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16.


사회주의 과도기

 


소련 붕괴 뒤로 도래할 시기에 대한 고찰. 미래를 앞둔 자본주의로 보자면

시기적으로는 매우 짧다. 벌써부터 체제로는 취약한 위기를 불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21세기를 시작하더라도, 중세와는 다른, 체제로는 오래된 공백기라는 점이다.

따라서 과도기, 준비를 위한 부족한 시간들이다.

 

비슷한 예시로는, 물리적인 상대주의로는 경험적 오류를 범했던,

아인슈타인, 아서 C. 클라크도 비슷한 말은 했었다.

4차 세계대전이 있다면 돌과 나뭇가지로 싸운다고.

 

레닌도 마하주의에 대한 적확한 오류를 지적했었다.

잘 알려진,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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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마오주의를 배격한다

 

대륙으로는, 중국에 대한 현대화된 특색사회주의는 때로는, 암묵적으로 교조화됐다. 특히나 북방국가에서는 오랜 전통이기도 해왔는데, 그러한 사상들에 대한 중심이나 대책들로는, 공산화에 대한 전범을 더욱 정당화한 효과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전 시기, 마오의 정책들 가운데에서도, 그리고 서방국가들에서, 청일전쟁과 중국 사회 내에서 혼란기를 조사해보고자 하며,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고찰, 독점적인 스탈린주의에 대한 승인과 수용, 그리고, 특히 미국과의 치열한 냉전 종식을 둘러싼, 각국들에 대한 지배적인 외교 전쟁들도, 다뤄보고자 한다. 계급화된 중국도 내부적으로는 분열됐기 때문에, 그러한 자본화된 일부 정책들마저 수용되는 현 상황에 대해서도 모순들을 조사해보고,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를 사수하고, 실천적인 의의를 닿는 한, 비판적으로도 살핀다.

 

- 기계적 유물론.

 

- 홍위병과 유격 전술론.

 

- 현실 사회주의 속 특색 사회주의.

 

- 신식민주의.

 

- 공산권들에 대한 국가독점자본주의론 비판.

 

 

권력이란 총구로 나올지 몰라도,

 

반동을 모른다면, 총알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마오의 모순

 

예전에는 흐루쇼프 아래에서 스탈린 격하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소련 후임을 둘러싼 내부 권력 다툼이 치열했기 때문인데, 바로 소련도 내부의 모순을 자본주의로부터 압박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과거의 역사를 투영하거나, 반사적이고, 또한 반영적인 부분들은 매우 왜곡되기도 한다. 바로 우리는 중국에서 일어난 문화 대혁명에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문화 대혁명이란 홍위병을 들고 일어나 서책주의 반대 운동과도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혁명을 봉건화했고, 스탈린도 우려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관건은 마오도 지적한 내부 투쟁이라는 모순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인민에게는 내부 모순이야말로 바로 더욱 투쟁하는 원인이자, 이유라는 사실을 잊곤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같은 통일이라도 다를 수 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도 보다 정돈되고 종합할 수 있는 통일을 요구한다. 바로 분단이라는 드러난 쪼개진 현실에도 앞서 말이다.

 

대표적으로 아직까지도 분단 국가를 유지하고 있는 남한과 북한을 보더라도, 스탈린 소련과 마오 중국은 더욱 미온적인 태도로만 일관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었고, 오히려 베트남, 북한에서도 내전이라는 전쟁 학살로 발전하게 됐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자라고 해서 모두 천재는 아니다. 공산주의자도 사람이다. 마오는 중국에서 오래된 봉건주의를 타파하고자, 또한 그러한 낡은 잔재를 부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문화 대혁명은 홍위병을 후퇴하도록 만들었고, 주위 혁명가들도 숙청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혁명이 아니라 고리타분한 반동이라고 봐야만 옳다.

 

마오의 대표 저작은 다름 아닌 <실천론>, <모순론>이다. 실천과 모순을 기치로 중화 인민들에 대한 혁명을 실천했다. 그러나 혁명에 대한 비춰진 직관과 경험에만 의존하거나, 자세한 연구를 선행하지도, 계획도 없이 추세만 따르는 실천하는 인식이란 어불성설하다. 스탈린주의와 같은 내부 모순을 그대로 간직한 채로 반동 국가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을 따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사물이란 관념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시각적으로든 사람들로부터 겉으로만 드러나는 인식이나, 외부로부터 반영된 내부 자체만으로는 모순을 볼 수 없다. 객체라는 외부로부터 그러한 모순을 논리로부터 증명해서 파악하고, 의심부터 생겨난 의문을 해결하고, 검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물에서 일어나는 질과 양이라는 상호 모순으로부터 비판하면서부터 발전해서, 비로소 주체로부터 실천할 수 있는 혁명에 대한 보다 체계적인 논의까지도 더욱 추진하고 진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국 전쟁이 끼친 내전은 역사적으로 정당화되고 제국주의 아래에서 수정된 이념으로부터 오히려 파괴된 공산주의의 모습만 보여준 역작일 뿐이었다. 그리고 중국이란 특색 사회주의가 아니라 오히려 수정 사회주의라는 결과로만 보여진다.

