 근원이다. - P91

라캉은 우리 자신이 부족한 존재라고 느끼는 것은 사회화를 이루기 위해서 치러야 하는 대가이기에 원초적인 것이며, 그 느낌을 없애 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회화되기 이전의 우리는 아직 자신을 독립적인 실체로 이해하지 못해서 실제로 우리가 세계고 세계가 우리라고 이해한다. 사회화는 적어도 두 차원에 걸쳐 이 환상을 철저히 깨뜨린다. 먼저 일반적인 차원에서, 사회화는 우리와 어머니(혹은 우리를 돌보는 양육자) 사이에 어떤 쐐기를, 즉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을 심어 놓음으로써 환상을 깬다. 보다 상징적인 차원에서는, 우리가 우주의 배꼽이라는 자기애적 감각에 큰 타격을 가져옴으로써 다시 환상을 깬다. 우리는 완전한 존재이며 복잡하지 않고 단순한 존재라는 우리의 유아적 환상을 깨 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이 환상을 부당하게 강탈당했다고 단단히 착각하여 충족될 수 없는 갈망을 갖게 된다. 우리는 잃어버린 환상, 실낙원a lost paradise을 결코 되찾을 수 없지만 되찾길 추구하며 여생을 보내게 된다. 애초에 우리가 이 낙원을 소유한 적이 없다는 사실, 우리는 결코 완전한 존재였던 적이 없으며 단순하고 마음이 태평하기만 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은 낙원을 되찾으려는 우리의 결심을 조금도 굽히지 못한다. 라캉은 이 실낙원을 "큰사물the Thing"로 명명하는데, 이 대문자 T는 그것이 그저 평범한 환상의 대상이 아니라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매우 특별한 것임을 나타낸다. 우리 마음속 가장 깊은 욕망이 바로 이 큰사물이다. 일부 사람들은 큰사물이 상징하는 실낙원을 초자연적인 낙원으로 대체한다. 이것이 종교가 전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휘두르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앞서 밝혔듯,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것의 대체물을 찾는 과업에 착수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으로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을 경감시키고자 많은 사람을 만나보기도 하고 다양한 열망을 추구하기도 한다. 이것이 라캉이 "대상이란 본디 재발견된 것이다."라고 주장한 이유다. 우리가 창조하거나 발견한 모든 "대상"(모든 사람이나 열망)은 항상 원래 잃어버린 사물을 대체한다는 의미에서 "재발견"되는 것이다.   - P94, 95



4. the Thing의 울림과 접촉이 끊기면 허무에 이른다.

   접촉의 방해물 1: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상업 시스템 



평범한 대상에서 큰사물의 울림을 찾는 우리의 능력, 라캉의 말을 빌려 다시 말하자면, 일상적인 사물에 "큰사물의 존엄성""을 부여하는 우리의 능력이 우리를 잠식해 오는 무無라는 감각에 대항할 수 있는 최선의 방비라는 것이다. -  P105

일반적으로 삶이 무감각하다고 불평하는 사람은 큰사물이 전하는 울림과 접촉이 끊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욕망이 지닌 아주 독특한 결과 같은 결을 지닌 대상과, 허구의 만족을 주는 대상을 구별하는 능력을 상실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의 거대한 상업 시스템이 큰사물의 울림을 없애 버린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 P109, 110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너무 많다는 사실은 우리의 욕망이 그만큼 다양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단지 세계화된 경제 구조, 즉 무엇이 바람직한지 매우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구조의 특정 범위 안에서만 욕망하도록 학습되고 있다는 뜻이다.  - P239



5. 접촉의 방해물 2: 반복강박

   반복강박을 유발한 과거를 외면하고 회피해서는 안 된다.


반복 강박은 큰사물의 특별한 울림이 우리 삶에 불러오는 일종의 혼란을 부단히 없애려한다. 다시 말해, 큰사물을 향한 우리의 충성심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 예측 가능한 일이라는 표면을 깨고 나올 수 있게 하지만, 반복 강박은 이 표면을 수비한다. 결과적으로, 우리의 강박이 완고할수록 우리는 큰사물의 아우라를 극적으로 부활시키고 삶을 변화시킬 큰 잠재력을 지닌 바로 그 대상(또는 활동)을 거부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 P129

과거를 땅속에 파묻으려고 (또는 추방하거나 무시하고 외면하려고) 하면, 우리는 과거를 반복하게 될 수밖에 없다. (억압된 과거가 되돌아온다는 의미다.)  의식적으로는 기억하지 않으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계속 "기억"하게 되고, 그 결과 무의식 속의 악마는 더욱더 탐욕스러워진다. 게다가 우리가 이 악마를 의식하기를 포기하면, 악마를 통제하는 능력 또한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그 악마의 (언젠가는 다가올) 기습에 제대로 경계 태세를 갖추지 못하게 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삶의 역사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 행동의 특징을 잘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는 악마가 하려는 일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 P187

기질을 형성한다는것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과거에서 공급받은 원재료를 (제한적일지라도) 어느 정도 우리의 이상에 걸맞은 현재의 현실로 변환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P140



6. 친밀한 관계는 기질 형성에 도움이 되지만, 어떤 관계는 그저 죽어있는 것일 뿐이므로 빨리 벗어나자. 



