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04. 16.


첫 걸음이라는 반 걸음

 


당이라는 '전체' 위기

 

자본가라는 부르주아지, 기회적인 수정주의, 너무나 애국적인 민족주의, 반동적인 파시스트들이 모두 한 자리로 모였다. 정작 수마저 적은 우리를 두고는 없는 적으로 몰고는, 언어로까지 분탕질을 해댄다. 오랫동안 우리들에게는 힘마저 잃었다. 물가는 치솟았고, 이제는 노동가들마저 서로를 기만한다. 등 따숩고, 밥맛도 좋은 곳에서, 머리를 한대 모아서 한다는 소리란, 그저 임금을 줄이고, 고용 시장을 줄여서, 더 센 사람들에게 빌붙자고 말한다. 월 스트리트 때도 그랬다. 그들은 벽에다 머리를 맞대고는, 경제 사정을 쥐었고, 아파트와 주택을 소유하고자, 토지 쟁탈전을 벌이도록 뒤에서 부추겼다. 그리고는 서로를 싸우도록 무기를 들라고 강요했다. 다음으로 그들은 냉전을 끝냈고, 전쟁을 일으켰다. 제국주의 운동에도 앞장섰고, 그들은 늘 첫 걸음을 베껴서 숨기고는 내딛고자 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늘 퇴각했고, 앞으로 걸을 수 있을지마저 장담할 수 없었다. 공산주의 운동가들에게는 죽음을 결단하는 첫 걸음이 올 때면, 신중해야만 했고, 그리고 반 걸음마저 내딛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들에게 걸음이란 <한 걸음 앞으로, 두 걸음 뒤로>인 셈이다. 우리는 늘 제국주의로부터 두 걸음 뒤에서, 첫 걸음을 걸어야만 했다. 바로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정당 조직을 완수하고자 노력해왔다. 그러나 그러한 조직들은 붕괴해가는 데 더욱 일조했고, 싸운 사람들은 더욱 퇴보해갔고, 단결하지 못한 채로 남아버렸다.

 

좋았던 시절

 

그런 적은 태어나서도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느 목사는 말한다. '심판의 날'이 올테니, 기도를 하라고. 투쟁을 멈추지 않는 노동가들은 노동 시간을 빼앗기고, 피를 수혈해도 모자랄 만큼 노력을 했고, 헌신을 했다. 그리고 비록 혁명은 오더라도 한 시절로 짧게 끝나버렸다. 덕분에 그들이 첫 걸음을 내딛을 때면, 우리는 반 걸음도 걷지는 못했다. 이제는 너무나 멀어진 걸음을 세고 발돋움하려다, 누구는 흰 머리마저 새어버렸다. 그러한 시절이라면, 우리는 잊을 수 없는 아픔이라는 반 걸음을 보낸다. 그리고 언젠가는 뛰고자, 아직까지도 우스운 실천이라는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셈이다.

 

마지막 걸음

 

당신들에게 마지막 걸음은 때때로 우리들로는 첫 걸음이다. 그리고 뽑을 패가 더 이상 없으므로.

 

나머지는 여러분들이라는 몫으로 모두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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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종교 조직에 대한 폐지 요구안

 


지배 과학이라는 종교

 

일부 혁명가들은 줄곧 개인에 대한 신앙을 크게 가졌거나, 그러한 환경 속에서 자라왔음에도, 종교에 대한 믿음에 대해서는 일종의 거부하는 태도를 지녔다. 혁명 지도자로 한해서는 종교 당사자들과는 토론하기도 했었고, 주로 말 그대로, 믿음이나 신앙에 대한 교리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두고도 혁명 국가로부터 인민들로는 효과적으로 자신들에 대한 신념을 전파할 수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종교를 가진 일부 사람들로부터도 오랫동안 배척 당해 온 역사는 있었다. 바로 마르크스도 말했던 오래된 진리 때문이기도 하다. 민중들에게는 종교라는 아편으로부터도, 자신들이 가진 믿음을 행하고, 긍정적으로 전파할 수 있다고도 봤던 순교자, 선교자들마저도, 오랫동안 종교는 지배 체제만이 아니라, 관념적인 사상으로도, 숭고하고 또 복잡하게 이뤄졌다. 아무리 종교를 계급적으로 나눈다고 할지라도, 끝으로는 종교는 다음 지배 체제로도, 그리고 부르주아지를 제거하고는, 신화나, 전설로만 치부한다는 점에서도, 부르주아 역사관으로는 정치만큼 일부분으로 다뤄졌다. 그리고 아무리 세속주의만으로도 부르주아지들에 대한 종교라는 특성이 남아 있는 한,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은 있어왔기 때문이다.

