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1.
여성 노동 보고서
일자리 통계에 따르면 여성의 고용률이 60%지만, 정작 무직율은 30%를 넘어간다고 한다.
'일자리 없음' 만큼이나 불안한 쉴 수 없음으로부터, 청년 백수들은 자신들이 프롤레타리아트임을 까마득하게 잊고 있다. 학위를 딴 박사들은 룸펜 생활을 청산하지도 못하고, 아직도 경제적 낭만을 품는다.
우리는 「수정주의 비판」에 관해서 다뤘던, 여러 수정주의 흐름에 대한 견해를 먼저 보고했다. 앞선 기회주의가 가진 오류를 안고, 신자유주의로 편승된 부르주아 담론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존재를 무마시키고, 오히려 성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도 자주 지적했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보고가, 이와 같은 임금 생산으로부터 복무해야만 하는 직업군들로 살펴 볼 때도, 치명적일 수 있다. 또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이라고 우기는 꼴이 된 현대 소부르주아지들의 논리적 단면을 매우 잘 보여준다는 점도 들 수 있다. 더불어 소부르주아지들의 중립적 태도에 대한 수 많은 비판에도 가세했다.
부르주아지들은 일부 여성 노동자들과도 무관한 ‘성별 갈등’을 꺼내어 시민 사회론의 일부로만 국한시켰다. 탁상공론식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라는 틀 안에서도 다루고자, 허기를 고심하던 시민 사회 운동이 보여준 결과를 장담할 수 있는가. 계급 투쟁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존재를 무시한 권리 장전의 부가물일 뿐이다. 이와 같은 주장은 여전히 자신의 사적 소유가 시장 경제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다는 안위를 유지하고자 노력하며, 자본가들의 또 다른 밑거름이 되어, 여전히 소유 재산을 옹호한 결과만 빛내주고 만다.
여성 노동에서 임금 착취를 판가름하기 이전에도, 성별과 세대 갈등을 더욱 부추기거나, 부르주아지들이 심어놓은 끄나풀들은 이전부터 투쟁을 헷갈리게 만들거나, 어렵게 조장해왔다. 특히나 사회주의 운동을 한답시고, 그저 대의민주주의를 대체할 어떠한 자본주의적 장치도 없다는 극단적인 의제를 내세운다는 점에서도, 우리에게 노동 현장이란 시민 사회, 연대 운동에만 기댄 호소로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제2인터내셔널 시기의 콜론타이, 체트킨의 영향력 아래에서 아직까지도 부르주아지들도 내거는 경제 성장이라는 동기가 성정치가 되어 그대로 답습할 정도니까.
서로에게 맞장구나 치는 '아리따운' 사람들이여, 소부르주아지들이 펼치는 양비론에 숨어, 똑같은 양시론만큼, 우리의 팔랑귀들이 펼치는 논리적 어리석음에 안주하고 있지는 않은가. ‘적들에게 평화를 외치는’ 타협주의자들이 어떻게 사회배외주의를 지지해서, 부르주아지들의 반동론을 더욱 지지하는지를 우리는 늙어가는 개들로부터 목도하고 있다. 좌익 수정주의가 우리를 얼마나 감시하려 들고, 더욱 설득시키고자 하는지를. 여러분의 친애하는 동지가 때로는 적이 될 수 있기에, 이 또한 얼마나 모함을 자초하는가!
"계급 없는 사회에서 성별 없는 사회를 꿈꾸는 자들이여, 성별 없는 사회를 빌미로,
계급 투쟁을 삭제하는 자들에게는 또 얼마나 관대하던가.
성산업과 여성의 권리: 자본주의와 여성 무산자
90년대 일본 페미니즘의 쇠퇴와 성 산업의 결합
이 글은 1990년대 일본 사회에서 여성 인권 증진 운동과 그 결과로 나타난 성 산업의 발달에 대한 역설적 관계를 탐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은폐된 여성 노동과 성별 고정 관념의 문제를 고찰한다.
