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0. 26.
토지와 사유 재산
도대체 땅 주인이란 누구인가!
국내로는 아주 오래된 고질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바로 토지 문제다.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나오는 부동산 대책이라 불리는 정책이 바로, 매입과 판매라는 분배에서토지 문제로 해당하는 대표적인 문제인데, 주로 토지 문제를 사적 소유로 다루기 보다는,
개인에 대한 사익(친일), 환경이나 개발로 치부하는 경향주의도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는 특히 마르크스주의 독자들이라면, 그러한 고질적인 토지 문제란, 모든 정부가 해결하지도 못했다고 하는, 바로 경제주의자들은 지주와 농민들로 단순하게는 결부해버렸기 때문이다. 지방으로 가다보면, 현상은 매우 뚜렷해진다. 이를테면 농민층에서도 생겨나는 오래된 빈부격차라든가, 늙어버린 조합주의라는 행태로부터 부패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로, 토지 문제를 수도권 문제로 여기거나, 더군다나 집중된 탓에 분산하거나, 수도를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들은 철 지나도록 나왔지만,
주위 인프라만 다뤘었지, 정작 토지 문제를 지적하지는 못했었다.
왜냐하면,
1. 바로 소유권이라는 일부로 사유 재산권이라는 법적인 제도마저
지배계급들을 위한 일부로, 보호하거나,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계약을 해서,
농사를 짓는 임농들도, 아무리 생산력 비중을 둔 농민층들이 줄어들었다고 하더라도,
토지 문제만 바라보거나, 개발 정책에 대한 반발로만 머문다면,
정작 토지 문제에서 실질적인 사유재산 문제를 못 볼 수 있다.
2. 진보적인 자유주의에서도 특히나 신자유주의라는 관점에서는, 토지 문제를 두고,
착취가 발생하거나, 심지어는 기업 간 경쟁으로부터 약탈, 그리고 개발을 위한 소급화 계약
으로 보기를 거부했다. 따라서 그들은 매우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올바른 토지 문제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모든 정부 정책에서도 실패하고 말았다.
모든 토지 문제란, 사유 재산이라는 문제와 불가결하다.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하는 한 도시든, 지방이든, 누적된 개발 정책에 대한 비리, 시공사와 마찰, 토지 임대 간의 분쟁 등, 그리고 도시에서 일어날 수 있는 대부분 모든 문제들은 모두 자본가들과 토지를 많이 가진 지배자들에게 이롭다. 그리고 합법화된 유산을 포함한 상속세는 감당할 수 있을만큼 그들에게도 분배한다. 따라서 그러한 문제를 사유 재산과 떼어졌다고 본다면, 경제 문제를 실용적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이다.
한 예시로, 초기 볼셰비키 소비에트는 달랐다. 왜냐하면, 수 많은 빈 토지들에 대해서도 국유화를 정해서, 단지 소수 개인들에게 소유함이 아니라, 식량 생산을 조달하고자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토지 비옥도까지 계산할 정도로 일정하게 배분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누구든 더욱 효율적으로 농업 생산, 목축도 제공할 수 있었다. 이를 두고, 현대인들은 말 안되는 생각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사유지 이권 다툼은 분배 문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배계급관을 가지거나, 속한 개인에게 자유로운 민주주의란, 과연 어리석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국내에서도, 경제적으로 토지 분배가 왜 잘못됐는지와 생산과 유통이라는 분배 과정에서도
매우 불합리하고, 착취도를 조사해서 따로 보고하도록 하겠다.
또한 그러한 잘못을 먼저 따지는게 바로 대책(대안)이라는 점이다.
거주지 독점과 계급 문제의 심화
고시원 생활
'인간의 가장 극단적인 빈곤의 형태는 의식주가 해결되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빈약한 영양 섭취이다.'
