뤼시의 가벼운 마음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뤼시의 '가벼움'은 '경시'가 아니다. '회피'도 아니고 '무지'도, '무감각'도 아니다. 오히려 뤼시의 가벼움은 깊은 내적 사유에서 온다. 어릴 적 첫사랑인 늑대의 눈을 오래오래 들여다본 것처럼, 그녀는 세상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보기 위해 집을 떠나 기웃거린다. 별로 사랑하지 않는 로망과의 결혼생활을 몇년이나 지속한 것도 결혼의 본질에 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녀가 정작 사랑에 빠진 건 단풍나무였는데, 그 단풍나무를 자르네 마네 하는 주민회의에서 단풍나무를 지키려는 뜻을 같이한 '괴물' 남자와의 사랑도 몇년 동안 깊게 이어졌다. 그녀는 로망과 괴물로부터 가볍게 떠난 것처럼 보이지만,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 책을 읽으며 자신을 추스르는 시간이 필요했던 만큼 상처도 깊었을 것이다. 뤼시는 오래오래 들여다보며 본질을 파악하고, 꼭 같은 방식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나가며, 그 외에 세상이 요구하는 것들- 돈, 명예, 안정 등- 을 가볍게 박차고 날아오른다. 


요즘 나를 사로잡는 생각은, 고통에 대한 무감각이다. 

세상에 고통은 만연하고, 인간사 언제든 고통이 없었겠냐마는, 또 과거에 비해 현재의 고통은 객관적으로 줄어들었을 수도 있겠지마는, 요즘에는 범람하는 고통의 전시로 인해 오히려 무감각해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매일매일 뉴스로 접하는 다양한 고통의 서사들, 그 하나하나에 진심으로 공감하고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기에 대고 혐오발언을 쏟아내거나 다른 고통을 끌고와 고통의 형량을 가늠하는 방식으로 다른 이의 고통을 쉽게 축소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다. 

고통에 대한 무감각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생각이다.

첫번째는 아예 나와는 상관없다고 차단해버리는 방식.

두번째는 "나도 겪어봤는데" 하며 고통의 개별성을 무시하는 방식. 


두 가지를 정확히 구분하기가 쉽지는 않다.

아예 차단하는 방식의 극단적 예가 이번 이태원 참사 때 구급차 앞에서 노래하고 춤췄다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인간의 가장 고귀한 자질인 타인에 대한 연민의 능력을 상실하였다 보이는 이런 예를 목격하면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는다. 그러나 드러내놓지 않아도 내심으로 차단해버리는 사람들은 훨씬 많을 것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한 개인주의.

경력단절여성이나 전업주부의 돌봄노동에 관한 기사에 "우리 엄마는 더 힘들게 생활하면서 공부를 놓지 않았고 자녀 다 키우고 취업하셨다"면서 누군가의 호소를 뭉개버리는 댓글이나, 페미니즘 이슈만 등장하면 딸려 나오는 "남자도 힘들다"는 반박은 처음에는 '간접적'으로 행하는 두번째 방식이라고 여겼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첫번째 방식에 더 가까운 듯 하다.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의 고통은 '직접적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는 무엇'이다. 내가 절대로 알 수 없는 무엇에 대해서는 겸손해야 한다. 따지고 들기에 앞서 내가 모르는 고통이 존재할 수 있겠다는 사실을 수용해야 한다. 위의 예들은 겸손과 수용의 자세가 전혀 없다. 



나의 남편이 언젠가 말했듯,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기본적 주장에 대한 그들의 공격은 단순하고 그저 애처로운 두 가지 진술로 요약할 수 있다. '남자도 고통받는다' 그리고 '내 아내는 그런 식으로 느끼지 않는다!'   - <다락방의 미친 여자> 41쪽










특히 '우리 엄마는~' 어쩌고 하며 엄마의 서사를 갖다 쓰는 건 제발 하지 않았으면 한다. 엄마가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걸 안다면 그 결론은 엄마에게 효도하자, 가 되어야지(효도는 셀프), 어째서 엉뚱하게 '그러니까 잔말 말라'며 여성들에 대한 공격으로 튀는가. 고통을 임의로 형량하는 방식은 스스로의 고통을 감소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태도로서는 장려될 수 있을지언정 타인을 폄하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보다는 나아 보이고 언뜻 공감을 표시하는 것 같지만 실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두번째 방식- '나도 겪어봤는데'가 아닐까.

흔한 예로 실연의 고통이 있다. 실연(짝사랑을 포함하여)의 상처를 노래하는 유행가는 얼마나 많고 많은가. 들으면서 '내 얘기 같다'고 느껴본 경험은 한번쯤 있으리라. 누구나 젊어서 한번은, 또는 두번, 세번, 그 이상 겪고 지나가는 일. 성인 대다수는 한번은 겪고 넘어갔을 일. 그런고로 누군가 실연의 고통을 호소할 때, "나도 겪어봤는데, 다 지나가"라는 말로 사랑과 실연의 모양새를 비슷비슷하게 퉁쳐버리고 고통의 개별성을 무시해버리는 공감의 방식. 

어떤 종류의 고통이 너무(?) 자주 눈에 띌 때, 너무(?) 자주 언급될 때, 사람은 점점 둔감해지는 경향이 있다. 처음의 충격이 가시고 두번째, 세번째가 이어지면 점점 충격은 줄어든다. 그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살아가기 위해 필요하기도 하다. 매일매일 뉴스에 터지는 사건사고들에 일일이 충격을 받아가면서 일상을 지속할 수 있을까. 어떤 면에서는 뉴스가 지나치게 열심히 안 좋은 일들을 파헤쳐 물어나르기 때문에 우리의 신경이 무뎌지는 것이다. 한 사건이 일어난 앞과 뒤, 원인과 결과 등을 곰곰이 생각해보기도 전에 다음 뉴스가 잇따른다. 공포나 분노, 슬픔은 무뎌지고 애매한 불안만 끊임없이 촉발된다.


고통에 대한 무감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좋은 도구가 소설이 아닐까. 내가 결코 겪어보지 못한 종류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의 서사를 따라가보는 것, 내가 겪어본 종류의 고통이라도 들여다보면 제가끔 모양새가 다르다는 걸 깨닫는 것, 소설은 우리를 가장 멀리까지 데려다줄 수 있고 인간의 고귀한 자질을 잃지 않게 해주는 조용한 친구다. 

그러나 또한 소설은 결국 소설가 자신의 한계 속에 있다. 


 핀치가 (빈정대는 어조이기는 하지만) 절망적인 심정으로 남성의 요구와 의도를 수용한다는 사실은 문화적 구속의 강압적 힘과 더불어 그 힘을 구현한 문학작품의 강압적 힘까지 뚜렷이 드러내준다. 왜냐하면 학식 있는 여성들은 '멍청해지라고 요구받고 그렇게 키워진다'는 것을 '일상생활'에서뿐만 아니라 문학에서도 배우기 때문이다. 리오 베르사니가 말하듯, '글은 단순히 정체성 묘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적 정체성, 나아가 육체적 정체성을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 우리는 문학에 몰입함으로써 일어나는 일종의 존재의 용해, 혹은 적어도 존재의 유연성을 고려해야 한다.'    - <다락방의 미친 여자> 85쪽 


 앨버트 겔피가 간명하게 말했듯이, '예술가는 경험을 죽여서 예술로 만든다. 일시적인 경험이 죽음을 피할 유일한 길은 예술 형식의 '불멸성' 속으로 죽어서 들어가는 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예술 속의 고정적 '삶'과 자연 속의 유동적 '삶'은 속성상 양립할 수 없다.' 따라서 펜은 칼보다 더 강할 뿐만 아니라 죽이는 힘(그 필요성)도 칼과 다를 바 없다.    -  <다락방의 미친 여자> 90쪽 



이 말들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어째서 더 편협한 경우가 있는지 설명해 준다. 이 책에서 든 예로서 제인 오스틴의 <설득>의 등장인물 하빌 대령은 여성의 변덕에 대해 주장하면서 '여성의 변덕에 대해 말하지 않은 책은 내 평생 본 적이 없답니다.'라며 책을 근거로 댄다.(<다락방의 미친 여자> 86쪽) 마음이 열려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어떤 작품을 봐도 그 자신의 편견을 지지하는 내용만 눈에 들어오기 마련이건만, 그 자신의 편견과 꼭 일치하는 편견을 가진 작가가 쓴 책을 읽는다면? 확증편향이다. 결국 소설이 유일한 답일 수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좋은 답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열고 본다면. 



작가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개인적으로 나는 자신이 80~90% 이상 공감할 수 있는 것만을 받아들이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되고 싶지는 않다. 관용을 터득하고 싶다. 그게 내가 이 만화를 시작하기 전에 잡아놓은 포인트고, 그에 따른 전개 방식과 연출 방식을 택했다"라고.    -  <안녕, 나의 순-정> 161쪽 

 

 이건 만화가인 유시진 작가가 <쿨핫> 서문에 적었다는 내용이다. <쿨핫>을 나도 참 좋아했었다. 완결을 내주지 않는 작가를 원망도 많이 했더랬다.. 아무튼 이런 마인드로 작품을 내는 사람의 이야기는, 믿고 읽을 수 있지 않겠는가. 