더욱 친밀한 관계가 우리와 우리가 외면해 온 모습을 만나게 할 가능성을 높인다. 우리가 낭만적인 동맹의 관계를 갈망하는 한 가지 이유는 그 동맹 관계가 우리 내면의 비밀스러운 방의 문을 열고, 우리 안에서 억압받거나 경시되었던 기질의 측면을 소생시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사랑은 우리가 감추어야 한다고 배운 성격의 아주 은밀한 부분까지 속속들이 소환해 낸다. 이렇게 우리 안에 묻혀 있는 특성들이 수면 위로 드러나도록 하는 것은 삶에 특별한 활력을 불어넣는 일이기에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침묵하던 것이 갑자기 말을 하게 되고, 무시당하던 것이 세상으로 뛰쳐나오고, 버려졌던 것이 삶의 경쟁 속으로 다시 들어오게된다.  - P157

독신 생활은 공허하고 황량하고 우울하고 절망적이라는 낙인이 찍혀 있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되어 버렸다.
독신이라는 현상을 바라보는 이런 방식은 두터운 연인 관계에도 엄청난 공허함, 황량함, 우울함, 절망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과, 장기적 동맹을 맺고 있는 커플의 일상적인 현실이 우리 문화가 흔히 말하는 것처럼 항상 평화롭고 행복한 모습을 띠고 있진 않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한다.
물론 결혼이 영혼을 죽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러나 많은 이가 결혼 생활에서 절망스러울 정도로 외로움을 느낀다. 결혼한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거나 무시당한다고 느낀다. 또한 많은 동맹 관계는 서로가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일상과 편의, 의무 또는 외로움에 대한 두려움으로 묶여 있다는 의미에서 본질적으로 "죽어 있는 상태"다.

이러한 동맹 관계에서 우리는 마치 고갈되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이러한 느낌은 우리를 덮쳐 버릴 수도 있다. - P160, 161



7. 과거/반복강박을 의식한다고 하여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서로의 한계와 책임을 인정하는 연대가 필요하다.



무의식적 동기라 해도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면, 타인이 자신을 자제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무분별한 행동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도 우리 속을 잘 모르겠다는 것을, 즉 무의식적인 악마가 우리가 내린 올바른 판단을 무시하고 타인을 해치도록 몰아간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우리 또한 타인의 윤리적 실수에 인내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타인들도 똑같이 그러하다는 것을 이해하여, 말하자면 일종의 취약성의 연대로 이어져야 한다. - P193

무의식적인 삶의 세계를 탐구하라는 프로이트의 말이 우리더러 제멋대로인 방종 상태에 빠져 버리라는 의미가 아니었음을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오히려 프로이트는 무의식적 습관이 관계를 포함한 이 세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 우리가 잘 인식하여, 세상과 상호 작용할 때 더 좋은 선택을 내릴 수 있길 바랐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프로이트는 실수가 항상 우연에 의한 것은 아니며, 자기 성찰을 하면 할수록 우리 자신이나 타인에게 반복적으로 상처를 주는 일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길 바랐다.  - P207



* 취약성의 연대라고 하니, 주디스 버틀러가 떠오른다. 


버틀러는 지금까지 논했던 무지, 불투명성, 취약성과 같은 우리의 한계를 책임감과 윤리의 바탕으로 사유하자고 제안한다. (...) 또한 이 책임감은 우리의 무지, 불투명성, 취약성과 같은 한계들이 우리를 사회적 몸으로 만들고 연결시킨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다. (...) 나아가 내가 알지도 못하는 지구 반대편 타자들의 삶에까지 내가 연루되어 있음을 자각함으로써 나는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한 책임 또한 이미 나에게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꺠달음을 통해 나의 상실과 당신의 상실, '우리'의 상실과 슬픔을 어떤 방향으로 정치화할 수 있을까?  - <퀴어이론 산책하기> 528, 529쪽 


존재의 취약성, 그로부터 빚어지는 고통과 슬픔이 정치윤리적 가치로 생성되고 전환될 수 있다면, 강함과 약함, 능동성과 수동성, 긍정성과 부정성, 기쁨과 슬픔처럼, 마치 대립 관계에 있는 듯이 설정되어 있었던 논리의 축이 흔들리게 된다. 나아가 만약 정동의 역능이 다수적이고 이질적이고 변화적인 것들의 결합과 선택으로서 개진되는 긍정화로의 변환 과정이라면, 이 원리에 따라 취약성 역시 능동의 강도로 고양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버틀러와 아흐메드의 논의에서 취약성과 고통이 오히려 강건하며 공존적인 정치윤리로 전화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 <디지털 미디어와 페미니즘> 29, 30쪽



8. 주저앉지 말자. 기질의 부름을 따라가는 여정에 불안은 친구같은 동반자다. 


