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2. 26. 


자동화

 

지금까지 공학자들은 기계어에 대한 이해를 개념적으로 고찰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진법적 신호에 의한 '컴퓨팅'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그것이 미래형 사고에 입각하다는 발상에서 논의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프로그램 언어의 전반이 종교와 관련된 개념이라는 일부 지적은 기각된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 언어부터 파생된 부르주아적 정의 내에서 수용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로그램이란 단순히 '강령'이라는 번역이 아닌, 그것의 시스템이라는 지배 체제를 가동시키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언어는 기계의 언어가 아니라, 그것을 정의하기 위한 인간이 그것을 관념적으로 사고한 사상적 언어의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일부로 잔존하여 '인지'라는 관념의 일부를 구성한다. 이는 용어 및 개념적 정의부터 상이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고대 철학자들은 이러한 차이가 동일한 것이라 간주했다. '짐승과 기계'의 연구부터 그것의 지배 논리의 질서를 인간에게 대입하며 사고된다고 보았으며, 그것의 오류 전반은 기계 수단에서 인공 수단의 진화로 변천하는 과정, 곧 생산 수단으로 확립된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컴퓨터를 가동시키는 전선들의 집합은 독일의 초기 가내 수공업인 면직물 공업에서 유래한 측면이 강하다. 실감의 조직적 구조가 옷감을 형성하듯이, 그러한 물질적 생산력의 기반이 지금의 기계적 사고를 이루는 자연 언어라는 점을 해명하지 못한 것이다

 

초기 애플사의 컴퓨터는 이러한 혁신적인 상품을 발명하였다. 그것은 오락의 발전과 더불어, 밖에서 놀던 아이들을 모두 실내로 불러 교육적으로 통제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컴퓨터 이전 '텔레비전'의 생산은 '매체'의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부르주아지를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변질시킬 수 있게 되었고, 자신들의 사유 재산을 정당화시키며 인간의 시각을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사물이 되었다. IT 산업 및 반도체가 지금처럼 부흥하기 이전부터, 스티브 잡스, 스티븐 워즈니악, 빌 게이츠, 제프 베이소스, 젠슨 황 등과 같은 인물, 그 다음 세대의 샘 올트먼, 마크 주크버그, 다니엘 에크, 일런 머스크 등을 필두로 전개된 미국의 기술자 시절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이 지점에서 게이브 뉴웰과 리처드 스톨먼은 기술진의 사태를 앞서 판단했다. 특히 리처드 스톨먼은 이러한 기술진의 사태에서 '모든 개인에게 자신만의 사이트가 보급될 것이라' 짧막하게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사이트의 개발은 자본의 '부분적 유로화'에 따른 진입 장벽으로 인해 이러한 정부 접속 자체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현대의 인공 기술자들은 독일의 '디자인'의 다수에서 영감을 받아 상품에 적용시키고자 하였지만, 그것을 놀이로 대하지 못하였다. 결국 그들은 이마저도 자본의 놀음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기술적 발전에 따른 인간의 ''를 탐구하였고, 뇌의 일정 기능을 통제하여 마비시킬 수 있다는 측면을 활용하여 더욱 강력한 인공 지능을 발달시켰지만, 그 자신의 수명 연장 기술과 더불어 그러한 인간의 미래 연구는  뇌 자체의 연구와 결합되어 그 발생적 구조가 복합적인 측면에서 사고된다. 곧 현대 인공 기술자들은 인간의 부정의 원인을 해명하고자 그것의 부정 자체를 '오류'로 단언하였다. CIA의 고문을 받던 카진스키는 결국 그 자신이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기술주의에 대한 우려를 강력하게 표명하였지만, 지금도 인공 지능 자체가 인간의 언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의 발생은 그것이 인공 지능의 수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성한 '가공 언어'로 판단되며 결국 그들의 주관을 물질 자체로 환원시키는 오류, 곧 기계적 유물론의 토대를 닦는다. 기계적 유물론이란 일부 부르주아 기술자들이 내재한 사고방식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들의 기술적 우위보다, 그 자신의 무지를 서서히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더욱 깊은 오류를 내재한다

 

이 지점에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을 기술자가 아니라, '디자이너'라고 표현하였지만, 그는 결국 '디자인'을 상업화시켰다. 하물며 독일의 '바우하우스'의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음에도, 정작 유럽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디자인 철학'을 기업가의 상업성에 활용하여 '애플'을 주도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그러한 업적을 스스로 다했다는 대중의 착각에 의존하고 있었다. 지금의 애플은 '바우하우스'보다 못한 목표를 가진 채 기존의 제품 생산을 반복하는 형태인 자본주의화 시킨 '선구적인' 장본인이라 판단된다. 따라서 스티브 잡스 역시 애플의 창시자가 아니라, 모방자에 다름아님을 밝힌다. 그것의 수익성을 오히려 자신들의 기회로 창출할 수 있다고 여긴 '지적인 상인'이 그에게 가장 걸맞는 표현인 것이다. 이것이 발달된 형태는 '실리콘 벨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공계의 신화적 부흥에 힘입은 미국 사회의 일론 머스크의 행보가 가장 단적으로 부각된다. 일론 머스크 그 자신의 공화당 지지 행보가 초래한 '화성 탈출 계획'마저 대중의 인지도로 그나마 버티는 이 현대 기술자들의 부상의 이면에는 어쩌면, 미국 사회의 '달러'를 통한 화폐 가치와 기업 가치의 동반 상승이 아닌, 처참한 기술적 몰락과 야만성을 보여준다.   