  <포르노랜드>를 읽으며, 사방에 전시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생각한다. 그것이 슬금슬금 우리와 우리의 아이들의 내면을 파고들어 포르노 시장의 농간에 모두가 놀아나고 있는데, 너무 흔하여 무감각해진 것이 아닌지. 나이 지긋한 남성 아나운서와 젊고 아름다운 여성 아나운서의 조합에, 대형서점에 턱하니 비치된 <맥심>의 헐벗은 표지에, 허벅지 살을 걱정하며 밥 먹기를 거부하는 초등학생에, 온 사방에 붙어있는 성형 광고에.. 

  무감각해진다는 것은 무섭다. 우리에게서 문제의식을 빼앗고, 분노의 힘을 빼앗고, 타인의 정당한 외침에 냉소하게 만든다. 잘못된 걸 잘못되었다고 인식할 수 있는 힘, 생각하는 힘, 성찰하는 힘.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리 아이들에게 그 힘을 길러주어야 한다. 세상에 순응하는 방법이 아니라. 





캠퍼스에서 걷고 있는데 신문 앞면에 실린 통계가 눈에 들어왔다. 여성 네 명 중 한 명이었나, 다섯 명 중 한 명이었나.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캠퍼스에서 성폭력을 당하는 여자들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화장실 안내판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여성을 나타내는 상징이 모두 회색으로 페이지 전면에 그려져 있고 다섯 중 하나만 빨간 잉크로 칠해져 있는 그래픽이었다. 

 (...) 나는 캠퍼스 곳곳에서 검은 레깅스에 귀마개를 하고 청록색 배낭을 멘 소녀들을 보았다. 우리 몸에 말 그대로 빨간색 페인트가 칠해진다면 이 중 4분의 1이 빨간색 몸일 것이었다. 사람들의 얼굴 앞에 신문을 흔들어 보이고 싶었다. 이건 정상이 아니었다. 전염병이었다. 위기였다. 당신은 어떻게 이 헤드라인을 보고도 계속 걸어갈 수 있나요? 우린 그 심각함에 둔감해진 것이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야기.   - 221, 222쪽 






다시, 뤼시의 가벼운 마음을 생각한다. 둔감하지 않은 마음, 그렇지만 절망하지 않는 마음을 생각한다. 

어떻게 거기에 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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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11-04 18: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고통에 대한 반응들.. 특히 남자들의 반응들… 구구절절 너무 감동적이고 와닿는 글이었는데 마지막 부분에 쿨핫나와서 넘어짐…. (아 독서괭님 ㅠㅜㅜ 내 밀레니얼 칭구 ㅠㅠㅠㅠㅠ 가끔 너무 어른 같아 잊고 있었 ㅋㅋㅋ) 아니 뭐예요? 새 책이 나온 거예요? 나 쿨핫 진짜 ㅋㅋㅋ 넘나 좋아햇다구요 ㅋㅋㅋㅋ

건수하 2022-11-04 20:44   좋아요 2 | URL
아니 쿨핫은… 저도 좋아했다구요… (낑겨보자) ㅋㅋㅋ

독서괭 2022-11-07 14:5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쿨핫 진짜 넘 좋죠 ㅋㅋㅋ 쟝쟝님도 학창시절 만화 좀 탐독하셨나요? <안녕, 나의 순-정>이라는 책에 90년대를 풍미한 만화들 총출동합니다. 그냥 추억팔이 책인 줄 알고 후딱 읽고 처분하려고 했는데 작가가 글을 재밌게 잘 썼고 역시 추억이 돋아나.. 소장각.. ㅋㅋ

독서괭 2022-11-07 14:59   좋아요 2 | URL
수하님도 쿨핫!! >ㅁ< 유시진으로 대동단결 ㅋㅋ

공쟝쟝 2022-11-07 16:00   좋아요 1 | URL
만화 대여점 흥하던 시절이라 많이 읽었죠!! 저는 이시영의 필소굿과 유시진의 쿨핫을 최고로 칩니다 … 서문다미 그들도 사랑을 한다랑 ㅋㅋㅋ (일본 순정 만화는 잘 안봄 ㅋㅋㅋㅋ)

독서괭 2022-11-09 10:58   좋아요 1 | URL
만화대여점 ㅎㅎㅎ 정말 열심히 드나들었는데.. 엄마 몰래.. 지금도 가끔 몰래 만화책 빌려보고는 잊어버리고 한참 반납을 안하다가 퍼뜩 생각나서 어떡해 하며 동동거리는 꿈을 꿉니다 -_-;;; 전 강경옥 작가님을 최고 좋아했어요 ㅎㅎ

건수하 2022-11-04 2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남자도 힘들다, 내 아내는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 (제가 동료들한테 자주 듣던 말.. 요즘은 좀 덜한 것 같아요) 보며 코웃음을 쳤더랬죠…

<가벼운 마음> 가볍게 읽고 싶어 샀지만 읽지 못하고 있고… 언젠가부터 저의 마음은 무겁고 불만으로 가득차 있어서.. 그런게 가능한 걸까… 공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공쟝쟝 2022-11-04 22:11   좋아요 3 | URL
제가 그 몸으로 안살아봤는데 생리안하는 몸으로 근육 잘 붙는 몸으로 다음 생에는 ….

독서괭 2022-11-07 15:02   좋아요 3 | URL
헉 동료들한테 그런 말 자주 들으셨군요ㅠㅠㅠ 자기들은 군대 힘들다 얘기할 때 여자들이 여자도 힘들다, 하면 안 받아들일 거면서 -_-;;
수하님 마음이 무겁고 불만으로 가득차 있으시군요 ㅠㅠ 전 페미니즘 책 읽으면 시원하고 좋을 때도 있지만 스트레스 받고 화가날 때도 많아서 연달아 읽기는 힘들기도 하더라구요. <가벼운 마음>이 저는 아름다운 음악 듣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마음 무거울 때 오히려 시도해보심이..!
쟝쟝님/ 후, 저도 생리 안 하는 몸으로 살아보고 싶습니다.. ㅠ

단발머리 2022-11-05 08: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소설이 고통을 이해하는 좋은 방식이지만 유일한 답일 수 없다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아는 건 많아지겠지만 마음까지 넓어지는 건 아닌 거 같고요. 상황 전체를 이해하는 안목은, 특히 첨예하게 정치적인 상황에서는 책 많이 읽은 거 소용없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디어 마이 네임> 자주 보여서 관심 갔는데 인용해주신 부분 보니 더 읽고 싶네요. 잘 읽고 갑니다, 독서괭님^^

독서괭 2022-11-07 15:04   좋아요 1 | URL
단발님, 공감 감사합니다. 책이란 것도 워낙 종류가 다양하고 작가의 생각이 투영되어 있고 하니, 편협한 독서는 편협한 마음을 만들 뿐인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애초에 양서를 고르는 안목도 필요하고, 작가의 편협함을 적절히 걸러낼 줄도 알아야하겠고요. 역시 독서교육이 중요하구나 하는 결론이..?!
<디어 마이 네임> 읽어갈수록 감탄입니다. 글 너무 잘썼어요!

바람돌이 2022-11-05 16: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 주변에 책을 굉장히 많이 읽고, 따라서 좋은 책도 많이 읽는 분이 있는데 저는 항상 생각합니다. 저분은 책을 발로 읽으시는걸까라고 말입니다. 왜 책을 그렇게 많이 읽는데 얘기하는건 들어보면 국민학교 졸업 학력에 평생 책 한권 안 읽으신 우리 어머니랑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는..... 카톡에 도는 온갖 가짜뉴스 진짜 말도 안되는 뉴스들을 완전 맹신하면서말이죠.
그래서 책을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똑바로 읽는 것이 중요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위치를 고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이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네요.

독서괭 2022-11-07 15:06   좋아요 1 | URL
책을 발로 읽 ㅋㅋㅋㅋㅋ 진지한 댓글에 웃어버렸네요 ㅎㅎ 정말 그런 분들이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다독=지혜는 절대 아닌 것 같고요. 뭐든지 마음을 닫고 하는 경험은 소용이 없고 ˝나 그거 읽었다˝˝나 그거 해봤다˝ 수준의 의미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바람돌이님의 ˝내가 가지고 있는 위치를 고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먼저면˝ 소용없다는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mini74 2022-11-07 15: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가가서 효도할게. 왜? 남자들은 결혼해야 사람이 되는건가요? 그 전엔 왜? 하다가 아. 그들이 바라는 건 대리효도 ㅎㅎㅎ구나 했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과 위로만 그것도 적정선에서 ㅠㅠ 그게 쉽지 않네요.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일에 벗어나는 방법이 소설이란 괭님 글에 공감합니다 ~~

공쟝쟝 2022-11-07 15:59   좋아요 2 | URL
저 한국의 효자들 진짜 싫은데 그들은 대리효도 자들이거든요 ㅋㅋㅋㅋ 으윽ㅋㅋㅋ

독서괭 2022-11-09 10:59   좋아요 0 | URL
장가가서 효도할게 = 착한(만만한) 며느리 데려올게 ㅎㅎ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에게는, 여러 종류의 고통에 감응하도록 마음이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해주는 좋은 도구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미니님 감사합니다~
 

연휴를 두번 치르고 나니 10월 중순이라니. 말도 안 돼.. ㅠㅠ 

연휴가 두번이나 연달아 있었고, 그만큼 줄어든 업무시간 때문에 더 빡빡하게 일하느라 책을 거의 읽지 못했다. 서재에도 접속을 못하고, 북플로 간신히 몇 개 읽은 게 전부. 드디어 5일 근무할 수 있는 주가 돌아와, 오랜만에 글을 쓴다. 휴일에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 언젠가 나에게도 오려니...
