전 세계적으로 거주지 문제는 심화하며, 주택 문제는 끊임없이 갈등을 유발하는 핵심 요소다. 역대 정부가 주택 문제 해결에 난항을 겪는 본질적인 이유는, 이 문제가 자본주의의 은폐된 진실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재에도 자본가들은 다수의 주택을 보유하며 투기 행위를 지속한다. 주택 문제에 관한 서적이나 경제·자기 계발 서적이 넘쳐나는 현상 역시 이러한 배경에서 비롯된다. 다만, 이러한 주장들은 종종 투기·매매 현상을 증권 시장과 비슷하게, 소비적 측면만을 강조해 바라본 결과에 불과하다. 과거 산업 혁명기 영국 노동자들이 온 가족이 다닥다닥 붙어 살았던 것처럼, 대가족 해체 이후 생활 양식은 변화했으나 본질적인 주택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모든 정부가 노동 계급에게 주택 관련 짐을 부과하려는 성향은 전 세계 어디서나 비슷하다. 이러한 투쟁을 가로막는 요소는 바로, 거주지라는 가장 기본적인 생활 기반마저 소수가 독점하는 현상에서 발생한다. 이렇게 공유지는 사유지가 된다.
고시원 생활을 경험하는 이들이 절감하듯, 안락한 거주지가 아닌 시설은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면서도 공용 화장실 사용, 온갖 생활비 지출 증가 등 비인간적인 환경을 강요한다. 공공 주택 건설 방식은 추첨으로부터 겨우 당첨된 '보급형' 노동자들에게조차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더구나 취업의 길이 막힌 상황이라면, 거주 비용에 대한 부담은 빚으로 증폭된다. 특히 청년 노동자들의 미래가 갈수록 어두워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학 입학 후 감당해야 할 막대한 비용은 이 현실의 실체를 더욱 분명히 드러낸다.
심층 조사로부터 드러나겠지만, 한국의 심화된 경제 현실은 오히려 '계급 문제'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일시적인 고시원 생활을 마친 후에도 또 다른 노동 생활의 반복을 목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인구는 감소하고, 빈집은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도, 정작 자신의 집마저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러한 순환은 자본주의 경제의 토대가 되어 가진 자들은 더 많은 주택을 소유하게 만들며, 이는 사실 경제 사정이 '회복'되었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다. 코스피 달성 목적에는 이처럼 토지·지대의 투기·매매에 따른 숨겨진 진실이 내포되어 있다. 그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겨울철에도 천막이 보금자리의 역할을 해주기를 빌 뿐이다.
아파트를 보며,
시골 생활을 처음 접했을 때, 자연의 거대한 부지가 노동자의 터전인 줄로만 알았지만,
방송국 촬영지의 일부가 되어 소유지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곳은 언론으로도 유명한 모 방송국이 사들인 결과였다.
충분한 자본이 있기 때문에, 매각된 토지를 쉽게 구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우아한' 집이 보여주는 단순한 로망 그 이상이 되고 만다.
이처럼 최초의 아파트는 1960년대, 분명 박정희 때부터 건설되었는데, 정작 그 당시에도 아파트는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실제로, 아파트는 당시 소련에서는 노동자들의 보급형으로 존재했지만, 어느 순간, 그 형태도 국내로 들어오면서 투기의 목적이 되고 말았다. 자연 유산들이 파괴되면서도, 노동자들의 터전마저 잃어버리고 만 세상이다. 조금만 집값을 낮추어도, 토지 소유자들은 금방 모든 불만을 품으니 말이다. 그들 중 일부는 노동자들의 거주지나, 장애 아동 교육 시설 건설을 겨우 추진하면 금방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기도 했다. 어떤 건설인지에 대해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정작 재개발과 같은 도로·토지 확장 공사라면 밀어붙이기만 했다.
이것을 건설 서적에서는 기록이 전무하다는 점이다. 아파트의 발전사만 다룬 건축사가 간과하는 부분이 분명 있다고 본다. 주택 건설도, 지방으로 갈수록, 소수의 부유층들이 더 늘어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마당이 딸린 곳에서, 안락한 '귀족 생활'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영위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는 없다. 아니, 인정할 수밖에는 없다. 그들의 별채가 바로 이러한 '유명한' 기능을 할테니 말이다.
자본주의를 추상적으로만 이해했다면, 이러한 점들에 대해서는 정말로 간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들은 지방에 내려가서도, 오히려 똑같은 파괴를 자행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거주지의 자유'는 파괴된다. 더 이상, 시골은 말 속에 갇힌 한 언어일 뿐이다. 온통 그들이 이윤(잉여 가치)을 창출하기 위한 모든 일로 쉽게 도배되고 만다. 이 현상에서도, 거주지의 독점은 오히려 심화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