 

개인 숭배만큼이나, 지독한 혁명가들에 대한 숭배로도, 레닌은 <국가와 혁명>에서, 혁명가들은 죽어서도 초상화와 동상이라는 우상으로 남는다고 토로하고 지적했다. 무분별했던 부르주아 혁명가들도 마찬가지였다. 맨 처음부터 대중들은 우상에 대한 숭배를 벗 삼아, 프롤레타리아트를 기만하고는, 많은 오래된 사회주의 투쟁마저 종교화했다. 여기서 과학이란, 그들만의 사회주의를 전파하고자 만들어진 관념이었고, 또한 바로 지식인들의 머릿 속에서만 꾸며진 불합리한 이상향에 대한 믿음들로 모여진 색안경이자, 선입견들이었다. 부르주아지들은 종교적인 믿음으로는 투쟁도 강조해왔지만, 자본가들이 된 그들에게, 투쟁들에 대한 믿음마저, 혁명이라는 이상향으로만 색칠하고는 공상해왔고, 더불어 노동가들도 파괴해왔다.

 

프롤레타리아트 무신론

 

러시아는 정교회가 있어왔다. 그리고 소비에트 때는 종교적인 활동을 인정하면서도, 특히 교회로부터 부정된 권위에 대해서도 많이 부정해왔다. 덕분에 노동 계급들은 더욱이나, 사상에 대한 교육으로는 종교를 보다 비판할 수 있었고, 혁명으로도 지위를 옮길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러나 러시아를 보더라도, 현대 자본주의로는 러시아에서도 민족주의를 기반 삼거나 근거로 해서는 바로 정교회라는 종교를 기반으로, 세력을 넓혀나갔고, 지도자들도 해당 종교를 비단 교회만이 아니지만. 많은 대중 세력들로부터 지지 기반을 확보한 종교들은 정치에서도 진출하고, 가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더욱 반동적이기만 한 비밀 교도나, 덕분에 이름도 듣지는 못했던 종교들도 많이 생겨날 수 있었다. 따라서 회의를 느낀 무신론에 비중들도 '반사적'으로는 늘어났다. 그러나 종교는 여전히 권위를 가지고 있고, 또한 프롤레타리아트들에게는 종교로부터 사유 재산에 대한 자유를 보장할 수 있다는 착각도 같이 전파한다. 따라서 바로 그들로는 '민주적인' 선택일지라도, 종교적인 범죄들도 정당화한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다만 러시아 뿐 만은 아니겠다.

 

물론 억압하거나, 억지로 금지한다고 해서 막상 종교에 빠진 사람들에게도, 같은 상태만으로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는, 도저히 중독된 말이기 때문에 설득할 수는 없겠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들로는 적어도 앞선 종교에 대한 부르주아들로부터 조직 기구에도 참가하고, 꿈마저 이룰 수 있다는 신성한 믿음과 교리들에 대한 각 신앙이라도, 프롤레타리아트들로는 활동에서도 소외하도록 만들고는, 제약을 걸도록 제동할 수는 있다. 이제는 부르주아지들에게도 '신성한' 마르크스에 대한 이론마저, '안전한' 지식인 종교가들로는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로도 쓰였을 뿐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들로는 과학이라 믿는 종교라면, 우리는 모두 함께할 수도 없고, 또한 해석만으로 이뤄진 복잡한 논의들로부터도 그들의 선에서도 아쉽더라도, 끝내야만 옳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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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국제 연락소와 지역 지부 설립 필요성

