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의 농업 프롤레타리아트

 

자본주의적 생산과 축적의 적대적 성격은 영국 농업 경영(축산 포함)의 발전과 농업 노동자의 퇴보라는 현상에서 가장 가혹하게 입증된다. 이들의 현 상황을 논하기에 앞서, 과거를 잠시 조망한다. 생산 방식 변화의 토대인 토지 소유 관계의 변혁은 그보다 훨씬 이전 시기에 속하나, 영국의 근대 농업은 18세기 중엽부터 본질적으로 기원한다.

 

1771년의 농업 노동자들에 대한 아더 영(피상적이나마 정확한 관찰자)의 진술에 따르면, 그들은 도시와 농촌에서 잉글랜드 노동자들의 황금 시대였던 15세기 선조는 물론, ‘노동자들이 여유 있게 살고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14세기 말 선조와 비교해도 현저히 열악한 처지였다. 그러나 그토록 먼 과거를 소급할 필요는 없다. 내용이 풍부한 1777년 저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큰 차지 농업가는 거의 젠틀맨(부농) 수준으로 격상된 반면, 가난한 노동자는 억눌려 거의 땅바닥까지 추락한다. 노동자의 비참한 실태는 오늘날과 40년 전의 생활 조건을 비교하면 명백하다. 토지 소유자와 차지 농업가는 결탁하여 노동자를 억압한다.’

 

이어서, 저자는 농촌에서 실질 임금이 1737년과 1777년 사이에 거의 1/4, 25% 하락했음을 상세히 입증한다. 같은 시기, 리처드 프라이스는 다음과 같이 피력한다.

 

근대 정치는 국민의 상층 계급에게 더욱 유리하다. 그 결과, 조만간 영국 전체 주민은 다만 젠틀맨과 거지로, 또는 귀족과 노예로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1770년에서 1780년 사이 영국 농업 노동자의 처지는 식사, 주택, 그리고 자존심, 오락 등의 측면에서, 그 이후로는 다시 도달하지 못한 최상의 상태였다. 1770-1771년 농업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밀의 양으로 환산해 90파인트(0.57리터)였으나, 이든의 시대(1797)에는 이미 65파인트에 불과했고, 1808년에는 겨우 60파인트였다.

 

() 자코뱅 전쟁 기간(1792-1815) 동안 토지 귀족, 차지 농업가, 공장주, 상인, 은행가, 주식 투기꾼, 군수품 조달자 등은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이 시기, 말기 농업 노동자들의 형편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다.

 

명목 임금은 부분적으로 은행권의 가치 저하와, 부분적으로는 이와는 무관한 주요 생활 수단의 가격 등귀의 결과로 인상되었다. 그러나 실질 임금의 변동은 (불필요한 세부 사항을 제외하고) 매우 간단하게 입증된다. 구빈법은 1795년과 1814년에 걸쳐 동일하게 유지되고 운영되었다. 이 법이 농촌에 적용된 방식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교구는 노동자들이 겨우 연명하는 데 필요한 명목 액수가 되도록 구호금 형태로 명목 임금을 보충해 주었다.

 

차지 농업가가 지급한 임금과 교구가 보충한 그 부족액 사이의 비율은, 첫째, 임금이 최저 한도 이하로 하락했음을 폭로하며, 둘째, 농업 노동자가 임금 노동자인 동시에 구호 빈민이 된 정도, 곧 농업 노동자가 그 교구의 농노로 전환한 정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다른 모든 주를 대표할 만한 전형적인 한 주를 택하여 분석한다. 1795년 노샘프턴셔의 주 평균 임금은 7실링 6펜스였다. 6인 가족의 연간 총지출액은 36파운드 12실링 5펜스, 총수입은 29파운드 18실링이었으며, 교구가 보충해야 했던 부족액은 6파운드 14실링 5펜스에 달했다.

 

1814년의 주 임금은 12실링 2펜스, 5인 가족의 연간 총지출액은 54파운드 18실링 4펜스였다. 반면, 총수입은 36파운드 2실링이었고, 교구가 보충해야 할 부족액은 18파운드 16실링 4펜스에 달했다. 따라서 1795년에는 부족액이 임금의 1/4 이하였으나, 1814년에는 절반 이상이다. 이 상황에서는 이든이 그때까지도 농업 노동자의 오막살이에서 발견했던 초라한 위인들마저도, 1814년에는 완전히 소멸했음이 명백하다. 차지 농업가가 소유한 모든 동물 중, ‘말하는 도구인 노동자는 이때부터 가장 혹사당하고, 가장 열악하게 사육되며, 가장 난폭하게 취급된 존재였다. 이러한 사태는 ‘1830년의 스윙 봉기가 곡물 더미에 타오르는 불빛으로부터 우리에게’ (곧 지배 계급에게) ‘빈궁과 불안한 불만이 공업에서와 마찬가지로 농업의 표면 아래에서도 사납게 타오르고 있음을 폭로한 그때까지는 평온하게 지속되었다. 당시 새들러는 하원에서 농업 노동자를 백색 노예라 칭했으며, 대주교 한 사람도 상원에서 이 명칭을 반복 사용했다. 당시 가장 저명한 정치경제학자 웨이크필드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남부 잉글랜드의 빈농은 자유민도 아니요, 노예도 아니다. 그는 거지다.’

 

곡물법 폐지 직전 시기에는 농업 노동자의 상태에 관한 새로운 사실들이 다수 밝혀졌다. 이는 한편으로, 부르주아 선동가들의 이익이, 곡물법이 실제 곡물 생산자들(농업 노동자들)을 거의 보호하지 않음을 입증하는 데 있었기 때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공업 부르주아지가 토지 귀족들의 공장 제도에 대한 비난, (철저히 부패하고, 몰인정하며, 점잔 빼는) 무위도식한 자들이 공장 노동자들의 고통에 베푸는 가짜 동정, 그리고 공장 입법에 대한 그들의 외교적 열성’(공장 노동자 지원)에 대해 격렬한 분노를 느꼈기 때문이다.

 

도둑놈끼리 싸우면 정직한 사람이 어부지리를 얻는다.’는 영국 속담처럼, 실제로 지배 계급의 두 분파 사이에서 벌어진 싸움, 곧 누가 노동자들을 더욱 파렴치하게 착취하는지에 대한 소란스럽고 격렬한 논쟁은 두 분파 모두로부터 착취 실상을 해명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샤프츠베리 백작(당시 애쉬리 경)은 귀족의 박애주의적 반() 공장 진영의 총사령관이었다. 그 결과, 1844년과 1845년에 그는 농업 노동자의 처지에 관한모닝 크로니클지의 폭로 기사에 자주 언급되었다. 당시 가장 저명한 자유당 기관지였던, 이 신문은 농촌 지방에 특파원들을 파견했는데, 이들은 일반적 묘사나 통계에 만족하지 않고, 조사 대상 노동자 가족과 그들을 고용한 지주들의 이름까지 공표했다. 다음 표는 블랜포드, 윔본, 풀 근방 세 농촌에서 지급한 임금표이다. 이 촌락들은 뱅크스와 샤프츠베리 백작의 소유지이다. 주목할 점은, 저교회파(Low Church)의 교황(곧 영국 겅건파의 두목)인 샤프츠베리가 그의 동료 뱅크스와 마찬가지로, 집세라는 구실로 노동자들의 형편없는 임금의 상당 부분을 빼앗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곡물법의 폐지는 영국 농업에 막대한 충격을 야기했다. 매우 큰 규모의 배수 공사, 축사 내 가축 사육, 사료 작물의 인공 재배, 기계 시비 장치의 도입, 점토질 토양의 새로운 처리법, 광물성 비료의 사용 증가, 증기 기관 및 각종 신형 작업기의 사용 등 더욱 집약적인 재배가 특징적으로 나타났다. 왕립 농업 협회 회장 퓨지는 이러한 새로운 기계들의 도입으로, 농업 경영의 (상대적인) 비용이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토지의 수확은 실질적으로 급속히 증대했다. 에이커당 자본 투하액의 증대와 더욱 급속한 차지 농장의 집중이 이러한 새로운 방법을 적용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었다.

 

농업 노동자들의 상태


1마을

 

아동수: 2, 가족수: 4, 성인 남자의 주 임금: 8실링

아동의 주 임금: - , 가족 전체의 주 임금: 8실링,

주간 집세: 2실링, 집세를 뺀 주 총임금: 6실링,

1명당 주 소득: 1실링 6펜스

 

아동수: 3, 가족수: 5, 성인 남자의 주 임금: 8실링

아동의 주 임금: - , 가족 전체의 주 임금: 8실링

주간 집세: 1실링 6펜스, 집세를 뺀 주 총임금: 6실링 6펜스,

1명당 주 소득: 1실링 3.5펜스

 

아동수: 2, 가족수: 4, 성인 남자의 주 임금: 8실링

아동의 주 임금: - ,가족 전체의 주 임금: 8실링

주간 집세: 1실링, 집세를 뺀 주 총임금: 7실링

1명당 주 소득: 1실링 9펜스

 

아동수: 2, 가족수: 4, 성인 남자의 주 임금: 8실링

아동의 주 임금: - , 가족 전체의 주 임금: 8실링

주간 집세: 1실링, 집세를 뺀 주 총임금: 7실링

1명당 주 소득: 1실링 9펜스

 

아동수: 6, 가족수: 8, 성인 남자의 주 임금: 7실링

아동의 주 임금: 1실링 6펜스, 2실링, 가족 전체의 주 임금: 10실링 6펜스

주간 집세: 2실링, 집세를 뺀 주 총임금: 8실링 6펜스

1명당 주 소득: 1실링 0.75펜스

 

아동수: 3, 가족수: 5, 성인 남자의 주 임금: 7실링

아동의 주 임금: - , 가족 전체의 주 임금: 7실링

주간 집세: 1실링 4펜스, 집세를 뺀 주 총임금: 5실링 8펜스

1명당 주 소득: 1실링 1.5펜스

 

2마을

 

아동수: 6, 가족수: 8, 성인 남자의 주 임금: 7실링

아동의 주 임금: 1실링 6펜스, 1실링 6펜스, 가족 전체의 주 임금: 10실링,

주간 집세: 1실링 6펜스, 집세를 뺀 주 총임금: 8실링 6펜스

1명당 주 소득: 1실링 0.75펜스

 

아동수: 6, 가족수: 8, 성인 남자의 주 임금: 7실링

아동의 주 임금: - , 가족 전체의 주 임금: 7실링

주간 집세: 1실링 3.5펜스, 집세를 뺀 주 총임금: 5실링 8.5펜스

1명당 주 소득: 8.5펜스

 

아동수: 8, 가족수: 10, 성인 남자의 주 임금: 7실링

아동의 주 임금: - , 가족 전체의 주 임금: 7실링

주간 집세: 1실링 3.5펜스, 집세를 뺀 주 총임금: 5실링 8.5펜스

1명당 주 소득: 7펜스

 

아동수: 4, 가족수: 6, 성인 남자의 주 임금: 7실링

아동의 주 임금: - , 가족 전체의 주 임금: 7실링

주간 집세: 1실링 6.5펜스, 집세를 뺀 주 총임금: 5실링 5.5펜스

1명당 주 소득: 11펜스

 

아동수: 3, 가족수: 5, 성인 남자의 주 임금: 7실링

아동의 주 임금: - , 가족 전체의 주 임금: 7실링

주간 집세: 1실링 6.5펜스, 집세를 뺀 주 총임금: 5실링 5.5펜스

1명당 주 소득: 1실링 1펜스

 

3마을

 

아동수: 4, 가족수: 6, 성인 남자의 주 임금: 7실링

아동의 주 임금: - , 가족 전체의 주 임금: 7실링

주간 집세: 1실링, 집세를 뺀 주 총임금: 6실링

1명당 주 소득: 1실링

 

아동수: 3, 가족수: 5, 성인 남자의 주 임금: 7실링

아동의 주 임금: 2실링, 2실링 6펜스, 가족 전체의 주 임금: 11실링 6펜스

주간 집세: 10펜스, 집세를 뺀 주 총임금: 10실링 8펜스

1명당 주 소득: 2실링 1.6펜스

 

아동수: 0, 가족수: 2, 성인 남자의 주 임금: 5실링

아동의 주 임금: - , 가족 전체의 주 임금: 5실링

주간 집세: 1실링, 집세를 뺀 주 총임금: 4실링

1명당 주 소득: 2실링

 

토끼 사육장과 빈약한 목장에서 풍성한 밀밭으로 전환된 동부 주들 대부분을 제외하더라도, 경지 면적은 1846년에서 1856년 사이 464,119에이커나 확장된다. 그러나 농업 취업자 총수는 오히려 감소했다. 남녀노소를 포함한 실제 농업 노동자 수는 18511,241,269명에서 18611,163,217명으로 줄었다. 이에 따라, 잉글랜드 호적청장은 정당하게 다음을 지적한다.

 

‘1801년 이래 차지 농업가와 농업 노동자 수의 증가는 농업 생산물의 증가와 전혀 비례하지 않는다.’

 

이러한 불비례는 최근 시기에 더욱 심화된다. 이는 경지 면적의 확대, 재배의 집약화, 토지에 투하되어 경작에 사용된 대규모 자본 축적, 영국 농업사에서 유례없는 토지 생산물의 증대, 지주들의 지대 수입 증대, 자본주의적 차지 농업가의 부 증대 따위가 농업 인구의 절대적 감소와 더불어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위 사실을, 판매 시장의 급속하고 중단 없는 확장(도시의 발달과 자유 무역의 지배)과 결부시켜볼 때, 농업 노동자들은 결국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속류 경제학의 교리 그대로 행복(실상은 불행)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태에 놓인다. 그러나 로저스 교수의 결론에 따르면, 오늘날 잉글랜드 농업 노동자의 형편은 14세기 후반 및 15세기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1770년에서 1780년 사이의 그것과 비교해도 현저히 악화되어, ‘소농들은 다시 농노로 되었으며,’ 심지어 식사와 의복에서 더욱 열악한 농노로 전락했다. 헌터는 농업 노동자들의 주택에 관한 획기적인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농업 노동자의 생활비는 그가 겨우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최저 수준에 고정된다. 그에 대한 임금과 주택 제공은 그로부터 나올 이윤으로부터 계산되지 않는다. 그는 차지 농업가의 계산에서 0이다. 그의 생존 수단은 언제나 고정된 양으로 취급된다. 그의 소득이 더욱 삭감된다 해도, 그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아무 걱정도 없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는 자기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므로, 미래에 대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차지 농업가의 계산에서 출발점인 0의 수준에 와 있다. 호황이든 불황이든, 무엇이 어떻게 되든, 그와는 상관이 없다.’

 

1863년에 귀양 및 징역 처분을 받은 죄수의 급식과 작업 조건에 관한 공적 조사가 진행되었으며, 그 결과가 두터운 청서에 기록되었다. 청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형무소에 수감된 죄수의 식사와 구빈원 극빈자, 그리고 자유로운 농업 노동자의 식사를 상세히 비교해 보면, 죄수나 극빈자가 농업 노동자보다 더 잘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징역을 받은 죄수에게 요구되는 노동량은 보통 농업 노동자가 수행하는 것의 절반 정도다.’

 

에든버러 형무소장 존 스미스의 증언 중 특징적인 부분을 인용한다.

 

5056: 영국 죄수의 식사는 보통 농업 노동자의 그것보다 훨씬 낫다.

 

5057: 스코틀랜드의 보통 농업 노동자가 고기를 먹는 일은 매우 드물다.

 

3047: 당신은 죄수에게 보통 농업 노동자들보다 훨씬 더 잘 먹일 필요가 있는 어떤 이유를 아는가. 물론 모른다.

 

3048: 당신은 공공사업에 동원되는 징역수의 식사를, 자유로운 농업 노동자의 식사와 비슷하게 만들기 위한 실험을 앞으로 더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농업 노동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나는 고되게 일하고도 충분히 먹지 못한다. 내가 형무소에 있었을 때는, 그렇게 고되게 일하지 않고도 배불리 먹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기에 있는 것보다 다시 형무소에 가 있는 편이 낫다.’

 

보고서 제1권 부록에 첨부된 표에서 다음과 같은 전체적인 대조표를 작성할 수 있다.

 

1주의 영양량 (단위: 온스)

 

포틀랜드의 죄수

 

· 질소 성분: 28.95, 비질소 성분: 150.06, 광물성 성분: 4.68, 총량: 183.69

 

해군 수병

 

· 질소 성분: 29.63, 비질소 성분: 152.91, 광물성 성분: 4.52, 총량: 187.06

 

병사

 

· 질소 성분: 25.55, 비질소 성분: 114.49, 광물성 성분: 3.94, 총량: 143.98

 

마차 제작 노동자

 

· 질소 성분: 24.53, 비질소 성분: 162.06, 광물성 성분: 4.23, 총량: 190.82

 

식자공

 

· 질소 성분: 21.24, 비질소 성분: 100.83, 광물성 성분: 3.12, 총량: 125.19

 

농업 노동자


· 질소 성분: 17.73, 비질소 성분: 118.06, 광물성 성분: 3.29, 총량: 139.08

 

독자들은 1863년 보건 위원회 조사의 일반적 결과, 곧 국민 중 영양이 가장 나쁜 층의 상태를 이미 알고 있다. 기억하다시피, 대부분 농업 노동자 가족의 식사는 굶주림 병을 방지하는 데필요한 최저 한도 이하이다. 특히 콘월, 데번, 서머싯, 윌트셔, 스태퍼드셔, 옥스퍼드셔, 버크셔, 허트퍼드셔 등 모든 순수 농업 지방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의사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농업 노동자가 섭취하는 영양은 평균량이 표시하는 것보다 많다. 노동자 자신이 노동 수행을 위해, 나머지 가족 구성원들보다 음식의 훨씬 많은 부분을 먹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 가난한 지방들에서는 고기나 베이컨은 거의 모두 노동자 자신이 독점한다. 많은 경우, 그리고 거의 모든 주에서, 아내와 한창 성장할 나이의 아동들이 섭취하는 영양은 부족하며, 특히 질소분이 부족하다.’

 

차지 농업가 자신의 집에 거주하는 남자 · 여자 일꾼들은 비교적 잘 먹는다. 이들의 수는 1851288,272명에서 1861204,962명으로 감소했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여성의 농업 노동은 아무리 해로운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현재 상황에서는 가족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 이는 그들에게 신발 · 의복을 얻게 하고, 집세를 지불할 수입을 보태 주며, 결과적으로, 좀 더 잘 먹을 수 있도록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 조사의 가장 주목할 만한 결과 중 하나는, 잉글랜드의 농업 노동자가 영국 기타 지역의 농업 노동자보다 훨씬 영양 상태가 열악하다는 사실이다. 이는 다음 표가 명확히 보여준다.