<토지> 7권 리뷰를 써야 했는데, 이미 시간이 흘러 8권이 중반부를 향해가버려서 리뷰는 건너 뛰기로 했다. 대신 <토지>에 나오는 어린아이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토지>는 워낙 긴 대하소설이기 때문에 웬만큼 중요한 등장인물은 어린 시절부터 나온다. 도입부에 어린아이였던 서희, 봉순이, 길상이도 있고, 그때 이미 어른이었던 용이, 월선이 등도 회상을 통해 어린시절을 조금씩 엿볼 수 있다. 시간이 지나 이제 7, 8권에서 서희, 봉순이, 길상이 등은 다 어른이 되었고 이제 다음 세대의 어린아이들이 등장한다. 그 중간쯤에 있는 홍이(용이와 임이네 사이의 아들)와 두메(귀녀와 강포수 사이의 아들)도 있다.


서희의 어린시절은 주요 줄거리이기 때문에 익히 알려져 있다. 싸늘하고 냉정한 아버지 최치수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어머니 별당아씨와 할머니 윤씨부인, 다정한 침모 봉순어미와 충직한 종복들 사이에서 부족함 없이 자라고 있었던 서희의 운명은, 어머니가 환이와 도망을 치면서 1차로 뒤집어진다. 울고불며 어머니를 찾던 서희의 모습에 눈물지은 독자들이 많을 것. 그러나 더 큰 비극은 아버지 최치수가 살해당한 사건(2차 뒤집어짐), 이어 찾아온 호열자에 의해 봉순어미를 비롯한 충복들과 윤씨부인까지 사망한 사건(3차 뒤집어짐)이었다. 서희의 곁에는 비슷한 나이의 봉순과 길상 뿐, 의지할 곳 없이 조준구 부부에게 집안을 통째로 빼앗기고 만다. 

서희가 늘 사람에게 벽을 치고 쉽게 믿지 않는 것, 마음을 열지 않는 것, 오로지 가문의 재건이라는 목표를 위해 독하디 독하게 마음을 다잡으며 나아가는 뒤의 이야기는 이런 서희의 어린시절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어린시절을 지켜보지 않았다면, 독자들이 지금의 서희를 이해하고 아껴줄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다보면 유년기의 발달에 많은 관심을 쏟게 된다. 유년기는 딱 몇살부터 몇살까지라고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대체로 초등 저학년 때까지를 의미한다고 한다. 유년기의 신체 발달, 행동 발달에 관심을 두는 것은 물론이고, 최근에 많은 심리학 서적들이 쏟아지면서 유년기의 정서적 안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므로, '유년기 아이의 정서적 안정'에 가장 중대한 책임을 떠맡고 있는 엄마로서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얼마나 신기한지. 갓 태어나 눈 깜박이고 젖 빨고 바르작거리고 변을 보는 것 외에는 할줄 아는 게 없었던 모습이 아직 생생한데, 얼마전까지 엄마라는 말밖에 못하고 아장아장 걸어다녔는데, 어느새 자라서 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보고 "양심을 버렸네"라 말하고(첫째), '앞집 개야 짖지 마라 우리 아기 잠을 깰라'하는 자장가를 듣다가 "못 짖게 하면 개가 속상할 텐데"라고 걱정하는(둘째) 아이들에게 깜짝깜짝 놀란다. 아이들에게는 매일매일 많은 것들이 새롭고, 궁금하고, 어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생각들이 그 작은 머리속에서 굴러가고 있다. 아침에 엄마아빠에게 많이 혼나면 그때는 화를 내지만 저녁에는 사랑한다는 편지를 주고 집안일을 도와주며 사랑을 확인한다. 형제 중 한명이 고집부리며 혼나는 걸 보면 다른 한녀석은 옆에서 자기는 잘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칭찬받으려 애쓴다. 어른들이 하지 말라고 한 행동을 가끔 하기도 하지만, 점점 제한 범위 내에서 타협할 방법을 찾는다. 평일에는 엄마아빠는 일하러 가고 자기들은 등원해야 하며, 주말에는 재미있는 곳에 놀러갈 수 있다는 걸 안다. 갖고 싶은 걸 다 가질 수 없지만, 특별한 날에는 좋은 선물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안다. 엄마아빠가 두고 간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결코 진짜로 두고 가지 않는다는 걸 안다. 부모를 비롯한 가족들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걸 안다. 


<토지>에는 많은 유년이 불우하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피해가기 어렵기도 했겠고, 또 시대가 가진 어린아이에 대한 태도 탓도 있을 터다. 아버지를 모르고 자란 봉순이는 호열자에 엄마마저 잃는다. 길상은 부모를 모른 채 절에 맡겨져 자라났다. 그나마 이들은 엄마 혹은 키워준 스님들에게 정을 듬뿍 받고 자랐다. 홍이는 무심한 아버지 용이와 모질고 무정한 엄마 임이네 사이에서 눈치보며 자란 아이다. 하지만 월선이와 같이 살게 되면서 친모자보다 더한 사랑을 쌓게 된다. 두메는 어머니를 모르고 아버지와 둘이서 살았는데,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해 마음에 큰 멍울이 졌다. 

하지만 이들 중요인물 외에, 내게 <토지>의 어린아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 건 임이의 아들, 그러니까 용이의 두번째 부인 임이네의 딸 임이가 낳은 아이 이야기였다. 어느날 임이는 집을 나가고, 남편인 허서방이 여섯살 정도 된 아이를 데리고 임이네를 찾아와 임이의 행방을 묻다가 자기는 임이를 찾으러 갈테니 아이를 돌봐달라며 두고 간다. 그 과정에서 임이네와 허서방 사이에 아이를 상대방을 향해 밀쳐대는 실랑이가 벌어진다. 그 후 아이는 눈물과 콧물과 땟국이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서 양지바른 곳에 쭈그리고 앉아 "아방이.."하며 울곤 했다.

  

그것은 찢기고 할퀴우고 상처투성이가 될 한 생장의 출발이기도 했다. - <토지> 8권 7장 '벌목장의 오두막' 중 


이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자라서 과거의 이 장면을 어떻게 기억할까. 이 큰 상처를 잘 보듬어낼 수 있을까? 

한편으로, 김평산의 아들 거복이/한복이를 생각하면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 유년기를 같이 보낸 형제도 이렇게나 다를 수 있으니, 역시 타고난 성정이 많은 걸 좌우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거복이는 김두수라는 이름으로 용정에 나타나는데, 아주 잘나가는 일본의 밀정으로, 정말 나쁜 놈이다. 하지만 거복이의 어린 시절을 알고 있는 독자로서는 마냥 미워하기에는 복잡한 마음이 든다. 어릴 때부터 질이 나쁘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살인죄인으로 처형당하고 어머니가 목을 맨 후 어머니를 땅에 묻고 나무에 머리를 박으며 통곡하던 그를 알기 때문이다. '살인죄인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만 했던 그의 과거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르게 자라난 한복이도 있다. 그러니 환경의 탓이라고, 자식의 나쁜 짓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고 나쁜 본만을 보여준 아비의 탓이라고, 연좌제를 적용한 시대의 탓이라고 변호하며 그가 김두수로서 저지르는 더러운 행각에 면죄부를 줄 생각은 없다. 다만 한 인간이 구부러지고 비틀린 흔적을 살피는 일은,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을 유지하고 이 사회가 행해야 할 노력의 방향을 정하는 데 중요하다. 임이의 아이같은 처지에 있는 아이가 지금이라고 없을까? 이혼법정에서는 서로 양육의 책임을 미루는 행태도 일어난다. 억지로 떠맡아진 아이에게 기본적인 의식주 외에 정서적 돌봄을 기대할 수 있을까. 거복/한복이같은 연좌제의 희생자 또한 지금이라고 없을까? 옛날에는 이름을 바꾸고 숨기라도 했지, 이제는 그럴 수도 없다. 내 정보를, 과거를 숨기고 지우는 건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고 했던가. 불우한 성장환경을 가진 범죄자에 대한 연민은, 그에 대한 처벌을 가볍게 하는 방향이 아니라 제2의 범죄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주변을 살피는 태도로 향해가야 한다. 가벼운 잘못을 저지른 아이들을 그냥 그가 겪고 있는 문제들 속으로 돌려보내는 게 아니라, 문제를 살펴보고 함께 고민해주려는 어른들, 그걸 뒷받침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적절한 시기에 개입하면 아이들은 특유의 유연성으로 변화할 수 있다.

"찢기고 할퀴우고 상처투성이가 될 한 생장의 출발"을, 뻔히 알면서 두고볼 수는 없지 않은가... 




먼 훗날의 너에게

                                    유하 


한때 너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바다 어느 곳에도

미지의 새는 없다고

제비갈매기 가마우지 바다직박구리 꼬마물떼새...

