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생산 과정의 분석을 위하여

 

본 분석에서는 가치와 생산 가격의 차이를 도외시한다. 사회적 총자본의 연간 총생산물 가치를 고찰할 때, 개별 상품 수준에서 나타나는 가치와 생산 가격의 편차는 상쇄되어 소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생산물의 가치 구성과 그 배분 구조를 분석함에 있어 두 개념의 일치는 논리적 타당성을 지닌다.

 

이윤 (기업가 이득 + 이자) 및 지대는 상품에 체현된 잉여 가치가 분할되어 나타나는 특수한 형태()에 불과하다. 잉여 가치의 크기는 이들 분할 부분들의 합계에 대한 양적 한계를 설정하며, 따라서 평균 이윤과 지대의 총합은 잉여 가치의 총계와 일치한다. 비록 상품에 포함된 잉여 가치 (잉여 노동)의 일부가 직접적으로는 평균 이윤 형성을 위한 균등화 과정에 참가하지 않음에 따라, 상품 가치의 특정 부분이 가격으로 온전히 표현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다음과 같은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첫째, 가치보다 낮은 가격으로 판매되는 상품이 불변 자본의 구성 요소가 될 경우 이는 이윤율의 상승으로 이어져 가치와 가격 사이의 편차를 상쇄한다. 반면, 해당 상품이 개인적 소비 수단으로서 수입을 매개로 소비될 경우에는 이윤과 지대가 더 많은 양의 생산물로 표현됨에 따라 사회적 등가성이 달성된다.

 

둘째, 이러한 불일치는 평균적인 운동 과정에서 상쇄되어 제거된다. 가치 형성 과정에서 제외되는 경우에라도 상품 가격으로 구체화되지 않는 잉여 가치 부분이 존재할 수 있으나, 전형적인 상태에서의 평균 이윤과 지대의 총액은 총 잉여 가치를 초과할 수 없으며 다만 그보다 작을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전형적인 형태란 노동력 가치에 부합하는 임금 지불을 전제로 한 상태를 의미한다.

 

따라서 독점 지대 또한 임금의 공제분으로부터 형성되는 특수한 형태가 아닌 한, 언제나 간접적으로는 잉여 가치의 일부로 귀착된다. 독점 지대가 차액 지대의 경우처럼 개별 생산 가격을 초과하는 초과분의 일부가 아니거나, 또는 절대 지대의 경우처럼 평균 이윤을 초과하는 잉여 가치의 잉여분이 아닐지라도, 이는 여전히 당해 독점 상품과 교환되는 타 상품들에 체현된 잉여 가치의 일부를 구성한다. , 독점 지대는 사회적 총 잉여 가치가 재분배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전된 가치 형태다.

 

평균 이윤과 지대의 총액은 그것들의 원천인 분할 이전의 이미 주어진 잉여 가치의 크기를 초과할 수 없다. 따라서 상품에 내포된 총 잉여 가치 (총 잉여 노동)가 가격으로 온전히 실현되는지 여부는 본 분석의 본질적 타당성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실제로 잉여 노동은 완전히 실현되지는 않는다.

 

노동 생산성의 끊임없는 변화로 인해 사회적 필요 노동 시간이 끊임없이 변동하며, 이에 따라 불리한 조건 아래에서 생산된 일부 상품은 필연적으로 개별 가치 이하로 판매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윤과 지대의 합계는 실현된 잉여 가치 (잉여 노동)의 총량과 일치하며, 본 연구의 목적상 실현된 잉여 가치는 총 잉여 가치와 동일한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이윤과 지대는 실질적으로 실현되어 상품 가격에 산입된 잉여 가치에 해당하므로, 현실적 관점에서 이들은 가격의 구성 부분을 이루는 총 잉여 가치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수입의 제3의 형태인 임금은 언제나 자본의 가변적 구성 부분, 곧 생산 수단이 아닌 살아있는 노동력의 구매와 노동자에 대한 보상에 투입되는 부분과 일치한다. 가사 노동 (하인의 노동)과 같이 수입의 지출로 구매되는 노동은 임금·이윤·지대에서 사후적으로 지불되는 것이므로, 상품 가치의 원천적 구성 요소를 형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노동은 상품 가치의 본질적 구조를 분석하는 고찰 대상에서 제외된다.

 

임금은 노동자의 총 노동 시간 중 가변 자본의 가치, 곧 노동의 가격이 재생산되는 부분이 대상화된 결과다. 이는 상품 가치의 구성 부분 중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 가치 또는 노동의 가격을 실질적으로 재생산하는 영역에 해당한다.

 

노동자의 총 노동 시간은 두 부분으로 분할된다. 전반부는 노동자가 자신의 생활 수단 가치를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노동을 수행하는 부분으로, 이는 대가가 지불되는 부분이면서 동시에 노동력의 유지와 재생산에 필수적인 필요 노동에 해당한다.

 

노동 시간의 나머지 부분 전체, 곧 노동자가 임금 가치를 상회하여 수행하는 초과 노동 (초과 노동량) 전체는 잉여 노동이자 미지불 노동을 구성한다. 이는 생산된 총 상품 가치 중 잉여 가치 (및 초과 상품량)로 나타나며, 이 잉여 가치는 다시 이윤 (기업가 이득 + 이자) 및 지대라는 세분화된 명칭의 수입 형태로 분할된다.

 

따라서 상품 가치 중 노동자가 일정 기간 추가하는 총노동이 실현되는 부분 전체, 곧 연간 생산물의 가치 중 새로이 창출된 가치 전체는 임금의 가치, 이윤, 지대로 분할된다. 이는 총노동이 자신의 임금을 형성하는 필요 노동과, 이윤 및 지대로 분할되는 잉여 가치를 형성하는 미지불 잉여 노동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이 총노동 이외의 다른 어떠한 노동을 수행하지 않으며, 생산물 가치 중 임금·이윤·지대의 형태를 취하는 부분 전체 외에 다른 어떠한 가치도 형성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연간 생산물 가치 중 당해 연도에 새로 추가된 노동을 대표하는 부분은 가변 자본의 가치인 임금과, 이윤 및 지대의 형태로 분할되는 잉여 가치의 합과 일치한다.

 

결과적으로 연간 생산물 가치 중 당해 연도에 창출된 부분 전체는 임금의 가치, 이윤, 지대라는 세 가지 수입의 연간 가치 총액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연간 가치 생산물 (v+s) 내에서 자본의 불변 부분 (c)의 가치가 재생산되지 않음은 분명하다. 임금은 생산에 투하된 가변 자본의 가치량과 일치하며, 지대와 이윤은 투하 자본의 총자본 가치 (불변 자본 + 가변 자본)를 상회하여 생산된 잉여 가치 (가치 초과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윤과 지대의 형태로 전환된) 잉여 가치의 일부가 수입으로서 소비되지 않고 축적에 투입되는지 여부는 본 분석의 핵심 쟁점과 무관하다. 잉여 가치 중 축적 기금으로 전용되는 부분은 새로운 추가 자본의 형성을 뒷받침할 뿐, 기존 자본 (노동력 또는 노동 수단에 지출된 자본)의 보충에는 기여하지 않는다. 따라서 분석의 명료성을 위해 모든 수입은 전액 개인적 소비로 지출된다고 전제한다.

 

이 시점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가 제기된다. 한편에서는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들이 소비 수단으로 삼는 연간 생산물의 가치에는 당해 생산 과정에 투입된 불변 자본 (c)의 가치량과 동등한 가치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 연간 생산물의 가치는 가변 자본 (v)과 잉여 가치 (s)로 분해되는 수입 부분 외에도, 생산 수단의 가치 이전을 의미하는 불변 자본 가치를 구성 요소로 가진다. 결과적으로 연간 생산물의 총가치는 임금 + 이윤 + 지대 + c’의 식으로 정식화되며, 여기서 c는 불변 자본의 가치를 지칭한다.

 

그렇다면 연간 새롭게 창출된 가치 (임금+이윤+지대)가 어떻게 그보다 큰 임금+이윤+지대+c’의 가치를 지닌 총생산물을 구매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 당해 연도에 창출된 가치 총액이 어떻게 그 자신의 크기를 상회하는 가치를 보유한 생산물 전량을 흡수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분석의 핵심적 과제로 부각된다.

 

다른 한편으로, 불변 자본 중 생산물로 이전되지 않아 (따라서 비록 그 가치는 감소하지만) 연간의 상품 생산 이후에도 잔존하는 부분, 곧 사용되나 아직 완전히 소비되지 않은 고정 자본을 분석에서 제외한다면 다음과 같은 국면이 나타난다. 원료와 보조 재료 형태로 투입된 불변 자본은 전량 새로운 생산물로 이전된 반면, 노동 수단은 일부만이 완전히 마모되거나 부분적으로 소비되어 그 가치의 일부만이 생산 과정에서 이전된 상태다.

 

생산 과정에서 완전히 소비된 불변 자본의 부분은 반드시 현물로 보전되어야 한다. 노동 생산성을 비롯한 제반 조건이 일정하다면, 해당 부분을 대체하는 데에는 이전과 동일한 노동량이 필요하다. 이는 곧 동등한 가치로의 보충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재생산을 위한 노동은 누가 수행해야 하며, 실제로 누가 이 노동을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첫 번째 문제, 곧 생산물에 포함된 불변 자본 가치의 지불 주체와 수단에 관하여 살펴보면,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의 가치는 생산물 가치의 구성 부분으로 재현된다고 상정된다. 이는 불변 자본의 보충 문제를 다루는 두 번째 논의의 전제와도 논리적으로 배치되지 않는다.


자본권 제7노동 과정과 가치 증식 과정에서 규명된 바와 같이, 새로이 투입된 노동은 기존 가치를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여 기존 가치에 부가할 뿐이다. 다만 새로운 노동이 추가되는 과정에서 이전의 가치는 생산물로 이전되어 그 내부에 보존되는데, 이는 노동의 추상적 가치 형성적 특성 (곧 노동 일반으로서의 특성)이 아니라 구체적 유용 노동 (일정한 생산적 노동으로서의 노동)으로서 수행하는 기능에 기인한다.

 

따라서 연간 창출된 총가치인 수입이 지출되는 생산물 속에 불변 자본의 가치 부분을 유지하기 위한 별도의 노동은 요구되지 않는다. 그러나 전년도에 가치와 사용 가치 측면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을 실질적으로 보충하기 위해서는 추가적 노동이 필요하다. 이러한 보충이 수행되지 않으면 사회적 재생산 자체가 중단되기 때문이다.

 

새로 추가된 노동 전체는 연간 새로운 창출 가치로 표현하며, 이는 전부 임금, 이윤, 지대라는 세 가지 수입으로 귀착된다. 그러므로 한편으로는, 소비된 불변 자본의 보충을 위해 배분될 잉여의 사회적 노동이 존재하지 않는 결과가 초래된다. 여기서 불변 자본의 보충이란, 소비된 불변 자본은 부분적으로는 현물과 가치의 면에서 재생산되어야 하고, 부분적으로는 고정 자본의 마멸분의 경우 단순히 가치의 면에서 재생산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연간 노동으로 창출되어 (임금·이윤·지대의) 세 가지 수입 형태로 지출되는 가치 총액은, 수입의 가치를 상회하여 불변 자본 가치까지 포함하고 있는 연간 총생산물을 구매하거나 지불하기에는 불충분한 것으로 파악된다.

 

상기한 과제는 자본권 제3편에서 사회적 총자본의 재생산을 고찰하며 이미 해결된 바 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해당 문제를 재차 규명하는 이유는,

 

첫째, 권의 논의 단계에서는 잉여 가치가 아직 이윤 (기업가 이득 + 이자) 및 지대라는 구체적 수입 형태로 전개되지 않아 이를 포괄적으로 다룰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둘째, 애덤 스미스 이래의 근대 경제학 전반을 지배하는 고질적인 오류가 바로 임금, 이윤, 지대라는 수입의 형태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권에서 우리는 사회적 총자본은 두 개의 부문, 곧 생산 수단을 생산하는 제1부문과 개인적 소비 수단을 생산하는 제2부문으로 구분되었다. 특정 생산물 (: ·곡물)이 개인적 소비와 생산 수단이라는 양면적 용도를 지닌다는 사실이 이러한 분할의 타당성을 결코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 분할은 결코 가설이 아니라 사실의 표현일 따름이다.

 

한 국가의 연간 총생산물 중 일부는 그 물질적 성격과 무관하게 궁극적으로 개인적 소비 영역으로 귀속되며, 이 생산물에 대해 임금, 이윤, 지대라는 수입이 지출된다. 이 영역의 생산물은 사회적 자본의 특정 부문인 제2부문의 생산물이다.

 

설령 동일한 생산 부문 내에서 제1부문에 속하는 생산 수단을 동시에 생산하더라도, 그러나 해당 자본이 생산적으로 소비될 생산 수단을 공급하는 한, 그것은 현실적으로 개인적 소비에 들어가는 생산물을 생산하는 자본은 결코 아니다.

 

개인적 소비에 제공되어 수입의 지출 대상이 되는 제2부문의 생산물 전체는, 해당 생산에 소비된 자본과 거기서 창출된 잉여분을 합산한 존재 형태다. 따라서 그것은 오로지 소비 수단 생산에 투하된 자본의 생산물로 규정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원료나 노동 도구 등 재생산 수단으로 기능하는 제1부문의 연간 생산물은, 설령 그것이 아무리 잠재적으로 소비 수단으로서 전용 여지를 지녔다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생산 수단 생산에 투하된 자본의 생산물일 뿐이다.

 

불변 자본을 구성하는 생산물의 대부분은 물질적 형태상 개인적 소비가 배제된 상태로 존재한다. 가령 농민이 종자용 곡물을 전용하거나 역우를 도축하여 소비할 경우 초래될 경제적 파국이 막대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불변 자본을 구성하는 생산물은 본래부터 소비가 허용되지 않는 고유의 현물 형태를 보전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있다.

 

기술한 바와 같이, 본 논의에서는 두 부문 모두에서 연간 생산물과 무관하게 현물 및 가치 형태로 존속하는 불변 자본 중 고정 자본 부분은 도외시한다.

 

수입이 소비되는 제2부문의 생산물 가치는 임금·이윤·지대가 지출되는 세 가지 성분으로 구성된다.

 

1부분은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의 가치와 동등한 부분이다.

 

2부분은 임금으로 투하된 가변 자본의 가치와 동등한 부분이다.

 

3부분은 생산된 잉여 가치 (이윤 및 지대)와 동등한 부분이다.

 

이때 제2부문 생산물의 제1부분인 불변 자본 가치는 해당 부문의 자본가, 노동자, 토지 소유자 중 누구도 소비되어서는 안 된다. 이 부분은 수입의 구성 요소가 아니므로, 반드시 현물로 보충되어야 하며, 이 보충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그 부분이 판매되어야 한다. 반면, 2부문 생산물의 나머지 두 부분은 해당 부문 내에서 창출된 수입, 곧 임금, 이윤, 지대의 합계 가치와 동등하다. (‘단순 재생산 표식을 상기할 것).

 

1부문 생산물 가치 또한 형태상으로는 위와 동일한 부분들로 구성된다. 그러나 이 부문에서 수입 (임금, 이윤, 지대)를 구성하는 가변 자본 + 잉여 가치의 합계는 제1부문의 생산물의 그 현물 형태상 소비되지 않고, 2부문의 생산물로 전환되어 소비된다. , 1부문의 수입 구성 부분은 그 물질적 형태상 생산 수단이기에 생활 수단인 제2부문의 생산물과 교환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제1부문의 수입 가치는 제2부문의 생산물 중 보충되어야 할 제2부문의 불변 자본 부분의 소비에 투입되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2부문 생산물 중 자신의 불변 자본을 보충해야 할 가치량에 해당하는 부분은 제1부문의 노동자, 자본가, 토지 소유자에게 그 현물 형태로 소비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수입을 해당 제2부문 생산물의 구매에 지출함에 따라 이 과정을 완결한다.

 

다른 한편으로, 1부문의 수입을 체현하고 있는 제1부문의 생산물은 제2부문에서 현물 형태로 구매되어 생산적으로 소비된다. 이 과정에서 제2부문은 자신의 불변 자본 부분을 제1부문으로부터 공급받은 생산 수단으로 실질적으로 보충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1부문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 부분은 노동 수단, 원료, 보조 원료 등으로 구성된 해당 부문 자체의 생산물로 보충된다. 이러한 보충은 부분적으로는 제1부문 내 자본가들 사이의 상호 교환으로 이루어지거나, 부분적으로는 자본가 일부가 자신이 생산한 생산물을 생산 수단으로 직접 재투입하며 수행된다.

 

자본권 제202절에서 제시된 단순 재생산 표식은 다음과 같다.

 

. 4,000c + 1,000v + 1,000s = 6,000

. 2,000c + 500v + 500s = 3,000

 

+ = 9,000

 

사회적 총생산물의 가치 합계 (+ )9,000에 달한다.

 

이 표식에 따르면, 2부문에서는 노동자·자본가 및 토지 소유자에게 500v + 500s = 1,000의 가치가 수입으로 소비되며, 보충되어야 할 2,000c가 잔여분으로 남는다. 이 잔여분은 제1부문의 노동자, 자본가, 토지 소유자 (지대 취득자)가 보유한 1,000v + 1,000s = 2,000의 수입으로 소비된다. , 2부문의 소비될 생산물은 제1부문의 수입으로 처분되며, 생산 수단의 형태를 취하여 직접 소비될 수 없는 제1부문의 수입 부분은 제2부문의 불변 자본을 보충하는 데 생산적으로 소비된다.

 

한편, 아직 제1부문의 4,000c에 대한 설명이 남아 있다. 이 가치 부분은 제1부문 생산물 6,000 중 제2부문의 불변 자본으로 이미 전환된 2,000을 제외한 잔여분 4,000 (= 6,000 2,000)으로 보충된다. , 1부문 내에서 생산된 생산 수단이 다시 제1부문의 불변 자본을 현물 및 가치 형태로 복구하는 데 투입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유의할 점은 상기 수치들이 예시를 위해 임의로 설정된 것이며, 이에 따라 제1부문의 수입 가치와 제2부문의 불변 자본이 일치하는 설정 또한 자의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축적을 도외시한 단순 재생산 과정이 원활하게 지속되기 위해서는, 1부문의 임금, 이윤, 지대의 총액이 제2부문의 불변 자본 부분의 가치와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 이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제2부문은 자신의 생산에 필요한 불변 자본을 보충할 수 없게 되며, 또한 제1부문 역시 자신의 수입을 소비할 수 없는 현물 형태인 생산 수단으로부터 실제 소비할 생활 수단 (소비 수단)으로 전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간 상품 생산물의 가치는 개별 투하의 상품 생산물의 가치나 개별 상품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두 부분, 곧 투하된 불변 자본의 가치를 보전하는 부분 A와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 형태로 나타나는 부분 B로 분할된다. 기타 사정이 일정하다면, 부분 A(1) 결코 수입의 형태를 취하지 않으며 (2) 언제나 자본, 특히 불변 자본의 형태로 환류한다는 점에서 부분 B와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그러나 부분 B 역시 내부적 구별을 포함한다. 이윤, 지대, 임금은 모두 수입의 형태를 취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나, 이윤과 지대가 잉여 가치 (미지불 노동)를 체현하는 반면, 임금은 지불 노동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생산물 가치 중 지불된 임금을 대변하며, 따라서 임금을 보충하는 부분, 곧 단순 재생산 전제하에 임금으로 다시 재전환될 부분은 우선 가변 자본 (또는 재생산을 위해 또다시 투하되어야 할 자본의 일부분)의 형태로 환류한다.

 

이 가치 부분은 이중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우선 자본의 형태로 존재하며 자본으로서 노동력과 교환되고, 이후 노동자의 수중에서 노동력 판매의 대가인 수입으로 전환되어 생활 수단을 구매하는 데 소비된다. 이러한 이중적 과정은 화폐 유통의 매개로 입증된다. 가변 자본은 화폐 형태로 투하되어 임금으로 지불되는데, 이는 자본으로서의 가변 자본이 수행하는 첫 번째 기능이다. 가변 자본은 노동력으로 대체되고 노동력의 현실적 발현인 노동으로 전환되며, 이는 자본가 측에서 진행되는 생산적 소비 과정이다.

 

그러나 둘째로, 노동자는 수취한 화폐로 사회적 총생산물 중 해당 화폐 가치에 상응하는 부분을 구매하여 이를 수입으로 소비한다. 화폐 유통이라는 매개 수단을 배제하고 고찰한다면,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의 일부는 이미 자본가의 수중에 자본의 형태로 존재한다. 자본가는 이 부분을 새로운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자본으로 투하하고, 곧 이 부분을 새로운 노동력의 대가로 노동자에게 주며, 노동자는 이를 직접적으로 또는 타 상품과의 교환을 매개로 수입으로서 소비한다.

 

따라서 생산물 가치 중 재생산 과정에서 임금, 곧 노동자의 수입으로 전환될 부분은 우선적으로 자본의 형태 (구체적으로는 가변 자본의 형태)로 자본가에게 환류한다. 이 가치 부분이 자본의 형태로 환류한다는 사실은 노동이 임금 노동으로, 생산 수단이 자본으로, 그리고 생산 과정 자체가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으로 끊임없이 새로 재생산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 중 하나를 이룬다.

 

불필요한 동일시를 방지하기 위해 총생산물 및 순생산물을 총수입 및 순수입과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총생산물은 재생산된 생산물 전체를 의미한다. 고정 자본 중 사용되나 소모되지 않은 부분을 제외할 때, 총생산물의 가치는 생산 과정에서 투하되어 소비된 자본 가치 (불변 자본 및 가변 자본) + 잉여 가치 (이윤 및 지대)와 동등하다. 이를 개별 자본의 생산물이 아닌 사회적 총자본의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총생산물은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을 구성하는 소재적 요소들 + 잉여 가치가 체현된 잉여 생산물의 소재적 요소들과 동등하다.

 

총수입은 총생산물 가치에서 생산에 투하되어 소모된 불변 자본의 보충분 (또는 이에 상응하는 생산 물량)을 제외한 나머지 가치 부분을 의미한다. 따라서 총수입은 임금 (곧 생산물 중 다시 노동자의 수입으로 환류될 부분) + 이윤 + 지대와 동등하다. 반면 순수입은 임금을 차감한 잔여분인 잉여 가치 및 잉여 생산물을 지칭하며, 이는 실질적으로 자본이 실현하여 토지 소유자와 분할하는 잉여 가치 (또는 이를 척도로 하는 잉여 생산물)를 대변한다.

 

기존의 분석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개별 상품의 가치와 각 개별 자본의 총 상품 생산물 가치는 두 부분으로 분할된다. 한 부분은 소모된 불변 자본을 보전하는 데 충당되며, 다른 한 부분은 비록 일부가 가변 자본으로서 자본의 형태로 환류할지라도 그 전체는 총수입으로 전환하여 임금·이윤·지대의 형식을 취하며 총수입을 이룬다. 이러한 가치 구성 원리는 사회의 연간 총생산물 가치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따라서 개별 자본가의 생산물과 사회적 총생산물 사이의 유일한 차이는 개별 자본가의 입장에서 보면 순수입이 총수입과 다르다는 점이다 (곧 후자인 총수입은 임금을 포함하지만 전자인 순수입은 임금을 제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전체의 수입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국민 소득은 임금 + 이윤 + 지대, 곧 총수입 그 자체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 역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에 기초하여 사회 전체를 자본가적 관점에서 규정한다는 점에서 하나의 추상에 불과하다. 이는 이윤과 지대로 분해되는 잉여 가치 부분만을 실질적인 순수입으로 간주하고, 노동자의 생존 수단인 임금을 자본의 생산 비용으로 취급하는 자본주의 고유의 경제적 논리를 구체화하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총수입이나, 총생산물 전체가 국민의 순수입과 구별되지 않으며, 국가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구별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세 등의 주장은 애덤 스미스 이래 경제학을 지배해 온 불합리한 학설의 극단적 귀결일 뿐이다. , 상품의 가치가 궁극적으로 임금·이윤·지대로만 분해될 수 있다는 잘못된 전제가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논리적 결함에 지나지 않는다.

 

개별 자본가의 관점에서는 생산물의 일부가 자본으로 재전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기란 매우 용이하다. 다시 말해, (재생산의 확대, 곧 축적을 도외시하더라도) 생산된 가치의 일부는 노동자의 수입으로 기능할 가변 자본으로, 그리고 다른 일부는 수입으로 결코 전환될 수 없는 불변 자본으로도 반드시 재전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기란 매우 쉽다. 이러한 가치 환류 과정의 필연성은 생산 과정에 대한 기초적인 고찰만으로도 명백히 드러난다.

 

그러나 생산 과정 전체를 사회적 총자본의 관점에서 고찰할 때 비로소 난제가 발생한다. 분석에 따르면, 생산물 중 수입 (임금·이윤·지대의 형태)으로 소비되는 부분의 가치는 사실상 이 세 가지 수입의 총액, 곧 수입 가치의 합계로 완전히 해소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때 해당 생산물이 생산적으로 소비되든 개인적으로 소비되든 이는 여기에서 논외의 문제이며, 핵심은 (가치는 분석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소비되는 생산물 가치 전체가 수입의 총합으로 분해되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 있다.

 

그러나 수입으로 소비되는 생산물 부분의 가치 역시, 수입에 포함되지 않는 다른 생산물 부분의 가치와 마찬가지로 그 가치 내에 불변 자본 가치 c를 반드시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해당 생산물 가치가 결코 오직 수입 가치의 합으로만 국한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결국 한편으로는 현실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가치 보충의 사실이 존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대립하는 이론적 모순이 공존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이론적 곤란을 회피하는 가장 손쉽지만 그러나 가장 그릇된 방법은, 상품 가치가 수입을 초과하는 가치 부분이 존재하는 현상을 단지 개별 자본가의 관점에서 포착하기 때문에 비롯된 착시로 치부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수입이 타인에게는 자본이 된다.’는 식의 상투적인 문구는 가치 구성의 본질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가로막고 논의를 무의미하게 표류시킬 뿐이다.

 

생산물 전체의 가치가 수입의 형태로 소비될 수 있다면, 옛 자본이 투입된 불변 자본은 어떻게 보충될 수 있겠는가. 각 개별 자본의 생산물 가치가 수입의 합계와 불변 자본 c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사회적 총자본의 생산물 가치 총액이 오직 세 수입의 합계와만 일치하고 불변 자본 가치는 0이 된다는 설정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

 

결국 이 모든 과정은 해결할 수 없는 난제로 귀결되며, 이를 설명하려는 분석은 기초적 구성 요소를 규명하지 못한 채 악순환과 악무한의 오류를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 불변 자본으로 규정되는 가치가 궁극적으로 임금·이윤·지대로 분해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그 수입 원천들로 구성되는 상품 가치는 다시 동일한 수입 원천들을 매개로 결정된다는 논리적 반복을 끝도 없이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상품 가치가 궁극적으로 임금·이윤·지대로 분해된다는 오류 섞인 학설은, 구매자가 불변 자본을 포함하는 총생산물의 전체 가치를 최종적으로 지불해야 한다거나, 생산자와 구매자 사이의 화폐 유통이 결국 생산자 상호 간의 화폐 유통과 일치해야 한다는 주장 (투크)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그 근거가 되는 기본 명제와 마찬가지로 허구적이다.

 

이러한 그릇되고 명백히 불합리한 분석을 야기하는 핵심적인 난제들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1)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근본적 상관관계, 잉여 가치의 본질,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전체 토대가 올바르게 파악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별 자본의 각 생산물, 곧 개별 상품의 가치는 불변 자본 가치의 이전분과 노동자의 임금으로 전환되는 가변 자본 가치, 그리고 향후 이윤과 지대로 분할될 잉여 가치의 일부라는 세 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가치 구성의 유기적 구조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이 분석의 출발점이다.

 

이 지점에서 노동자가 임금으로, 자본가가 이윤으로, 그리고 토지 소유자가 지대로 상기한 가치 구성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상품을 구매하는 것이 과연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제기된다. , 개별 소득 주체가 각자의 제한된 수입 원천만을 가지고, 그 원천의 합계보다 큰 가치 체계를 지닌 상품을 획득하는 원리를 규명해야 한다.

 

임금·이윤·지대라는 세 가지 수입 원천의 가치 총액이, 이들 소득 주체의 소비에 충당되는 상품 전체를 구매하는 기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상품들의 가치는 앞서 세 요소 이외에도 불변 자본이라는 추가적 가치 부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수득자들이 세 부분의 가치에 해당하는 수입만으로 어떻게 네 부분의 가치로 구성된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잔존한다.

 

이에 대한 분석은 이미 제권 제3편에서 수행된 바 있다.

 

(2) 다음으로, 노동이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는 동시에 기존 가치를 재생산하지 않고도 새로운 형태의 상품 내에 보전하는 방식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노동이 인간 노동 일반 (추상적 인간 노동)으로서 가치를 창출하는 동시에, 구체적 유용 노동으로서 생산 수단의 가치를 생산물로 이전시키는 이중적 성격에 기인한다.

 

(3) 재생산 과정의 유기적 관련성이 개별 자본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총자본의 관점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으로는 임금과 잉여 가치, 곧 당해 연도에 새로이 부가된 총가치가 체현된 생산물이 어떻게 그 내부에 포함된 불변 자본 부분을 보전하면서도 동시에 개별 수입들의 가치 합계와 등가를 이룰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핵심이다.

 

더욱이 당해 연도에 투하된 새로운 노동의 총량이 오직 임금과 잉여 가치로만 실현되고 전적으로 이 두 가치의 합계로 표현됨에도, 생산 과정에서 소모된 불변 자본이 어떻게 가치와 소재 양면에서 새로운 불변 자본으로 보충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관건이다.

 

바로 이 지점, 곧 재생산 과정의 제반 구성 요소들이 지니는 가치적 형태와 소재적 성격 사이의 상호 관계를 규명하는 데 분석의 핵심적인 난제가 존재한다. (권 제3편 참조).

 

(4) 한편, 잉여 가치의 여러 구성 부분들이 각기 독립적인 수입 형태로 고착됨에 따라 더욱 심화되는 또 다른 난제가 존재한다.

 

이는 수입자본이라는 확정적 규정들이 상호 전도되거나 위치를 변경하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해당 범주들이 개별 자본가의 관점에서나 유효한 상대적인 규정에 불과하며 사회적 총생산 과정의 고찰에서는 소멸해 버린다는 착시를 준다. , 개별적 관점에서의 자본과 수입의 구분이 총체적 재생산 과정 내에서 그 위상이 왜곡되는 현상이 분석의 곤란을 가중시킨다.