 

1주간 성인 농업 노동자 1명당 탄소 · 질소 성분의 평균 섭취량 (단위:그레인)

 

· 잉글랜드, 탄소: 40,673, 질소: 1,594

 

· 웨일즈, 탄소: 48,354, 질소: 2,031

 

· 스코틀랜드, 탄소: 48,980, 질소: 2,348

 

· 아일랜드, 탄소: 43,366, 질소: 2,434

 

사이먼은 자신의 공식 위생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헌터 보고의 거의 모든 쪽은 우리 농업 노동자들의 주택이 양적으로 부족하고, 질적으로 열악함을 입증한다. 그리고 주택 상태는 이미 다년간 이 점에서 끊임없이 악화되어 왔다. 농업 노동자가 거주할 방을 찾는 일은 아마도 과거 수세기 동안에 비해 지금이 훨씬 더 어렵고, 또 찾는다 해도, 그것은 그의 필요에 훨씬 덜 적합할 것이다. 이 곤란은 최근 20년 내지 30년 사이 급격히 악화되었으며, 농업 노동자의 주택 사정은 매우 처참하다. 이들의 노동으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이 일말의 동정적 아량조차 보이지 않는다면, 주택 문제에서 노동자들은 완전히 절망적인 상태에 놓인다. 노동자가 경작지 내에서 거처를 확보하는지, 그 주택이 인간의 거주지일지 돼지우리일지, 또는 빈곤을 경감시켜 줄 조그마한 채마밭이 딸려 있을지 여부는, 그가 아담한 집에 대해 적절한 집세를 지불할 의사나 능력이 있는지에 달린 문제가 아니다. 대신, 이는 전적으로 타인이 자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권리를 어떻게 행사하느냐에 달려 있다.

 

차지 농장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거기에 노동자를 위한 일정한 수의 주택(사람이 살 만한 주택은 고사하고)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 법률은 전무하다. 법률은 또한 노동자의 근면이 햇빛이나 비처럼 필수적인 토지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하나의 외부적인 사정이 그에게 크게 불리하게 작용한다. 이는 거주지와 구빈세 부과에 관한 구빈법의 규정 때문이다. 이 법에 따르면, 어느 교구에서나 그 안에 거주하는 농업 노동자의 수를 최소 한도로 제한하는 일이 금전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한다. 농업 노동이 노동자와 그의 가족에게 확고하고 항구적인 독립성을 보장하기는커녕, 대부분 그들을 조만간 구호 빈민의 상태로 빠뜨리는 우회로이기 때문이다(사실상 농업 노동자는 사소한 병이나 일시적 실업 시에도 곧 교구의 구호를 요청해야 할 정도로 늘 빈곤하다). 따라서 어떤 교구에서 농업 노동자들의 거주하는 일은 그 교구의 구빈세를 증가시킬 것이 명백하다. 대토지 소유자들은 자기 소유지에 어떤 노동자 주택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심하기만 하면, 당장에 구호 빈민에 대한 책임의 절반을 면제받게 된다.

 

자기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지주로 하여금, 토지 경작자들을 외부인으로 취급하여 자신의 영지에서 추방할 수 있게 하는 무조건적 토지 소유권의 제정을 영국 헌법과 법률이 얼마나 의도했는지에 대해서는 여기서 논하지 않는다. 이 추방권은 단지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제로 아주 대규모로 행사된다. 이것이 농업 노동자의 주택 상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정 중 하나다. 이 폐해의 규모는 최근 인구 조사에서 수집한 헌터의 증거를 참조하면 충분할 것이다. 최근 10년간 가옥에 대한 지방 수요 증대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821개 교구나 도시에서 가옥 파괴가 진행된다. 부득이하게, 비거주자가 된 사람들(자기가 일하는 교구 외 거주자)을 제외하더라도, 이 교구와 도시들은 1861년에 1851년 대비 5.33% 더 많은 인구를 4.5% 감소된 주택에 수용하게 된다. 인구 감소 과정이 완료될 때, 헌터의 언급대로, 그 결과는 오두막집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전시 촌락(show-village)으로 나타난다. 여기에 거주가 허가된 이들은 양치기, 정원사, 사냥터 지기 등, 보통 주인들에게 좋은 대접을 받는 정규 하인들뿐이다. 그러나 토지는 경작되어야 하기에, 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더 이상 토지 소유자의 주택을 빌리지 못하고, 아마도 3마일이나 떨어진 개방촌(폐쇄촌에서 오두막집이 파괴된 후, 다수의 소가옥 소유자가 노동자를 수용한 촌락)에서 왕래하게 된다


폐쇄촌에서는 상황이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추세에 따라, 수리도 하지 않은 채 초라하게 남아 있는 오두막집은 곧 소멸될 운명에 처한다. 이 오두막집들은 상이한 자연적 마모 단계에 있다. 지붕이 붙어 있는 동안에는 노동자에게 임차가 허용되는데, 그는 그것을 허용받기만 해도 대단히 기뻐하며, 심지어 좋은 주택을 임차할 때와 같은 가격을 지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경우에도, 한 푼 없는 세입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수리 외에는 집주인이 어떤 수리나 수선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집이 전혀 거주할 수 없게 될 때는, 이는 오두막집이 한 채 더 파괴된 것일 뿐이며, 그만큼 앞으로 구빈세가 적어질 것을 의미할 뿐이다. 이와 같이, 대토지 소유자들이 자기들의 통제 아래 있는 토지에서 주민들을 축출하면서 구빈세를 면할 때, 다른 한편으로는, 인접한 소도시들이나 개방촌들이 추방된 노동자들을 수용한다. 내가 인접이라고 말하지만, 이 인접이란 노동자가 매일 일해야 하는 농장에서 3-4마일이나 떨어진 곳이다. 이처럼, 그의 하루 노동에는 (그날의 빵을 벌기 위해) 매일 6-8마일을 걷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첨가된다. 그의 처자들이 하는 모든 농업 노동도 이제는 이와 동일한 곤란한 조건에서 수행된다. 그러나 이것은 (작업장이 멀어진 데서 오는) 곤란의 전부가 아니다.

 

개방촌에서는 건축 투기업자들이 땅 조각을 매입하여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을 정도의 가장 싸구려 오두막집을 최대한 빈틈없이 세운다. 이처럼 처참한 주택들(비록 농촌의 광할한 들판 옆에 세워져 있지만, 가장 나쁜 도시 주택이 가진 가장 나쁜 특징들을 모두 지닌다)에 잉글랜드의 농업 노동자들이 떼를 지어 거주한다. 다른 한편으로, 자기가 경작하는 토지에 살고 있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생산적 노동에 합당한 주택을 그곳에서 얻고 있다고 결코 생각해서는 안 된다. 웅장한 농장에서조차 노동자들의 오두막집은 매우 처참하다. 자기들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외양간도 과분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집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집세를 뽑아내는 일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 지주들이 존재한다. 주택이 침대 하나, 아궁이, 변소, 여는 창문도 없고, 웅덩이 외에는 물도 없으며, 마당도 없는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집일지라도, 노동자는 이런 불의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니 우리의 위생법은 죽은 문서에 불과하다. 그 시행이 바로 이런 움집들을 세놓고 있는 오두막집 소유자 자신들에게 위임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관심을 (더 밝지만 예외적인 광경으로부터) 다시 영국 문명의 치욕이 된 압도적으로 많은 사실들로 돌려야 공정을 기할 수 있다. 현재 주택들의 질적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권위 있는 관찰자들은 주택의 일반적인 질적 불량은 그 수적 부족에 비하면 훨씬 덜 긴급한 폐해라고 공통적으로 결론 내리는데, 이는 참으로 한탄스러운 일이다. 이미 수년 동안 농촌 노동자 주택의 지나친 비좁음은 (보건을 염려하는 사람뿐 아니라 예의와 도덕적 생활을 존중하는 사람들에게) 심각한 우려의 대상이 되어 왔다. 농촌 지방에서 전염병 확산에 관한 조사자들은 판에 박은 듯한 한결같은 표현으로, 주택의 초만원 상태가 (일단 발생한 전염병의 만연을 방지하려는) 모든 시도를 완전히 실패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여러 차례 지적하기 때문이다. 농촌 생활이 여러 면에서 건강에 유익한데도, 전염병 확산을 촉진하는 인구의 밀집 상태는 비전염성 질병의 발생까지도 부추긴다는 사실이 여러 차례 지적되었다. 또한, 이러한 상태를 비난한 사람들은 기타 폐해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보건 문제만을 다루는 경우에도, 그들은 흔히 보건과 관련된 다른 문제들, 곧 기혼이거나 미혼인 성인 남녀들이 비좁은 침실에서 뒤섞여 자는 일이 얼마나 빈번한가를 지적하며, 이로 인해, 예절은 짓밟히고, 도덕은 불가피하게 파괴된다는 것을 확인시켰다. 예를 들어, 지난 보고서 부록에 있는 버킹엄셔 윙의 열병 발생에 관한 보고서에서 오드는 한 청년이 윙그레이브에서 열병을 가지고 윙으로 왔는지에 대해 말한다. “발병 첫 며칠간 그는 9명의 다른 사람들과 한 방에서 잤다. 두 주일이 지나는 동안, 그들 중 몇 사람이 병에 걸렸으며, 수 주일 안에 9명 중 5명이 열병을 앓고, 한 명은 사망했다!” 전염병이 돌고 있을 때, 왕진을 위해 윙을 방문했던 세인트 조지 병원의 의사 하비로부터도 앞선 보고와 동일한 내용의 보고를 받았다. “열병에 걸린 한 젊은 부인은 밤에 같은 방에서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 자기의 사생아, 자신의 형제들인 두 청년, 사생아를 하나씩 가진 자신의 두 자매, 이렇게 해서 모두 10명이 함께 잤다. 몇 주일 전에는 같은 방에서 13명의 사람들이 잤다.”’

 

헌터는 순수 농업 지방을 포함한 잉글랜드 전역에서 농업 노동자 오두막 5,375채를 조사했다. 이 중 2,195채는 침실이 하나로, 이는 식사 공간을 겸하는 구조이다. 침실이 두 개인 가구는 2,930채를 차지했으며, 250채만이 침실 두 개를 초과했다. 이에 따라, 12개 주로부터 발췌한 몇 가지 견본을 제시한다.

 

베드퍼드셔

 

레슬링워스: 이 지역에서는 길이 약 12피트, 10피트 규모의 침실(대부분 이보다 작음)이 발견된다. 흔히 단층 오두막집은 판자로 둘로 나뉘며, 한쪽 침대는 높이 5피트 6인치의 부엌에 놓여 있다. 연간 임대료는 3파운드이다. 변소는 세입자가 직접 지어야 하며, 집주인은 웅덩이만 제공한다. 가끔 한 사람이 지은 변소를 이웃 전체가 공동으로 사용하는 실정이다. 리처드슨 가족 거주지는 접근조차 어려울 정도로 열악한 상태를 보였다. ‘석회벽은 심하게 부풀어 올랐고, 지붕은 한쪽이 불룩 튀어나오고, 다른 쪽은 움푹 꺼진 형태였다. 특히 진흙과 나무로 만든 굴뚝은 구부러진 모습으로 위태롭게 서 있었으며, 쓰러짐을 방지하고자 긴 막대기로 지탱되고 있었다. 문과 창은 찌그러져 있었다.’ 조사된 17채의 가옥 중 침실이 하나 이상인 집은 4채에 불과했으며, 이들 모두 극심한 초만원 상태였다. 침실 하나짜리 집의 경우, 어른 3명과 아이가 3명이 거주하거나, 또는 부부와 아이 6명이 함께 사는 등의 사례가 다수 확인되었다.

 

던턴: 4파운드 내지 5파운드의 높은 집세가 형성되어 있다. 반면, 성인 남자의 주급은 10실링에 불과하다. 주민들은 가족들이 종사하는 밀짚 세공업 수입으로 이 집세를 감당하려 한다. 집세가 높을수록, 하나의 주택에서 함께 일해야 하는 인원이 증가한다. 실제로 어른 6명과 아이 4명이 하나의 침실에서 생활하며, 3파운드 10실링의 방세를 지불하는 사례가 있었다. 던턴에서 가장 저렴한 집은 외벽 길이 15피트, 10피트 규모이며, 집세는 3파운드이다. 조사된 14채의 가옥 중 침실이 두 개인 집은 단 한 채에 불과했다. 마을 외곽의 한 주택은 담벼락에 대소변 흔적이 있었고’, 문짝 아래 9인치가 완전히 부식되었다. 유일한 출입구는 밤에 벽돌을 쌓고 거적을 쳐서 막았다. 창문 절반은 유리나 창틀이 없는 상태였다. 이 집에는 3명의 어른과 5명의 아이가 가구도 없이 비좁게 살고 있었다. 던턴의 주거 환경은 비글즈웨이드 연합 교구의 다른 구역보다 결코 낫지 않다.

 

2. 버크셔

 

비넘: 18646, 단층 오두막집에 부부와 네 명의 아이가 살고 있었다. 딸이 성홍열에 걸려 일자리에서 돌아온 후 사망했으며, 다른 아이 하나도 앓다가 죽었다. 헌터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어머니와 또 다른 아이가 티푸스를 앓고 있었다. 아버지와 한 아이는 집 밖에서 취침했으나, 격리의 어려움은 곧 드러났다. 환자 집의 빨래가 세탁을 위해 비참한 마을의 시장 바닥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H의 집은 주당 1실링의 임대료를 요구했는데, 부부와 여섯 명의 아이가 사용할 수 있는 침실은 하나뿐이었다. 또 다른 집은 길이 14피트 6인치, 7피트 규모로, 주당 8펜스였다. 이 집은 부엌 높이가 6피트에 불과하며, 침실에는 창문이나 화로가 없었고, 복도로 터진 곳 외에는 문이나 출구도 없으며 마당도 부재했다. 얼마 전 이곳에는, 한 사람이 두 명의 성인 딸과 한 명의 성인 아들을 데리고 살았다. 아버지와 아들은 침대에서 잤고, 딸들은 복도에서 잤다. 가족이 거주하는 동안, 각 딸이 아이를 낳았다. 그중 한 딸은 구빈원으로 가서 해산하고 돌아왔다.

 

3. 버킹엄셔

 

1,000에이커 규모의 토지에 위치한 30채의 오두막집에 약 130-140명이 살고 있다. 브래드남 교구는 1,000에이커 면적이며, 1851년에는 가옥 36, 남성 84, 여성 54명이 살았다. 1861년에는 이러한 성비 불균형이 부분적으로 완화되어, 남자 98, 여자 87명으로 기록되었다. 이는 10년 동안, 남성 14, 여성 33명이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가옥 수는 한 채 줄었다.

 

윈슬로: 해당 지역은 대부분 훌륭한 모습으로 신축되었다. 그러나 주택 수요가 높은 것으로 파악되는데, 이는 가장 빈약한 단층 오두막집의 집세가 주당 1실링 내지 1실링 3펜스에 달하기 때문이다.

 

워터 이튼: 지주들이 인구 증가를 목격하고, 기존 가옥의 약 20%를 파괴했다. 한 가난한 노동자는 약 4마일 떨어진 작업장까지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근처에 오두막집을 구할 수 없었는지 묻자, 그는 나처럼 가족 수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집을 세놓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팅커스 엔드: 윈슬로 부근의 팅커스 엔드에서는 길이 11피트, 9피트, 최고 높이 6피트 5인치인 하나의 침실에 어른 4명과 아이 4명이 거주했다. 또 다른 침실은 길이 11피트 7인치, 9피트, 높이 5피트 10인치였으며 6명이 거주했다. 이들 가족의 1인당 공간은 죄수 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공간보다 작다.

 

침실이 두 개 이상인 집은 전무하며, 뒷문이 있는 집 또한 하나도 없다. 물 공급은 극도로 귀한 상태이다. 집세는 주당 1실링 4펜스 내지 2실링으로 책정되었다. 조사된 16가구 중 주당 10실링의 수입이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1인당 공기량은 가로, 세로, 높이가 각각 4피트인 상자 속에 밤새 갇혀 있을 때, 제공되는 양과 동일하다. 다만, 이러한 고대의 소굴과 같은 오두막집은 어느 정도 자연적인 환기가 이루어지는 특징이 있다.

 

4. 케임브리지셔

 

갬블링게이는 몇몇 지주들의 소유지이며, 이곳에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가장 처참한 단층 오두막집들이 있다. 많은 주민들이 밀짚 세공업에 종사한다. ‘죽은 듯한 피로 상태, 불결로 변해버린 절망이 갬블링게이를 지배한다. 중심부에서 나타나는 가옥 관리 태만은 가옥들이 썩어 무너지는 남부와 북부로 갈수록, 극도의 모욕적인 수준으로 변한다. 부재지주들은 이 빈민굴로부터 마음껏 이익을 착취한다. 집세 또한 대단히 비싸다. 침실 하나에 8에서 9명을 밀어 넣는 실정이다. 작은 하나의 침실에 아이 1-2명을 데리고 있는 성인 6명이 살고 있는 경우가 두 건이나 확인되었다.

 

5. 에식스

 

이 주의 많은 교구들에서 오두막집 감소는 주민 수 감소와 병행하고 있다. 그러나 22개 이상의 교구에서는 가옥 파괴가 주민 수 증가를 억제하지 못했으며, ‘도시 이주라는 이름 아래 진행 중인 주민 추방을 달성하지도 못했다. 3,443에이커 규모의 핑그링호 교구는, 1851년 가옥 145채에서 1861110채로 감소했음에도, 주민 수는 떠나가지 않고, 이 상황에서도 계속 증가했다. 램즈던 크래그즈는 1851년 가옥 61채에 252명이 살았으나, 1861년에는 49채의 가옥에 262명이 밀집해 있었다. 배질던에서는 18511,827에이커의 토지에 35채의 집에서 157명이 거주했지만, 10년 뒤에는 27채의 집에서 180명이 생활했다. 핑그링호, 사우스팬브리지, 윗포드, 배질던, 램즈던, 크래그즈 교구들을 합산하면, 1851년에는 8,449에이커에 있는 316채의 집에서 1,392명이 살았으나, 1861년에는 동일 면적 위의 249채 집에서 1,473명이 살고 있었다.

 

6. 헤리퍼드셔

 

이 작은 주는 잉글랜드의 다른 주보다 추방 정신으로 인해 더 큰 고통을 겪었다. 매들리 지역의 침실 두 개뿐인 초만원 오두막 집들은 대부분 차지 농업가들의 소유이다. 이들은 으레 연 3파운드 내지 4파운드의 집세를 받으면서도, 주급으로는 9실링밖에 지불하지 않는다.

 

7. 헌팅턴셔

 

하트퍼드에는 1851년 가옥 87채가 있었으나, 그 뒤 1,720에이커의 이 좁은 교구에서 19채의 오두막집이 파괴되었다. 주민 수는 1831452, 1851382, 1861341명으로 지속적인 감소를 보였다. 침실 하나뿐인 단층 오두막집 14채를 조사한 결과, 한 집에는 부부와 성인 아들 3, 성인 딸 1, 아이 4, 10명이 살고 있었고, 다른 집에는 어른 3명과 아이 6명이 살고 있었다. 이 방들 중 하나는 길이 12피트 10인치, 12피트 2인치, 높이 6피트 9인치 규모였으며, 8명이 취침하는 공간이었다. 실내 돌출부를 제외하지 않아도, 1인당 평균 공간은 약 130입방피트 수준이다. 14개의 침실에 성인 34명과 아이 33명이 살고 있었다. 오두막집에 채마밭이 부속된 경우는 드물다. 대다수 거주자는 루드(1/4에이커)10-12실링으로 작은 토지를 경작할 수 있었다. 이 경작지는 주택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며, 주택에는 변소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 거주자들은 용변을 보러 자신의 경작지까지 이동하거나’, 흔히 볼 수 있듯이, 장롱 서랍 같은 용기를 임시 변소로 사용한다. 용기가 가득 차면 비료로 사용하기 위해 경작지로 운반하여 배출한다. 일본의 배설물 처리 방식이 이보다는 더 청결하다.