 

아카이브 

 

현재의 IT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천문학적인 막대한 지분을 자신의 명의로 소유한 채, 사유 재산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된다. 그들이 바로 기능 자본가들이다. 반도체라는 산업 자본과 IT라는 상업 자본의 결합으로, 기술적 수단을 매체로부터 매개하여 전방위적으로 대중들을 홍보하고, 그에 따른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면서도 노동의 생산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노동자 전반에 대해 생계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그러한 '설계'에 개입하게 된다. 중간 관리자들은 그들의 물신성을 숭배하는 부르주아지 집단에 소속되기도 하면서 경쟁 사회를 통한 독식 구조를 바라며 고군분투하게 된다. 이러한 경쟁들이 모여 결국, 부르주아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보안 업체 집단까지 별도로 고용하고, '해킹''범죄' 사이에서 이러한 기술력을 합법화시킬 수 있는 '유능한 인재'들을 교육적으로 배출하게 된다. 그들은 업무에 가담하면서 이러한 '유능한 인재'를 지휘할 수 있다는 착각까지 범하며 광범위하게 이들의 기술력 전반을 지배하고자 하는 시도와 더불어 자신들만의 '아카이브'라는 업적의 수단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것이 현재의 부르주아 언론들이 바라는 인공 기술의 범위를 증폭시켜 자신들의 지분의 확대와 사적 이윤 추구의 법적 명분을 더욱 정당화시키도록 홍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 사회에 진입한 자본가들은 정치화라는 경제적 지위까지 차지하며, 자신들을 보호하는 무장된 (임베디드) 장비를 착용한 상태로 치외 법권을 옹호하며 자신들의 폭력까지 정당화시키는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오히려 무력한 존재들이기에 그들에게 별도의 비용까지 과감하게 지출하게 된다. 곧 경제적 예산 낭비의 형태는 그들에게 지출되는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보호 수단'인 것이다

 

그들에게는 인력의 동력을 무한한 기계가 대신한다는 이 모순, 곧 노동력의 체납된 지불이 이제는 국가 전번에 채무로 초과되었다. 그들은 노동자라는 존재를 '추상화'하거나, 이들의 투쟁 자체를 제거 및 삭제했으며, 노동자가 '자본화'된 상인들만이 남을 것이라는 지극히 자본가적 발상을 추구한다. 각국의 명문대를 나온 기술자들은 작은 사무실에서 앉아 자신들의 흥미를 사업화시킬 명분을 찾게 되고, 그것의 공공 발전마저 저해시키는 사익화된 수단들을 찾는 과정에서 부르주아지의 생산 수단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한다. 그것의 시작이 바로 '컴퓨터'라는 본체의 탄생이었다. 이러한 '모델링'의 작업은 결국 그들의 '사유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가상 화폐'의 전면 추상화 작업인 셈이다. 그것은 '은행'을 대체할 수도 있고, 자신들의 자본의 생산 수단을 개척하는 방식으로, 고정된 부르주아 설계는 현재의 국가 사회 전반의 기틀을 '전멸'시킬 수 있는 종말을 부추긴다. 도메인의 생성부터, 비즈니스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고객 맞춤 서비스'란 개인 용역까지 고용하여 '자동화'의 도입을 통한 소비만으로 충당되는 자본가 기업의 정당성을 공포하고, '황폐화'된 세상까지 최후의 종언을 자신의 승리라 자부하게 된다

 

프로그램 

 

초창기 '프로그래밍' 언어는 단순한 명령어였지만, 그것은 이제 막대한 이윤 추구를 위한 무제한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그러한 사고조차 가닿기 힘든 고유한 물리 계산법을 더하여 개발 언어에 대한 자유를 부르주아지의 언어로 변환시킨다. 그것은 곧 언어의 '수정'이며, 자본가들의 독창적인 언어를 뇌와 전류의 연결로부터 인간의 심리 기제를 '조종'한다는 '기계적 유물론'으로 환원된다. 관념의 중독처럼 '독창적인' 연구를 중단하지 못한 일부 수학자 및 과학자들은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부르주아 간의 경쟁에서 심화된 전쟁의 발전을 이끌고, 그들만의 법이 곧 강령이 되는 '짐이 곧 왕이다.'라는 군주제 선언을 현대화시킴으로 인해 지배 사회의 매체 전반을 통제할 수 있음을 선포한다. 그것은 머나먼 미래의 노동자이 소멸할 '선언문''강령'으로 작동하고, 그들만의 맞춤 우상 숭배 대상이 '물신 숭배'의 지배 대상으로 구체화 되어 자본의 사고에 종속된 그들은 자본가 '강령'의 노예에 불과하게 된다. 그들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강령을 제시하고 처리하지도 못하도록 무지한 존재들로 규정하고 말았다. 이러한 기괴한 무지함이 보여준 결과가 바로, 자신들이 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다는 객관적 대상 자체로의 '자본가'라는 존재임을 망각하고 만 것이다. '프로그래밍 언어'란 결국 자신들이 작성할 수밖에 없는 명령·지시의 도구화를 대체하고, 간편화할 수단을 찾게 되고, 그것을 '기계'에 대입하여 '스크립트', '구조 형성'에 매우 획기적인 기반을 마련할 노동자들을 요구하고, '자동화' 작업을 위한 무제한의 이윤 창출을 위한 가상 화폐 및 암호 화폐를 고안하게 된다. 그것은 금융 · 주식 전반에서 자신들의 명의를 이전시킬 수 있는, '기밀 문서'등과 같은 증거 자료를 삭제하고, 도덕성의 검증조차 자신들의 쪽수로 밀어붙일 수 있는 막강한 변호사들, 그리고 기술진들이 합세하여 '프로그래밍'시키고, 잉여 가치 창출을 위한 수단들을 끊임없이 검증 없이 '합법화'시킨다