 

"모든 무기란 반동을 잘 잡을 줄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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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스탈린주의라는 왜곡에 대해서

 

국내에서는 구 소련 아래에서 스탈린주의를 암묵적으로 따르는 이론을 많이 접할 수 있다. 현대적으로는 역사에 있어서 마르크스주의도 많은 변모 과정들을 거쳐왔다. 일부 스탈린주의를 따른 사람들 가운데로는 경도된 페미니즘으로 치우치면서부터, 좌익 공산주의에 대한 논리를 두둔하거나 많이 수용해왔다는 점이다. 정작 마르크스주의 우익과도 결탁한 좌익 논리를 숨긴 채로 멕시코에서 스탈린주의에게 죽임을 당했던 트로츠키를 비방하고, 은폐하고자 했다. 오히려 막무가내로 수정해서 역사 왜곡으로 고치고는 무임승차한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스탈린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학자나, 좌익 관점들에 대해서는 보다 '특수하게' 다루고자 한다. 그러므로 참된 노동자들이라면 지배계급들에 대한 논의에만 치중된 정치관에 대해서도 역사적 왜곡들을 일국적으로나, 또는 다양해서 많거나, 잡다하고, 연속적이라 수정된 구성체에 대해서는 앞으로 매우 비판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 전쟁이 아니라 내전인가.

 

 

- 스탈린 반동 정권.

 

- 후퇴하는 소련 경제.

 

- 스탈린주의와 아류들.

 

- 제국주의 내전.

 

 

스탈린 정권에서는 레닌 사후로부터, 소련 공산당과 한반도를 둘러싼 한국 전쟁 간의 긴장, 그리고 미국과 대륙 간의 서열 대결과 내전 구도 양상, 제국 간 침략 전쟁으로 인한 소련 경제 퇴보와 후퇴, 그리고 반동화된 소련, 독일과 평화 협정 체결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 권력에 대한 대의 배신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스탈린식 변증법 유물론 논리에서 모순과 오류도 진단할 수 있다. 스탈린과 독소 전쟁을 중심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설명을 도출할 수 있다. 그리고 공산권 국가라는 북한에서 한국 전쟁을 중점으로 둔다. 그러나 우리는 한국 전쟁을 단순 침략 전쟁이 아니라 국가 대항전이었고, 또한 제국주의 아래에서 진행된 내전으로 본다. 그리고 한국도 임시정부를 저버리고, 이승만 독단 정치로 나갔으므로. 오히려 미군과 같이 친일 행적과 다름 없는 미화된 부르주아 독재 국가이자 파시스트를 지지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발을 감행한 쪽은 오히려 유럽 파시스트와 제국주의로 편승한 미군정과 남한이다. 그들은 아직도 김구와 같은 민족 운동가를 암살하고는 미화된 정부를 예찬하고, 또한 애국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갈수록 매우 오래된 선입견과 편견을 믿음으로 고수한 주관적인 사례로만 드러날 뿐이다. 그리고 제국주의와 투쟁하던 다른 나라들에서도 큰 피해와 손실을 보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레닌 사후 소비에트에 대해 더욱 묻고자 한다. 스탈린이 활동했던 시기는 20세기였던 1900-1950년이다.

 

1. 스탈린 집권 시기에는 역사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났고, 제국주의 세계 속에서 전쟁은 어떻게 펼쳐졌는가. 레닌 사후로 소비에트는 어떤 상태였는가. 스탈린 전집과 선집도 있다. 그렇다면 국내에서 번역된 주요한 저작으로는 무엇이 있는가. 그리고 스탈린 저작들 가운데에서는 주로 어떠한 문제를 다루었고, 또한 중요한 부분들은 무엇이 있을까. 스탈린에 대한 대표 저작으로는 <레닌주의 기초와 여러 문제>, <사적 유물론, 변증법 유물론, 마르크스주의 언어학>이 있다. 그렇다면 <레닌주의 기초와 여러 문제>는 어떤 문제를 안고 있고, 스탈린은 무엇을 주로 지적했는가. <사적 유물론, 변증법 유물론, 마르크스주의 언어학>에서 주요한 논점은 무엇인가.