바다 그 어느 곳에도, 미지의 새는 없다고


너는 서툰 입술로, 이 세상

삶의 이름들을 하나둘 발음하려 한다

네 눈앞에 무지개가 떴구나

한 아이의 마음이 경이로움을 더듬더듬 발음하는 순간,

무지개는 영원한 네 것이다

네가 삶의 이름들을 하나둘 취해갈 때

너의 설렘은 내 가슴으로 흐른다, 생애 첫 강물처럼

그래,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로다 


이제 먼 훗날의 너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구나

드넓은 바다 그 어드메쯤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남겨놓으라고,

설렘이 멈추면 무지개도 사라지는 것

늙은 지혜보다는 철없는 설렘이 더 소중하나니

드넓은 바다 그 어드메쯤 

이름 모를 새 한 마리 남겨놓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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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10-17 1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어린나이에 죽은 용이 누이 생각이 나네요. 자신도 용이처럼 해달라고 울며 조르던게 살고싶단 말처럼 들려서요. 그래서 토지의 아이들이 커서 어떤 인물들이 되든 감정의 끝엔 짠함이 남는거 같아요. ~ 글도 좋고 시도 좋고. 유년의 이야기가 슬프기도 하고 그렇네요 *^^*

독서괭 2022-10-19 12:13   좋아요 1 | URL
아, 저도 용이 누나 얘기가 인상적이었어요. 너무 슬프고.. 누이의 죽음 때문에 용이의 여성에 대한 태도가 이렇게 되었나(보호가 필요한 약하고 불행한 여성에게 끌리는?) 싶기도 하고요.
‘감정의 끝엔 짠함이 남는다‘는 말씀이 딱이네요^^ 이 시집에서 이 시가 제일 맘에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니님^^

잠자냥 2022-10-17 20: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토지>의 어린이들 이야기! 넘나 재밌습니다. 그리고 “못 짖게하면 개가 속상할 텐데.” 둘째 귀요미 어떡해요…. 아이고 귀여….

공쟝쟝 2022-10-17 22:06   좋아요 3 | URL
왜 모든 둘째는 귀요미인가…

독서괭 2022-10-19 12:14   좋아요 3 | URL
저희 둘째가.. 좀 귀엽습니다 ㅋㅋㅋㅋ 스윗한 아들내미(헤헷).
첫째보다 둘째가 귀엽고 둘째보다 셋째가 귀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진리.. 첫째 쟝쟝님 넘 서운해하지 마세요 ㅋㅋ

잠자냥 2022-10-19 14:13   좋아요 2 | URL
맞아요. 즤집 둘째 아들내미도 넘나 귀여움.
근데 셋째도 귀엽고...
요즘엔 육고 막내 넘나 귀여움..... 막내 딸래미 업고 다니고 싶을 정도인데......
문제는 나만 보면 도망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공쟝쟝 2022-10-19 14:46   좋아요 1 | URL
자냥… 막 좋다고 괴롭히고 뽀뽀 너무 많이하고 들이대고 그랬군요?ㅋㅋㅋ

잠자냥 2022-10-19 15:16   좋아요 1 | URL
귀여워 귀여워 귀여워! 남발하면서 간식 젤 많이 주는데 ㅋㅋㅋ 간식만 얻어먹고 냉큼 도망감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10-20 12:10   좋아요 1 | URL
ㅋㅋㅋ 바람직한 고양이네요 ㅋㅋ 여섯 중 막내라니 얼마나 귀여울지~~^^

책읽는나무 2022-10-17 21: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애기들이 엄마 닮아 똑똑하네요ㅋㅋ
양심을 버렸네!!
못짖게 하는 개를 걱정하고!!
😅😁😄
지금 한창 시인 아가들 얘기에 감탄할 시기!!
괭님 좀 부럽습니다^^

독서괭 2022-10-19 12:15   좋아요 2 | URL
양심을 버렸네는 진짜 이해하고 말한 건지 약간 의문이 ㅋㅋ
둘째가 좀 다정다감합니다^^
시인 아가들! 그러게요. 어록 좀 적어놔야 하는데 자꾸 잊어버립니다;; 나중에 돌아보면 이때가 제일 좋았다 싶겠지요?^^ 책나무님,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10-18 04: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꾸준히 토지를 듣고 계시는군요 ~! 그렇게 하기 쉽지 않으실텐데 대단하십니다 ㅋ
오히려 연휴가 책 읽기에는 더 안좋은거 같아요 ㅜㅜ

독서괭 2022-10-19 12:16   좋아요 2 | URL
여러 작가 전작하시는 새파랑님이 더 대단하세요 ㅎㅎ
새파랑님도 연휴에 별로 못 읽으셨나 봅니다.. 뭐, 어떻게 책만 읽고 살겠어요?^^ 남은 10월도 힘내서 읽어보아요~~

다락방 2022-10-18 0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토지 2권 읽다가 멈춰 있었는데 다시 들어야겠어요.
독서괭 님, 아주 좋은 글이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이런 글을 써주시다니.. 독서괭 님 넘나 좋은 분 ♡

독서괭 2022-10-19 12:17   좋아요 1 | URL
아니 벌써 멈추시면 아니되옵니다 ㅋ 끊기면 못 들어요.
좋은 글이라 칭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최고♡

거리의화가 2022-10-18 08: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의 아이들 이야기 역시 좋네요^^
저는 한복이가 참 바르고 올곧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당시 상황도 그렇고 짠해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저는 이제 6권 시작했습니다! 괭님의 꾸준한 듣기 응원할게요^^*

독서괭 2022-10-19 12:19   좋아요 2 | URL
저도 한복이 자라는 거 보면서 참 감탄했어요. 평사리에 돌아왔을 때 두만네가 보듬어준 덕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한복이 뒤에 가면 또 나오겠죠? 기대됩니다 ㅎ
화가님 너무 빨리 따라오셔서ㅋㅋ 저는 거북이 된 기분으로 천천히 가겠습니다. 끝까지 함께 가요^^

햇살과함께 2022-10-18 20: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 옵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주말에 혼자 카페에서 책 읽을 날이 옵니다~ 그날이 옵니다~

독서괭 2022-10-19 12:19   좋아요 2 | URL
햇살님 감사합니다~~ 주말에 혼자 카페에서 책을 읽다니 아 꿈같은 이야기네요!^^

scott 2022-10-19 23: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괭님 아이들의 뛰어난 언어 능력은 괭님이 꾸준히 동화책을 읽어주셔서 인것 같습니다.

근데 막둥이 눈에 밟혀서 괭님 어떻게 출근을???ㅎㅎ
˝못 짖게 하면 개가 속상할 텐데˝

사랑둥이들 ^^


독서괭 2022-10-20 12:11   좋아요 2 | URL
아니, 스콧님, 감사합니다. 정말 제가 동화책을 열심히 읽어준 영향이면 좋겠어요 ㅎㅎ
둘째가 강아지를 아주 좋아해서 인형도 맨날 강아지 안고 다녀서 감정이입을 했나봐요 ㅋㅋ

단발머리 2022-10-20 1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형제 중 한명이 고집부리며 혼나는 걸 보면 다른 한녀석은 옆에서 자기는 잘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칭찬받으려 애쓴다.

독서괭님댁 아가들 착한 것 좀 보세요 ㅋㅋㅋㅋㅋㅋㅋ 보통 형이나 동생, 누나나 동생이 혼나면요. 일단 한 번 쓰윽 웃습니다 ㅋㅋㅋ 고소하다, 하는 그 눈빛 ㅋㅋㅋㅋㅋ 그 담에 자기는 잘하고 있음을 강조하지요 ㅋㅋㅋㅋㅋㅋ 얼른 자라거라, 아가들아!!!

독서괭 2022-10-21 16:28   좋아요 0 | URL
착한가요? ㅋㅋㅋ 고소하다 하는 눈빛을 제가 혼내는 데 집중하느라 못 본 건 아닌지 갑자기 의심이..-_-;; 한번 잘 살펴봐야겠습니다 ㅋㅋ 자기는 잘하고 있음을 강조하는 부분은 다 매한가지인 듯요 ㅋㅋ 내가 볼 땐 귀엽지만 혼나는 아이 입장에서는 얼마나 얄미울지;;

거리의화가 2022-11-09 16: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크... 역시 당선될 줄 알았던 글입니다! 괭님 이달의상 2관왕 축하드려요.

그나저나 토지 7권 다시 시작해야하는데 어휴... 5, 6권 읽으면서 점점 화가 고조되어서... 잠시 쉬고 있습니다. 가면 갈수록 더할텐데 그쵸? 그래도 완독 목표가 있으니 이달에 하나라도 들으려구요.

독서괭 2022-11-10 14:53   좋아요 1 | URL
헤헤 2관왕이라니 이런 경사가! 감사합니다^^
화가 고조돼죠 ㅎㅎ 그래도 재밌으니 계속 가시는 겁니다!! 저는 9권 끝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잠자냥 2022-11-09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거 될 줄 알았다요. 축하해요~

독서괭 2022-11-10 15:00   좋아요 1 | URL
축하 감사해요 잠자냥님^^

페넬로페 2022-11-10 19: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2관왕 축하드려요.
일하시고, 아직 어린 아이들 키우시고, 책 읽고 글 쓰시고
넘넘 정말 아주 대단하세요. 감탄 중입니다**

독서괭 2022-12-02 15:54   좋아요 1 | URL
앗, 페넬로페님 이 댓글을 왜 이제야 봤을까요. 축하 넘 감사합니다^^ 늘 과분하게 칭찬해주신,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ㅎㅎ 즐거운 12월 보내세요^^
 

오랜만에 글을 쓰는 것 같다. 코로나 기간에 거의 읽지 못했던 책들을, 그뒤 틈틈이 읽어나가고 있다. 책이란 참 좋구나, 하는 즐거움을 느낀다. 몇 년 동안 열심히 읽지 못했/않았던 시간들이 아깝다. 


연이은 일들로 좀 바빴다. 

둘째의 엄마껌딱지 증상과 징징거림이 갑자기 심해져서 고생하던 가운데, 남편과 크게 싸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 확진되었고, 둘째가 좀 나아지자 첫째의 똥고집/반항이 극에 치달았고, 나은지 얼마나 됐다고 첫째가 또 감기에 걸렸고.. 그렇게 명절을 보낸 후 간신히 숨을 돌린다. 