 

8. 링컨셔

 

랭토프트: 한 남성이 라이트의 집에서 아내, 장모, 아이 5명과 함께 거주한다. 주택은 앞쪽에 부엌과 설거지 공간이 있고, 그 위에 침실이 배치된 형태다. 부엌과 침실은 길이 12피트 2인치, 9피트 5인치이며, 아래층 면적은 길이 21피트 3인치, 9피트 5인치이다. 침실은 다락방으로, 벽은 볏짚가리 모양의 원뿔꼴로 좁아져 천장에 맞닿으며, 들창 하나만 전면에 나 있다. 그의 거주 이유는 협소한 채마밭 때문이 아니며, 주당 1실링 3펜스에 달하는 높은 집세 때문도 아니다. 일터가 6마일 떨어져 매일 왕복 12마일을 감수해야 함에도, 그는 이 단층 오두막집이 셋집이었기에, (위치, 임대료, 상태를 불문하고) 자기 혼자 쓸 수 있는 집을 구하고자 이곳에 살고 있다. 다음은 랭토프트 12채 가옥에 대한 통계 자료로, 침실 12, 성인 38, 아이 36명을 수용하는 실태를 보여준다.

 

랭토프트의 12채 가옥 통계

 

· 가옥번호: 1, 침실 수: 1, 어른 수: 3, 아이 수: 5, 총인원 수: 8

· 가옥번호: 2, 침실 수: 1, 어른 수: 4, 아이 수: 3, 총인원 수: 7

· 가옥번호: 3, 침실 수: 1, 어른 수: 4, 아이 수: 4, 총인원 수: 8

· 가옥번호: 4, 침실 수: 1, 어른 수: 5, 아이 수: 4, 총인원 수: 9

· 가옥번호: 5, 침실 수: 1, 어른 수: 2, 아이 수: 2, 총인원 수: 4

· 가옥번호: 6, 침실 수: 1, 어른 수: 5, 아이 수: 3, 총인원 수: 8

· 가옥번호: 7, 침실 수: 1, 어른 수: 3, 아이 수: 3, 총인원 수: 6

· 가옥번호: 8, 침실 수: 1, 어른 수: 3, 아이 수: 2, 총인원 수: 5

· 가옥번호: 9, 침실 수: 1, 어른 수: 2, 아이 수: 0, 총인원 수: 2

· 가옥번호: 10, 침실 수: 1, 어른 수: 2, 아이 수: 3, 총인원 수: 5

· 가옥번호: 11, 침실 수: 1, 어른 수: 3, 아이 수: 3, 총인원 수: 6

· 가옥번호: 12, 침실 수: 1, 어른 수: 2, 아이 수: 4, 총인원 수: 6

 

9. 켄트

 

케닝턴의 인구는 1859(디프테리아 발생 및 교구 의사의 빈민 계급 의료 조사 실시 연도)에 매우 심각할 정도로 과밀했다. 교구 의사는 노동이 대량으로 고용되는 이 지방에서 여러 채의 단층 오두막집이 파괴되었으나, 새 집은 단 한 채도 세워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 구역에는 닭장이라 불리는 4채의 집이 있었으며, 각각 4개의 방이 다음과 같은 길이, , 높이를 가졌다.

 

· 부엌: 9피트 5인치(길이) × 8피트 1인치() × 6피트 6인치(높이)

· 설거지 하는 곳: 8피트 6인치 × 4피트 6인치 × 6피트 6인치

· 침실: 8피트 5인치 × 5피트 10인치 × 6피트 3인치

· 침실: 8피트 3인치 × 8피트 4인치 × 6피트 3인치

 

 

10. 노샘프턴셔

 

브린워스, 픽포드, 플로어: 이 마을들에서는 겨울에 일자리가 없는 20-30명의 노동자가 거리를 배회한다. 차지 농업가들은 곡물 및 뿌리채소류 경지를 항상 충분히 경작하지 않는 실정이며, 지주는 임대 토지를 두세 개로 통합하는 일이 유리함을 알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일자리 부족이 발생했다. 울타리 너머에는 일꾼을 부르는 토지가 있지만, 이편에서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그곳에 갈망의 눈초리를 던지고 있다. 여름에는 미칠 듯이 과도한 노동을 시달리고, 겨울에는 반() 굶주림 상태에 놓인다. 따라서 그들 특유의 사투리로 목사놈들과 귀족놈들이 짜고 우리를 죽도록 고생시킨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플로어에서는, 아주 작은 침실 한 방에 부부 한 쌍이 아이 4, 5, 6명을 데리고 살거나, 성인 3명이 아이 5명을 데리고 살거나, 또는 부부 한 쌍이 조부와 성홍열에 걸린 아이 6명과 함께 사는 등의 사례가 확인된다. 침실 2개가 있는 2채의 가옥에는 각각 성인 8명과 9명이 살고 있다.

 

11. 윌트셔

 

스트래턴: 조사된 31채 가옥 중 8채는 침실이 하나뿐이다. 같은 교구의 펜힐에서는 단층 오두막집 한 채의 집세가 주당 1실링 3펜스이며, 그곳에 성인 4명과 아이 4명이 살고 있다. 이 집은 벽만 상태가 괜찮을 뿐, 거칠게 다듬은 돌 바닥부터 썩은 밀짚 지붕에 이르기까지 양호한 부분이 없다.

 

12. 우스터셔

 

이곳에서는 가옥 파괴가 그다지 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1851년부터 1861년까지 가옥 1채당 인원수는 4.2명에서 4.6명으로 증가했다.

 

뱃시: 이 지역에는 단층 오두막집과 채마밭이 많다. 일부 차지 농업가들은, “단층 오두막집들은 큰 말썽거리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빈민들을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한 부농은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혔다.

 

빈민들은 이 때문에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500채의 오두막집을 지어도 금방 세가 다 나간다. 사실 더 많이 지을수록 더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그의 의견은 집이 거주자들을 낳고, 그들이 다시 자연 법칙으로부터 거주 수단을 압박한다는 논리다. 이에 대해 헌터는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이 빈민들은 어딘가로부터 온 것이 분명하며, 뱃시에 구호금과 같은 특별한 매력이 없는 한, 그들을 이곳으로 보내는 일은 더 불편한 곳으로부터 도피한 결과임에 틀림없다. 각자가 일자리에 가까운 곳에 단층 오두막집과 채마밭을 발견할 수 있다면, 그는 (손바닥만한 땅 조각에 대해 차지 농업가가 지불하는 것의 2배를 지불해야 되는) 뱃시로 기꺼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차지 농장의 집중, 농경지의 목장 전환, 기계 사용 등은 농촌에서 과잉 인구를 지속적으로 형성한다. 이와 더불어, 오두막집의 파괴는 농촌 주민을 끊임없이 추방하며, 도시로의 이주가 나란히 진행된다. 어떤 지역이 텅 비게 될수록, 그곳의 상대적 과잉 인구는 더욱 증가한다. 이는 취업 수단에 대한 과잉 인구의 압박을 심화시킨다. 결과적으로, 거주 수단을 초과하는 농촌 인구의 절대적 과잉이 확대되고, 개방촌의 국지적 과잉 인구와 (전염병의 온상인) 인간 밀집 또한 그만큼 극심해진다.

 

흩어져 있는 작은 마을과 지방 소도시의 인구 조밀화는 농토에서 인간을 폭력적으로 내쫓은 결과이다. 농업 노동자의 수는 감소하고, 생산물 양은 증가함에도, 그들이 끊임없이 과잉 인구로 전환되는 일이 구호 빈민 발생의 근본 원인이다. 그들의 극빈 상태는 그들을 추방하는 동기(구빈세 회피를 원하는 유산자들의 동기)로 작용하며, 주택난의 주된 원인이 된다. 이 주택난은 그들의 마지막 저항력까지 분쇄하여, 그들을 토지 소유자와 차지 농업가의 단순한 노예로 전락시키고, 결국, 최저 한도의 임금이 그들에게 자연 법칙으로 굳어진다.

 

다른 한편, 농촌은 항상 상대적 과잉 인구가 존재함에도, 동시에 인구 부족 현상을 겪는다. 이는 인구가 도시, 광산, 철도 부설 등으로 급속히 유출되는 지역뿐만 아니라, 봄철, 여름철, 수확철 등 집약적인 잉글랜드 농업이 추가 노동력을 요구하는 순간에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반적인 경작에 필요한 일손은 항상 과도하지만, 예외적이거나 임시적인 수요에 대해서는 언제나 부족하다. 따라서 공식 문서에는 동일 지방에서 노동 부족과 노동 과잉에 대한 모순된 하소연이 동시에 기록된다. 이러한 임시적 또는 국지적 노동 부족은 임금 인상을 가져오지 않는다. 대신, 여성과 소년들을 농업 노동자로 유입시키며, 노동자들의 연령을 지속적으로 저하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여성과 소년의 대규모 착취는 결국, 성인 남성 농업 노동자를 과잉 상태로 만들고, 이는 그들의 임금을 저하시키는 새로운 수단이 된다. 잉글랜드 동부에서는 이러한 악순환의 대표적 결과인 이른바 노동 부대 제도가 성행하는데, 이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

 

노동 부대 제도는 링컨셔, 헌팅던셔, 케임브리지셔, 노포크, 서포크, 노팅엄셔에서 거의 전적으로 실시되며, 노샘프턴셔, 베드퍼드셔, 러틀란드의 인접 주들에서는 산발적으로 실시된다. 링컨셔를 예로 들면, 이 주의 대부분은 과거 늪지였거나, 동부의 다른 주들과 마찬가지로, 바다를 막아 만든 간척지이다. 증기 기관은 배수 작업에서 획기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과거 늪지나 모래땅이던 곳이 지금은 풍부한 곡물을 생산하며 매우 높은 지대를 형성한다. 액스홈 섬과 트렌트 강변의 충적층 토지도 인력 개척으로부터 비슷한 상황을 보인다.

 

새로운 차지 농장들이 생겨남에도, 새 오두막집은 지어지지 않고, 낡은 것들이 철거되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수마일 떨어진 개방촌으로부터 언덕 허리를 따라 구불구불 뻗은 먼 길로부터 일터로 오게 된다. 주민들은 겨울철 끊임없는 홍수를 오직 이 개방촌에서만 피할 수 있었다. 400 내지 1,000에이커 규모의 차지 농장에 거주하는 노동자들(‘감금된 노동자’)은 오로지 쉴 새 없이 고된, 말의 도움을 받는 농업 노동에만 종사한다. 100에이커당 평균 한 채의 오두막집이 있을까 말까 한 실정이다. 일례로, 어떤 늪지대의 차지 농업가는 조사 위원회 앞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내 농장은 320에이커 전부 경작지다. 내 차지 농장에는 오두막집이 한 채도 없다. 현재 내 차지 농장에 거주하는 노동자는 단 한 명뿐이다. 말을 부리는 노동자 4명은 근방에 살고 있다. 일손이 많이 드는 쉬운 일은 노동 부대에 맡기고 있다.’

 

토지는 예를 들어, 제초 작업, 괭이질, 거름 작업, 돌 치우기 작업 등 비교적 쉬운 들일을 많이 요구한다. 이러한 일들은 개방촌에 거주하는 노동 부대(조직된 집단)로부터 수행된다.

 

노동 부대는 10명 내지 40명 또는 50명의 부인들과 남녀 미성년자(13-18), 그리고 남녀 아동(6-13)으로 구성된다. 소년들은 대개 13세에 달하면, 부대에서 제외된다. 최상위에는 노동 부대 대장이 있으며, 그는 보통 일종의 기업심과 수완을 가진 일반 농업 노동자로, 대개 방탕하고 난폭한 술주정뱅이인 불량배로 불린다. 그가 노동 부대를 모집하며, 이 부대는 차지 농업가의 지휘가 아닌 대장의 지휘를 받는다. 대장은 차지 농업가와 주로 도급제로 계약하며, 그의 수입은 평균적으로, 일반 농업 노동자의 수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수입은 자기 부대로부터 최단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노동을 짜내는 수완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차지 농업가들은 여성이 남성의 지휘 밑에서만 일을 잘하고, 여성과 아동은 일단 시작하면, 맹렬하게 생명력을 지출(푸리에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하는 반면, 성인 남성 노동자는 교활하여 최대한 힘을 아끼려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동 부대 대장은 자기 부대를 한 농장에서 다른 농장으로 이끌고 다니며, 1년에 6-8개월간 일을 시킨다. 따라서 노동자 가족 입장에서는, 아동들에게 드문드문 일감을 주는 개별 차지 농업가보다는 노동 부대 대장에게 붙어 일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고 확실하다.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개방촌에서 노동 부대 대장의 영향력은 확고하며,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대체로 아동들을 고용할 수 없을 정도이다. 아동들을 노동 부대에서 분리하여 개별적으로 빌려주는 일은 대장의 부업이 되고 있다. 이 제도의 주요 결함은 아동과 미성년자들의 과도한 노동, 매일 5-7마일 떨어진 농장으로 왕래하는 엄청난 보행 거리, 그리고 노동 부대 내의 풍기 문란이다.

 

노동 부대 대장(일부 지방에서는 몰이꾼이라고 불림)은 긴 막대기를 소지하지만, 실제 사용하는 일은 매우 드물며, 가혹한 취급에 대한 불만도 거의 보고되지 않는다. 그는 민주적인 황제이거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마을 아이들을 피리로 꾀어낸 독일 전설 속 인물)와 비슷한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통솔한다. 대장은 부하들 사이에서 인기를 유지해야 하며, 이는 자신의 보호 아래 집시 생활의 매력으로 노동자들을 결속시키는 방편이 된다. 난폭한 방종, 떠들썩한 장난, 음담패설 등이 바로 노동 부대의 매력 요소이다. 대장은 보통 선술집에서 술값을 치르며, 두 여성의 부축을 받아 비틀거리면서 대원들의 앞장을 선 채 귀가한다. 아동들과 미성년자들은 뒤따르며 시끄럽게 야유와 음탕한 노래를 불러댄다. 돌아오는 도중에는, 푸리에가 자유로운 성생활’(혼음)이라고 말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13-14세의 소녀들이 같은 나이 또래의 사내 아이들로부터 임신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노동 부대의 보충지인 개방촌은 소돔과 고모라가 되며, 영국의 나머지 지방에서 2배나 되는 사생아를 낳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교육을 받은 소녀들이 부인으로 되었을 때, 도덕적으로 될지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들의 아이는 아편으로 말미암아 죽지 않는 한, 노동 부대의 후보로 될 뿐이다.

 

방금 언급한 고전적 형태의 노동 부대는 공공적·공동적 또는 방랑하는 노동 부대로 칭한다. 이와 달리, 사적 노동 부대 또한 존재한다. 그 구성은 공동적 부대와 동일하나, 인원 수가 더 적다. 또한 노동 부대 대장의 지휘가 아닌, 차지 농업가의 늙은 머슴(차지 농업가 입장에서는 다른 할 일이 없는 인력) 밑에서 일한다. 이 사적 부대에서는 집시 생활의 기풍은 부재하지만, 모든 증언에 따르면, 아동들의 보수와 취급은 더욱 열악한 실정이다.

 

노동 부대 제도는 최근 수년간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으며, 이는 노동 부대 대장의 이익이 아닌, 대차지 농업가들과 간접적으로 지주들의 치부를 위해 존재한다. 차지 농업가 입장에서는 자신의 노동자 수를 평균 수준보다 훨씬 적게 유지하면서도, 모든 추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추가 일손을 확보하고, 최대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노동을 짜내며, 이로부터, 성인 남자 노동자들을 과잉상태로 만드는 방법보다 더 나은 일은 없다.

 

위 설명으로부터, 한편으로는 농업 노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어졌다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인 남성 노동의 부족과 그들의 도시 이주 때문에 노동 부대 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모순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링컨셔의 잡초 없는 청결한 논밭과, 불결한 인간 잡초(타락한 노동 부대)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대조적인 두 측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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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랑민

 

농촌 출신이되, 직업은 주로 공업에 종사하는 한 계급을 논한다. 이들은 자본의 경보병이며, 자본의 필요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내던져진다. 행군이 없을 때, 이들은 진지를 구축한다. 유랑 노동자는 각종 건설, 배수 공사, 벽돌 생산, 석회 굽기, 철도 공사 등에 고용된다. 이들은 전염병의 유격대와 같이 진을 친 부근 일대에 천연두, 티푸스, 콜레라, 성홍열 등을 확산시킨다. 철도 부설처럼 대규모 자본을 투하하는 사업에서 청부업자는 대개 노동자들에게 목조 숙소 등을 제공한다.

 

갑자기 세워진 이 부락들은 위생 시설이 전무하고, 지방 당국의 통제도 받지 않아 청부업자에게 매우 유리하다. 이는 노동자들을 산업의 병사이자 세입자로 이중 착취하기 위함이다. 목조 임시 숙소의 굴 같은 방이 하나, , 또는 셋인지에 따라 거주하는 인부 등은 방세로 주당 2, 3, 또는 4실링을 지불해야 한다. 일례로, 사이먼의 보고서에 따르면, 18649월 내무 장관 조지 그레이는 세븐옥스 교구 공중 위생 위원회 위원장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고발을 접수한다.

 

‘12개월 전까지 이 교구는 천연두를 알지 못했다. 그 직전, 루이샴에서 톤브리지에 이르는 철도 공사가 시작되었는데, 주요 작업이 도시 바로 인근에서 진행되었고, 전체 공사의 본부가 이 도시에 설치되어 수많은 노동자가 유입되었다. 이들 전체를 수용할 오두막이 부족하자, 청부업자 제이는 공사장 곳곳에 임시 숙소를 세워 노동자들을 거주하게 했다. 이 임시 숙소들은 환기나 하수 시설이 전무했으며, 게다가 초만원일 수밖에 없었다. 세입자는 가족 수에 관계없이, 심지어 방이 두 개뿐인 집에서도 하숙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접수된 의사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 불행한 사람들은 밤마다 더러운 물구덩이와 창문 바로 아래 있는 변소에서 풍기는 유독한 악취를 피하기 위해 질식의 고통을 감수해야 했다. 본 위원회는 이 임시 숙소를 방문한 한 의사로부터 고발을 접수한다. 그는 주거 상태를 비통한 언어로 표현하며, 적절한 위생 대책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매우 무서운 결과가 초래될 것을 우려했다. 청부업자 제이는 약 1년 전, 임금 노동자들이 전염병에 걸렸을 때, 즉시 격리할 수 있는 가옥 한 채를 지을 것을 약속했고, 이 약속을 지난 723일에 다시 확인했다. 그러나 지난 약속 이후 천연두가 여러 건 발생하여 두 건의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그는 약속 이행을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99, 의사 켈슨은 동일한 임시 숙소들에서 천연두가 또 발생했음을 보고하며, 그곳의 상황이 처참하다고 서신을 보냈다. 내무 장관 각하께 추가로 알리는 바는 다음과 같다: 우리 교구민들이 치료받는 이 격리소는 수개월째 환자로 계속 만원이라는 점, 금년 41일부터 91일까지 천연두로 인한 사망이 10건 이상이며, 그중 4건이 전염병의 근원지인 위 임시 숙소에서 발생했다는 점, 그리고 병이 발생한 가족들이 이를 비밀에 부치려 하므로, 실제 병에 걸린 사람의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탄광 및 기타 광산 노동자들은 영국 프롤레타리아트 중 가장 높은 보수를 받는 층에 속한다. 그들이 이러한 임금을 얻기 위해 치르는 대가는 이미 언급한 바 있다. 여기에서는 그들의 주거 실태를 간략히 살펴본다. 일반적으로, 채광업자(광산 소유자 또는 임차인)는 노동자들에게 제공할 일정 수의 오두막집을 건설한다. 노동자들은 이 오두막집과 난방용 석탄을 무료로 받는데, 이는 현물로 지급되는 임금의 일부이다. 숙소를 제공받지 못하는 노동자에게는 그 대신, 연간 4파운드가 지급된다.