요컨대 사건은 예상을 넘어서는 뜻밖의 것에 믿음을 가져보길 권유한다. 이것이 바디우가 우리에게 "절대 두 번 다시 믿지 않을 것"을 사랑하라고 말한 이유다. 또한 바디우는 이상하고 독특한 것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항상 진실이라고 믿어 왔던 것만을 사랑하는 일과는 완전히 다른 일이라고 말한다. - P215

기질의 부름은 삶이 그런 단계로 전락하게 될 때, 즉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 나가는 데만 열중해 습관, 일상, 생활 계획표가 현실을 완전히 삼켜 버릴 때, 삶의 빛과 함께 창의력 또한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 P220

자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든 우리의 이상에는 특수성이라는 것이 있어, 어떤 것이 만족스러운 실존적 삶의 여정이고 어떤것이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게 해 준다. 자아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결정한 실천적 선택들이 모여서 창조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새롭고 무한한 실존적 가능성을 성취해 낼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앞에 펼쳐진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삶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게 된다. (결국, 구성되어 있던 것이 재구성되는 것이다.) 우리가 가진 이상에 부합하는 선택을 반복적으로 내리다 보면,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느껴지는 삶을 이룰 가능성이 커진다. - P236

우리는 불안이 삶에 침투하도록 내버려 두면 큰일이 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삶에서 "균형"을 추구할수록 우리는 더욱 사회와 동떨어지고, 삶은 더욱 단조롭고 지루해진다. 실존적 균형이라는 이상을 추구할수록 우리의 기질은 더욱 억제된다. - P249



9. 삶은 결코 허망하지 않다. 우리의 한계, 우리의 필멸, 우리의 결핍은 결국 우리 삶을 더 가치있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실존적 투쟁에 어떤 "요점"이 있다면, 사회가 제공하는 명쾌한 해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해답은 우리를 기만할 뿐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삶에 어떤 "의미"가 있다면 그 의미는 결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의미 있는 삶의 모습에 도달하기 위한 우리의 끊임없는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  - P253

결과적으로 삶의 덧없음은 삶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않고 드높인다. 운명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삶의 덧없음을 사랑한다는 의미다. - P256



삶은 결코 허망하지 않다,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느끼는 공허함, "왜 살아야 합니까?"라는 실존적 물음에 대한 마리 루티의 답일 것이고, 나는 이 답이 마음에 든다. 어려운 용어를 자제하고 소박하고 진실되게 그 답을 차근차근 제시해나가는 마리 루티의 태도는 더 마음에 든다. 그래서, 이 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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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2-01 14: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 윳 빛 깔 독 서 괭!!

제가 좋아하는 마리 루티의 책을 독서괭 님도 좋다고 추천하시니 제 마음이 한없이 흡족합니다. 으하하하하.
저 아직 이 책 안읽었는데 곧 읽을게요.
(아니 이렇게 곧 읽는다고 댓글 달고 다닌 책이 도대체 몇 권이냐 ㅠㅠ)

잠자냥 2023-02-01 14:57   좋아요 3 | URL
나도 사놓고 아직 안 읽음;;;;;;;;;;

독서괭 2023-02-01 17:29   좋아요 3 | URL
으하하 ㅋㅋㅋㅋ
다락방님은 그래도 곧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읽고 싶은데 제가 책을 안 살 거라..˝라는 댓글을 무수히 달고 다닌답니다 ㅋㅋㅋ 언제 당장 사겠어요! 할 수 있을런지 ㅠ
잠자냥님도 아직 안 읽으셨군요ㅋㅋ 어서들 읽으시길 기대합니다!

미미 2023-02-01 15: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나갔다 와서 정자세로 읽어봐야겠네요. 저는 아직 읽다 말았지만 저 또한 마리 루티 너무 애정합니다.
집중이 필요한 책이라고 느껴서 이래저래 미뤄진. 아 괭님 너무 멋지심요👍

독서괭 2023-02-01 17:30   좋아요 2 | URL
미미님, 정자세로까지 읽어주실 필요는 없고요 ㅎㅎ 직접 읽으시면 미미님의 멋진 리뷰가 탄생할 겁니다. 집중이 필요한 책 맞아요. 저 처음에 가볍게 폈다가 진도 안 나가서 좀 기다렸다 작정하고 읽었어요. 감사해요^^

난티나무 2023-02-01 17: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앞부분 읽다가 좋아서 샀어요! 아직 안 읽고 있지만 독서괭님 글 보니 좋을 것 같아요.