하지만 얻은 것도 크다. 

싸움이 좋은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와 배우자는 둘다 속으로 삭이는 편이지 그때그때 하고싶은 말을 하거나 감정표출을 즉각적으로 하는 성격이 아니라서,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점점 멀어지고 있었던 것. 특히 내쪽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더 못해왔는데, 이번에 좀 쏟아내고 나니 속에서 맴돌기만 하던 말들과 함께 쌓여있던 분노, 억울함, 서러움 같은 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이런 결과는 내가 싸움의 우위에 서서 남편으로부터 잘못을 사과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남편이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 속에 쌓아왔던 분노, 억울함, 서러움 같은 것들이 비록 근거없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왜곡되어 있었으며, 나 스스로 나를 힘들게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이 독립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사실은 훨씬 의존적이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시간을 자유롭게 낼 수 없는 남편의 상황 때문에 일해야 하는 시간을 쪼개어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은 늘 내몫이어서, 놀다 온 것도 아니고 힘들게 일하다 온 남편에게 신경질이 났고, 사실은 내가 좀더 부지런히 움직여 끝내놓을 수 있는 집안일도 슬쩍 미뤄놓고 아이들과 자러 들어가곤 했다. 남편의 훈육방식이 못마땅했고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가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도 미웠다. 결혼도 출산도 내가 선택해놓고는, 누군가에게 그 책임을 미루고 싶었다. 


뜬금없지만 어쩌다보니 찾아보게 된 대법원 판례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혼인은 일생을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여 부부의 실체를 이루는 신분상 계약으로서, 그 본질은 애정과 신뢰에 바탕을 둔 인격적 결합에 있다. 부부는 동거하며 서로 부양하고 협조하여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는 혼인의 본질이 요청하는 바로서, 혼인생활을 하면서 부부는 애정과 신의 및 인내로써 상대방을 이해하고 보호하여 혼인생활의 유지를 위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걸 보며 또 퍼뜩 깨달았다. 나는 가정생활의 기초가 되는 부부관계에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나. 아이들 키우면서 아이들 양육에만 신경쓰느라, 혹은 그렇다는 핑계로, 남편과의 관계는 항상 뒤로 제껴놓았던 것이 아닌가. 속으로만 뭔가 개선해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상대와 나누지도 않은 채, 나는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고 여겼던 건 아닌가. 




(...) 고통에는 순위가 없다는 걸. 괴로움에 순위를 매겨서는 안 되는데, 고통은 경연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부들은 종종 이걸 잊는다. '나는 하루 종일 애들을 봤어.' '내 일이 당신이 하는 일보다 더 힘들어.', '내가 당신보다 더 외로워.' 누구의 고통이 승리하고, 누가 패할까.  - 460쪽


 남편이 한 말 중에 내게 정신을 번쩍 차리게 했던 말은 이거였다. 여자들은 부부 사이가 안 좋아지면 아이들에게 더 애정을 쏟지만, 남자들은 부부 사이가 안 좋아지면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고. 그 순간 내게 현실적인 위기감이 들었고, 이 가정을 지키고 싶다면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함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되뇌인다.

 이 가정의 대장은 나다. 가정의 평화와 행복은 나에게 달려 있다. 



나는 프랭클의 책에서 특히 이 구절을 좋아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반응을 선택하는 우리의 힘이 담겨 있다. 우리의 반응 속에는 우리의 성장과 자유가 놓여 있다.'   - 398쪽 



때마침 읽게 된 전영애 교수님의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에는 아름다운 시구와 노교수님의 성실하고 치열하며 넉넉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어 내 옹졸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넓혀 주었다.



가슴 열렸을

그때만 땅은 아름답다. 

(...)

그대 그토록 찌푸리고 서 있었으니

바라볼 줄을 몰랐구나.   - 65, 66쪽


멀리 저 밖으로 나가기를 그리워하면서 그대

민첩한 비상飛翔을 준비하고 있구나

자신에게 충실하라. 또 남들에게 충실하라

그러면 이 협소한 곳이 충분히 넓다.   - 66쪽 



 독일문학 전공자인 전영애님은 괴테의 시집과 소설들을 번역하는 데 애써 오셨고, 현재 '여백서원'이라는 곳을 운영하면서 괴테 전집 번역에 힘쓰고 계시다고 한다. 이 분이 여성으로서 힘들게 공부해 온 사연을 보고 있자니 -교수님은 채찍질 의도로 쓰신 것은 아닐 것 같지만 ㅎㅎ- 나의 태만이 부끄러워졌다. 새삼, 내가 업무에도 육아에도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구나 하는 생각, 내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대학 시절 아르바이트를 쉬어본 적이 없습니다. 졸업하면서부터는 고등학교에 강사로 취직했고, 그러면서 대학원 석사과정을 다녔습니다. (...) 더구나 당신의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여자인 제가 공부를 열심히 하려 한다고, 어떤 교수님은 제게 웃지도 않고 "너는 비극의 씨앗"이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긴 세월 동안, 그 말이 얼마나 옳은 말씀이었는지 실감을 하며 살았습니다. (...) 조교가 되는 것이 '학문'을 계속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 "비극의 씨앗"에게 주어진 것이니 더더욱 큰 특전이었는데, 그 특전이 1년 뒤 무참하게 회수되고 말았습니다. 1년이 지나고 조교가 유학을 떠나고 제가 조교가 될 차례가 되었는데, 갑자기 어떤 남학생이 군대를 마치고 돌아온 것입니다. 조교 자리는 바로 그에게로 돌아갔습니다. 

 (...)

 모르는 게 너무도 많았습니다. 배울 게 너무 많았습니다. 누군가가 손가락 하나, 새끼손가락 하나만 잡아주어도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게는 그런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세상은 손가락 하나를 잡아주기는커녕, 벼랑에 매달려 있는 사람의 손끝을, 밟는 듯이 무정했습니다.

(...)

 그때 벽보 한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로 독일학술교류처DAAD 장학생 모집공고였지요. 저는 집으로 돌아와 앞뒤 가리지 못한 채 미친듯이 서류를 만들어내고 주말에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 합격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또 문제였습니다. 내가 붙었으니, 학교의 전폭적인 추천을 받은 조교가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역린이었습니다. 어디서 살림하던 여자가 난데없이 나타나서 그때까지의 전통과 질서를 뒤흔든 것이지요. (...) 떠나야 할 때는 다가오고, 말은 못 하고 속만 타고 있는데, 그때 임신이 된 것을 알았습니다. 유산만 하다가.... 어떻게든 가진 아이를 낳아야 했습니다. 

 (...)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습니다. 내 눈물 속에서 태어난 것만 같았습니다. 아이가 두 달이 되었을 때 저는 떠나야 했습니다. 못 떠날 용기도 없었습니다. 떠나서는 어떤 때는 아이가 보고 싶어 현기증이 일곤 했습니다. (...)

 (...) 

 돌아보면 그 캄캄하고 절박했던 세월이 내 인생의 초석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막막하게 쭈그리고 앉아 읽고 손가락이 굳도록 적었던 것들이, 혼자 힘으로 무얼 읽고 읽어내는 일, 지금껏 제 자양분입니다.   - 82~89쪽  



나는 언제 한번 이토록 치열하게 살아봤는가? 적당히 적당히 하면서, 내게 주어진 것들에 충분히 고마워하지도 않으면서...

그래서 요즘 시작한 '확언'에는 이 문장이 있다. 

나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근래 시작한 모닝루틴을 어떻게든 방해하는 둘째를,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이고 방해해도 화내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한 해낸다는 목표 ㅋㅋ  

모닝루틴은 유튜버 돌돌콩님을 우연히 알게 된 후 시작하게 됐는데, 이 분의 방법을 내 맘대로 적당히 요약해서 시행중이다. 그중 '확언'과 '감사일기'가 특히 좋은데, 자기계발서류 책이나 강의 등에 약간 콧방귀 뀌던 내 과거를 반성한다. 하나마나한 얘기들을 쓴 책들도 있지만, 좋은 책들을 골라 그걸 내걸로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걸 해내는 사람들의 마인드는 본받고 싶다. 


싸움 후 남편이, 내가 터뜨린 불만점들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눈에 보여서 참 고맙다. 이 마음을 잊지 않고 계속 노력해간다면, 1년 후, 5년 후, 10년 후, 30년 후에도 서로의 존재가 고마울 수 있을 것 같다. 더 늦기 전에 깨달아서 다행이다.