 

광산 지역은 광산 노동자뿐 아니라 그 주변으로 모여드는 수공업자, 소매상 등 많은 인구를 빠르게 유인한다. 인구 밀도가 높은 곳의 일반적인 현상처럼, 이곳 역시 지대가 높다. 따라서 광산 고용주는 최대한 갱구 부근의 좁은 공간에 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밀어 넣기 위해 최소한의 오두막집만을 세우려 한다. 새로운 갱이 개발되거나, 낡은 갱이 다시 채굴되기 시작하면 공간은 더욱 좁아진다. 오두막집 건설에서 결정적인 유일한 관점은 절대적으로 불가피한 지출 외 모든 것에 대한 자본가의 절욕이다. 헌터는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노섬벌랜드와 더럼의 탄광 및 기타 노동자 주택은 아마도 일반적으로, 몬머스셔의 비슷한 지역을 제외하면, 영국에서 가장 나쁘고 비싼 축에 속한다. 그 열악한 실태는 한 방에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점, 좁은 대지 위에 많은 가옥을 밀집시킨 점, 용수 부족과 변소 부재, 그리고 흔히 가옥을 층층이 세우거나, 여러 층의 다락으로 나눈 점 등에서 드러난다. 세입자들은 전체 부락을 주거지가 아닌 야영지처럼 취급하며 생활하고 있다.’

 

스티븐즈는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내가 받은 지시에 따라 더럼 교구 연합의 대다수 탄광 부락들을 방문했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어느 곳에서도 거주자의 보건을 위한 대책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광부는 광산 임차인 또는 소유자에게 12개월간 묶여 있다. 그들이 불만을 표시하거나 감독의 비위를 거스르면, 감독은 그들의 이름을 기록해 두었다가, 다음 해 계약 시 해고한다. 현물 지급 제도 중 인구가 밀집된 이 지방들에서 시행되는 것보다 더 열악한 것은 없다고 판단한다. 노동자는 고용 조건의 일부로 나쁜 환경의 집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고용주 외에는 의문이다. (그는 여러 면에서 농노나 다름없다.) 그런데 이 고용주는 오로지 자신의 손익 계산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따라서 그 결과는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노동자는 또한 고용주에게서 물도 공급받는데, 물의 질이 좋든 나쁘든 그 값을 지불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 비용은 임금에서 공제된다.

   

자본은 사회 여론또는 심지어 위생 단속 관리들과 충돌하는 경우에도, 노동자의 노동 생활 및 가정생활에 강요된 위험하고 타락하게 하는 조건들을 자신의 이윤 추구에 필요한 것이라는 이유로 정당화하는 데 전혀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자본이 공장에서 위험한 기계에 대한 보호 시설을 절제하는 것이나, 광산 등에서 환기 및 안전 시설을 절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광산 노동자의 주택 문제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추밀원 의무관 사이먼은 자신의 공식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다.

 

불량한 주택 조건을 변명하는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광산이 보통 임차 방식으로 채굴되기에, 임차 계약 기간(탄광의 경우, 대개 21)이 길지 않다. 따라서 노동자 및 (사업이 유인한) 상인과 기타 인구를 위한 좋은 시설의 주택을 건설하는 것이 할 만한 투자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설령, 임차인 자신이 이 점에서 인색하지 않으려 해도, 토지 소유자 때문에 수포로 돌아간다. 이는 토지 소유자가 자신의 지하 소유물을 채굴하는 노동자들이 거주할 아담하고 쾌적한 부락을 지상에 설치하는 특권의 대가로 엄청나게 높은 추가 지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 금지적인 가격(터무니없이 높은 지대)(실질적인 금지는 아닐지라도) 그러한 조건만 없다면 아담한 주택을 세우려 할 다른 사람들까지 억제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 변명의 장단점을 논하거나, 아담한 주택 건설을 위한 추가 지출이 궁극적으로 토지 소유자, 광산 임차인, 노동자, 사회 중 누구의 부담이 되는가 하는 문제를 논하는 것은 이 보고서의 목적이 아니다. 그러나 (헌터, 스티븐즈 등의) 첨부된 보고서들에 나타난 수치스러운 사실들에 비추어 볼 때, 이를 제거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토지 소유권은 여기에서 큰 사회적 불의를 저지르는 데 사용된다. 토지 소유자는 광산 소유자로 자신의 소유지에서 노동할 공업 부락을 유치하지만, 이후 지면의 소유자로 자신이 불러들인 노동자들이 거주할 적합한 주택 건설을 저해한다. 광산 임차인(자본주의적 채굴자)은 이러한 이중적 거래에 반대할 어떤 금전적 이해관계도 없다. 그는 토지 소유자의 두 번째 요구가 과도하더라도, 그 결과가 자신에게 부담되지 않으며, 그 부담을 지는 노동자들은 너무나 무지하여 자신들의 위생권의 가치도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한, 매우 혐오스러운 주택이나 매우 더러운 음료수는 결코 파업의 동기가 되지 않는다는 점도 알고 있다.’


. 고임금 노동층과 공황의 영향

 

진정한 농업 노동자로 넘어가기에 앞서, 공황이 노동자 계급 중 최고의 임금을 받는 계급, 곧 노동자 계급의 귀족에게까지 미치는 영향을 한 가지 예로 제시한다. 우리가 기억하듯이, 1857년은 산업 순환의 종결점인 거대한 공황이 발생한 해였다. 다음 공황은 1866년에 발생했다. (많은 자본을 일반적인 투자 분야에서 화폐 시장의 중심지로 몰아넣은) 면화 기근으로 말미암아, 진정한 공장 지방들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약화된 1866년의 공황은 이번에는 주로 금융적 성격을 띠었다.

 

18665, 런던의 한 대형 은행 파산이 그 발발의 신호였으며, 그 뒤를 이어, 수많은 투기 회사들이 무너졌다. 파국에 빠진 런던의 주요 생산 부문 중 하나는 철제 조선업이었다. 이 공업 부문의 대형 조선소들은 투기적 호황기에 무제한의 과잉 생산을 했을 뿐 아니라, 신용이 계속 풍부하리라는 예상 아래 방대한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무서운 반작용이 발생하여 조선업 및 기타 런던 공업 부문을 지금까지(18673월 말) 괴롭히고 있다. 노동자들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1866년 말과 1867년 초에 불황의 주요 중심지를 방문한모닝스타지 통신원의 상세한 보도에서 다음 내용을 인용한다.

 

런던 이스트 엔드의 포플러, 밀월, 그리니치, 뎁트퍼드, 라임하우스, 캐닝타운 지역에서는 적어도 15,000명의 노동자가 가족과 함께 극도의 궁핍 상태에 처해 있었다. 그중 3,000명의 숙련 기계공들은 (6개월간 실업 후) 구빈원 마당에서 돌을 깨고 있었다. 나는 구빈원 문 앞까지 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곳이 배급표를 기다리는 굶주린 군중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인데, 아직 배급 시간이 되지 않은 때였다. 마당은 큰 사각형을 이루고, 사방에는 차양이 드리워 있었다. 큰 눈더미가 마당 가운데의 포장용 돌들을 덮고 있었다. 마당은 버드나무 울타리로 양의 우리처럼 작은 칸들로 나누어져 있었으며, 날씨가 좋으면 사람들이 여기서 작업을 한다. 내가 찾아간 날은 그 우리들이 눈에 덮여 있어 아무도 그 안에 앉을 수 없었다. 사람들은 처마 밑에서 포장용 돌을 깨고 있었다. 각자 큰 포장돌 위에 앉아 무거운 망치로 서리 덮인 화강암을 자갈 크기로 깨고 있었다. 그 자갈이 5부셀(182리터)이 되어야 하루 작업이 끝나며, 그는 3펜스와 식량 배급표를 받는다. 마당의 다른 한쪽에는 쓰러질 듯한 작은 목조 가옥이 서 있었다. 문을 열자 남자들이 가득 차 있었는데, 그들은 서로 등을 기대어 체온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낡은 밧줄을 푸는 작업을 하며, 누가 가장 적게 먹고, 가장 오래 일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쟁하고 있었다. 이는 인내가 이곳에서 가장 명예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 구빈원에서만, 7,000명이 구호를 받고 있었는데, 그중 수백 명은 6-8개월 전만 해도, 이 나라에서 숙련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최고 임금을 받고 있던 이들이었다. 저축한 돈을 모두 소진하고도, 아직 저당 잡힐 물건이 남아 교구의 구호를 거부하는 사람들까지 계산에 넣는다면, 그 숫자는 두 배 이상이었을 것이다.

 

나는 구빈원을 나와 대부분 단층 가옥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갔는데, 포플러에는 이런 집이 많았다. 나의 안내자는 실업 대책 위원회 위원이었다. 우리가 처음 들어간 집은 이미 27주 동안 실업 상태에 있는 제철공의 집이었다. 그때, 그는 모든 가족과 함께 뒷방에 앉아 있었다. 방에는 아직 약간의 가구가 남아 있었고, 따뜻한 불기운도 있었다. 몹시 추운 날씨였기에, 어린아이들의 벗은 발이 동상에 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불기운이 필요했다. 불 맞은편에 놓인 대야에는 낡은 밧줄이 담겨 있었는데, 이것을 부인과 아이들은 구빈원에서 받은 구호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 풀고 있었다. 주인은 바로 위에서 언급한, 구빈원 마당에서 일하며, 하루에 식당 배급표와 3펜스를 받고 있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우리에게 말했듯이) 너무나 배가 고파 지금 막 점심을 먹으러 집에 온 참이었다. 그의 점심은 돼지 기름을 바른 몇 조각의 빵과 우유를 넣지 않은 한 잔의 차였다. 우리가 다음 집에 가서 문을 두드리니, 중년 부인이 문을 열어 주었고, 그녀는 한 마디 말 없이, 우리를 조그마한 뒷방으로 안내했다. 거기에는 온 가족이 금방 꺼져가는 난로를 들여다보며 잠자코 앉아 있었다. 이 사람들의 얼굴과 그 조그마한 방은 (다시는 그런 장면을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비애와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부인은 어린아이들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 애들은 26주 동안이나, 전혀 벌이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가 불경기 때 연명이나 할까 생각하여, 경기가 좋은 시절에 저축해 둔 돈 20파운드도 몽땅 없어졌습니다. 자 보십시오.” 하고 거의 외치다시피 말하며, 그녀는 임금과 출금이 모두 제대로 기입된 저금 통장을 내보여 주었다. 우리는 그 적은 재산이 5실링의 최초 예금에서 시작해 어떻게 조금씩 불어 20파운드까지 되었는지, 그 다음은 파운드 스털링에서 실링으로 줄기 시작해 마침내 마지막 기입으로 통장이 한 푼의 가치도 없는 흰 종이쪽지가 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가족은 구빈원으로부터 구호를 받고 있는데, 그 구호는 하루에 한 번 제공하는 빈약한 식사였다.

 

우리가 그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조선소에서 일했던 한 아일랜드 사람의 부인이 거처하는 곳이었다. 그 부인은 영양 부족으로 앓고 있었으며, 옷을 입은 채로 한 조각의 천을 덮고 요 위에 누워 있었다. 침구는 모두 저당 잡혀 집에 없었기 때문이다. 불행한 아이들이 그녀를 간호하고 있었으나, 아이들 자신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돌보아 주어야 할 형편이었다. 19주간의 강요된 무위도식이 그들을 이 처지에 이르게 했다. 부인은 가슴 아픈 과거사를 이야기하면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해 모든 희망을 잃은 듯이 신음했다. 그 집을 나왔을 때, 한 젊은이가 우리에게 달려와 자기 집에 들러 자신을 위해 무엇이든 해 줄 수 없는지 보아 달라고 간청했다. 젊은 아내, 귀여운 두 어린아이들, 한 줌의 전당표 뭉치, 그리고 전혀 아무것도 없는 방, 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보여 줄 수 있었던 전부였다.’

 

[모닝스타, 1867, 17일자]

 

1866년 공황이 남긴 고통에 대해 토리당 계통의 한 신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발췌를 인용한다. 여기서 언급되는 런던의 이스트 엔드는, 이미 앞에서 언급된, 철제 조선업의 장소일 뿐 아니라, 언제나 최저 수준 이하의 임금을 받는 이른바 가내 공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어제 수도의 한 부분에서 무서운 광경이 벌어졌다. 이스트 엔드의 수천 명 실업자들이 흑색 조기를 들고, 대중 시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 인파는 정말 사람들을 짓눌렀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받고 있는지 생각해 보라. 그들은 굶어 죽어가고 있다. 이것은 단순하면서도 무서운 사실이다. 이런 사람들이 4만 명이나 된다. 우리의 눈앞에서, 이 훌륭한 수도의 한 구역에서, 이때까지 이 세계가 보지 못한 미증유의 방대한 부의 축적과 나란히 4만 명의 인간이 어쩔 도리 없이 죽어가고 있다. 이런 수천 명이 지금 다른 구역에 침입하고 있다. 항상 반쯤 굶주리고 있는, 그들은 우리 귀에다 자신들의 참상을 고함치며,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비참한 주택에서 시작하여, 일자리도 발견할 수 없고, 구걸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점을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지방세 납부 의무자들 자신도 교구 측이 요구하는 구빈세 부담 때문에 극빈자가 될 지경에 처하고 있다.’

 

[스탠다드, 1867, 45일자]

 

영국 자본가들 사이에서는 벨기에를 노동자의 낙원으로 묘사하는 일이 유행하고 있다. 이는, 거기에서 노동의 자유’(자본의 자유’)가 노동 조합의 독재나 공장법의 족쇄로부터 제한받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벨기에 노동자의 행복에 대해 몇 마디 언급한다. 아마도 벨기에의 감옥 및 자선 단체들의 총 감독관이자 벨기에 중앙 통계 위원회의 위원이었던, () 뒤크페티오보다 이 행복의 비밀을 더 잘 아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의 저서 벨기에 노동자 계급의 가계부(브뤼셀, 1855)를 살펴본다.

 

이 책에서는 무엇보다도 벨기에 표준 노동자 가족의 연간 수입과 지출이 매우 정확한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되어 있으며, 그들의 영양 상태를 병사, 선원, 죄수의 영양 상태와 비교한다. 그 가족은 아버지, 어미니와 4명의 아동6명이다. 전제 조건은 다음과 같다.

 

· 6명 중 4명이 1년 내내 벌이가 있다.

· 병자도, 노동 불능자도 없다.

· 매우 적은 교회 헌금을 제외하면, 종교적, 도덕적, 지적 목적을 위한 지출도 없다.

· 저축 은행이나 연금 기관에 예금하지 않는다.

· 사치스러운 지출이나 기타 쓸데없는 지출도 없다.

 

다만, 아버지와 장남은 담배를 피우고, 일요일에는 맥주 집에 가며, 그 때문에, 매주 86상팀(1프랑의 1/100)을 지출해야 한다.

 

각종 생산 부문의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을 종합해 보면, 최고 임금의 하루 평균은 남자 1프랑 56상팀, 부인 89상팀, 소년 56상팀, 소녀 55상팀이다. 이에 따라 계산하면, 가족의 연간 수입은 가장 많아야 1,068프랑이 될 것이다. 우리는 전형적인 가계가 얻을 수 있는 모든 수입의 총계를 계산했다. 그러나 어머니도 임금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살림살이를 보살필 사람이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누가 집을 보살피고, 아이들을 돌보며, 식사를 준비하고, 세탁 및 옷 수선을 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가 노동자들 앞에 매일같이 제기된다.’

 

이 가족의 연간 수입

 

· 아버지: 1.56프랑씩, 300노동일: 468프랑

· 어머니: 0.89프랑씩, 300노동일: 267프랑

· 아들: 0.56프랑씩, 300노동일: 168프랑

· : 0.55프랑씩, 300노동일: 165프랑

 

합계: 1,068프랑

 

노동자가 선원, 병사, 죄수의 식사를 한다고 가정할 경우, 이 가족의 연간 지출액과 부족액은 다음과 같다.

 

· 선원의 식사 시: 연간 지출액: 1,828프랑, 부족액: 760프랑

· 병사의 식사 시: 연간 지출액: 1,473프랑, 부족액: 405프랑

· 죄수의 식사 시: 연간 지출액: 1,112프랑, 부족액: 44프랑

 

여기서 보듯이, 선원이나 병사는 물론, 죄수의 영양조차 취할 수 있는 노동자 가족은 거의 없다. 1847년에서 1849년 사이 벨기에 죄수는 평균적으로, 하루 63상팀의 비용이 들었는데, 이는 노동자의 하루 생계비보다 13상팀이나 더 많은 금액이다. 물론 죄수의 비용 계산에는 감옥의 행정비와 감시비가 포함되지만, 그 반면에, 죄수는 집세를 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그러나 다수, 아니 대다수라고 말할 수 있는 노동자가 죄수보다 더 가난하게 살고 있는 이유는 그들만이 아는 다음과 같은 방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 그들은 매일 먹는 양을 줄이고, 밀 빵 대신 호밀 빵을 먹는다. 고기, 버터, 채소도 적게 먹거나 전혀 먹지 않는다. 가족들을 한 방이나 두 방에 몰아넣으며, 거기에서는 흔히 하나의 요 위에서 젊은 남녀들이 같이 잠잔다. 그들은 의복, 세탁, 청결에 드는 비용을 절약하고, 휴일의 소풍도 단념한다. 간단히 말해, 매우 고통스러운 궁핍 생활을 하는 것이다. 일단 노동자가 이 마지막 한계에 도달하면, 식료품 가격의 아주 사소한 인상, 일자리를 아주 짧게 잃게 되는 경우, 또는 아주 사소한 질병이 발생하더라도, 그의 빈궁은 증대하고, 그는 완전히 몰락하게 된다. 빚은 쌓이고, 돈을 빌릴 길은 막히며, 매우 필요한 의복과 가구는 전당포로 간다. 그래서 마침내 가족들은 구호 빈민 명단에 등록하게 된다.’

