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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시피 월드
백승화 지음 / 한끼 / 2025년 9월
평점 :
백승화 작가의 소설 레시피월드는 표지부터 심상치 않다. 알록달록한 색감과 기묘한 그림들은 이 책이 평범한 소설이 아님을 온몸으로 말해준다. 작가는 마치 요리를 하듯 일상의 평범한 재료를 비틀어 기묘하고 웃긴 판타지를 완성해낸다. 작가의 영화감독작 걷기왕, 오목소녀도 그런 일상의 모습들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인물들이 기묘하고 웃긴 이야기를 펼쳤었다.
겉으로 보면 유쾌한 코믹 판타지 같지만 그 안에는 ‘서툴지만 살아내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마음도 녹아 있다. ‘방귀로 세상을 구하는 여고생’, ‘고장 난 형광등처럼 깜빡거리게 된 쌍둥이 엄마’, ‘이유 없이 좀비떼에게 쫓기는 오이 헤이터’까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가볍게 넘나드는 인물들이 등장하며 백승화 작가 특유의 독특한 세계가 펼쳐진다.
특히 중간중간마다 요리에서 강조하는 킥재료들처럼 독특하게 웃긴 장면들이 있다.작가는 어딘가 부족하고 결함 있는 사람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들은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실패하고, 서툴고, 때로는 엉뚱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애쓰는 우리 자신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꼈다. 이들의 황당무계한 고군분투는 웃음을 터뜨리게 만들다가도 어느새 진심으로 응원하고 공감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 소설집의 가장 큰 매력이다. 웃고 나면 작가가 미리 숨겨둔 따뜻한 위로와 응원이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과 상처를 가장 비현실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며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삶이 엉망이라도, 나만의 레시피로 버텨보라"는 응원이 느껴진다.
작가는 타바코쥬스라는 밴드의 드러머 였다. 지금은 해체를 했지만 활동 했던 시기에 굉장히 좋아했던 팬으로서 공연도 거의 따라다니고 노래가사도 줄줄 외우듯이 했다. 책을 읽는 동안에 백승화 작가가 대부분 곡을 작사했던 1,2집 앨범 속 노래들이 떠올라서 기분이 좋았다. 블랙 코미디 같았던 노래 가사들이 20대였던 내 모습 속에는 굉장히 와닿았던 것 같다. 책 속에서 O좀비떼들이 나타났을때는 좀비떼가 나타났다네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키작은 박만세가 나댔을때는 요다의 하루 라는 노래도 흥얼거렸다. 지금은 백승화 작가처럼 다른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른 밴드 멤버들을 가끔씩 마주치게 되면 내 20대시절 형들과 즐겼던 것들이 떠올라서 행복하다. 백승화 작가가 만든 영화나 책을 빠짐없이 본다. 최근에 각 출판사의 신간 서평단 신청을 해서 책보고 글을 만드는 취미를 즐기고 있다. 이것이 나만의 레시피가 작동된게 아닌가 싶었다.
레시피월드는 불안하고 웃긴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건네는 가장 유쾌하고 따뜻한 위로의 레시피다. 블랙 코미디적인 모습들이 영화처럼 보여주는 것도 '킥' 재료들이다. 일상이 지루하거나 나 자신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지는 날 이 기묘하고도 다정한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