 

2. 스탈린주의자들로는 누가 있는가. 그리고 어떠한 철학과 논리를 배경으로 구사하고 있는가. 스탈린은 어떤 특징을 소지하고 있는가. 스탈린에 대해서는 어떤 주장을 내세울 수 있을까. 스탈린 주변 관계는 어떠했으며, 주로 같은 시기에 혁명가들은 스탈린에 대해 어떻게 봤는가. 그리고 코민테른과 제2인터내셔널에 대한 관계는 어땠는가. 트로츠키에 대해 너무나 많은 의식을 해왔고, 동지가 아닌 주적이라고 바라봤기 때문이다. 스탈린은 소련을 반동 국가로 만들었다. 스탈린은 소비에트 정권을 탈취했고, 민족 간 전쟁으로 맞섰다. 마르크스는 노동 계급들에게 국가는 없다고 했지만, 스탈린은 레닌을 추종하기만 했지 정작 마르크스를 잘 배우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3. 레닌은 분트 문제를 어떻게 보았고, 스탈린과 달랐는가. 룩셈부르크, 그람시, 트로츠키도 소련 경제에 대해서는 어떠한 평가를 내렸는가. 스탈린은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에서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 스탈린은 볼셰비키를 저버렸다. 스탈린은 왜 당시 자국 지배자들과 민족 간 전쟁으로부터 협상하고자 했는가. 스탈린은 왜 레닌을 추종했을까. 그리고 스탈린은 어떻게 레닌에 대한 대의를 저버렸는가. 스탈린은 트로츠키를 암살했다. 스탈린과 트로츠키는 소비에트 경제를 어떻게 보았는가. 그렇다면 소비에트 후임으로는 누가 있었을까. 그리고 어쩌다 소비에트는 왜 붕괴했는가.

 

4. 스탈린 집권 뒤로 소련 공산당은 어떻게 붕괴했고, 해체됐는가. 스탈린주의로부터 미화된 혁명가들에 대한 초상. 그리고 현실사회주의 붕괴에도 기여했던 반동적 그늘. 그리고 허황된 논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간과하기 쉬운 점이란, 우리는 트로츠키주의 미명 아래에서 레닌을 계승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억측이라고 밝힌다. 왜냐하면 역사란 소련에서도 마찬가지로 권력 계승에 대한 문제로 일단락할 수도 없고, 또한 무산 혁명에 대한 기여도 있기 때문이다.

 

5. 그러나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시각들도 매우 변증법으로는 체계적이지도 못하고, 협소하게 볼 소지가 다분하게 있어 보인다. 그리고 모든 국가를 공산권에 대한 비판에만 몰두한 나머지 내부 투쟁을 까먹고는 부르주아 국가로 한정하거나 지배계급으로 오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자국인들은 프롤레타리아트 국가를 이룩하고자 투쟁하고 있고, 또 더욱 새로운 조직으로 결사를 벌인다는 점을 잊을 수는 없다. 따라서 모든 편집된 그러한 저작들만으로 레닌마저 수정하고, 반동화하는 일에 대해서는 무산 혁명으로 비판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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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프랑스 운동이라는 실패한 유산

 


프랑스에서 일어난 68 운동은 과연 혁명이었는가. 어째서 재벌 철학과 함께했는가.

 


구조주의

 

만개한 유럽 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던 기회주의이자, 수정주의 조류들도 식는다. 여태까지 부르주아라는 재벌로부터 전개한 민주주의가 우월하다고 선전하고, 또한 선동하고자 여러 논쟁들과 논의를 죄다 구조주의로 뒤바꾼다. 부르주아에게 공산주의도 실제로는 무산 계급 없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아류이다. 유럽 모든 학계에서는 이와 같은 관념 철학이라는 망령이란 바로 부르주아 지식인들, 재벌과 자본가를 위해 그리고 은밀하게 자본주의를 또한 옹호하고 결탁한 마르크스주의를 벗삼아서 말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전과 같이 힘 없는 중간 계급이라는 무산 혁명을 주도한다고 장담한다면 큰 오산이다. 제멋대로 해석하는 부르주아 재벌들에게 민주주의란 사회 구조와 체제를 따라 자본가를 고용하거나, 개량하고 개혁해서 변혁한다고 아직도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처음부터 마르크스와 소련에 대한 전방위적인 해석으로만 치장해서 부르주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본주의를 추상적으로만 안다. 물론 그들만이 쓰는 용어로 온갖 외국어를 뒤섞고 쉽게 풀이하지도 못한 채로 뒤얽히고, 슬쩍 바꾸고 고치기만 해서는 마르크스를 실천해서 꾸준하게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노력이란 다름 아닌 머릿 속으로만 드러난 관념적인 헛수고일 뿐이라는 점이고, 또한 거짓말이라는 점을 이제는 알아야만 하겠다.