 

사실 이 자본가들의 낙원에서는 생활 필수품 가격이 조금만 변동하더라도, 사망자 수와 범죄 건수에 변동이 일어난다


[협회의 선언문: 플랑드르사람들이여 앞으로!브뤼셀, 1860, 13-14].

 

전체 벨기에 세대수는 930,000세대이며, 공식 통계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 부유한 세대 (선거권자): 90,000세대 (인원수는 450,000).

 

· 하층 중간 계급 (도시와 농촌): 390,000세대 (인원수는 1,950,000).

 

이들 대부분은 끊임없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열로 떨어지고 있다.

 

· 노동자: 450,000세대 (인원수는 2,250,000).

 

이들 중 전형적인 세대가 뒤크페티오가 서술한 행복을 누린다.

 

노동자 세대 450,000세대 중 200,000세대 이상이 구호 빈민 명단에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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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을 증명하는 예들

 

. 1846-1866년의 잉글랜드

 

근대 자본주의적 축적 연구에서 이 20년간(1846-1866)만큼 유리한 시기는 없다. 이는 곧 포르투나투스의 보물 주머니 발견에 비견될 만하다 (‘인명해설참조). 그중 잉글랜드는 다시 고전적 사례를 제시한다. 잉글랜드는 세계 시장에서 독보적 지위를 유지하며 자본주의적 생산이 온전히 발달한 유일한 곳이다.

 

더욱이, 1846년 곡물법 폐지로부터 자유 무역의 도래는 속류 경제학의 마지막 도피로를 차단했다 (속류 경제학은 자유 무역만으로 노동자 계급의 상태가 급격히 개선되리라 선전한 바 있다). 20년 중 후반 10년간의 생산 발전 속도가 전반 10년을 압도적으로 능가했음은 이미 제4편에서 충분히 논한 바 있다.

 

최근 반세기 동안, 잉글랜드 인구의 절대적 증가는 현저했지만, 그 상대적 증가, 곧 연평균 증가율은 공식 인구 조사의 다음 표에서 보듯, 지속적인 하락세를 나타낸다.

 

잉글랜드와 웨일즈 인구의 10년 단위 연평균 증가율

 

1811-1821: 1.533%

1821-1831: 1.446%

1831-1841: 1.326%

1841-1851: 1.216%

1851-1861: 1.141%

 

이와 대조적으로, 부의 증대를 고찰한다. 여기서 가장 신뢰할 만한 근거는 소득세 부과 대상인 이윤 및 지대의 변동이다. 1853-1864년 사이 영국의 과세 대상 이윤(차지 농업가와 일부 범주는 제외) 증가는 50.47%에 달했다 (연평균 4.58%). 이는 같은 기간 인구 증가율 약 12%와 크게 대비된다. 과세 대상 지대(가옥, 철도, 광산, 어장 등 포함)의 증가는 1853-1864년 사이 38%였으며 (연평균 3.45%), 특히 다음 항목들의 증가 폭이 두드러진다.

 

1853년에 대비한 1864년의 연간 지대 소득

 

· 가옥: 총증가율(%): 38.60, 연평균 증가율(%): 3.50

· 채석장: 총증가율: 84.76, 연평균 증가율: 7.70

· 광산: 총증가율: 68.85, 연평균 증가율: 6.26

· 제철소: 총증가율: 39.92, 연평균 증가율: 3.63

· 어장: 총증가율: 57.37, 연평균 증가율: 5.21

· 가스공장: 총증가율: 126.02, 연평균 증가율: 11.45

· 철도: 총증가율: 83.29, 연평균 증가율: 7.57

 

1853년부터 1864년까지의 기간을 4년 단위 세 구간으로 구분해 보면, 소득 증가율의 지속적인 증대가 확인된다. 예를 들어, 이윤 발생 소득의 증가율은 1853-1857년 연 1.73%, 1857-1861년 연 2.74%, 그리고 1861-1864년 연 9.30%로 가파르게 상승했다. 잉글랜드의 소득세 부과 대상 총소득은 다음과 같다.

 

잉글랜드의 소득세 부과 대상 총소득

 

1856: 307,068,898파운드

1859: 328,127,416파운드

1862: 351,745,241파운드

1863: 359,142,897파운드

1864: 362,462,279파운드

1865: 385,530,020파운드

 

자본의 축적은 집적과 집중을 동시에 수반했다. 공식 농업 통계가 없는 잉글랜드와 달리 아일랜드에는 존재하지만, 잉글랜드의 10개 주가 자발적으로 제공한 통계에 따르면, 1851년에서 1861년 사이 100에이커 미만 차지 농장 수가 31,583개에서 26,567개로 감소했다. 이는 5,016개의 차지 농장이 대규모 농장으로 합병되었음을 의미한다.

 

상속세 부과 동산의 경우, 1815-1825년에는 100만 파운드 이상이 한 건도 없었으나, 1825-1855년에는 8, 1855년에서 18596월까지 4년 반 동안은 4건이 기록되었다. 그러나 자본의 집중 경향은 1864년과 1865년의 소득세표 D항 분석에서 가장 명확히 드러난다 (D항은 차지 농업가 등을 제외한 이윤을 다룬다). 우선 D항 소득세는 해당 원천 소득 중 60파운드 이상인 모든 소득에 부과된다.

 

잉글랜드, 웨일즈 및 스코틀랜드의 과세 대상 소득은 186495,844,222파운드에서 1865105,435,787파운드로 증가했다. 납세자 수는 1864년 총인구 23,891,009명 중 308,416명이었고, 1865년에는 총인구 24,127,003명 중 332,431명으로 늘었다. 다음 표는 이 2년간의 소득 분포 상태를 제시한다.

 

이윤 소득 분포

 

186445일 마감

 

· 납세자의 누적: 308,416, 이윤소득의 누적(단위: 파운드): 95,844,222

· 납세자의 누적: 22,334, 이윤소득의 누적: 57,028,290

· 납세자의 누적: 3,619, 이윤소득의 누적: 36,415,225

· 납세자의 누적: 832, 이윤소득의 누적: 22,809,781

· 납세자의 누적: 91, 이윤소득의 누적: 8,744,762

 

186545일 마감

 

· 납세자의 누적: 332,431, 이윤 소득의 누적(단위: 파운드): 105,435,787

· 납세자의 누적: 24,075, 이윤 소득의 누적(단위: 파운드): 64,554,197

· 납세자의 누적: 4,021, 이윤 소득의 누적(단위: 파운드): 42,535,576

· 납세자의 누적: 973, 이윤 소득의 누적(단위: 파운드): 27,555,313

· 납세자의 누적: 107, 이윤 소득의 누적(단위: 파운드): 11,077,238

 

영국에서 생산된 석탄

 

1855: 61,453,079, 16,113,267파운드

1864: 92,787,873, 23,197,968파운드

 

선철 생산

 

1855: 3,218,154, 8,045,385파운드

1864: 4,767,951, 11,919,877파운드

 

철도

 

1854

 

· 연장(延長): 8,054마일

· 불입 자본: 286,068,794파운드

 

1864

 

· 연장 12,789마일

· 불입 자본: 425,719,613파운드

 

영국 수출입 총액

 

1854: 268,210,145파운드

1865: 489,923,285파운드

 

수출 증가 표

 

1847: 58,842,377파운드

1849: 63,596,052파운드

1856: 115,826,948파운드

1860: 135,842,817파운드

1865: 165,862,402파운드

1866: 188,917,536파운드

 

이상의 통계는 영국 호적청장의 다음 승리의 환호성을 납득하게 한다.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기는 했으나, 그것은 공업과 부의 발전에는 따라가지 못했다.’

 

이제 이 공업의 직접적인 담당자, 곧 이 부의 생산자인 노동자 계급의 상태를 고찰한다. 글래드스턴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현재 국민의 소비력은 줄고, (노동자 계급의) 궁핍과 빈곤은 커지고 있는데, 이와 동시에, 상층 계급의 부는 끊임없이 축적되고 그들의 사치 풍조와 향락 수단은 증가하고, (자본은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은 이 나라 사회 상태의 가장 암울한 현상들 중의 하나이다.’

 

감동한 듯한 이 장관은 1843213일 하원에서 이렇게 발언했다. 20년 후인 1863416, 그는 예산안 제안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단언했다.

 

‘1842년부터 1852년까지 이 나라의 과세 대상 소득은 6% 증가했다. 1853년부터 1861년까지 8년간은 1853년 대비 20% 증가해 그 증가 폭은 놀라움을 넘어 거의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이 압도적인 부와 권력의 증대는 전적으로 재산 소유자 계급에 국한되지만, 일반 소비재 가격 하락으로부터 노동 인구에게 간접적 이익을 가져옴은 분명하다. 부유한 자는 더욱 부유해졌고, 가난한 자는 덜 가난해진 상태이다. 그러나 극단적인 빈곤이 실제로 감소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감히 단언하기 어렵다.’

 

이 결과는 용두사미격이다! 노동자 계급이 여전히 가난하며, 재산 소유자 계급을 위해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를 생산해냈음에도, ‘덜 가난해진 데 불과하다면, 그들은 상대적으로 종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가난하다. 극단의 빈곤이 감소하지 않았다면, 극단의 부가 증대했으므로, 그것은 오히려 증대한 것이다.

 

(결국 이는 상대적 빈곤의 심화를 의미한다. 생산력의 비약적인 발전과 자본의 축적 증대가 노동자 계급의 실질적 해방이나 현저한 물질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계급 간 부의 격차만을 더욱 벌려놓았다는 사실을 글래드스턴의 고백은 역설적으로 확증한다.)

 

생활 수단 가격 하락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공식 통계, 예를 들어, 런던 고아원의 자료를 보면, 1860-18623년간의 평균 가격은 1851-18533년간 대비 20% 등귀했다. 그 다음 3(1863-1865) 동안에도 육류, 버터, 우유, 설탕, 소금, 석탄, 기타 다수의 생활 필수품 가격은 점진적으로 상승했다. 그럼에도, 186447일 글래드스턴의 예산안 제안 연설은 잉여 가치 착취의 진전과 빈곤으로부터 경감된국민의 행복에 대한 핀다로스풍의 열렬한 찬가였다. 그는 구호 대상 극빈자로 될 지경에 있는대중과, ‘임금이 오르지 않은생산 부문들을 언급하면서도, 결국 노동자 계급의 행복을, ‘인생이란 십중팔구는 생존 투쟁에 불과하다.’는 말로 요약했다.

 

글래드스턴과 달리 공적 입장에서 자유로운 포세트 교수는 노골적으로 실상을 토로한다.

 

나는 물론 자본의 증대, (최근 10년간)에 따라 화폐 임금도 올랐음을 부인하지 않으나, 이 외견상의 이득은 대부분 상실되고 있다. 왜냐하면, 많은 생활 필수품의 값이 비싸지기 때문이다. (그의 의견에 따르면, 이는 귀금속의 가치 하락에 기인한다.) 부자들은 급속하게 더 부유해지는 반면, 근로 계급의 생활에는 눈에 띄는 개선이 조금도 없다. 노동자들은 그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소매상들의 노예에 가깝게 되고 있다.’

 

영국 노동자 계급이 재산 소유자 계급을 위해 실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의 증대를 창출한 구체적인 조건은 이미 노동일기계장에서 다루었다. 그러나 그 논의는 주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노동자에 초점을 맞춘다. 자본주의적 축적 법칙을 완전히 규명하기 위해서는 작업장 밖의 노동자의 실태, 곧 이들의 식생활과 주거 조건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제한된 범위 내에서, 여기서는 노동자 계급의 대다수를 이루는 공업 프롤레타리아트와 최저 임금을 받는 농업 노동자에 한정하여 논의를 진행한다.

 

먼저, 공인된 극빈자, 곧 노동자 판매라는 생존 조건을 박탈당하고, 사회적 구호금에 의존하는 계급을 먼저 논의한다.

 

잉글랜드의 공인된 극빈자 수는 1855851,369, 1856877,767, 1865971,433명을 기록했다. 면화 기근의 여파로 이 수는 18631,079,382명과 18641,014,978명으로 증가했다. 특히, 런던에 가장 심각한 타격을 준 1866년 공황은 (스코틀랜드보다 주민이 많고, 세계 시장의 중심지인) 런던에서 극빈자 수를 1866년에 1865년 대비 19.5%, 1864년 대비 24.4% 증가시켰으며, 1867년 첫 몇 개월 동안 그 증가세는 더욱 가속화했다. 이러한 극빈자 통계 분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핵심 사항이 부각된다.

 

, 한편으로, 극빈자 수의 증감은 산업 순환의 주기적 변동을 나타낸다. 다른 한편으로, 자본 축적과 더불어 계급 투쟁 및 노동자 계급 의식이 발전하면서, 공식 통계는 극빈자의 실제 규모를 점차 왜곡한다. 가령, 최근 2년간 영국 신문들(더 타임즈,팔말 가제트)이 크게 떠들어댄 극빈자 처우의 야만성은 이미 오래된 현상이다. 엥겔스는 1844년에도 동일한 잔혹 행위와 선동적인 출판물의 일시적이며 위선적인 비난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최근 10년간 런던에서 굶어 죽은 사람 수가 소름 끼치게 증가한 일은 노동자들이 구빈원, 빈민 형무소의 노예 상태를 극도로 공포하여 수용되느니 차라리 굶어 죽는 일을 택하는 현실을 명백히 증명한다.

 

. 저임금 공업 노동자 실태

 

이제 공업 노동자 계급 중 최저 임금층으로 논의를 전환한다. 1862-1863년 면화 기근 당시, 추밀원은 E. 스미스에게 랭커셔와 체셔의 궁핍한 면공업 노동자들의 영양 상태 조사를 위임했다.

 

스미스는 다년간의 관찰로부터, ‘굶주림으로 인한 질병 예방을 위한 최소 영양 기준을 이미 설정했다. 이 기준은 여성 노동자의 1일 식사에 최소 3,900그레인(253g)의 탄소와 180그레인(12g)의 질소를 요구하며, 남성 노동장에게는 최소 4,300그레인(279g)의 탄소와 200그레인(13g)의 질소를 필요로 한다. 이는 여성에게 질 좋은 밀가루 빵 2파운드(907g)에 해당하는 영양분과 같고, 남성은 그보다 1/9이 더 요구됨을 의미한다. 성인 남녀의 주당 평균 최소 필요량은 28,600그레인(1,853g)의 탄소와 1,330그레인(86g)의 질소이다.

 

이 계산된 수치는 빈궁으로 인해 소비가 저하된 면공업 노동자들의 실제 식사량과 정확히 일치했다. 186212, 그들은 주당 29,211그레인(1,893g)의 탄소와 1,295그레인(84g)의 질소를 섭취하고 있었으며, 이는 그의 계산을 사실로 확증한다.

 

1863, 추밀원은 영국 노동 계급 중 영양 상태가 가장 취약한 층의 비참한 실태에 대한 조사를 명령했다. 추밀원 의무관 사이먼은 이 임무에, 앞서 언급된 E. 스미스를 선임했다. 스미스의 조사는, 한편으로는 농업 노동자를, 다른 한편으로는 견직공, 여성 재봉공, 가죽장갑공, 양말공, 장갑 편직공, 제화공을 포괄했다. 후자 집단은 양말공을 제외하면 전적으로 도시 거주자들이다. 이 조사의 기준으로 삼은 대상은 각 부류에서 가장 건강하고, 상대적으로 형편이 나은 가족들이었다. 이 조사의 전체적인 결론은 다음과 같다.

 

‘조사된 도시 노동자 부류 중, 질소 섭취량이 굶주림으로 인한 질병 발생의 절대적 최저 한도를 다소 초과하는 집단은 단 한 부류에 불과했다. 또 다른 한 부류는 겨우 최저 한도에 도달했으며, 나머지 두 부류는 질소성 및 탄소성 식사 모두 부족했고, 그중 한 부류는 대단히 부족했다. 농업 인구의 경우, 1/5 이상이 필요량 이하의 탄소성 식사, 1/3 이상이 필요량 이하의 질소성 식사를 하고 있었다. 특히 버크셔, 옥스퍼드셔, 서머셋셔 세 개 주에서는 질소성 식사의 최저량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가 일반적 현상이었다.’

 

농업 노동자 중 영국 내 가장 부유한 지역인 잉글랜드의 노동자 영양 상태가 가장 불량했다. 농업 노동자들 사이에서 영양 부족은 주로 부인과 아이들에게 집중되었는데, 이는 성인 남자는 노동을 위해 반드시 섭취해야 했기때문이다. 조사 대상 도시 노동자 부류에서는 결핍의 정도가 더욱 심각했다.

 

그들의 영양은 대단히 불량하여 다수의 경우, 비참하고, 건강을 해치는 궁핍 상태에 놓여 있음이 분명하다.’ (이 모든 것은 자본가의 절욕’, 곧 노동자들이 겨우 연명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생활 수단 지급마저 회피하는 데서 기인한다.)

 

상기 표는 순수 도시 노동자 부류(남녀 모두)의 영양 상태를, 스미스가 인정한 최저 한도 및 면공업 노동자들의 최빈곤기 영양 상태와 대비해 제시한다.

 

주당 평균 탄소 섭취량(단위: 그레인)

 

· 5부문의 도시 노동자: 28,876

· 랭커셔의 실업 노동자: 29,211

· 랭커셔 노동자의 최저 필요량: 28,600

 

주당 평균 질소 섭취량(단위: 그레인)

 

· 5부문의 도시 노동자: 1,192

· 랭커셔의 실업 노동자: 1,295

· 랭커셔 노동자의 최저 필요량: 1,330

 

조사된 공업 노동자 부류의 절반, 60/125이 맥주를 전혀 섭취하지 않으며, 28%는 우유를 전혀 마시지 않았다. 가족 단위 액체 영양물의 주당 평균 소비량은, 여성 재봉공의 7온스에서 양말공의 24.75온스에 이르기까지 편차를 보였다. 우유를 전혀 마시지 않는 다수는 런던의 여성 재봉공들이다. 매주 소비되는 빵의 양은 여성 재봉공의 7.75파운드부터 제화공의 11.25파운드까지 다양했으며, 성인의 총 평균 소비량은 주당 9.9파운드를 기록했다.

 

설탕(당밀 등) 소비량은 가죽 장갑공의 주당 4온스에서 양말공의 11온스까지 다양했으며, 모든 부류의 총 평균은 성인 1명당 매주 8온스를 기록했다. 버터류(지방 등)의 매주 총 평균량은 성인 1명당 5온스였다. 육류(베이컨 등)의 매주 평균량은 성인 1명당 견직공의 7.25온스부터 가죽 장갑공의 18.25온스까지 폭넓게 분포했으며, 각종 부류들의 총 평균량은 13.6온스였다.

 

성인 1명당 매주 평균 식사비용

 

· 견직공: 2실링 2.5펜스

· 여성 재봉공: 2실링 7펜스

· 가죽 장갑공: 2실링 9.5펜스

· 제화공: 2실링 7.75펜스

· 양말공: 2실링 6.25펜스

 

매클즈필드의 견직공의 평균 비용은 주당 불과 1실링 8.5펜스에 그쳤다.