 


지역 공산당

 

공산주의라고 해서 꼭 국가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코뮌도 있다. 그러나 기반은 취약하다. 이를테면 서울 공산당과 같은 여러 지역으로도, 공산당은 나올 수 있다. 공산주의 운동에서 연락소는 늘 중앙 구도로부터 대표하는 기관은 아니기 때문에, 연락소를 분산해서, 여러 활동가들과도 연락을 취해왔다. 특히 일부 사회주의 운동가들은 국제 지역 지부를 설치해서, 활동가와 운동가들 간 문제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지역 공산당은 부르주아로부터 나뉘어진 지역주의 요소들을 제거하기도 했었고, 중앙으로부터 빠르게 활동 문제에 대한 물음을 회신하거나, 답변받을 수 도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실행할 수 없는 기능인데, 일부 사회주의 체제를 온전하게 받아들인

 

국가나 지역에서는 연락소를 정해서, 활동가들에 대한 보고와 과정을 서신으로도, 주고받았다.

 

그러나 공산당은 지역주의로만 갇혀 있지는 않는다. 더 나은 국제 사회로부터 국제 연락소를

 

설치해서 혁명 활동가들 간 연락을 계획해왔다. 그리고 더욱 충실하게 실행해왔다.

 

연락소를 훼손했었던 부르주아지와 조직 기구들은 그러한 폭력으로부터 연락소를 세울 수 없도록 가로막거나, 단속했었고, 검열까지 했던 적도 있었다. 경찰과 군대는 바로 그러한 역할들을 해왔다. 직업적으로도, 국가 명예를 위한 일이라고까지 치겨세웠던 건, 바로 그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경찰과 군대도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체제가 공고하는 한 그러한 단속들도 강화했었기 때문에, 혁명 활동가들에게는 심각한 제약과 제한이 아닐 수 없었다. 이를테면 알다시피 민족주의 운동으로는 식민지 타국으로부터 단속과 검열이 있었다. 공산당은 그러한 시도들에 대해서는 비록 소수였지만 반대해왔었고, 또 꾸준했었다. 지금은 시간도, 상황도 많이 달리진 건 사실이다. 그러나 혁명 활동가들은 구금을 받기도 하거나, 오히려 구속되기도 했으므로, 정작 처벌받아야만 하는 높은 지위로도 있는 관료, 경관, 장관같은 부르주아 조직가들은 처벌을 면하는 일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공산당은 국내로도 국제 연락소를 연결해서, 불합리한 국가 단속과 지속할 수 있는 혁명 운동을 지연하도록 하거나, 막고자 노력한다. 그리고 불손하거나,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부정한 행위, 부조리는 일어나지도, 또 불가피하게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또한 실천할 수 있다.

 

당원 자격

 

아무리 공산당이라지만, 누구나 가입하거나, 참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러니 진입 문턱은 까다로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정당에 비하면 매우 낮다. 까다롭다는 건, 실력 보다는 태도를 먼저 본다. 자란 환경 뿐만이 아니다. 국적 출신 지역에 대한 차별도 아니고, 가진 재산에 대한 경제적인 척도를 먼저 보기 때문도 아니다. 물론 공산당 내부로는 바로 혁명에 대한 열의, 주어진 계급에서도 동등함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단지 이상적이기만 한 무계급 사회만 보거나 그렇다고 꼭 지지하지도 않는다는 점에서 좀 다르겠다.

 

지배자와 자본가는 물론이거니와, 결탁하고는 혁명 운동을 너무나 심각하게 훼손하고는 오랫동안 배신해왔거나, 너무나 오랜 경력을 가졌거나, 과거부터 아예 전향해서는 운동을 저버리고, 이력을 속여왔던 일부 노동 운동가, 활동가, 혁명가들은 도덕적으로도, 양심적으로도 여기 공산당으로는 들어올 수는 없겠다. 대신 경력을 고려할 때는 조언가로 참가할 수는 있겠다. 탄압 때문이 아닌 정치 운동을 하다가 구속되어 체포되거나, 개인적인 범죄 이력이 있어서도 힘들 수 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새로운 경력을 가지고, 혁명을 요구할 준비를 지니고, 앞선 마르크스를 배운 혁명가들에게도 교훈 삼아 잘 따져보고, 배울 줄도 알고, 사익이 아니라, 공산주의 실천 활동에 대한 꾸준함을 지녔다면, 우리 공산당은 누구든, 열려있고, 또한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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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10월 혁명을 기념하며

 


혁명가에게 10월은 축제 기간이 아니라, 주로 혁명 기간으로 본다.