나는 사랑하는 이와 함께 쌓아나갈 수 있는 시간의 결, 삶의 방식을 원했다. 물론 쌓아나가다 보면 안 좋은 것들도 같이 쌓여 떨쳐낼 수 없는 불순물이 많이 생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불순물이 무색할 만큼 좋은 것들을 평생 잃지 않고, 쌓아내고, 간직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가치 있고 온전한 행복을 주는 듯이 느껴진다. 오늘들, 가치 있고 소중하게 보낸 이 오늘들을 잃을 필요도, 잃을 수도 없다. 하루의 무게가 이전과는 확실히 달라진다. 그래서 나는 결혼한 것이 좋다.   - 24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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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좋은 책 구출기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10-05 21:11 
    일전에 존경하는 독서괭님 서재에서 전영애 교수님의 책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에 대한 글을 읽고 크게 감동받은 나였다. 바로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해 왔다. 대출에(만) 큰 의의를 두는 사람답게 대출만 하고 읽지 않고 있어서 (언젠가는)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고 있었는데, 오늘 독서괭님 서재에 댓글을 달면서 “(그 책이) 책탑 아래쪽에 깔려 있어요.”라고 실토했더니 독서괭님이 안타까워하시며 구출해주고 싶다고 하셨다. 그 다정한 마음 잘 접수되었음을
 
 
2022-09-14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4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9-14 17: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뭔가 큰 산 하나를 무사히 넘고 이제야 잠시 앉아 숨 고르는 글 같아요. 고생많으셨어요 괭님 ~

독서괭 2022-09-15 17:17   좋아요 2 | URL
네, 미니님 정말 산 하나 넘은 느낌입니다. 그동안 묵혀놨던 갈등이 좀 해소되니 시원해요~ 감사합니다^^

2022-09-14 17: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5 17: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4 2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9-15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넬로페 2022-09-14 2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부부 사이에서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을 오해한 채, 내 속에서 화를 더 많이 키우고 있더라고요. 속으로 삭이기보다 유치하지만 말을 할 때가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저는 독서괭님 글로만 만나지만, 항상 너무 잘 살고 계신다고 생각해왔어요. 그래도 언제나 더 정진하려는 모습에 감동받고 저도 자극 받습니다.
더 치열하게, 감사하며!
화이팅!

독서괭 2022-09-15 17:21   좋아요 3 | URL
페넬로페님! 상대방을 오해한 채 내 속에서 화를 더 많이 키운다, 딱 맞는 말씀입니다! 유치한 것 같아서 삼켰던 말도 부드럽게 전달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잘 살고 있고 정진하려는 모습에 감동받으신다고 말씀해주시니 큰 위로가 됩니다 ㅠㅠ
치열+감사 세트로 정진하겠습니다. ㅎㅎ 감사해요~~^^

scott 2022-09-14 23: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대화 할 시간이나 여유조차 없었던 상황에서
아이들 차례 차례 아프고
괭님의 고통과 힘듬 울분이 느껴집니다
그래도 서로 대화 하시며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것 만으로도
괭님은 따숩 ㅎㅎㅎ

전교수님 오래전 일간지에 자신이 어떻게 석 박사를 받고 교수 임용까지 올라 갔는지
눈물 젖은 문장으로 쓰셨어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삶도
엄청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겁니다

괭님 건강 잘 챙기시고
아이들과 부등부등!

둘째 마미 껌딱지 엄청 귀요미 일 것 같응
(。♥‿♥。)

독서괭 2022-09-15 17:25   좋아요 3 | URL
스콧님 감사합니다~~ 애들이 아직 어려서 자주 아프고, 그럴 땐 애들 아프지만 않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은데 또 지나고 나면..^^;
저의 옹졸함을 시원하게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훨 편안하더라고요 ㅎㅎ 따숩다고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ㅎ
역시 전영애교수님 잘 알고 계신 스콧님! 이번 책에 실린 부분도 정말 눈물겹더라고요. 그야말로 학문에 대한 사랑과 열정 아니었음 버티지 못하셨을 듯 합니다.
둘째 껌딱지가 참 귀엽긴 합니다ㅋㅋ 귀엽기는 하죠ㅎㅎ 껌딱지에게 화내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보겠습니다^^

다락방 2022-09-15 09: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희 둘째 조카는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인데 아직도 엄마 껌딱지입니다.. 첫째는 둘째를 갓낳았을 당시 되게 스트레스를 받은것처럼 보였었어요. 갑자기 아가울음소리를 내고 그랬었죠. 지금도 가끔은 동생하고 싸우고나서 도대체 동생은 왜 잇어야 되는거냐고 하기도 합니다 ㅠㅠ 얼른 이 시기가 지나가기를 바라고 있어요.

여러가지로 몸고생 그리고 무엇보다 마음고생 하셨네요, 독서괭 님. 토닥토닥.

독서괭 2022-09-15 17:29   좋아요 2 | URL
오오 초3인데도 아직 엄마 껌딱지라고요..? 그거슨.. 참 힘들 것 같은데. 그래도 사춘기 다가와 막 반항하고,, 문 닫고 들어가고.. 그런 애들 생각하면 예쁘기는 할 것도 같습니다^^; 첫째들은 왕좌를 빼앗긴 왕이라고 표현하더라구요. 그만큼 동생 태어난 스트레스가 많다는 거겠죠 ㅠㅠ 저도 첫째를 보면 안쓰러울 때가 많습니다. 곧 지나가리라..
토닥토닥 위로 감사해요 다락방님~^^

건수하 2022-09-15 10: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글이 안 올라오는 동안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는 아이가 어릴 때는 진짜 틈나면 (아이가 자거나 없을 때) 싸웠어요. 그 시간에 즐거운 일을 해도 되는데 꼭 여유 시간이 생기면 싸우게 되더라고요.. 상대에 대한 서운함도 있지만 워낙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고 해서 더 그랬던 것도 있었어요.

저는 아예 포기해버렸었지만, ‘주어진 환경‘으로 받아들이고 방해해도 화내지 않으면서 할 수 있는 한 해내는 독서괭님의 모습이 더 바람직하고 멋진 것 같습니다. 시간은 지나갑니다. 잘 버티셔요..!

남자들은 부부 사이가 안 좋아지면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다고... 전 이 얘기 처음 봤는데 좀 놀랐어요. 저희집에서는 제가 제일 후순위라... (아이와 고양이 둘 다음. 그들 간의 순위는 분명치 않음) 뭐 사이가 꼭 좋지는 않아도 괜찮은데 그냥 같은 공간에서 살기 괴롭지만 않으면 되는데... 어쨌든. 아이와 사이가 좋으면 엄마와의 관계에도 긍정적이겠죠? ㅎㅎ

독서괭 2022-09-15 17:35   좋아요 2 | URL
수하님은 많이 싸우셨군요. 저는 딱히 다른 사람들에게 할말 못하고 싫은 소리 못하는 성격은 아닌데, 가까운 사람과 싸움은 회피하는 편인데다가, 싸우는 것도 넘 피곤한 일이어서 더 피하기만 한 것 같아요. 육아하면서 상대에게 서운함이 없기란,, 생불 아니면 힘들 듯 합니다ㅠㅠ
멋지다고 말씀해주시니 감사해요 ㅎㅎ 첨에는 둘째에게 왜 이렇게 일찍 깨냐고 신경질 내고 그랬거든요;; 이젠 옆에서 동화 들으라고 틀어주고 저는 할 수 있는 만큼 합니다.
남자들은~ 이건 남편 생각이니까요^^; 수하님 남편분은 아이와 고양이를 많이 예뻐하시는군요 ㅎㅎ 부부 사이든 아이와의 사이든 가정 자체에 대한 흔들림 없는 연결고리가 있다면 괜찮지 않을지.. 먼저 다 겪으신 분들의 댓글을 보니 다들 힘드셨겠다 싶어 저도 뒤늦게나마 위로를 드리고 싶네요. 그 상황에서는 그게 최선이었을 겁니다. 힘든 시기 잘 버텨내셨어요. 애쓰셨어요!

단발머리 2022-09-19 17: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흐미, 독서괭님! 저 이 글을 지금 읽었네요. 아이들 어릴 때는 매일이 전쟁이죠. 이놈의 껌딱지들은... 껌딱지여도 좋으니 아프지 않고 둘이 싸우지만 않았으면 싶은데.... 그게 또 뜻대로 안 되고요. 시간은 흐른다. 라는 말이 독서괭님에게 위로가 되어야할 텐데요.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도 조금 늙습니다, 그 점은 좀 양해 부탁드리고요.

부부간의 다툼 이후에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셨다니, 다행이에요. 다른 어떤 것보다 같이 사는 사람하고 일이 있어 맘이 불편하면 세상 괴롭죠. 양육이 공동의 일이기는 한데 남녀가 받아들이는 상황이 다르고. 아무래도, 아무래도가 아니지요. 대부분의 경우 여성이 더 육아를 많이 하게 되니까. 체력적으로도 힘들고요. 그래도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모습이 남편분에게서 보였다고 하니 희망이 있네요. 독서괭님 마음도 잘 다독이시기 바라고요.

올려주신 전영애님 글을 저, 북플로 읽고 있었는데 일어나서 노트북을 켰어요 ㅠㅠㅠㅠ 매일 매일 이렇게 열심히 치열하게 사시는 분들이 계셔서 ‘여자는 남자보다 못 하다‘는 편견에 맞서고 있는데, 저는 너무 편하게 살았네요. 게으른 나,는 독서괭님 아니고 저에요 ㅠㅠㅠㅠ

저는 아이들 어릴 때 전혀 읽지 못했거든요. 지금도 많이 읽는 거 아니지만요. 그 때는 정말.... 저는 저질체력이라 매일 9시면 방전되고 그랬어요.
독서괭님 볼 때마다 너무 배우고 싶고 또 부러운 삶의 모습, 지혜를 옆에서 많이 깨치게 됩니다. 답답하고 힘든 이 시기 잘 지나가시길 바래요. 지금도 아주 잘 하고 계세요. 독서괭님, 읽기 쓰기 항상 응원합니다. 독서괭님, 화이팅!!