독서괭 2023-02-01 17:30   좋아요 2 | URL
난티나무님 사셨다는 글 본 기억이 납니다! 저는 참 좋았는데 어떠실지, 기대되네요^^

건수하 2023-02-01 20: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런 내용이군요…

저는 이런 정신에 관한 책 읽는 거 힘들어해서… 마리 루티의 다른 책을 먼저 읽어보려고 했는데, 독서괭님 글 보니 또 끌려요. 기억해둬야겠어요.

독서괭 2023-02-02 14:09   좋아요 0 | URL
수하님 정신에 관한 책 읽는 걸 힘들어하세요? 음. 어떤 포인트에서 힘들어하시는 건지 잘 몰라서 이 책이 어떠실지 모르겠네요. 후에 기회되시면 읽어보셔요^^

단발머리 2023-02-02 08: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너무 좋아서 (이 이야기 5번째 중) 리뷰를 못 썼습니다. 은혜롭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독서괭님, 이 리뷰 너무 좋고, 정리해주신 것도 너무 좋아요.

인간에게 결여란 근원적인 것이며, 인간을 위대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저는 여기에서 결여를 ‘고통‘ 혹은 ‘외로움‘으로도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행복에 대한 강박 혹은 멈추지 않는 행복 추구, 이런 거에 대해 많이 생각했는데 아... 글을 못 쓰겠더라구요. 독서괭님 명품 리뷰를 꼼꼼히 읽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잘 읽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독서괭 2023-02-02 14:11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너무 좋아서 리뷰를 못 썼다! 그 마음 압니다. 알고 말고요! (저도 그런 책 많음..)
공감하며 읽어주셔서 기쁘고 감사합니다.
결여가 고통이나 외로움으로 치환 가능할 것 같아요. 빈 곳을 채워 넣으려고 이것저것 집어넣어 보는데, 현대사회에 너무 선택지가 많고 거기에 휘둘려서 엉뚱한 걸 자꾸 집어넣고.. 점점 허무주의로 치닫고.. 그런 세태에 대해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느껴지더라구요. 그리고 자기 이론이 오해를 받아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될까봐 조심조심 계속 설명을 곁들이는 것도 좋더라구요.
단발머리님의 리뷰도 언젠가 볼 수 있으리라 믿으며~~

책읽는나무 2023-02-01 23: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너무 좋다고들 하셔서 서점에서 샀어요!
근데 아직 안 읽었~^^;;;
더욱 기대가 되네요?
책 읽기 전이라, 리뷰를 대충 읽었는데, 책 읽고 나면 다시 꼼꼼하게 읽으며 깊이 공감하고 싶네요.^^

독서괭 2023-02-02 14:13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책나무님, 얼른 읽으시고 공감해주세요^^
아주 많은 이론들을 깊이있게 연구한 후 자기 언어로 쉽게 풀어쓰려고 한 노력이 인상적입니다.

유부만두 2023-02-03 05:50   좋아요 1 | URL
책나무님 제 맘을 그대로 써주셨어요;;;

2023-10-02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박오복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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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재미있게 읽었던 몇 권의 19세기 여성문학(폭풍의언덕, 제인에어, 오만과 편견)에 이렇게 심오한 의미가 담겨있을 줄이야. 이미 읽은 책도 다시 보게 하는 책. 읽어가는 내내 그 시대 여성들이 겪었을 고통에 마음이 아팠다. 제인 오스틴과 조지 엘리엇 작품을 찾아읽은 후 다시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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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02-01 12: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헉 어제 다미여 다 읽었다고 표시하고 거기에 댓글 달아주신 분들 있었는데 왜 그게 삭제됐을까요??ㅠㅠㅠㅠㅠ 죄송합니다..
여성주의 책읽기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런 책을 완독해낼 수 있었을까요? 감사드립니다~~^^

다락방 2023-02-01 13: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어휴 고생하셨고 축하합니다. 우리 이 길을 계속 같이갑시다!! 빠샤!!

독서괭 2023-02-01 17:3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빠샤빠샤!!