 

예컨대 생산 수단을 생산하는 제1부문 노동자와 자본가의 수입은 소비 수단을 생산하는 제2부문의 불변 자본을 가치와 소재 양면에서 보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처럼 일방의 수입이 타방에게는 자본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근거로, 자본과 수입의 범주적 구분이 상품 가치의 실질적 구성과는 무관하다는 사고방식의 논리적 회피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개별적 가치 규정이 유기적 유통 과정에서 상호 전환되는 현상을 본질적인 가치 구성의 부정으로 오독한 결과이다.

 

나아가 최종적으로 수입 지출의 소재적 대상인 소비 수단을 형성할 상품들은 연간 생산 과정에서 여러 가공 단계 (: 원사에서 모직물로의 이행)를 거친다. 특정 단계에서 그 상품들은 불변 자본의 구성 요소로 기능하던 상품들이었으나, 다음 단계에서는 개인적 소비의 대상이 되어 전적으로 수입으로 귀속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이행 과정은 애덤 스미스의 견해처럼 불변 자본이 상품 가치의 외관상의 한 요소에 불과하며, 총체적 연관 속에서는 결국 소거된다는 분석적 오류를 낳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또한 가변 자본과 수입 간의 교환 과정이 교차된다. 노동자는 자신의 수입인 임금을 매개로 상품 가치 중 수입을 형성하는 부분을 구매하며, 이 과정에서 자본가에게는 가변 자본의 화폐 형태를 환류시킨다. , 노동자의 수입 지출 행위는 자본가 측면에서 가변 자본의 가치 형태를 복구시키는 화폐적 회수 과정과 맞물려 진행된다.

 

끝으로 불변 자본을 형성하는 생산물 중 일부는 불변 자본 생산자들 사이에서 현물 형태로 보전되거나 또는 상호 간의 교환을 매개로 보충되며, 이 과정은 최종 소비자와는 무관하게 완결된다. 이러한 기제를 간과할 경우, 소비자의 수입이 총생산물 전체를 보전하며 결과적으로 불변 가치 부분까지 보충한다는 분석적 착시가 초래된다. (권 제3편 참조).

 

(5) 가치의 생산 가격으로 전형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난점을 차치하더라도, 잉여 가치가 다른 생산 요소들에 결부된 독립된 형태들, 곧 이윤과 지대로 전환되면서 또 다른 분석적 난점이 야기된다. 이 과정에서 상품 가치가 이러한 가치 분할의 선행적 토대라는 본질적 사실이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 , 현상화된 수입의 형태들이 가치 그 자체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가치가 사후적으로 분할되는 것임을 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상품 가치가 제반 구성 부분으로 분할되고 그 배분액이 수입의 형태로 구체화되는 과정, 그리고 이러한 가치 구성 부분들이 수입의 형태로 전개되는 과정, 곧 서로 다른 생산 요소 소유자들과 결합하여 (그 각각의 가치 구성 부분 사이의 관계로 전환하여) 특정 범주와 자격에 따라 분배되는 일련의 기제는 결코 가치 결정의 원리나 그 내적 법칙을 변동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외관상 전개되는 이러한 분배 관계의 역전된 형태 때문에, 가치가 분배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분배가 가치를 결정한다는 식의 전도된 착시가 지배하게 된다.

 

또한 토지 소유가 절대 지대로 인한 저해가 부분적으로 발생함에도 수행되는, 이윤율의 균등화에 따른 총 잉여 가치의 자본 간 배분이 개별 상품의 가치로부터 불일치하는 지배적 평균 가격, 곧 생산 가격을 형성한다는 사실 역시 가치 법칙을 조금도 훼손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상은 개별 상품 가격에 배분되는 잉여 가치의 분량에 영향을 미칠 뿐이며, 잉여 가치 그 자체나 가격 구성 요소들의 원천인 상품의 총가치를 부정하거나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결국 생산 가격의 형성은 가격 법칙의 토대 위에서 전개되는 가치의 전형된 관철 형태에 불과하다.

 

이러한 논의는 다음 장에서 다룰 전도와 맞닿아 있는데, 이는 가치가 그 자체의 구성 부분들로부터 생성된다는 분석적 착시와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 상품의 각 가치 구성 부분들이 개별 수입으로서 독립된 형태를 취함에 따라, 이를 본래의 원천인 상품 가치와 결부하기보다는 수입의 원천인 개별 소재적 생산 요소와 결부시키게 된다. 결과적으로 가치의 실체인 추상적 노동은 은폐되고, 생산 요소 자체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전도된 관념이 형성된다.

 

상품의 가치 구성 부분들은 물질적으로 소재적 생산 요소들과 결부되어 있으나, 이는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서가 아니라 각 생산 당사자 (노동자·자본가·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되는 수입의 원천 (가치 부분)으로서 기능할 뿐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가치 구성 부분들이 이미 결정된 상품 가치의 분해로부터 도출되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해당 부분들의 합산과 집계를 결합하여 상품 가치가 형성된다는 전도된 통념이 발생한다. 이는 가치의 본질적 규정과 그것이 외견상으로 배분되는 형태를 착시한 결과이다.

 

결과적으로 상품의 가치는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 가치의 총합으로부터 규정되고, 다시 이들 수입의 가치는 생산 요소인 노동·자본·토지의 가치에 따라 결정된다는 전형적인 순환 논리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 가치의 원천과 가치의 배분 형태를 동일시함에 따라 원인과 결과가 서로를 규정하는 모순적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다.

 

단순 재생산 과정에서 새로 투입된 노동의 오직 일부분만이 불변 자본의 생산 및 보전에 배분된다. 이는 제1부문의 가변 자본과 잉여 가치의 합 [(v+s)]이 제2부문의 불변 자본 [c]과 교환되는 상응 관계를 거쳐 구체화된다. , 새로운 노동은 소비 수단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을 소재적으로 보전하는 데 투입되며, 이는 제2부문의 불변 자본 부분은 추가 노동을 조금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상호 상쇄됨에 따라 전체적인 정합을 이룬다.

 

그러나 총자본의 재생산 관점에서 고찰할 때, 새로운 노동의 직접적 생산물이 아닌 기존 불변 자본은 생산 과정에서 물리적 사고나 소재적 위험에 직면해 있다. 또한 노동 생산성의 변화에 따라 해당 불변 자본의 가치가 하락하는 경제적 위험 역시 상존한다. 이에 따라 새로운 노동이 체현된 잉여 가치 또는 잉여 생산물의 일부는 이러한 예기치 못한 손실에 대비하는 보험 재원의 성격을 띠게 된다. 이 재원이 전문적인 보험 회사를 주체로 하여 운용되는지 여부는 경제적 본질을 조금도 변경시키지 않는다. 이는 수입으로서 개인적으로 소비되지도 않고, 반드시 축적을 위한 자본으로 전환되지도 않는 독자적인 예비분으로서 기능한다.

 

해당 보험 재원이 실제로 축적 재원으로 기능할지, 아니면 단순히 재생산의 돌발적인 결손을 보전하는 데 그칠지는 구체적인 경제적 정황에 따라 결정된다. 주목할 점은 이 보험 재원이 잉여 가치 및 잉여 생산물의 제 구성 요소 중 (확대 재생산을 위한 적립분을 제외하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폐지된 이후의 사회적 생산 체제에서도 반드시 존속해야 할 유일한 범주라는 사실이다. , 이는 체제의 성격과 무관하게 생산 과정의 지속성과 안전성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 비축분으로서의 위상을 갖는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폐지될 경우, 직접적 생산자의 규칙적인 소비분은 현행 체제의 최저 수준에 제한되지 않고 필연적으로 확대될 것이다. 또한 노령이나 질병 등으로 인해 생산에 참가할 수 없거나 또는 더 이상 생산에 참가할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잉여 노동을 제외한다면, 지배 계급을 부양하기 위한 노동은 완전히 소멸하게 된다. 이는 잉여 노동의 성격이 타자를 위한 부역에서 공동체 전체의 후생과 사회적 비축 구축을 위한 의식적 전환임을 의미한다.

 

사회의 발생적 기원을 고찰하면, 당시에는 가공된 생산 수단이 부재하였으므로, 재생산 과정에서 생산물 가치에 이전되어 현물로 보전되어야 할 불변 자본의 개념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자연이 직접적으로 생활 수단을 제공함에 따라 선행적인 생산 과정의 필요성이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욕구의 수준이 낮았던 원시 생산자는 생활 수단 채취 이외의 유휴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 시간을 투입해 자연 생산물을 활, 돌칼, 선박과 같은 생산 수단으로 전환하였다. 이러한 원시적 도구 제작 과정은 소재적 측면에서 볼 때, 발달된 경제의 잉여 노동이 새로운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축적의 본질적 원리와 근본적으로 상응한다.

 

축적 과정에서는 잉여 노동 (초과 노동)의 생산물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현상이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새로운 자본이 이윤이나 지대 같은 잉여 노동의 파생 형태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자칫 상품의 가치 전체가 수입에서 구성된다는 분석적 오류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이윤의 자본 전환을 정밀하게 분석하면 그 실상은 정반대임을 알 수 있다. , 추가 노동은 (이것은 항상 수입의 형태를 취한다) 기존 자본 가치를 보전하거나 재생산하는 기능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추가 노동이 수입으로서 소비되지 않는 한 새로운 추가 자본을 창출하는 적극적 기능을 수행한다는 사실이 입증된다. 이는 가치가 수입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의 분할 형태인 수입이 다시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분석상의 난점은 새로 투입된 모든 노동이 (그 가치가 임금으로 분해되지 않는 한) 자본가에게 비용 지출 없이 귀속되는 일반적 형태의 잉여 가치로 발현된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이로 인해 해당 가치는 이미 투입된 자본을 보충할 필요가 없는,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부이자 개별 자본가의 순수 수입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렇게 새로 창출된 가치는 개인적 소비뿐만 아니라 생산적 소비로도 전용될 수 있으며, 또는 자본으로도 수입으로도 소비될 수 있다. 이 가치 체현물의 구체적인 현물 형태는 그중 일부가 반드시 생산 수단으로 재투하되어야 함을 이미 규정하고 있다. 이는 가치의 형태적 표현인 수입과 그 실질적 기능인 자본 축적 사이의 필연적 관계를 명시한다.

 

그러므로 매년 추가되는 노동이 자본과 수입을 동시에 창출한다는 점은 자본 축적 과정에서 명백히 드러난다. 다만 새로운 자본 형성에 투입되는 노동 (노동일 중 원시 생산자가 생존을 위한 식량 채취 대신 도구 제작에 할애하는 시간과 비견되는 부분)은 잉여 노동의 생산물 전체가 선차적으로 이윤이라는 형태로 포착되기에 그 실체가 은폐된다. 이윤이라는 규정은 잉여 생산물의 물적·소재적 속성과는 본질적 관련이 없으며, 자본가의 잉여 가치 전유라는 특수한 사회적·계급적 관계를 표상할 뿐이다. 이는 잉여 노동의 생산물이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축적의 기제가 이윤 분배라는 형태적 표현에 가려져 있음을 시사한다.

 

실질적으로 노동자가 창출한 잉여 가치는 수입과 자본, 곧 소비 수단과 추가적인 생산 수단으로 분할된다. 여기서 유의할 점은 전년도로부터 이월된 기존 불변 자본이 새로운 노동을 매개로 그 가치 측면에서 재생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물론 이는 마멸에 따른 감소분을 보충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이며, 통상적인 재생산 과정에서 유지되는 불변 자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인데, 불변 자본의 가치 보전은 새로운 가치 창출과 구분되어야 한다. 재생산 과정에서 예외적인 손상이 발생하여 보전이 필요한 경우, 이는 보험 재원의 영역에서 다루어질 사안이다.

 

나아가 새로 투입된 노동이 가치 측면에서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으로 전적으로 분해됨에도, 그 노동의 일부는 항상 소비된 불변 자본의 재생산과 보충에 전용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결정적 지점들이 간과된다.

 

첫째, 해당 노동 생산물의 가치 구성분 중 일부는 당해 연도의 새로 추가된 노동이 형성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며 생산 과정에서 소비된 불변 자본의 가치가 이전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가치 부분을 체현하는 생산물 부분은 수입으로 전환될 수 없으며, 현물 그대로 교환 과정을 거치더라도 불변 자본의 소재적 형태인 생산 수단을 보충하는 데 귀속된다.

 

둘째, 새로운 노동의 직접적 결과물인 가치 부분 (1부문의 가변 자본 v와 잉여 가치 s)은 그 자체로 수입으로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타 부문 (2부문)의 불변 자본을 보충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해당 가치는 제2부문의 생산물로 전환됨에 따라 비로소 수입으로 소비될 수 있는 현물 형태를 취하게 되는데, 이 최종 생산물 역시 전적으로 당해 연도의 새로운 노동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유념해야 한다.

 

단순 재생산이 동일한 규모로 지속되는 한, 소비된 불변 자본의 각 요소는 해당 종류의 소재적 형태로 보충되어야 한다. 이때 이 새로운 요소는 수량과 형태가 동등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생산 능력 측면에서 동등성은 확보되어야 한다. 노동 생산성에 변동이 없다면 이러한 현물 보충은 필연적으로 불변 자본이 종전에 보유했던 가치량과 동일한 크기의 가치 보전을 내포하게 된다. 이는 생산 과정의 지속성을 보장하기 위한 가치 이전과 보전의 필수적 조건이다.

 

노동 생산성이 상승하여 동일한 소재적 요소들을 종전보다 더 적은 노동량으로 재생산할 수 있게 된다면, 총생산물 가치 중 보다 작은 비중만으로도 불변 자본의 완전한 현물 보충이 충족된다. 이 경우 보전 후 나머지 부분은 새로운 자본 축적에 투하되거나, 생산물의 더 큰 부분이 소비 수단의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또는 사회적 잉여 노동이 감축될 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노동 생산성이 저하될 경우에는 생산물의 더 큰 부분이 기존 자본의 보충에 할당되어야 하므로,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잉여 생산물은 감소하게 된다. 이는 생산성의 변동이 가치의 보전과 잉여분의 배분 구조를 규정하는 핵심 변수임을 입증한다.

 

이윤 또는 잉여 가치의 특정 형태가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과정을 역사적 특수성을 배제한 채 단순히 새로운 생산 수단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이는 노동자가 자신의 직접적인 생활 수단 확보를 상회하여 노동할 뿐 아니라, 생산 수단의 생산을 위한 추가적 노동을 수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이윤의 자본 전환은 추가 노동의 일부를 새로운 추가적 생산 수단의 형성에 투입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과정이 이윤의 자본 전환이라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잉여 노동에 대한 임의적인 처분권이 노동자가 아닌 자본가에게 귀속되어 있다는 사회적 생산 관계의 실상을 체현할 뿐이다. 이는 잉여 노동의 소재적 실체인 추가적 생산 수단이 자본이라는 화폐적·역사적 의상을 두르고 나타남을 시사한다.

 

이 잉여 노동이 원시 사회에서 생산 수단 형성에 직접 투입되는 노동으로 나타난다는 것과 달리,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그것이 수입이라는 매개 단계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는 사실은 해당 노동의 생산물이 비노동자에게 배타적으로 취득됨을 의미한다. 실질적으로 자본으로 전환되는 대상은 이윤이라는 명목적 명칭 그 자체가 아니다. 잉여 가치의 자본 전환은 본질적으로 잉여 가치와 그 실체인 잉여 생산물이 자본가의 수입으로서 개인적 소비로 소진되지 않고 생산 과정에 재투하됨을 가리킬 뿐이다. 이는 잉여 노동의 산물이 수입이라는 현상 형태를 거쳐 다시금 자본의 물질적 기초로 고착되는 과정의 사회적 성격을 규정한다.

 

현실적 전환의 실체는 대상화된 노동인 가치, 또는 그 가치를 직접 체현하고 있는 생산물이며, 또는 해당 가치가 화폐로 실현된 후 그 화폐와 교환을 매개로 하여 확보된 여타의 생산물이다.

 

이윤이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국면에서 잉여 가치의 이윤이라는 특수한 형태가 새로운 자본의 본원적 원천을 구성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잉여 가치가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될 따름이다. 그러나 잉여 가치를 자본으로 규정하는 결정적 요인은 이러한 형태적 전환이 아니라, 자본으로서 기능하는 상품이며 그 가치다.

 

잉여 생산물의 가치가 지불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 가치가 잉여 가치로 정의되는 사회적 전제 조건일 뿐, 노동의 대상화나 가치 자체에 대해서는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자본 축적의 실체는 형태의 변화가 아닌, 지불되지 않은 노동이 체현된 가치물의 생산적 재투하에 존재한다.

 

가치 구성과 수입 사이의 관계예 대한 오해는 각종 형태로 나타난다. 먼저 불변 자본을 구성하는 상품들도 역시 그 자체로 임금·이윤·지대라는 수입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거나, 동일한 가치물이 한 사람에게는 수입이나 타인에게는 자본으로 기능한다는 점을 근거로 이를 오로지 주관적 관계의 산물로 치분하는 견해 등이 그러하다.

 

실제로 방적업자가 생산한 면사에는 자신의 이윤을 표상하는 가치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이때 직물업자가 해당 면사를 구매하는 행위는 방적업자의 관점에서 이윤을 실현해 주는 것이지만, 직물업자 본인의 관점에서는 해당 면사가 단순히 자신의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불변 자본의 일부로 기능할 뿐이다. 이는 가치물이 생산의 순환 과정에서 점유하는 위치에 따라 그 경제적 규정이 객관적으로 결정됨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는 상대적 관계가 아님을 시사한다.

 

수입과 자본의 관계에 대해 이미 말한 것 이외에도 다음과 같은 것을 지적하고 싶다. 가치 측면에서 직물업자의 자본 구성 부분으로 구성되는 것은 면사의 가치다. 면사의 가치가 방적업자의 관점에서 자본과 수입, 또는 지불 노동과 미지불 노동으로 어떻게 분해되는지는 상품인 직물의 가치 결정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 평균 이윤에 따른 전형은 논외로 한다.)

 

이러한 논의의 이면에는 이윤과 잉여 가치 일반은 상품 가치를 상회하는 잉여분이며, 이 잉여분은 가격 인상이나 상호 기만, 또는 양도 이윤을 매개로 하여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도식이 항상 배후에 숨어 있다 그러나 상품이 생산 가격이나 가치대로 매매된다면, 상품 가치 중 판매자에게 수입의 형태로 귀속되는 구성 부분들 또한 정당하게 지불되는 것이다. 이때 독점 가격에서 기인하는 변수는 여기에서 고려하지 않는다.

 

둘째로, 불변 자본을 구성하는 상품 요소들이 여타의 모든 상품 가치와 마찬가지로 노동자와 생산 수단의 소유자에게 귀속될 임금·이윤·지대라는 분해될 수 있는 가치 구성분으로 귀착될 수 있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이는 상품 가치가 해당 상품에 체현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의 척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본주의적 형식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제권에서 밝힌 바와 같이, 자본의 상품 생산물이 개별 가치 구성 부분들로 분석적으로 분할되어, 일정 부분은 소모된 불변 자본 부분을 대표하며 다른 부분은 가변 자본을, 그리고 나머지는 잉여 가치를 각각 표상한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치 해소 논리에도, 결코 부정되지 않는다. 이는 가치의 원천과 그 가치가 재생산 과정에서 수행하는 기능적 역할이 엄연히 구별됨을 시사한다.

 

슈토르히의 견해는 경제적 규정에 대한 다수의 분석적 오류도 집약하고 있다.

 

국민 소득을 구성하는 매매될 수 있는 생산물은 개인에게는 가치, 국가적 관점에서는 재화로 구분하여 고찰되어야 한다. 이는 국민 소득은 개인의 소득과 달리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유용성이나 충족시킬 수 있는 욕구의 정도를 척도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고찰: 19)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적 재검토가 필요하다.

 

첫째로, 생산 양식이 가치 법칙에 근거하고 자본주의적으로 규정되어 있음에도, 한 국가를 국민적 욕구 충족을 위해 기능하는 하나의 유기적 결합체로 상정하는 것은 부당한 추상이다.

 

둘째로, 설령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철폐된 뒤에도 사회적 생산이 유지되는 한, 가치 결정의 원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 노동 시간의 합리적 규제, 각종 생산 분야로 사회적 노동의 분배, 그리고 이에 수반되는 엄밀한 부기라는 측면에서 가치의 규정은 이전보다 더욱 중요한 비중을 갖게 된다. 이는 사회적 필요와 노동 투입 사이의 객관적 비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 기제로서 기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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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수입들과 그들의 원천

 

102. 삼위일체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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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윤 (기업가 이득 + 이자), 토지·지대, 노동·임금으로 구성되는 삼위일체의 공식은 사회적 생산 과정의 모든 은폐된 기제를 내포한다.

 

앞서 제23(‘이자와 기업가 이득’)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이자는 자본 고유의 산물로 산정되는 반면 기업가 이득은 자본과 무관한 유형의 임금으로 오인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상기 공식은 자본·이자, 토지·지대, 노동·임금이라는 형태로 귀착되며, 이 형태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핵심적 잉여 가치 형태인 이윤은 현상적으로 소멸하기에 이른다.

 

해당 경제적 삼위일체를 정밀하게 고찰할 때 우선적으로 규명되는 사실은, 매년 처분되는 부의 원천으로 상정된 요소들이 완전히 상이한 영역에 속하며 상호 간에 어떠한 유기적 연관성도 결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원천, 곧 자본·토지·노동 사이의 상호 관계는 흡사 변호사의 수수료, 사탕무, 음악이라는 이질적 범주들 간의 관계와 다를 바 없다.

 

자본·토지·노동 (!)이라는 범주에서 자본은 단순한 사물이 아닌, 특정한 역사적 사회 구성체에 속하는 특수한 사회적 생산 관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생산 관계는 사물을 매개로 표현되며, 그 사물에 하나의 특수한 사회적 성격을 부여할 뿐이다. 자본은 생산된 물질적 생산 수단의 단순 총계가 아니며, 자본은 자본으로 전환된 생산 수단일 뿐, 생산 수단 그 자체가 본래부터 자본인 것도 아니다. 이는 금과 은이 그 자체로 화폐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자본은 사회의 특정 계급이 독점한 생산 수단이자, 살아있는 노동력으로부터 자립하여 그와 대립하는 노동의 생산물이자 활동 조건이다. 이러한 대립 구도를 매개로 생산 수단은 자본으로 인격화된다. , 자본은 노동자의 생산물이 독립적인 힘으로 전환되어 역으로 생산물이 생산자를 지배하고 구매하는 전도된 관계를 의미한다.

 

나아가 노동의 사회적 힘과 그 결합 형태는 노동 생산물의 속성으로서 생산자와 대립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여기에서 포착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사회적 생산 과정의 여러 요소가 물신적이고 특정한 사회적 형태를 취하며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본과 대치되는 지점에서 토지는 무기적 자연 그 자체인 야생의 미가공된 물질성을 지닌다. 가치의 본질이 노동에 있으므로, 잉여 가치는 토지로부터 발생할 수 없다. 토지의 절대적 비옥도는 일정한 노동량에 대해 토지의 자연적 조건에 따라 규정된 일정한 생산물을 산출하게 할 뿐이다.

 

토지의 비옥도의 차이는 동일한 양의 노동과 자본, 곧 동일한 가치가 서로 다른 양의 토지 생산물로 표현되게 하며, 이에 따라 그 생산물은 상이한 개별 가치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개별 가치들이 시장 가치로 균등화되는 과정은 비옥한 토지가 열악한 토지에 대해 갖는 우위가 경작자나 구매자로부터 지주에게 이전되는 현상’ (리카도, 원리: 141)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삼위일체의 세 번째 요소인 허깨비와 같은 노동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는 추상적 실체이자 가공의 형상에 불과하다. 본질적으로 이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물질대사를 매개하는 인간의 보편적 생산 활동을 의미한다. 이러한 생산 활동은 특정한 사회적 형태나 특수한 성격을 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단순한 자연적 현존의 층위에서는 사회적 규정성과 무관하게 인간 역능의 표현이자 확인으로 정의된다. 이는 사회 형성 이전의 인간이나 이미 특정한 사회 구조 내에 포섭된 인간 모두에게 공통으로 적용되는 종적 속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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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이자, 토지의 사적 소유 (특히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대응하는 근대적 사적 소유지대, 임금 노동·임금의 대응 관계는 수입의 원천들 사이의 유기적 연관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자본과 마찬가지로 임금 노동과 토지 소유 역시 역사적으로 규정된 사회적 형태에 해당한다. 임금 노동은 노동의 특수한 사회적 발현이며, 토지 소유는 독점된 지표의 특수한 사회적 형태로서, 이들 모두는 실질적으로 자본에 매개하며 동일한 경제적 사회 구성체에 속하는 범주들이다.

 

해당 삼위일체 공식에서 우선적으로 주목되는 지점은, 특정한 생산 양식 및 역사적 형태에 속하는 사회적 생산 과정의 생산 요소인 자본과, 이와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층위의 요소들이 병립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 특정한 사회 형태를 수반하는 자본과 나란히, 모든 생산 양식에 공통되는 소재적 요소이자 생산 과정의 사회적 형태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현실적 노동 과정의 두 축인 토지와 노동이 아무런 비판적 고려도 없이 나열되고 있다.

 

둘째로 자본·이자, 토지·지대, 노동·임금의 공식에서 자본·토지·노동은 각각의 생산물 또는 과실인 이자 (이윤이 아닌지대·임금의 자립적인 원천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전자는 근거이자 원인으로, 후자는 그로부터 도출된 귀결이자 결과로 상정된다. 나아가 각 원천과 생산물 사이의 상관관계는 후자가 전자로부터 분리되어 나오고, 전자의 생산적 작용을 매개로 생성되는 현상적 형태를 취한다.

 

이자 (이윤이 아닌지대·임금이라는 세 가지 수입 형태는 생산물 가치를 형성하는 세 가지 구성 부분으로 상정된다. 이는 가치 구성의 일반적 구성 요소이자, 또는 화폐적 표현으로는 특정한 화폐량 내지 가격의 구성 부분을 의미한다. 자본·이자의 공식은 자본주의적 관계의 본질을 극도로 왜곡한 비합리적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자본의 속성을 표상하는 하나의 공식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토지가 가치를 보유하거나, 사회적으로 규정된 특정한 노동량, 곧 생산물 가치 중 지대를 구성하는 부분을 창출할 수 있겠는가. 토지는 밀과 같은 물질적 생산물이나 사용 가치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산 요소로 기능할 뿐, 가치 창출과는 무관하다.

 

가치가 밀이라는 매개로 표현되고 있는 한, 이는 단지 일정량의 대상화된 사회적 노동을 의미할 뿐이며, 이 사회적 노동은 그것을 구체화하는 특수한 소재 (: )나 소재 고유의 사용 가치와는 논리적으로 분리된다.

 

상기 분석은 다음의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다. 여타 조건이 불변일 때, 밀 가격의 고저는 토지 생산성에 규정된다. 농업 노동의 생산성은 자연적 조건과 유기적으로 결부되어 있으며, 이러한 생산성의 격차에 따라 동일한 노동량은 상이한 수량의 생산물 또는 사용 가치로 체현된다. , 개별 단위 생산물이 표상하는 노동량의 크기는 동일한 노동량이 산출하는 전체 생산량에 반비례한다. 결론적으로 특정한 가치, 곧 노동량이 대표하는 총생산량은 토지의 생산성에 규정되나, 이러한 생산량의 변동과 무관하게 투입된 총가치는 주어져 있다.

 

가치는 반드시 사용 가치를 매개로 표상되며, 사용 가치의 존재는 가치 형성의 필수적 전제 조건이다. , 유용성을 결여한 대상에는 가치 또한 결정될 수 없다. 그러나 질적 규정인 사용 가치로서의 토지와, 양적 규정이자 가치의 특정 배분 형태인 지대를 두고 서로 인과적으로 대치시키는 것은 논리적 모순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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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류 경제학은 부르주아적 생산 관계에 국한된 생산 당사자들의 관념을 무비판적으로 해석하고 체계화하며 옹호하는 데 머문다. 따라서 이들이 경제 관계의 본질을 왜곡하여 표상하는 현상 형태, 곧 완전히 불합리하고 모순적인 허상에 파묻혀 안주하는 것은 필연적 결과다. 경제 관계와 현상 형태 사이의 내적 연관이 은폐될수록, 그리고 그 상호 관련이 통념적 관념으로 수용되기 용이할수록 속류 경제학은 이를 그만큼 더욱 자명한 사실로 간주한다. 사물의 현상적 형태와 본질이 직접적으로 일치한다면, 모든 과학은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속류 경제학은 자신의 이론적 출발점인 삼위일체 공식, 곧 토지·지대, 자본·이자, 노동·임금 (또는 노동의 가격)의 결합이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세 가지의 모순된 결합임을 간과한다. 우선 이 공식 내에서 가치를 결여한 사용 가치인 토지는 교환 가치인 지대와 동일시된다. 이는 지대라는 사회적 관계를 단순한 사물로 파악하여 자연적 요소와의 상관관계 속에 배치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단일한 척도를 지니지 않아 비교될 수 없는 두 범주를 작위적으로 대응시키는 격이다.

 

다음은 자본·이자의 관계다. 자본을 화폐로 독립적으로 표상되는 일정 가치액으로 규정한다면, 일정 가치가 본래의 자기 값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한다는 가정은 명백히 불합리하다. 자본·이자라는 형태는 가치 증식의 일체의 매개항이 소거되어 자본을 가장 일반적인 공식으로 집약시킨 결과이며, 이로 인해 해당 형태는 그 자체로 불합리하고 설명될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그럼에도 속류 경제학은 자본·이윤이라는 공식보다 자본·이자라는 공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일정 가치가 스스로와 동등하지 않은 결과값을 낳는다는 이 물신적 속성을 빌려 자본의 본질적 착취 구조를 은폐하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반면 자본·이윤이라는 공식은 현실적 자본 관계에 한층 근접한 형태를 띤다. 여기서 속류 경제학자는 특정 수치가 그 자체보다 큰 값을 가질 수 없다는 수학적 자명성에서 비롯된 논리적 당혹감을 해소하기 위해, 가치로서의 자본을 기계나 원료 등 노동의 생산 조건인 소재적 실체, 곧 사용 가치로 도피한다.

 

이로부터 45가 되는 최초의 관계 대신, 토지 소유의 경우에서처럼 사용 가치라는 사물과 잉여 가치라는 특수한 사회적 생산 관계 사이의 이질적 대응 관계를 상정하게 된다. 이러한 비논리적 나열로 인해 속류 경제학자은 본질적 모순을 도외시한 채 부르주아적 관념에 부합하는 현상적 정당성에 도달하며, 더 이상의 비판적 고찰을 중단하고 안주하는 결과를 낳는다.

