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16.


프랑스 혁명

 

지금까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공산주의는 단지 이상적인 이념은 아니었다. 한 사상은 잘 다듬어지고 거듭 숙고한 결과로부터 생겨난 결과이기도 하다. 공산주의도 마찬가지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에 대한 아주 깊은 고민을 가졌다. 『프랑스 내전』을 읽어본다면, 엥겔스 서문에서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를 잘 알 수 있다. 그리고 『공상에서 과학으로』도 특히 엥겔스는 공산주의가 자유 공화주의와 무엇이 다른지에 대해서는 명쾌하게 서술하기도 했다.

 

매우 기초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그러나 오늘날 보수주의라고 불리는, 공화주의란, 진보적인 자유주의와도 매우 다르다. 보수주의에 대한 뿌리는 프랑스에서 잘 알려진 당파 논쟁에서부터 시작된다. 로비에스피에르와 자코뱅을 보면 잘 알 수 있지만, 테오르미도르 반동으로 잘 알려진 국민 의회로부터 매수된 선거를 치른 뒤로, 당시로는 귀족이던 부르주아 정치는 막을 내렸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에서 과연 오늘날에도 배울 점은 없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라고 본다.

 

로비에스피에르는 여러 혁명가들에게도 귀감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로는 프랑스 인민들에게도 도덕에 대한 평가를 선두적으로 지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주의를 그저 내세우기만 하거나, 매우 기회주의적인 경향들 조차도, 그러한 공화주의 시각에 대한 논쟁을 프랑스 혁명이야말로, 매우 민주적이었다는 오해를 삼기도 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새로운 공화주의를 비판하고, 공산주의를 내세웠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반대를 이야기하는 새로운 주장들마저도, 부르주아 정치의 한 형태라는 공화 정치에 대한 민주주의를 말해왔지, 정작 프랑스에서도 공산주의에 대한 토론과 논쟁을 당파 논쟁과 분파로부터 제거하고는 말았다. 따라서 현대 프랑스 공산당마저도, 19세기부터는 매우 반동적인 행태를 부려왔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내전

 

따라서 오늘날에도 우리는 레닌에게 또 배울 수밖에는 없다. 아니 확실하다. 우리는 빈약한 사상과, 논고만 드러내고 마는 처음부터 일찍 멘셰비키주의에도 가담한 트로츠키주의나 소비에트를 반동기로 이끈 스탈린주의로부터도 아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레닌은 죽은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여전히 우리로는 마르크스와 같이 깊이 배워야 할 유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직 프랑스 혁명에 대한 깊은 숙고와, 같이 일어난 내전에 대한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부터도, 그리고 여러 공산당들에 대한 공화주의 혼돈에 대한 경향과 과오로부터도, 단지 호소 시위나 연대 행진에만 그치고마는 매우 '일반적인' 투쟁 형태를 보아도, 오늘날은 레닌에 대한 지침에 따라 프롤레타리아트를 조직해야만 하는 이유와, 혁명 전투를 벌일 수 있는 근거에 대해서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명확한 한계와, 또 현대에서도 드러난 반동 정부들에 대한 '현실'에서도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 혁명 시기, 사회민주주의당 두 가지 전술』에서도, 명쾌하게 구분한,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트 민주주의란 국가로도, 일터에서도 어떠한 점에서 달랐는지를, 더욱 확실한 방향과 목적을 잘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사실에서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공산주의란 단지 이상이 아니라, 실현할 수 있는 현실이라는 걸, 겉으로 드러나기만 하는 현상이 아니라, 입증해야만 하는 '본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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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여기서는 풀뿌리 지역 민주주의, 조합주의에 대한 한계를 진단한다과거 운동권 세대들은 그런 기대를 품기도 했었다


그들의 실천은 실용적인 경제주의와 민중주의적인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본보기로는, 국내에서는 이진경, 고병권, 조희연이라는 <사회구성체 논쟁>, 파급력도 있었다.

 

일부 주사파로는 박노해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프랑스 철학에 대한 환상마저 수입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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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첫머리 (서론)

 

<힘과 교환양식>을 읽었다. 그러나 유심하게 들여다 본다면, 이 저작도 문제는 너무나 많다. 가라타니는 <힘과 교환양식>에서는 일본에 대한 국가적인 논리를 전개한다. 가라타니는 여기서 교환양식D'' 부활에 대해서 기대한다. <힘과 교환양식>을 서술하고자 <D의 연구>라는 소논문을 작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가라타니는 교환양식D로부터, A에 대한 회귀를 주장했지만, 결국, 봉건적(천황제) 국가로 귀결이었으며, 복귀였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가라타니는 <아사히 신문> 연설에서도, 몸소 보여준다. 그러므로, 가히 '반동적'이라 부를 수 있으며, 청산되지도 않은 역사관을 '친한파'로 무장했다. 따라서 모순이다. 그리고, 주관적인 칸트주의에 대한 교조를 전하거나, 개인적으로 한정한, 경도된 시각들도 있다는 뜻이며, 매우 다른 뜻에서는 문제작임에 분명하다. 마르크스, 독자들이라면 가라타니에 대한 사상만이 아닌, 현대 철학이라 불리는 암묵적인 사상들에 대해서도, 매우 유념할 필요는 있으며, 오히려 '반면교사'의 내용들을 잘 보여준다. 후술하겠다.

 

<힘과 교환양식>을 읽다보면, 먼저 어설픈 번역부터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다. '', ''과 같은 빈번한 의존명사에 대한 높은 사용도나, 비문이라 불리는, 주어와 서술어를 갖추지 못한, 어색하거나, 혹은 어설픈 문장이나 교정들부터는, 책에 대한 신뢰부터 잃도록 만든다. 동시에 번역에 대한 일정하게 갖추지 못한 언어 체계를 잘 보여준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예시로도 쓰일 수 있을 정도이다. <힘과 교환양식>은 조영일 교수로부터 번역했다.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가라타니에게 사사 받았으면서도, 한국어에는 소질이 없는 모양새이다. 과연 쪽빠리(쪽발이)라 의심 삼을 수 있을 만한 언어 구사력이다. 출판부 내에서도 교정 과정에서는 4명 정도가 투입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책은 가볍게 제작했지만 정작 내용마저 가벼운 문장에 대한 정도부터 읽기에도 매우 불편한 반론을 제기해본다. 이전부터 일부 '국어학자'들 간에는, 의존명사에 대한 사용도를 줄이고자 하는 움직임들이 여럿 있었으며, 대체로는 교사들로부터 교육적인 목적으로도 이뤄지거나, 알리기도 했었다. 그러나 아무리 저 선진적인 '학자'들이 논쟁을 벌여도, 결국 책을 출판하기 위해서는 가장 잘 팔리는 책을 선택하기 위한 언어적 사용들도, 출판사 자신들에게만 매우 유리하도록 상업적인 수단들로부터, 책을 팔아야만 한다. 따라서 의존명사에 대한 언어적 사용도는 자본화된 출판사에 대한 기본적인 의도를 출발점으로 삼아야만 하기 때문에, 매우 아쉽지만 <힘과 교환양식>에 대한 제작도, 그리고 이 책 뿐만이 아니라 여러 책들에 대한 번역 제기에 대해서는 채택도 없는 무쓸모라는 비판으로 함축할 수 있을 따름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문장마저 정리하지도 못한 번역서로 수입된 책들을 읽어야만 한다는 사실은 매우 불만이다.

 

갈피 (두서)

 

여기서 다루는 마르크스주의란, 일본 마르크스주의라는 걸 감안한다. 일반적인 독자들이라면, 보통,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른다.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마르크스주의는 국내에서 다룬 마르크스주의로 알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일본 마르크스주의라 부르고자 한다. 그러나, 구분에 대해서는 국가가 아닌, 국적에 따라서 더욱 세분화하고자 한다. 그렇지 않다면, 가라타니도, 앞선 여러 국내 사상가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거나, 심지어는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라타니가 아무리 국가에 대한 시각이 크다고 할지라도, 자국에 대한 일본 논의로 한정할 때, 비로소 국내에서도 가라타니를 더 잘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일본 마르크스주의에서도, 특히나 가라타니도 <자본론> 해석에 있어서는 우노 고조나, 이토 마코토, 스즈키 고이치로 같은 경제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들은 가치론에 근거해서 학파를 이뤘으며, 일본 가치형태론에 대해서는 전형적으로 분석했다. 따라서 반영하고자 해왔던 가라타니는, 교환론에 따라 나아가 일본 소비 문화를 적용해보거나, 파악하고자 했다. <힘과 교환양식>에서는 베버, 뒤르켐과 같은 '어용' 학자들도 나온다. 또한 프로이트에 대한 반박들을 토대로, 심리학이 아닌 정신분석학에 대한 사례들을 소개하거나, 프로이트 사례들에 대한 자신의 주장들을 덧붙이기도 한다. 부르주아 비평가라는 작업을 감안해봐도, 늘 그렇지만, 서술에 대한 방법들은 주로 사실에 대한 베끼기에 기초한다. 따라서 앞 단락에 대한 인용들이나, 중간 주석들로 글을 채우는 방식들을 이룬다. 책을 나름대로 정리하거나, 직접 쓰겠지만, 뒷받침되는 주장들은 모두 자신의 견해나 생각을 지지하기 위한 용도나, 목적마저 없는 수단들로 채워진다는 걸 '신중한' 독자들이라면 곧잘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저작들은 가라타니만 속하는 문제는 아니다. 현대에 들어선, 서구 지식인들, 그러니까 사상(철학)들을 다루는 학자들이나, 일부 논문들에서도 독서를 강조하면서도, 정작 정리나 독해를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는 해석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같은 저자로는 <트랜스크리틱>, <세계사의 구조>와 같은 책들이다. 시중에서도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일화로는 수상할 정도로, 국내 문학계에서도 벌써 다뤘거나, 심지어는 영향을 받은 사람들도 매우 많았다고 전해진다.

