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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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한 마을이 있었다. 복개천을 사이에 두고 두 개의 길이 나있는 마을이었다. 가난한 동네 건너편으로 부유한 동네가 있었다. 시청이 들어서고 IMF를 지나며 이제는 그 복개천도 완전히 도로 아래로 덮이고 가난한 동네와 부자 동네 역시 서로 뒤 섞여 흔적을 찾을 수 없게 되었지만 그 시절을 함께 지나왔던 나의 가족들과 친구들을 통해 우리는 여전히 그 복개천을 기억한다.

 

거짓말처럼 나와 겹치는 사연들이 많구나 하면서 읽어내려 갔다. IMF, 아버지, 여러 집이 모여 부대끼며 살던 마당이 있는 전셋집 그리고 그 시절을 함께 지나던 친구들, 내 안에 있는지도 까먹고 있었던 오래된 기억들이 많이 떠올랐다. 특히 두 번째 골목의 서울 78-23645의 남자에서는 나도 모르게 그만 최소한의 방어선마저 내려 놓고 말았다. 경향 신문사 시상식에서 작가님이 첫 등단 하던 날, 상금을 들키고 싶지 않아 가족을 초대하지 않았던 에피소드와 단과 학원의 수강 과목을 취소하고 몰래 생활비로 사용하다가 들켜서 혼나는 장면등과 같은 진솔한 이야기들은 나의 마지막 졸업식 날과 어린 시절 무수히 많았던 나의 치기 어린 행동들에 관한 기억들을 강제로 불러 내렸다. 그렇게 읽는 내내 내 안에서 떠올랐던 네 개의 골목을 남긴다.

 

 

첫번째 골목

 

프롤로그를 읽으며 새삼 떠오른 기억인데 어떻게 이 시기를 이렇게 까맣게 잊고 지냈을까? 초등학교 시절, 나도 마당이 있는 주택 안에 다닥다닥 네 개의 셋방이 모여있는 그런 집에 살았다. 그나마 우리 집은 걔 중에서는 약간 상황이 나았지만 단칸방임에도 형제들이 6명이나 있었던 끝 방의 친구 집이나 바로 옆집은 지금 떠올려봐도 상황이 그리 좋지 않았다. 특히나 바로 옆집은 언제나 심한 생활고에 허덕였는데 어느 날은 책에도 나오는 장면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햇살을 둥그런 등으로 받아내며 마당 한가운데에 주저 않아 울던 옆집 아주머니의 모습을 봤던 것도 같다. 그럼에도 같은 마당 내의 동갑내기 친구들은 하루하루가 서로 즐거웠던 것 같다. 뛰어 놀다 보면 즐거웠고, 미래는 무게감 없는 그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언제나 사람이 북적거리던 마당이 이상하게도 조용했던 어느 날, 마당에서 혼자 공룡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나는 허술했던 옆집의 단칸방 문 아래로 아저씨의 발이 떠있던 것을 보았다. 생활고를 못 이긴 아저씨가 끝내 천장에 목을 매달았던 날이었다. 이후로는 모든 일이 빠른 속도로 흘러갔다. 그날 마당이 있는 전셋집에서 죽은 것은 아버지였지만 어린 아들을 데리고 조용히 떠나갔던 것은 어머니였다. 그래, 그 집에는 내 또래의 외 아들이 하나 있었다. 어제까지도 내 방에서 같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이빨이 하나도 없던 아이가 있었다. 한동안 나는 이 일과 관련 꿈을 오랫동안 꾸었던 것 같다. 그 꿈은 내가 아직 어려서 그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상하게도 비장한 느낌은 없었고 오히려 경건하게 어떤 절차들이 집행되는 인상으로 남아 있었다.