미미 2023-02-01 13: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정말 외관도 내부도 무시무시한 책! 19세기 문학의 재발견!!
완독을 축하드려요 괭님~^^♡

독서괭 2023-02-01 17:30   좋아요 2 | URL
감사드려요 미미님~~^^

책읽는나무 2023-02-01 2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 축하, 축하!!!
시어머님도 기뻐하시겠어요ㅋㅋ
이젠 다미여 이야기를 서로 나눌 수 있는 고부간?ㅋㅋㅋ

독서괭 2023-02-02 14:0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아직 말은 안 꺼내봤습니다..
˝어, 그거 사놓고 안 읽었는데..˝라고 하시면 어쩌죠? 그럼 더 친근하게 느껴질 것 같긴 하네요? ㅋㅋㅋ

책읽는나무 2023-02-02 14:55   좋아요 0 | URL
ㅋㅋㅋ 바로 그거에요!
우리 알라디너들 대화 대부분이 사다 놓고 아직 안 읽었는데~ 로 친분을 트잖아요?ㅋㅋㅋ
왠지 시어머님도 알라디너 멤버이실지도?
우와~ 이런 상상은 좀 무섭다!!😰😨
 
폭풍의 언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18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종길 옮김 / 민음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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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월에 <폭풍의 언덕>을 읽고 남긴 100자평에는,

"음울한 낭만, 정말 좋아하는 소설^^"이라고 쓰여있다. 거참 짧고 성의가 없기도 하지..ㅋㅋ 

11년 만에 다시 읽은 이 책에 관해, 나는 더이상 '낭만'을 언급할 수 없다. 

옛날에는 이 책을 훨씬 더 낭만적인 사랑이야기로 이해했던 것 같다. 거기에는 만화 <유리가면>의 영향도 적지 않은데, <유리가면>에서 마야가 캐서린의 소녀시절 역할을 맡아 연기하는 부분에서 히스클리프와의 사랑이 너무나 순수하고 낭만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소설의 뒷부분 복수하는 부분은 다른 배우가 맡았기 때문에 아마 만화에서는 소녀시절 중심으로 그려졌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인상으로 남았던 것 같다. 내 최애 만화 중 하나인 유리가면.. ㅠㅠ 


그러나 30대 후반, <다락방의 미친 여자>와 함께 읽은 <폭풍의 언덕>은 처절하고 대담했으나 결국 실패하고야 마는, 비극적인 투쟁의 기록이었다. 누구의 실패인가? 히스클리프의 실패이지만, 이는 '캐서린의 채찍'으로서 히스클리프가 가부장제의 권위에 도전하고자 했던 투쟁의 좌절이라고 할 수 있다. 


캐서린 언쇼에게는 관습에 맞지 않는 기질이 있다. 황야를 뛰어다니고 거친 모험을 즐기는, 정숙한 숙녀에게는 필요치 않은 기질이다. 이 기질을 유년기에 마음껏 펼치게 해주는 조력자이자 분신같은 존재가 히스클리프였다. 그러나 워더링 하이츠와 대비되는 드러시크로스 저택을 발견하고 캐서린이 거기에 받아들여지는 순간, 히스클리프는 그녀와 분리된다. 그녀가 관습의 세계에 적절히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거친 기질을 자기로부터 분리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캐서린은 영악하게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한다. 드러시크로스 저택의 상속자인 에드거 린튼과 결혼함으로써 관습이 주는 안정감과 지위를 획득하는 한편, 이를 이용하여 히스클리프가 제거되지 않도록 잘 숨겨놓는 것이다. 히스클리프가 돌아왔을 때 캐서린이 기쁨을 드러내며 린튼에게 기쁨을 표현하는 장면(제10장)을 보면 캐서린이 얼마나 순진하게 두마리 토끼잡기 가능하다고 믿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상일이 뜻대로 될까. 캐서린과 하나되기를 원하는 히스클리프는 캐서린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여기고 워더링 하이츠를 떠나버린다. 몇 년 후 다시 돌아온 히스클리프의 존재는 캐서린에게 자아분열에 의한 광기를 유발한다. 캐서린은 린튼과 사이에서 생긴 딸을 낳고 죽음에 이른다.