 

<힘과 교환양식>에서는 관념적 사고에 기반해서 범주로도 '분류화'해서 세계사를 해석하고, 정리하고자 하지만, 정작 주로 다뤘던 칸트는 후반부에서 <영원한 평화>로 다룬다. 이전 저작들에서는 또한 마르크스는 칸트적 사고로 비판하는 방식들이 같았다고 주장했으며, <힘과 교환양식>에서는 이전과는 달리 마르크스는 헤겔에게 충실했다고 공언한다. 실제로 마르크스는 <·철학 비판>(1843)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마르크스를 읽는 독자들에게는 종교적 소외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저작이지만, 정작 가라타니는 일부로 다루지 않았거나, 의도해서 마르크스에 대한 초기 저작들도 충실하게 소개하지는 않았다. <법철학 비판>을 읽어본다면, 마르크스는 상대들과 겨루면서 이뤄진 힘 겨운 비판으로, 비판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들과 방법들을 잘 드러냈다. 또한 헤겔, <법철학>에 대한 관념적, 치우친 종교적인 태도를 비판했으며, 매우 자세하게 읽었다. 그러나, 가라타니는 마르크스에 대한 저작들보다는 엥겔스에 대해서 더욱 재평가를 했다. 정작 사적 유물론에 대해서는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오해했거나, 오도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엥겔스, <공상에서 과학으로>에서도 소개했던 공상적 사회주의가 아니라, 토머스 모어와 같은 유토피아를 제시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는 카우츠키에게 더 힘을 밀어준다.

 

교환론 (교환 양식)

 

여기서 교환론이란 저, 마르크스 교환론과는 매우 다르며, 또한 그릇됐다. 왜냐하면, 증명된 물리적인 힘에 기반하고, 증명하고자 했던 역사적인 희생으로도 이뤄진 과학들에 대해서, 특히나 계급관계에 대한 구분도 없이 맨 처음부터 부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랍다. 아무리 계급관계에 대해서 '문학적 허구'라고 지적하는 사람일지라도, <자본론>에서 증명된 교환론은 자본화된 상품이라는 관계에서도 물신화만이 아닌 판매되거나, 거래할 수 있는 교환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본론>은 두꺼워 보여서 그렇지, 읽으면 어렵지도 않다. 시중에 나온 해설서들도, 심지어,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자본론>에 대한 독해를 어려워하거나, 힘 겨워하는 독자들을 위해서도, 따로 저작들도 쓰고자 했기 때문이다. <임금 노동과 자본>이나 <경제 철학 수고>도 추천해본다. 노동계급들이 생산하고자 하는 생산품들이 단지 소비만이 아니라, 생산품에 대한 유통 과정들이나, 심지어는 노동계급들을 갈아서, 희생하고, 또한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그렇다면 다음으로는, 가라타니 교환론을 살펴보자. 애덤 스미스, 리카도를 고전 경제학으로 분류했으며, 교환법칙에 따라서, 노동시간과 이윤율은 동일하며, 생산관계에서도, 비례한다는 주장은, 물물교환과 일치하므로, 따라서 마르크스는 정작 교환법칙은 이해했어도, 경제학은 잘 몰랐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엥겔스에게 <자본론> 1권을 마치고, 다음 권을 모건, <고대 사회>를 연구하느라, 집필하는지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내세운다. 그러나 가라타니는 틀렸다.

 

훗날, 엥겔스와 자녀들에 대한 도움으로, 심지어는 생전에는, 아내 덕분에, <자본론>을 완성할 수 있었으며, 아무리 마르크스, 홀로 <자본론>을 집필했다고 하더라도, 여러 도움이라는 손길을 거치면서, 다듬어지고, 교열을 맞추도록 인연으로 이뤄진 가족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혼자, <자본론>을 완성한 건 아니다. 다음으로, 모건에 대한 <고대사 연구>는 이전에 서술된 마르크스, <파리·수고> 말고도, 정작 해당 이론들을 수입해서 번역했음에도, 아직까지도 번역이 안 된 여러 서신이나 기록물들도 있기 때문이다. 주로 마르크스는 엥겔스와 달리 민족(민속)학 연구가 아닌, 경제학을 중심으로 서술했다. 엥겔스는 당대 역사학에 주로 정통했기 때문에, 여러 기록물들 가운데, <민족학·노트> 혹은 <민속·기록>으로는 엥겔스와 따로 간추려서 세간에도 알려졌다. 그렇다면 가라타니는 수입된 요약 자료를 읽거나, 뽑아내서 평가했다. 마르크스는 평소에도, 다른 글들을 발췌해서 따져보고자, 가려내서 뽑았으며, 간추리고 요약했다. 이외에도, 증명하고자, 마르크스만이 아닌 엥겔스도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로부터 선별한 선집만이 아니라, 전집을 읽어본다면, 주로 엥겔스와 주고 받은 서신들이 많으며, 엥겔스도 평가를 내렸던 흩어진 서한들도 잘 모아놨다. 그리고 <자본론>을 작성할 당시에도 마르크스는 이미 혹독한 정신적 부담, 과도한 음주()와 흡연(담배)으로부터 신체적으로도 요양을 요구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알제리로 가서, 휴식을 취해야 했을 정도였다. 따라서 모건에 대한 <고대사 연구>를 집필하느라, <자본론>을 쓸 수 없었다는 건 단순한 일화로 보자면, 단지 재미로 볼 수는 없으며, 근거로도 성립할 수는 없다. 또한 가라타니는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는 사람들이 <자본론>을 직접 읽지도 않았다고 비판했지만, 정작 가라타니는 원문을 중요시 한 저자임에도, 자신은 원문에 대한 출처를 어디에서 구했는지를 밝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다. 물론 학계에서도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연구자들을 고용해서, 필요한 정보를 쉽게 구하는 건 매우 흔하다. 그러나 정작 연구자들은 필요한 정보를 구하기란 매우 어렵고, 정보에 대한 권한이나 이용을 지불해야만 하기 때문에, 관계인을 거쳐야만 하거나, 허가를 구해야만 한다. 따라서 비슷할 수는 있으나, 정보를 구하거나, 구할 수 있는 방법들은 매우 달랐다.

 

<자본론>에서 마르크스에게 교환이란, 힘의 논리가 아니라, 생산과정에 대한 논리로 전개했다. 그러니까, 도대체 노동계급들이 직접 생산하는 생산물들을 누가 가지는지에 대한 논의에만 한정한게 아니라, 늘 생산된 생산물들이 필요 이상으로, 생산되며, 늘 이뤄지는 노동계급들로부터 생산한 생산물들은 구매하거나, 판매해서 이뤄진 생산과정들로부터 생겨난 몫들은 과연 노동계급들에게 전부 지불되지 않으며, 또한 늘 자본가들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노동계급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죽이고도, 다시 생산과정이라는 일부로 노동하도록 참가하게 하며, 사람들을 또 설득하고, 암묵적으로는 착취하는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생산과정에서 죽은 사람들이 산 사람으로 '교체'되는 과정을 두고도, 재생산이라 불렀지만, 알튀세르와도 같은 후기 마르크스주의에서 재생산이라 부른 이면에는, 단지 한 구조에 대한 사상적으로, 억압된 심리로만 다뤘으며, 심지어는 개념부터 싹 바꿔놨기 때문이다. <자본론>에서는 잘 알려진 10시간을 초과 노동했던 영국 아동노동 사례를 다뤘다. 사례를 두고도, 단지 10시간을 덜 노동하게 된 현실로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가라타니에게 교환이란 영적인 힘이었다. 쉽게 말해서, 영적인 힘으로 노동착취를 극복할 수 있다는 '물신화'에 대한 '저질'스러운 믿음이다. 심지어 해당 저작에서도 그대로 쓰여진 내용이다. 그러므로, 과연 가라타니에 대한 논리를 복잡하다고만 끝낼 문제였을까.