 

각국의 부르주아지 전반에서 '오라클'의 관리 및 동작과 터미널을 통한 ''의 생성과, 처벌받지 못한 비범죄화된 존재들을 사회적으로 용인하고, 이들을 통합시켜 금융 전반에서 경영 관리자들의 데이터 자료 입력과 비효율적인 관리 생성 체계를 입출력하게 된다. 주식 선물 및 옵션, 그들의 서버 및 통신망을 제어 및 관리하면서 상품에 붙는 세금에 대한 무역 과세를 높이고이러한 부르주아 금융 통합 체계를 달성하게 되면서 '뱅킹''모듈'의 일부를 복잡화시킨다. 그들의 '데이터 베이스'는 부르주아만의 독창적인 연구소이다. 그것은 입력·출구 방식에서 '컴퓨터 언어' 전반의 설계를 자신들의 이윤 추구의 획기적인 발상으로, 노동자의 노동력을 끊임없이 소모시킬 수 있는 임의적 기준을 재정립하게 된다. 이는 군대 및 경찰에 의한 국가 폭력과 '프로파일링'을 통한 경찰 치안의 방관에 대한 기록 말소 효과와 국가 중앙 수사국 및 정보국, 그리고 단속국의 기밀 문서 등과 같은 은폐되었던 대량의 기밀 문서 유출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자국의 금융 전반을 지배할 수 있는 가상 발전 체계를 '가상 서명' 방식의 동의 요구를 수동적으로 제어하며 그러한 작동 방식을 '무지한' 노동자들에게 요구하게 된다. 결국 노동자 간의 경쟁 심화 현상은 이러한 중간 관리자들의 위치가 부르주아지 집단의 일부로 소속된 상태에서 국가법과 그 형식하에 암묵적인 동의까지 요구한다. 그것은 단순히 정부 전산 시스템의 불필요함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 세금' 관련 문제를 노동 계급에 엄격하게 한정시키며, 부르주아 자신들만의 강령을 노동자들이 처리할 행정 업무로 주입시킨다

 

시스템 

 

정부의 전산 시스템의 관리자들의 기술은 금융 전산 시스템의 프로그램들과 동일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관리자들 간의 '엔지니어링'이란 지배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별도의 '안보망'을 구축하면서 국방 전산 시스템 등 치안 유지를 위한 일부 시스템을 구축하며 인간의 사고 전반을 부르주아 사회에 통폐합시킬 수 있는 비효율적인 교육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기억한다.' 다만, 자본가 그 자신의 시스템을 기만하고,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시킬 수 있는, 식민지의 수탈의 역사적 기록을 '삭제'시키고, 자본에 의한 산업 발전이라는 인공화된 기억을 주입하면서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고대하게 된다그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더욱 고도로 발전한다. 이러한 통제하에 각국의 범죄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의 원인이 가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정신 질환에서 오는 것이라 믿는다. 특히 프롤레타리아트 범죄자들은 관리 대상으로, 그리고 일반인들과 분리된 존재라는 규정으로 인해 범죄 문학의 생산은 심화되어 결국, 이러한 체제 일환의 원동력을 기회로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선 노동자를 살해하는 부르주아지를 위한 범죄자로 거듭난다. 그들의 살해는 곧 시스템의 주역인 부르주아지들의 기회가 된다. 모든 물적 거래는 '가상화'되고, '자동화'되어 그것에서 보호받아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착각'이 자본가 간에도 전파된다

 

기계화란 부르주아 사회와 격리된 상태에서 자신들의 안전을 보호받는 시스템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반대로, '새로고침'을 취한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손쉽게 제도화하여 체제화시키고, 부르주아지 가문에 종사하는 더 유능한 인력을 발탁하여 그들만의 출신 성분의 기틀을 다질 수 있는 명분을 더욱 생산한다. 부르주아 자신의 범죄 기록을 말소하고, 그것과 무관한 범죄자들의 흔적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자의적·임의적 처리가 기능하면서 '아무것도 사고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은 무일푼으로 자본의 노동에 종사하는 임금 기계의 일부로 활동하게 된다. 모든 이들은 '디바이스'의 일부만이 자신의 전부라 가정하며 부르주아 논리가 무엇인지도 평생을 가닿지 못한 채 방대한 데이터 더미에 갇히거나, 목적을 잃은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이 노동자라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자본가의 통제를 받는다. 자본 관리의 인공화가 더욱 진행됨에 따라 이들을 통제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이들의 신분증이 곧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급은 더욱 세분화되고, 이러한 각층의 구성원들은 시간의 변화가 마비된 채 군대의 시간처럼 비효율적인 관리 수단의 대상으로, 또는 '무결성'된 결함없는 인간만이 남는 특정 인종 및 성별만이 잔존하도록, 소수 부르주아지들에 의해 '감시'되고, '도촬'된다