 

끝으로, 노동·임금, 곧 노동의 가격이라는 표현은 자본권 제19장에서 규명한 바와 같이 가치 및 가격의 범주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모순적 표현이다. 본래 가격이란 가치의 특수한 현상 형태에 불과함을 고려할 때, ‘노동의 가격이라는 용어는 노란색의 대수 (사각형의 원)라는 표현만큼이나 논리적으로 성립될 수 없는 불합리성을 내포한다.

 

그럼에도 속류 경제학자가 이 공식에 안주하는 이유는 노동에 대해 화폐를 지불한다는 부르주아적 허상을 마치 심오한 식견인 양 수용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공식이 지닌 내적 모순은 속류 경제학자로 하여금 가치의 본질적 개념을 규명해야 할 이론적 과제로부터 도피하게 만드는 구실이 된다.

 

이미 고찰한 바와 같이,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은 사회적 생산 과정 일반이 지니는 역사적으로 특수한 한 형태다. 이러한 사회적 생산 과정 일반은 인간 존립을 위한 물질적 생존 조건들의 생산 과정인 동시에, 특정한 경제적·역사적 생산 관계 내에서 전개되는 역동적 과정이다.

 

따라서 이는 생산 관계 그 자체는 물론, 이 생산 과정의 담당자들과 그들의 물질적 존립 조건들, 그리고 그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끊임없이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과정, 곧 특수한 경제적 사회 형태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과정으로 작용한다.

 

결국 생산의 담당자들이 자연 및 상호 간에 맺는 이 관계들의 총체가 바로 경제적 구조 측면에서 규정되는 사회의 본질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은 이전의 모든 생산 양식과 마찬가지로 고유한 물질적 조건하에서 진행되며, 이 조건은 개개인이 생활의 재생산 과정에서 맺는 특수한 사회적 관계의 토대를 형성한다. 이러한 물질적 조건은 사회적 관계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의 전제인 동시에 그 결과이자 산물이다. 따라서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으로부터 끊임없이 생산되고 재생산되는 구조적 운동 속에 놓여 있다.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서 자본가는 인격화된 자본으로서 기능하며, 자본은 자기에 대응하는 직접적 생산자인 노동자로부터 일정량의 잉여 노동을 착취한다. 이 잉여 노동은 자본이 등가를 지불하지 않고 획득하는 것으로서, 비록 형식적으로는 자유로운 계약의 형태로 나타나더라도 그 본질은 언제나 강제 노동에 해당한다. 이러한 잉여 노동은 현상적으로는 잉여 가치로 나타나며, 실체적으로는 잉여 생산물의 형태로 존재한다.

 

잉여 노동은 사회적 필요와 욕구의 한도를 초과하는 노동이라는 점에서 어느 사회 형태에서나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다만 자본주의 체제하에서의 잉여 노동은 이전의 노예제 등과 마찬가지로 적대적 형태를 취하며, 그 결과 사회의 일부가 생산 활동에서 배제된 채 무위도식하는 구조를 낳는다. 그러나 일정량의 잉여 노동은 우연한 사고에 대비한 보험적 기능뿐만 아니라, 욕구의 발전과 인구 증대에 대응하여 재생산 과정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동력, 곧 자본주의적 관점에서의 축적를 위해서도 반드시 요구된다.

 

자본이 지닌 문명적 사명의 측면은 잉여 노동을 추출하는 방식과 조건이 이전의 노예제나 농노제 등에 비해 생산력 및 사회적 관계의 발전에 유리하며, 새로운 상위 사회 구성을 위한 요소들을 창출하는 데 적합하다는 점에 있다.

 

이에 따라 자본은 한편으로는 사회의 나머지 부분을 희생시키는 소수가 행사하는 강제적 지배와 사회 발전 (물질적·지적 성과를 포함)의 독점화가 사라지는 단계를 재촉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 잉여 노동에 힘입어, 향후 도래할 고도화된 사회 형태에서 물질적 노동에 투입되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는 물질적 수단과 토대를 마련한다.

 

잉여 노동의 크기는 노동 생산성의 발전 정도에 따라 총 노동일의 단축에도 증대될 수 있으며, 반대로 총 노동일이 길더라도 상대적으로 작을 수도 있다. 예컨대 필요 노동 시간이 3시간이고 잉여 노동이 3시간일 경우, 총 노동일은 6시간이며 잉여 노동률은 100%에 달한다. 반면 필요 노동이 9시간이고 잉여 노동이 3시간이라면 총 노동일은 12시간으로 늘어나지만, 잉여 노동률 (잉여 노동/필요 노동)33 1/3%에 불과할 것이다.

 

주어진 노동 시간 및 잉여 노동 시간 내에 생산되는 사용 가치의 분량은 전적으로 노동 생산성에 규정된다. 사회의 현실적 부와 재생산 과정의 지속적인 확대 잠재력은 단순히 잉여 노동의 절대적 길이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잉여 노동의 생산성 및 그 노동이 수행되는 생산 조건의 고도화 수준에 달려 있다. , 부의 팽창은 노동 시간의 연장이 아닌 생산적 조건의 풍부함과 고도화에 따라 판가름 난다.

 

진정한 자유의 영역은 궁핍과 외부적 목적에 규정되어 강제되는 노동이 종결되는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되며, 따라서 그 본성상 현실적인 물질적 생산의 영역 저편에 존재한다. 원시인이 자기의 욕구를 충족하고 생활을 유지·재생산하기 위해 자연과 투쟁를 벌여야 했듯이, 문명인 또한 모든 사회 형태와 생산 양식 아래에서 동일한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인간이 발전하며 인간의 욕구가 확장됨에 따라 이러한 자연적 필연의 영역 또한 확대되나, 동시에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생산력 역시 비례하여 고도화된다.

 

이 영역에서의 자유는 오직 사회화된 인간, 곧 연합한 생산자들이 자연과의 물질대사를 합리적으로 규제하는 데서 실현된다. 이는 물질대사가 맹목적인 힘으로 인간을 지배하게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들이 그것을 집단적 통제 아래 두면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인간성에 가장 부합하는 조건 아래에서 수행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태조차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필연의 영역에 속한다. 이 영역을 돌파할 때 비로소 인간의 잠재력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서 발현시키는 진정한 자유의 영역이 시작된다. 그러나 자유의 영역은 필연의 영역을 토대로 삼아야만 만개할 수 있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한 근본적인 전제 조건은 노동일의 획기적인 단축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여 가치 또는 잉여 생산물은 개별 자본가들 사이에서 사회적 자본의 지분에 비례하여 배당의 형태로 분배된다. 분배를 규제하는 법칙적 한계에 주목할 때, 잉여 가치는 자본에 귀속되는 평균 이윤으로 현상하며, 이는 다시 기업가 이득과 이자로 세분되어 두 가지 형태 아래 서로 다른 부류의 자본가들에게 귀속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잉여 가치의 취득과 분배는 토지 소유라는 제한에 직면한다. 기능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잉여 노동을 착취하여 이윤을 획득하는 바와 같이, 토지 소유자 또한 자본가가 확보한 잉여 가치 일부를 지대의 형태로 탈취하면서 위에서 전개한 법칙에 따라 개입한다.

 

따라서 여기서 논의되는 잉여 가치 중 자본의 몫으로서의 이윤은 총이윤에서 지대를 공제한 평균 이윤, 곧 기업가 이득과 이자의 합계를 의미한다. 이처럼 자본의 이윤 (기업가 이득 + 이자)과 지대는 잉여 가치를 구성하는 특수한 부분들에 불과하며, 잉여 가치가 자본에 귀속되는가 또는 토지 소유에 귀속되는가에 따라 구별되는 형태적 명칭일 뿐 그 본질을 변경시키지는 않는다. 결국 이 두 요소의 합이 사회적 잉여 가치의 총액을 형성하게 된다.

 

자본은 노동자로부터 잉여 노동을 직접 추출하여 이를 잉여 가치와 잉여 생산물의 형태로 구현하며, 이러한 측면에서 잉여 가치의 실질적인 생산 주체로 간주될 수 있다. 반면 토지 소유는 현실적 생산 과정과는 무관한 비생산적 요소에 불과하다. 토지 소유의 기능은 이미 생산된 잉여 가치의 일부를 자본의 영역에서 자신의 영역으로 이전시키는 재분배의 과정에 한정된다.

 

그럼에도 토지 소유자는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 내에서 독자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이는 그가 지대 청구라는 방식으로 자본을 압박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대토지 소유가 노동자로부터 생산 수단을 분리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적 전제 조건이 된다는 점에서도 기인한다. 무엇보다 토지 소유자는 생산의 필수적 자연 조건인 토지를 인격화하여 대리하는 존재로서 그 구조적 위상을 점유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는 개별 노동력의 소유자이자 판매자로서, 임금의 형태로 생산물의 일부를 분배받는다. 이 임금은 노동 과정 중 노동력의 유지와 재생산에 할애되는 이른바 필요 노동을 가시화한 것이다. 필요 노동은 그 유지 및 재생산의 필요한 물질적 조건이 풍부한가 빈약한가, 또는 조건이 유리한가 불리한가에 관계없이 노동력이라는 상품 존립을 위해 투입되어야 하는 필수적인 몫을 의미한다.

 

그러나 삼위일체 공식의 제 관계는 그 본질적 차이에도 하나의 공통점을 지닌다. , 자본은 자본가에게 이윤을, 토지는 토지 소유자에게 지대를, 노동력은 통상적인 조건하에서 노동자에게 임금을 매년 창출한다는 점이다. 연간 생산된 총가치 및 그에 대응하는 총생산물의 세 구성 부분은, 축적 과정을 배제할 경우 각 소유자가 재생산의 원천을 고갈시키지 않으면서 매년 소비할 수 있는 몫이 된다.

 

이 세 부분은 흡사 다년생 식물 (또는 세 개의 나무)이 맺는 매년 수확되는 열매처럼 현상하며, 자본가·토지 소유자·노동자라는 세 계급의 연간 수입을 구성한다. 이는 곧 잉여 노동을 직접 착취하고 노동 일반을 운용하는 기능 자본가에게 분배되는 수입의 체계를 형성한다.

 

결과적으로 각 주체에게는 자본, 토지, 그리고 노동력 (또는 외적으로 발현된 노동 그 자체)이 이윤, 지대, 임금이라는 독자적인 수입을 창출하는 세 개의 서로 다른 개별적 원천으로 간주된다. 특히 노동력의 가격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하에서 필연적으로 노동의 가격으로 표상됨에 따라, 노동 자체가 수입의 직접적 원천이라는 관념 (허상)은 더욱 고착된다.

 

이러한 전도된 의식은 다음과 같은 실질적 관계에 기여한다. , 자본가에게 자본은 잉여 노동을 지속적으로 추출하는 영구적인 기계이며, 토지 소유자에게 토지는 자본이 추출한 잉여 가치의 일부를 흡수하는 영구적인 자석으로 기능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에게 노동은 자신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 곧 사회적 생산물 중 노동력의 가치에 상당하는 필요 생활 수단을 임금의 형태로 확보하기 위해 끊임없이 수행해야 하는 조건이자 수단으로 작용한다.

 

또한 자본은 연간 노동의 가치 생산물의 일부를 이윤의 형태로 고정시키며, 토지 소유는 다른 부분을 지대의 형태로 고정시키고, 임금 노동은 또 다른 부분을 임금의 형태로 고정시키며, 이러한 고정을 매개로 각 부분은 자본가·토지 소유자·노동자의 수입으로 전환된다.

 

이들 제 범주가 각 수입의 실체 그 자체를 산출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분배는 대상화된 사회적 노동의 산물인 연간 생산물의 총가치, 곧 연간의 총 가치 생산물이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며, 각 수입 형태는 이 기존의 실체가 개별 주체에게 귀속되는 방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실체적 진실은 생산 과정의 각 기능을 담당하는 주체들에게는 전도된 형태로 나타난다. 생산의 담당자들에게 자본, 토지 소유, 노동은 세 개의 다른 독립적인 원천으로 현상하며, 이들로부터 연간 생산 가치의 그리고 이 가치가 존재하는 연간 생산물인 각 구성 부분이 파생되는 것으로 오인된다. , 그들에게는 이 원천들이 사회적 생산 과정의 각 요소에 귀속되는 수입의 형태를 결정할 뿐만 아니라, 그 수입의 실체인 가치 그 자체까지도 산출하는 근원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왜 이러한 물신적 전도가 발생하는지는 향후 연구 과정을 거쳐 규명될 것이다.

 

(엥겔스: 여기에 원고 한 장이 공백으로 남아 있다.)

 

차액 지대는 서로 다른 토지의 상대적 비옥도, 곧 토지 고유의 속성과 결부되어 있다. 차액 지대가 선차적으로 서로 다른 등급의 토지들에서 생산된 개별 가치의 차이에 따라 규정되는 한, 차액 지대는 위의 규정에 해당한다. 이는 토지 자체의 자연적 조건에 해당한다. 그러나 차액 지대가 후차적으로 개별 가치와 분리된 지배적·일반적 시장 가격에 기반하여 결정되는 한, 이는 경쟁을 매개로 관철되는 사회적 법칙의 영역에 속한다. 이 지점에서의 차액 지대는 더 이상 토지의 물리적 특성이나 비옥도의 차이와 직접적인 인과 관계를 갖지 않는다.

 

적어도 노동·임금이라는 공식은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인 상관관계를 지닌 듯 보이나, 실상은 토지·지대공식과 마찬가지로 전혀 그렇지 않다. 노동이 가치를 형성하고 상품의 가치로 구현되는 한, 그 노동은 가치가 각각의 형태로 분배되는 과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또한 노동이 임금 노동이라는 특수한 사회적 성격을 띠게 될 때, 이는 가치 형성의 주체로서의 노동과는 다른 수준의 문제가 된다. 이미 확인한 바와 같이, 임금 또는 노동의 가격이란 노동력의 가치 또는 가격이 불합리하게 표현된 것에 불과하며, 이 노동력이 판매되는 특정 사회적 조건 또한 일반적인 생산 요소로서의 노동과는 무관하다.

 

노동은 상품 가치 중 노동력의 가격 (임금)을 구성하는 부분으로 대상화되지만, 이는 노동이 생산물의 다른 부분들을 형성하는 방식과 동일하다. , 노동이 상품 가치 중 임금으로 대상화되는 것은 지대나 이윤으로 대상화되는 것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우리가 가치 형성적 노동을 고찰할 때, 그것은 생산 조건으로서의 구체적 유용 노동이 아니라, 임금 노동이라는 특수성과는 구별되는 사회적 규정성, 곧 추상적 인간 노동의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자본·이윤이라는 표현조차 이 수준에서는 엄밀하지 못하다. 자본을 잉여 가치의 생산 주체로만 파악한다면, 곧 자본이 임금 노동자에게 강제력을 행사하여 잉여 노동을 착취하는 노동에 대한 관계 속에서 고찰한다면, 이때의 잉여 가치는 이윤 (기업가 이득 + 이자)뿐만 아니라 지대까지 포괄하는 미분할된 잉여 가치 총체여야 한다. 그러나 자본·이윤이라는 공식 내에서 자본은 오직 자본가에게 귀속되는 수입 원천으로서만 기능하며, 이는 자본이 착취한 잉여 가치 전체가 아닌 자본이 자본가에게 제공하는 일부분에 국한된다. 더욱이 이 공식이 자본·이자로 치환될 경우,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의 본질적 연관성은 더욱 철저히 은폐되고 만다.

 

우리는 한편으로 세 원천 사이의 본질적 차이를 규명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 세 개의 원천의 그 산물인 수입들이 모두 가치라는 동일한 영역에 귀속됨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속류 경제학은 이질적이고 무관하며 비교할 수 없는 대상들 사이의 관계라는 삼위일체 공식을 고수하기 위해, 자본을 토지나 노동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소재적 실체, 곧 생산된 생산 수단으로만 고찰한다. 이로 인해 노동에 대한 지배 관계로서의 자본 및 가치 증식의 주체로서의 자본이라는 핵심적 관점은 완전히 소멸하고 만다.

 

셋째, 이러한 구도에서 자본·이자 (이윤), 토지·지대, 노동·임금이라는 공식은 균일하고 대칭적인 본질적 불일치를 드러낸다.

 

사실상, 임금 노동이 노동의 사회적으로 규정된 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이 본질적으로 임금 노동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에 종속된 의식하에서는 임금 노동이 노동의 특수한 사회적 형태가 아닌 노동 본연의 모습으로 오인되며, 이에 따라 임금 노동에 대립하는 객체적 노동 조건들 (생산 수단과 토지)이 취하는 노동 과정의 어떤 역사적으로 규정된 사회적 형태와 무관하게, 더욱이 노동 과정의 모든 사회적 형태와도 무관하게 나타나는 역사적 특수성 또한 그 소재적 실체와 직접 동일시된다.

 

, 노동으로부터 분리·소외되어 노동에 대해 자립적 위상을 획득한 노동 조건의 형태, 다시 말해 자본으로 전환된 생산 수단과 독점된 토지 소유라는 특정 역사적 시기에 속하는 이러한 사회적 형태가, 노동 과정 일반에 내재하는 생산 수단 및 토지의 보편적 기능과 동일시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생산 수단 그 자체를 본질적인 자본으로 규정하며, 자본을 단지 생산 수단에 부여된 단순한 경제적 명칭으로 격하시킨다. 토지 역시 그 자체로 특정 소유자에게 전유되는 것이 토지라는 본질적 속성인 양 간주된다. 생산물이 자본과 자본가라는 인격화된 자본의 수중에서 생산자에 대립하는 자립적인 힘으로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토지 또한 토지 소유자를 매개로 인격화되어 생산물 중 자신의 몫을 단호히 요구하는 자립적인 힘으로 현상한다. 그러나 이때 토지가 획득하는 생산물 중 지대는, 자기의 생산성을 유지하거나 제고하는 데 필요한 부분을 얻는 것이 아니라, 단지 소유자의 개인적 소비와 탕진을 위해 전용되는 생산물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자본이 임금 노동을 전제로 한다는 점은 명백하나, 임금 노동을 노동 일반과 동일시하는 순간 자본과 독점된 토지 역시 노동 일반에 대립하여 노동 조건의 자연적 형태로 오인된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노동 과정 일반의 기능에서 파생된 순전히 물질적 속성, 곧 노동 수단의 자연적 형태로 현상한다. 결과적으로 자본과 생산 수단, 토지와 사적 소유는 동일한 개념으로 수렴되며, 본질적으로 자본화된 노동 수단 그 자체가 이윤의 원천이 되고, 토지 그 자체가 지대의 원천이라는 허상이 성립한다.

 

단순히 합목적적 생산 활동으로 규정되는 노동이 상대하는 생산 수단은 특정 사회적 형태를 띤 것이 아니라, 노동의 재료 및 수단이라는 소재적 실체로서의 존재다. 이러한 생산 수단은 사용 가치 측면에서 소재적으로만 상호 구별될 뿐이며, 토지는 생산되지 않은 노동 수단으로, 그 외의 것은 생산된 노동 수단으로 구분된다. 따라서 노동과 임금 노동을 노동 일반과 동일시하게 되면, 노동과 대립하는 노동 조건의 특수한 사회적 형태는 노동 조건의 소재적 실체와 직접 일치하게 된다. 이 경우 노동 수단은 그 자체로 자본이 되며, 토지는 그 자체로 토지 소유라는 성격을 내포하게 된다.

 

결국 노동에 대한 노동 조건의 형태적 자립화, 곧 임금 노동에 대립하여 취하는 특수한 자립적 형태는 사물 (곧 물질적인 생산 조건)로서의 노동 조건과 분리될 수 없는 속성으로 고착된다. 이는 생산 요소로서의 노동 조건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성격으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이라는 특수한 역사적 단계가 부여한 노동 조건의 사회적 성격은, 생산 과정의 구성 요소로서 노동 조건이 처음부터 영구적으로 보유해 온 고유한 물적 성격으로 전도된다.

 

이에 따라 노동의 원천적 장소이자 자연력의 보고인 토지, 그리고 도구와 원료 등 생산된 생산 수단이 노동 과정 일반에서 수행하는 기능은, 토지 소유와 자본이라는 사회적 형태 (또는 그 인격적 대표자들)에 지대와 이윤 (이자)라는 각각의 배분 몫을 귀속시키는 근거로 오인된다.

 

흡사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이 생산 과정에서 발휘된 노동 기능에 대한 배분 몫으로 나타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결과적으로 지대, 이윤, 임금은 모든 역사적 특수성이 소거된 추상적 노동 과정 (토지·생산된 생산 수단·노동이 구성하는 단순한 노동 과정), 곧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진행되는 단순한 물질대사 과정으로서 각 생산 요소가 수행하는 기능으로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파생되는 것처럼 현상한다.

 

이는 앞선 논의를 다른 관점에서 서술하는 것으로, 곧 임금 노동자의 노동이 수입으로 실현하는 생산물은 오직 임금 (가치 중 임금을 표상하는 부분 또는 사회적 생산물 중 이 임금 가치에 해당하는 부분)뿐이라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임금 노동이 노동 일반과 동일시된다면, 임금은 노동의 총생산물과 일치해야 하며 임금이 표상하는 가치 부분 역시 노동 일반으로부터 창출된 전체 가치와 부합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가치의 여타 구성 부분인 이윤과 지대는 임금으로부터 독립적인 존재가 되며, 노동과는 무관한 별개의 고유한 원천에서 파생되어야만 한다. , 이윤과 지대는 생산에 참가하는 각 요소, 그리고 이 요소들을 점유한 소유자에게 귀속되는 수입으로서 정당화된다. 결과적으로 이윤은 자본의 소재적 요소인 생산 수단에서, 지대는 토지 소유자가 대표하는 토지 또는 자연 그 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되기에 이른다. (로셔, 1858).

 

따라서 토지 소유·자본·임금 노동은 단순한 수입의 분배 원천에서 가치 그 자체를 창출하는 현실적 원천으로 격상된다. (자본은 노동으로부터 추출한 잉여 가치의 일부를 이윤으로 자본가에게 배분하고, 토지 독점은 그 외의 일부를 지대로서 토지 소유자에게 넘겨주며, 노동은 최종적으로 남은 가치 부분을 임금으로 노동자에게 되돌려준다는 점에서 수입의 원천, 곧 전체 가치를 이윤·지대·임금이라는 세 부분으로 분할하고 전환하는 근거로 오인되지만), 본래 자본은 노동에서 추출한 잉여 가치의 일부를 이윤으로 전환하고, 토지 독점은 그 다른 일부를 지대로 귀속시키며, 노동은 잔여 가치를 임금으로 변환하는 매개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는 전도되어, 각 요소가 생산물 가치의 개별 부분들을 발생시키는 현실적인 원천이자, 곧 생산물의 가치를 발생시키는, 곧 가치 실체가 그로부터 파생되는 실질적 근거인 것처럼 고착된다.

 

우리는 이미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상품 생산 일반의 가장 단순한 형태 규정들인 상품과 화폐를 고찰하며, 부의 소재적 요소들을 매개하는 사회적 관계가 사물 자체의 속성으로 전도되는 물신주의적 현상을 지적한 바 있다. 상품의 경우 사회적 관계가 사물의 속성으로 각인되며, 화폐에 이르러서는 생산 관계 자체가 사물화되는 경향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난다. 상품 생산과 화폐 유통을 수반하는 모든 사회 형태는 이러한 근원적 왜곡을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자본이 지배적 형태로서 생산 관계를 규정하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 이르면, 이 착시에 걸린 전도된 세계는 한층 더 고도화되고 심화된 양상으로 전개된다.

 

자본을 직접적 생산 과정에서의 잉여 노동 착취라는 관점에서 고찰한다면, 이 관계는 매우 명확하여 생산의 주체인 자본가의 의식 속에도 실제적 연관성이 각인된다. 노동일의 한계를 둘러싸고 전개되는 격렬한 투쟁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는 구체적 증거다. 그러나 이 노동과 자본이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생산 과정의 심부조차 사태는 이처럼 단순한 단계에 머물지 않는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확립되어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 증대를 수반하는 상대적 잉여 가치가 발달함에 따라, 직접적 노동 과정에서 노동의 생산력과 사회적 결합은 노동에서 자본으로 이전된다. , 사회적 노동의 모든 생산력이 노동 고유의 힘이 아니라 자본 자체의 태내에서 솟아나는 자본의 위력으로 현상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자본은 이미 고도의 물신적 성격을 획득한다.

 

그다음으로 유통 과정이 개입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재 및 형태의 전환에는 농업 자본을 포함한 자본의 모든 부분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발전 정도에 비례하여 참가한다. 이러한 유통 영역에 진입하면 본래적 가치 생산의 조건들은 완전히 배후로 밀려나게 된다. 이미 직접적 생산 과정에서조차 자본가는 상품 생산자로서 상품 생산의 지휘자로서 기능하기에, 그에게 이 생산 과정은 결코 단순한 잉여 가치의 생산 과정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또한 자본이 직접적 생산 과정에서 착취되어 상품에 체현된 잉여 가치가 어느 정도이든, 그 가치와 잉여 가치는 반드시 유통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생산에 투하된 가치를 보충하는 가치 부분이나, 특히 상품에 체현된 잉여 가치는 유통 과정에서 단순히 실현될 뿐만 아니라, 흡사 그곳에서 창출되는 것과 같은 허상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외양은 특히 두 가지 사정으로 인해 강화된다.

 

첫째는 기만과 책략, 전문 지식과 숙련, 그리고 무수한 시장 상황에 의존하는 양도 이윤 (상업 이윤)의 존재이다.

 

둘째는 노동 시간 외에 유통 시간이 결정적 요소로 개입하기 때문이다.

 

비록 유통 시간은 가치와 잉여 가치의 형성에 있어 소극적인 제한 요인으로만 기능할 뿐이지만 (권 제5장 참조), 실제로는 유통 시간은 흡사 노동과 마찬가지로 가치 창출의 적극적 원인인 듯한 착시를 일으키며, 자본 고유의 성질로부터 기인하는, 노동과는 무관한 노동 외적 규정성을 내포한 듯한 외양을 띠게 된다.

 

우리는 제권에서 유통 영역을 오직 그로부터 파생되는 형태 규정과 관련하여 고찰할 수밖에 없었으며, 고정 자본과 유동 자본 같은 자본 형태의 진전된 발전을 규명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그러나 현실의 유통 영역은 경쟁이 전개되는 영역이며 개별적 사례마다 우연적 변수로 인해 지배된다. 따라서 무수한 우연들 속에서 스스로를 관철하며 질서를 규제하는 내부 법칙은, 이 현상들이 대량으로 누적될 때만 비로소 가시화될 뿐, 개별 생산 주체는 이를 포착하거나 파악할 수 없다. 나아가 직접적 생산 과정과 유통 과정의 통일체로서의 현실적 생산 과정은 새로운 형태들을 산출하며, 이 형태들 속에서는 내부적 연관의 실마리는 점점 더 희미해지며, 결국 생산 관계들은 상호 자립화하고 가치의 구성 부분들은 각기 독립된 형태의 범주로 고착된다.

 

잉여 가치가 이윤으로 전환되는 과정 (권 제1편 참조)은 생산 과정뿐만 아니라 유통 과정에 따라서도 동일하게 결정된다. 이윤의 형태를 취한 잉여 가치는 더 이상 그것의 실제 원천인 가변 자본 (노동에 지출된 자본 부분)에 대응하지 않고, 투하된 총자본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된다. 이윤율은 그 고유한 법칙들로 인해 규제되는데, 이는 잉여 가치율이 일정하더라도 이윤율의 독자적인 변동을 수용하거나 심지어 이를 촉발하기조차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잉여 가치의 본질적 성격을 더욱 은폐하며, 결과적으로 자본의 실질적인 작동 기제를 가시성의 배후로 숨긴다.

 

이러한 은폐 현상은 이윤이 평균 이윤으로, 가치가 생산 가격 (시장 가격을 규제하는 평균적 기준)으로 전환됨에 따라 더욱 심화된다. 이 단계에서는 자본들 사이의 균등화 과정이라는 교차하는 사회적 과정이 개입하여, 상품들의 상대적 평균 가격을 그 자체의 가치로부터 불일치시키고, 각 생산 분야의 평균 이윤을 개별 자본의 실질적인 노동 착취 정도와 분리한다. 그 결과 상품의 평균 가격은 체현된 그 가치 (곧 상품에 실현되어 있는 노동량)와 외견상으로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도 달라지게 되며, 개별 자본이 획득하는 평균 이윤 역시 해당 자본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로부터 착취한 잉여 가치와 일치하지 않게 된다.

 

상품의 가치는 이제 노동 생산성의 변화가 생산 가격의 변동에 미치는 영향력에 따라서만 간접적으로 그 존재를 드러낼 뿐, 곧 생산 가격의 절대적 한계를 규정하는 직접적인 요소로 부각되지 않는다. 이윤 또한 노동의 직접적 착취로 인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부차적인 요인에 불과한 것으로 현상한다. 설령 착취가 무관하게 보이는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쳐, 자본가로 하여금 평균 이윤 이상의 초과 이득이나 그보다 낮은 이윤을 실현할 수 있게 해주는 경우에만 그렇다. 그러나 이는 외견상 착취와 무관한 시장의 변동으로 보일 뿐이다. 결국 통상적인 평균 이윤은 착취와 무관하게 자본 자체에 내재하는 속성처럼 간주되며, 극심한 착취나 예외적인 유리한 조건조차, 심지어 평균적인 착취까지도 오직 평균 이윤 그 자체를 결정하기보다는 단지 거기에서 발생하는 편차만을 규정하는 변수로 오인된다.

 

이윤이 기업가 이득과 이자로 분할되는 현상은 잉여 가치의 형태적 자립화, 곧 잉여 가치의 실체적 본질에 대립하는 현상적 형태의 고착화를 완성한다. 이는 생산 과정과는 발생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전적으로 유통 영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현상하는 상업 이윤이나 화폐 거래 이윤의 개입을 배제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이윤의 일부인 기업가 이득은 다른 부분에 대립하여 자본 관계 본연의 성격에서 완전히 분리된 채, 임금 노동의 착취가 아니라 자본가 자신의 임금 노동에 기인하는 수입으로 전도된다.

