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게 있다면 끝까지 지켜주는 게 친구가 할 일일 거야." - P363

"아무도 없어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다와 없다는 다른 문제였으므로, 나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 P378

"당신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겁니다. 방법을 깨닫는다면."
방법은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자기는 각 개인의 한계를 모르기 때문이라고 했다. 롤라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는 얘기였다. - P379

억겁을 살아도, 모든 것이 가능한 천국에서 살아간다 해도 인간은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 안의 고통조차 어찌하지 못하는 감정적 존재였다. - P388

모든 생명체는 우연에 의해 태어난다. 우연하게 관계를 맺고 우연 속에서 살다가 죽는다.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정의되는 삶은 롤라 극장에나 존재할 것이다. - P390

인간은 기본적으로 예상할 수 있는 일을 선호하고 거기에 안정감을 느낀다. 예상에 어긋나는 상황이 거듭되면 경계심이 생기고 불안해진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 P404

생생하게 기억하는 능력은 어떤 이에겐 저주가 된다. 그런 사람들은 세월이 주는 축복, 기억을 추억으로 바꾸는 도색 작업이 불가능하다. 당시의 상황과 감정까지 기록물처럼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기억을 되짚는 일은 그 일을 다시 겪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노트 작업은 내게 바로 그런 일이었다. - P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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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알게 된바, 나는 행동에 돌입한 후엔 멈추지 못하는 유의 인간이었다. - P256

타인의 선의에 내가 가진 걸로 보답하는 행위는 보통 영업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도리라고 부르죠. 적어도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은. - P262

박 경감은 눈꺼풀을 내리고 곁눈으로 나를 비껴봤다. 세상 하찮은생물을 내려다보는 듯한 눈이었다. 나는 궁금했다. 사람이 태어난 후 40년을 어떤 태도로 살면 저런 눈으로 타인을 볼 수 있을까. - P266

"넌 네 인생이 어디로 가는지 다 알고 싶냐? 나는 모르고 싶다."
가만히 생각해봤다. 나도 모르고 싶을 것 같았다. 다 안다면 과연열렬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열렬하게 산다는 건 내가 인생을 존중하는 방식이었다. 그 존중마저 없었다면 나는 험상궂은 내 삶을 진즉 포기했을 터였다. - P273

나는 열심히 아버지의 교훈을 생각했다. 웃는 자를 믿지 말라. - P290

"과학은 후진이 불가능해. 그저 도착하기로 예정된 곳에 도착한 것뿐이야." - P320

세상사가 그렇다. 일이 요행처럼 풀리면 멈추고 생각해봐야 한다.
왜 이렇게 쉬울까?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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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 보기 싫은 것과 무서운 것은 다르다. 꼴 보기 싫은 건 견딜 수 있다. 이를테면 옥희 씨 같은 사람. 한 개체가 어떤 것에 대해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반응이 기질이라면, 나는 꼴 보기 싫은 걸 잘 견디는 기질을 지녔다.
견딜 수 없는 건 내 생존을 위협하는 무언가였다. 그것에 대한 내반응은 ‘무섭다‘다. 어제까지만 해도 칼잡이에 대한 내 감정은 꼴 보기 싫다와 무섭다 중간쯤에 있었다. 이제 ‘무섭다‘로 확실하게 넘어갔다. 무서우면 도망치는 게 내 해결 방식이었다. 해결하기로 결정한다면 굳이 이어폰의 의미를 물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조용히 사라지면 되는 일이었다. - P236

인간의 뇌는 부정적 지시를 잘 처리하지 못한다고 한다. 코끼리를떠올리지 말라고 하면 코끼리만 떠올리게 되는 것처럼. 나는 줄곧 비명 소리와 잣나무 군락지로 사라진 그림자에 붙들려 있었다. 둘을 연결 짓지 않으려 들면 들수록 인과성이 강화됐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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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녀석과 눈을 맞대던 바로 그때 나는 또 다른 소리를 들었다.
울음소리였다. 처음엔 녀석이 내는 소리인가 했다. 아니었다.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아마도 살고 싶어 하는 내 욕망이 내는 소리였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내는 소리였을 것이다. 너무나 명백해서 어찌해 볼 여지가 없는 내 운명에 대한 분노의 소리였을 것이다. - P173

나는 내 미래를 확인하게 된 이래로 울어본 적이 없었다. 의사 앞에서든, 아버지 앞에서든, 나 자신 앞에서든 감정을 통제하는 나름의 방식이자 나를 대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그것이 왜 하필 여우를 만난 순간에 무너졌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는 게 있다면 지금 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울음이 나를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목을 잠갔다. - P174

말은 참 이상한 힘을 가진다. 그러하다,라고 말하면 정말로 그러한상황이 닥친다. - P175

"나는 내 운명을 받아들였어." - P190

나는 감정과 표정과 행동이 일치하는 단순한 부류였다. - P195

내 몸에 갇힌 채 소나무처럼 오래오래 살고 싶지는 않았다. - P199

의식만 살아 있는 나무가 되어 이생에 오래오래 머물까 봐 두려웠다. 제이가 살아 있는 나를 지긋지긋하게 여길까 봐 두려웠다. 이 건강한 남자의 정신을 뿌리까지 망가뜨릴까봐 미치도록 무서웠다. 다. -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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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호혜라는 착한 말도 있습니다."
상호 호혜라. 이 남자는 확실히 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 아니면 자기가 내게 접근했다는 걸 고의적으로 잊고 있든가. 일방적으로 뭔가를 떠안기고 대가를 요구하는 행위를 우리는 상호 호혜라 하지 않는다. 강요라고 부른다. - P145

제이는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웃음소리가 손의 느낌과 비슷했다. 생면부지 상대에게 갖게 되는 동물적 경계심을 단박에 허무는 힘이 있었다. 나는 눈을 깜박이며 그를 봤다. 내 삶에 그가 웃는 얼굴로 걸어 들어오던 순간이었다. - P151

내게 필요한 건 시간이었다. 혼자 생각할 시간, 맞닥뜨린 현실을 정리하고 받아들일 시간, 남은 삶을 계획할 시간. 내가 원하는 건 일과를 지속하는 것이었다. 이미 닥친 일에 분노하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미리 떨지 않는 것이었다. - P155

잿빛 연기 뒤편으로 내 인생이 지나가고 있었다. 엄마를 잃은 일곱살의 나에서 생태원 숲을 나돌아 다니는 서른두 살의 나까지. 나는 멍한 기분으로 수많은 나를 관객처럼 바라봤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았다. 상황만 있고 나는 없는 시간 같았다. 그 시절에도 나는 분명 존재했을 텐데.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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