 

이러한 문법들의 조직은 '데이터 스토리'가 되고, 기밀 코드를 작성하고, 그들만의 언어를 동작시키는 새로운 컴퓨터 언어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사생활 보호를 명분으로 바이러스를 늘리면서 결과적으로, 바이러스 노출을 위협하여 별도의 프로그램 설치를 요구하게 된다. 동작 언어를 활용하여 노동자에게 기능적 복종을 요구한다. 이러한 부르주아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방식과, 최근 '화성인 탈출 계획'까지 인간이 도달하는 '최고의 경지'가 아니라, '최악의 역사'가 기록됨에도, 그러한 자본가의 자존심이란 자본 사회의 심화된 개인 경쟁과 정치적 자금줄을 형성하여 부르주아 지식인 출신 노엄 촘스키 그 자신이 창안한 '변용 언어'와 컴퓨팅의 대입의 기여로, 이러한 '수동적 존재'를 인위적으로 '자동적 존재', 자신의 모호한 주장과 행적을 숨기고, 이러한 교제를 정당화하는 '선구적인' 변절자로 남는다. 부르주아지 전반의 네트워크를 위한 프레임워크, 라이브러리, 유지 보수의 Solid (SRP, OCP, LSP, ISP, DIP), 와이어 샤크, 테라포밍, 트래픽 제어, 하드 웨어 관리 및 물리 구조 방정식 등 복잡 언어의 존재는 인공 생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애자일에 의한 비즈니스 소통 방식은 SRE, ARM, GIC, 트랜스포머, 블랙 박스 등 이러한 광범위한 제어 기능들을 토대가 사물의 통제 원인으로, 기능 고장을 방지하기 위한 대부분의 예방책을 차선책으로 간주하여 사고 충돌의 원인을 일시적으로 제거한다. 그것은 결국, 이러한 복잡 언어의 개념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부르주아 유학파 출신의 기술자들이 의도한 개념 혼동을 초래하고, 노동자 간의 모호한 정의에 의존한 채 사고 방지가 사고 유발이 되는 '기적의' 원인으로 규정된다.  

 

이러한 소스 코드 (원인)과 오픈 코드 (결과)는 결국 자본의 유로화 방침을 제공하기 위한 자본가들만의 코드가 된다. 그것의 생성은 곧 자본의 독점 수단을 위한 일종의 방편과 독점의 재부상과 같으며 그것의 무상화가 아니라, 수익 창출을 위한 '부분적 유료화'를 프로그램에 확대한다. 결국 인공 수단은 제어하지 못하고, 자본가들의 통제만 강한 '자유로운 네트워크'가 기능하여 마치 '원자력의 통제''양자 컴퓨터'의 접촉된 계산과, 핵 융합 회로의 건설을 '정당하게' 추진하며 지배 계급 간의 전쟁을 부추기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한 위험성과 경고는 기술진 내에서도 기밀로 부쳐지고, 그것을 세간에 공개한 이들은 '의문사'를 초래하고, 도리어 자본주의의 동력 자체의 활성화로 '희생된다.' 이들의 의문은 '블랙스크린'으로 가려진 채 세부 조사마저 은폐된다. 그것은 자체로 붕괴된 핵 폭발의 위험성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의 폭발성', 그 실체인 것이다

 

클라우드 

 

'모든 것을 공유하고, 전유하고, 연결한다는' 이러한 만능의 자연적 무한성을 닮은 '클라우드 서비스'USB보다 못한 메모리 칩의 수준에서 발전하여 그들의 세부 정보와 자료들의 민감한 모든 '영상 및 사진'들까지 첨부하게 되면서 그들만의 소유 전반을 관리하고 형성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클라우드'가 아니라, 뜬구름인 것이다. 이러한 '모국어'의 말살 사태를 보기까지 클라우드의 집단적 형성은 부르주아에 의한 정신 질환, 아니 오히려 정신 병원에 수용되어야 할 대상이 바로 그들임을 증명하고 만 것이다. '클라우드' 속의 세상에서 진보를 자치하고, 선의를 위장한 채 자신의 성욕을 담는 그릇까지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하고 요청한다. 그것의 일상은 밀접하게 공유되고, 희화화되고, 자신의 시각을 계급적 구분이 아닌, 이를 희석한 혼재된 '사이트 내의 구성원'으로, 이를테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면 하드웨어를 구매할 수 없는, '마이크로소프트'만이 전부인, 그것을 제작한 노동자들이 아니라, '빌 게이츠'의 명의로 도배된 경제적 클라우드의 부르주아 속성을 대변하게 된다. 그리고 원대한 '실리콘 밸리'의 제자들은 새로운 꿈을 찾아 정치적 입지의 영역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그들의 음향을 조정하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공유하여 저작권 전반의 모든 소유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환원시켜 '자유롭게 공유'하고, 상품에 대한 물신 숭배의 대상으로, 노동자의 범죄를 더욱 부추기고, 자신들의 과오를 가리는 식으로 모든 계급적 논의를 희석시키며 배제시킨다. 그들은 출판물 및 서적에 대한 관리까지 저작권을 독점한다. 예술 자체가 이제 그들만의 소유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업물에 대한 창작 의욕까지 망각한 상태로 '클라우드'의 일부가 되어 자본가에게 독점화된다. 그것이 곧 음향 제어, 소리 통제가 유도하는 가장 큰 함정이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곧바로 '음소거'하는 것.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여 통계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 자본 화폐의 배후에 물가 폭증과 노동자의 필연적 죽음이 발생한 것. 그것은 족쇄를 자신에게 채우면서 자유롭다 말한다.   