 

반면 이자는 노동자의 임금 노동이나 자본가 자신의 노동 모두와 무관하게, 자본이라는 독립적인 원천에서 자생하는 것처럼 현상한다. 유통의 표면에서 가치를 낳는 가치라는 자본이 최초에 자본 물신으로 처음 등장했던 자본은, 이제 또다시 이자 낳는 자본의 형상을 거쳐 가장 피상적이고 소외된 형태로 자기완성을 이룬다.

 

따라서 자본·이자라는 형태는 토지·지대’, ‘노동·임금과 대응하는 체계로서 자본·이윤보다 훨씬 더 확고한 형태적 일관성을 획득한다. 이윤은 여전히 생산이라는 그 기원의 흔적을 보존하고 있으나, 이자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기억마저 완전히 소멸한 채 그 근원과는 정반대의 독자적 형태로 재생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잉여 가치의 독립적 원천으로서 자본과 나란히 토지 소유가 등장한다. 이 토지 소유는 평균 이윤 형성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하며, 스스로 노동하거나 노동자를 직접 착취하지도 않고, 이자 낳는 자본과 같은 자본의 대부에 따른 위험이나 희생과 같은 도덕적 합리화조차 내세울 수 없는 계급에게 잉여 가치의 일부를 이전시킨다. 이 지점에서 잉여 가치의 일부가 사회적 관계가 아닌 자연적 요소인 토지와 직접 결부된다. 이로부터 잉여 가치의 각 구성 부분들은 상호 자립화와 고착화를 완성하고, 그 내적 연관성은 결정적으로 파괴된다. 결국 생산 과정의 소재적 요소들과 결부된 개별 생산 관계들이 상호 간의 자립화로 인해, 잉여 가치의 진정한 원천은 완전히 은폐되기에 이른다.

 

자본·이윤 (또는 자본·이자), 토지·지대, 노동·임금이라는 경제적 삼위일체는 가치와 부 일반의 구성 부분들을 각기 별개의 원천에 결착시키면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물신화를 완성한다. 이는 사회적 관계를 사물화하고, 생산의 소재적 연관을 그 역사적·사회적 특수성과 무차별적으로 직접 합치시키는 기제로 작용한다.

 

결과적으로 이 체제는 착시에 빠진 듯 왜곡되고 전도된 세계를 구축하며, 그 속에서 자본 나리토지 마님이라는 의인화된 자본과 토지는 사회적 성격을 지닌 인격체인 동시에 단순한 사물로서 기괴한 춤을 추게 된다.

 

고전파 경제학의 공적은 이러한 허구적 외관과 기만, 사회적 부의 서로 다른 구성 요소들이 보여주는 상호 간의 자립화와 고착화, 그리고 사물의 인격화와 생산 관계의 사물화라는 통념적 물신주의를 해체한 데 있다. 곧 고전파 경제학은 이자를 이윤의 일부로 귀속시키고 지대를 평균 이윤을 상회하는 초과분으로 규정하면서, 이 둘이 궁극적으로 잉여 가치라는 단일한 근원에서 기원함을 논증하였다. 또한 유통 과정을 가치의 창출이 아닌 단순한 형태 변환의 과정으로 서술하였으며, 최종적으로 직접적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품의 가치와 잉여 가치의 원천을 노동으로 귀결시켰다.

 

그러나 고전파 경제학의 가장 뛰어난 대표자들조차 자신들이 비판적으로 해체했던 착시의 세계에 여전히 어느 정도 사로잡혀 있었으며, 이는 부르주아적 한계 내에서 불가피하였다. 그로 인해 그들의 이론 체계는 논리적 불일치와 미해결된 모순, 그리고 반쪽짜리 진실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다른 한편으로, 현실의 생산 주체들이 자본·이자, 토지·지대, 노동·임금이라는 피상적이고 불합리한 형태를 자명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들은 바로 그러한 현상적 외관이 지배하는 세계 내에서 활동하며, 날마다 이를 엄연한 질서로 접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속류 경제학이 이 모든 내적 연관성이 완전히 소멸된 이 삼위일체 공식에서 자신들의 공허한 오만을 뒷받침할 자명하고 견고한 토대를 포착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다. 속류 경제학은 실제 생산 주체들의 표면적 관념을 가르치려 들면서 절대화하여 체계화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공식은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와도 완벽히 부합한다. 이는 그들의 수입 원천이 지닌 자연적 필연성과 불변의 정당성을 강변하며, 이를 하나의 독단적인 준칙으로까지 격상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 담당자들에게 생산 관계가 사물화되고 자립화하는 것을 논함에 있어, 세계 시장의 정세와 시장 가격의 운동, 신용 주기와 산업과 상업의 경기 순환, 그리고 번영과 공황의 교체라는 구체적 현상들이 생산 관계의 상호 연관을, 이들에게는 불가항력적인 자연 법칙이자 그들을 지배하게 되는 맹목적 필연성으로 각인시키는 방식에 대해서는 상술하지 않기로 한다. 경쟁의 실질적인 운동은 본 고찰의 논외인 것이며, 여기서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내부 구조를 이른바 그 이상적 평균의 수준에서 서술하는 것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사회 형태들에서 경제적 물신화는 주로 화폐와 이자 낳는 자본이라는 특수한 영역에 국한되어 발생한다. 다음과 같은 체제에서는 이러한 전면적인 물신화가 당연히 나타나지 않는다.

 

첫째, 사용 가치를 위한 생산 또는 생산자의 직접적 소비 (자가 소비)를 위한 생산이 지배적인 경우이다.

 

둘째, 고대나 중세와 같이 노예제나 농노제가 사회적 생산의 지배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경우이다.

 

후자의 경우 생산 조건이 생산자를 지배하는 양상은 가시적인 지배·종속 관계로 인해 은폐되며, 오히려 그 인격적 지배 관계가 생산 과정의 직접적인 추진력으로 나타난다.

 

본원적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원시 공동체나 고대 도시 공동체에서는 공동체 자체와 그 존립 조건이 생산의 토대로 나타나며, 이 공동체의 재생산이 생산의 최종 목적으로 나타난다. 중세의 길드 제도 하에서조차 자본과 노동은 결코 구속 없는 자유로운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 자본과 노동의 상호 연관은 동업 조합의 규제나 그와 결부된 위계 질서 (서열), 그리고 이 관계들에 대응하는 직업상의 의무, 숙련 장인의 자격 조건 등과 같은 제도적 관념들을 토대로 엄격히 규정된다. 오직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이르러서만…… (이 지점에서 원고가 중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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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대 형성 구조

 


국내 지대 형성 개괄


한국의 지대 형성을 고찰하기 이전에, 한반도 전체 면적을 가늠하고자 한다. 한반도 (남한과 북한, 그리고 부속 도서를 포함해서) 전체 면적은 약 223,658km²로 통용된다. 이는 세계적으로 영국, 루마니아, 가나 등과 비슷한 크기이다. 남북한별 세부 면적에 대한 통계 자료로는 <2024, 국토 교통부 및 통계청> 자료를 기반으로 측정된 남북한별 세부 면적에 기초한다.

 

구분

면적 (km²)

비중 (%)

남한 (대한민국)

100,443

45%

북한 (조선인민공화국)

123,215

55%

합계 (한반도 전체)

223,658

100%

 


국내 지대 형성 구조를 분석할 때 참고할 사항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한반도 지표를 고려할 때, 지리적 특성으로는, 산지 비율이 적용되며, 한반도 전체 면적의 약 70%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농업적 지대 형성에서 토지의 자연적 비옥도위치라는 두 가지 변수가 차액 지대 결정에 매우 강력한 물리적 제약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2) 경지 면적의 차이에서 보자면, 북한은 남한보다 전체 면적은 넓지만, 험준한 산악 지형이 많아 실제 경작되는 토지의 질과 양 측면에서는 남한과 다른 생산성 구조를 가진다. 이는 생산력 차이에 따른 차액 지대 분석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된다.

 

(3) 도시와 입지의 측면에서는, 남북한 모두 특정 대도시 (서울, 평양 등)을 중심으로 인구가 밀집되어 있어, 농업 지대뿐만 아니라 최유효 이용을 둘러싼 입지 지대의 격차가 극심하게 분포하는 구조이다.

 

해당 수치 기반들은 향후 한반도 전체의 토지 가치나 생산성 개선에 따른 지대 변화를 수리적으로 분석할 때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정치적 상황의 한계로 인해 지리적 특성을 남한 내 지역별 비옥도 차이를 지대론의 핵심 변수인 ‘토지의 자연적 조건 (차액 지대 )’에 따라 수치 중심으로 고찰하자면비옥도는 단순한 흙의 상태가 아니라 ‘동일한 자본 투입 대비 생산성을 의미한다한국의 경우, <국립 농업 과학원>의 토양 측정 자료 (유기물 함량유효 규산 등)과 통계청의 시도별 경지 면적 통계 자료에서 이를 참고할 수 있다

 

<지역별 경지 면적 및 비옥도 관련 지표 자료> (2024-2026 추세 기준)

 

지역 구분

경지 면적 (ha)

비중

비옥도 및 토양 특성

전남

274

18.2%

최우등지: 나주·영산강 유역 평야. 유기물 함량이 높고 수리 시설이 완비되어 차액지대 I의 기준점이 됨.

경북

236

15.7%

복합지: 낙동강 유역은 비옥하나, 산간지가 많아 지력의 편차가 크며, 과수 농업 위주의 고부가가치 지대 형성.

충남

213

14.1%

우등지: 예당평야 등 논농사 중심의 비교적 안정적인 생산성. 지력 유지 수준이 전국 상위권.

전북

188

12.5%

우등지: 호남평야 포함. 경지율(전체 면적 대비 경지 비중)이 전국 최고 수준(김제 약 48%)으로 토지 이용 효율이 높음.

경기/강원

기타

-

열등지/근교지: 강원은 지형적 한계로 경작 비용이 높으며(차액지대 하락), 경기는 비옥도보다 '위치'에 따른 차액지대가 지배적.

 

 

자연적 비옥도 (차액 지대 )에 따른 토양 유기물 함량은 토지의 자연적 힘에 따른 현대 농학에서 강조하는 유기물 함량으로 치환된다. 대표적인 고비옥도 지역의 경우, 전남, 전북의 평야 지대는 토양 내 유기물 함량이 평균 25-30g/kg 수준으로 유지되어, 자본 투입 (비료 등) 대비 수확량 효율이 높다. 저비옥도 지역의 경우에는 강원 산간 및 경북 일부 사질토 지역은 유기물 함량이 낮아, 동일한 수확량을 얻기 위해 더 많은 보조 자본 (차액 지대 )의 추가 투입을 강요받는다.

 

경지율과 생산 기반은 토지의 위치와 조건에 따라 전북 김제·익산에서는 경지율이 45%를 상회하는 반면, 강원도는 경지율이 10% 미만인 군이 많다. 전북은 토지 개간 및 구획 정비가 비교적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기계화에 따른 자본 투입 효율이 극대화됨을 의미한다. 강원도의 농지는 열등지에 속하는 지역으로, 전체 곡물 가격 (사회적 생산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지가 될 여지가 높다.

 

현재 남한의 통계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지점은 자본 투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 (차액 지대 )의 영향이다. 현재 시설 농업이 발달한 경남의 경우, 토양 자체의 비옥도보다는 유리 온실, 기계화 대체 등 고정 자본 투입이 지대를 결정하며, ‘토지에 투하된 자본의 연속적 투입에 따른 지대 상승의 원인과 일치되어 비옥도의 역전 현상이 발생한다.

 

경기 지역은 토양 비옥도가 전라 지역보다 낮을 수 있으나, 구매지 (서울)와의 거리라는 위치적 이점으로 인해 운송비 절감으로 이어져 차액 지대를 형성한다. 이처럼 남한 내에서는 전라도 (자연적 비옥도)와 경상도 (시설/과수 자본)이 대립하며, 경기도 (입지)라는 세 축이 서로 다른 지대 형성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 전체 면적 (223,658km²) 중 남한의 (10km²)는 이처럼 고도로 차별화된 지대 구조를 지닌다.

 

남한의 수확량

 

남한의 수확량은 쌀 수확량이 밀 수확량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단순히 선호도의 문제가 아니라, 토지의 생산력과 경제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2024-2025년 기준의 최신 통계를 바탕으로 비교 수치를 정리하면,

 

구분

연간 생산량 ()

자급률 ()

비고

354~ 358만 톤

90% 이상

주곡으로서 생산 기반이 확고함

3~ 5만 톤

1% 내외

대부분 수입에 의존 (식용 수요 약 215만 톤)

 

 

남한 기준에서 쌀과 밀의 생산량을 비교했을 때, 쌀 생산량은 밀 생산량의 약 70-100배에 달한다. 이러한 생산량 격차는 면적당 수확량에서 쌀은 10a(1,000m²)당 약 520kg 이상을 수확하는 반면, 국산 밀은 상대적으로 수확 효율과 재배 면적이 낮아 수입의 의존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밀보다 쌀이 압도적을 생산되는 이유는, 차액 지대로 설명이 된다. 자연적 비옥도 (차액 지대 )로 보자면, 동아시아 (특히 한반도 남부)의 몬순 기후는 여름철 고온다습하기에 쌀 재배에 최적화되어 있다. ‘토지의 자연적 힘이 쌀 농사에서 크게 발휘되며, 반면 밀은 건조하고 서늘한 기후에 적합하기에, 한국의 여름 장마철은 밀의 수확기 (초여름)과 겹쳐 품질 저하와 생산비 상승을 초래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동일한 자본을 투입했을 때 쌀의 물질적 수확량이 압도적으로 높다.

 

자본의 연속 투입과 시설 기반 (인프라) (차액 지대 )로 보자면, 지금까지 한국 정부는 수십 년간 쌀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수리 시설 (, 저수지)과 경지 정리 등 토지 개간 공사를 위한 고정 자본을 집중 투자했다. 쌀 재배지에 투하된 역사적 자본이 누적되었기에, 자본의 연속 투입의 비중을 극대화한 상태이다. 밀은 이러한 생산 기반 투하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미비하여 자본의 생산성 효율 면에서 쌀에 비해 떨어진다.

 

현재 한국에서 국산 밀은 수입 밀에 비해 생산비가 매우 높다. 시장 가격은 가장 불리한 조건에서 생산된 상품의 가격 (사회적 생산 가격)에 따라 결정되는데, 국산 밀은 세계 시장의 생산 가격보다 훨씬 높게 형성되어 지대를 창출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반면, 쌀은 주곡이며 국가적 가격지지 정책과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지대 형성이 이루어지므로, 농민들은 쌀 농사를 선호한다.

 

따라서 기후적 특성상 한국은 쌀에 대한 자연적 비옥도 (차액 지대 )가 높으며, 장기간의 자본 투하 (차액 지대 )가 쌀 농지에 집중되었기 때문에 밀보다 쌀 수확량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동아시아 전반적으로도 (중국 북부 등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쌀이 주된 지대 형성의 기초가 된다.

 

주요 지역별 생산지 분석

 

남한의 주요 쌀 생산지로는 크게 충청남도, 전라남도, 전라북도의 세 지역이 있다. 이 세 지역은 남한 전체 생산량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2025-2026년 전망치에 따르면, 생산량 순위와 지역별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시도별 쌀 생산량 순위 (2025년 말 확정치 및 2026년 전망 기준)

 

순위

지역명

연간 생산량 ()

주요 평야 및 특징

1

충청남도

69.4만 톤

예당평야: 당진, 서산 등이 전국 시·군 단위 최상위 생산력을 보유.

2

전라남도

68.7만 톤

나주평야: 해남, 영암 등 대규모 간척지와 비옥한 평야 지대.

3

전라북도

54.3만 톤

호남평야: 김제, 익산 등 내 최대 곡창지대.

4

경상북도

48만 톤

낙동강 유역의 상주, 의성 등이 주요 생산지.

5

경기도

35만 톤

이천, 여주 등 생산량보다 고부가가치 중심.

 

 

충남 및 전라권 (차액 지대 - 우등지)

 

이 지역들은 비교적 넓은 평야와 유리한 수리 시설을 갖추고 있어 차액 지대 (자연적 비옥도)가 가장 높게 형성되는 곳이다. 특히 김제나 당진 같은 곳은 경지 정리율이 높아 자본의 기계적 투입이 용이하므로, 단위 면적당 생산비가 낮아지는 경제적 이점을 갖추고 있다.

 

경기 및 강원권 (차액 지대 및 위치 지대)

 

경기도는 생산량 자체는 전라도보다 적지만, 수도권이라는 대규모 구매지와의 거래 (운송비 절감) 및 대표성을 띠는 지대 가치로 인해 높은 지대를 형성한다. 강원도는 지형적 한계로 인해 대규모 쌀 생산에는 불리한 열등지의 성격이 강하며, 이곳의 생산 가격이 시장의 기준 가격을 형성하는 하한선 역할을 하게 된다.

 

앞서 2025년 통계에 따르면, 전국적인 재배 면적 감소에도, 10a당 수확량은 오히려 약 1.7% 증가 (514kg 522kg)했다. 이는 병해충 감소와 기상 조건이 호전되면서 자연적 힘의 개선이 일시적으로 차액 지대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결론적으로, 현재 남한의 쌀 생산 지도는 충남 (당진·서산) - 전남 (해남·나주) - 전북 (김제·익산)으로 이어지는 서해안 평야 지대를 중심으로 우등지가 형성되어 있다.

 

농촌 지역의 인구 현황

 

남한의 대표적인 농촌 지역이자 쌀 생산의 핵심인 전남, 전북, 충남 세 자치 단체를 중심으로 보고된 인구 현황은 농업 인구의 감소와 도시로의 이탈 현상 등 농업 자본가와 임금 노동자의 분리, 즉 농업의 자본주의 발전을 분석하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2026, 행정 안전부에 주민으로 등록된 인구 통계와 통계청의 농림 어업 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수치를 산정했다.

   

남한 전체 인구 (5,175만 명) 대비 주요 농촌 지역의 인구 비중은 다음과 같다.


· 주요 농업 도별 전체 인구 및 비율

 

지역 구분

전체 인구수 ()

전국 대비 비율

비고

충청남도

213만 명

4.1%

수도권 인접으로 인해 인구 유지력이 높음

전라남도

180만 명

3.5%

전통적 농업 지대이나 고령화 및 인구 감소세

전라북도

175만 명

3.4%

거점 도시(전주 등)를 제외한 군 단위 소멸 위험

합계

568만 명

11%

3개 도의 인구를 합쳐도 경기도(26%)의 절반 이하.

 

 

단순히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전체 인구와 실제로 농업에 종사하는 농가 인구의 큰 차이는, 농촌 인구의 도시 유입과 산업 예비군 현상은 현재 남한 통계에서 더욱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전국 농가 인구는 약 210만 명 내외로 전체 인구의 약 4%을 차지하며, 3개 도 (전남, 충남, 전북)에 전체 농가 인구의 약 50% 이상이 집중되어 있다. , 이 지역들은 인구 밀도는 낮지만 농업 생산의 주력 부대가 결집된 농업적 우등지로서의 성격이 인구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따라서 실제 농가 인구의 급격한 감소가 우려된다.

 

· 노동력 부족과 자본의 연속적 투입 (차액 지대 )의 제약

 

농촌 인구 감소와 고령화 (65세 이상 농가 인구 비중 50% 상회)는 노동 집약적인 차액 지대 의 창출 및 진출을 다소 어렵게 만든다.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발전된 농기계 등 불변 자본의 투입이 강제되며, 이는 개별 농가의 유기적 구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 도시 지대와의 격차

 

수도권 (서울·경기·인천) 인구가 전국 인구의 50%를 상회하면서, 농촌 지역의 지대는 도시 지역의 지가 상승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체되어 있다. ‘토지 소유에 따른 독점은 현재 남한에서는 농지보다는 도시 부동산으로 강력하게 이동하였다.

 

· 토지 이용의 변화

 

전체 인구 대비 농촌 인구 비중이 현저해짐에 따라, 이전에 쌀 생산지였던 전북과 충남의 일부 토지는 산업 단지나 택지로 전환되고 있다. 이는 농업 지대도시 지대또는 산업 지대로 전환되는 과정이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가 상승분 (차익)은 지대론적 관점에서 자본의 축적 양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현재 남한의 농촌 주요 3개 도는 전체 인구의 약 11%를 차지하고 있으나, 실제 농업 생산을 담당하는 인구는 그보다 훨씬 적은 극소수로 재편되어 있다. 이는 현재의 농업 생산성이 노동력보다는 투입된 자본과 기술에 의존하여 유지되는 단계에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남한의 주요 생산물

 

남한의 주요 생산물로는 특정 작물의 집중은 해당 지역의 자연적 비옥도 (차액 지대 )와 자본의 집중도 (차액 지대 )가 결합된 결과이며, 단순한 특산물 수준이 아닌, 국내 생산량의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거나 경제적 핵심 역할을 하는 주요 작물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 남한 지역별 주요 생산물 지도 (2025-2026 기준)

 

지역

주요 생산물 (생산량/비중 중심)

지대론적 분석 특성

경기도

(경기미), 시설채소(상추, 시금치)

위치 지대: 거대 구매지 (서울) 인접성으로 인해 신선도가 중요한 채소류의 집약적 자본 투여가 발생함.

강원도

고랭지 배추·, 감자, 옥수수

우연적 우등지: 여름철 서늘한 기후라는 '희소한 자연 조건'이 평지의 열등성을 극복하고 독점적 지대를 창출함.

충청남도

, 잎들깨, 딸기

복합적 우등지: 예당평야의 곡물 생산성과 더불어 논산 중심의 시설 농업 자본 투입이 활발함.

전라북도

, 보리, 고구마

전형적 우등지: 호남평야를 바탕으로 한 광활한 경지 면적이 규모의 경제에 따른 생산비 절감

전라남도

, 양파, 마늘, 겨울 배추

기후적 우등지: 온화한 동절기 기후를 바탕으로 2기작 혹은 겨울 작물 재배를 통해 토지의 연간 생산력 극대화

경상북도

사과, 포도, 참외(성주)

독점적 지대: 특정 작물(사과 전국 60% 이상)에 적합한 기후·토양 조건을 독점하여 전국적인 시장 가격 결정권

경상남도

단감, 시설 딸기, 고추

차액지대 II: 전국 최대의 시설 원예 면적을 보유하여, 토양보다 '유리 온실' 등 고정 자본에 의한 생산성 향상

제주도

감귤, 당근, 월동 무

배타적 자연조건: 아열대성 기후라는 독보적 자연력을 바탕으로 내륙 작물과 차별화된 절대적 지대 형성

 

 

· 곡물 () 지대 (서해안): 충남-전북-전남으로 이어진 광활한 평야를 바탕으로 자연적 비옥도 (차액 지대)가 가장 안정적으로 형성된다. 남한의 사회적 총생산에서 식량 확보를 담당하는 기초 지대이다.

 

· 과수 및 시설 지대 (동남권)

 

경북 (사과)과 경남 (시설 원예)은 기후와 자본 투여가 결합되어 단위 면적당 부가 가치가 매우 높다. 이는 동일한 면적에 더 많은 노동과 자본이 고정되어 나타나는 자본의 연속적 투입 (차액 지대 )의 전형이다.

 

· 고랭지 및 도시 지대 (강원·제주)

 

해당 지역들은 일반적인 농지와는 다른 특수성을 가진다. 일반 농지와 대체되지 않는 기후 조건을 가지고 있으므로, 독점 지대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며, 생산물의 가격이 생산 가격을 상회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지역별 분업화는 단순히 전통 문제가 아닌, 자본이 가장 높은 이윤율 (또는 지대)를 확보할 수 있는 토지를 선택하고 그에 맞춰 기술적 구성을 고도화해 온 과정의 산물이다.

 

- 차액 지대 산출 과정 및 사례

 

남한 내의 차액 지대를 산출하는 과정은, 이론상의 토지 등급을 현재의 통계 지표인 단위 면적당 생산비수확량으로 환산하여 구체화할 수 있다. 쌀 생산을 예로 들자면, 차액 지대 의 산출 방식을 수식과 함께 제시한다.

 

차액 지대 의 산출 (자연적 비옥도 및 위치)

 

DR1: P1-P2 × Q

 

P1 (사회적 생산 가격): 전국에서 가장 불리한 조건 (열등지)의 생산비 + 평균 이윤

 

P2 (개별 생산 가격): 해당 지역의 생산비 + 평균 이윤

 

Q: 수확량

 

이에 열등지 기준에서는 경사도가 높고 수리 시설이 미비한 강원도 산간 농지를 기준으로 설정하며, 여기서 쌀 1가마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은 20만 원이라고 상정한다.

 

우등지 분석에서는 전북 김제평야는 기계화가 용이하므로, 1가마 생산에 15만 원이 든다.

 

따라서 김제평야의 토지 소유자는 시장 가격 (20만 원)과 자신의 생산비 (15만 원)의 차액인 5만 원을 차액 지대 로 가져간다.

 

차액 지대 의 산출 (자본의 연속 투입)

 

차액 지대 는 동일한 토지에 자본 (비료, 자동화 시설, 기계 등)을 추가로 투입하여 생산성을 높였을 때 발생한다.

 

DR2 = δQ × (P1 Cadd)

 

δQ: 자본 추가 투입으로 늘어난 수확량

 

Cadd: 추가 투입된 단위당 자본 비용

 

충남 당진의 한 농가에서는 일반 재배에서 자동화 모심개를 도입하였다. 따라서 추가 자본 투입 후 수확량이 10% 증가했다. 증가한 수확량을 시장 가격 (P1)으로 팔았을 때 얻는 수익에서, 투입된 기계의 감가상각비와 운영비 (Cadd)를 뺀 나머지가 차액 지대 가 된다.

 

- 실제 산출을 위한 주요 통계 지표 (변수)

 

따라서 실제 수치 산출을 위해서는 통계청 (KOSIS)의 다음 자료를 고려해야 한다.

 

구분

통계 항목

지대론적 의미

생산성

10a당 수량 (kg)

토지의 비옥도(차액지대 I)를 측정하는 척도

생산비

80kg당 직접생산비

개별 생산가격(P2)을 결정하는 기준

운송비

산지-소비지 유통 비용

'위치'에 따른 차액지대 가산 요소

고정자본

농업용 고정자산 투자액

차액지대 II를 발생시키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지표

 

 

전남 나주 (우등지)와 강원 평창 (열등지)를 비교한다면 평창의 생산비가 가장 높으므로, 평창의 비용 + 평균 이윤이 전국 쌀값의 하한선이 된다. 이로 인해 사회적 생산 가격이 확정된다.

 

나주의 농업 자본가는 평창보다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여 초과 이윤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개별 이윤율을 계산할 수 있다.

 

토지 계약이 갱신 시, 토지 소유자는 농업 자본가가 얻은 이 초과 이윤을 지대라는 명목으로 회수하여 지대가 전환된다.

 

이처럼 남한의 지대는 전라권/충청권의 낮은 생산비와 강원/경기권의 높은 생산비 사이의 격차, 그리고 자동화 농업 자본 투입에 따른 수확량 증분 (DR2)를 합산하여 산출할 수 있다. 이를 국내 농업에 적용하면, 단순한 지력이 아닌 기술적 생산력의 격차가 지대 산출의 요인이 됨을 알 수 있다.

 

- 차액 지대 의 국내 사례 분석

 

추가로, 차액 지대 의 세 가지 사례는 동일한 토지에 자본을 추가로 투입했을 때, 생산 가격의 변동에 따른 지대의 산출이 측정된다. 남한 농업 현황을 고려했을 때,

 

· 1사례: 생산 가격이 불변인 경우 (수요-공급 일치)

 

추가 자본 투입으로 생산량은 늘었으나, 시장 전체의 사회적 생산 가격 (쌀값)은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이다. 앞서 전북 김제의 한 농가에서 자동화 모심개를 도입하여 수확량을 1.2배 늘렸으나, 전국적인 쌀 가격은 변동이 없는 경우이다. 이에 따라 지대가 산출되려면 추가된 수확량에 시장 가격을 곱한 값에서 추가 투입 비용 (기계 부담료 등)을 뺀 초과 이윤 전체가 차액 지대 로 전환된다. 이는 토지 소유자에게 가장 유리한 상황이며, 자본 투입의 생산성 향상이 고스란히 지대 상승으로 이어지는 경우다.

 

· 2사례: 생산 가격이 하락하는 경우 (생산력 비약적 향상)

 

자본 투입에 따른 생산성 향상이 전국적으로 보편화되어, 사회적 생산 가격 (쌀값) 자체가 떨어지는 상황이다.

 

남한의 경우, 정부 주도의 자동화보급으로 전국 모든 우등지의 생산량이 급증하여 쌀 공급이 과잉되고 시장 가격은 하락하는 경우이다. 이에 따라 지대를 산출할 때, 개별 농가의 수확량은 늘었지만 가격이 떨어졌으므로, 초과 이윤의 폭은 제1사례보다 줄어들거나 상쇄된다. 따라서 지대 총액은 늘어날 수 있지만, 단위당 지대는 정체되거나 하락할 수 있다. 농민 (농업 자본가) 입장에서는 기술 혁신을 해도 지대 부담과 가격 하락이라는 이중고를 겪을 수 있다.

 

· 3사례: 생산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 (열등지의 한계)

 

인구 증가나 수요 급증으로 인해, 더 척박한 땅 (열등지)까지 경작하므로, 시장 가격이 오르는 상황이다. 남한 내의 경우, 식량 위기 등으로 인해 평소 경작하지 않던 강원도 고산 지대나 척박한 간척지까지 쌀을 심어야 해서 쌀값이 폭등하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지대를 산출할 때, 기존 우등지 (전남, 충남)에서 자본을 추가 투입하던 농가는 기존의 초과 이윤에 가격 상승분까지 더해진 막대한 지대를 얻게 된다. 따라서 차액 지대 가 동시에 폭등하는 효과를 가져오며, 토지 소유자의 권력이 극대화된다.

 

3가지 사례를 비교·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구분

시장 가격 (생산가격)

지대 발생 원인

지대 총액 변화

1사례

불변

개별적 생산성 향상 (수확량 증대)

증가

2사례

하락

사회적 생산성 향상 (단가 하락)

정체 또는 소폭 증가

3사례

상승

생산 조건의 악화 (시장가 폭등)

폭발적 증가

 

 

따라서 남한 내의 쌀 산업은 현재 제2사례의 압박 (기술 발달로 인한 과잉 생산과 가격 하락)을 정부의 수매 정책으로 인해 강제 지지하고 있는 형태이다. 완전한 시장 경제에 맡겨진다면, 생산 가격 하락으로 인해 차액 지대 를 누리던 농가들의 이윤율은 급격히 하락하게 된다. 반면, 부동산 개발 등으로 토지 용도가 전환되는 국면에서는 제3사례와 비슷한 지대 폭등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차액 지대의 세 가지 사례는 자본 투입이라는 변수가 시장 가격이라는 외부 조건과 만나 지대라는 결과물은 상이하다.