독서괭 2022-09-19 13:01   좋아요 1 | URL
드디어 PC로 접속해서 단발님 따뜻한 댓글에 대댓을 답니다!
껌딱지여도 좋으니 아프지 않고 둘이 싸우지만 않았으면 싶은데.. -> 정말요 ㅠㅠ 인생 뜻대로 안 된다는 걸 애들 키우며 절절히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도 조금 늙습니다, 양해 부탁드리고요에서 웃었네요 ㅋㅋㅋㅋ 양해해 드리겠습니다 ㅋㅋㅋ
얼마전 많이 싸운 날 전에 이삼일을 냉전했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주말인데 애들은 저한테만 붙어있고.. 못할 일이다 싶었습니다^^;; 지난 주말에는 함께 시간보내며 얘기도 하고 그러니 넘 좋더라고요. 앞으로도 신경써서 함께 하는 시간을 잘 가꾸어야 할 것 같아요.
단발님도 충분히 열심히 살고 계신 것 같은데^^; 전영애님이 여러사람 반성하게 만드시네요 ㅋㅋ 부지런함 자체보다도 공부에 대한 그 열정이 멋졌고,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지 않고 어떻게든 길을 찾아나가신 노력이 존경스러웠어요.
저도 저질체력이라 매일 9시면 방전입니다^^; 그동안에는 아침에도 7~8시까지 잘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있어요. 밤에 버티며 뭘 하는 건 힘들더라고요.. 저를 이렇게 응원해주시니 더 힘이 납니다. 저도 단발님 글 볼 때마다 단정하고 깊이 있는 글에 감탄하며 응원하고 있어요. 이번주도 화이팅이예요~^^
 

저도 이 미친 실물 영접했습니다.. 독서대가 무척 당황하는 것 같네요. 이 무게 무엇? 너 나한테 뭘 올린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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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9-06 17: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두께 때문에 왠만한 독서대 가지고는 고정 자체가 안될 듯요^^; 저도 튼튼한 독서대를 이참에 장만했답니다ㅎㅎㅎㅎㅎ

독서괭 2022-09-07 12:17   좋아요 2 | URL
이참에 독서대 장만 ㅋㅋㅋㅋㅋ 바람직합니다!!

바람돌이 2022-09-06 17: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튼튼한 독서대 있지만 살짝 올라가는 걸로.... 고정은 그냥 지 무게로 묵직하게 있어주네요. ^^

독서괭 2022-09-07 12:17   좋아요 1 | URL
다행이네요 바람돌이님 튼튼 독서대! 저도 집에 있는 조그만 독서대 버리고 새거 하나 사야하나 고민됩니다^^;

햇살과함께 2022-09-06 1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누피가 힘들어 보입니다^^;;;

독서괭 2022-09-07 13:26   좋아요 2 | URL
그쵸 책에 깔린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22-09-06 1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책보다 두꺼워 보이네요 ㅋㅋㅋㅋ 수고하세요, 독서괭님!!

독서괭 2022-09-07 13:27   좋아요 1 | URL
두꺼워 보일수록 이득인 것 같기도 한데.. ㅋㅋㅋ 재볼까요??

레삭매냐 2022-09-06 1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화제의 그 책이로군요.

두께가 ㅎㄷㄷ합니다.

독서괭 2022-09-07 13:27   좋아요 1 | URL
정말 역대급입니다. 제가 가져본 벽돌책 중 최고인 것 같아요!

책읽는나무 2022-09-07 00: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 눈엔 왜 자꾸 그런 거만 보이죠??ㅜㅜ
미 친독서괭.....
미를 친 독서괭????
ㅋㅋㅋ
암튼 독서대의 피넛이 괭님 잘했다고 책에 뽀뽀하고 있군요~^^

독서괭 2022-09-07 13:28   좋아요 2 | URL
미를 친 독서괭이라니 ㅋㅋㅋㅋㅋ
책나무님 말씀 듣고 보니 뽀뽀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전 깔려있는 건줄!! ㅋㅋ

mini74 2022-09-07 20: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대 ㅎㅎ나 떨고 있니 ~~ 하는거 같아요 ㅎㅎ

독서괭 2022-09-14 13:25   좋아요 0 | URL
ㅎㅎ미니님, 독서대에 저 책을 올리고 읽어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alummii 2022-09-08 09: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뭔지 몰라도 ..북플에 핫한 이 책배게는... 아침부터 그냥 배고 자고 싶게 만드는군요 ㅋㅋㅋ

독서괭 2022-09-14 13:25   좋아요 1 | URL
alummii님, 책베개라고 하시니 정말 딱이네요! 나중에 굿즈로 나오면 좋겠습니다 ㅋㅋ

이하라 2022-09-08 13: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연휴 되세요.^^

독서괭 2022-09-14 13:25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인사가 늦었는데, 즐거운 명절 보내셨길 바랍니다^^

thkang1001 2022-09-08 14: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행복하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독서괭 2022-09-14 13:26   좋아요 0 | URL
thkang님 감사합니다. 인사가 늦었는데, 즐거운 명절 보내셨길 바랍니다^^

공쟝쟝 2022-09-10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아 즨짜 너무 좋다 ㅋㅋㅋ

독서괭 2022-09-14 13:26   좋아요 0 | URL
ㅋㅋㅋ 쟝쟝님, 읽을 때도 즨짜 너무 좋기를 바라는 마음이예요 ㅎㅎ

thkang1001 2022-09-14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괭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잭이 태어나던 해에 나는 UPS 배달부에게 적절치 못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를 유혹하려 했다는 뜻은 아니다(분유 얼룩이 묻은 티셔츠 차림으로 누군가를 유혹하기란 쉽지 않다). 그가 물건을 배달할 때마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에 그를 붙잡아두려 했을 뿐이다. 나는 어른 대화 상대가 너무 절실했다. 내가 날씨나 뉴스, 심지어 택배의 무게를 들먹이며 대화를 시도하면 배달부는 어정쩡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슬그머니랄 것도 없이 트럭으로 꽁무니를 뺐다. 

당시에 나는 집에서 글을 썼고, 그 말인즉슨 하루 종일 분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갈거나 아무튼 사랑스럽기는 해도 손이 많이 가고 빽뺵 울어대는 재주가 탁월한 4.5킬로그램의 인간을 돌보지 않을 때면, 파자마 차림으로 컴퓨터 앞에 혼자 앉아 있었다는 뜻이다.  - 240쪽 


방송국에서 드라마 만드는 일을 하다가, 취재를 위해 찾아간 응급실에 매료된 후 의대에 진학했으나, 저널리즘에 뜻을 품고 레지턴트 과정을 밟지 않은 저자는, 정자은행에서 구매한(!) 정자로 수정에 성공하여 아이를 갖는다. 아이가 태어난 직후 어른과의 대화가 절실했던 저자가 택배 배달원을 붙잡고 자꾸 말을 걸려했던 일화에 웃음이 난다. 휴직하고 아이를 돌보던 그때, 주말에는 남편과 대화가 가능했음에도 어른의 대화가 그리웠는데, 혼자서 아이를 키우던 저자의 마음은 더 절박했으리라. 많은 여성들이 '독박육아'라면서 한숨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때로는 혼자서 아이 한명을 돌보는 일이, 둘이서 아이 두 명을 돌보는 일보다 힘들게 느껴진다. 힘듦을 알아주고 서로 하소연을 하고, 어른들끼리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일, 또 아이를 맡겨놓고 편안히 화장실에 갈 수 있다는 것, 그건 사소하지 않다.


그렇게 우스운 일화로 보였던 배달원과의 대화시도는 뜻밖에 감동적인 드라마가 된다. 집에서 혼자 글쓰며 아이 돌보는 외로운 생활을 하다보니 본래 사람에 가까이 다가가길 원했던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 과정을 그만둔 것을 후회하며 대학 학장님에게 전화를 건다. 학장님은 그녀의 삶을 바꿔준 조언을 한다. 너의 능력과 관심사를 잘 섞어놓은 일, 그것은 바로 임상 심리학이라고! 그길로 저자는 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시작한다.  



이 대화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학부 졸업반 학생들과 함께 대학원 수학 능력 시험인 GRE를 봤다. 현지 대학원에 원서를 넣고, 이후 몇 년 동안 공부해서 학위를 땄다. 그러는 동안에도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공유하기 위해 계속 글을 썼고, 내 삶이 바뀐 것처럼 사람들의 삶을 바꿀 수 있도록 돕는 법을 배웠다.

 그 사이에 내 아들은 말을 하더니 걷기 시작했고, UPS 배달부가 전해주는 물건도 차츰 기저귀에서 레고로 넘어갔다. 그리고 마침내 졸업을 앞뒀을 때 그 소식을 UPS 배달부에게 말했다.

그가 트럭으로 슬그머니 내빼지 않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러는 대신 몸을 앞으로 기울여 나를 안아주었다.

(...)

담당 UPS 배달부와 포옹을 하고 있는 내 심정은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그는 자신도 전할 소식이 있다고 했다. 더 이상 이 지역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도 나처럼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심했고, 집세를 아끼기 위해 부모님 댁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그곳은 여기서 몇 시간 거리였다. 그는 인테리어 전문가가 되고 싶어 했다.

 "당신이야말로 축하를 받아야겠네요!" 이번에는 내가 그를 안아주었다. "저도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 242, 243쪽 


아이 키우면서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하는 저자의 모습이 대단하고, 사무적인 관계일 뿐이었던 UPS(찾아보니 UNITED PARCEL SERVICE INCORPORATED의 약자인 모양) 배달원과 감정적 유대가 생기는 장면은 아름답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택배 서비스를 생각해보면 씁쓸한데, 하나라도 빨리 배달을 끝내야 하는 배달원들은 잡담 따위 나눌 시간이 없고, 배달원으로 속여 집에 들어오려는 범죄자를 두려워하는 소비자들은 문앞에 두고 갈 것을 요청한다. 새벽배송은 언제 왔다 갔는지 알지도 못한다. 옛날에는 배달원에게 드릴 병음료를 사놨다가 건네드리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어렵다. 이런 드라마는 우리 삶에서 발생할 수 없게 되었다. 범죄드라마라면 모를까..