 

교환 양식 A

 

여러 양식들 가운데, 교환이란, 꼭 순서대로 적용되지는 않으며, 일정한 시기에 도달하면, 화폐에 대한 교환들도 효력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체제 내에서 교환할 수 있는 수단으로도, 화폐는 오래 됐으며, 교환으로도 가장 손 쉬웠기 때문이다. 화폐로부터 거래하기 시작된 뒤로부터는, 만들어진 상품에 대한 값어치(가치)를 가질 때, 지불할 용이도 생긴다. 그러나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는 상품들에 대한 분석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자본적인 축적이 생겨나는 원인을 파악할 수조차 없어진다. 같은 노동시간을 들여도, 한정된 물건으로만, 물물 교환만 이뤄진다면, 오히려, 일을 할 이유조차 사라지고, 생산력마저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생산수단에서, 생산력과 생산관계를 구분했다. 모든 사람들은 일할 수 있는 힘들이 있지만, 자본에 대한 모든 노동들은 자신들에 대한 생산력을 지불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지불한 생산수단들을 소유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자본가들이다. 지불한 생산수단만큼이라도, 비용을 지불하고, 이윤을 얻을 수 있다면 자본가들은 타인들에 대한 목숨마저 버릴 각오는 됐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가들이 착각했다고 밝혔다. 아무리 자본가들이 이윤들을 늘린다고 애쓸지라도, 초과가치 내에서 벌 수 있는 이윤들은 한정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자본가들에 대한 논리와 똑같이, 자신들에 대한 이윤들은 무한정하게 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제학자들도 있다. 비록 한 평생, 사상만을 고집했던 가라타니도 있다. 씨족사회는 매우 순수했으며, 정주화 이전에, 씨족사회에서는 호수관계에 따라서, 증여와 답례가 확실했으며, 이동들은 매우 자유로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씨족사회는 오랜 투쟁이라는 자취들이다. 가라타니는 신당을 모시는 승계 싸움으로 일단락하지만, 실제로는 섬 나라에 대한 사례만이 아니라, 여러 씨족사회에서는 국가를 이루고자, 여타 많은 부족들을 죽여왔기 때문이다. 또한 오랜 관념의 일부로 유지됐을만큼만 국가는 절대적으로, 강력했던게 아니라, 비겁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냥, 채집으로 획득할 수 있는 물자들이 부족해지면, 필요하다면 부족 간의 전쟁도 매우 빈번했다. 가라타니는 역사적으로 교환양식을 구분했지만, 때로는 시기적으로 뒤섞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역사란 생각보다는 차례대로, '역사적'이라 불릴 수 있는 시기들에는, 늘 우연적으로 보이는, 때란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엥겔스는 초기 모계사회로부터, 생산수단에 대한 분배는 균등하게 이뤄졌다고 봤다. 가라타니가 다루지는 않았지만, 실제로는 여기서, 씨족사회 안에서 모계사회는 사냥으로 모아진 생산물이나, 채집물들을 분배하고, 관리하는데는, 매우 적합했기 때문에, 엥겔스는 모계사회에 대한 연구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모계사회가 우월하다던가, 수준이 높았다는 걸 상정하는 논리에 대한 주장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문제다. 그래서 엥겔스는 <가족, 사유재산, 국가적 기원>에서 씨족사회를 고찰했다.

 

교환 양식 B

 

가라타니에게 국가적() 성립이란, 교환양식B를 따르며, 주로 계약으로부터 성립된 제도들이다. 봉건제에 대해서, 가라타니는 근세로도 보지만, 중세 들어서는 국가적 보호(안전), 가라타니는 홉스를 인용한다. 괴물(리바이어던)과도 같은, 국가는 전쟁으로부터 국민들을 보호하고, 안정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환양식B에서는 곧바로 민족주의가 성립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삼국시대와도 같은, 국가 대항전들은, 주로 계약들이나, 제후(), 귀족들에 대한 거래로부터 이뤄졌기 때문이다. 전쟁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약탈하거나 국토를 넓히고는 확대하고자 노예들도 합법적으로 부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종하고자 했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 파스칼, 보에시,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등과 같은, 철학자들에 대한 예시를 든다. 국가 성립 이전에는, 제국이 먼저 생겨났으며, 가라타니는 신성로마제국에 대한 신권에 대해서 우호적이다. 수도사들도, 그때부터 생겨났다. 루터보다는, 칼뱅에 대한 예정설로부터, 죄악에 대한 구원들을 지지했다고 밝힌다. 전염병(페스트)들에 대해서도 본래부터 인간이란 질병으로부터 나약하고, 고통 받았기 때문에, 제후란 신으로부터 신탁을 받아서, 질병으로부터 '치유'하도록 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치워' 보자면, 바로 두고 신격화라고 부른다. 델포이 신탁을 받은 소크라테스도 마찬가지로, 비록 고대였지만 같은 이유로, 신탁을 받아서, 이오니아에서, 자연철학에 대한 무지배(이소노미아)를 본받아, 아테네에서 토론할 수 있었다고 봤다. 그러나 지중해를 중심으로, 그리스는 여러 섬들에 걸쳐 있었기 때문에, 이오니아만이 아니라, 식민국가였던, 에페소스도 있었으며, 엘레아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테네 이전 시기에도, 여러 지역에서도 철학자들은 있었다. 에페소스에서는, 가라타니마저 두려워하는, 헤라클레이토스도 있으며, 에페소스에서는 파르메니데스, 역설로도 유명한 제논도 있으며, 심지어 가라타니도 다뤘던 스토아 학파 가운데로는, 노예였던 에픽테토스 외에도, 아우렐리우스, 키티온 제논도 있다. 제국의 성립에서도, 늘 식민국가들은 잔존했었으며, 고대부터 내려왔던, 비열한 제국 간 전쟁들로부터 성립된 역사들이었기 때문에, 제후 중심의 역사관들을 매우, 중시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주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급적으로도, 역사관을 다룰 때마저 신중한 근거로는, 수 많은 노역(포노스)에도 종사한 노동자(에르가티스), 민중(오클로스)들마저, 의도적으로 따로 빼내어서, 소외하도록, 제외하거나, 배제할 수 있기 때문이며, 단지 제국의 역사는 반복됐기 때문이 아니라, 배제와 박탈된 역사들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세를 크게 다루지 못하는 이유란, 바로 대숙청만큼이나, 봉건적이었던, 피의 역사를 잘 보여주는, 그리고 질병마저 관리하지도 못했던, 제후들의 민중학살들과 관리들의 지시와 병정들 간의 살해들, 그리고 음모마저 서술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관료제가 끼친 해악들은 처음부터 나오지도 않는다. 식민사관들에 대해서라면, 오스터 함멜 뿐만 아니라, 마르크 페로, 마틴 버낼, 댄 힉스마저 읽어보시라. 식민지 건설 업적들은 과연 얼마나 대단한가!

 

교환 양식 C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으로 잘 알려졌다. 그러나 가라타니는 애덤 스미스, <도덕감정론>를 강조한다. 화폐라는 교환으로부터 중상주의 무역이 등장했기 때문에, 사적 소유(재산권)라는 개인적 부만이 아니라, 국가적 부에 대해서도 근대 상업과 화폐경제로부터,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인들은 각 나라들마다 상용화된 화폐 교환으로부터 먼 곳까지 무역했으며 주로 부를 얻은 상인들은 시민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가라타니는 중상공인들이, 주로 개인적 부를 과시하고자, 또한 국가에 대한 신임을 얻고자 노력했었고, 영주권을 소지해서 지배적인 권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따라서 봉건제는 부를 누리는 귀족들로부터 기고만장했다. 봉건제 붕괴는 혁명 때문이 아니라, 왕과 절대 권력자들이 정작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무너졌다고 본다. 가라타니는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중상주의에서 상업에 대한 보호 무역을 제도적으로 비판했지만, 수입 의존적인 자유 경제를 펼쳤다고도 주장한다. 또한 마르크스는 애덤 스미스를 고전 경제학으로 다뤘으며 실제로는 리카도 좌파였다고 본다. 왜냐하면 리카도는 차액지대론을 내세웠는 데, 지대는 토지에 대한 비옥도와 생산력으로부터 계산할 수 있다고 봤으며 초과(잉여)가치를 먼저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보호 무역이든, 자유 무역이든, 화폐라는 교환 과정에서는 투자(투기)와 매매들도, 상품에 대한 구매(소비)로 꼭 일치하지는 않았으며, 이를테면 경제학 투자에 대한 예시로는 네덜란드 튤립 파동에서도, 초기 상인들은 구매를 대신해서 한정된 튤립들을 다시 팔고자 사들였기 때문이다. 마르크스, 이전 경제학에서는 생산물들을 많이 소유한 개인들이나, 국가는 가격에서도 절대적이었다. 그리고 거품이라는 개념은 생겨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정작 경제적인 파동이 생겨났을 때는 해석하거나, 대처할 줄은 몰랐다. 애덤 스미스는 주로 경제적인 기틀을 잘 닦아놔서 자유 경제로부터 현재에도 복잡한 제도라는 기틀을 '튼튼하게' 만들어놨다. 그리고 중상주의와 보호주의를 비판했어도 거래하는 개인들에 대한 도덕적 품위와 개인들을 위한 자유로운 경제 활동을 중시하고, 매우 개인적인 소유권을 강조하도록 했으니 그러니 저, 도덕적으로도 흠 없고, 품위 있는 국내 경제학자들도, <국부론>을 읽으면서, 국가에도 기여하고 보호도 받는 자유 무역 제도와 정책들을 환영하고, 식민지까지도 옹호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초과가치학설사>에서 마르크스, 엥겔스는 그들의 열렬한 도덕과 품위를 비열한 가식과 위선까지 썩도록 바꿔놨다.