 

- 절대 지대 국내 사례 분석

 

남한 농업 현황에서 절대 지대를 산정은 차액 지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차액 지대가 토지 간의 생산성 격차에서 발생한다면, 절대 지대는 토지 사유권이라는 독점적 권리에서 발생한다. , 아무리 비옥도가 낮은 열등지라 하더라도 토지 소유자가 무상으로 땅을 내주지는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지대이다. 이를 남한의 도표를 바탕으로 절대 지대의 산정 원리 (가치와 생산 가격의 차이)와 구조로 제시한다.

 

Ra: V-P1

 

V (농산물의 가치): 불변 자본 + 가변 자본 + 잉여 가치

 

P1 (사회적 생산 가격): 비용 가격 + 평균 이윤

 

Ra (절대 지대): 가치가 생산 가격을 초과하는 부분

 

이를 남한 상황에 적용했을 때, 시장에서 가장 척박한 땅 (열등지)에서도 생산이 이루어지려면, 그 토지의 주인에게 최소한의 이익을 주어야 한다. 따라서 시장 가격은 열등지의 생산비 + 평균 이윤 + Ra로 결정된다. 이때 Ra가 바로 모든 토지에 공통적으로 부과되는 절대 지대이다.

 

남한의 경우, 기존의 이론과 달리 국가의 정채적 개입이 절대 지대 산정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남한 농업에서는 절대 지대를 결정하는 변수가 국가의 정치적 요인도 작용한다.

 

· 토지의 사유권 독점 (지대 결정의 임계점)

 

남한은 헌법상 경자유전 (농사짓는 사람만 땅을 가짐)의 원칙이 있지만, 실제로는 임차농 비중이 약 5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매우 높다. 토지 소유가 농사를 짓지 않고 빌려줄 때 받는 최소 임대료가 절대 지대의 실질적인 수치가 된다. 척박한 산간 오지의 논이라 하더라도 쌀 한두 가마 분량의 임대료를 요구한다면, 그것이 해당 토지의 절대 지대 산정 기준이 된다.

 

· 농업의 낮은 자본 구성

 

농업에 기계 (불변 자본)보다 노동력 (가변 자본)이 더 많이 투입될수록 절대 지대가 발생할 여지가 커진다. 남한 농촌은 고령화로 인해 노동력이 요구되고 임금이 상승하는 경향이 있어, 가치 형성 과정에서 가변 자본 (v)의 비중이 여전히 유의미한 변수로 작용한다.

 

· 지대 하한선으로서의 공익 직불금

 

현재의 남한의 고유한 현상으로, 정부가 지급하는 농업 직불금이 절대 지대의 하한선을 형성하기도 한다. 토지를 소유하기만 해도 국가로부터 일정 금액을 지원받는다면, 토지 소유자는 임대차 계약 시 그 금액만큼을 지대의 최소치로 상정하게 된다.

 

이에 따라 절대 지대의 산정 사례로, 전국에서 가장 생산성이 낮은 최열등지A 농지를 기준으로 산정한다. 생산비로는 쌀 80kg 생산에 18만 원 (비료, 인건비 등)이 투입되었고, 자본의 평균 이윤율이 10%라면 1.8만 원이라는 평균 이윤을 도출하여, 생산 가격이 19.8만 원으로, 토지 사유권의 장벽 때문에 시장 가격이 21만 원으로 형성된다면, 21-19.8= 1.2만원이 이 토지의 절대 지대가 된다. 1.2만 원은 비옥도와 상관없이 남한 내 모든 농지에 기본적인 지대 기초가 된다. 여기에 우등지는 차액 지대가 추가로 얹어지는 구조이다. 이를 도표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차액지대 (DR)

절대지대 (Ra)

발생 근거

토지 간 생산성/위치의 격차

토지 사유권의 독점

대상 토지

우등지에만 발생

모든 토지(열등지 포함)에 발생

가격 영향

시장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음

시장 가격을 생산가격 이상으로 끌어올림

남한 내 양상

전라·충청 평야 지대에서 높음

전국 농지의 최소 임대료 수준으로 나타남

 

 

결론적으로 남한의 절대 지대는 토지 소유주가 농업 자본가 (임차농)로부터 징수하는 최소한의 통행세 (교통세)와 같은 성격을 지닌다. 이는 농산물 가격을 지탱하는 하방 지지선 역할을 하며, 토지 소유권이 존재하는 한 소멸하지 않는다.

 

- 특수 지대 형성 및 사례

 

지금까지 살펴본 차액 지대와 절대 지대의 논리를 참고하면, 남한 내 특수 지대와 최종적인 토지 가격이 형성되는 원리를 알 수 있다. 토지 가격은 지대의 자본화라는 핵심 개념으로 결정된다.

 

특수 지대는 일반적인 농업 생산성이나 토지 사유권만이 아니라, 특정 토지가 가진 배타적이고 유일한 조건 때문에 발생하는 독점적 성격의 지대이다. 남한 내에서는 주로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다.

 

독점 지대의 경우는 제주도의 감귤이나 강원도의 고랭지 채소처럼, 기후나 토양 조건상 다른 지역에서는 절대 발생할 수 없는 상품의 경우이다. 이들은 생산 가격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판매되며, 그 초과분이 지대로 흡수된다.

 

광산 및 수력 지대의 경우 석회석 광산 (충북 단양 등이나 댐 인근의 용수 이용 등 자연력을 독점하여 생산비를 극도로 낮추는 경우 발생한다.

 

건축 지대는 농지가 주거용·상업용으로 전환될 때 발생하는 지대이다. 농업 지대에 비해 건축 지대가 훨씬 높게 형성되는 이유로는, ‘위치의 독점성에 있다. 남한의 도시화 과정에서 나타난 지가의 폭등이 이에 해당한다.

 

토지 가격의 산정 방식으로는 지대의 자본화가 있으며, 토지는 노동의 산물이 아니므로, 그 자체로는 가치가 없다. 그러나 토지는 지대라는 수익을 가져다주므로, 이를 가공 자본으로 가격이 매겨진다.

 

Pl = R / i


Pl: 토지 가격

 

R: 연간 지대 (차액 지대 + 절대 지대 + 특수 지대)

 

i: 사회적 평균 이자율

 

전남의 어느 논에서 연간 1,000만 원의 지대 (R)가 발생하고, 시장 이자율 (i)이 연 5%라면, 이 토지의 가격은 1,000 / 0.05 = 2 (억 원)으로 형성된다. 다시 말해, 연간 1,000만 원의 수익 (지대)를 보장하는 토지는, 연이율 5%인 경제 상황에서 2억 원의 자산 가치를 지닌다. , 토지 가격은 그 돈을 은행에 맡겼을 때 지대만큼의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원금으로 정의된다. 이를 기초로 남한 내 토지 가격 형성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구분

형성 원리

현상 및 결과

이자율과의 반비례

이자율이 낮아질수록 토지 가격은 상승함.

저금리 기조에서 남한의 지가가 폭등한 이론적 근거.

지대 상승의 기대치

장래에 차액지대(개발)가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앞섬

실제 생산력보다 훨씬 높은 '가공적 지대 가격' 형성.

토지 소유의 독점성

절대지대의 존재로 인해 토지 가격은 결코 0이 될 수 없음.

열등지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매매가가 유지되는 이유.

 

 

결과적으로 남한의 토지 가격은 단순히 땅의 비옥도만을 체현하지 않는다.

 

· 자연적 조건 (차액 지대 )

· 기술 및 자본 투입 (차액 지대 )

· 사유권의 장벽 (절대 지대)

· 입지의 희소성 (특수 지대)

 

이러한 요소가 합쳐진 총 지대를 현재의 이자율로 나눈 값이 시장에서의 토지 가격이 된다. 남한의 경우, 특히 도시 인근 농지는 농업적 생산성 (지대)보다 용도 전환에 따른 특수 지대에 대한 기대치가 가격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특수한 형태를 띠고 있다. 이는 토지 투기와 가공 자본의 팽창으로 인해 현재에도 재현되고 있는 모습으로 우려된다.

 

국내의 자본주의 지대 형성

 

남한 내의 자본주의적 지대의 형성과 산업 발전의 역사는 농업의 자본화자본의 원시적 축적과정이 비약적이고, 압축적으로 나타난 사례이다. 그 과정을 역사적 단계와 주요 발전 요소를 중심으로 다룬다.

 

· 자본주의적 지대의 형성기 (19501960)

 

농지 개혁과 원시적 축적

 

1950년 농지 개혁법 시행이 시행되면서 식민지 시대의 반봉건적 지주제가 해체되고, ‘자기 소유지에 기초한 소농 체제가 확립되었다. 이는 자본주의적 지대 형성의 전제 조건인 봉건적 구속으로부터의 해방에 해당하며, 지대의 변화를 야기한다. 지가 증권을 받은 지주 계급 중 일부가 산업 자본가로 전환되면서, 농촌의 잉여가 공업 부문으로 이전되는 원시적 축적의 통로가 마련되었다.

 

· 산업화와 지대 구조의 재편 (1970-1980)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산업화 시행기)

 

국가적으로 자본을 대대적으로 투입하여 수리 시설 확충, 경지 정리, 통일벼 보급 등 토지에 대한 국가적 고정 자본 투여가 극대화되었다. 이는 차액 지대 인위적으로 창출하여 식량 자급을 달성하려는 시도였다. 이중 곡가제를 시행하여 정부가 쌀을 높게 사고 낮게 파는 정책으로 인해 산업 노동자의 저임금을 유지 (노동력 재생산 비용 절감)하려 했지만, 농업 부문의 가치가 실제로 산업 부문으로 강제 이전되면서, 농업 지대는 정체되고 도시 건축 지대와 산업 단지 지대가 폭등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 고도화 단계와 독점적 지대의 팽창 (1990-2000)

 

기술 고도화와 수도권 위치 지대의 지배

 

반도체, 자동차, 통신 기술 등의 급격한 발달로 인해 1990년대 우루과이 라운드 (UR) 이후 농산물 시장이 개방되면서 남한 농업의 절대 지대 기반이 위협을 받게 되었다. 이에 따라 자본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농업에서 용역 산업 (서비스업)과 첨단 산업으로 급격히 이동하였다. 지대 변화로는 위치 지대가 극대화되면서 인구와 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서울 및 경기권 토지의 위치에 따른 차액 지대가 천문학적으로 상승했다. 관광 사업, 골프장 개발 등으로 농지가 전환되었으며, 토지의 용도에 따른 특수 지대가 다수 형성되었다.

 

· 지대의 자본화와 가공 자본의 형성 (2010-)

 

농업의 자동화와 부동산 투기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자동화 (ICT) 기술이 보급되었다. 이는 노동 집약적 노동에서 자본 집약적 노동으로의 완전한 전환을 의미하며, 지대의 산출 근거가 토양의 질에서 설비의 생산성 (차액 지대 )’로 옮겨갔다. 이에 따라 저금리 조건에서 지대가 자본화되어 토지 가격이 실제 생산성을 상회하는 거품 (가공 자본)’이 형성되었다. 농지는 이제 생산 수단만이 아니라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성격이 변화했다.

 

· 남한 산업 발전과 지대 형성사


시대 (연도)

중심 산업

지대의 성격

주요 원리

1950-1960

농업, 경공업

소농 지대의 형성

농지 개혁, 지주제의 자본주의적 해체

1970-1980

중화학공업

차액지대 II 창출

산업화 운동, 수리 시설 등 기반 시설 (인프라) 투자

1990-2000

첨단 제조업

위치 지대 특수 지대

수도권 집중화, 농지의 도시 용도 전환

현재

자동화 산업

지대의 자본화 및 금융화

자동화 기술, 저금리에 따른 지가 폭등

 

 

이처럼, 남한 내의 지대 형성의 역사는 앞서 제시한 농업 지대에서 산업 지대로의 이행,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본 축적 양상을 가장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실험실이다. 초기에는 국가가 농업의 차액 지대를 관리·종속시켜 공업화를 이끌었다면, 현재는 고도화된 자본과 기술이 새로운 형태의 지대를 창출하는 과정에 있으며, 이 과정에서 지대는 단순한 토지 수익 창출만이 아닌 자본의 독점적 이득을 고착화하며, 계급적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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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 이윤의 지대로의 전환

 


자본주의적 지대의 형성

 

맑스는 본격적으로 리카도의 지대론에 대한 비판적 작업을 개시하게 된다. 여기서 자본주의적 지대의 특수성이 규명된다. 지대 분석은 단순히 토지 동산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생산지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특히 자본주의적 발전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이전의 지대는 농업 지대 분석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토지 소유는 자본의 생산 양식에 따라 규정되고, 변형된 형태를 전제로 하며, 토지 소유권 자체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창출한 초과 이윤로 나타나는 권리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토지 소유자가 생산 과정에서 배제된 채, 토지 이용의 대가로 자본가 (임대 또는 차지 농업가)로부터 잉여 가치의 일부를 수취하게 된다. 이로부터 자본주의적 지대가 형성되며, 토지라는 순수한 자연력이 점차 사적으로 독점됨에 따라, 다른 부문의 평균 이윤을 초과하는 초과 이윤이 창출되며, 자본가의 손에 머물지 않고, 토지 소유자에게 이전된다. 이 과정에서 사적 소유의 독점이 발생한다.

 

농업 부문은 공업 부문과 달리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낮기 때문에, 농산물의 가치가 사회적 평균 생산 가격보다 높게 형성되는 경향과, 농산물의 시장 가격은 최열등지에서 생산된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이는 사회적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척박한 토지의 생산물이 필요하게 된다. 이로부터 시장 가격이 결정되며, 우등지에서 생산하는 자본가는 최열등지보다 높은 생산성을 가지므로, 개별 생산 가격이 시장 가격보다 낮아진다. 이 차액이 곧 초과 이윤을 형성하며, 지대의 원천이 되어 초과 이윤이 발생하게 된다.

 

기술 개량의 수준에서 자연력은 가치를 창출하지는 않지만, 노동의 생산력을 높여 노동 시간을 단축시키며, 증기 기관을 사용하는 공장주와 달리, 자연력인 폭포를 이용하는 공장주는 연료비를 절감하여 초과 이윤을 창출한다. 그러나 노동력의 생산력을 높여 노동 시간을 단축시키려 시도하지만, 이 자연력은 무한하지 않고, 특정 토지에 고착되어 있으므로, 이를 점유한 토지 소유자는 자본가에게서 그 초과 이윤을 지대라는 명목으로 빼앗아 올 수 있다. 독점적 초과 이윤과 자연력의 관계는 여기에서 형성된다. 이로부터 농업 지대의 기본 형태인 차액 지대와 절대 지대의 구분이 생긴다.

 

차액 지대: 토지의 비옥도 차이나 위치의 유리함, 또는 동일 토지에 대한 연속적 자본 투하의 생산성 차이에서 기인한다.

 

절대 지대: 토지 소유권 그 자체의 독점으로 인해 최열등지에서도 지불해야 하는 지대이며, 농산물 가치가 생산 가격을 초과하는 부분에서 발생한다.

 

여기서 토지 소유권은 가치 창출의 원천이 아니며, 단지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에서 발생한 초과 이윤이 일반적 이윤율 평준화 과정에 포섭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이를 지대로 전환시키는 사회적 힘이라는 점으로 귀결된다.

 

차액지대 제1형태 (차액지대 I)

 

차액 지대의 첫 번째 형태는, 서로 다른 비옥도를 가진 토지들에 동일한 양의 자본을 투하했을 때 발생하는 생산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지대는 토지 자체가 가치를 창출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유리한 생산 조건을 점유한 자본가가 얻는 초과 이윤이 토지 소유자에게 이전된 것이다.

 

농산물의 사회적 생산 가격은 가장 불리한 조건인 최하급지 (A)가 발생하며, 개별 생산 가격에 따라 규정된다. 우등지에서 생산하는 자본가는 사회적 생산 가격보다 낮은 비용으로 생산하므로, 그 차액만큼 초과 이윤을 얻게 된다. 여기서 가치와 가격이 불일치가 발생한다.

 

리카도는 비옥도의 차이를 상급지를 중심으로 규명한 반면, 맑스의 경우에는 서로 다른 등급 (A, B, C, D)의 토지에 동일한 자본 (2.5파운드)를 투하하는 구체적인 사례로 설명한다.

(여기서 A: 최열등지, D: 최우등지이다.) 동일한 자본이 투하되더라도 A1쿼터, B2쿼터, C3쿼터, D4쿼터 등으로 생산량의 차이가 상이하다.

 

여기서 사회적 생산 가격이 A의 경우 생산비 (2.5파운드 + 0.5 = 3파운드)에 따라 결정될 때, B6파운드, C9파운드, D12파운드에 판매하게 된다.

 

따라서 B3파운드, C6파운드, D9파운드의 차액 지대가 발생하며, 최열등지인 A의 지대는 0이 된다.

 

비옥도가 동일하더라도 위치의 차이에 따라서도 지대가 발생한다. 시장에서 멀리 떨어진 토지는 운반비가 생산 가격에 추가되며, 시장에 인접한 토지는 운반비 절감분만큼 개별 생산 가격이 낮아지며, 이는 비옥도가 높은 토지와 동일한 효과를 내어 차액 지대를 형성한다.

 

따라서 차액 지대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농업에 침투하여, 농업 자본가가 평균 이윤을 보장받는 체계 내에서만 명확히 성립한다. 차액 지대 이론에서 최열등지는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므로, 생산비와 평균 이윤만을 회수할 뿐 지대는 발생하지 않는다. (이후 절대 지대 논의에서 후술함)

 

이 형태의 지대는 자연적 한계를 가지므로, 이 형태의 지대는 자본의 투입량 변화가 아니라, 토지라는 생산 수단의 자연적 불평등독점적 점유에 기반한다. 따라서 토지의 자연적 비옥도와 위치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개별 생산 가격과 사회적 생산 가격 (최열등지 기준) 사이의 차액이 차액 지대 을 구성한다. , 지대는 고전 경제학파가 지적한 토지의 생산성이 아니라 노동의 생산성 차이가 토지 소유권이라는 사회적 관계에 따른 결과물이다.

 

차액 지대 제1형태의 사례

 

차액 지대 의 경우에는 개별 생산 가격과 사회적 생산 가격의 관계를 규명하게 된다. 본격적으로 사회적 생산 가격이 최열등지 (A)에 따라 결정되는 원리를 수치적 체계로 구체화된다. 시장에서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최열등지의 생산물이 반드시 필요하다면, 시장 가격은 이 최열등지의 생산비를 보전하고 평균 이윤을 제공하는 수준에서 형성되며, 이는 차액 지대의 결정 요인이 된다.

 

우등지 (B, C, D)의 개별 생산 가격은 최열등지보다 낮지만, 판매는 사회적 생산 가격 (A의 가격)으로 이루어지며, 이 사이의 차액이 차액 지대의 실체를 구성한다. 이는 차액 지대의 불변의 원칙에 대한 기초를 이룬다.


네 가지 등급의 토지에 동일한 자본을 투입했을 때의 지대 발생 양상을 표 형식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전제자본 2.5파운드 투하이윤율 20%)

 

토지 등급

생산량

판매 수입 (사회적 가격)

초과 이윤 (= 지대)

비고

A (최열등)

1쿼터

3파운드

0

생산비와 평균이윤만 회수

B (중등)

2쿼터

6파운드

3파운드

1쿼터 분량의 가치가 지대로 전환

C (중우등)

3쿼터

9파운드

6파운드

2쿼터 분량의 가치가 지대로 전환

D (최우등)

4쿼터

12파운드

9파운드

3쿼터 분량의 가치가 지대로 전환

합계

10쿼터

30파운드

18파운드

총판매액의 60%가 지대

 

 

제시된 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회 전체적으로 투하된 자본은 10파운드 (2.5 × 4)이고 평균 이윤은 2파운드이므로, 생산물의 총 생산 가격은 12파운드다. 그러나 실제 시장에서 판매되는 총 가액은 30파운드 (10쿼터 × 3파운드)에 달한다.

 

총 판매 가격 (30파운드)에서 총 생산 가격 (12파운드)을 뺀 18파운드가 차액 지대의 총합 (초과 이윤의 합계)가 된다. 18파운드는 지대의 실체이며, 소비자 (사회 전체)가 지불하는 가격 중 일부가 토지 소유자에게 이전된 것이며, 이는 우등지의 높은 노동 생산성이 창출한 초과 이윤의 변형된 형태이다.

 

토지의 생산성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더라도 차액 지대가 유지되거나 증가할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생산량이 아니라, 토지 등급 간의 상대적인 생산성 격차’ (상대적 격차)이며, 새로운 우등지로 인해 기존의 최열등지 (A)가 경작에서 제외된다면, 다음 새로운 최열등지 (B)가 가격 결정의 기준이 되어 지대 구조가 재편된다. 반대로, 수요가 늘어난 경우, 더 척박한 토지를 경작해야 한다면 시장 가격은 상승하고 기존 토지들의 지대는 급격히 늘어난다.

 

따라서 차액 지대가 개별 토지의 비옥도 차이에서 발생하는 수량적 차액에 기초하고 있음이 입증된다. 특히 최열등지가 지대를 발생시키지 않으면서 시장 가격을 규정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우등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생산성의 이득은 자본가나 구매자가 아니라, ‘토지 소유권이라는 장벽으로 인해 지대로 흡수된다.

 

차액 지대의 제2형태

 

차액 지대 이 토지의 공간적차이 (서로 다른 토지의 비옥도)에 기반한다면, 차액 지대 는 동일한 토지에 시간적으로 연속해서 투하되는 자본의 생산성 격차에 기반한다. 토지 면적을 넓히는 대신, 기존 토지에 비료, 기계, 배수 시설 등 자본을 추가로 투입하여 생산량을 늘리는 집약적 농업 방식이 발생한다. 동일한 토지에 추가로 투하된 자본이 그 토지의 평균적인 생산성이나 사회적 생산 가격을 결정하는 최열등지의 생산성보다 높은 수익을 낼 때, 그 차액이 차액 지대 가 되며, 초과 이윤을 형성한다.

 

앞서 차액 지대 과 차액 지대 는 별개의 현상이 아니라 서로 교차하며 작용하므로, 차액 지대 의 결과로 특정 토지의 생산성이 영구적으로 개선되면, 이는 다음 계약 시기에 차액 지대 의 비옥도 차이로 고착되며 상호 전환된다. 차액 지대 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차액 지대 에서 설정한 서로 다른 토지 등급시장 가격 결정 원리가 전제되어야 한다.

 

추가 투하된 자본의 생산성은 세 가지 양상으로 나타날 수 있으며, 이는 지대 형성에 각기 다른 영향을 미친다.

 

· 생산성이 불변하는 경우: 추가 자본이 기존 자본과 동일한 비율로 생산물을 늘리는 경우

 

· 생산성이 저하하는 경우: 추가 자본이 토지의 자연적 한계로 인해 이전보다 적은 생산물을 내놓는 경우 (수확 체감의 형태)

 

· 생산성이 상승하는 경우: 기술 발전이나 토지 개량으로 인해 추가 자본이 이전보다 더 많은 생산물을 내놓는 경우

 

자본가 (임대 농업가 또는 차지 농업가)와 토지 소유자 사이의 경제적 이해 관계 대립이 선명하게 드러나므로, 차액 지대 와 토지 소유권의 갈등 또한 심화된다. 자본가가 토지를 빌려 쓰는 계약 기간 내에 추가 자본을 투하해 발생시킨 초과 이윤은 자본가의 수입이 된다. 이는 차지 계약 기간 중의 이득으로 발생하게 된다.

 

그러나 계약이 만료되어 갱신할 때, 토지 소유자는 자본가가 개선해 놓은 토지의 생산성을 근거로 지대를 인상한다. , 자본가가 투입한 자본의 결과물을 토지 소유자가 지대의 형식을 빌려 탈취하는 것이다. 이는 계약 갱신 시의 수탈에 해당한다.

 

따라서 차액 지대 는 동일한 토지에 대한 연속적인 자본 투입의 생산성 격차에서 발생하며, 이는 자본주의 농업이 집약화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초과 이윤을 둘러싼 자본가와 토지 소유자 간의 대립은 자본주의적 토지 소유가 농업 발전에 어떤 장벽으로 작용하는지를 보여준다.

 

차액 지대 제2형태 제1사례

 

차액 지대 에서 제1사례는 생산 가격이 불변일 경우에 해당되므로, 농산물의 시장 가격 (사회적 생산 가격)이 고정되어 있다는 전제 아래에 진행된다. , 최열등지의 생산 조건이나 사회적 수요와 공급의 일치하는 상태에서, 기존의 우등지들에 자본이 추가로 투입될 때 지대가 변화하며, 동일한 토지에 두 번째, 세 번째 자본이 투하될 때 그 생산성은 이전 자본과 다를 수 있다. 세부적으로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 생산율 불변: 추가된 자본이 이전 자본과 동일한 양의 생산물을 낼 경우, 초과 이윤과 지대는 투입된 자본의 양에 비례하여 산술적으로 증가한다.

 

· 생산율 저하: 추가된 자본의 생산성이 이전보다 낮아지는 경우 (이른바 수확 체감’). 이 경우에도 추가 생산물의 개별 생산 가격이 여전히 시장 가격보다 낮다면 초과 이윤은 발생하지만, 그 증가율은 둔화된다.

 

· 생산율 상승: 기술 혁신이나 토지 개량으로 추가 자본의 생산성이 더 높아지는 경우, 초과 이윤과 지대는 자본 투하량보다 더 가파르게 증가한다.

 

B 토지의 사례로는, 차액 지대 에서 2쿼터를 생산하던 B 토지 (자본 2.5파운드 투입)에 동일한 금액의 자본을 추가로 투입한다고 전제할 때의 변화다.

 

차액 지대 의 상태는 생산물 2쿼터 중 1쿼터는 생산비/이윤용, 나머지 1쿼터가 지대 (3파운드),

 

차액 지대 의 결과는 추가 자본이 똑같이 2쿼터를 생산한다면, B 토지의 총 지대는 2쿼터 (6파운드)로 늘어난다. 이때 지대율이 중요해진다. 투하된 총자본 대비 지대의 비중이 어떻게 변화하는지가 분석의 핵심이며, 시장 가격이 최열등지 (A 토지)로 인해 고정되어 있다면, 우등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생산성 향상의 결과물은 자본가에게 잠시 머물다 결국 토지 소유자의 지대로 흡수된다.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계약 기간 중에는 추가 생산물로 인한 초과 이윤을 누린다.

 

토지 소유자의 입장에서는 토지의 자연적 비옥도가 아닌 자본으로 만들어진 인위적 생산성조차 소유권을 근거로 지대화한다.

 

따라서 시장 가격이 변하지 않더라도’, 기존 우등지에 자본을 집중적으로 투하 (집약적 농업)하면서 지대의 총액을 대폭 늘릴 수 있다. 이는 차액 지대 가 단순히 의 연장이 아니라, 자본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토지의 공간적 확장이 아닌 자본의 심화로 인해 지대가 증대되는 원리를 보여준다.

 

차액 지대 제2형태 제2사례: 생산 가격의 하락

 

차액 지대 의 두 번째 사례에서는 사회적 생산 가격 (시장 가격)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지대가 어떻게 변동하며, 역동적인 상황에 해당한다. 시장 가격이 하락하는 주된 이유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가격 결정의 기준이 되는 최열등지 (A)의 생산성이 향상되어 고정된 생산비가 낮아지는 경우와 우등지 (B, C, D 토지)에 대한 집중적인 자본 투하로 총생산량이 수요를 초과하여, 더 이상 최열등지 (A 토지)의 생산물이 필요하지 않게 되어 가격 결정 기준이 상위 등급의 토지로 이동하는 경우이다.

 

· 지대 총액이 불변인 경우

 

생산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추가 자본 투입에 따른 생산량 증가분이 가격 하락분을 정확히 상쇄한다면 지대 총액은 변하지 않는다. 이 경우 지대율 (투하 자본 대비 지대)은 하락하지만, 토지 소유자가 수취하는 절애 액수는 유지된다.

 

· 지대 총액이 증가하는 경우

 

생산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우등지에서의 생산성 향상 폭이 가격 하락 폭보다 더 클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시장 가격이 이전 대비 1/4 하락했지만, 추가 자본 투하로 생산량이 1/2 이상 늘었다면, 개별 토지에서 발생하는 초과 이윤의 절대량은 이전보다 커지게 된다. 이는 집약적 농업이 고도로 발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 지대 총액이 감소하는 경우

 

가격 하락 폭이 생산성 향상분을 압도할 때 발생한다. 이때는 지대 총액과 지대율이 모두 하락한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도 우등지는 여전히 최열등지보다는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므로, 차액 지대의 형태자체는 유지된다.

 

이처럼, 시장 가격이 하락하여 기존의 최열등지 (A 토지)가 생산비를 보전받지 못하게 되면, A 토지는 경작에서 제외되며, 기존의 B 토지가 새로운 최열등지가 되어 지대가 없는 토지 (무지대 토지)’가 되고, CD지의 지대는 이 새로운 기준 (B 토지의 생산 가격)에 맞춰 다시 계산된다. 사회 전체적으로 농산물 가격은 저렴해졌지만, 토지 소유 구조에 따라 특정 우등지의 지대 수입은 오히려 공고해질 수 있다.

 

이는 차액 지대가 단순히 자연의 비옥도에 고정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자본의 투입 방식과 그에 따른 사회적 생산 가격의 변동은 지대의 수량을 끊임없이 재구성하며, 이는 농업 자본주의의 경쟁을 더욱 심화시킨다. 따라서 농산물 가격이 하락한다고 해서 반드시 지대가 감소하는 것은 아니며, 자본 투하로부터 생산성 향상 정도에 따라 지대 총액은 유지되거나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술 발전의 혜택이 구매자나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대신, 토지 소유권이라는 장벽으로, 다시금 지대의 형태로 수취되는 과정이다.

 

차액 지대 제2형태 세 번째 사례

 

차액 지대 의 세 번째 사례는 사회적 생산 가격 (시장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에서 지대 변동을 분석한다. 이는 주로 인구 증가나 수요 급증으로 인해 더 척박한 토지를 추가로 경작해야 하거나, 기존 토지의 추가 자본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질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농산물의 사회적 생산 가격이 상승하는 상황을 전제한다면, 가격 상승의 주요 원인은 기존의 최열등지 (A 토지)보다 더 척박한 토지 (: A´ 또는 A´´ )를 경작해야만 사회적 수요를 충족할 경우와 기존 토지에 자본을 추가로 투입했으나, 그 추가 생산물의 개별 생산 가격이 기존 시장 가격보다 훨씬 높아져서 시장 가격 자체가 그 높은 생산 가격에 맞춰 상향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가격이 상승하면 모든 우등지에서 발생하는 초과 이윤 (지대)의 폭은 기본적으로 확대된다.