 

영양이 가장 불량했던 부류는 여성 재봉공, 견직공, 가죽 장갑공이었다. 사이먼은 이러한 영향 사태에 대해 그의보건에 관한 종합 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영양 부족이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사실은 구빈법의 의료 사업이나 병원 환자의 사정(입원 환자든 외래 환자든)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요소인 위생의 관점이 추가되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음식물 궁핍은 의복, 연료 부족과 같은 온갖 다른 궁핍이 먼저 나타난 뒤에야 뒤따른다. 그러므로 음식물 결핍을 감수하는 일은 최후의 궁핍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영양 부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 훨씬 전, 그리고 생리학자가 삶과 굶어 죽음의 경계선이 되는 질소와 탄소의 소비량을 계산해야겠다고 생각하기 훨씬 전에 이미 살림살이의 모든 물질적 위안은 소멸한다. 의복과 연료는 음식물보다 더 부족하여 혹한을 충분히 막아낼 수 없다. 거주 면적은 질병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정도로 협소하며, 가구는 거의 남지 않고, 청소하는 일조차 사치이거나 어려운 일이 된다. 비록 자존심으로 깨끗함을 유지하려 해도, 그 모든 시도는 굶주림의 고통만 더욱 심하게 할 뿐이다. 주택은 가장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곳에 자리한다. 이 구역들은 위생 단속이 거의 무력하며, 하수도가 불량하고, 교통이 불편하며, 오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급수 상태가 아주 나쁘거나 거의 급수되지 않는 곳이다. 도시 주택이라면 햇빛과 공기가 극히 부족한 구역에 위치한다. 음식물이 부족할 정도의 빈궁은 필연적으로 이러한 위생상의 위험을 동반한다. 이러한 모든 요소가 생명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치지만, 영양 부족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심각한 문제이다. 이런 빈궁이 게으름에서 비롯된 당연한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은 가슴 아픈 현실이다. 모든 경우, 이는 노동 인구 전체의 빈궁이다. 사실, 도시 노동자들이 얼마 안 되는 음식물을 얻기 위해 하는 노동은 대체로 지나치게 장시간에 걸친다. 노동으로 자활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극히 제한된 의미에서만 성립한다. 대체로 이 명목상의 자활은 길든 짧든 구호 빈민 상태에 이르는 우회로일 따름이다.’

 

근면한 노동자층의 굶주림 고통과 자본주의적 축적에 토대를 둔 부자들의 조잡하거나 세련된 낭비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은 오직 경제 법칙으로부터만 해명된다. 빈민들의 주택 문제는 그 성격이 확연히 다르다. 공정한 관찰자라면 누구나 인정하듯, 생산 수단의 집중이 심화될수록, 노동자들은 일정한 공간에 더욱 밀집되고, 자본주의적 축적 속도가 빠를수록, 노동자들의 주택 사정은 그만큼 더 비참해진다.

 

부의 증대에 수반되는 도시의 개량’, 곧 불량 주택 지역 철거, 궁전 같은 은행과 백화점 건설, 영업용 운송 수단 및 사치 마차·전차 도입을 위한 도로 확장은 빈민들을 더욱 불결하고 비좁은 빈민굴로 내쫓는다. 다른 한편으로, 주택 투기꾼들은 집세를 그 질에 반비례해 비싸게 책정하며, 빈곤이라는 광산을 포토시의 은 광산 채굴보다 더 많은 이윤과 적은 비용으로 채굴한다. 자본주의적 축적, 나아가 자본주의적 소유 관계 일반의 적대적 성격은 이 문제에서 아주 명백하게 드러난다. 심지어 주택 사정에 관한 영국의 공식 보고서들조차 소유와 소유권에 대한 비판적 공격으로 가득 차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폐해는 공업 발전, 자본 축적, 도시의 발달 및 개량과 더불어 폭넓게 확산되었다. 그 결과, ‘상류 사회에까지 예외 없이 전파되는 전염병에 대한 단순한 공포심이 1847년에서 1864년 사이 10개 이상의 위생 법규를 의회에서 탄생시켰다.

 

리버풀, 글래스고 등 일부 도시의 공포에 질린 중간 계급은 시 당국에 강력한 조치를 촉구했다. 하지만 사이먼은 1865년 보고에서, ‘일반적으로 말해, 이 폐해는 영국에서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추밀원의 명령에 따라, 1864년에는 농촌 노동자, 1865년에는 도시 하층 빈민 계급의 주택 사정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다. 공중 보건에 관한 제7(1865)와 제8차 보고(1866)에는 헌터의 탁월한 연구 성과가 담겨 있다. 농촌 노동자 문제는 후술하고, 도시의 주택 사정에 대해 필자는 사이먼의 다음 일반적 의견을 먼저 인용한다. 그의 발언은 이렇다.

 

본인의 공적 견해는 오로지 의사로서의 것이지만, 보통 사람으로서도 이 죄악의 다른 측면을 외면할 수 없다. 집이 사람으로 초만원이 되는 정도가 심화되면, 이는 거의 필연적으로 인간이라기보다는 짐승과 같은 상태를 초래한다. 예의범절은 무시되고, 육체와 육체적 기능은 불결하게 뒤섞이며, 발가벗겨져 치부(恥部)까지 드러난다. 이러한 영향 자체가 타락이며, 타락한 상태가 오래 지속될수록 그 정도도 더욱 심화된다. 이 저주스러운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들에게, 그 타락은 곧 그릇된 행위를 위한 세례와 다름없다. 또한 이러한 환경에 처한 인간이 육체적·도덕적 순결을 본질로 하는 문명의 분위기를 다른 측면에서 열망하기란 도저히 가망이 없는 일이다.’

 

인간이 살아가기에 절대적으로 부적합한 초만원 상태의 주거라는 점에서 런던이 단연 제1위를 차지한다. 헌터는 다음 두 가지 사실을 명확히 밝힌다.

 

첫째, 런던에는 각각 약 10,000여 명의 주민을 수용하는 약 20개의 대규모 주거 지역이 존재하며, 그 참담한 상태는 잉글랜드 내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상태는 거의 전적으로 가옥 설비의 불량에서 기인한다. 둘째, 이 주거 지역들의 가옥이 초만원이 되고 낡아버린 상태는 20년 전보다도 훨씬 더 악화되었다. 런던과 뉴캐슬의 일부 지역 생활은 지옥과 같다고 단언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욱이, 런던에서는 개량이 진행되고, 낡은 거리와 가옥들이 철거됨에 따라, 그리고 공장들이 신설되고, 인구 유입이 증가함에 따라, 끝으로, 도시 지대 상승으로 집세가 인상됨에 따라, 노동자 계급 중 비교적 처지가 나은 부분조차 소매상과 하층 중간 계급과 함께 이 불결한 주택 사정의 재앙 속으로 점차 편입되고 있다.

 

집세는 엄청나게 비싸서, 방 한 칸 이상을 빌릴 수 있는 노동자는 거의 없다.’

 

런던에 있는 주택 중 다수의 중개인들의 손을 거치지 않은 집은 거의 없다. 런던의 토지 가격은 언제나 그 연간 수입 대비 매우 높게 책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토지 구매자들은 구입한 토지를 감정 가격’(토지 수용 시 감정관이 매기는 가격)으로 되팔기 위한 투기를 하거나, 또는 인근에 대기업이 들어설 때 발생하는 토지 가격의 투기적 상승을 노리고 투기를 감행한다. 그 결과, 만기가 얼마 남지 않은 임대 계약을 사들이는 일이 정규적인 거래 형태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거래에 종사하는 이들(투기꾼)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현재 하고 있는 방식을 앞으로도 지속하리라는 것이다. , 집을 소유하는 동안, 세든 사람들에게서 최대한 많이 짜내고, 다음 세입자들을 위해서는 (가구 등을) 최대한 적게 남겨두는 형태가 반복된다.’

 

집세는 매주 지불되므로, 이들 신사들에게는 전혀 위험 부담이 없다. 런던의 시티(금융 중심지)에 철도가 부설한 결과, (다음과 같은 비참한 실상이 목격되었다.)

 

최근 어느 토요일 저녁, 런던의 동부에서 여러 가족들이 자기들의 보잘것없는 세간살이들을 등에 짊어진 채, 구빈원 이외에는 아무데도 갈 곳이 없어 방황하고 있는 일을 볼 수 있었다.’

 

구빈원들은 이미 만원 상태였으며, 의회가 승인한 개량작업은 겨우 착수 단계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은 거주하던 옛집이 철거되어 쫓겨나더라도 자신들의 교구를 포기하지 않거나, 멀리 이사하더라도, 그 가장 가까운 교구로 이동한다.

 

이들은 당연히 최대한 일터와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옮기려 노력한다. 그들은 두 칸짜리 셋방을 포기하고, 한 칸짜리 셋방에 들면서, 더욱 비좁게 살지라도, 같은 교구나 이웃 교구를 벗어나지 않는다. 더 많은 집세를 지불해도, 그전의 초라한 셋방만큼의 공간조차 얻을 수 없는 실정이다. 스트랜드에 거주하는 노동자들의 50%는 이제 작업장까지 2마일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외국인들에게 런던 부의 강렬한 인상을 주는 주요 거리인 스트랜드는 런던의 인구 밀집 현상을 보여주는 한 예가 된다. 공중 위생 관리의 계산에 따르면, 스트랜드의 한 교구 인구는 템즈 강폭의 절반이 교구에 포함됨에도, 에이커당 581명이었다. 지금까지 런던에서 채택된 공중 위생 개선 조치들은 살기에 부적당한 집들을 철거하면서, 노동자들을 한 구역에서 쫓아내고, 그 결과, 다른 구역을 그만큼 더 조밀하게 했을 뿐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헌터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이 모든 조치는 불합리한 것이므로, 반드시 중지되어야 한다. 또는 이제 과장 없이 국민적 의무라고 부를 수 있는 의무, 곧 자금 부족으로 자기 힘으로 집을 살 수는 없으나 정기적으로 집세는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집을 제공해야 하는 의무에 대해 사회적 동정심(!)이 반드시 환기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경탄할 만한 자본주의적 정의이다! 토지 소유자, 집 주인, 사업가는 철도 부설, 도로 신설 등 개량으로 인해 수용될 때, 충분한 보상을 받을 뿐 아니라, 그들의 의무적인 절욕에 대해 신과 인간의 법으로부터 엄청난 이윤으로 위안받아야만 한다. 반면, 노동자들은 처자와 소지품과 함께 거리로 내쫓기며, 그들이 (지방 자치 당국이 예의를 강조하는) 특정 지역으로 큰 무리를 지어 몰려 들어가면, 공중 위생의 이름 아래 기소당한다!

 

19세기 초, 잉글랜드에서 주민 100,000명 이상 도시는 런던 한 곳뿐이었고, 50,000명 이상 도시는 다섯에 불과했으나, 현재는 그 수가 28개에 달한다.

 

이러한 변화의 결과, 도시 인구는 급증했을 뿐 아니라, 이전의 조밀했던 소도시들 역시 사방에 건물이 가득 들어차 신선한 공기가 통할 수 없는 중심지로 변모했다. 이 도시들은 이제 부유층에게 쾌적한 생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며, 그들은 이곳을 버리고 더욱 상쾌한 교외로 이주한다. 부유층이 떠난 자리는 빈곤층이 차지하며, 그들은 크기는 하지만 자신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집에서 한 가족이 한 방씩 사용하고, 흔히 가족 외에 두세 명의 하숙인을 더 들인다. 그들을 위해 건축되지도, 적합하지도 않은 주택으로 사람들이 밀려들면서, 그 환경은 성인에게는 타락으로, 아동에게는 파멸로 인도한다.’

 

어떤 공업 도시나 상업 도시에서 자본이 급속히 축적될수록, 착취할 인간 재료는 그만큼 더 빠르게 밀려들어오며, 갑자기 세워진 노동자들의 주택은 그만큼 더 비참해진다. 생산이 점진적으로 증대하는 석탄·제철 지방의 중심지인 뉴캐슬--타인은 주택 지옥이라는 점에서 런던 다음으로 제2위를 차지한다. 그곳에서는 단칸방 살림을 하는 사람이 34,000명 이상이다.

 

최근 뉴캐슬과 게이츠헤드에서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절대적으로 위험하다는 이유로, 많은 가옥이 당국으로부터 철거되었다. 가옥의 신축은 매우 완만하게 진행되지만, 공업은 매우 빠르게 발전한다. 그 때문에, 이 도시는 1865년에 종전 어느 때보다 인구가 조밀해졌고, 방 한 칸조차 빌릴 수 없었다. 뉴캐슬 열병 병원의 의사인 엠블턴은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티푸스가 지속적으로 만연하는 주된 원인은 사람들의 밀집과 주택의 불결함에 있다는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거주하는 가옥은 비좁고 불결한 뒷골목이나 울타리 안에 있으며, 햇빛, 공기, 청결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불충분하고 비위생적인 것의 표본이며, 문명 사회의 치욕이다. 거기에서는 밤에 남녀와 아동 모두가 뒤섞여 잠을 잔다. 남자들의 경우, 주간 교대 근무자와 야간 교대 근무자가 끊임없이 서로 교대하기 때문에 침대가 식을 사이가 없다. 그 가옥은 급수가 잘 안 되며, 변소는 더욱 불결하고, 환기가 되지 않아 전염병이 발생하기 쉬운 상태이다.’

 

이처럼 열악한 주택의 집세는 주 8펜스에서 3실링에 달한다. 헌터는 이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뉴캐슬 언 타인은 우리 동포 중 가장 우량한 종족의 하나가 주택이나 거리와 같은 외부적 사정으로 인해 거의 야만 상태에까지 타락하고 있는 하나의 실례를 보여준다.’

 

자본이 급속히 축적되는 공업·상업 도시에서는 착취할 인간 재료가 그만큼 빠르게 유입되며, 급조된 노동자 주택은 그만크 비참해진다. 자본과 노동의 유출입으로 인해 공업 도시의 주택 환경은, 오늘은 견딜 만해도 내일은 감당할 수 없게 된다. 시 당국이 최악의 폐해를 제거하려 노력할지라도, 곧 누더기를 걸친 아일랜드인이나 몰락한 잉글랜드 농업 노동자들이 메뚜기 떼처럼 몰려든다. 이들은 지하실이나 다락으로 들어가거나, 기존 노동자 가옥을 여인숙으로 변질시키는데, 거주자 교체 속도는 30년 전쟁 당시 민간 막사의 병사 교대만큼이나 급속하다.

 

요크셔 브래드퍼드가 한 예이다. 시 당국의 속물들이 도시 개량에 몰두했음에도, 1861년에는 아직 1,751채의 빈집이 존재했다. 그러나 온건파 자유당원이자 흑인 노예의 벗인 포스터가 감격해 마지않던 호경기가 도래하자, 끊임없이 유입되는 예비군상대적 과잉 인구물결로 홍수를 맞았다. 헌터가 보험 회사 대리인으로부터 입수한 표에 등록된 소름 끼치는 지하실과 방들은 대개 고임금 노동자들이 차지했다. 이들은 더 나은 집이 있다면 기꺼이 빌리겠다고 했으나, 그 와중에 이 노동자들은 예외 없이 타락하고 병들어갔다. 다른 한편에서는, 국회 의원인 온건파 자유당원 포스터가 자유 무역의 축복과 브래드퍼드 명사들이 양모업에서 얻는 이윤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186595일자 보고서에서 브래드퍼드의 구빈 의사인 벨은 담당 구역의 열병 환자 무서운 사망률이 주택 사정에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1,500입방피트의 좁은 지하실에서 10명이 거주한다. 빈센트 스트리트, 그린 에어 프레이스, 리즈에는 1,450명의 주민이 435개의 침대와 36개의 변소를 가진 223채의 집에 밀집되어 있다. 침대 하나(더러운 누더기나 대패 밥 포함)에 평균 3.3, 때로는 5-6명이 잠을 자며, 심지어 침대가 없는 이들도 있다. 젊은 남녀들이 기혼이든 미혼이든 상관없이 옷을 입은 채 방바닥에 한데 겹쳐 잠자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 주택들이 대개 컴컴하고, 습기 차고, 더럽고, 냄새나는, 사람 살기에 전혀 적합하지 않은 누추한 구멍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필요가 있겠는가. 병과 죽음은 바로 이 집들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훨씬 나은 환경의 부유층에게까지 전파되는데, 이는 부유층이 이런 폐해가 우리 도시 한가운데서 곪아 터지도록 방치했기 때문이다.’

 

주택 사정이 비참하다는 면에서, 런던 다음으로 제3위를 차지하는 곳은 브리스틀이다.

 

유럽의 가장 부유한 도시인 브리스틀에 극심한 빈곤과 비참한 주택 사정이 너무 심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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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 상대적 과잉 인구 또는 산업 예비군의 누진적 증대

 

자본 축적은 최초 양적 확대로 나타나지만, 이는 자본 구성의 누진적 질적 변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이는 가변 자본을 희생하며, 불변 자본을 끊임없이 증대시키는 경향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발전, 그에 조응하는 노동 생산성의 향상, 그리고 이로 인한 자본의 유기적 구성 변동은 단순한 사회적 부의 증대와 보조를 맞추지 않고,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이는 단순 축적(사회적 총자본의 절대적 증가)이 총자본의 개별 요소들의 집중을 수반하고, 나아가, 추가 자본의 기술적 구성 변혁이 최초 자본의 기술적 구성 변혁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축적의 진전과 함께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의 비율은 지속적으로 변동한다.

 

자본 구성 비율은 초기 1:1에서 2:1, 3:1, 4:1, 5:1, 7:1 등으로 지속적으로 변동한다. 이에 따라 총자본 가치에서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몫은 1/3, 1/4, 1/5, 1/6, 1/8 등으로 감소하고, 생산 수단으로 전환되는 몫은 2/3, 3/4, 4/5, 5/6, 7/8 등으로 증가한다. 노동에 대한 수요는 총자본량 자체가 아닌 총자본의 가변적 구성 부분으로부터 결정된다. 따라서 그 수요는 총자본 증가에 비례하여 증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점진적으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수요는 총자본 규모 대비 상대적으로 감소하며, 총자본 증가와 더불어 그 상대적 감소는 더욱 가속화한다. 총자본이 증가할 때, 가변적 구성 부분(총자본에 결합되는 노동력) 또한 절대적으로는 증가하지만, 그 구성비는 끊임없이 하락한다. 축적이 일정한 기술적 토대 위에서 단순 생산 확대로 작용하는 중간 기간은 단축된다.

 

가속적인 총자본 축적은 추가 노동자 흡수나 기존 노동자의 고용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증가하는 축적과 집중은 역설적으로 자본 구성의 새로운 변동의 원천이 된다. 이는 불변 자본 대비 가변 자본의 가속적인 감소를 의미한다. 가변 자본의 상대적 감소는 총자본의 증가에 따라 촉진되고, 그 증가 속도보다 더 빠르다. 이는 외견상 노동 인구의 절대적 증가라는 역전된 형태로 나타나는데, 이 노동 인구의 증가는 가변 자본 또는 고용 수단의 증가보다 언제나 급속하게 증가한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적 축적 자체가 자신의 자기 증식 욕구에 필요한 노동 인구를 초과하는 노동 인구(상대적 과잉 인구)를 자신의 정력과 규모에 비례하여 끊임없이 생산해낸다.