 

교환 양식 D

 

가라타니는 DX로 표시하기도 했는데, 단지 없다고 부를 수는 없어서, D에 대한 서술은 <힘과 교환양식>에서 드러낸다. 그리고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를 다뤘다. 반면 엥겔스는 <공상에서 과학으로>라는 공산주의에 대한 해설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공상적 사회주의(유토피언 사회주의)로는 생시몽, 오웬, 푸리에를 거론했다. 주로 사유 재산 제도를 철폐하고자, 지역 협동조합 설립에도 노력했으며, 노동 교육을 강조했다. 그러나 가라타니는 공상적 사회주의로는 바뵈프가 앞섰으며, 자코뱅 파벌에서도 일부분 기여했다고 본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바뵈프에 대해서는 프랑스 혁명기를 서술할 때 먼저 다루기도 했지만, 엥겔스와 서신을 주고받을 때는 블랑키와도 비견했다. 그러나 무정부적 태도와 당시 지배계급(부르주아) 혁명기라는 한계도 보였으므로, 주로 정부와는 재산권과 보통선거권을 두고 벌어진 격화된 투쟁 시기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가라타니는 발터 벤야민으로부터 메시아주의를 강조한다. D에 대한 도래로부터 메시아는 기적이고, 수 많은 전쟁을 거치면서, 현재에도 칸트가 제기했던, 세계연합이라는 보편적이고, 구상적인 국가(UN)들은 도래할거라고 본다. 위에서 언급한 A, B, C는 모두 D를 위한 준비이자, 세계적인 평화를 위한 준비이며, 역사는 반복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가라타니는 지배계급(부르주아)들도 내세우는 종교적인 세계관을 공유한다. 연합체(어소시에이션)로부터 국가, 자본, 민족(네이션)을 이루지만, 매우 인위적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주변국(아주변)으로, 흐리터분하게, <성서>를 인용한다. <구약성경>에서 야곱(이스라엘)은 권력에 도전하다, 심판을 받는다. 끝으로 <묵시록>에서 예수는 계시를 강조한다. 부처나 제자백가들과 비슷하게, 가라타니는 D로 묶는다. 그러나 D에 대한 부활은 A에 대한 반복된 회귀일 뿐이며, B, C를 암시한다. 그러므로 연합체(어소시에이션)를 이루고자 한다면, D로 나타나기 때문에, 가라타니는 지배 간 전쟁을 마치고, 어느 국가에서든, 동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혁명을 기대한다. 그러나 벤야민만이 아니라 루카치도, 헤겔 관념론을 그대로 수용한 채로 마르크스주의를 독해했다. 따라서 경도된 마르크스주의를 과학적이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계급투쟁이란 실제로는 자세하게 관찰하는 비판이 아니라, 머뭇거려 방관하는 비평에 다름 아니었다.

 

동시 혁명론 한계

 

무정부주의(아나키즘)에 근거하는 그러한 혁명은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소비 운동이나 파업(데모)에만 머물거나, 그친다. 세계적인 통화정책(화폐)과 연합체들로 이뤄진 세계공화국이란, 멀리 떨어진 논의도 아니었다. EU가 출현하기 이전에도, UN이라는 기구가 설립되기 이전에도, 모두 평화적인 국가들에 대해서 오랫동안 말해왔으며, 1950년대, 한국전쟁에서도 유엔군이 창설되기 이전부터, 내전에도 깊숙한 관여를 해왔다. 바로 드 넓은 미국은 모든 자유를 너그럽게 허용하는 제국으로 부상할 수 있었고, 혁명에 대한 경로를 차단하면서부터, 아프리카 식민국가들에 대한 독재 체제를 옹호했었고, 중남미, 중동에 대해서도 평화 정책이라는 명분으로, 그리고 자국에 대한 복지를 강조하면서, 식민지 구축에도 힘써왔다. 그러한 반동적인 혁명이라면 분명 이유가 있다. UN이 창설된 뒤로부터, 냉전은 끝났고, 현대에도 전쟁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모두 충격에 빠지기도 했었다. 세기를 뒤돌아봐도, 앞날은 무수한 전쟁과 내전들, 그리고 학살로 자행된 합법적인 범죄를 혁명으로 가장한 내전들로, 지배계급들의 우세를 보여주고, 국가를 쟁탈하고자 서로 다퉜다. 심지어, 국가를 넘어서, 세계를 지배하고자 있지도 않는 괴상한 ''제국주의까지 만들어 강조했으니, 제국주의라는 지배적인 원류를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제국의 하수인으로는 어디 자본주의 국가만이 그러하겠는가. 공산권에서도 마찬가지로, 남북한에 대한 분리 정책들과, 한 민족으로부터 떨어진 노동자와 민중들을 국가로부터 귀속하게 하고는, 서로 다투고, 이간질하도록 만들어놨으니, 그들만의 공산주의는 과연 옳았는가. 그러나 공산주의는 틀리지는 않았다. 각 자국에서도 체제에 대한 여러 토론과 논쟁을 거치고 고르고, 다듬어진 논의, 언제나 노동계급들에 대한 투쟁들도 지지할 수 있도록 힘 써왔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이름으로부터, 오랫동안 핍박 받고, 가난하게 마르크스주의 사상들을 배워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당국으로부터 체포되어 고문을 받거나, 심지어는 풀려나도, 감시를 받거나, 심하게는 유도된 심문이나 추궁하도록 조사를 받기도 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탈레반과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모두 무장 단체로부터, 그리고 지배 국가로부터, 아니 전범 국가들로부터 무기를 수출해서 원조받거나, 수입한 무기로부터 인민들과 노동 민중들을 학살해왔다. 그러니 아무리 힘 겨운 싸움에서도 계급을 무시하고, 그들만의 전쟁에서도 누가 이겼다고 장담하고, 안도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동시(同時) 혁명이란 매우 동시(童詩)적이다. 어린이들도 그거 보단 잘 배우고,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반박 및 결론

 