 

이 시기에 나는 내 인생의 첫 고전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정말 공교롭게도 작가님과 같이 펄벅의 대지였다. (사실 리뷰를 적기로 마음 먹은 가장 큰 계기도 이 공통점이 컸다.) 어쩌면 이 대지라는 단어가 주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한 이미지가 많은 아이들이 포근하게 접근하기 좋게 만드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의 종이 된 여자, 나중에는 자식의 종으로 죽어간 모란이라는 여자의 삶을 다루는 이 책에 대한 이미지가 옆집의 아주머니와 함께 떠오르면서 나는 나만 모르고 있었던 그 시절, 그 공간의 어떤 진실된 모습들이 꾸역꾸역 넘어오는 것을 느꼈다. 내 기억의 한 모퉁이에서 어둡게 드리워져 지금껏 잘 보이지 않았던 나의 부모님과 옆집의 어른들의 삶에 대해서.

 

두번째 골목

 

한번은 우리가 살고 있는 부산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친구’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나도 모르게 건들거리는 폼으로 극장을 나오며 왜인지 나는 선언을 한다. 우리는 이제 ‘복용’ 이라고. 복개천을 사이에 두고 띄엄띄엄 나란히 건너 살던 우리가 용이 된다는 젊은 혈기에 받쳐서 신화와도 같은 말이었다. 용이 된 친구는 미처 용이 되지 못한 친구에게 말년에 택시를 하나 장만해주기로 했던 것도 같다. 걔 중에 동수랑 가장 닮은 친구는 아직 하와이를 못 갔지만 가장 멀게 생긴 순서대로 하와이를 다녀왔다. (동수는 그렇게도 하와이를 고사하며 니부터 가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우리 중에는 택시를 해줄 용이 없음을 알고 각자 나름대로 자신의 택시는 자신이 가꾸려고 열심히 살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복용의 뜻을 물어보면 겸연쩍어하다 그냥 무엇인가 보조할만한 것들을 복용해야만 일상을 살아날 수 있고 출근이 가능한 허약체질들이라는 뜻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그리고 우리는 거짓말 같이 영화 친구의 결말처럼 조금씩 흩어져갔다. 먼저 하와이에 간 친구와 아직 하와이에 아직 가지 않은 친구들. (한 녀석은 방구석에서 담요만 뒤집어 쓴 채 집밖으로 나오지 않으면서 잘되면 내한테 소개팅 하나 해달라고만 연신 외쳤다) 하지만 사실 하와이에 갔다 왔다는 사실보다는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사정으로 만나는 일이 뜸해지며 그제서야 그 동안 잠재 하고 있었던 감정의 골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평소처럼 늦게까지 술을 마시던 어느 겨울 새벽, 사실 자존심을 가장 세우지 않는 것으로 보였던 그 친구가 우리 중에서 가장 자존심이 강했다는 사실을 20년만에 처음 알았던 날이었다. 서로 면박을 주고 놀리며 아무 의미 없이 그저 재미 있기만 했다고 생각했던 시절들이 거짓말 같이 회한으로 돌아서며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에게 리얼리즘이란 그날 그렇게 돌아서던 그날이었다. 누군가 에게는 좋은 추억이지만 누군가 에게는 아픈 기억으로 남았던 서로의 시간들을 확인 하는 순간 그것은 터져버렸다.

 

파란 동굴이라는 이야기가 책에 나온다. 꼬마 아이가 마을 뒷산의 작은 동굴을 자기만의 공간으로 만들고 동굴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소원을 이루어주는 동굴이라고 알게 되는 이야기. 어느 순간 동굴은 내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그것은 메아리였을 뿐이다. 소원을 들어주는 일은 없었고 나의 착각이었다. 나는 꽤나 오래 그 착각을 그냥 둔 채 살아왔었던 것 같다. 그날, 내가 동굴을 나오던 날 (너무 늦게) 동굴 밖은 이미 하얀 겨울이었다. 우리의 시간들 속에는 정말이다, 기쁜 일도 있었고 때로는 슬픈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진짜 알아야 하는 것은 그 것이 내게 기쁨이었는지 슬픔이었는지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다.

‘지나고 나면 기쁨은 종종 회환으로 남는다. 내가 돌아보지 못한 슬픔이 있기 때문이다.

