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눈에 띄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 P10
나는 다만 누군가의 눈에 띄지 않는 날 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P11
오십 년이 넘도록 열쇠공 일을 했다. 그것은 과거의 내가 상상했을 법한 삶이 아니었다. 그렇긴 하지만. 실은 그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잠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혹은 안으로 들이면 안 되는 것들을 막아내 악몽을 꾸지 않고 잘 수 있게 도왔다. - P12
바보라도 창가에 세워두면 스피노자가 된다. - P12
심근의 이십오 퍼센트가 죽었다. 몸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다시는 일터로 돌아가지 않았다. 일 년이 지났다. 시간 그 자체를 위해 흘러가는 시간을 의식하게 되었다. - P12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편이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 P14
탁자를 쾅쾅 내리치고 숨을 헐떡이며 나는 생각했다. 아마도 이렇게 가려나보다. 발작적으로 웃다가, 더 나은 길이 뭐가 있을까, 웃으며 울고, 웃으며 노래하고, 웃으며 혼자라는 사실을, 인생이 끝났다는 사실을, 죽음이 문밖에서 기다린다는 사실을 잊는 것보다.
때때로 나는 내 책의 마지막 페이지와 내 인생의 마지막 페이지가 하나이며 똑같다고 믿었다. 책이 끝나면 나도 끝날 거라고, 큰바람이 방을 휩쓸어 원고를 모두 날려버릴 거라고, 허공에 펄럭이던 흰 종잇장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방이 고요해질 거라고, 내가앉아 있던 의자가 텅 빌 거라고. - P20
앞으로도 하나뿐인 사랑일 여자를 위해 그래야 한다면. 어쨌거나, 완전히 사라져버린 남자에게 한 가지를 더 숨기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 P26
죽어 있는 나를 처음으로 보게 되는 사람은 누구일까? - P29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니, 얼굴에 닿는 바람과 빗방울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 P29
어딘가에 말하고 싶다. 용서하려고 노력해왔다고. 그렇긴 하지만. 살면서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던 때가, 아니 여러 해가 있었다. 추함이 나를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원한을 품을 때 느끼는 어떤 만족감이 있었다. 원한을 자초했다. 바깥에 서 있는 그것을 안으로 불러들였다. 세상을 향해 인상을 썼다. 그러자 세상도 내게 인상을썼다. 우리는 서로를 향한 혐오의 시선에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 P34
나는 바로 뒤에 사람이 오는데도 문을 쾅 닫아버리곤 했다. 아무데서나 방귀를 뀌었다. 계산원들이 동전을 가로챈다고, 그 동전을 손에 쥐고서, 욕을 해댔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비둘기에게 독약이나 먹이는 부류의 얼간이가 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사람들은 날 피하려고 도로를 건너갔다. 나는 암적인 인간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화가 난 것도 아니었다. 더는 그렇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에 분노를 어딘가에 두고 왔다. 공원 벤치에 내려놓고 걸어나왔다. 그렇긴 하지만 너무 오래 그렇게 살아와서 다른 존재 방식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잠에서 깨어나 혼잣말을 했다. 아직 너무 늦진 않았어. 처음 며칠은 이상했다. 거울 앞에서 미소를 연습해야 했다. 하지만 되돌아왔다. 마치 묵직한 추를 내려놓은 느낌이었다. 내가 내려놓았더니 무언가가 나를 내려놓았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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