<힘과 교환양식>은 아쉽지만 현상적인 분석에만 그친다. 따라서 마르크스에 대한 음미에 불과하다면, 마르크스에 대한 회귀도 아니고 자책에 가깝다. 또한 기본적인 개념들마저 일부로 혼동하거나, 주장을 내세우고자 있는 사실에 대한 논리를 비약하기도 한다. 매우 쉬운 예시로는 자본주의 생산과 교환에 대한 관계를 생략하거나, 상품에 대한 생산이란 우리가 쓰는 물질적 수단들에도 일반적으로 통용되어 쓰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품에 대한 교환만 있다는 건, 상품들에 대한 생산수단들이 어디에서도 기인하는지를 연구하고자 했던, 마르크스에 대한 이해와는 같다고 볼 수도 없으며, 확연하게 다를 수밖에는 없다. 또한 가라타니는 국제주의 운동을 무시했으며, 칼 리프크네히트도 노동계급들에 대한 근원적인 힘에 대해서도 앞서 사고하고, 연구했다는 사실을 쉽게 잊는다. 칼 리프크네히트, 아버지는 빌헬름 리프크네히트로, 엥겔스와도 두터왔다. 그리고 엥겔스로부터 먼저 이뤄진 힘에 대한 연구를 마르크스와도 혼동했다. 그래서 글은 겉보기에는 아무리 쉬어 보여도 복잡하고 지나치게 혼란스럽다. 마찬가지 논리로, 국내에서도 친일 행적들을 숨기는 일부 정치경제학자들도, 일본 마르크스주의를 그대로 답습한 결과가 아니던가. 의도적이든 아니든, 역사적 자료들에 대한 혼동을 우선시한 탓에, 국내 마르크스주의를 심화하는 연구마저 절실해졌으니 말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훼손이라는 역사로는, 정치경제학은 예시로 삼을 만큼 잘 보여준다. 시기적으로만 구분한 후기 마르크스주의를 비판하고,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은 그저 고전적일 뿐이라는 고리타분도 지워내고, 마르크스에 대한 '오독'에서 구출해서, 혁명을 사수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에 대한 더욱 올바르고, 새로운 생각들을 지지하고, 강조하고자 한다. 또한 외부 자본을 외계 자본으로 보거나, 상품 교환에 대해서도 수상할 정도로 낯설게 의심한다. 더욱 괴상한 논리를 더욱 펼칠 뿐이다. 칸트적인 관념주의에 대한 오류를 고스란히 베낀 나머지, 그대로 수용만 하고, 비판하지는 못한 결과다. 하나의 사례에서 일반화를 제시하기 때문에, 경험적 오류에 대한 여지도 충분하다. 종교적 신앙으로는, 무속을 따르는 물활론(토테미즘, 애니미즘, 샤머니즘 등)을 은근 강조하면서도, 정작 계급적 초월론과 학살 관계를 잘 언급하지도 않는다. 아무리 가라타니가 비신앙이라도 오류는 많다. 개인적인 수상과 행적은 별개로 두고자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논의는 새로워 보여도, 생각이라는 근저로는 비판을 수용하기란 참 어렵기 때문에, 일부 논리와 사고들은, 세월을 감안하더라도 기각할 필요는 있다. 왜냐하면 잡다하거나 중복된 주장들도 많기 때문이다.

 

더 읽어 볼 자료

 

조영일,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박가분,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고유명>.

 

- 주로 국내에서 가라타니를 소개한 저작이지만, 조영일은 계급적 타협으로는 박유하만큼이나 선두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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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22.


주택 시장 및 시행사·시공사의 부실 공사

 

지하철 구간 공사 도중 철근 누락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공사 현장에서 단순한 시공사의 부주의나 기술력 부족의 문제만이 아니라, 정부의 예산 제약과 공급 중심의 정책 기조, 그리고 다층적인 하도급 구조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이다. 이는 대도시 주택 시장에서도 불균등한 공공 임대 주택 공급으로 인해 주택을 구매할 수 없는 국민들이 대다수인 이유이다. 특히 대도시 지역에 인구가 밀집된 국가일수록, 그러한 정부는 주거 안정보다 대대적인 사업비 통제에 더 엄격한 경향이 상존한다. 한국주택공사 (LH) 등 공공 기관이 발주하는 공사는 대개 정부의공공 임대 주택 건설비 산정 기준에 묶여 있으며, 이는 민간 아파트의 분양가 상한제 기준이나 실제 적정 공사비보다 낮게 책정되지만, 공공 발주 사업은 예산 절감을 위해 자본 경쟁 입찰을 붙이는데, 과거 최저가 낙찰제나 현재의 종합 심사 낙찰제 하에서도 대다수 건설사들은 수주를 위해 적정 이윤 확보가 어려운 수준의 저가로 투찰하게 된다. 이러한 표준 건축비 자체가 낮게 잡힌 상태에서 저가 낙찰까지 이루어지면, 시공사는 자재비와 인건비를 극한으로 절약해야만 수익을 그나마 맞출 수 있다. 이는 저급 자재 사용, 숙련도가 낮은 외국인 노동자 중심의 인력 배치, 공사 기간의 무리한 단축으로 이어져 부실 시공을 유발하는 원천적 요인이 된다.

 

앞서 다층적 하도급 구조와 공사비 누수로 인해 발주처 (공공)으로부터 계약을 따낸 원청사 (대형 또는 중견 건설사)는 직접 시공을 하기보다 전문 건설업체에 하도급을 주고, 이는 다시 재하도급 (불법) 형태로 단계별로 내려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각 단계를 거칠 때마다 원청과 중간 하청 업체의 마진 (수수료)도 빠져나간다. 100의 공사비로 발주된 사업이 최종 현장의 실제 시공자에게 도달할 때는 60-70 수준으로 토막 난다. 최종 시공사는 극도로 제한된 비용 내에서만 작업을 마쳐야 하므로, 철근 누락, 콘크리트 양생 기간 미준수 등의 부실 시공 압박을 받게 된다.

 

정권별로주거 복지 정책에 따라임대 주택 몇만 호 공급이라는 정량적 목표가 설정되지만, LH 등 공공 기관은 정해진 기한 내에 막대한 물량을 소화해야 한다. 이는 공공 임대 주택 현장의 감리 업체 선정 권한이나 평가권이 발주처인 공공 기관에 종속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공기를 맞추는 것이 그나마 최우선 과제인 구조 속에서, 감리가 시공 과정의 문제점을 엄격하게 지적하고 공사를 중단시키는 경우가 드문 이유이다. 전관 특혜 (LH 퇴직자가 감리 업체로 취업) 논란 역시 이러한 자본 감리 체계를 고착화하여 그 부실을 눈감아 준다.

 

국정 감사 및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등의 자료에서도 공공 임대 주택의 하자·부실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 감사 자료들에 따르면, LH가 공급한 공공 임대 및 공공 분양 아파트의 하자 발생 건수는 매년 수만 건에 달하여 가구당 하자 발생 비율도 꾸준히 지적되고 있다. 과거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보고서 및 국감 자료에 따르면, 준공된 LH 아파트 중 일정 비율 (과거 조사 기준 약 20-27% 수준 안팎, 연도별·기준별 상이)에서 타일 균열, 누수, 창문 틈새 바람, 도배 불량 등의 여러 하자가 집중 발생했다.

 

국토 교통부가 LH 발주 공공 임대 및 분양 단지를 전수 조사했을 당시, 지하 주차장 무량판 구조에서 전단 보강근 (철근)이 대거 누락된 단지들이 무더기로 적발되었다.

 

무량판 구조 사태 (2023-2024년 검증)의 경우에도, 국토 교통부가 LH 발주 공공 임대 및 분양 단지를 전수 조사했을 당시, 지하 주차장 무량판 구조에서 전단 보강근 (철근)이 대거 누락된 단지들이 무더기로 적발되었다. 이 사태는 구조 설계 오류, 시공사의 철근 배근 누락, 감리의 불합격 묵인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공공 발주 주택의 관리 감독 체계가 민간에 비해 우수하지 못하다는 실증적 사례가 되었다.

 

공공 임대 주택의 질적인 측면에서 품질을 규정하는 핵심 지표인표준 건축비는 민간 아파트에 적용되는기본형 건축비에 비해 턱없이 낮게 책정되어 왔다. 국토교통부 고시 기준으로 공공 임대 표준 건축비는 민간 분양 아파트 기본형 건축비의 약 50-60% 수준에 머물렀던 기간이 길었다. 자재 값과 인건비 상승분이 공공 표준 건축비에 적기 산정되지 못하면서 현장의 비용 압박이 부실 시공으로 직결되었다. 이에 따라 건축비 지수와 공공 임대 표준 건축비의 격차도 심화되었다.

 

결국, 낮게 책정된 공공 건축비, 시공사의 저가 투찰 및 마진 확보 압박, 다층 하도급의 공사비 누수, 현장에서의 자재·인력 비용 감축 및 공기 단축, 감리의 비리 및 부실시공 발생이라는 인과적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

 

최근 발생한 지하철 구간 공사의 대규모 철근 누락 사태는, 주택 시장뿐만 아니라 국가 기간 교통 체계를 구축하는 대형 국책 사업에서조차 부실 공사 유발 기제가 동일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지하 5층 승강장 기둥 80개 중 50개에서 주철근이 설계 대비 절반만 배치되어 총 178톤의 철근이 누락된 이번 사건은 단순한현장 작업자의 실수도면 해석 오류라는 시공사의 해명만으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이 기제가 반복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시행사·시공사 건설 산업의 구조적 모순에 있다.

 

앞서 현장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부실 공사의 가장 큰 원인은 원청사가 직접 시공하지 않고 비용을 낮추기 위해 다층적으로 외주를 주는 하도급 중심의 생산 구조에 있다. 대형 건설사 (원청)가 공사를 수주한 뒤 전문 건설 업체에 하도급을 주고, 이것이 다시 재하도급으로 불법화되는 과정에서 실질적인 공사비가 지속적으로 삭감된다. 중간 단계에서는 원청과 상위 하청이 마진을 독점하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실제 망치와 용접기를 잡는 하청 업체는 극도로 제한된 자금과 공사 기간 내에 이윤을 남긴다. 여기에 더해 원가를 절감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재 (철근, 콘크리트 등) 투입 비용을 줄이거나, 숙련도가 낮은 저임금 노동자를 거칠게 투입해 공기를 억지로 단축시킨다. 이번 지하철 구간 공사 철근 누락 사태 역시 이러한 비용 절감형 하도급 구조 속에서 관리 체계가 마비된 결과로 볼 수 있다.