 

체제 연구자들은 시민 혁명이었던 프랑스 혁명을 주로 언급하지만,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한계를 분명 가지고 있으므로, 우리는 10월 혁명만 기념하겠다.

 

여기서 우리란 지난 소련이라는 거대한 탄생을 목격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저 혁명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을 바라고, 또한 하고자 함을

 

준비하고, 늘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러시아에게 축하를 보내지는 않겠다.

 

그리고 우리는 성과마저 없다.

 

지난 북한 정부진, 심지어는 국내 노동 모임들도, 10월 혁명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서도, 한 달 동안이나 단 한 마디도, 단 한 차례도 들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기념한다.

 

10월 혁명이란, 뜻을 함께한 수 많은 인민, 노동가들로부터 모이고,

 

또한 모든 10월 혁명을 위해 조직한 투쟁을 기념해서도,

 

볼셰비키로부터 굳건한 기반 위로,

 

세워진 우리는 10월 혁명을 잊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더욱 머무르지는 않겠다.

 

『국가와 혁명』을 읽고,

 

만국 프롤레타리아트들은 단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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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04. 16.


참사와 재난

 


일부 마르크스주의로는 국가로부터 발생한 여러 참사나 재난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못하고 별 일이 아니라고 우습게 여기기도 한다. 사고들에 대한 원인으로는 주로 구조나 체제로부터 기인하거나, 앞선 대책을 미리 수립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우리는 지배자 이전에 국가 지도자와 관료들에 대한 책임마저 묻는다마르크스주의 이전에 한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는 않는다.

 

지배자와 관료들은 보고를 누락하거나, 느슨한 고리를 형성하고, 방안 부재까지 참사와 재난이 일어났을 때, 주로 처리해야 할 일을 정작 하지 않거나, 가볍게 생각하기만 하고는 미루고 쌓는다. 단지 우발적인 사건일 수는 없겠다. 노동 대중들도 지적했지만 안전 수칙은 괜히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수직적인 계급 관계로는 사고를 더욱 빠르게 대처하기란 매우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경찰 통제마저 불가피하지만, 국내로는 인력이 마약 단속으로 분산해버렸다고 한다. 과연 경찰 국가답다.

 

작은 사고부터 시작해서, 자본주의 체제로는 여러 범죄부터, 대형 사고까지, 축제가 끝나도 사람이 죽는 일은 매우 쉬워졌다. 개별적인 사람 한 명은 소중한 재산 따위가 아니다. 당시로는 언론도, 여론도 문제였다. 젊은이들이 축제를 가는 일만 문제 삼았고, 질서가 무너졌다고 하소연만 해댔다. 잘 놀지도 못하고, 놀 줄도 몰랐던 젊은이들은 저마다 사연들이 있음에도, 풀 수 있던 해방구마저 정작 사라지고 말았다.


과연 한국은 경찰 국가이자 자살 국가다. 보고를 받았음에도, 연락받지 못했다고 변명하고아는 한, 법적인 침묵 아래로 해명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부 그토록 숨기고 싶었던 국가 체제에 대한 부정 논리를 더욱 드러내고 말았다. 그리고 지도자가 있음에도, 무정부적인 성질도 보였다. 그리고 결국 같은 참사는 일어나고 말았다.

 

역사적인 참사나 재난들은 환경이나, 외부적인 요인으로 구분하거나 지적할 수 있다그러나 내부 모순으로는 상부로부터 계급적인 요인, 부패한 구조를 지적하지 않는 한모든 체제 안에서도 일어날, 수 많은 참사와 재난은 반복할 수밖에는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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