 

개발진 

 

개발진들은 그 자신이 임금 노동자임에도, '화폐 가치'보다 더한 잉여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만다. 이들은 결국 '서버'라는 영화에 고용된 자막의 일부분이며 부품일 뿐이다. 금융업계의 발달로 인해 그것을 제어할 통제 권한이 있음에도, 자본가 집단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그들 중 일부는 '성실하게 일하여' 관리자의 일부로 겨우 가담하여 자회사를 위한 출판에도 손을 뻗는다. 그러한 평가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평생의 연금 보장과 주택 대출을 갚기 위한 노고로 치환되어 자신의 생존을 위한 지름길이라 평하며 소개한다. 개발진들은 자신들의 영업 기밀까지 기업 간 거래 수단이 되어 상품으로 교환된다. 그것은 물론 불법이지만, 모든 국가들은 이러한 불법을 합법화시키는 명분들도 '정상화'시킨다. 개발진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개발하기 전까지 '밤샘 노동'을 더하여 주·야간과 일정한 임금 보수를 받는 대가로, 그리고 성실한 신분의 진급을 위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들의 '이상'에 투자할 가치로부터 남은 연금을 수령하며 노후에 만족하며 평생의 시간을 개발과 더욱 무관해진, 사내의 상사와 고객 맞춤의 명령을 받고, 자본가의 '수익 창출'을 위한 노동 수단을 활용하게 된다. 그들이 소모되면 부품의 역할을 완수하고, '보수가 아니면 대안이 없는 식'의 논리를 구축하여 오히려 더 폐쇄적인 인간으로 변모한다. 그들의 자녀에게도 자신의 가치를 주입시켜 자신들이 소외된 존재라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평생을 잊고,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마저 잊고 산 채, 정치적으로는 당시 링컨이 처했던 남·북 전쟁과 노예제 앞에 선 공화당보다 더 처참한, 자본가를 살리고자 공화당 내 '경제적 민주화'를 노예처럼 외친다. 그것은 이제 그들이 생산한 '인공 수단', , 자본가의 생산 수단의 일부가 됨을 방관하게 된다. 그리고 부르주아지를 지지하며 '민주주의'로 인해 '행복'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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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2. 15. 


새로운 세대

 

국민학교 시절이 아닌, 초등학교를 다녔고 공립의 의무를 완수하기 이전에, 공립과 사립이 잔존하여 '야간 자율 학습''교내 체벌과 학교 폭력'이 대두된 시점은 2008-2013 무렵이었다. 지금과 같은 교내 모습과 큰 차이를 보였을 정도로, 초등학교 이전 세대들은 30-50명 정도가 수용되는 학교는 19세기의 각축장과 닮았고, 서서히 노동 인구가 감소하여 지금과 같은 교실을 보이게 되었다. 지금은 한 학급당 10-20명 정도가 수용되지만, 예전에는 10-11반이 초과되는 학교가 많이 존재했다

 

국민학교 출신들은 방과후에는 대가족 어르신들의 집안일을 돕거나, 명절이면 분비는 큰댁의 차례상을 지내며 잔치날보다 더 분주하고, 번거로울 정도로 집안일을 많이 치렀던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이것이 유교적 영향이 깊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전통 방식이란 오히려 가난한 백성일수록 차례상을 자신의 형편에 맞게 지냈다. 그것이 '전통적'으로 해석된 고질적인 차례상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고정됐다고 볼 수 있겠다. 이처럼, 학생들에게 방학과 명절은 대체로 반가운 날이지만, 학교를 간다는 것 자체가 노동과 다를 바 없어진 지금의 사회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이 세대들의 공통점이라면 오래되고 습한 나무 바닥의 작은 가시에 찔리거나, 교내 청소를 학생들이 담당한 적이 있었다. 외국인 학생들은 이를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19세기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낙후된 교실의 환경과 지저분한 놀이터에서 가난한 아이들은 비싼 학원비를 감당하고, 자신의 자유를 곧 '성적의 기준'이라 여기면서 자라 왔다. 그것이 곧 지금의 '어른'이 된 이들이 체감하는 삶에 대한 깊은 소외와 맞닿아 있다

 