 

· 지대 총액과 지대율의 급격한 증가

 

가장 일반적인 경우로, 시장 가격의 상승은 우등지 자본가가 얻는 차액을 즉각적으로 늘린다. 기존 최열등지였던 A지조차 이제는 새로운 최열등지 (A´ )과의 차액만큼 지대를 발생시키기 시작한다.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지대 총액은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투하 자본 대비 지대의 비율 (지대율)도 상승한다.

 

· 생산성 저하를 동반한 가격 상승

 

추가로 투입된 자본의 생산성이 낮아서 가격이 오른 것이라면, 생산량의 증가 속도보다 지대 액수의 증가 속도가 더 빠를 수 있다. 이는 사회적으로는 식량 가격의 상승 (생존 비용 증가)을 의미하지만, 토지 소유자에게는 막대한 불로 소득의 증대를 의미한다.

 

이로 인해 명목 지대와 실질 지대의 불일치가 발생하며, 가격 상승이 지대 수취인에게 주는 이득을 구분하게 된다. 곡물 가격이 올랐으므로, 토지 소유자가 받는 화폐 총액이 늘어나 화폐 지대가 증가하며, 생산성 저하가 심각하다면 실제 징수하는 곡물의 양은 늘지 않을 수 있으나, 가격 상승분 덕분에 토지 소유자의 경제적 지배력이 강화되는 곡물 지대가 변화한다.

 

예를 들어, 사회적 생산 가격이 3파운드에서 4파운드로 상승했다고 전제할 때, 이전에 지대를 내지 않던 최열등지 A 토지가 이제 1파운드 (4-3)의 차액 지대를 발생시킨다. 상위 등급인 B, C, D 토지는 기존에 얻던 지대에 더하여, 가격 상승분 (1파운드 × 생산량)만큼의 추가 지대를 얻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대는 생산성 격차뿐만 아니라 가격 상승분까지 흡수하며 팽창한다.

 

따라서 농산물 가격의 상승은 토지 소유자에게 가장 유리한 시점이며, 이 과정에서 이전에 지대가 없던 토지까지 발생지로 포섭된다는 점이다. 이는 인구 증가와 산업화로 농산물 수요가 늘어날 때, 그 혜택의 대부분이 생산적인 자본가나 노동자가 아닌 토지 소유권을 독점하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차액 지대의 결합

 

이러한 차액 지대 (비옥도 / 위치 차이)(연속적 자본 투하의 생산성 차이)가 현실에서는 분리되지 않고 동시에 작용한다. 차액 지대 가 발생하려면 이미 토지들 사이에 비옥도의 차이 (차액 지대 의 기초)가 존재해야 한다. 반대로, 차액 지대 의 결과로 특정 토지에 가해진 인위적 개량은 시간이 지나면 그 토지의 천연적 비옥도처럼 고착되어 차액 지대 의 새로운 기초가 된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토지의 공간적 확장 ()보다는 동일 토지에 대한 자본 투입의 심화 ()가 지대 증대의 주된 동력이 되며, 자본의 집약화가 진행된다.

 

앞선 가격의 불변·하락·상승의 사례은 어떤 상황에서도 토지 소유권이 초과 이윤을 지대로 흡수하는 법칙은 관철됨을 보여준다. 따라서 시장 상황에 따라 지대를 내지 않는 기분 토지는 끊임없이 변한다. 가격이 하락하면 우등지가 기준이 되고, 가격이 상승하면 더 나쁜 토지가 기준이 되며, 최열등지가 이동한다. 가격 하락 요인으로 인해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이 높아지더라도, 인구 증가로 인해 경작지가 확장되거나 자본 투입이 늘어나면 (지대 발생 요인) 사회 전체의 지대 총액은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며, 지대 총액의 경향적 증가를 유발한다. 이로부터 시장 가격의 변동과 지대 체계가 재편된다.

 

리카도를 비판하는 지점에서, 지대가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지대를 결정한다는 점이며, 지대가 비싸기 때문에 곡물 가격이 비싼 것이 아닌, 최열등지의 생산 조건으로 인해 곡물 가격이 높게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보다 우수한 조건을 가진 토지에서 지대가 발생하는 것이다. 결국 차액 지대는 사회적 노동 생산성의 차이로 인해 초과 이윤이 사회 전체로 회수되지 못하고 토지 소유자라는 특정 계급의 수중으로 들어가는 사회적 비용이 요구된다.

 

특히 자본가가 토지를 개량하여 생산성을 높여도, 계약 갱신 시 토지 소유자가 이를 지대에서 가로채기 때문에 자본가는 장기적인 토지 개량을 감행하지 않으며 생산력 발전이 저해된다. 더불어, 토지 소유자는 생산 과정에 전혀 기여하지 않으면서도, 자본주의적 경쟁과 인구 증가에 기대어 사회적 잉여 가치의 거대한 몫을 차지하는 토지 소유자의 기생적 성격으로 인해 자본주의적 토지 소유는 모순을 가진다.

 

따라서 차액 지대의 두 형태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의 필연적 결과물이며, 이들이 결합하여 지대 총액을 끊임없이 증대시킨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지주의 권력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이 창출한 생산성 향상의 결실을 소유권으로 더 강력하게 나타난다.

 

절대 지대


리카도의 차액 지대론에 따르면, 시장 가격을 결정하는 최열등지 (A 토지)는 지대를 내지 않는다 (무지대 토지). 그러나 현실에서는 아무리 척박한 토지라도 소유자가 무상으로 빌려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최열등지에서도 지대가 발생한다면, 어디에서 오며, 이것이 가격으로 나타난다면 노동 가치설과도 충돌되는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를 위해서는 농업 부문의 자본의 유기적 구성에 주목한다. 특히 농업의 낮은 유기적 구성은 당시 농업은 공업에 비해 기계 (불변 자본)보다 노동력 (가변 자본)의 비중이 높았으며 (가치와 생산 가격), 유기적 구성이 낮다는 것은 동일한 자본을 투하했을 때 더 많은 살아있는 노동을 사용한다는 뜻이며, 따라서 농업에서 생산된 상품의 가치는 사회적 평균 생산 가격보다 높겨 형성된다 (잉여 가치율의 차이). 일반적인 산업 부문에서는 이윤율의 평준화 과정에서 초과 잉여 가치가 다른 부분으로 이전되지만, 농업에서는 토지 소유권이라는 장벽이 이 이전을 가로막는다 (잉여 가치의 잔류).

 

따라서 절대 지대는 농산물의 가치가 생산 가격을 초과하는 부분에서 발생한다. 여기서 토지 소유권은 자본이 토지에 자유롭게 진입하여 이윤율을 완전한 평준화를 방해하여 독점적 장벽을 형성하며, 최열등지에서도 지주에게 지대를 지불해야 하므로, 농산물은 생산 가격 (비용 + 평균 이윤)보다 높은 가격, 곧 가치에 더 근접한 가격에 판매된다. 따라서 최열등지의 생산 가격과 실제 판매 가격 (가치) 사이의 차액이 절대 지대가 된다.

 

· 절대 지대와 차액 지대의 차이


구분

차액지대

절대지대

근거

토지의 생산성 차이 (우등지 : 열등지)

토지소유권 그 자체의 독점

발생 지점

우등지와 중등지

최열등지를 포함한 모든 토지

가격 영향

시장가격을 결정하지 않음 (결과물)

시장가격을 생산가격 위로 끌어올림

 

 

절대 지대의 존재는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 농산물 가격을 생산 가격 이상으로 유지시키는 요인이 된다. 이는 토지 소유라는 역사적·법적 권리가 자본주의적 가치 법칙의 관철을 일시적으로 왜곡하며, 사회적 잉여 가치의 일부를 자기 몫으로 떼어가는 방식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토지 소유권이라는 독점적 권리가 자본의 이동을 제하하면서, 농업 부문에서 창출된 높은 잉여 가치가 이윤율 평준화 과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토지 소유자에게 고착되는 것이 절대 지대의 실체이다. 이로부터 최열등지에서도 지대가 발생하게 된다.

 

특수 지대

 

농업 지대의 특수한 형태인 건축 지대, 광산 지대 및 토지 가격은 농경지에서 도출한 지대 법칙이 비농업 부문의 토지 이용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그리고 토지가 어떤 원리로 가격을 갖게 되는지 분석한다.

 

· 건축 지대

 

주거용이나 산업용 건물이 들어서는 토지에 지불되는 지대다. 비옥도보다는 위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도시화가 진행될수록 특정 지역의 토지 수요가 급증하며, 이는 농경지 지대를 훨씬 상회하는 초과 이윤을 발생시킨다. 이는 토지 위치의 절대적 우위를 이루며, 건축 지대에는 차액 지대뿐만 아니라 토지 소유권에 기반한 강력한 독점 지대가 결합한다. 토지 소유자는 생산 활동과 무관하게 인구 집중과 사회적 기반 (인프라) 확충의 결과물 및 지대 상승으로부터 고스란히 사유화한다.

 

· 광산 지대

 

광산이나 석탄 채굴지 등 천연 자원을 추출하는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다. 농업 지대와는 비옥도에 대응하는 광산의 풍부함과 위치에 대응하는 시장과의 거리에 따라 차액 지대가 형성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광산 지대의 특수성은 농지의 자본 투하로 인해 재생산될 여지가 있으나, 광산은 자원이 고갈되며 가치가 소멸하는 소모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광산 지대에는 자원 고갈에 대한 보상 성격이 포함되기도 한다.

 

· 토지 가격

 

토지는 노동의 생산물이 아니므로, 본래 가치가 없다. 토지 가격은 지대의 자본화로부터 형성되는 근거 없는 가치이며, 토지 가격은 그 토지가 매년 가져다주는 지대를 현재의 이자율로 환산한 금액으로 자본화 공식이 성립된다. (토지 가격 = 연간 지대 / 이자율) 지대가 일정할 경우, 은행의 이자율이 하락하면 토지 가격은 상승한다. 이는 토지 소유가 흡사 일정한 이자를 낳는 자본 (화폐 자본)처럼 취급되는 반비례 관계를 지닌다.

 

따라서 토지 소유자는 사회 전체의 발전을 가로채며, 사회가 발전하여 인구가 늘고 수요가 증가하면 지대가 오른다. 지대가 오르면 토지 가격도 동반 상승한다. 토지 소유자는 아무런 노동이나 자본 투하 없이도 사회적 생산력 발전의 결실을 지대 가격 상승지대 수입의 형태로 독점하며,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내에서 토지 소유권이 가지는 기생적 본질이다.

 

이처럼, 농업 이외의 영역에서도 지대 법칙은 동일하게 관철되며, 토지 가격은 실질적인 가치가 아니라 장래에 수취할 지대를 현재 가치로 끌어온 자본화된 형태일 뿐이라는 점이다. 특히 토지 가격의 상승은 사회적 부의 실질적 증가가 아니라, 노동 생산물의 일부를 가로챌 권리가 비싸진 것에 불과하다.

 

자본주의 지대

 

자본주의적 지대는 이전의 지대와 결합하거나 단절되면서 형태 변화한다. 이를 역사적으로 고찰하면, 지대를 단순한 경제적 수치만이 아니라, 토지 소유자와 직접 생산자 (농민) 사이의 사회적 지배와 예속 관계의 변천 과정으로 파악한다. 자본주의적 지대는 생산자가 자기 노동의 객관적 조건을 소유하지 못하는 역사적 발전의 최종 단계이다.

 

이전의 지대 형태들로는 자본주의적 지대가 성립하기 전에 잉여 노동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지대화되었다.

 

· 노동 지대: 생산자가 일주일 중 며칠은 자신의 땅에서, 나머지는 영주의 땅에서 직접 부역 노동을 하는 형태다. 또한 필요 노동과 잉여 노동이 시공간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

 

· 생산물 지대: 노동력 대신 수확물의 일부 (현물)를 바치는 형태다. 생산자가 자신의 노동 시간을 어느 정도 관리할 수 있게 되며, 생산성 향상의 동기가 조금씩 생겨난다.

 

· 화폐 지대: 현물 대신 화폐로 지대를 납부하는 형태다. 이는 생산물 지대의 변형이지만, 생산자가 시장에 등장하고 화폐를 축적하면서 봉건적 관계를 해체하며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으로 이행하게 된다.

 

이전의 자본주의적 지대가 잉여 가치 그 자체를 직접 수취하는 형태였다면, 자본주의적 지대는 이윤율의 평준화가 전제된 이후의 잉여를 다룬다. 이제 직접 생산자는 농민이 아니라 임금 노동자가 되며, 그들을 고용하는 농업 자본가가 등장한다. 지대는 오직 사회적 평균 이윤을 초과하는 부분 (초과 이윤)으로만 한정된다. 이로부터 이윤과 지대가 분리된다. 토지 소유자 (지대), 자본가 (이윤), 노동자 (임금)이라는 자본주의 고유의 계급 구조가 농업 부문에서도 형성된다.

 

자본주의적 대토지 소유뿐만 아니라, 근대적 소농 소유의 한계를 고찰할 때, 소농은 지대를 내지 않지만, 토지 구입 비용이나 조세 등으로 인해 자본 축적이 어렵거나, 자본이 부족하게 된다. 소규모 분할지 소유는 대규모 기계 도입과 과학적 농법 (집약적 농법)의 도입을 방해하여, 결국 산업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점차 몰락하거나 타 부문에 종속된다. 이러한 한계는 분할지 소유와 소농 경영을 이룬다.

 

따라서 지대는 생산자와 토지의 분리라는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며, 자본주의적 지대에 이르러서야 지대는 잉여 가치의 특수한 변형물로 완전히 정립된다. 또한 지대 발생 과정에서 자본주의가 농업에 침투하여 봉건적 관계를 파괴하고, 토지를 순수한 자본의 증식 수단으로 변모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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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자본주의적 지대의 기원

 

. 서론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이론적 표현인 근대 경제학이 지대를 분석하며 직면하는 곤란의 실체적 성격을 해명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최근 다수의 저자 또한 이러한 이론적 난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지대를 이른바 새로운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모든 시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모순적으로 이미 오래전에 학문적으로 파산한 구태의연한 견해를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론적 난점의 핵심은 농업 자본이 창출하는 잉여 생산물이나 그에 대응하는 잉여 가치 일반을 설명하는 데 있지 않다. 이러한 문제는 투하 부문를 불문하고 모든 생산 자본이 생성하는 잉여 가치에 관한 일반 연구에서 이미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이론적 난점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규명하는 데 있다. , 여러 자본 사이에서 잉여 가치가 평균 이윤으로 균등화되고, 사회적 총자본이 생산한 총 잉여 가치가 각 자본의 크기에 비례하여 분배되면서 잉여 가치의 분배 과정이 외관상 종결된 이후에도, 토지 투하 자본이 지대의 형태로 토지 소유자에게 지불하는 이 초과분이 과연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하는 점이다. 토지 소유권에 맞서 산업 자본의 관점을 대변했던 근대 경제학자들로 하여금 이 문제에 매달리게 한 실천적 동기 (이에 관해서는 지대론의 역사적 전개를 다루는 잉여가치학설사2부 제9; CW 31: 344-386)에서 상술할 것이다)와는 별개로, 이 사안은 이론가들에게도 결정적인 쟁점이 되었다.

 

농업 투하 자본에서 발생하는 지대 현상을 해당 투자 부문의 특수성, 곧 토지 표면 자체의 자연적 속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가치 개념 자체를 포기하는 일이다. 이는 결국 이 영역 내에서 과학적 해명을 달성할 모든 여지를 내버리는 것과 다름없다.

 

지대가 토지 생산물의 가격에서 지불된다는 단순한 사실은 차지 농업가가 자신의 생산 가격을 회수한다는 전제하에 현물 지대의 경우에도 유효하다. 이러한 현상은 일반적인 생산 가격을 초과하는 이 가격의 초과분, 곧 토지 생산물의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현상을 초래한다. 그러나 이를 농업의 자연 발생적 생산성이 기타 산업보다 높다는 사실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불합리하다. 오히려 노동이 생산적일수록 동일한 노동량이나 가치가 체현하는 사용 가치의 양이 증대되어 개별 생산물의 가치는 하락한다는 가치 법칙의 기본 원리에 정면으로 배치되기 때문이다.

 

지대 분석의 핵심적 난점은 단순히 잉여 가치 일반을 규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평균 이윤을 초과하는 농업 이윤의 초과분을 설명하는 데 있다. , 일반적인 의미의 순생산물이 아니라 타 산업 부문의 순생산물을 초과하는 농업 부문 특유의 초과 잉여 가치를 해명하는 것이 분석의 본질적 과제였다.

 

평균 이윤은 매우 특수한 역사적 생산 관계 하에서 전개되는 사회적 생활 과정의 산물이며, 다각적인 매개 고리를 전제로 성립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서 평균 이윤을 초과하는 초과분을 논하기 위해서는, 이 평균 이윤이 먼저 가치의 척도이자 생산의 일반적 규정자로서 확립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모든 잉여 노동을 강제하고 잉여 가치를 취득하는 기능이 아직 자본에 귀속되지 않은 사회 형태, 곧 자본이 사회적 노동을 포섭하지 못했거나, 단지 산발적으로만 포섭한 단계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지대를 논할 수 없다. 근대적 지대란 총자본이 생산한 총 잉여 가치를 개별 자본들이 자신의 크기에 비례하여 분배받은 몫, 곧 평균 이윤을 초과하는 초과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파씨 (1854)가 원시적 상태에서 지대를 이미 이윤이라는 역사적으로 규정된 사회적 형태를 초과하는 초과분으로 상정한 것은 그의 이론적 천박성을 드러낼 뿐이며, 이러한 논리는 잉여 가치의 특수한 사회적 형태가 사회적 관계 없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모순에 이르게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미발달 단계에 머물러 있던 시기의 경제학자들에게 지대 분석은 전혀 난점이 아니었거나, 또는 지금과는 질적으로 다른 성격의 문제였다. 페티 (1667), 캉티용 (1756) 등 봉건적 질서에 근접했던 저술가들은 지대를 잉여 가치의 전형적인 형태로 간주하였다. 그들에게 이윤이란 임금과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미분화된 상태였으며, 기껏해야 자본가가 토지 소유자로부터 수취한 잉여 가치의 일부분으로 파악될 뿐이었다.

 

이러한 견해의 배경이 된 사회적 토대는 다음과 같다.

 

첫째, 농업 인구가 여전히 인민의 압도적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둘째, 토지 소유자가 토지 소유권의 독점을 바탕으로 직접적 생산자의 잉여 노동을 먼저 취득하면서, 토지가 가장 지배적인 생산 조건으로 군림하던 상태였다.

 

따라서 당시의 이론가들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관점에서 토지 소유권이 자본이 이미 점유된 잉여 가치 (, 자본이 직접적 생산자로부터 착취한 가치) 중 일부를 어떻게 재수취하는가라는 과제를 상정할 수 없었다.

 

중농주의자들이 직면한 난점은 질적으로 다른 성격의 것이었다. 자본에 관한 사실상 최초의 체계적 해설자로서 그들은 잉여 가치 일반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노력하였으나, 이 분석은 지대 분석과 동일시되었다. 그들에게 지대는 잉여 가치가 존재하는 유일한 형태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대 산출하는 자본, 곧 농업 자본만이 잉여 가치를 생산하는 유일한 자본이며, 이에 투입된 농업 노동만이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생산적 노동으로 규정되었다.

 

중농주의자들이 잉여 가치의 생산을 결정적 요소로 고찰한 것은 매우 정당하다. (잉여 가치 학설사)에서 다루어질 여타의 공헌을 차치하더라도, 그들은 유통 영역에 국한된 상업 자본에서 생산 자본인 산업 자본으로 분석의 주안점을 전환했다는 점에서 위대한 공적을 남겼다. 이는 현실적 자기 이익에 매몰되어 페티와 그의 후계자들이 제시한 과학적 분석의 단초들을 외면했던 당대의 속류 경제학자들, 곧 중상주의자들의 피상적인 현실주의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성과다.

 

중농학파는 자본과 잉여 가치에 관한 중상주의의 견해를 비판하는 데 집중한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CW 29: 389-390), 중금주의는 세계 시장을 향한 생산과 생산물의 상품화 및 화폐화를 자본주의적 생산의 전제 조건로 정립했다는 점에서 정당성을 갖는다.

 

중금주의를 발전시킨 중상주의 단계에서 결정적인 요인은 더 이상 상품 가치의 화폐화가 아니라 잉여 가치의 생산이다. 그러나 중상주의는 이를 유통 영역이라는 왜곡된 관점에서 고찰하며, 동시에 이 잉여 가치가 무역 수지 흑자에 따른 초과 화폐로 나타난다고 간주했다.

 

이러한 중상주의적 관점은 당대 이기적 상인과 제조업자의 특성을 대변하며, 봉건적 농업 사회가 산업 사회로 이행하던 자본주의적 발전기의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세계 시장을 무대로 한 국가 간 산업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자본의 급속한 발전을 자연 발생적 방법이 아닌 국가적 강제 수단을 동원해 달성하는 것이 핵심적인 과제로 부각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적 자본이 산업 자본으로 점진적으로 전환되는가, 아니면 국가적 강제 수단에 의거해 그 과정을 비약적으로 단축하는가는 결정적인 차이를 낳는다. 여기서 강제 수단이란 보호 관세나 토지 소유자·중소농 및 수공업자에게 부과되는 조세, 독립적 직접 생산자에 대한 수탈 촉진, 그리고 자본 축적과 집중의 강제적인 가속화 등을 의미하며,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물적 조건을 조기에 형성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경로의 차이는 국민의 자연적 생산력을 자본주의적 산업 발전에 이용하는 방식에도 현저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중상주의의 국민주의적 성격은 단순한 선전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중상주의자들은 국부 증진과 국가 재정 확보를 명분으로 내세우되, 실제로는 자본가 계급의 이익과 부의 축적을 국가의 궁극적 목적으로 규정하면서 해체되는 신권 국가의 자리에 부르주아 사회를 정립하였다. 아울러 그들은 자본가 계급의 이익 증대와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이 근대 사회에서 국민적 위력과 우위를 결정하는 핵심 토대임을 명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중농학파가 잉여 가치의 생산 및 자본의 모든 발전을 농업 노동의 생산성이라는 자연적 토대에 근거하여 파악한 것은 타당하다. 인간이 하루의 노동 시간을 투입하여 자신의 재생산에 필요한 수준 이상의 생활 수단, 특히 농산물을 생산할 수 없다면, 잉여 생산물이나 잉여 가치는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노동자가 자신의 불가결한 필요를 충족시키는 정도를 상회하는 농업 노동의 생산성을 확보하는 일은 모든 사회의 존립 근거이자 자본주의적 생산의 필수적 토대가 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인구의 점진적인 부분을 직접적인 생활 수단 생산 영역에서 분리시켜 그들을 제임스 스튜어트 (1770)의 말대로 여타 산업 부문에서 착취의 대상인 이른바 자유로운 노동자로 전환할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데르 (1846)나 파씨 등과 같은 후기 경제학 저술가들에 대한 평가는 냉혹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고전파 경제학의 황혼기에 이르러 잉여 노동과 잉여 가치 일반의 자연적 조건에 관한 원시적인 견해를 반복하면서도, 지대에 관해 흡사 새롭고 놀라운 시각을 제시한 것처럼 자부하였다. 이미 지대가 잉여 가치의 특수한 일부분임이 증명된 지 오랜 시점에서 이러한 형태는 학문적 퇴행에 가깝다.

 

이전의 발전 단계에서는 새롭고 독창적이고 심오하며 정당했던 이론일지라도, 그것이 이미 진부하고 부적절해진 시대에 이를 다시금 되풀이하는 것이야말로 속류 경제학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이는 속류 경제학이 고전파 경제학이 연구했던 본질적 문제들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다. 그들은 부르주아 사회의 고도화된 체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오직 초기 발전 단계에서나 유효했던 쟁점들과 동일시하고 있다.

 

속류 경제학이 중농학파의 자유무역론을 끊임없이 전면에 내세우며 되새김질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한 명제들은 특정 국가의 낙후된 상황에서는 여전히 실천적 의미를 가질지 모르나, 이론적 관점에서는 이미 오래 전에 그 적실성을 상실하였다.

 

고대 로마의 라티푼디움, 칼 대제의 장원, 그리고 다소간 중세 전반에 걸친 전형적인 자연 경제 체제 (뱅사르의 노동의 역사참조)에서는 농산물이 유통 과정에 진입하는 비중이 극히 낮았거나 전무하였다. 토지 소유자의 수입에 해당하는 잉여 생산물조차 유통되는 양은 미미하였으며, 대소유지의 총생산물과 잉여 생산물은 결코 농산물에 국한되지 않고 공산품까지 포함하였다.

 

이는 농업을 토대로 하되 가내 수공업이 부업으로서 결합된 형태는 자연 경제가 입각하고 있는 해당 생산 양식의 본질적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는 유럽의 고대와 중세는 물론, 전통적인 조직이 보존된 오늘날의 인도 촌락 공동체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은 농업과 공업의 이러한 상호 관련된 유기적 결합을 완전히 해체하였으며, 이 과정은 특히 18세기 후반 (마지막 1/3) 영국에서 대규모로 전개되었다. ()봉건적 사회 질서에 매몰되어 있던 헤렌슈반트와 같은 인물들은 18세기 말엽에도 농업과 제조업의 이와 같은 분리를 무모한 사회적 모험이자 이해하기 히든 위험한 존립 방식이라고 간주하였다.

 

고대의 농업 경영 중 자본주의적 농업과 가장 흡사한 면모를 보이는 카르타고와 로마의 사례조차, 그 실질은 자본주의적 착취 방식보다는 식민지 농업에 가깝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본질을 파악하려면 이러한 형태적 흡사함은 곧 착각임이 드러나는데, 모든 화폐 경제를 자본주의로 간주하는 몸젠의 시각은 예외로 하더라도, 이러한 외견상의 흡사함조차 고대 이탈리아 본토에서는 찾아볼 수 없으며 오직 시실리에서나 극히 제한적으로 식별될 뿐이다. 이는 시실리가 로마에 공물을 봉납하는 농업 기지로서 주로 수출 목적의 농업을 수행했기 때문이며, 바로 이러한 특수성으로 인해 그곳에서만 예외적으로 근대적 의미의 차지 농업가가 출현할 수 있었다.

 

지대의 본질에 관한 왜곡된 견해가 현대까지 지속되는 이유는 생산물 지대 (현물 지대)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조건과 정면으로 모순됨에도, 교회의 십일조 (1/10)나 종래 계약에 의거해 관습적 형태로 잔존해 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지대가 농산물의 가격이라는 사회적 관계가 아닌, 생산물의 양이라는 토지 자체의 자연적 속성에서 발생한다는 착시가 생겨난다.

 

그러나 잉여 가치가 잉여 생산물로 체현된다 하더라도, 단순히 생산량의 증가만을 의미하는 초과 생산물은 그 자체로 잉여 가치를 구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생산물 가치의 변동에 따라 잉여 가치의 감소를 초래할 수도 있다. 생산량 자체가 잉여 가치를 결정한다면, 면공업은 면사 가격의 하락에도, 1840년에 비해 1860년에 막대한 잉여 가치를 획득했다는 모순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지대는 흉작으로 인한 곡물 가격 등귀 시 크게 증가할 수 있으나, 이때의 잉여 가치 (지대)는 고가의 밀이 적은 수량으로 전화된 것에 불과하다. 이와는 반대로 풍작에 따른 곡물 가격 하락은 지대의 감소를 초래하지만, 이 감소한 지대는 오히려 저렴한 밀의 더 많은 수량으로 표현된다.

 

첫째로, 생산물 지대는 이미 소멸한 생산 양식의 유산이자 구시대적 잔재일 뿐이며,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의 근본적 모순은 사적 계약 관계에서 이것이 자연 도태되는 현상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영국의 십일조 금납법 (1836-1860) 사례와 같이 입법적 개입이 수행됐던 영역에서 생산물 지대가 부적합한 형태로 규정되어 강제 폐지되었다는 사실은 이를 더욱 명확히 뒷받침한다.

 

둘째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하에서 생산물 지대가 존속하는 경우, 이는 중세의 외피를 두른 화폐 지대의 변형된 표현에 불과하다. 가령 밀 1가마의 가치가 40이라 할 때, 그 일부는 투하된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판매되어야 하며, 다른 일부는 조세 납부를 위해 화폐화되어야 한다.

 

고도화된 사회적 분업 체계 내에서는 종자와 비료 등도 상품으로서 재생산 과정에 투입되므로, 이를 재구매하기 위한 화폐 확보 목적으로 1가마의 생산물 중 또 다른 일부가 판매된다. 설령 종자처럼 현물로 직접 충당되어 생산 조건에 재투입되는 항목이라 할지라도, 이는 계산 화폐로 장부에 기록되어 비용 가격의 구성 부분으로 공제된다.

 

끝으로, 여기에 기계와 고정 자본의 마멸분을 보충하기 위한 화폐 자금과, 화폐로 환산된 총비용에 근거하여 산출된 이윤이 추가된다. 이 이윤은 총생산물 중 가격에 의거해 결정된 일정 부분으로 표현되며, 이 모든 항목을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남는 잔여분이 지대를 형성한다.

 

계약상 정해진 생산물 지대가 가격에 의거해 결정되는 이 잔여분을 상회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지대가 아니라 이윤의 잠식에 해당한다. 이처럼 생산물 지대는 가격 변동과는 무관하게 고정되어 진정한 지대를 상회하거나 하회할 수도 있으며, 이윤뿐만 아니라 자본 보충분까지 침해할 위험을 내포하므로, 자본주의 체제에 부적합한 시대착오적 형태일 뿐이다.

 

사실상 생산물 지대는 그것이 실질적인 지대인 한, 오로지 생산물의 가격 중 생산 가격을 상회하는 초과분에 근거하여 결정된다. , 생산물 지대는 가격에 따라 변동하는 가변적 크기를 일정 생산량이라는 불변적 크기로 상정하고 있을 뿐이다. 생산량이 현물 형태에서 노동자의 생존을 보장하고 자본가적 차지 농업가의 필요분을 충족시킨 뒤, 그 나머지가 현물 지대를 형성한다는 발상은 지극히 소박하고 안이한 견해다.