 

세번째 골목

이제 나는 복개천에 살지 않는다. 하지만 동굴 출구에 서서 내게 등을 보인 친구들과는 여전히 연락을 하고 지낸다. 그 친구들의 마음을 다시 헤아려 내게 담는데 자그마치 5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마음을 다쳐 돌아서던 모습을 언제나 기억하며 한번 바닥을 치고 나서 얻어낸, 딛고 서는 힘으로 관계를 다시 일구어 간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그때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며 미처 이루지 못한 꿈, 무엇인가가 되어야 했던 그 시절의 자신을 서로를 통해 잠시 만난다. 내가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상대를 보고 나 혼자의 착각 속에서 위안을 얻던 시절을 지나 이후로 나는 다시금 그날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한동안 그런 노력을 책을 통해서 많이 해소 해왔다. 마음을 평온하게 유지하는 등의 일차원적인 접근 방법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내가 관계에 임하는 있어서 나의 시선이 너무 편협해지지 않고 매 순간 보다 소중한 것들을 볼 수 있는 관점을 가지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어쩌면 나의 또 다른 동굴이 되어버린 책 읽기이지만 일단 지금은 너무 좋다. 소원을 이야기하는 동굴, 아니 하다못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동굴은 작가님 말처럼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더 나으니까.

 

네번째 골목

 

좋은 산문집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글처럼 사는 사람이 되고 싶어지는 마음이 들게 한다. 산문집 참 괜찮은 눈이 온다속에서 언급된 작가님의 많은 에피소드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몇 가지를 소재로 나의 경험에 투영시켜 세 가지의 골목을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이야기 하지 않은 모든 에피소드들 속에서 작가님이 글을 쓰며 스스로의 삶과 모습을 얼마나 되돌아보며 성찰 했을지 절절하게 느껴졌다. 박완서 작가님이 그 많던 싱아..’ 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자기 미화 욕구를 참아내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라 할지라도 약간은 과장을 하거나 보태는 식으로 꾸며내고 싶은 욕구가 있을 텐데도 작가님은 최대한 수사를 제한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되고 이야기 되어 지는 것만이 남길 수 있는 어떤 것을 뒤쫓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정말 진정성 담긴 글을 읽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마음이 동하고 진심 어린 글을 읽고 나면 책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내 마음대로 남을 재단해왔던 타인을 보는 시선이 동굴에서 나온 날 이후로 나는 그렇게 글을 적어왔다.

책 속에는 용서의 나라라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책은 용서받기에 대한 책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제대로 용서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무엇을 어떻게 용서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 용서가 피해자를 어떻게 복원시키고, 회복시키는지의 과정에 대해서 이야기 된다. 그리고 그 용서를 구하는 과정에서 진정으로 누군가가 구원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가해자 즉 용서를 구하는 사람일 것이다. 책을 읽고 다시 한번 나의 시선이 편협해지지 않도록 이끌며 그로부터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나는 글을 쓰고 용서를 받는다. 어쩌면 그날 돌아서던 그 뒷모습에 스스로 가장 상처받은 것은 나였을지도 모르겠다.

 

살아 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 돌처럼 벼렸다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 파블로 네루다

 

 

한 마을에 두 갈래길이 있었다. 그 마을의 입구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소망이나 꿈, 비전을 새긴 비단을 받게 되고 시간이 지나 그 마을을 나가는 날에는 그때 그 비단에 새겨진 자신의 삶을 우리고 새겨 만든 단 하나의 이야기 책을 받게 된다. 왠지 보르헤스 느낌이 나는 작가님의 초기 단편집에 있는 이야기다. 문득 나는 아직 그 마을에서 비단에 새긴 나의 꿈과 소망을 쫓아 이 이야기 저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앞으로도 살면서 무수히 많은 동굴을 다시 만날 것이다. 그 동굴에게 나를 사랑해달라고 이야기하며 때로는 그 안에서 안주하거나 혹은 다시금 길을 떠나 다른 동굴을 만들어 갈 것이다. 행복이란 정지되고 멈춰 있는 어떤 순간이 아니라 생의 움직임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이야기들을 말로 하고 글로 쓸 수 있게 될 때 정지 된 것은 멈추고 생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생은 멈추지 않는 순간 행복을 향해 다가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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