그럼에도, 이들 중 일부는 그것에서 이탈했다고 볼 수 있는 '홈스쿨' 교육을 별도로 받거나, 사교육을 그만두었고, 공교육의 대안을 고려하여 성적을 중심에 두지 않는 자유 교육관을 가진 부모들도 존재했다. 이들은 자신이 유명한 명문대를 나왔음에도, 사교육 시장의 형성까지 어느 정도 체감했기에, 그것에 일부 반대를 표하며 자녀들을 학교 생활 내에서, 또는 그러한 박탈감을 더 이상 겪지 않도록 노력했던 것도 일부분 사실이다. 지금도 현 세대 부모들은 자녀의 학원과 양육에 대해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지만, 그것은 '결혼과 자녀'에서 부담의 의무로만 여기는 고정된 관념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어 밀집하여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임금 노동 생계를 유지하면서, 그것을 그만두어 자녀 양육의 분배를 주위와 나누고 싶어한다. 이는 결혼 생활의 유지 비용마저 개인의 책임으로만 한정하여 감당하기 어려운 '소득의 격차'마저 줄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아이들은 긴 초등학교의 일정 수준의 의무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노동 현장에 들어가기 위해 사회적 평균 조건을 따지고, 이러한 국공립과 사교육의 대립이 남긴 허점은, 자신들의 이익이 먼저인 '자본의 문제'와 실질적으로 직결되고 있을 때조차 대학 교육의 실상을 체감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교내 성적을 1위한 것은 자신에게만 중요한 것이다. 특히 기계 공학자에 대한 진로를 가진 이들은, 그러한 부모에게 교내 성적을 대단히 중시하는 경향을 물려받았다. 그러한 부모의 '안정적 바램'이 일부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협소한 시각'일 뿐이다. ·문과로 분리해서 사고하는, 또는 대학의 '융복합화'를 위해 더욱 사회적 평균의 수준을 상향 조정하는 방식을 부추기고 전제한 결과가 결국 시장화된 대입 시험 문제의 결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업의 형성''성적에 대한 고집'이 빚은 '취업'의 실태와 '자포자기'의 측면도 생겨났다. 이는 곧 '생계가 아니면 대안은 없다.'는 극단적인 사회적 시각이 사회 전반에 형성될 우려가 있다

 

앞으로 학교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닐 것이다. 4년제가 꼭 인생을 좌우하는 의무가 아니듯이, 지금의 정규 교과를 반복한다는 것이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기초의 인식들도 저변에서 확대되고 있다. 그것은 세대의 차이로 인한 부모의 간극이 자본의 '현대화'에 따른 극심한 피해를 남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일제식 국가의 통제하에 잔존하던 일정 시간에 태극기를 보며 애국가의 곡조를 듣는 관습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다닌 부모들은 야간 자율 학습이라는 그 고역을 그만두고 싶은 기조가 생겼다. 이러한 세대 차이로 인한 간극은 '자본 사회'로 편입되기 위한 극심한 경쟁 및 충돌을 빚었고, 그것은 서로 간의 '타협할 수 없는 산물'을 거쳐 가족 구성원의 일부가 된다. 이는 곧, 한국 사회가 가부장적 전통 사회에서 곧바로 식민지에 의한 제국주의 과정을 거쳐왔던 산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다

 

이를테면, 반드시 정규 교육을 마치지 않더라도 노동 현장에 종사하거나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자격과 계산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우하는 태도와 독서를 중시하는 풍조에서 자라날 수 있다. 따라서 교실보다 도서관이 앞으로 더 중요한 자양분인 셈이다. 결국 이전 세대가 각자 안고 있던 부모의 고민이 이제는 더 이상 '개인의 고민'만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이상적인 단상'일 뿐인 것일까. 자신의 직업과 진로의 적성이 생계로 인해 지금까지 불일치되는 지점에서, 미술을 하려면 학원을 다니는 그러한 편협한 시각이 모여 지금의 '예술가''천재''재능'의 영역으로만 치부하여 한정하고 말았던 것이다. 적어도, 아이들은 각자의 성장통을 겪더라도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 세대와 독립하여 자신의 둥지를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은 아이들을 '새장의 둥지''개구리의 우물'만이 이 세계의 전부라고 여긴다

 

'아이들은 학교와 대학이 아니라, 도서관과 놀이터에서 자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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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2. 12. 


시대 정신

 

지금까지 시대정신이라 함은 때때로 헤겔이 언급한 이상적인 '위인'을 말했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른 일화 정도를 전하려 한다. 분단 시대가 도래하기 전부터 고려를 패망시키고, 조선은 중앙 집권의 기틀을 일찍 다졌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침략했을 때 군주제의 유지하에 더 큰 부를 가져다 주겠다는 일본의 영토 밀약에 서명을 한 고종과 순종 부자는 결국 일본의 황태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반도의 외부 침략을 지금까지 정당화하는 일부 증거로 남게 되었다. 그로 인해 한국에서도 이러한 군주에 의한 계약 서명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한반도 내 더 큰 식민지적 혼란을 추구하게 만든 원흉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일본 민족에 대한 혐오를 표시해서는 아니다. 다만,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그것에 복무한 이들에게 가장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

 