 히스클리프는 복수를 원한다. 먼저 캐서린의 오빠로서 자신에게 매우 혹독했던 힌들리 언쇼를 술과 도박에 중독시켜 도박빚을 저당잡아 그의 재산을 모두 뺏는다. 다음으로는 린튼의 딸인 캐서린 린튼(어머니 캐서린과의 구별을 위해 캐시라고 부른다)과 자신과 이저벨라 린튼 사이에 낳은 아들을 결혼시킴으로써, 드러시크로스 저택의 모든 것을 망가뜨리고 자신이 가져오고자 한다. 그의 아들 '린튼 도련님'(히스클리프는 성이 없기 때문에 엄마 성을 따른 모양. 이름이 나왔나 의문인데 찾아볼만큼 궁금하지 않음)은 너무 병약해서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히스클리프는 강압적인 방법을 써 서둘러 캐시와 아들의 결혼을 성사시킨다. 캐시와 린튼의 결혼은 에드거 린튼 역시 원했던 바이나, 그것은 에드거가 린튼이 얼마나 병약한지 알지 못했던 탓으로 보인다. 만일 에드거 린튼이 사망할 경우 상속자는 조카인 린튼이 되는데(딸인 캐시에게 상속권이 없기 때문!!-ㅁ-^) 그와 캐시가 결혼하면 캐시가 드러시크로스 저택에 계속 살면서 부와 지위를 그대로 누릴 수 있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스클리프는 린튼이 에드거보다 먼저 죽을 경우에 대비해야 했다. 왜냐하면, 린튼이 먼저 죽은 후 에드거가 죽으면 남성상속자가 없기 때문에 아마도 캐시에게 재산이 상속될 것이나, 린튼 사망 전에 캐시와 결혼을 시켜버리면 사위가 상속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19세기 상속법이 어떤지 모르나 그럴 것으로 추정됨). 그리고 아들이 죽은 후의 상속에 관해서는 그가 (강요에 의해)작성한 유서에 따라 히스클리프가 전재산을 가지도록 해두었다. 심지어 캐시의 소유였던 동산까지 히스클리프 앞으로 물려주었다고 나오는데(30장, 490쪽) 남편이 아내의 재산에 대한 처분권까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토지만은 린튼이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손을 댈 수 없었다는데, 히스클리프는 자기 아내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여 토지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나온다 - 아마 상속인이 미성년자인 경우 토지에 대해서는 자유롭게 처분할 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미성년자의 재산에 관해서는 법정대리인으로서 부모에게 권한이 있기 마련이므로, 아버지인 히스클리프가 처분할 수 있었지 않나 싶다)


 이 복수는 딸에게 상속권이 없다는 점, 남편이 아내의 재산에 대한 처분권을 가진다는 점에서 가능하므로(캐시가 그냥 아버지의 유산을 다 상속받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황무지 따위는 내버려두고 런던으로 가서 즐겁게 살 수도 있었을텐데), 결국 히스클리프의 복수 또한 가부장제 권력에 기초해있다. 따라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로, 히스클리프의 복수는 엉뚱하게 흘러가 실패하고 만다. 남편이 사망한 후 캐시는 히스클리프가 데리고 살던 캐서린의 조카, 그러니까 캐서린의 오빠 힌들리(장자)의 아들 헤어튼 언쇼와 사랑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히스클리프는 돌고 돌아 워더링 하이츠의 적법한 상속자에게 드러시크로스 저택까지 넘겨주게 된 셈이다. 



 한편으로 이 책을 히스클리프라는 인물 중심으로 읽으면, 계급투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 좋은 언쇼 어른이 데려다 길러 결국 자신의 재앙의 씨가 된 저 검은 아이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어렴풋이 졸면서 저는 이런 미신 같은 생각을 떠올렸지요. (...) 그는 성(姓)도 없고 나이도 알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단 한마디 '히스클리프'라고 쓸 수밖에 없겠다는 것 등이었지요.   - 550쪽 


 검은피부와 채찍을 생각하면 노예제가 떠오르지 않는가? 헤어튼 언쇼에 대한 그의 감정도 매우 미묘하다. 그는 언쇼가문의 상속자인 헤어튼을 자기와 같은 비참한 처지로 끌어내리려는 목적으로 그를 맡는다. 이상하게 캐서린을 닮은 헤어튼, 점점 자신과 비슷하게 전락해 가는 헤어튼,, 힌들리와 닮은 구석이 없는 그를 보며 히스클리프의 마음은 대단히 혼란스러웠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무엇보다 헤어튼은 히스클리프의 학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나쁜 부모와 자녀 사이의 어긋난 애착같은 것을 형성한 두 사람의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정통성'을 가진 헤어튼은 결국 모든 것을 차지하게 될 것이고 히스클리프는 나무가 시들어가는 것처럼 소멸해가는데, 그 소멸에 자신이 원인이 된 것을 모른 채 슬퍼하는 헤어튼의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관습이 죽이는 여성 내부의 어떤 것에 대해, 관습을 수호하는 주변인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슬퍼하는 것과 같다. 캐서린의 죽음에 넬리와 에드거가 슬퍼하는 것처럼.  


헤어튼과 함께 관을 따라가기 전에 그는 그 불쌍한 아이를 탁자 위에 올려놓더니 색다른 즐거움을 느끼며 중얼거리는 것이었어요.