 

이는 흡사 직포업자가 제조한 20만 미터의 직포가 노동자와 가족의 의복 문제를 해결하고도 판매용 분량이 남으며, 최종적으로 막대한 지대까지 직포로 지불하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문제는 결코 이처럼 단순하지 않다!

 

20만 미터의 직포에서 생산 가격을 공제하면 직포의 초과분이 지대로서 남아야만 한다. 그러나 직포의 판매 가격을 도외시한 채 20만 미터의 직포에서 가치량 10,000이라는 생산 가격을 공제하려는 시도, 곧 사용 가치에서 교환 가치를 차감하여 초과분을 결정하려는 발상은 원을 정사각형으로 만들려는 시도보다 더욱 황당한 논리적 비약이다. 이는 직선과 곡선의 구별이 없어지는 극한의 개념을 억지로 끌어다 쓰는 것과 같다.

 

그럼에도 이것이 바로 파씨 (1854)가 제시한 처방이다. 직포가 논리적·현실적으로 화폐로 전환되기도 전에 화폐액을 공제하고 그 잔액을 현물지대라고 부르는 것은 기만적인 궤변에 불과하다. (아른트: 1845 참조). 결국 현물 지대 개념의 복원은, 밀의 부피 단위에서 화폐액인 생산 가격을 공제하려는 비합리적인 계산법으로 귀결될 뿐이다.

 

. 노동 지대

 

노동 지대라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지대, 곧 직접적 생산자가 주중 일부는 사실상 또는 법률상 자기 소유인 도구 (쟁기 · 역축 등)와 토지를 이용하여 노동하고 주의 나머지 며칠은 영주의 토지에서 무상으로 부역하는 형태를 고찰하면 지대와 잉여 가치의 동일성은 명백히 드러난다.

 

이 체제에서 무상 잉여 노동을 구체화하는 형태는 이윤이 아니라 지대다. ‘자급자족하는 농노가 자신의 생활필수품, 곧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서 임금을 초과하는 초과분을 어느 정도나 확보할 수 있는지는 그의 노동 시간이 자기 자신을 위한 노동과 영주를 위한 부역으로 분할되는 비율에 근거하여 결정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이윤의 맹아가 되는 이 초과분은 전적으로 지대의 크기에 종속되어 규정되는데, 이는 직접적인 무상 잉여 노동 그 자체이자 그러한 것으로 현시된다. 생산 조건인 토지 또는 그 부속물의 소유자에게 귀속되는 이 잉여 노동은, 곧 토지 그 자체 또는 토지의 부속물과 결합한 생산 조건의 소유권에 근거한다.

 

농노의 생산물이 자신의 생활 수단과 노동 조건을 보전하기에 충분해야 한다는 원리는 일정 생산 양식의 산물이 아닌 모든 체제에 보편적인 사항이다. 이는 생산 양식의 특수한 형태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재생산적인 노동 일반이 성립하기 위한 자연적 전제 조건이다. 또한 모든 연속적인 생산은 항상 재생산이며 동시에 자기 자신의 활동 조건을 재생산하는 과정이기에, 이러한 활동이 자기 자신의 존립 조건을 재생산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본질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 노동자가 자신의 생활 수단 생산에 필요한 생산 수단과 노동 조건을 직접 점유하는모든 생산 형태에서는, 소유 관계가 필연적으로 직접적인 지배와 예속의 관계로 나타난다. 이에 따라 직접적 생산자는 부역 노동에 기반한 농노제에서부터 단순한 공납 의무에 이르기까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본질적으로 부자유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여기서 직접적 생산자는 (우리의 전제에 따르면) 자신의 노동을 실현하고 생활 수단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객체적 노동 조건을 스스로 점유하며, 농업과 이에 결부된 가내 공업을 독립적으로 운영한다. 이러한 독립성은 인도의 사례처럼 소농들이 다소 자연 발생적인 생산 공동체를 형성하는 경우에도 해소되지 않는데, 여기서의 독립성이란 명목상의 영주에 대한 독립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명목상 토지 소유자를 위한 잉여 노동은 어떠한 형태든 경제 외적 강제를 매개로 해서만 착취될 수 있다. 이는 노예가 타인의 생산 조건을 가지고 비독립적으로 노동하는 노예 경제나 식민지 농장과는 구별되는 지점이다. 따라서 노동자가 자신의 생산 수단을 직접 점유하고 있는 체제에서는 인격적 종속 관계, 곧 정도의 차이는 존재할지라도 인격적 부자유와 토지의 부속물로서 결박되는 진정한 의미의 예속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직접적 생산자들에게 토지 소유자인 동시에 주권자로서 직접적으로 대립하는 주체가 사적 토지 소유자가 아닌 국가일 경우 (아시아적 형태), 지대와 조세는 일치하거나 해당 지대 형태와 구별되는 별도의 조세는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속 관계는 (정치적·경제적으로) 국가에 대한 백성 일반의 관계 이상으로 가혹한 형태를 취할 필요가 없다. 국가는 여기서 최고 영주로 군림하며, 주권은 전국적 규모로 집중된 토지 소유권에 근거한다. 따라서 토지에 대한 사적 또는 공동체적 점유와 이용은 존재할 수 있으나, 진정한 의미의 사적 토지 소유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무상 잉여 노동을 직접적 생산자로부터 강탈하는 특수한 경제적 형태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규정하며, 이는 생산 과정에서 직접 발생함과 동시에 생산 체제 전반에 결정적 요소로 반작용한다. 이러한 경제적 형태를 기초로 생산 관계에서 기인하는 경제적 공동체의 전체 구조와 특수한 정치적 형태가 구축된다.

 

결국 생산 조건의 소유자와 직접적 생산자 사이의 직접적인 관계는 사회 구조 전체의 심층적인 비밀이자 주권 및 종속 관계를 포함한 특수한 국가 형태의 은폐된 토대를 형성하는데, 이 관계의 특수한 형태는 당연히 노동 방식 및 사회적 노동 생산력의 일정한 발전 단계에 항상 부합한다.

 

물론 주요한 조건에서 일치하는 동일한 경제적 토대 위에서도 자연 조건, 인종 관계, 외부의 역사적 영향과 같은 수많은 실증적 조건에 따라 그 현상적 형태는 무수한 편차를 보일 수 있으나, 이러한 편차는 오직 주어진 개별적 사정들에 대한 분석에 의거해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

 

가장 단순하고 시초적인 지대 형태인 노동 지대에서 지대는 잉여 가치의 원초적 형태이며 그 자체로 잉여 가치와 일치한다는 점이 명백히 드러난다. 여기서 잉여 가치가 타인의 미지불 노동과 일치한다는 사실은 별도의 분석이 필요 없을 만큼 가시적이다. 직접적 생산자가 자신을 위해 수행하는 노동과 영주를 위해 수행하는 노동이 시간적·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후자의 노동은 제3자를 위한 강제 노동이라는 적나라한 형태로 직접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토지가 지대를 산출한다는 이른바 속성또한 이 경우에는 전혀 불투명한 현상이 아니다. 지대를 낳는 자연적 기초는 토지에 결박된 인간 노동력을 전제하며, 나아가 노동력의 소유자로 하여금 자신의 필수적 욕구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한도를 초과하여 노동력을 지출하도록 강제하는 소유 관계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결국 지대란 이러한 노동력의 초과분을 토지 소유자가 직접 취득하는 것에 불과하다. 직접적 생산자가 토지 소유자에게 지불하는 지대는 오직 이 형태 이외에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잉여 가치와 지대가 동일할 뿐만 아니라 지대가 명백히 잉여 노동의 형태를 띠는 이 체제에서는 지대의 불가피한 조건과 한계 또한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조건과 한계는 잉여 노동 일반의 한계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잉여 노동이 성립하려면 우선 직접적 생산자가,

 

(1) 충분한 노동력을 보유해야 한다.

 

(2) 경작지와 같은 노동의 자연 조건이 생산자 자신의 필수적 욕구를 충족하고도 남을 만큼 비옥해야 한다. , 노동의 자연 발생적 생산성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만 잉여 노동의 물질적 토대가 형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잠재력이 곧바로 지대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며, 오직 강제력이 개입할 때만 그 잠재성은 현실적인 지대로 전환된다. 다만 그 잠재적 기반 자체가 주체적·객체적인 자연 조건들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노동력이 부족하고 노동의 자연 조건이 척박하다면 잉여 노동의 규모는 작아질 수밖에 없으나, 이 경우 대개 생산자들의 욕구와 착취자의 수, 그리고 그들을 위해 실현되는 잉여 생산물의 양 또한 상대적으로 적은 수준에 머물게 된다.

 

마지막으로 노동 지대 체제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은 자명하다. 직접적 생산자가 어느 정도까지 자신의 상태를 개선하여 부를 축적하고 필수적인 생활 수단을 초과하는 초과분을 생산할 수 있는 정도, 곧 자본주의적 표현 방식을 빌려 자신을 위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정도는 여타의 조건들이 불변이라면 전적으로 잉여 노동 또는 부역 노동의 상대적 크기에 달려 있다. 여기서 지대는 전형적이고 합법적인 잉여 노동의 형태로서 모든 잉여 노동을 흡수하며, 결코 이윤이나 임금을 초과하는 별도의 잉여분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이윤의 크기는 물론 그 존재 여부 자체가 여타의 조건들이 불변이라면 소유자를 위해 강제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잉여 노동의 크기, 곧 지대의 크기에 따라 규정된다.

 

직접적 생산자가 소유자가 아닌 점유자에 불과하고 그의 모든 잉여 노동이 사실상 법적으로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되는 상황에서, 부역 의무자나 농노가 독립적인 재산과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일부 역사가들은 의아함을 표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생산 관계와 그에 상응하는 미발달한 생산 방식 하에서는 관습이 지배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또한 현존하는 상태를 법률로써 정당화하고, 관습과 전통에 기반하여 주어진 제한들을 법적 구속력으로서 고정시키는 것이 지배층의 이익에 부합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다른 모든 이유를 차치하더라도, 현존하는 관계의 토대가 끊임없는 재생산되며 시간에 따라 규칙적이고 질서 있는 형태를 갖추게 되면 이러한 고착화는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이러한 규제와 질서는 모든 일정 생산 양식이 사회적 안정성을 획득하고 단순한 우연이나 자의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 불가결한 요소다. , 규제와 질서야말로 특정 생산 양식이 사회적으로 확립되고 자의적 우연성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하는 구체적인 형태다.

 

어떠한 생산 양식이라도 생산 과정과 그에 상응하는 사회 관계가 정체된 상태에서 단순 자기 반복적인 재생산을 지속할 때 비로소 이러한 사회적 형태를 획득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이 일정 기간 반복되면 해당 형태는 관습과 전통으로 확립되며, 나아가 명문화된 법률에 의거하여 공인된 권위를 부여받기에 이른다.

 

잉여 노동의 한 형태인 부역 노동은 사회적 생산력의 미발달과 저발달된 노동 방식에 기초하고 있기에,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비해 직접적 생산자의 총 노동 중 상대적으로 적은 부분만을 강취할 수 있을 뿐이다. 예컨대 영주를 위한 부역 노동이 주 2일로 고정될 경우, 이는 관습법이나 성문법에 의거하여 규제되는 불변의 크기가 된다.

 

그러나 직접적 생산자가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나머지 기간의 생산성은 가변적이며, 숙련도의 축적에 따라 향상되기 마련이다. 새로운 욕구의 발생, 생산물에 대한 시장의 확대, 그리고 자기 노동력을 자의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보장의 증대 등은 노동력 지출을 더욱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노동력의 운용이 농업에 국한되지 않고 농촌 가내 공업까지 포괄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제반 조건과 특성 등에 따른 일정 수준의 경제 발전 잠재력은 필연적으로 확보된다.

 

. 생산물 지대

 

노동 지대가 생산물 지대로 전환되는 것은 경제적 관점에서 지대의 본질을 결코 변경시키지 않는다. 본 형태의 지대가 지니는 본질은 그것이 잉여 가치 또는 잉여 노동의 유일하고도 지배적이며 전형적인 형태라는 점에 있다. , 지대는 자신의 재생산에 필요한 노동 조건을 점유한 직접적 생산자가 토지 (이 단계에서 토지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노동 조건이다) 소유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유일한 잉여 노동 또는 잉여 생산물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토지만이 직접적 생산자에 대해 독립된 타인의 소유이자 토지 소유자로 인격화된 노동 조건으로서 대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생산물 지대가 지대의 지배적이고 가장 발달한 형태로 확립되더라도, 이전 단계인 부역 노동, 곧 노동에 기초한 직접 지불의 잔재는 영주가 사적 개인이든 국가이든 관계없이 도처에 잔존하기 마련이다. 생산물 지대는 직접적 생산자의 향상된 지적·기술적 수준, 곧 그의 노동 능력과 사회 일반이 도달한 더 높은 발전 단계를 전제로 한다.

 

생산물 지대를 이전 형태와 구별하는 핵심은 잉여 노동이 더 이상 영주나 대리인의 직접적인 감독과 강제라는 적나라한 형태로 수행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이제 직접적 생산자는 물리적 채찍 대신 법적 규정과 주위의 경제적 여건에 밀려, 자기 책임하에 잉여 노동을 수행한다. 이에 따라 필수적 욕구를 초과하는 잉여 생산물은 종전처럼 영주의 별도 경작지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자가 점유하고 직접 이용하는 경작지에서 수행되는 것이 자명한 원칙으로 확립된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생산자는 노동 시간 전체를 비교적 자유롭게 운용할 수 있게 된다. 비록 노동 시간의 일부 여전히 토지 소유자에게 무상으로 귀속되지만, 토지 소유자는 이를 노동력 그 자체가 아닌 노동의 결과물, 곧 현물 형태로 취득하게 된다.

 

생산물 지대가 전형적인 형태로 확립되면, 토지 소유자를 위한 부역으로 인해 생산자 자신의 점유지 작업이 수시로 중단되던 부역 노동 (권 제10장 제2공장주와 보야르참조)에 내재된 비경제성이 사라진다. 설령 생산물 지대와 더불어 일정 수준의 부역 의무가 존속하더라도, 그러한 작업 중단은 적어도 연중 극히 짧은 기간으로 단축된다. 결과적으로 생산자가 자신을 위해 수행하는 노동과 토지 소유자를 위해 수행하는 노동은 이제 더 이상 시간적·공간적으로 명확히 분리되지 않는다.

 

전형적인 형태의 생산물 지대는 비록 그것의 잔재가 더 발달한 생산 방식과 생산 관계에까지도 존속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자연 경제, 곧 경제적 조건의 전부 또는 주요 부분이 해당 경제 단위 자체 내에서 생산되고 총생산물로부터 직접 보충·재생산되는 상태를 전제한다. 또한 생산물 지대는 농업과 농촌 가내 공업의 결합을 기초로 하며, 지대를 구성하는 잉여 생산물은 이러한 농업·공업이 결합된 가족 노동의 산물이다.

 

이때 지대의 형태가 중세처럼 공업 생산물을 포함하든 또는 순수 농산물로만 지불되든 그 본질은 동일하다. 이 지대 체제에서 생산물 지대는 농촌 가족의 잉여 노동 전체를 흡수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생산자는 노동 지대의 경우와 비교하여, 자신의 소유가 되는 생산물을 확보하기 위한 초과 노동의 여유를 더 크게 가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 형태에서는 개별 생산자 간의 경제적 상태에 더 큰 격차가 발생하거나, 나아가 직접적 생산자가 타인의 노동을 착취할 수 있는 수단을 획득할 계기까지 열리게 된다.

 

각종 지대 형태가 결착·교차·동화되는 무수한 변수를 모두 검토하는 것은 본 논의의 범위를 초과하며, 생산물 지대의 전형적 형태를 규명하는 현재의 목적에는 부합하지 않는다. 생산물 지대는 생산물 및 생산 과정의 특수한 성격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으며, 특히 농업과 가내 공업의 결합을 필수 불가결한 전제로 한다. 이에 따라 농민 가족은 거의 완전한 자급자족을 유지하며 시장이나 외부 사회의 경제적·역사적 운동으로부터 고립된다. 결국 이러한 자연 경제의 일반적 특성으로 인해 생산물 지대는 아시아적 생산 양식에서 확인되는 것과 같은 정태적인 사회 구조를 지탱하는 토대로서 기능하기에 매우 적합한 형태가 된다.

 

여기에서도 이전의 노동 지대와 마찬가지로 지대는 잉여 가치, 곧 잉여 노동의 원천적 형태를 유지한다. 이는 직접적 생산자가 가장 핵심적인 노동 조건인 토지의 소유자를 위해 무상으로, 그리고 사실상 강제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초과 노동 전체의 전형적 양식이다. 다만 이 강제는 종전과 같은 잔인한 형태로 생산자와 대립하지는 않는다.

 

필요 노동을 초과하여 직접적 생산자가 스스로 취득하는 잉여 생산물을 이윤이라 정의한다면 (비록 이는 개념적 엄밀성을 결여한 표기일지라도), 생산물 지대 체제에서 이윤은 결코 지대를 결정하는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이윤은 지대의 그늘 아래서 형성될 뿐이며, 지대의 규모로 인해 필연적인 한계에 부닥친다.

 

생산물 지대의 비중이 지나치게 비대해질 경우, 이는 노동 조건과 생산 수단의 재생산을 심각하게 위협하여 생산 확대를 저해하고 직접적 생산자의 생활 수단을 생존 최저선까지 격하시킬 수 있다. 특히 정복 국가인 상업 국민이 피정복지의 기존 생산물 지대 형태를 수탈의 도구로 악용하는 경우, 예컨대 인도를 지배한 영국의 사례에서 이러한 현상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 화폐 지대

 

여기에서 규정하는 화폐 지대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기초한 산업 지대나 상업 지대, 곧 평균 이윤을 상회하는 초과 이윤의 형태가 아니다. 이는 생산물 지대가 노동 지대의 전환된 형태인 것과 마찬가지로, 생산물 지대가 단순하게 그 형태를 전환하면서 발생하는 지대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직접적 생산자는 생산물 자체를 지불하는 대신 그에 상응하는 가격을 국가나 사적 개인인 토지 소유자에게 지불해야 한다. 종전의 현물 형태인 생산물 초과분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이 초과분은 반드시 현물 형태에서 화폐 형태로 전환되어 실현되어야 한다.

 

직접적 생산자가 여전히 자신의 생활 수단 중 상당 부분을 스스로 자급한다 하더라도, 이제 생산물의 일부는 반드시 상품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처음부터 상품으로서 생산되어야만 한다. 이로 인해 생산 방식 전체의 성격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되며, 기존의 고립된 독립성과 분리성을 상실하고 점차 사회적 연관 속으로 매개된다. 여기서 결정적인 의의를 갖는 것은 생산비 중 화폐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 그리고 총생산물 중 재생산 수단이나 직접적인 생활 수단으로 기능해야 하는 부분을 초과하여 화폐로 전환되어야 하는 잉여분의 크기다.

 

그러나 이러한 등급의 지대는 비록 점차 해체되는 과정에 있으나, 그 토대는 출발점인 생산물 지대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직접적 생산자는 여전히 상속이나 전통에 근거한 토지 점유권을 유지하며, 생산 조건의 소유자인 영주에게 강제적인 잉여 노동, 곧 등가 없이 제공하는 미지불 노동을 잉여 생산물이 전환된 화폐의 형태로 지불해야 한다.

 

농기구 및 기타 동산 등 토지와 구별되는 여타 노동 조건에 대한 소유권은 이전의 지대 형태에서 이미 사실상 또는 법률상 직접적 생산자에게 이전되었으며, 화폐 지대 단계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소유 관계가 더욱 명확한 전제로 확립된다. 처음에는 산발적으로 나타나다가 점차 전국적인 규모로 확산되는 생산물 지대의 화폐 지대로의 전환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게 된다.

 

생산물 지대가 화폐 지대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상업과 도시 공업, 상품 생산 전반 및 화폐 유통의 현저한 발달이 전제되어야 한다. 또한 생산물이 시장 가격을 형성하고 그 가치에 접근하여 판매될 수 있는 토대가 구축되어야 하는데, 이는 이전의 지대 형태에서는 요구되지 않던 조건이다. 이러한 이행은 동유럽 일부 지역에서 여전히 부분적으로 진행 중인 과정이기도 하다.

 

생산물 지대의 화폐화가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지 않고서는 달성될 수 없다는 사실은 로마 제국의 사례에서 여실히 증명된다. 당시 국세로 존재하던 생산물 지대의 일부를 화폐 지대로 전환하려던 시도들은 실패를 거듭하며 다시 현물 형태인 생산물 지대로 회귀하였다. 이와 같은 이행의 역사적 난해성은 혁명 전 프랑스에서 화폐 지대가 종전 형태의 잔재들과 결합하여 불순한 형태로 잔존해 있었던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생산물 지대의 전환된 형태이자 그와 대립하는 형태인 화폐 지대는, 잉여 가치 및 무상 잉여 노동의 전형적 형태로서 존재하는 지대 등급 중 최후의 단계인 동시에 해체되는 단계에 해당한다. 순수한 형태의 화폐 지대는 노동 지대나 생산물 지대와 마찬가지로 이윤을 초과하는 잉여분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개념 내에 이윤을 내포하고 있다. 이윤이 화폐 지대와 병행하여 잉여 노동의 특수한 일부분으로 발생하는 한, 화폐 지대는 이전의 지대 형태들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초기적 이윤에 대하여 여전히 구조적인 제한으로 작용한다.

 

이 단계에서의 이윤은 화폐 지대로 지불되는 잉여 노동을 제외하고 남은 노동, 곧 자신의 초과 노동이나 타인의 노동을 이용할 수 있는 역량에 비례하여 비로소 발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윤이 실제로 지대와 공존하게 될 때 지대가 이윤을 제한하는 것이지, 이윤이 지대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화폐 지대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잉여 가치 및 잉여 노동과 명확히 일치하며 그 지배적 형태로 군림해 온 지대 양식의 해체 형태라는 성격을 지닌다.

 

화폐 지대가 더욱 발전함에 따라, 소농민적 차지인과 같은 과도기적 형태를 제외하면, 토지 소유 관계는 자유로운 농민적 소유권으로 이행하거나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가 지불하는 지대 형태로 재편된다.

 

화폐 지대와 더불어 토지 소유자와 예속적 경작자 사이의 전통적·관습적 관계는 실정법의 확고한 규제를 받는 계약상의 관계, 곧 순수한 화폐 관계로 필연적으로 전환된다.

 

결국 토지를 경작하는 점유자는 본질적으로 단순한 차지인의 지위로 전환된다. 이러한 전환은 크게 두 가지 양상으로 전개되는데, 한편으로는 제반 생산 관계가 고도화된 곳에서 종전의 농민적 점유자를 점진적으로 축출하고 그 자리에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를 세우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종전의 점유자가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면서 지대 지불 의무로부터 해방되어, 자신의 경작지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을 확보한 독립 농민으로 자립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더욱이 생산물 지대가 화폐 지대로 전환되는 과정은 화폐를 매개로 고용되는 무산의 일용 노동자 계급 형성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며, 때로는 이 계급의 형성이 지대 형태의 전환보다 앞서기도 한다. 새로운 노동자 계급이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발생기에는 부유한 지대 지불 농민들 사이에서 농업 임금 노동자를 자기의 계산으로 고용하여 착취하는 관습이 필연적으로 발전한다. 이는 봉건 시대에 부유한 예속 농민이 이미 자기 자신의 예속 농민을 거느렸던 양상과 동일한 원리로 설명된다. 따라서 부유한 지대 지불 농민은 일정한 부를 축적하며 장래의 자본가로 전환할 기반을 점차 갖추게 된다.

 

결국 스스로 노동하던 종래의 토지 점유자들 내에서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의 시초가 형성되는데, 그들의 발달은 농업과 사회 전반의 자본주의적 생산 발전을 전제로 한다. 특히 16세기 영국의 사례처럼 유리한 조건들이 뒷받침될 경우 이들의 세력 확장은 매우 가속화된다. 예컨대 화폐 가치가 누진적으로 하락하는 국면에서 전통적인 장기 차지 계약을 맺은 경우, 명목상의 지대액은 고정되나 그 실질 가치는 급감한다.


연간 1,000의 지대가 초기에는 밀 10가마의 가치였으나, 점차 밀 7가마, 5가마, 1가마 수준으로 그 실질 가치가 하락한다면, 총생산물 중 지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드는 반면 차지 농업가의 이윤은 그만큼 비약적으로 증대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역사적 계기는 토지 소유자의 희생을 바탕으로 차지 농업가가 부를 축적하며 자본가로 급격히 도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더욱이 지대가 화폐 형태를 취하고 토지 소유자와 농민의 관계가 계약 관계로 전환되자마자, 토지는 필연적으로 기존 농촌 질서 외부에 있던 자본가들에게 임대되기 시작한다. 이러한 이행은 세계 시장과 상업 및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높은 발전 수준에만 도달한 경우에만 성립하며, 이들 자본가는 도시에서 축적한 자본과 더불어 생산물을 오직 상품 생산과 잉여 가치 취득의 수단으로 간주하는 자본주의적 경영 방식을 농촌과 농업에 그대로 이전시킨다. 로마 제국의 사례나 혁명 전 프랑스의 구조적 전환기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이러한 전환은 생산력의 비약적 발전 없이는 달성될 수 없는 역사적 과정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형태는 오직 봉건적 생산 양식에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으로 이행하는 시기에 세계 시장을 지배하던 국가들에서만 나타날 수 있다. 토지 소유자와 현실적으로 노동하는 경작자 사이에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가 개입함에 따라 종래 농촌 생산 방식의 모든 관계는 해체된다. 차지 농업가는 농업 노동자의 직접적인 감독자이자 잉여 노동의 실질적인 착취자가 되며, 토지 소유자는 이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와 단순한 화폐 및 계약 관계만을 맺게 된다.

 

이에 따라 지대의 성격 또한 이전의 지대 형태들에서 부분적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사실상 그리고 단편적으로 전환될 뿐만 아니라 지대의 공인된 지배적 형태로서 전형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지대는 잉여 가치와 잉여 노동의 일반적인 형태라는 지위에서 강등되어, 잉여 노동 중 자본가가 이윤의 형태로 취득하는 부분을 초과하는 초과분으로 전락한다. 나아가 이윤과 초과분을 포함한 잉여 노동 전체는 이제 자본가가 직접 착취하며, 총 잉여 생산물의 형태로 수취되어 화폐로 전환된다.

 

차지 농업가가 지대로서 토지 소유자에게 지불하는 것은 자신의 자본으로 농업 노동자를 직접 착취하여 얻는 잉여 가치의 일부에 불과하다. 지불액의 상한과 하한은 대체로 자본이 비농업 생산 분야에서 획득하는 평균 이윤과 그 평균 이윤이 지배하는 비농업 생산 가격에 따라 규정된다. 이로부터 지대는 잉여 가치 및 잉여 노동의 보편적인 형태라는 기존의 지위에서 소외되어, 자본이 필연적으로 취득하는 몫을 초과하는 초과분이자 농업이라는 특수 생산 분야에 고유한 초과 이윤으로 전환된다.

 

이제 잉여 가치의 전형적인 형태는 지대가 아니라 이윤이며, 지대는 잉여 가치 일반의 형태가 아니라 그것의 파생물인 초과 이윤이 특수한 사정에 따라 독립한 형태로 간주된다. 이러한 형태적 전환이 생산 양식 자체의 점진적 전환과 대응하는 양상은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가 농산물을 상품으로 생산하는 것을 당연시한다는 점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종전에는 생활 수단을 초과하는 부분만이 상품으로 전환되었으나, 이제는 이 생산물 중 극히 일부만이 생산자의 직접적인 생활 수단으로 잔존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토지가 아닌 자본이 농업 노동과 그 생산성 전반을 자신의 지배 아래 직접적으로 종속시킨다.

 

평균 이윤과 이를 규정하는 생산 가격은 농촌 타 부문의 상업 및 제조업 영역에서 형성된다. 지대를 지불하는 소농민의 이윤은 이러한 이윤율 균등화 과정에 포함되지 않는데, 이는 토지 소유자에 대한 그의 관계는 자본주의적 관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농민이 자기 노동이나 타인 노동의 착취에 의거하여 생활 수단을 상회하는 이윤을 실현하더라도, 이는 전형적인 경제 관계의 이면에서 발생하는 현상에 불과하다. 여타 조건이 일정하다면, 이윤의 크기가 지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대가 이윤의 한계를 규정하게 된다.

 

중세 시기에 이윤율이 높게 유지되었던 원인은 단순히 자본 구성이 낮아 가변 자본의 비중이 컸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는 농촌에 대한 기만적 수탈, 곧 토지 소유자의 지대와 예속 농민의 수입 일부를 횡령한 결과이기도 했다. 당시 봉건 제도가 도시의 이례적인 발달 (: 이탈리아)로 인해 붕괴되지 않았던 지역에서는 농촌이 정치적으로 도시를 수탈했으나, 도시는 예외 없이 독점 가격, 조세 제도, 길드 체제 (동업 조합), 상인적 사기, 고리대 등을 동원하여 경제적으로 농촌을 수탈했다.

 

일각에서는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가 농업 생산에 참가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농산물의 가격이 제조품의 생산 가격보다 높았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다. 곧 농산물 가격이 독점 가격 수준에 도달했거나 평균 이윤에 의거하여 규제되는 생산 가격보다 높은 가치까지 등귀했기에, 차지 농업가가 평균 이윤을 실현하고도 지대를 지불할 수 있는 초과분을 확보했다는 논리다.

 

또한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가 토지 소유자와 계약을 맺을 때 지표로 삼은 일반 이윤율은 지대를 배제한 채 산정된 것이며, 이 이윤율이 농업 생산을 규정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한 일정 초과분이 지대의 형태로 지불된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도 있다. 로드베르투스 (1851)는 이러한 전통적인 방식을 빌려 문제를 설명해 왔다. 그러나

 

첫째, 자본이 독립적이고 주도적인 힘으로 농업에 진입하는 과정은 일시적이고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생산 부문을 중심으로 점진적으로 전개된다. 자본이 우선적으로 장악하는 영역은 전형적인 경작 농업이 아니라 목축, 특히 목양과 같은 부문이다. 16세기 영국의 사례에서 확인되는 바와 같이, 목양의 주산물인 양모는 공업의 생성기에 항상 생산 가격을 상회하는 시장 가격을 형성하여 초기에 막대한 초과분을 제공했으며, 이러한 초과분은 상당 기간이 경과한 뒤에야 균등화되었다.