결국 6.25를 기점으로 분단에 의한 두 국가가 성립되었고, 한 진영은 스탈린의 지도하에, 또 다른 진영은 미군정의 치하하에 분리되는 상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중요한 지점이 있다면 신분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기존의 토지 일대를 점유하고 있던 봉건 귀족들은 미국과의 원조 끝에 치부를 맞이한 무역 상인들과는 달리 하향된 신분 속에서 갈림길을 맞이하였다. 그들은 기존의 중간 계급보다 못한 상태에서 붓만 다룰 줄 아는 신세로 전락했다. 일부는 양반 세력과 결탁하여 국가 왕조의 부활을 기대하며 대한 제국에 복무했지만, 일부는 결국 농민의 길을 택하였고, 지금까지 '선비'라는 이름을 감추면서 이러한 귀향을 벗삼아 농민들과 함께 지내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 추측이 맞다면 일부는 경주 및 안동 지방에 여러 분포한 성씨 가문들이 대체로 명문 가문들이 많았지만, '패가망신' 당한 채 농촌 지방으로 이주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농민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었다는 일부 주장도 타당하게 된다

 

무산 계급 역사의 상실

 

그러나 왕조 성씨와 일반 성씨가 동일한 성씨라고 하더라도, 계보에 의한 구분이 오히려 일제에 의한 족보가 훼손된 상태에서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오히려 봉건 왕족의 잔재였다고 밝히고 싶다. 중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신세로 전락한 이들은 선비나 농민이나 가릴 것 없이 어울려 공동체를 구성했다는 점은, 조선 왕조 사회와는 다른 풍경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구성원들은 지금도 일부 남아 독립 운동에 종사하거나, 때때로 국가를 위해 희생을 치르기도 하였지만, 그것을 이 자리에서 논하는 것은 조금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정치적 진영에 의한 민족지들은 북을 선택한 이들조차 비슷한 성씨가 많이 분포했으며 이들 중에서도 일본 제국주의를 선택한 이들에 대한 처벌이 어느 정도 이뤄졌는지는 아직 사실 파악을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에 의한 재산의 수탈 과정과도 일치하며, 지금의 '친일파'라고 불리던 재산을 불리는 존재들에 대한 한국의 잔재를 매우 세부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봉건 제도는 이런 식으로 제국주의가 침략을 했을 때의 모순적인 상황을 고스란히 자본주의와 함께 재건하면서 더욱 혼란스러운 수습기를 거치도록 만들게 된다. 그들은 오히려 국가를 옹호하는 논리를 펴거나, 때때로 국가보다 더한 대한 제국을 기리면 기렸지 이러한 혼란을 정체시키도록 만든 측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장기간의 군부 독재까지 도입한 국가 헌정 사상의 일부를 이루었고, 미군정 치하에서 제작된 헌법의 기틀 아래에서 민주주의가 '합당한' 제도 자체로 정착하고 말았다. 제도는 곧 경제 제도로 설명해야 함에도, 민주주의라는 이념 자체를 제도로 만든 관념적 모순은 이러한 현대 국가적 상황에서도 그대로 잔존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그동안 계급적 구분의 부재가 초래한 결과는 오히려 '영친왕'의 사례에서도 보여주듯이, 그들의 후손들이 여전히 잘 생존하여 더 많은 사회적 훼손을 야기한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그들은 '자수성가'했다고 말하지만 미군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지금의 자본의 기업을 설립하여 부흥하였고, 그것은 여전히 계급적 차별 및 정치적 폭력까지 정당화시키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배후의 권력이 되며 곧 부르주아 독재의 일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친노동자 출신이더라도, 이는 사회적 신분 및 출세가 그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계급적 위치'가 그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

 

계급 투쟁

 

그러면 계급 투쟁은 일단락된 것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부르주아지들의 독단적인 의회 정치가 벌이고 있는 국가 쟁탈전의 그늘하에, '서민을 위한 정책'을 피겠다고 말한 한 '포퓰리스트'의 구도에서 지금의 군부 독재의 장본인을 부정하면서도, 정작 부르주아지의 일부로 견제 및 통합된 사회적 시각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그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계급적 위치로 설명된다. 그동안 프롤레타리아트는 정녕 누구를 기리며 맞설 도구조차 없이 항복을 선언해야만 했던 것인가 (!) 그것은 일본의 수탈을 지켜보고, 아니, 창씨개명에 겨우 의존해야만 살아남던 지금의 상황과 과연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한 이들의 전 생애는 지금까지 두 국가론에 갇혀 서로와 마주보지도 못하고, 부르주아 견제도 아닌, 평생을 자본의 굴레에 갇혀 살았다고 언제쯤 말하게 될까.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이러한 노고와 활동을 전개한 가난한 출신의 '프롤레타리아트'이야말로 오히려 이 시대정신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인 것이다

 

'작은 이익을 보고 들이친다면, 큰 이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충무공, 난중일기, 갑오년 (1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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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2. 05.