 


정신분석학

 

심리학은 퇴보했다. 그리고 부르주아 가운데 학자들도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모든 학문 영역에서는 프로이트, 라캉으로부터 새롭지도 아니고, 유물론도 아니고, 아주 낡고 오래된 자본주의를 복잡하게 비꼬아서 비평으로 방관해서 해석하고 보존하는 부르주아 이론이다. 재벌 학자들이 말하는 마르크스주의란 훨씬 고전적이고, 자본주의로부터 고정된 체제나 사회 구조로 보거나 주관적으로 해석해서 파악한다. 그리고 정작 마르크스라는 주어를 빠진 채로 방관하는 객체와 똑같다. 그렇다고 꾸준하게 투쟁하지도 않기 때문에 그러한 안일한 태도로부터 부르주아 심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믿음이란 무산 혁명에 있어서는 방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다. 아직도 프로이트, 라캉이라는 망령 속에서, 그리고 마르크스 유물론을 관념론으로 해석하고야 마는 어리석은 무리들도 이익 집단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에서는 심리학마저 부르주아를 위해 기능한다.

 


후기주의 규탄

 

여기서 후기주의란 포스트모더니즘과 같다. 그렇다면 왜 후기주의인가. 바로 부르주아 종말론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직도 부르주아 간 전쟁이 일어나서 핵전쟁이 발발하면, 인류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전쟁 소설을 쓰고 있다. 그리고 상상하는 허구가 꼭 현실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전제 아래에서 전 인류 사회는 끝날거라 봤다. 그러나 그 역시 허구였다. 왜냐하면 재벌이라는 엄연한 부르주아지 계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가들도 곧바로 프롤레타리아트 종말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고, 또한 파시스트, 반공주의에서 똑같은 논리를 겉으로도 보여준다. 그들이 말하는 좌우익 평화란 노동자와 자본가들에 대한 화해이자 곧 융화였고. 자본주의에서 작동하는 기계적 사고란 바로 부르주아 사고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왜 남한 사람들은 아직도 재벌 철학에 매달리는가. 바로 마르크스를 죽은 개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서유럽, 일본, 심지어 미국에서도, 수입된 마르크스주의는 기괴하게, 변형됐다. 바로 후기 마르크스주의 때문이다. 그리고 일부 국제주의라는 '흐름'에서도 그러한 전통들은 마르크스 저작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계급적 관계를 잘 고찰해보지도 않는다. 일부는 식민지 영국관을 추종하거나 기반해서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을 그대로 수입했다. 그래서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이론으부터가 아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보다 철저하고, 꼼꼼한 검토와 국내 변증법으로 비판하고 종합한다. 따라서 무산 계급들은 언제나 먼저다. 그래서 정치경제학이라는 논의와도 무관할 수 없다. 필자도 주로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여러 논의를 제안하고자 한다. 수입된 기회주의 조류는 혁명이라 칭하는 수정주의, 교조주의, 심지어는 배외주의와도 같다. 따라서 맞서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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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5. 


개론

 

파시스트에 관한 연구와 자전적 <투쟁>이 담긴 한계를 분명하게 짚는다.

 

참고인.

 

조르주 소렐, <폭력에 대한 성찰>, <진보의 환상>

구스타브 헤르베, <반애국주의>

무솔리니, <나의 자서전>

히틀러, <나의 투쟁>

칼 슈미트, <헌법과 정치>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미시마 유키오, <미시마 유키오 대 전공투>

이광수, <무정>

 

파시스트 연구 자료

 

- 식민지 근대화론

 

국내

 

김장수, <19세기 독일 통합과 제국의 탄생>, <비스마르크>

김기흥, <히틀러와 장애인>

 

카차 호이어, <피와 철>

윌리엄 L. 샤이러, <3제국사>

디트릭 올로, <독일 현대사>

스테판 로란트, <철과 피와 제국>

루시 휴스핼릿, <파시즘의 서곡, 단눈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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