 

사회적 총자본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축적 운동은 주기적으로 상이한 국면들을 통과하거나, 때로는 그 국면들을 각 생산 부문에 동시에 분배하는 양상을 보인다. 일부 부문에서는 자본의 절대적 증가 없이 단순한 집중의 결과로, 자본 구성의 변동이 일어난다. 다른 부문에서는 자본의 절대적 증가가 가변적 구성 부분(흡수하는 노동력)의 절대적 감소와 결부된다. 또 다른 부문에서는 자본이 일정한 기술적 토대 위에서 계속 증가하며 그에 비례해 추가 노동력을 흡수하다가도, 다른 시기에는 유기적 변동을 겪어 가변적 구성 부분이 수축된다. 모든 부문에서 가변 자본 부분의 증가, 나아가, 그것이 고용하는 노동자 수의 증가는 언제나 격심한 동요와 일시적인 과잉 인구의 생산을 수반한다.

 

이 과잉 인구 생산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하나는 이미 취업 중인 노동자들을 축출하는 더욱 가시적인 형태이고, 다른 하나는 추가 노동 인구를 통상적인 경로로 흡수하는 것이 곤란해지는(덜 가시적이나 효과는 못지않은) 형태이다. 기능하는 사회적 자본의 규모와 증가율, 생산 규모와 노동자 수의 확장, 노동 생산성의 발전, 그리고 부의 모든 원천의 확대 및 증가에 비례하여, 자본이 노동자를 흡수하거나 축출하는 규모는 증대한다. 또한 자본의 유기적 및 기술적 구성 변동 속도가 빨라지고, 이러한 변동을 겪는 생산 부문들의 수 역시 증가한다. 이 변동은 때로는 동시적으로, 때로는 교대적으로 발생한다. 결과적으로, 노동 인구는 자신들이 생산하는 자본 축적으로부터, 그들 자신을 상대적으로 불필요하게 만드는(상대적 과잉 인구로 만드는) 수단을 점점 더 큰 규모로 생산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특유한 인구 법칙이다. 사실 모든 특수한 역사적 생산 양식은 그 자신만의 특수한 인구 법칙(자신의 한계 내에서만 역사적으로 타당한)을 가진다. 추상적 인구 법칙은 인간의 간섭이 없는 한에서, 식물과 동물에 대해서만 존재한다.

 

과잉 노동 인구는 축적의 필연적 산물이자 자본주의적 토대 위에서 부의 발전이 낳은 결과이다. 동시에 이 과잉 인구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지렛대이며, 나아가, 이 생산 양식의 생존 조건이 된다. 이 과잉 노동 인구는 자본이 자신의 비용으로 육성하고 절대적으로 처분할 수 있는 산업 예비군을 형성한다. 이 산업 예비군은 현실적 인구 증가의 한계와 무관하게, 자본의 변동하는 가치 증식 욕구를 위해 언제나 착취할 수 있게 준비된 인간 재료를 이룬다.

 

축적과 그에 따른 노동 생산성의 발전에 따라 자본의 급작스러운 확장력 또한 증대한다. 이는 기능하는 자본의 신축성이 증가하고, 사회의 절대적 부가 증대하기 때문이다. 특히 신용 제도가 자극받을 때마다, 이 부의 상당 부분이 추가 자본 형태로 생산에 즉시 투입될 수 있다. 또한 생산 과정의 기술적 조건(기계, 운송 수단 등)으로부터의 잉여 생산물이 추가적 생산 수단으로 매우 급속히 전환될 수 있다. 사회적 부(축적의 진전에 따라 팽창되어 추가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는)는 시장이 갑자기 확대되는 종래의 생산 부문으로 밀려들거나, 종래 부문의 발전에 따라 이제 필요해진 새로 형성된 부문(: 철도)으로 맹렬하게 유입된다. 이러한 모든 상황은 다른 부문의 생산 규모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결정적인 부문에 많은 노동력을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어야 함을 요구하며, 과잉 인구가 이 인력을 제공한다.

 

근대 산업의 특징적 진행 과정, 곧 호황, 활황, 공황, 침체로 이루어지는 10년 주기 순환은 (더 작은 규모의 변동으로 중단되기도 하지만) 산업 예비군(과잉 인구)의 끊임없는 형성, 흡수, 재형성에 의존한다. 반대로, 이러한 산업 순환의 국면 교체는 과잉 인구를 보충하고, 그 재생산을 위한 가장 강력한 요인들 중 하나가 된다. 인류 역사의 이전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근대 산업의 이 독특한 순환 과정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유년기에도 없었다. 당시에는, 자본의 구성이 매우 천천히 변동했을 뿐이다. 따라서 자본의 축적에 따라 노동에 대한 수요 또한 대체로 그에 상응하여 뒤따랐다. 자본 축적의 진전이 지금보다 완만했음에도, 착취하는 노동 인구의 자연적 한계에 부딪혔고, 이 한계는 폭력적 수단으로만 제거될 수 있었다.

 

생산 규모의 돌발적 · 비약적 확대는 돌발적 축소의 전제 조건이다. 이 축소는 다시 확대를 야기하지만,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인간 재료(인구의 절대적 증가에 의존하지 않는 노동자 수의 증대) 없이는, 확대는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노동자 수의 증대는 노동자 일부를 끊임없이 풀려나게 하는단순 과정, 곧 생산 증가 대비 취업 노동자의 수를 감소시키는 방법으로부터 달성된다. 따라서 근대 산업의 모든 운동 형태는 노동 인구의 일부를 끊임없이 실업자 또는 반()취업자로 전환시키는 것에 의존한다.

 

정치경제학의 천박성은 신용의 확대와 축소(산업 순환에서 주기적 변동의 징조에 불과한 것)를 그 순환 자체의 원인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천체가 특정한 운동에 들어가면 끊임없이 그것을 반복하듯, 사회적 생산 역시 일단 확대와 축소가 교체되는 이 운동에 진입하면 끊임없이 이를 되풀이한다. 결과가 이번에는 원인으로 작용하며, 이로부터 전체 과정의 교체되는 국면들이 주기성의 형태를 취하게 된다. 이 주기성이 일단 확고해지면, 정치경제학조차도 상대적 과잉 인구(자본의 평균적 증식 욕구 대비 과잉인 인구)의 생산을 근대 산업의 필요 조건으로 이해한다.

 

옥스퍼드 대학의 정치경제학 교수였고, 영국 식민성의 관리였던 메리베일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공황기에 국민이 궐기하여 수십만 명의 과잉 노동자를 국외로 이민시키려 한다고 가정하자. 그 결과는 노동 수요가 회복되자마자 노동 부족을 초래할 것이다. 인간의 재생산이 아무리 빨라도 성인 노동자를 보충하는 데는 한 세대의 기간이 필요하다. 공장주들의 이윤은 수요가 왕성한 호경기를 이용하여 불황기의 손실을 보상하는 능력에 주로 달려 있다. 이 능력은 기계와 육체 노동에 대한 지배력으로부터 보장된다. 그들은 시장 상황에 따라 노동자들의 작업 활동을 증가시키거나 감소시킬 수 있도록,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노동자들을 항상 구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장주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이 나라의 부가 달려 있는) 우위를 결코 유지할 수 없다.’

 

맬더스조차 과잉 인구를 근대 산업의 필요 조건으로 인정한다. 다만, 그는 과잉 인구를 노동 인구 일부의 상대적 과잉으로 보지 않고, 노동 인구의 절대적 번식 과잉이라는 편협한 시각으로 설명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업과 상업에 주로 의존하는 나라에서 노동자 계급 사이의 결혼 억제가 상당한 정도로 실시된다면, 이는 그 나라에 해로울 수 있다. 특수한 수요 증대에 대응해 노동자를 시장에 제공할 수 있도록 인구의 성질이 갖춰지려면 16-18년이 지나야 한다. 그러나 수입이 자본으로 전환되는 것은 저축으로부터 그보다 훨씬 빠르게 행해질 수 있다. 한 나라는 언제나 노동 기금이 인구보다 급속히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경제학은 이처럼 상대적으로 과잉인 노동 인구의 끊임없는 생산을 자본주의적 축적의 필요 조건이라 선언한다. 이어서, 정치경제학은 곧바로 자본가의 시녀가 되어, 자본가로 하여금 (노동자들 자신의 생산물인 추가 자본으로부터 길거리로 내던져진) ‘과잉노동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하도록 한다.

 

우리 공장주들은 그대들의 생존에 필요한 자본을 증가시키면서 그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 그러니 그대들은 그대들의 수를 생존 수단에 맞추면서 나머지 일을 해야만 한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적 인구 증가가 제공하는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는 노동력의 양에 결코 만족할 수 없다.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기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이 자연적 제한에서

해방된 산업 예비군을 요구한다. 이제까지 우리는 가변 자본의 증감이 취업 노동자 수의 증감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가정했다. 가변 자본이 증가하더라도, 자본의 지배 아래 있는 노동자 수는 불변이거나 심지어 감소할 수 있다. 이는 개별 노동자가 더 많은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이 증가할 때 발생한다. 노동 가격(시간당 보수)이 불변이거나 허락하더라도, 그 인하 속도가 노동량 증대 속도보다 느리기만 하면 임금은 상승한다. 따라서 이 경우, 가변 자본의 증대는 더 많은 노동량의 지표일 뿐, 더 많은 취업 노동자 수의 지표가 아니다.

 

일정한 노동량을 더 많은 노동자가 아닌 더 적은 노동자에게서 짜내는 것이, 비용이 대략 같다면 모든 자본가에게 절대적 우위를 제공한다. 이는 전자의 경우, 불변 자본(공장 건물, 기계 등) 지출이 노동자 수에 비례하여 증가하나, 후자의 경우, 그 증가 폭이 훨씬 작기 때문이다. 생산 규모가 커질수록 이 동기(불변 자본 절약)는 더욱 결정적인 의의를 갖게 되며, 자본 축적과 함께 증가한다.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발전과 노동 생산성의 발전(이는 축적의 원인인 동시에 결과)에 따라, 자본가는 개별 노동력의 착취(외연적 또는 내포적)를 증대시킨다. 이로부터 종전과 동일한 양의 가변 자본 지출로 더 많은 노동량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또한, 앞에서 확인했듯이, 자본가는 숙련 노동자를 미숙련 노동자로, 성숙 노동자를 미성숙 노동자로, 남성 노동자를 여성 노동자로, 성인 노동자를 미성년자나 아동으로 교체한다. 이로부터 동일한 자본 가치로 더 많은 양의 노동력을 구매한다.

 

축적이 진행됨에 따라, 다음 세 가지 현상이 드러난다.

 

1. 더 큰 가변 자본이 노동자 수 증가 없이 더 많은 노동량을 동원한다.

 

2. 동일한 크기의 가변 자본이 같은 양의 노동력으로 더 많은 노동량을 가동시킨다.

 

3. 더 숙련된 노동력 대신 질이 낮은 다수의 노동력을 동원하는 방식으로 귀결된다.

 

상대적 과잉 인구의 생산(또는 노동자들의 풀려남)은 생산 과정의 기술적 변혁보다 더욱 급속히 진행된다. 이는 불변 자본 부분 대비 가변 자본 부분의 상대적 감소보다도 더욱 급속히 진행되는 현상이다. 생산 수단은 규모와 작용력이 증대함에 따라, 노동자들의 취업 수단이 되는 정도가 현저히 감소한다. 이러한 관계는 노동 생산성 증대에 따라, 자본이 노동자에 대한 수요보다 노동의 공급(노동자의 더 많은 노동)을 더 빠르게 증가시킨다는 사실로 인해 다시 수정된다. 따라서 취업 노동자들의 과도 노동은 예비군을 증가시킨다. 반대로, 예비군이 경쟁으로부터 취업자들에게 가하는 압박이 강화되면서, 취업자는 과도 노동을 하지 않을 수 없고, 자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자 계급의 일부에게 과도 노동을 시키고, 나머지 부분을 강요된 나태에 빠지게 하는 것, 그리고 산업 예비군 때문에 취업자가 과도 노동을 피할 수 없는 것은, 개별 자본가들의 치부 수단이 된다. 동시에 이는 사회적 축적의 진전에 상응하는 규모로 산업 예비군의 생산을 촉진한다. 이러한 상대적 과잉 인구 형성의 중요성은 영국의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영국에는 노동 절약을 위한 기술적 수단이 매우 많다. 그러나 당장이라도 노동을 전반적으로 합리적인 양으로 제한하고, 이를 노동자 계급 각층에게 나이와 성별에 알맞게 배정한다면, 현재의 국민적 생산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노동 인구는 절대로 부족하다. 현재의 비생산적노동자 대다수가 생산적노동자로 전환되어야만 한다.

 

임금의 일반적 변동은, 전체적으로 산업 순환의 국면 교체에 조응하는 산업 예비군의 팽창과 수축으로부터 전적으로 규제된다. 따라서 임금 변동은 노동 인구의 절대 수 변동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이 현역군과 예비군으로 분할되는 비율의 변동, 과잉 인구의 상대적 규모 증감, 그리고 과잉 인구가 흡수되거나 축출되는 정도로부터 결정된다. 10년 주기의 순환과 그 상이한 국면들을 통과하는 근대 산업(축적의 진행에 따라 국면들이 더욱 빠르게 서로를 뒤따르는 불규칙적 진동으로 복잡해지는)에 대해서, 다음 법칙이 적용된다. 자본 확장과 수축 교체(자본의 증식 욕구 크기)가 노동의 수요와 공급을 규제한다. , 자본이 팽창하여 노동 시장이 일시적으로 상대적 공급 부족이 되고, 자본이 수축하여 노동 시장이 일시적으로 상대적 공급 과잉이 된다. 이러한 자본의 운동이 단순히 인구의 운동에 종속하고 있는 것처럼 꾸미는 법칙은 명백히 엉터리 법칙이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자들의 교리이다. 이 교리에 따르면, 자본 축적의 결과로, 임금은 인상되고, 이 임금 인상은 노동 인구로 하여금 더 급속하게 번식하도록 자극한다. 이 상황은 노동 시장이 공급 과잉으로 될 때까지(자본이 노동자 공급에 비해 불충분해질 때까지) 계속된다. 이제 임금이 인하되고 상황은 역전된다. 임금 인하의 결과로, 노동 인구는 점차 감소하며, 이로부터 노동 인구 대비 자본이 다시 과잉으로 된다. 또는 다른 설명에 따르면, 임금 인하와 착취 강화는 다시 축적을 촉진하고, 동시에 임금의 낮은 수준이 노동자 계급의 증식을 억제한다. 결국 노동자의 공급이 수요보다 적어지고 임금이 인상되는 시기가 다시 찾아온다.

 

참으로 이것은 발전된 자본주의적 생산의 아주 훌륭한 운동 방식이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임금 상승이 (실제로 노동할 수 있는) 인구의 적극적인 증가를 낳기 이전에 (새로 태어난 아이가 성년이 되기 전에), 산업 전쟁(노동자 부족을 해결하려는 고용주들의 조직적 활동)이 진행되고, 전투가 벌어지고 승패가 결정되어야 할 여러 기간이 이미 경과했다. 1849년에서 1859년 사이 영국의 농업 지방에서는 미미한 임금 인상이 있었다(동반된 곡물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예를 들어, 윌트셔에서는 주급이 7실링에서 8실링으로, 도싯셔에서는 7-8실링에서 9실링으로 인상되었다. 이는 전쟁을 위한 노동 수요, 철도 부설, 공장 및 광산의 대확장으로 인해 과잉 농업 인구가 예외적으로 대규모로 빠져나간 결과이다.

 

임금이 낮을수록, 미미한 인상액도 높은 인상률을 표현한다. 주급이 20실링에서 22실링으로 오르면 10% 인상이지만, 7실링에서 9실링으로 오르면, 0.285714 인상되어 매우 큰 폭의 인상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차지 농업가들은 아우성쳤고, 런던이코노미스트지조차 이 기아 수준의 임금에 대해 전반적이며 대단한 임금 인상이라고 진지하게 호도했다. 그러자 차지 농업가들은 교조적인 경제학자들의 생각대로, 임금 인상의 결과로 농업 노동자들이 증식하여 임금이 하락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그들은 더 많은 기계를 도입했고,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순식간에 차지 농업가들도 만족할 정도로 다시 과잉 상태가 되었다. 이제 농업에는 종전보다 더 많은 자본, 그것도 더욱 생산적인 형태로 투하되었다. 이 결과, 노동에 대한 수요는 상대적으로뿐 아니라 절대적으로도 감소했다.

 

이처럼 경제학적 허구(임금 상승 인구 증가 임금 하락)는 임금의 일반적 운동을 규제하는 법칙, 곧 노동자 계급(총 노동력)과 사회적 총자본 사이의 비율 관계를 규제하는 법칙과 노동 인구를 상이한 생산 부문들에 배분하는 법칙을 혼동한다. 예를 들어, 호경기의 결과 특정 생산 부문에서 축적이 특히 활발하고, 이윤이 평균보다 높아 추가 자본이 이 부문으로 밀려들면, 노동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임금은 인상된다. 더 높은 임금은 노동 인구의 더 많은 부분을 경기가 좋은 이 부문으로 끌어들이고, 마침내 이 부문은 노동력으로 포화 상태가 된다. 결국 임금은 다시 종전의 평균 수준으로 떨어지거나, 노동력이 과도하게 유입된 경우에는 그 이하로 하락한다. 이 시점에서는, 이 산업 부문으로의 노동자 유입이 정지될 뿐 아니라 유출까지 발생한다. 이 경우, 정치경제학자는 임금 상승에 따라 노동자 수의 절대적 증가가 일어나고, 그 증가에 따라 임금 인하가 일어난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그가 실제로 목격하는 것은 특수한 생산 부문에서 노동 시장의 부분적 움직임이며, 이는 자본의 필요 변화에 따라 상이한 자본 투하 부문으로 노동 인구가 분배되는 현상에 불과하다.

 

산업 예비군(상대적 과잉 인구)은 침체기와 평균 정도의 호황기에는 현역 노동자 군대에 압력을 가한다. 또한 과잉 생산과 열광적인 확장기에는 현역군의 요구(임금 인상)를 억제한다. 따라서 상대적 과잉 인구는 노동의 수요와 공급 법칙이 작용하는 배경이 되며, 이 법칙의 작용 범위를 자본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욕과 지배욕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한계 안에 국한시킨다.

 

경제학적 변호론의 탁월한 업적 중 하나를 다시 논하자. 그들은 새로운 기계 도입이나 낡은 기계 확장으로 가변 자본 일부가 불변 자본으로 전환될 때, 이 행위(자본을 기계에 묶어 놓고노동자들을 풀려나게하는)를 정반대로 노동자들을 위해 자본을 풀려나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제야 우리는 변호론자들이 얼마나 파렴치한가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다. 풀려나는 것은 기계로부터 직접 쫓겨나는 노동자들만이 아니다. 장래에 그들을 대체할 자라나는 세대의 보충 인원도, 그리고 사업이 종전 토대 위에서 일반적으로 확장될 때, 규칙적으로 흡수되었을 추가 인원도 풀려난다. 이제 그들은 모두가 풀려났으며’, 따라서 투자할 곳을 찾는 새로운 자본은 그들을 자유로이 처분할 수 있다.