 

둘째, 자본주의적 생산은 초기에는 다만 산발적으로만 출현한다. 따라서 자본이 가장 먼저 장악하는 토지는 특수한 비옥도나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하여 차액 지대를 창출할 수 있는 곳들이라는 전제는 충분한 타당성을 가진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이러한 유리한 조건 위에서 비로소 자리를 잡으며 점차 확산되는 양상을 띤다.

 

셋째,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이 농업에 등장할 때 농산물의 가격이 그 생산 가격보다 높게 형성된다는 전제가 성립한다. 이는 도시 수요의 증대를 전제로 하며, 실제로 17세기 후반 (1/3) 영국의 상황이 그러하였다. 그러나 이 생산 방식이 농업을 단순히 자본의 지배 아래 포섭하는 단계를 경유하여 본격적으로 발달하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농업 기술의 개량과 생산비 감소가 수반되자마자 농산물 가격이 하락하는 반작용이 나타난다. 이는 18세기 전반기 영국의 사례에서 명확히 확인된다.

 

따라서 평균 이윤을 상회하는 초과분으로서의 지대를 이러한 전통적인 방식만으로는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 지대가 최초로 발생한 역사적 조건이 무엇이었든 간에, 지대가 하나의 체제로 안착한 이후에는 근대적 생산 조건의 틀 안에서만 지속적으로 생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대는 이제 역사적 계기가 아닌,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의 필연적 결과로서 고찰되어야 한다.

 

끝으로 생산물 지대가 화폐 지대로 전환됨에 따라, 토지 가격, 곧 자본화된 지대의 형성과 그에 따른 토지의 양도 가용성 및 현실적인 매매가 본질적 요소로 부상한다.

 

이 과정에서 종전의 지대 지불 의무자가 독립적인 농민적 소유자 (자영농)으로 전환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도시의 화폐 소유자나 여타 자본가들이 토지를 매입한 뒤 이를 농민이나 자본가적 차지 농업가에게 임대하여, 지대를 투하 자본에 대한 이자 형태로 수취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경제적 변화는 이전의 착취 방식과 소유자 및 실질 경작자 사이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며, 지대 형태의 완전한 전환을 더욱 촉진하는 동인으로 작용한다.

 

. 분익 소작과 소농민적 분할지 소유

 

우리는 이제 지대 전개 논의의 종착점에 도달하였다.

 

위에서 고찰한 모든 지대 형태, 곧 노동 지대, 생산물 지대, 그리고 (생산물 지대가 단순히 형태를 바꾼) 화폐 지대에서는 지대 지불자가 언제나 토지의 실질적인 경작자이자 점유자라는 점이 전제된다. 이 경우 경작자의 무상 잉여 노동은 직접적으로 토지 소유자에게 귀속된다. 최후의 형태인 화폐 지대라 할지라도 그것이 전형성을 유지하는 한, 곧 단순히 생산물 지대의 전환된 형태인 한 이러한 전제는 이론적으로 성립할 뿐만 아니라 사실상 역사적으로도 타당성을 지닌다.

 

시초의 지대 형태에서 자본주의적 지대로 이행하는 과도적 형태로서 분익 소작제를 들 수 있다. 이 체제에서 경영자인 차지 농업가는 자신의 노동이나 타인의 노동 외에 경영 자본의 일부를 제공하며, 토지 소유자는 토지와 더불어 가축 등 경영 자본의 나머지 부분을 제공한다. 생산물은 국가별 관습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차지인과 토지 소유자 사이에 분할된다.

 

이 단계에서 차지인은 완전한 자본주의적 경영을 수행하기에는 자본이 미흡한 상태이며, 다른 한편으로 토지 소유자가 수취하는 수취분 역시 전형적인 의미의 지대 형태가 아니다. 이 수취분에는 투하 자본에 대한 이자와 초과 이윤으로서의 지대가 미분화된 채 결합되어 있으며, 또한 이 수취분은 차지인의 잉여 노동 전체를 흡수하거나 그 일부만을 차지인에게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본질적인 점은 지대가 더 이상 잉여 가치의 전형적인 형태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한편 차지인은 자기 자신의 노동만을 사용하든 타인의 노동을 사용하든 단순한 노동자로서가 아니라, 일부 노동 도구의 소유자, 곧 자본가로서 생산물의 일부에 대한 청구권을 가진다.

 

반면 토지 소유자는 전적으로 토지 소유권에만 근거하여 몫을 청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대부자라는 지위에서도 자신의 몫을 청구하게 된다. 이처럼 분익 소작제는 전근대적 지대와 근대적 자본 관계가 교차하는 과도기적 성격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독립적인 농민 경영으로 이행한 이후에도 예컨대 폴란드와 루마니아 등지에서는 이전의 토지 공동체 제도의 잔재가 유지되었으며, 이 잔재는 오히려 하위 지대 형태로 역행하는 기제로 작용하였다. 당시 토지의 일부는 개별 농민에게 귀속되어 독립적으로 경작되었으나, 다른 일부는 공동 경작으로 잉여 생산물을 형성하였다. 이 잉여 생산물은 본래 공동 경비를 충당하거나 흉작 등에 대비한 예비분으로 비축되었다.

 

그러나 잉여 생산물의 두 구성 부분, 나아가 잉여 생산물 전체와 그 원천인 토지는 점차 국가 관료와 사적 개인의 손에 점유되었다. 이 과정에서 공동체적 토지의 공동 경작 의무만을 지고 있던 본래의 자유 농민적 토지 소유자는 부역 의무자나 생산물 지대 지불자로 전락하였다. 반면 공동체적 토지를 찬탈한 세력은 횡령한 토지는 물론 농민의 개별 소유지까지 지배하는 실질적인 토지 소유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가사용 가부장적 노예제에서 세계 시장을 지향하는 식민지 농장제에 이르기까지, 노예 경영 또는 토지 소유자가 자기 자신의 계산으로 경작하며 직접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현물 또는 현금 급여에 기초한 자유 및 비자유 노동을 착취하는 지주 경영에 관해 상세히 논의할 필요는 없다. 노예 경영과 지주 경영에서 토지 소유자는 생산 수단의 소유자인 동시에 생산 요소로 간주되는 노동자의 직접적인 착취자로 존재한다. 이 경우 지대와 이윤은 하나로 일치하며 잉여 가치의 각종 세부 형태 또한 분리되지 않는다. 노동자의 잉여 노동 전체는 잉여 생산물로 나타나며, 토지와 직접적 생산자를 포함한 모든 생산 수단을 장악한 소유자의 손에 직접 착취된다.

 

아메리카의 식민지 농장처럼 자본주의적 논리가 지배적인 곳에서는 이러한 잉여 가치 전체가 이윤으로 간주되나,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존재하지 않고 그에 대응하는 경제적 개념 또한 자본주의 세계로부터 유입되지 않은 곳에서는 이 잉여 가치 전체가 지대로 나타난다. 어느 경우든 이러한 형태는 분석상의 난점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 경우 토지 소유자가 취득하는 수입 (잉여 생산물)은 그 명칭과 무관하게 무상 잉여 노동 전체를 직접 취득하는 전형적이고 지배적인 형태이며, 토지 소유권 자체가 이러한 취득의 근거를 이루기 때문이다.

 

소농민적 분할지 소유의 경우, 농민은 자기 토지의 자유로운 소유자로서 군림한다. 이때 토지는 농민의 주요한 생산 수단이자 그의 노동과 자본이 투하되는 불가결한 장소로 기능한다.

 

이러한 체제에서는 별도의 차지료도 지불하지 않으므로, 잉여 가치의 분화된 형태로서의 지대는 나타나지 않는다.

 

비록 타 생산 분야에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확립된 국가에서는 여타 생산 부문과 비교하여 발생하는 초과 이윤이 지대로 간주되기도 하지만, 이 초과 이윤은 농민의 노동 생산물 전체와 마찬가지로 전적으로 농민 자신에게 귀속된다.

 

이러한 토지 소유 형태는 이전의 전근대적 형태들과 마찬가지로 농촌 인구가 도시 인구에 비해 수적으로 우세함을 전제로 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도입되었더라도 그 발전이 상대적으로 미약하여 타 생산 분야에서 자본의 집적이 제한적인 범위에 머물러 있고, 자본의 분절적 소유가 지배적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에 따라 농산물의 압도적인 부분은 생산자인 농민의 직접적인 생활 수단으로 충당되며, 오직 이를 초과하는 초과분만이 상품으로서 도시와의 상업 거래에 유입된다.

 

농산물의 평균 시장 가격 결정 기제와 무관하게, 상급지나 위치가 유리한 토지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서와 마찬가지로 차액 지대, 곧 상품 가격을 상회하는 초과 부분이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러한 차액 지대는 일반적인 시장 가격이 아직 형성되지 않은 사회적 상황에서도 초과적인 잉여 생산물의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다만 자본주의 체제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이 차액 지대는 지주가 아닌, 유리한 자연 조건 아래 노동하는 농민 자신의 수입으로 귀속된다는 사실이다.

 

이 소농민적 분할지 소유 형태에서는 토지 가격이 농민의 실질적인 생산비의 한 요소를 구성한다. 이는 이 형태가 더욱 발전하는 과정에서 상속 재산 분할 시 토지가 일정한 화폐 가치로 평가되거나, 소유지 전체나 그 구성 부분들의 소유주가 끊임없이 변경되는 과정에서 농민이 주로 저당 대출에 기반하여 토지를 매입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본화된 지대에 불과한 토지 가격이 생산의 선결 조건으로 자리 잡으면서, 지대는 토지의 비옥도나 위치의 격차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이 형태에서는 최하급지가 지대를 지불하지 않는 절대 지대의 부재가 일반적 원칙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본래 절대 지대는 생산물 가격이 생산 가격을 상회하는 가치 초과분을 실현하거나, 가치를 상회하는 초과적인 독점 가격이 형성될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소농 경제는 주로 직접적인 생존을 목적으로 하는 농업이며, 토지는 대다수 인구의 노동과 자본이 투입되는 유일하고 불가결한 장소이다.

 

따라서 생산물의 지배적인 시장 가격은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그 가치 수준에 도달할 뿐이다. 다만 농업 생산 과정에서 살아있는 노동의 비중이 압도적이기에, 생산물의 가치 자체는 원칙적으로 생산 가격보다 높게 형성되는 특성을 지닌다.

 

비록 소농이 지배적인 국가에서는 비농업 자본의 가치 구성 또한 낮아 이러한 가치 초과분이 일정하게 제한되지만, 소농의 경작 지속 여부를 결정하는 한계는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기준과는 판이하다. 그를 소규모 자본가로 보는 한에서는 경작의 한계는 평균 이윤의 확보가 아니며, 토지 소유자로 보는 한에서는 지대 수취의 필요성이 경작을 규정하지 않는다.

 

소규모 자본가로서 소농에게 절대적인 한계로 작용하는 것은 현실적 비용을 공제한 후 오직 자신에게 지불할 임금이 확보되느냐는 점이다. 따라서 생산물 가격이 자신의 이 임금을 보상하는 한, 설령 생산물의 가격이 육체적 최저 생존 수준의 임금만을 보상하는 경우에 불과할지라도 농민은 경작을 중단하지 않는다.

 

또한 토지 소유자로서 소농에게는 토지 소유권 자체가 자본이나 노동의 투입을 차단하는 장벽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본래 이 장벽이란 토지 소유와 분리된 자본 (노동도 포함)이 타인 자본의 진입을 막는 것을 의미하는데, 소농은 소유와 영농이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지 매입 대금에 대한 이자는 하나의 장벽을 이룬다. 이 이자는 통상 제3자인 저당권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고정 비용으로서 농민의 가계와 영농을 압박하는 실질적인 제약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이자는 자본주의적 조건에서라면 이윤을 형성했을 잉여 노동의 일부에서 지불될 수 있다. 따라서 토지 가격이나 그 이자로 상정되는 지대는 농민의 생존에 불가결한 노동을 초과하는 잉여 노동이 자본화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잉여 노동은 평균 이윤과 동등한 수준의 가치 부분으로 실현될 필요가 없으며, 또한 평균 이윤을 상회하는 초과분인 초과 이윤으로 실현될 필요는 더더욱 없다. 이때의 지대는 평균 이윤에서의 공제분이거나, 또는 평균 이윤 중 실현되는 유일한 부분 그 자체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소규모 토지 소유 농민 (소농)이 토지를 경작하거나 매입하기 위해 전형적인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서처럼 농산물 시장 가격이 반드시 평균 이윤이나 그 이상의 초과분을 보장할 만큼 등귀할 필요는 없다. , 시장 가격이 생산물의 가치나 생산 가격 수준까지 등귀하지 않아도 생산은 유지된다.

 

이것은 소농 지배 국가의 곡물 가격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지배적인 국가보다 낮게 형성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가장 불리한 조건에 놓인 농민들의 잉여 노동 일부는 사회에 무상으로 이전되며, 이는 생산 가격의 규정이나 가치 일반의 형성 과정에도 산입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러한 저가격은 결코 노동 생산성의 향상이 아니라, 생산자들의 빈곤이 초래한 결과이다.

 

자영농의 소규모 토지 소유가 지배적이고 전형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고전 고대의 전성기에서는 사회의 경제적 토대였으며, 근대 국가들 사이에서는 봉건적 토지 소유가 해체되며 나타난 여러 형태 중 하나이다. 예컨대 영국의 요먼리, 스웨덴의 소농 계급, 프랑스와 서부 독일의 농민 등이 그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다만 식민지의 독립 농민은 이들과는 상이한 조건에서 발달하였으므로, 여기에서는 논외로 한다.

 

자영농의 자유로운 소유는 소규모 경영에 있어 가장 전형적인 토지 소유 형태다. 이러한 생산 방식에서 토지의 점유는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생산물을 소유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며, 경작자는 소유농이든 예속농이든 언제나 고립된 노동자로서 가족과 함께 독립적으로 생활 수단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공업 경영의 자유로운 발달에 노동 도구의 소유가 필수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소규모 경영의 완전한 발달에는 토지 소유권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여기서 토지 소유권은 인격적 자립성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며, 농업 발달사에서 하나의 필연적인 단계를 이룬다.

 

그러나 이 형태를 몰락시키는 원인들은 동시에 그 체제적 한계를 드러낸다. 대공업의 발달로 소규모 경영의 전형적인 부속물이었던 농촌 가내 공업이 파괴되며, 이런 경작 형태의 점진적인 피폐화가 진행된다.

 

또한 대규모 토지 소유자 (대지주)가 가축 사육의 유일한 기반이자 소규모 경영의 제2의 기반인 공동지를 사유화하고, 식민지 농장이나 자본주의적 형태의 대규모 경작이 강력한 경쟁 상대로 등장한다.

 

나아가 농업 기술의 개량 또한 몰락을 가속하는데, 이는 농산물 가격을 하락시킬 뿐 아니라 막대한 자본 투하와 방대한 객관적 생산 조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18세기 전반기 영국의 사례는 이러한 과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소규모 토지 소유는 그 본질상 사회적 노동 생산력의 발달, 노동의 사회적 형태들, 자본의 사회적 집중, 대규모 목축, 과학의 누진적인 적용 등을 배제한다.

 

고리대와 조세는 소규모 토지 소유를 끊임없이 빈곤하게 몰아넣으며, 토지 매입에 자본을 지출하게 하면서 실제 경작에 투하될 자본을 고갈시킨다. 생산 수단의 지속적인 분산과 생산자 자신의 고립화, 인간 노동의 막대한 낭비, 생산 조건의 누진적인 악화, 그리고 생산 수단 가격의 등귀 등은 소규모 토지 소유의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법칙이다. 이러한 생산 방식하에서는 생산물의 과잉을 초래하는 풍작조차 생산자에게는 도리어 재앙으로 귀결된다.

 

소규모 농업이 자유로운 토지 소유와 결부될 때 발생하는 고유한 결함 중 하나는 경작자가 토지 구입에 자본을 지출한다는 점이다. 이는 대토지 소유자가 최초에 토지 매입 후 스스로 차지 농업가가 되어 경영하는 과도기적 형태에서도 타당하다.

 

토지가 단순히 상품으로 유통됨에 따라 소유권의 변동이 빈번해지며, 새로운 세대의 등장이나 유산 분할이 이루어질 때마다 농민은 새로이 구입하기 위해 자본을 지출해야만 한다. 결과적으로 토지 가격은 개별 생산자에게 있어 생산물의 비용 가격, 곧 비생산적 비용의 핵심적인 구성 요소를 형성하게 된다.

 

토지 가격은 자본화된 지대, 곧 선취된 지대에 불과하다. 농업이 자본주의적으로 경영되어 토지 소유자가 연간 지대를 수취하고 차지 농업가가 그 외의 비용을 토지에 지불하지 않는다면, 토지 소유자가 지출한 토지 구입 자본은 (그에게는 이자 낳는 자본 투하일지라도) 실제 농업 경영에 투하된 자본과는 무관함이 명백해진다. 이 자본은 농업에서 기능하는 고정 자본이나 유동 자본의 어느 부분도 구성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구매자에게 연간 지대를 수취할 권리를 부여할 뿐, 지대의 생산 과정 자체와는 전적으로 무관하기 때문이다.

 

구매자가 판매자에게 자본을 지불하고 판매자가 소유권을 포기하는 순간, 해당 자본은 더 이상 구매자의 수중에 자본으로서 남지 않으며 토지 자체에 투하될 수 있는 자본의 범위에서도 제외된다. 따라서 구매자가 토지를 고가에 매입했는지, 저가에 매입했는지, 또는 무상으로 취득했는지는 차지 농업가가 투하하는 경영 자본이나 지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이러한 매입 가격의 차이는 오직 수취한 지대가 토지 구매자에게 어느 정도의 이자 수익률로 나타나는가 하는 문제에만 영향을 미칠 뿐이다.

 

노예 경영의 경우를 살펴보면, 노예의 대가로 지불되는 가격은 장차 노예로부터 착취할 이윤, 곧 잉여 가치를 선취하여 자본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노예 구입에 지출된 자본은 노예로부터 이윤 (잉여 가치)을 착취하는 데 필요한 생산적 자본에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로, 해당 자본은 노예 소유자가 지불하면서 현실적인 생산 과정에서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가용 자본에서 상실한 것이다. 이는 토지 구입에 지출된 자본이 농업 경영 자본에서 제외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러한 사실은 노예 소유자나 토지 소유자가 해당 대상을 다시 판매할 때에만 비로소 그 자본이 그들에게 회수된다는 점에서 명확히 증명된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동일한 관계가 새로운 구매자에게 이전될 뿐이다. 노예를 구입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착취할 수 없으며, 구매자는 경영을 위해 별도의 자본을 추가로 투하해야만 한다. 동일한 자본이 판매자와 구매자의 수중에 이중으로 존재할 수는 없으며, 자본이 구매자로부터 판매자에게 이전되면서 거래는 종결된다.

 

구매자는 이제 자본 대신 토지를 소유하게 된다. 새로운 소유자가 토지에 대한 현실적 투하로부터 발생하는 지대를 (토지 자체가 아닌 토지 획득을 위해 지출한) 자본의 이자로 간주한다는 사실이, 토지라는 생산 요인의 경제적 성격을 변경시키지는 않는다. 이는 누군가가 연 3% 이자율의 영구 공채 (콘솔)를 매입하기 위해 1,000을 지불했다 하더라도, 그 지불 행위가 국채 이자를 지급하기 위한 세입을 창출하는 자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실상 토지의 구입에 지출되는 화폐는 국채 매입에 지출되는 화폐와 마찬가지로 오직 즉자적으로만 자본이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토대 위에서 어떤 가치액이라도 잠재적 자본으로 전환될 계기를 지닌다는 점과 맞닿아 있다.

 

토지의 대가로 지불된 화폐액은 그 자체로 잠재적 자본일 뿐이며, 판매자가 수령한 이 화폐가 현실적인 자본으로 전환되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그가 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반면 구매자의 입장에서 해당 화폐는 이미 지불되어 사라진 것이기에, 지출해버린 다른 모든 화폐와 마찬가지로 더 이상 자본으로서 기능할 수 없다.

 

물론 구매자의 계산상에서 이 화폐는 이자 낳는 자본으로 간주된다. 그는 토지로부터의 지대나 국채 이자 같은 수입을, 자신이 이 수입 청구권을 구입하는 데 지출한 화폐에 대한 이자로 계산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 청구권을 다시 자본으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를 매각하는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새로운 구매자 역시 이전 구매자와 동일한 경제적 관계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이렇게 지출된 화폐는 소유자를 바꾸며 아무리 전전하더라도, 지출자 본인을 위한 현실적인 생산 자본으로 전환될 수는 없다.

 

소농민적 분할지 소유 체제에서는 토지가 독립적인 가치를 지니며, 기계나 원료처럼 자본의 형태로 생산물의 생산 가격에 산입된다는 착각이 더욱 공고해진다. 그러나 지대 및 그 자본화된 형태인 토지 가격이 농산물 가격 결정에 개입하는 상황은 오직 두 가지 경우로 제한된다.

 

첫째, 농업 자본 (이 자본은 토지 매입을 위해 지불된 화폐액과는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상이하다)의 낮은 유기적 구성으로 인해 농산물의 가치가 생산 가격을 상회하고, 시장 상황이 토지 소유자로 하여금 이 차액을 절대 지대로 실현할 수 있게 하는 경우다.

 

둘째, 독점 가격이 형성되어 지대가 가격에 산입되는 경우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소규모 토지 소유 및 소규모 경영 아래에서는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이 체제에서의 생산은 주로 생산자 자신의 욕구 충족을 목적으로 하며, 일반적 이윤율의 규정을 받지 않은 채 진행되기 때문이다.

 

설령 소규모 경영이 임차지에서 이루어진다 해도, 이때의 차지료는 (다른 어떤 생산 관계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비율로) 이윤의 일부뿐만 아니라 임금의 공제분까지 포함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따라서 이러한 차지료는 오직 명목상의 지대에 불과할 뿐, 임금이나 이윤과 분리되어 독립적 경제 범주로 존재하는 진정한 의미의 지대라고 볼 수 없다.

 

결론적으로 토지 구입을 위한 화폐 자본의 지출은 농업 자본의 실질적인 투하가 아니다. 이러한 지출은 소농민이 현실적인 생산 영역에서 임의로 운용할 수 있는 가용 자본을 감소시키며, 생산 수단의 규모를 제약하면서 재생산의 경제적 토대를 그만큼 축소시킨다. 또한 신용 체계가 미비하여 진정한 신용이 부재한 상황에서, 이러한 지출은 소농민을 필연적으로 고리대에 종속시킨다.

 

이러한 지출은 대규모 농장 매입의 경우라 할지라도 농업 발달을 저해하는 장애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과 정면으로 모순된다. 본래 자본주의 생산 양식에서 토지 소유자의 채무 관계 (그가 토지를 상속받았든 구입하였든)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 그 자체와 무관하기 때문이다. ,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서는 토지 소유자가 지대를 직접 수취하든 이를 채권자 (저당권자)에게 지불하든, 임차지의 경영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일반적 원칙이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대가 일정하게 주어질 때 토지 가격은 이자율에 따라 규정된다. 이자율이 낮으면 토지 가격은 상승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라서 통상적인 상황이라면 높은 토지 가격과 낮은 이자율은 병행한다. 이 원리에 따르면 농민이 낮은 이자율로 인해 높은 토지 가격을 지불해야 하더라도, 다른 한편으로는 동시에 경영 자본은 유리한 신용 조건으로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소규모 토지 소유가 지배적인 곳에서는 이러한 논리가 성립하지 않는다.

 

첫째, 신용의 일반 법칙은 생산자가 자본가임을 전제로 하기에 소농민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둘째, 소규모 토지 소유가 지배하고 소농민이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곳에서는 (, 식민지의 경우는 논외로 한다) 자본 형성 및 사회적 재생산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며, 특히 대부 가용 화폐 자본의 형성이 매우 미미하다. 대부 가용 화폐 자본의 형성은 자본의 집적과 부유한 유산 계급의 존재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매시: 1750).

 

셋째, 토지 소유가 대다수 생산자에게 필수적인 생활 조건이자 그들의 자본 투하의 불가결한 장소인 경우, 토지 가격은 이자율과 무관하게, 때로는 이자율에 정비례하여 (원문에는 반비례로 표기됨) 상승하기도 한다. 이는 토지 소유에 대한 수요가 공급을 압도하기 때문이며, 또한 분할된 소규모 필지는 수요자 저변 (구매층)이 넓어 대규모 토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암흑단 (Bandes Noires, 방드 누아르), 뤼비숑, F. W. 뉴먼 (1851) 등이 지적한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비교적 높은 이자율 수준에서도 토지 가격은 등귀한다. 토지의 구입에 투하된 자본으로부터 농민이 얻는 비교적 낮은 이자 (수익)(무니에: 1846), 그 자신이 저당권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높은 고리대적 이자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아일랜드의 사례 또한 형태만 다를 뿐 본질적으로 이와 동일한 모순을 보여준다.

 

결국 생산 과정과는 무관한 외적 요소인 토지 가격이 생산을 지속 불능으로 만드는 수준까지 등귀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돔발: 1824-1837).

 

토지 가격이 이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토지의 매매 및 상품으로서 토지의 유통 (상품화)이 이 정도까지 고도화되는 것은, 본래 모든 생산물과 생산 수단이 상품의 형태를 취하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발달한 결과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현상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제한적으로만 발전하여 그 모든 고유한 특성을 아직 온전히 전개하지 못한 곳에서만 발생한다. 이는 농업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완전히 포섭되지 못한 채, 이미 몰락한 이전의 사회 형태로부터 물려받은 생산 방식에 여전히 종속하고 있는 상황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농민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폐해, 곧 생산자가 자기 생산물의 화폐 가격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과, 해당 양식의 불완전한 발달에서 기인하는 불이익을 동시에 떠안게 된다. 결과적으로 농민은 자기 생산물을 상품으로 생산할 조건조차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강제로 상인이자 산업가의 처지에 놓이게 되는 모순에 직면한다.

 

개별 생산자에게는 실질적인 비용 요소로 작용하는 토지 가격과, 생산물 자체의 생산 가격 형성에는 개입하지 않는 비()요소로서의 토지 가격 사이의 충돌은, 토지의 사적 소유와 합리적 농업 (토지의 합목적적 사회적 이용) 간의 근본적 모순을 드러내는 한 형태에 불과하다. 비록 지대가 농산물 가격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 할지라도, 20년 또는 그 이상의 기간을 상정하여 대부되는 자본화된 지대, 곧 토지 가격은 농산물의 가격 결정 과정에 결코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지의 사적 소유와 그에 따른 직접적 생산자로부터의 토지 수탈, 곧 한쪽 계급은 토지를 독점하고 다른 쪽은 토지에서 배제되는 소유의 근원적 분리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을 규정하는 필수적인 토대를 이룬다.

 

소규모 경작에서 토지의 사적 소유가 초래하는 토지 가격은 생산 그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장애물로 작용한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기반한 대규모 경작과 대규모 토지 소유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이때의 소유권은 차지 농업가측의 자본의 생산적 투하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투하가 궁극적으로 차지 농업가가 아닌 토지 소유자의 이익으로 귀속되는 상황은 생산적 투하에 구조적 한계를 부여한다.

 

어떠한 형태에서든 토지는 인류의 세대 전승을 위한 항구적인 공동 소유물이자 양도가 불허되는 생존 및 재생산의 조건으로 의식적이고 합리적으로 취급되지 않으며, 오히려 지력의 착취와 탕진이 나타난다 이 착취를 사회의 발전이 도달한 수준에 통제되지 못한 채, 개별 생산자들의 우연하고 불균등한 사정에 내맡겨져 있다는 사실을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소규모 소유의 경우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활용 수단과 과학적 원리의 결여로 인해 이러한 폐해가 발생하며, 대규모 소유의 경우에는 토지 소유자와 차지 농업가의 가장 급속한 치부를 목적으로 해당 수단들을 남용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두 경우 모두 시장 가격의 논리에 종속되면서, 토지의 항구적인 보존보다는 단기적인 지력 수탈에 집중하게 된다.

 

소규모 토지 소유에 대한 모든 비판은 결국 농업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물로서의 사적 소유 그 자체에 대한 비판으로 귀결된다. 이는 대규모 토지 소유에 대한 반대 논거 역시 마찬가지다. 여기에서는 부차적인 정치적 고려를 배제한다면, 토지의 사적 소유가 농업 생산 및 토지의 합리적인 취급과 유지, 개량에 대해 제기하는 이러한 제한과 장벽은 단지 그 전개 형태를 달리할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악의 특수한 발현 형태들에 매몰되어 논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정작 그 해악의 궁극적인 원인이 사적 소유에 있다는 사실은 망각되고 있다.

 

소규모 토지 소유는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농촌 인구이고, 사회적 노동보다는 고립된 개별 노동이 지배적인 상황을 전제한다.

 

이러한 구조하에서는 부의 축적과 재생산의 발전은 물론, 이를 뒷받침할 물질적·정신적 조건들의 토대 구축이 저해되며, 결과적으로 합리적인 경작을 위한 토대조차 배제되어 있다.

 

다른 한편 대규모 토지 소유는 농업 인구를 점점 감소시켜 최소 한도로 축소시키는 동시에, 점점 증대하는 공업 인구를 대도시에 밀집시킨다. 이는 생명의 자연 법칙이 규정한 사회적 물질대사의 연관 관계에 복구 불능의 단절을 야기한다. 그 결과 지력의 낭비와 고갈이 초래되며, 이러한 지력의 약탈적 탕진은 무역을 매개로 개별 국가의 국경을 가로질러 타국에까지 확산되는 양상을 보인다. (리비히, 1862).

 

소규모 토지 소유가 원시적 사회 형태의 온갖 야만성과 문명국의 온갖 고뇌와 궁핍을 결합한 채 사회 주변부에 고립된 계급을 양산하는 반면, 대규모 토지 소유는 그 원초적인 활력이 안식하며 국민의 재생산력을 재생할 비축 자원으로 보존되어 있는 최후의 보루인 농촌에서 노동력 그 자체를 황폐화하고 있다.

 

대공업과 대규모 기계화된 대농업은 상호 작용하며 약탈 기제를 공모한다. 본래 대공업이 주로 인간의 노동력과 원초적인 힘을 소진시키고, 대농업이 토지의 천연적 생산력을 고갈시키는 데 주력했다면, 이후의 발전 과정에서 이 둘은 긴밀히 결합하였다. 그 결과 농촌의 공업 제도는 농업 노동자들의 활력을 탈취하고, 반면에 도시의 공업과 상업은 농업에 대해 지력을 피폐시키는 수단들을 제공하면서 인간과 토지 모두를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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