"야, 이 녀석아, 이제 너는 내 거야! 나무를 휘게 할 정도의 강한 바람을 맞고도 이 나무가 다른 나무처럼 휘지 않고 자랄 수 있는지 어디 두고 보자!"  - 306쪽 

"저 녀석은 내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어. 만약 저 녀석이 바보로 태어났더라면 내가 이렇게 즐거움을 느낀다는 건 어림도 없지. 그런데 저 녀석은 바보가 아니거든. 그리고 나 자신이 그런 걸 경험했기 때문에 저 녀석의 기분을 다 알 수 있단 말이야. 가령 지금 저 녀석이 무엇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지 난 다 알고 있지. 그건 단지 그가 앞으로 겪을 괴로움의 시작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야. 그리고 자기가 빠져 있는 상스러움과 무지 속에서 절대 벗어나지 못할 테니까. (...)"  - 360쪽 

"(...) 내 눈에 그녀와 관련되지 않은 것이 뭐가 있겠어? 무엇 하나 그녀 생각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것이 있어야 말이지! 이 바닥을 내려다보기만 해도 그녀의 모습이, 깔린 돌마다 떠오른단 말이야! 흘러가는 구름송이마다, 나무마다, 밤이면 온 하늘에, 낮이면 눈에 띄는 온갖 것들 속에, 나는 온통 그녀의 모습으로 둘러싸여 있단 말이야! 흔해 빠진 남자와 여자의 얼굴들, 심지어 나 자신의 모습마저 그녀의 얼굴을 닮아서 나를 비웃거든. 온 세상이 그녀가 전에 살아 있었다는 것과 내가 그녀를 잃었다는 무서운 기억의 진열장이라고! 

제기랄, 헤어튼의 모습은 내 불멸의 사랑, 내 권리를 지키겠다는 무모한 노력, 나의 타락, 나의 자존심, 나의 행복, 그리고 내 고뇌의 망령이었어. (...)"  - 539, 540쪽 


<다락방의 미친 여자> 8장의 내용에 관한 부분은, 글이 너무 길어져서 따로 페이퍼로 써보려고 한다. 


* 해설에 빈정 상함 ㅋ 


노처녀의 신세로 <폭풍의 언덕>이 세상에 나온 지 꼭 일 년 뒤인 1848년 12월 19일, 만 30년 5개월의 짧은 생애를 끝맺은 그는 박복한 사람이었지만 앞의 시 작품에서 보듯 얽매임을 싫어하는 굳건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 568,569쪽(해설)

이보세요, 해설(번역)자님?... 2005년에 출간되었음을 감안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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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01-10 14: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처녀의 신세라니! -_-


‘린튼’ 도련님의 린튼은 이름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폭풍의 언덕>은 다시 읽어도 너무 어려웠어요. 히스클리프를 이해하기 너무 힘들고 ㅎㅎ 그래서 뭔가 숨겨둔 거라고 했을때 반가웠죠. 그래서 내가 이해하기가 힘들었구나, 뭔가 느꼈구나 이러면서 ㅋㅋ

독서괭 2023-01-10 16:50   좋아요 2 | URL
아닛, ‘린튼‘이 이름인가요!!! 린튼 서방님 린튼 도련님 하길래 아 성을 린튼으로 붙였나보다 했는데.. 존재감이 없어서 이름은 기억이 안 나나보다 ㅋㅋㅋㅋ
수하님은 전에 읽을 때도 뭔가 숨겨져 있는 스멜을 느끼신 거군요. 저는 전혀 모르고 ㅋㅋㅋ 겉핥기로 ㅋㅋㅋ 겉으로 보여준 로맨스랑 분위기에 열광하여 좋아했던 듯 합니다 ㅋㅋ 하지만 다시 봐도 여전히 재밌어요!!

건수하 2023-01-10 16:52   좋아요 0 | URL
린튼 엄마 (이름이 뭐더라...)가 성을 따서 이름으로 붙였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ㅎㅎ

스멜..을 진짜 느낀 건 모르겠고 그렇게 위안을 하기로 했습니다 ㅎㅎㅎ

독서괭 2023-01-10 16:58   좋아요 1 | URL
책이 옆에 있어 찾아보니, ˝린튼으로 이름을 지었다˝는 부분이 나옵니다! 수하님 기억력!! (엄지척)

새파랑 2023-01-10 16: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폭풍의 언덕>을 단순히 재미있게만 읽었는데 숨겨진 의미가 너무 많은거 같습니다 ㅋ 책도 아는만큼 배우게 되는거 같아요~!! 독서(천재 토지)괭님이 되가시는거 같습니다~!!

독서괭 2023-01-10 16:51   좋아요 1 | URL
히스클리프의 마지막이라든가 헤어튼과의 관계 등 깊이 의미를 분석해보지 않으면 알기 힘든 부분도 많은 것 같아요. 독서천재 너무 많아지면 희소성이 떨어져 안 됩니다. 저는 아직 멀었어요. ㅋㅋ 새파랑님 감사합니다^^

잠자냥 2023-01-10 1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최근 이 책 다시 읽어보려고 샀어요. 전에는 폭풍의 언덕으로 읽었으니 이번엔 워더링하이츠로!