 

결국, ‘부패한 건축 사업의 본질은 자본이 규제하는 감시 체계와 이윤을 추구하는 방식, 부동산 집단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현행 구조상 감리 업체는 시행사나 시공사 (자본)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거나, 퇴직 공무원 및 발주처 전관들이 감리 회사 고문으로 상주하는전관 특혜구조로 얽혀 있는 경우가 많다. 감독 기관이 자본과 유착되어 눈감아 주기가 발생하므로, 설계 오류나 철근 누락 같은 중대 결함이 최종 검수 단계까지도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통과된다. 정작 부실 공사가 적발될 때 건설사가 지는 법적·경제적 (벌금이나 단기 영업 정지)보다, 공기를 단축하고 비용을 아껴서 얻는 자본 권력의 이윤이 훨씬 크다. 자본의 철저한 비용 대비 편익 계산으로안전 비용역시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난다.

 

또한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또 다른 핵심은 시공사가 작년 말 철근 누락을 인지하고 서울시에 보고했음에도, 국토 교통부 등 상부 기관과 일반에게는 수개월간 이 사실이 지연 보고되어은폐되었다는 점이다. 부동산과 대형 시설 기반 (인프라)이라는 거대한 금융 자산은 부실 공사나 철근 누락 사실이 시장에 즉시 공개될 경우, 해당 시공사의 주가 (신용)가 폭락하고 사업지 마련을 위한 금융 비용이 치솟아 개통 지연에 따른 막대한 지체 상금 위험이 발생한다.

 

발주처와 지자체, 대형 건설사는 해당 시설 기반 (인프라) 사업이 잡음 없이 빠르게 완공되어 자본 순환을 완수하기를 원하므로, 따라서 안전에 심각한 결함이 있더라도, 체계 내에서 보강 공사 안을 짜서 덮으려는 은폐 기제가 작동하게 된다.

   

·전세 제도의 거래 대상으로 전락한 주택


철근 누락 사태와 같은 부실 공사는 결국 개별 작업자의 단순 과실이 아니라, 원청사가 시공을 책임지지 않고 이윤만 떼어가는 하도급 구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안전과 품질을 희생시키는 자본의 운동, 그리고 이를 감시해야 할 감리와 감독 기관이 유착된 부패가 온전히 해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의 주요 구조부에 대한 원청사의 직접 시공 의무화나 감리 독립성 확보가 수반되지 않는 한, 자본의 이윤 추구 속성상 이러한 부실은 언제든 재발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건설 현장의 부실과 부패가 만연하여 주택의 물리적 조건이 기준 미달임에도, 전세나 월세와 같은 임대차 시장에 머무는 현상 역시 주택에 대한 자본 매매의 고도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논리적인 귀결이다.

 

철근이 누락되거나 부실하게 지어진 주택은 인간이 안전하게 거주할 수 있는 구조적사용 가치가 현저히 떨어진 상태이기에, 시장이라면 가격이 폭락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반대로, 부동산 시장에서 거주 공간이라는 사용 가치보다, ‘향후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를 담은 투자 상품으로의 성격이 압도한다. 자산가들과 부동산 법인, 금융 자본은 주택의 물리적 상태와 관계없이 입지와 공급 부족을 빌미로 주택을 매입하고 독점한다. 결국 노동 계급에게 주거는 생존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집이 부실하게 지어졌다는 것을 알아도 당장 길거리에 나앉을 수는 없기에, 주택을 독점한 자본가들이 내놓은 월세나 전세 계약에 응할 수밖에 없다. , 주택의 질 역시 떨어지는데 가격은 자본가들의 투기로 인해 계속 올라, 결국울며 겨자 먹기차선책으로 임대차 시장의 수요자로 남게 된다.

 

월세·전세 제도에서 월세 제도는 노동자가 공장에서 힘들어 벌어온 임금 중 상당 부분을 토지 소유자 (집주인)에게지대의 형태로 직통 이전하는 구조이다. 이로 인해 노동자의 저축 능력은 더욱 저하되며, 자가 마련의 기회조차 박탈당한다. 전세 제도 역시 본질은 은행으로부터 대출 (전세 자금 대출)을 받아 집주인에게 거액의 무이자 자금을 신용으로 제공하는 구조이다. 정작 노동자들은 주택에 거주하지 못하면서도 매달 은행에 막대한 이자를 지불한다. 이 과정에서 금융 자본 (은행)과 주택 소유자 (집주인) 노동자의 임금을합법적으로 나누어 가진다.

 

분명 공사 조건이 미달하는 부실 주택임에도 정작 노동 취약층이 매매를 못하고 전·월세 머무는 이유는, 주택이 실질적 거주 가치와 무관하게 재산을 소유한 자본가들의 투기 수단 (교환 가치)으로 독점되어 가격이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결국 자산을 소유할 자본이 없어, 생존을 위해 부실한 주택이라도 전·월세로 빌려 쓰며 소득의 상당 부분을 지주와 금융 자본에게 주거비 (지대·이자)로 끊임없이 수탈당하는 구조적 덫에 걸려 있다.

   

주택 시장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고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공공 주택 보급이 단순한 정책적 제안이 아닌 정치적 지형의 근본적 변화로만 이뤄지며, 이는 주거 문제를 시혜적 복지 대상이 아닌, 체제적 모순이라는 점이다.

 

정부가 주택 안정화 정책을 시늉하면서도 매번 실패하는 이유는, 현대 국가가 부동산 자본의 이익을 보호하는 지배 계급의 집행 위원회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양당 체제는 대형 건설사, 시행사, 금융 자본, 그리고 부동산 자본 증식에 편승한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를 대변한다. 이 구조 속에서 법과 제도는 철저히의제 자본으로의 부동산 가치 보존을 위해 작동한다. 따라서 정부가 정책을 잘못 폈다는 지적만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지형이 부동산 자본과 쉽게 결탁해 있기 때문에, 주택의 사용 가치를 복원하려는 공공 주택 중심의 전면적인 개혁은 현 지형 내에서 원천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는 인과 관계를 먼저 확립한다.

 

수많은 노동자가 부실한 주택에서 전·월세를 살며 너도나도 지주와 은행에 이중 착취를 당하고 있음에도, 기존의 정치적 지형은 이들에게열심히 저축하고 대출받아 너도 자산가가 되라.’는 허구적 환각을 주입해 전선을 흐려왔다. 집값 폭등과 부실 공사로 주택 구매가 완전히 희박해진 시점에서임대차 시장에서 주거비를 수탈당하는 대다수의 무주택 노동 계급이 자신들의 처지를 자각하고, 이를 대변할 정치적 세력으로 집단화되어 정치 지형을 흔들어야만주택 보급 역시 확보될 수 있다.

 

주택 시장과 노동

 

현재의 주택을 대규모로 보급하기 위해서는 국가 재정의 우선 순위가 완전히 뒤바뀌어야 하며, 이는 권력의 주인이 바뀌어야만 하는 일이다. 현재 국가 예산과 공적 자금 (HUG 보증, 대출 지원 등)은 주로 민간 건설사의 미분양을 떠안거나 부동산 파이낸싱 (PF) 대출 부실을 막는 등부동산 금융 자본의 구제에 우선 투입된다. 이 공적 재원을 토지 국유화와 주택 직접 건설로 돌리려면 권력 자원의 배분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자본의 위험을 보호해 주는 국가 재정 운용 기조를 주거 안정을 위한 예산 편성권을 내세우는 일도 정치적 지형 변화에 대한 요구에서 이뤄질 수 있다.

 

현재의 대기업·정규직 중심의 노동 시장은 기존의 세대가 장기 근속하며 진입 장벽을 다진 반면, 정작 청년들은 특수 직종 (플랫폼) 노동, 비정규직, 파견직 등 노동 시장 (한계 노동)으로 밀려나고 있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기존 세대의 실질 임금은 15-18% 급증하는 동안, 청년층의 실질 임금 상승률은 수년간 5%대 성장에 그쳤다. 추가로 서울의 연 소득 대비 주택 가격 배수 (PIR) 13.9배에 달한다. 청년이 숨만 쉬고 월급을 14년 가까이 모아야 그나마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 그 결과 39세 이하 청년 가구 중 주택 거주 비중은 11%대에 불과하며, 세대 간 부동산 격차는 (2.6-2.8배 차이)로 벌어졌다.