다락방님의 키오스크에 관한 글을 읽으니, 세상이 참 팍팍해져 간다는, 수십 년 전부터 어르신들이 중얼거리듯 말했던 그 익숙한 말이 새삼 떠오른다. 편리함이 우리에게서 앗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얼마전 출근길을 걷는데, 뭔가가 위에서 아래로, 바로 내 눈앞을 스쳐 툭 떨어졌다. 열매 같은 건가, 내려다보니 아주 작은 새였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은 바로 이책, <침묵의 봄> 표지. 딱 이거. 



 새는 발을 살짝 떠는 듯 하더니 그대로 움직임을 멈췄다. 나는 쪼그리고 앉아 새를 건드려봤지만 꼼짝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죽은 듯했다. 인도 한가운데라 사람들에게 밟힐 것 같아서, 살며시 주워들어 옆으로 옮겨 두었다. 내 손바닥에 쏙 들어올 정도의 작은 새였다. 

 대체 왜 죽었을까? 추락사를 할 만큼 날지 못할 어린 새는 아닌 것 같고 원래 크기가 작은 새인 것 같은데. 병에 걸렸나. 뜬금없이 닥친 새의 죽음에 눈물이 그렁그렁 슬퍼할 만큼 촉촉한 감수성의 소유자는 아니지만, 어쩐지 인간 때문인 것 같아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매일 자동차전용도로를 달리다보니 길가에 쓰러져 있는 동물 사체들도 종종 스치듯 목격하곤 하는데, 그때와 비슷한 마음이다. 

 가장 내 마음을 슬프게 했던 도로 위 장면은 트럭 짐칸 가득 설치된 철조망 상자에 갇힌 채 부리들만 살짝 내밀고 짹짹대며 어디론가 실려가던 수많은 병아리들이었다. 고개조차 제대로 돌리지 못할 것 같은 그 어린 것들의 모습은 비참했고, 닭과 달걀을 비롯한 각종 육류를 매일매일 소비하며 살고 있는 인간은 부끄러웠다. 그날 저녁에도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일 내 모습이. 너희들의 생명 뿐 아니라 온 삶을 착취하여 내 아이들을 살찌우고 있구나. 

 이 죄는, 미친듯한 폭우와 폭염의 이 기후변화에 의해 전 지구인이 받고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미래의 지구 환경은 또 우리 아이들이 지고 가야 할 짐이 되겠지.. 

  


고요한 연못에 돌을 던지면 잔물결이 일듯이, 유독물질의 연쇄 작용을 일으켜 죽음의 물결을 퍼뜨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한쪽 접시에는 딱정벌레들이 갉아먹은 나뭇잎을 올려놓고, 다른 쪽 접시에는 유독성 살충제가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몽둥이에 스러져간 새들의 잔해와 다양한 빛깔의 가련한 깃털들을 올려놓은 채 저울질한 사람은 누구인가?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하늘을 나는 새들의 부드러운 날개가 모두 사라져버린 황폐한 세상이 되더라도 벌레 없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결정한 사람은 누구인가? 설령 그런 사람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가 결정을 내릴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우리가 잠시 권력을 맡긴 관리들이다. 이들은 아름다움과 자연의 질서가 깊고도 엄연한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잠깐 소홀한 틈을 타 위험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 <침묵의 봄>, 153~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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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8-14 12: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휴 글 너무 좋네요, 독서괭 님. 링크하신 책도 읽어보고 싶고요. 어쩌면 세상은 더 빨리 나빠질 수 있는데, 거기에 의문을 갖고 항의하고 고민하는 사람들 때문에 속도가 늦춰지는 건 아닐까 싶어요.

독서괭 2022-08-12 17:4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다락방님^^ <마음을 치료하는 법>은 제가 딱히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은 책인데 다른 분 추천으로 읽고 있어요. 약간 미드 보는 느낌도 들고 재밌습니다. 제가 다 읽으면 추천 여부 말씀드릴게요~!
함께 의문을 갖고 항의하고 고민해 보아요^^

거리의화가 2022-08-12 1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새 어디 유리창에 부딪친 거 아닐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투명 유리창에 그렇게 새들이 많이 부딪친다고 하더군요ㅜㅜ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참 많은 것들이 다치고 죽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기후 문제도 마찬가지겠지요.

독서괭 2022-08-12 17:51   좋아요 1 | URL
화가님, 유리창에 많이 부딪혀 죽는군요? ㅜㅜ 그런데 이 새가 떨어져 내린 위치는 건물 유리창과 아주 가깝지는 않았고, 인도의 가로수와 건물 중간 정도였어요. 유리 많은 건물도 딱히 없었던 것 같고..
예전 지방 중소도시에 살 때는 아파트 현관에 꿩이 날아들어 퍼덕거리다가 그대로 죽길래 야생동물보호협회(?)에 전화한 적도 있어요..

미미 2022-08-12 18: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최재천 교수님 너튜브 영상 자주 보는데요. 한국에 닥칠 식량난, 해수면 상승으로 인한 침몰 우려등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에 대한 자연의 역습 때문에 걱정이 되더라구요. 그럼에도 배달부와의 저 이야기는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지구도 사람들의 마음도 치료가 시급합니다.

독서괭 2022-08-22 12:31   좋아요 1 | URL
미미님 글에서 최재천 교수님 영상 얘기 봤던 기억이 나네요. 저도 한번 찾아과야겠어요..! 여름은 점점 더워지는데 에어컨에 익숙해져서 더위를 견디는 능력은 점점 퇴행하는 것 같고.. 걱정입니다 ㅜㅜ 배달부 이야기 뒷얘기도 있어요. 인테리어 전문가가 된 배달부에게 인테리어를 맡기게 된답니다^^

새파랑 2022-08-13 1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음을 치료하는 법> 이야기 재미나 보입니다. 제가 지금 읽고 있는책이 좀 쇼킹해서 전 이상(?)한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네요 ㅋ

독서괭 2022-08-22 12:32   좋아요 2 | URL
ㅋㅋㅋ 새파랑님 넘 매운맛 소설 많이 읽으셔서~! <마음을 치료하는 법>은 논픽션인데 픽션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심리치료 이야기예요^^

책읽는나무 2022-08-14 0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경부고속도로 아래를 잠시 지나는 산책길이 있어 그곳을 매일 지나며 산책한 적 있었는데 고개를 들어 보면 고속도로 양 옆 세워둔 소음 방지용? 가드레일인가요? 명칭을 잘 모르겠는데...암튼 그곳 유리 부분에 새 그림자 그림이 띄엄띄엄 그려져 있는 부분이 늘 눈에 띄었거든요. 고속도로에서도 새들이 그렇게나 많이 죽나 봅니다. 속도를 올려야 하는 곳에 새 그림을 종종 봤어요.
높은 건물에만 부딪치는 건 아닌 것도 같고...암튼 사람에 의해 자연이 훼손되고, 동식물이 죽어가는 건 맞는 것 같아요ㅜㅜ

그리고 어른의 대화!!^^
저는 지금도 어른들과의 대화가 그리울 때가 있어요. 지금은 방학이니까...ㅜㅜ
대화 수준이 계속 고딩들 대화법!!!
이러니 의식도 고딩식!!!
이제 개학하면 어른들의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겠죠?^^

독서괭 2022-08-22 12:35   좋아요 2 | URL
헉 고속도로옆 소음방지벽인가요? 거기에 새들이 많이 죽어요?ㅜㅜ 몰랐네요.. 하긴 사람도 유리문이 잘 안 보여서 부딪치기도 하는데 빠르게 날던 새들은 사고를 많이 당하겠어요. ㅠㅠ 사람에 의해 환경이 너무 빠르게 자주 바뀌니 동물들 적응하기가 힘들 것 같아요.
ㅋㅋㅋ 고등학생이면 다 큰 것 같아도 성인이랑은 달라요, 그쵸? 어른의 대화, 특히 동등한 관계에서(한쪽이 한쪽을 책임질 게 아닌) 나누는 대화는 참 소중한 것 같습니다. 전 출근하면 아침에 애들 등원시키며 탈탈 털린 이야기부터 동료랑 나눠요(동료도 비슷한 상황) ㅋㅋ 소듕합니다 ㅎㅎ 나무님 어서 개학이 오기를요!^^

scott 2022-08-22 0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후 변화 정말 심각 합니다
한국 보다 먼저 급습한 유럽 땅,,,
곳곳에 산과 강이 말라 가고 있고

한 십여년 전 부터 스위스 알프스 봉우리 마다
새하얀 눈이 아닌 푸릇푸릇한 초록이들로 가득 뒤덮혀 있었어요

이런식으로 지구가 병들어 자정 능력을 잃어 버리면

몇 년 안에 지구 화성 처럼 황폐하게 될 것 같습니다 ㅜ.ㅜ

독서괭 2022-08-22 12:37   좋아요 2 | URL
어휴 정말 유럽 쪽 폭염이 심각한 것 같더라고요. 40도에 육박한다고 하니.. 우리 지금 32도 정도는 시원하다고 여겨야 할 것 같습니다;; 알프스에 눈이 녹아서 그동안 실종상태였던 사망자들 시체가 발견되기도 했다고..
우리 애들이 나중에 겪을 어려움을 생각하면 심난해지곤 해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