독서괭 2023-01-11 15:09   좋아요 0 | URL
현명하십니다. 저도 이거 처분하고 다른 판본으로 재독해 볼걸 그랬어요.. ㅠㅠ

책읽는나무 2023-01-10 2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미여 정리 페이퍼가 기다려집니다^^
저는 시간이 그새 지났다고 인물들 이름이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하네요?ㅋㅋㅋ
암튼 저도 히스클리프 입장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히스클리프도 어릴 때 학대를 당하지 않았고, 차별을 받지 않고 자랐었다면 복수 따위 신경 쓰지 않았을터인데 말입니다? 캐서린의 또다른 한몸인 히스클리프라고 하니, 캐서린의 억압된 악마스러운 부분을 히스클리프가 대신 살면서 행했던 건가?싶기도 하고... 암튼 <폭풍의 언덕>부분 비평 부분도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살짝 비약이 심해보이기도 했지만요^^

독서괭 2023-01-11 15:11   좋아요 1 | URL
인물들 이름이 헷갈리게 되어 있습니다 ㅋㅋㅋ 저도 시간 지나면 히스클리프밖에 기억 안 날듯요 ㅋㅋ
<폭풍의 언덕>은 정말 새롭게 보게 된 책이라 신선하고 재밌었어요. 다락방의 미친 여자 저자들의 해석이 대체로는 수긍이 가더라고요. 에밀리 브론테 자신은 이런 식으로 분석적으로 생각하고 쓴 건 아니겠지요? ㅎㅎ
다미여 정리 페이퍼 빨리 올려야겠습니다^^;

다락방 2023-01-11 09: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정희진 매거진>을 들었거든요. 독서괭 님도 혹시 들으시나요?
여기 들어보면 처음에 1편에서 ‘읽기는 다시 쓰기다‘ 라고 희진쌤이 말씀하셔요. 책 한 권은 읽는 사람에 따라 다 다르게 해석되어진다는 거죠. 그렇게 우리는 다시 쓰는 거라고. 저는 오늘 이 리뷰을 읽으면서 정희진 쌤의 말씀을 다시 떠올립니다. 독서괭 님은 이걸 투쟁의 기록으로 읽으셨잖아요. 너무 좋네요. 같은 책을 읽었지만 저랑은 또 다른 지점을 보고 다르게 해석하신 것 같아서요. 독서괭 님만의 해석을 보는 일이 무척 흥미롭고 재미있습니다. 더불어, 독서괭 님의 앞으로의 독서도 응원하게 됩니다. 물론, 이렇게 다시 써주시는 게 꼭 필요할 것 같고요.

잘 읽었습니다 독서괭 님. 이렇게 좋은 글을 만나기 위해 우리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 함께 읽기 시간이 있었던 것 같아, 그 점에 대해 스스로 뿌듯합니다. (언제나 자기 뿌듯할 것을 찾는 사람 ㅋㅋ)

공쟝쟝 2023-01-11 11:15   좋아요 1 | URL
스스로 뿌듯하신 분을 보니 제가 다 뿌듯합니다 ㅋㅋㅋ 괭님 ㅠㅠㅠ 좀 멋있어요 ㅠㅠㅠㅠㅠㅠㅠ 와 멋있어 ㅠㅠㅠ (또 우정뽕이….)

독서괭 2023-01-11 15:15   좋아요 1 | URL
정희진 매거진 저는 안 들어봤습니다. 어디서 듣는지 알려주셔서 들어가보긴 했는데 유료라 뒤로가기 누른 사람 ㅋㅋㅋㅋ 돈 내고 충분히 들을 가치가 있겠지만, 일단 저는 운전하는 시간에만 뭘 듣는데 지금 영어듣기랑 토지듣기로 시간이 꽉 차서.. ㅜㅜ 강의 후기 올려주신 내용들 보니 매거진도 참 좋을 듯 합니다.
폭풍의 언덕 읽으면서 다들 나름대로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데 자꾸 불행으로 치닫는 것 같아 안타깝더라고요 ㅠ 가부장제 문제로 읽으니 결말도 씁쓸하게 느껴지고요.
다락방님, 자화자찬 ㅋㅋㅋ 인정할 수밖에 없네요. 다미여 선정해주지 않으셨으면 언제 폭풍의언덕 재독하고 빌레뜨도 읽고 그랬을까요? 많이많이 뿌듯해하셔도 좋겠습니다!!
쟝쟝님/ 고맙습니다 ㅋㅋㅋ 우정뽕 ㅋㅋㅋ 쟝쟝님도 완전 멋짐... 츄르 들고 갔다 돌아선 건 뺴고요..ㅋㅋ

그레이스 2023-01-11 2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해설에 빈정 상했습니다^^

독서괭 2023-01-12 14:38   좋아요 0 | URL
ㅋㅋㅋ 해설땜에 더욱 다른 판본이 갖고 싶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