 

결국 주택을 구매할 수 없게 된 청년들은 전세나 월세 시장으로 강제 진입하게 되며, 이 임대차 시장은 청년들의 가처분 소득마저 합법적으로 수탈하는 공간이 된다. 이는 매달 임금의 상당 부분을 건물주 (지주)에게 월세 (지대)로 납부하거나, 전세 자금 대출을 받아 은행 (금융 자본)에 막대한 이자를 지불하며, 노동자가 공장에서 잉여 가치를 착취당한 후, 주거 생활 과정에서 금융·부동산 자본에 다시 한번 수탈당하는이중 착취 구조이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임금의 상당 부분이 주거비와 대출 이자로 빠져나가면서 저축 능력을 상실한다. 안정적인 주거와 고용이라는 노동력 재생산의 물질적 조건이 파괴되면서, 결국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게 된다.

 

청년 세대의 일자리와 주택 마련이 재생산되지 못하는 본질은 노동 시장의 하청·비정규직화로 임금이 저하된 반면, 주택 시장은 금융화되어 청년들이 감당할 수 없는 자산 권력을 행사하는 영역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으로 자산을 살 수도 없고, ·월세에 만족하며 임금마저 금융 자본에 수탈당하는 이 구조는 정치적 지형 변화 없이는 또 다른 빈곤의 덫에 가두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청년 불평등 분석 기고문에서 고용 한파 속에서 청년층의 주택 거주 비중이 떨어지고 가계 자산 격차 역시 역대 최대 수준으로 벌어지게 된 구체적인 통계도 있다.

 

부실 시공과 노동자의 산업 재해

 

부실 시공을 유발하는 구조적 요인은 노동자를 산재로 내모는 원인이 된다. 이는 동전의 양면과 같이, 정해진 기한 내에 건물을 억지로 완성하려는 무리한 공기 단축이다. 콘크리트가 단단하게 굳는 양생 기간을 지키지 않고 층수를 올리기만 하면 건물은 오히려 부실해진다. 공기를 단축하기 위해 현장에서는 야간 작업, 동시다발적 병행 작업 (한 공간에서 여러 공정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 무리한 연장 근무가 강행된다. 피로가 누적된 노동자는 집중력이 저하되며, 안전 수칙을 확인하고 안전 고리를 걸 시간조차 박탈당한다. 고용 노동부의 산재 통계에서도 건설업 사망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비용 절감과 공기 단축 압박이 매번 최우선 순위에 지목되는 이유이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안전 비용의 소멸도 지적되는데, 앞서 제시한 바와 같이, 원청사에서 하청, 재하도급으로 내려갈 때마다 공사비는 토막이 난다. 최종 하청업체는 극도로 제한된 비용 내에서 시공을 완료해야 한다. 비용 압박을 받는 하청업체가 원가를 가장 먼저 줄이는 영역은 눈에 보이지 않는안전 예산이다. 추락을 막아주는 안전 펜스나 발판 (비계)을 불량 자재로 설치하거나 설치 개수를 줄인다. 국토 연구원 등의 안전 사고 분석에 따르면, 건설업 재해 중 가장 빈번한추락 (떨어짐) 사고의 대부분은 부실한 가설 공사 (임시 발판 설치 부실)에 기인한다. 부실한 가설재 사용으로 인해 건축물의 부실 시공으로 이어짐과 동시에 노동자의 추락사로 직결되는 구조이다.

 

비용을 극한으로 낮추기 위한 자본의 운동은 현장의 노동 구조를 파편화한다. 정작 도면을 해석하고 원칙대로 철근을 배근할 수 있는 숙련 노동자가 사라지면서 구조적 부실 공사 (철근 누락 등)의 확률도 치솟는다. 동시에 이들은 안전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현장 내 작업이 원활하지 않아 위험 상황에 대처하기 어렵다. 결국 자본이 노동 비용을 깎아 부실을 키우는 과정에서, 현장의 위험은 고스란히 가장 취약한 저임금·이주 노동자들에게 전가 (위험의 외주화)되어 대형 산재 사고로 폭발한다.

 

따라서 부실 공사는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 자체의 붕괴를 의미한다거푸집 동바리 (콘크리트를 타설할 때 무게를 받쳐주는 지지대)를 설계보다 적게 설치하거나 규격 미달 제품을 쓰면타설 도중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이는 즉시 상부와 하부에서 작업하던 노동자들이 매몰되어 사망하는 중대 재해로 이어진다시공 과정에서의 자재 빼돌리기로 인해 곧 노동자의 작업 상태를 무너뜨리는 흉기가 된다자본이 이윤율을 높이기 위해 공사비를 ‘후려치고’ 공사 기간을 압박하는 자본 운동의 결과물이 바로 ‘부실 공사이며그 압박의 현장에서 몸으로 위험을 받아내며 추락하고 매몰되는 주체가 바로 ‘노동자 (산재)’이다부실 공사를 막는 시공 체계와 적정 공사비하도급 폐지는 안전한 주거권만이 아니라건설 노동자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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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5. 22. 


자본의 선전·선동 방식

 

자본의 기술 발전으로 인해 상업적 홍보 수단은 비약적으로 늘어난 반면, 정작 사회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단은 오히려 제한되는 현상은 자본 매체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이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핵심 원인은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건물 외벽 전광판 (사이니지, 파사드 등) 새로운 홍보 매체들이 도시 공간을 채우지만, 이 매체들은 사실 공공의 자산이 아니라 사적 소유권과 자본 투자로 구축된 상업적으로 공간이 점유된 형태이다. 첨단 기술이 적용된 홍보 수단은 막대한 초기 설치 비용과 유지 관리비가 든다. 이는 거대 자본으로 이를 감당하고 있으며 이윤 창출을 위한 외벽 광고판으로 활용하지만, 정작 재정적 기반이 취약한 사회 단체나 활동가들은 이를 진입할 유인도, 능력도 갖추기 어렵다.

 

광장이나 거리의 벽면 게시 공간 (대자보, 현수막 등)도 있으나, 도시 정비 사업과 기술 발전으로 인해 물리적 공간을 디지털 광고판이라는 사적 영역으로 대체했다.

 

기술 발전은 오프라인 전광판뿐만 아니라 온라인 광고의 확장을 가져왔다. 그러나 대다수 디지털 광고의 작동 원리 역시 활동가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 이는 매체의 유도 (알고리즘) 기능과 상업적 홍보 (필터링)로 인해 주목도 경쟁과 광고 수익을 위해 이용자의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여 창출하는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다. 대중적이거나 자극적인 소비를 촉진하는 매체만이 아니라, 유도 기능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기에 유리한,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활동가들의 선전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제한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수 업종 (플랫폼) 기업들은상표 (브랜드) 안전성을 이유로, 논쟁적인 사회·정치적 쟁점이 되는 요소의 노출 순위를 낮추거나 광고 수익 창출을 제한하는 정책을 취한다. 결과적으로 자본을 홍보하는 상업 광고는 전면에 배치되는 반면, 대다수의 사회적 목소리가 검열된다.

 

국가와 지자체의 법적 규제 원리 역시 자본의 홍보와 활동가의 요구 사이에서 불균형하게 작동하는 경우가 많다. 옥외광고물법의 차등 적용 등은, 대형 상업 전광판이합법적인 광고 산업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제도권 내에서 허가를 받으며 증식하는 반면, 활동가들이 주로 사용하는 현수막이나 벽보 등은 도시 미관 저해, 불법 적치물, 교통 방해 등의 이유로 엄격한 단속과 일부 과태료 부과의 대상이 되고 만다. 이는표현의 자유에 대한 행정적 통제로, 자본의 상품 광고는상행위로 인정받아 막대한 자본을 투입하여 공간마저 쉽게 대여하지만, 정작 사회적 요구를 담은건전한목소리는정치적 구호갈등 유발 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대관이나 허가 과정에서도 원천 차단되는 구조적 차별이 존재한다.

  

기술의 사적 소유

 

기술 발전은 대중이 정보를 소비하는 방식으로 고도로 파편화했다. 자본의물신성으로 인해 시각 기술은 이제 상품의매력을 포장하여 전광판에 투사한다. 끊임없이 쏟아지는 화려한 시각 정보에 노출되어 감각적으로 마비되며, 이 속에서 기술적으로 덜 정교하거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사회 활동가들의 요구는 쉽게 묻히거나 외면받는다. 공론장 역시 소멸되어, 자본의 홍보 수단은 일방적인 자본 정보 주입과 소비 조장에 최적화되어 발전한 반면, 정작 사회적 의제를 논의하고 연대할 수 있는 공적 공론장은 기술 발전 속에서 오히려 위축되거나 상업적 공간으로 흡수되었다. 기술 발전이 홍보 수단의 양적 팽창을 가져왔지만, 그 수단들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자원 (자본, 법적 권한, 특수 (플랫폼) 소유권)이 철저히 사유화되어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맞서거나 공공성을 요구하는 사회 활동가들의 수단은 상대적으로 더욱 위축되고 제한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첨단 홍보 매체가 사적 소유와 자본 투자의 대상이 되어 압도적인 진입 장벽을 형성하는 이유는 자본 고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매체의 기술적·경제적 구조 변동에 기인한다. 이 진입 장벽이 공고해지는 구체적인 원리는 다음과 같다. 앞서 대형 전광판 등의 경우에는 홍보 매체를 구축할 단순히 물리적 공간 확보만이 아니라 고도의 기술적 시설 (인프라) 필요하다. 대형 전광판과 그 체계를 제작·설치하는 비용, 고해상도 영상을 송출하기 위한 장비와 시설망 구축에는 수억에서 수십억 원에 달하는 초기 자본이 투입된다.