인터내셔널의 의의

 

19세기의 세계 역사를 다루는 이들이라면 '인터내셔널' 창립을 보게 된다. 물론 노래는 들어봤어도 의미는 모를 수도 있기에, 매회마다 주기적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인민들의 보통 선거제에 의한 선출 방식이 아닌, 각국 노동자들의 추천 방식으로 채택된 노동계 인사들이 연단에 모여 안건을 논의하면서부터 시작하였다. 주요 안건은 산업 발달기의 자본가를 어떻게 상대할 것이며, 노동자의 요구를 담은 제안서를 토대로 강령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오랫동안 숙련된 노동자들이었으며, 자신들의 처지에서 분명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인터내셔널의 창립 배경이 현대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각국 정상들의 '국제 기구'를 자임하는 지금의 UN 정도의 역할과 경쟁 사회 진입에 승리한 자본가 개인의 계보적이고 독점적인 부흥에 앞서, 이들은 노동자의 역할에 대해 실질적으로 자문하여 토론하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각국의 상황을 보도보다 빠르게 연락을 취했고, 이에 대처하여 교류할 수 있었다

 

이들은 노동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숙고하여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정치적 정당 건설까지 앞서 이루었다. 이러한 시도가 현재에는 비록 붕괴된 시점이지만, 20세기까지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도 있다. 노동자들이 이 국제 기구에 전원 가입하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뜻을 모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신들의 처지에서 다루어진 심도 깊은 강령과 안건을 제시하였고, 지금도 그 선언문은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남기고 있다. 이처럼, 국제 노동자 협회의 설립 및 운동 배경이 노동자 개인의 독단적 성향에서 형성된 노동 사회에 대한 착각으로 여긴다면, 인터내셔널의 의의를 되새겨 보는 일은 중요하다

 

전 세계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국가 및 지역마다 개별적인 배경 또는 특수한 상황에 따라 노동자 투쟁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을 두고 필연적이라 부른다면 이러한 자발적 노력 이전에, 도대체 노동자를 위한 정치적 조직 건설이 왜 필요한지를 어느 정도 아는 것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된 시점에서 유효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의 자본가들은 '포브스', '다보스', '이코노미스트' 등과 같은 유명지와 포럼을 토대로 경제적 협의체를 구축하였기에 자본 계급만의 독점적인 자본 구조 역시 형성된다. 전 세계의 자본가들이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본의 혁신을 자랑하는 시점에서, 당면한 노동자들은 자신을 요구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 건설적인 '국제 기구'와 매체가 점차 부족해지는 현상은 비단 국내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자본 사회에 연쇄적으로 묶여 있는 전 세계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인질을 삼는 '잔혹한' 정상 전쟁의 이면에서도 충분히 드러난다.  

 

이처럼, 한 개인의 노동자가 지닌 생각은 점차 중요해진다. 특히 자신이 노동 계급의 일부임을 자각함은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상호 간 자신의 상황에 보태어 전 세계 노동자의 단결에 대한 인터내셔널 기구의 '필요' 역시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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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02. 04. 


1. 지금까지 사전적 용어는 그 표기가 잘못되었다.  

 

2. 본래 헌법은 국가의 유지 기능과 통치 기구의 보존을 위함이다. , 헌법은 폐기된다

 

3. 기존의 선거 제도는 정치적 자유에 따른 보통 선거권이 주어졌지만, 선출된 의원들로 인해 적합하지 못하다

 

4. 11표 제도가 동등하게 주어지더라도, 확률적인 의존도가 강한 투표제는 그 선거 제도의 한계이다

 

5. 대의제에 따른 노동권 역시 자본주의 순환에서 자본가 간의 경쟁 및 격차를 심화시킨다

 

6. 모든 국가 원수는 '인민의 적'이다. 임기는 보장될 수 없다

 

7. 소비에트는 우리말로 '평의회'라는 뜻이다. 노동자들의 추천하에 채택된 노동 인사들은 노동자 평의회의 심사를 받게 된다.

 

8. 자본주의는 자발적으로 붕괴되지는 않지만, 언제나 내재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9. 모든 법률의 권한은 '일시적'이며, 그것은 곧 노동 인민과의 충돌이다

 

10. 국방력과 공권력은 지배적이지만, 인민 전반의 반발을 일으킨다. 따라서 징집제는 무의미하다.  

 

11. 모든 생산력의 주인은 노동자이다. 이들은 일정 소득이 없는 무산자가 자립할 수 있도록 '무조건' 지원해야 한다.   

 

12. 주택 시장은 붕괴된다. 반대로, 이는 곧 주택의 보급이다

 

13. 경제 제도는 시장 경제가 아닌 계획 경제로 대체된다

 

14. 아이들은 입시 제도를 비판하여 거부할 권리를 가지며, 자유로운 교육관을 선택할 수 있다. , 기초 노동자 학습 필수 

 

15. 노동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니다

 

16. 모든 기존의 고위직 장관 및 의원들은 사퇴해야 한다. 그리고 심사된 하위직 노동자 인사들로 대체된다.  

 

17. 모든 강령은 노동자 간에 충분히 비판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18. 모든 은행 및 주식은 '몰수의 대상'이다

 

19. 의료 및 교통은 논쟁 대상이 아닌 전면 무료화이다.  

 

20. 모든 기술의 자유는 노동자의 무료 수단이다

 

21. 매회 주기적인 국제 행사 및 노동자 추모제를 개최한다

 

22. 노동자에게는 인종 및 국적이 없으므로, 각국의 침략 및 모략 의사도 없다.   

 

23. 노동자 간 불상사 및 피해가 발생할 경우, 중재 위원회를 구성해 노동자 심의에 따른 '사형까지' 결정하여 하부에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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