한국 사회는 여성의 인권 측면에서 과거보다 상당한 진전을 이루었지만, 열악한 노동 환경이라는 자본주의적 한계 속에서 여성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이는 높은 자살률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여성의 교육은 종종 학창 시절부터 활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인 형태 (주로 앉아서 하는 학습)을 취하게 되는데, 이는 과거 여성이 가정을 중심으로 집안일을 담당했던 역할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교육적 경험이 후에 노동 시장에서 강력한 정신적 발달 조건이 될 수 있음을 고려할 때, 단순히 여성의 우월성을 주장하기보다는, 노동 조건이라는 현실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특히 일본은 이러한 견해가 확장된 국가로 볼 수 있다. 여성의 권리 증진이 절실한 곳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세계 최대 성 산업 발달지 중 하나라는 아이러니를 안고 있다. 통계적으로, 한국보다 일본의 성 산업 종사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현상은, 단순히 인구 감소에 따른 보수적 기조 때문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90년대에, 일본에서는 성적 해방을 목적으로 하는 여성 인권 장려 인식이 풍부하게 확산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장려가 실제로는 성적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졌다는 기괴한 역설은, 페미니즘적 이념이 현실 자본주의 체제와 결합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보수적 기조의 위험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본래 페미니즘은 여성의 참정권과 인권을 장려하기 위해 발생했지만, 여성 노동의 문제에 있어 단순히 남성과의 대립만을 전제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는 성별 고정관념의 기능을 오히려 강화하는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시각은 일부 매력적인 여성들에게 성 산업 종사의 기회를 확대하는 결과를 낳는다. 일본의 경우, 성 산업은 빠르게 탄력적으로 돈을 모을 수 있는 수단으로 기능하며, 일부 여성 노동자, 곧 여성 프롤레타리아트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갈 여지가 있다. 이는 일본의 수공업적 경제 관념과 결합하여, 성 산업이 '합법적인 매춘'이라는 암묵적 비밀을 내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성 산업은 겉보기에는 인간의 자유를 보장하는 듯 보일 수 있으나, 선진국 문화라는 이유로, 비판 없이 수용될 수는 없다. 이는 오히려 성 산업 자체의 폐쇄성이나 도덕적 문제를 감추지 못하며, 적어도 한국에서는 엄연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성의 이념적 해방에 대한 논의와 보급은 오히려 그러한 이념이 취약하거나 왜곡될 위험이 있는 국가와 계급에 더욱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시민 의식과 여성관
유산 계급 여성관의 추상적 관념성
기존의 여성관이 점차 일반적인 경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분야에 소속된 노동자의 진행으로 볼 때는 아니다. 특히 부르주아 사회일수록, 한 문제를 추상적 · 관념적 현상으로 접근하여 해석하는 경향이 짙다. 이는 특히 여러 정치적 사안 중에서도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현대의 여성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점차 개선된 것을 두고 지금껏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나 권리 증진에 대한 투쟁의 결과 때문이라는 일부 시각이 존재한다. 이 시각에 대비한 비판적 지적들을 비교했을 때는, 이와 연관된 정치적 투쟁의 형태는 관념적 정치의 견해를 수용하면서, 시민 사회의 일부로 여성의 존재를 한정하고 일면적인 결론을 내린다.
전체 사회를 놓고 보았을 때는, 실제로는 사회적 자본의 노동이 변화했기 때문에 시민 의식이 뒤따른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인 즉슨, 고도화된 자본주의는 또 다른 사회적 통제를 부른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실무적인 현장에서 직장 내 불거진 상사로 인한 개인적 폭로나 노동법 위반 사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이는 경찰이나 군대와 같은 치안 집단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해당된다. 개인적인 변화에 대비해 그 사회 역시 변화했다고 체감할 수는 있으나, 전체 사회로는 정반대일 수 있다. 그 근거로는, 직장 내 여성 노동의 작업 비중과 피로도는 늘어났으며, 가사 노동과 육아 양육에 따른 휴직의 비중이 증가했다는 분석과 통계가 있다. 이것이 여성만을 위한 한정된 시각에 머물면서 해석된다면 앞서 고찰한 대로, 주관적 성격인 추상적 · 관념적 현상의 부분적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날 뿐이다. 다시 말해, 여성관에 대한 여러 지적에 비해 실질적인 자본의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할 수 있다. 비록 그 과정은 다르더라도, 부르주아의 몫에 대한 비중만 넓힌 결과로 해석되며, 잉여 가치의 창출을 위한 존재의 비중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극단적인 경우로는, 미취학 아동 노동도 허용된다. 따라서 노동자일수록 자본주의의 경제·역사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상당히 중요해진다.
또 다른 예로는, 여성의 사회적 노동의 비중이 증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실질적으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종사하는 자본 영역의 범위가 확대될수록, 여성의 사회적 진출 요구 역시 상승하므로, 역효과로 인해 착취의 요소인 매춘과 유흥 접대와 연관되거나 또는 그 이외의 육체적 차이로 발생하는 종사하기 어려운 분야의 한계를 딛더라도, 계급적 평등의 시각으로 일소될 뿐이다. 이 원인의 추측으로는,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을 놓치고, 일부 경제적 불평등이나 사회적 한계에 대한 소모적인 진단만을 사실로 간주한 결과일 수 있다. 이 추측이 사실일 경우, 여성의 사회적 논의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정치경제학 논의로 편입된 경제적 관념만큼 지금의 비판적 논의와 무관하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논의에 대한 일부 한계와 파생되는 시민적 수용(민주적)의 부르주아적 특성에 대한 논의 역시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