 

이 비용은 한 번 투입되면 회수하기 어려운 매몰 비용을 지닌다. 오직 자본 회수 능력이 검증된 거대 기업이나 금융 자본만이 이러한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를 집행할 수 있으며, 반면, 자원이 부족한 활동가나 소규모 단체는 시작 단계에서부터 배제된다. 따라서 도시의 주요 길목이나 유동 인구가 유독 많은 공간에 설치된 매체는 단순한홍보판이 아니라, 끊임없이 가치를 창출하는 수익성 자산에 가깝다. 노출 효과가 높은 물리적 공간은 한정되어 있다. 자본은 이 공간적 희소성을 구매하여 독점적 권리를 확보한 뒤, 매체로 광고 단가를 높여공간 지대를 점유한다.

 

자본의 자기 증식 구조로 인해 높은 자본을 투자하여 매체를 소유한 자는 더 높은 광고 수익을 얻고, 이 수익을 바탕으로 다른 유력한 공간의 매체 역시 추가로 매입하는 확장 과정을 밟는다. 이 과정에서 매체 가격 (대영 비용)은 철저히 시장 논리에 따라 치솟게 되며, 사회적 목적의 이용자가 접근할 여지가 제한된다. 현대의 홍보 매체는 단순히부착하는 방식으로 끝나지 않으며, 고도로 분업화된 관리 체계를 요구한다. 또한 동반되는 운영 일정을 관리하는 프로그램, 광고 효과를 실시간으로 분석하는 정보 체계, 유지 보수를 전담하는 기술 인력 등이 상시 요구된다. 매체 소유주와 광고주 사이에도거대 광고 대행사들이 즐비하여 중개망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대량 (패키지) 판매, 장기 계약, 대규모 물량 위주의 시장을 운영하므로, 개별 활동가들이 단발적이거나 소규모로 매체를 이용하려 해도 계약 체결 자체가 제한되는 구조적 장벽이 높게 형성된다.

 

결국 국가가 규정하는 법적 기준과 인허가 제도 역시 사적 자본의 소유권을 옹호하고 장벽을 높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자면, 합법적으로 대형 전광판이나 옥외 광고물을 설치·운영하려면 옥외 광고물법 등 관련 법령에 따른 엄격한 행정 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요구되는 안전 진단 비용, 이행 보증금, 책임 보험 가입 등은 재정적 능력을 증명할 수 있는 법인 자본에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이는 허가제의 재정적 요건으로, 자본은 막대한 비용을 치르면서 법적합법성까지 획득하여 공간을 독점하는 반면, 이를 감당하지 못하는 활동가들의 수단은 정작불법성으로 규정되어 철거와 과태료의 위험에 노출된다.

 

결과적으로, 매체가 기술적으로 고도화될수록 이를 소유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자본의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며, 시장은 이 비용을 회수하고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는 사적 자본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 과정에서 매체는 공공의 창구가 아닌 철저한 자본 축적의 수단이 되며, 재정적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는 통과할 수 없는 거대한 장벽으로 굳어지게 된다.

 

정부 정책 홍보 방식의 제도적 한계

 

정부의 정책 홍보나 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무분별한 종이 인쇄물 제작, 잦은 현수막 게시 등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관료제적 행정 논리와 대의제 민주주의의 제도적 한계가 결합하여 나타나는 전형적인 자원 낭비 현상이다. 이는 크게 네 가지로 설명된다.

 

1. 관료제에 따른 예산 집행과표면적행정 논리

 

정부와 지자체의 공공 홍보 예산은 자본 국가 기구가 지닌 관료주의적 특성으로비효율적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하다. 관료 조직은 배정된 예산을 기한 내에 쓰지 않으면 다음 해 예산이 삭감되는 구조 속에서 작동한다. 이에 따라 불용 방지를 위한 연말이나 분기 말에 실질적인 효과가 불분명한 정책 홍보 현수막을 대거 내거는 등 예산 소진성 지출이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더불어, 공공 행정에서도 홍보의 질적 성과 (국민 이해도나 정책의 실효성)은 사실 측정하기 어렵다. 반면, ‘현수막 몇 장 게시’, ‘소식지 몇 부 발행과 같은 양적 수치는 즉각적인 증빙 요인으로 삼으므로, 행정편의적으로만, 자원을 낭비하는 물리적 홍보 방식을 취하게 된다.

 

2. 대의제 선거 제도의 법적 강젱와 지배 집단 이익 보호

 

선거 과정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양의 공보물과 현수막은 현행 선거법의 구조적 한계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공직 선거법은 모든 후보자에게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명목 하에 가구별 종이 공보물 발송, 규격화된 현수막 게시 등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비용을 보전해 준다. 이는 디지털 시대를 여전히 체감하지 못한 채, 과거의 방식으로만 물량 공세를 취하는 법적 강제의 결과를 낳는다.

 

현수막과 지면 공보물 중심의 선거 운동은 인지도가 높은 거대 정당의 후보들에게 유리하다. 이를 전면 제한할 경우 원예 정당의 진입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논리가 작동하면서, 제도의 근본적인 변혁 대신 매 선거마다 막대한 자원을 낭비하는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유지된다.

 

3. 공공 영역의 상업적 유착 구조

 

정부나 선거 홍보물 제작은 공공 예산이 사적 자본 (인쇄업, 광고 대행업, 현수막 제작업 등)으로 이전되는 거대 시장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이윤 창출을 위한 물량 확대를 위해 홍보물을 수주하는 민간 기업들의 목적은 자본의 이윤 극대화에 있다. 더 많은 종이를 인쇄하고 더 많은 현수막을 찍어낼수록 이윤은 증가하므로, 필요 이상의 규격과 부수를 유도하는 시장의 압력이 상존한다. 지자체의 경우 홍보 예산이나 선거 자금은 지역 내 소규모 인쇄·광고 업체들의 주 수입원이 된다. 정치인과 관료들은 지역 표심 관리나 유착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이러한 물량 발주를 줄이기 어려우며, 이는 곧 필요보다 관계에 기반한 예산 낭비로 이어진다.

 

4. 사유화된 매체 구조의 대책 부재

 

역대 정부를 비롯한 선거 후보자들이 물리적 매체에 의존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앞서 언급한 대로 고도로 기술 발전된 첨단 매체 (대형 전광판, 주요 온라인 홍보 매체 (플랫폼) ) 사적 자본에 철저히 독점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논리로 돌아가는 디지털 매체에 정책이나 선거 광고를 상시 노출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막대하므로, 결국 그들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하거나 법적으로 공간 점유가 보장되는 오프라인의 종이 매체와 현수막이라는 구식 수단으로 후퇴하게 된다. 이처럼, 전 국민 또는 전체 유권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공 홍보는 디지털 취약층 (고령층 등)을 배제할 수 없다는 명분을 가진다. 보편적 접근성이라는 명분이 무분별한 지면 낭비와 현수막 게시를 정당화하는 방어 기제로 활용된다. 결론적으로, 공공 및 선거 홍보의 예산 낭비는 사유화된 첨단 매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공공 권력이, 구태의연한 법 제도의 틀 안에서 행정적 성과를 증명하고 사적 (인쇄) 자본의 이해관계와 결탁하면서 발생하는 구조적 모순의 결과물이다.


매체의 기술적 발전에 비해 법 제도가 이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지체 현상을 논리적으로 부각하기 위해서는, 기술의 발전 속도와 법 개정의 경직성 사이의 간극,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경제적 비용을 구조적으로 짚어내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시사하기 위한 방식과 구체적인 논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자본 홍보 매체의 현상에서 알 수 있는 바는 상업적 독점이란 결국기술 발전에 비해 정치·법적 제도적 기반이 뒤늦게 따라잡고 있기 때문이다그로 인해 매체의 기술적 변동은 이미 21세기의 한복판에 와 있으나여전히 이를 제재할 수 있는 정치가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며이에 대한 정치적 지형의 변화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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