 

 

이처럼 자본이 흡수하는 것이 그들이든 다른 사람이든, 이 자본이 (기계가 시장에 내던진 노동자들과) 동일한 수의 노동자를 노동 시장에서 끌어낸다면(취업시킨다면), 전반적인 노동 수요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 자본이 더 적은 노동자를 취업시킨다면 과잉 노동자의 수는 증가한다. 더 많은 노동자를 취업시킨다면, 전반적인 노동 수요는 (취업자의 수가 풀려난수를 초과하는 만큼) 증가한다. 따라서 투자할 곳을 찾는 추가 자본이 전반적인 노동 수요를 촉진하는 성과는, 기계로부터 길에 내던져진 노동자들이 모두 흡수될 때까지는 아무 것도 없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 기구(메커니즘)는 자본의 절대적 증가가 전반적인 노동 수요의 상응하는 증대를 수반하지 않도록 조치한다. 그런데 변호론자는 바로 이것(추가 자본이 실직자를 다시 고용하는 것)을 노동자들이 쫓겨나서 산업 예비군으로 있는 과도기에 겪는 빈궁, 고난, (있을 수 있는) 사망에 대한 보상이라고 부른다!

 

노동에 대한 수요는 자본의 증가와 동일하지 않으며, 노동의 공급은 노동자 계급의 증가와 동일하지 않다. 여기서는 서로 독립된 두 개의 힘(자본과 노동)이 상호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은 한쪽이 무겁게 된 주사위처럼, 두 측면 모두에서 동시에 작용한다. 자본의 축적이 한편으로 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를 풀려나게하여 노동자의 공급을 증대시킨다. 동시에 실업자들의 압력은 취업자들로 하여금 더 많은 노동을 수행하도록 강제하며, 이로부터 노동의 공급을 일정한 정도까지 노동자의 공급과 무관한 것으로 만든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행해지는 노동의 수요·공급 법칙의 작용은 자본의 독재를 완성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많이 일할수록, 타인의 부가 그만큼 더 많아지며, 그들의 노동 생산성이 증가할수록, 자본의 가치 증식 수단으로 자기 기능조차 그만큼 더 위태롭게 된다는 비밀을 알게 되자마자, 또한 그들이 자기들 사이의 경쟁 강도가 전적으로 상대적 과잉 인구의 압력에 달려 있음을 알게 되자마자, 그들이 자본주의적 생산의 이 자연 법칙이 자기들 계급에 미치는 파멸적 영향을 제거하거나 약화시키기 위해 노동 조합의 설립 등으로부터 취업자와 실업자 사이의 계획된 협력을 조직하려고 노력하자마자, 자본과 그의 아첨꾼인 정치경제학은 이를 영원한그리고 이른바 신성한수요·공급 법칙에 대한 침해라고 소리친다. 취업자와 실업자 사이의 단결이 이 법칙의 조화로운작용을 교란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식민지 등에서) 불리한 사정들이 산업 예비군의 형성과 이에 따른 자본가 계급에 대한 노동자 계급의 절대적 종속을 방해하자마자, 자본은 그의 세속적인 산초 판사(아첨하는 경제학자)와 함께 수요·공급의 신성한법칙에 반기를 들고 강제 수단과 국가 개입으로부터 그 법칙의 작용을 저지하려고 한다.

 

25-4. 상대적 과잉 인구의 상이한 형태

 

상대적 과잉 인구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각 노동자는 부분적으로 취업하거나 완전히 실업 상태인 기간에는 상대적 과잉 인구에 포함된다. 산업 순환의 국면 교체로부터 주기적으로 대규모로 나타나는 형태들(공황기의 급성적 형태, 불황기의 만성의 형태)를 제외하면, 과잉 인구는 언제나 세 가지 형태, 곧 유동적, 잠재적, 정체적 형태를 띠고 있다.

 

근대 산업의 중심지인 공장, 공장제 수공업, 제철소, 광산 등에서는 노동자들이 때로는 대규모로 축출되고, 때로는 대규모로 재흡수되어, 취업자의 수는 비록 생산 규모 대비 끊임없이 감소하는 비율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증대한다. 이 경우, 과잉 인구는 유동적 형태로 존재한다. (기계가 하나의 요소로 사용되거나 근대적 분업만이 실시되는) 대작업장에서와 마찬가지로, 자동화된 공장에서는 수많은 소년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고용되고 있다.

 

일단 성인이 되면 동일 사업 부문에 계속 남아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며, 대다수는 으레 해고된다. 이들은 유동적 과잉 인구의 한 요소를 이루며, 해당 사업 부문의 확대에 따라 증가한다. 그들 중 일부는 국외로 이주하는데, 이는 실질적으로 국외로 나간 자본을 뒤따라가는 것에 불과하다. 다른 결과로는, 여성 노동 인구가 남성에 비해 더욱 급속히 증가하는 현상이 있는데, 그 예는 영국에서 나타난다.

 

노동자 수의 자연적 증가가 자본의 축적 욕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동시에 그 욕구를 초과한다는 사실은 자본의 운동 자체가 지닌 모순이다. 이는 자본이 연소한 노동자를 더 많이 요구하고, 성인 노동자는 더 적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수천 명이 실직하고 있는 바로 그때, ‘일손이 부족하다고 한탄이 들려오는 것 역시 모순이다. 이는 분업의 결과로, 실업자는 일정한 생산 부문 이외에는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자본으로부터 노동력의 소모가 너무나 급격하여, 중년의 노동자는 이미 다소간 노쇠하게 된다. 그는 과잉 인구의 대열로 낙오되거나, 높은 등급에서 낮은 등급으로 밀려 내려온다. 노동자들의 수명이 가장 짧은 곳은 바로 대공업이다. 맨체스터 보건 관리 리의 말에 따르면,

 

맨체스터의 평균 수명은 상층 중간 계급이 38세인 반면, 노동자 계급은 17세에 불과하다. 리버풀에서는 전자는 35, 후자는 15세이다. 따라서 부유층의 수명은 더 불리한 조건에 있는 시민들의 수명에 비해 2배 이상 길다.’

 

대공업 노동자의 절대적 증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그 개별 구성 요소들의 급속한 소멸에도, 그 수가 팽창하는 형태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노동자 세대의 급속한 교체가 요구된다 (이 법칙은 인구 중 다른 계급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적 요구는 조혼(대공업 노동자들의 생활 환경의 필연적 결과)과 장려금(아동 노동 착취가 아동 생산에 제공하는, 곧 아동이 벌어오는 임금 때문에 아이들을 많이 가지려는 것)으로부터 충족된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농업을 장악하고, 그것을 장악한 정도에 비례하여, 농업에 투하된 자본의 축적이 진전되는 동안, 농촌 노동 인구에 대한 수요는 절대적으로 감소한다. 여기서는 (다른 비농업 산업에서와는 달리) 노동자의 축출이 더 큰 흡수로 보상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농촌 인구의 일부는 끊임없이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나 비농업 프롤레타리아트로 전환되는 상태에 놓이며, 이 전환에 유리한 조건을 기다린다. 이처럼 상대적 과잉 인구의 원천으로부터 끊임없는 이동이 발생한다. 그러나 그들이 도시로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것은 농촌 자체 안에 항상적인 잠재적 과잉 인구가 있다는 것을 전제하며, 이 잠재적 과잉 인구의 규모는 그 출구가 예외적으로 넓게 열릴 때에만 눈에 띈다. 결국, 농촌 노동자는 최저 한도의 임금 수준으로 밀려 떨어며, 그들의 한쪽 다리는 이미 극빈자의 늪 속에 빠져 있다.

 

상대적 과잉 인구의 제3 범주인 정체적 과잉 인구는, 취업이 매우 불규칙한 현역 노동자 집단의 일부를 구성한다. 따라서 이 정체적 과잉 인구는 자본에게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노동력의 한없이 큰 저수지를 제공한다. 그들의 생활 형편은 노동자 계급의 표준적인 평균 수준 이하로 떨어지며, 바로 이 사실로 말미암아 그들은 자본주의적 착취의 특수 부문들을 위한 폭넓은 기초가 된다. 그들의 특징은 최대 한도의 노동 시간과 최소 한도의 임금이다. 우리는 그들의 주요 형태를 이미 가내 공업 항목에서 확인했다. 이 정체적 과잉 인구는 대공업과 농업의 과잉 노동자로부터 끊임없이 보충된다. 또한 특히 몰락하고 있는 공업 부문(수공업적 생산이 공장제 수공업적 생산에, 공장제 수공업적 생산이 기계제 생산에 정복당하는 경우)으로부터도 보충된다. 그들의 규모는 축적의 규모, 활력의 증대와 함께 과잉 인구의 창출이 진전됨에 따라 증대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노동자 계급 중 자기 자신을 재생산하고 영구화하는 요소이며, 노동자 계급의 총 증가 중에서 다른 요소들보다 상대적으로 큰 비율을 차지하는 요소이다.

  

출생자 수와 사망자 수뿐 아니라 가족의 절대적 크기까지도 임금의 크기(노동자들이 처분할 수 있는 생활 수단의 양)에 반비례한다. 이는 곧 임금이 낮을수록 출생자와 사망자의 수가 그만큼 더 커지고, 가족의 구성원 수도 그만큼 더 커진다는 의미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이 법칙은 야만인이나 심지어 문명화된 식민지 사람들에게도 괴상하게 들린다. 이 현상은 개별적으로는 힘이 없어 항상 쫓겨 다니는 동물류의 거대한 종족 번식을 연상시킨다.

 

최종적으로, 상대적 과잉 인구의 최하층은 구호 빈민 상태에 놓인다. 부랑자, 죄인, 매춘부 등 본래의 룸펜 프롤레타리아트를 제외하면, 이 사회층은 세 가지 범주로 구성된다. 첫째, 노동할 수 있는 사람이다. 영국의 구호 빈민 통계에 따르면, 그 수는 공황기에 언제나 증가하고, 회복기에는 언제나 감소한다. 둘째, 고아와 구호 빈민의 아이들이다. 이들 세 번째 범주는 타락한 사람들, 지친 사람들, 노동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특히 분업으로 인해 직업을 바꿀 능력을 상실하여 몰락한 사람들이다. 또한 위험한 기계, 광산, 화학 공장 따위의 증가에 따라, 그 수가 점점 늘어나는 산업 재해자인 불구자, 병자, 과부 등이다. 구호 빈민은 현역 노동자군의 폐인 수용소이자 산업 예비군의 고정 구성원이다.

 

구호 빈민의 생산은 상대적 과잉 인구의 생산에 포함되며, 전자의 필연성은 후자의 필연성에 포섭된다. 구호 빈민은 상대적 과잉 인구와 더불어 부의 자본주의적 생산과 발전이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이룬다. 구호 빈민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공비(생산에 직접 공헌하지 않는 비용)의 일부를 구성한다. 그러나 자본은 그 비용 부담의 대부분을 자기 자신의 어깨로부터 노동자 계급과 하층 중간 계급의 어깨로 전가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사회적 부, 기능하는 자본, 기능 자본 증대의 규모와 활력,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절대 수와 그들 노동의 생산력이 클수록, 산업 예비군은 그만큼 더 커진다. 자본의 확장력을 발전시키는 바로 그 원인들이 또한 자본이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노동력을 증가시킨다. 다시 말해, 산업 예비군의 상대적 크기는 부의 잠재적 활력과 함께 증대한다. 그런데 이 산업 예비군이 노동자 현역군에 비해 클수록, 고통스러운 노동을 하지 않으면 더욱 빈곤해지는, 고정적 과잉 인구는 그만큼 더 많아진다.

 

노동자 계급의 극빈층과 산업 예비군이 클수록, 공식적인 구호 빈민은 그만큼 더 증가한다. 이것이 자본주의적 축적의 절대적 일반 법칙이다. 다른 법칙과 마찬가지로, 이 법칙 역시 실현 과정에서 여러 사정으로 수정되나, 그 분석은 여기의 관심사가 아니다.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수를 자본의 증식 욕구에 적응시키라 설교하는 경제학적 지혜의 어리석음은 이제 명백하다.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과 축적의 원리가 이 수를 끊임없이 자본의 증식 욕구에 적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적응의 첫 번째 결과는 상대적 과잉 인구 또는 산업 예비군의 창출이며, 마지막 결과는, 노동자 현역군 중 끊임없이 증대하는 부분의 빈곤과 구호 빈민이다.

 

점점 더 증가하는 양의 생산 수단이 사회적 노동의 생산력 증가로 인해 더욱더 적은 인간 힘의 지출로 가동된다는 법칙은, 노동자가 생산 수단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수단이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완전히 전도되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 노동 생산력이 높을수록, 노동자들이 취업 수단(일자리)에 가하는 압력은 그만큼 더 커지며, 따라서 그들의 생존 조건(타인의 치부, 곧 자본의 가치 증식을 위해 그들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것)은 그만큼 더 불확실하게 된다. 따라서 생산 수단과 노동 생산력이 생산적 인구보다 더 빨리 증가한다는 사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거꾸로 노동 인구는 언제나 자본의 가치 증식 욕구보다 더 빨리 증가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4편에서 분석했듯이,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모든 방법은 개별 노동자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다. 생산을 발전시키는 모든 수단들은 생산자를 지배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전환된다. 이는 노동자를 부분 인간으로 불구화하고, 기계의 부속물로 격하시키며, 그의 노동의 고유한 가치를 파괴하면서, 노동을 혐오스러운 고통으로 바꾼다. 또한 과학이 독립적인 힘으로 노동 과정에 도입되는 정도에 비례하여 노동 과정의 지적 잠재력을 노동자로부터 소외시킨다. 더 나아가, 노동 생산력을 향상시키는 모든 방법과 수단은 노동자의 노동 조건을 악화시킨다. 이들은 노동자를 노동 과정에서 비열하기 때문에 더욱 혐오스러운 자본의 독재에 굴복시키고, 노동자의 전체 생활 시간을 노동 시간으로 전환시키며, 그의 처자를 자본이라는 저거노트의 수레바퀴 밑으로, (자본을 위해 희생시키려고) 질질 끌고 간다.

 

잉여 가치 생산의 모든 방법은 곧 축적의 방법이며, 축적의 모든 확대는 다시 이 방법을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자본이 축적됨에 따라 노동자가 받는 임금 수준과 무관하게, 그의 상태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궁극적으로, 상대적 과잉 인구(산업 예비군)를 축적의 규모와 활력에 상응하도록 유지하는 법칙은, 헤파이스토스의 쐐기보다 더 단단하게 노동자를 자본에 결박시킨다. 이 법칙은 자본 축적에 상응하는 빈곤의 축적을 필연화한다. 결과적으로, 한쪽 끝에서 부의 축적은 동시에 반대편 끝, 곧 자신의 생산물을 자본으로 생산하는 노동자 계급 측의 빈곤, 노동 고통, 노예 상태, 무지, 잔인, 도덕적 타락의 축적이다.

 

자본주의적 축적의 적대적 성격은 정치경제학자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언급되어 왔다. 그러나 그들은 이를 전()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 아래의 현상(부분적으로 비슷하나, 본질적으로 다른)과 혼동한다.

 

18세기 위대한 경제학 저술가 중 한 명인, 베니스의 수도승 오르테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적대 관계를 사회적 부의 일반적 자연 법칙으로 보았다.

 

경제적 선과 경제적 악은 한 나라 안에서는 항상 균형을 이룬다. , 일부 사람들의 부의 풍족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부의 결핍과 크기가 동일하며, 소수의 거대한 부는 항상 다수 생활 필수품의 절대적 박탈을 수반한다. 한 국민의 부는 그 인구에, 그 빈곤은 그 부에 대응한다. 이는 부지런한 사람과 부자의 필연적 결과가, 게으른 사람과 가난한 사람임을 의미한다.’

 

오르테스보다 약 10년 후, 영국 국교의 목사 타운센드는 매우 난폭하게 빈곤을 부의 필요 조건이라고 찬양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법으로부터 노동의 강제는 너무나 큰 분쟁, 폭력, 물의를 수반한다. 반면, 굶주림은 근면과 노동에 대한 평화적이고, 조용하며, 끊임없는 압력일 뿐 아니라, 가장 자연적인 동기를 주어 최대의 노력을 불러일으킨다.’

 

결국 모든 것은 노동자 계급의 굶주림을 영구화하는 데 달려 있으며, 타운센드의 의견에 따르면, 이는 특히 빈민들 사이에 적용되는 인구 법칙으로부터 제공된다.

 

빈민은 어느 정도 선경지명이 없고(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날 만한 선견지명이 없고), 그래서 사회의 가장 천하고, 가장 더럽고, 가장 열등한 직능을 행하는 사람이 항상 있다는 것은 하나의 자연 법칙이라고 생각된다. 이로 말미암아 인류의 행복 총량은 매우 증가하며, 더 점잖은 사람들은 고역에서 해방되어, 아무런 지장도 받지 않고, 더 고상한 직업에 종사할 수 있다. 구빈법은 신과 자연이 세상에 세우신 이 체제의 조화와 아름다움, 균형과 질서를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

 

베니스의 수도승이 빈궁의 영구화라는 운명 속에서 기독교적 자선, 독신, 수도원, 성당의 존재 이유를 찾았다면, 신교 목사는 반대로 거기에서 영국의 구빈법(빈민들에게 쥐꼬리만한 공적 구호 권리를 부여한 법)을 비난할 구실을 발견했다. 슈토르히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회적 부의 발전은 이 유용한 사회 계급을 창출한다. 이 계급은 가장 무미건조하고, 천하며, 싫증나는 일들을 하며, 한마디로 생활에서 불쾌하고 비굴할 일을 모두 짊어진다. 바로 그렇게 하면서 다른 계급들에게 여가, 정신의 안정, 관습적인 품위를 보장해 준다.’

 

슈토르히는 대중의 빈곤과 타락을 수반하는 자본주의적 문명이 야만보다 우월한 점이 무엇인지 자문한다. 그가 발견한 유일한 대답은 안전 보장이다! 시스몽디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산업과 과학의 발전으로 모든 노동자는 매일 자신의 소비에 필요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생산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노동이 부를 생산하지만, 그 자신이 그것을 소비하게 된다면, 그 부는 그를 노동에 부적합하게 만들 것이다. 사람들(노동자가 아닌 사람들)이 예술 작품이나 향락품을 얻기 위해 노동자들처럼 끊임없이 노동해야만 한다면, 그들은 그 모든 것을 가지지 않고 살아가는 편을 택할 것이다. 오늘날에는 노동이 그 보상과 분리되어 있다. 동일한 사람이 먼저 일하고 다음에 휴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일을 하기 때문에 비로소 다른 사람이 휴식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노동 생산력의 무한한 증가는 놀고먹는 부자들의 사치와 향락의 증가 외의 다른 어떤 결과도 가져올 수 없다.’

 

마지막으로, 냉담한 부르주아 공리 공론가인 데스튀드 드 트라시는 다음과 같이 난폭하게 진술한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대중들이 편안하게 살아가고, 부유한 나라에서는 대중들이 일반적으로 가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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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

 

25-1. 자본 구성 불변 시 노동력 수요 증가

 

본 장은 자본 증대가 노동자 계급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을 고찰한다. 이 고찰의 핵심 요소는 자본의 구성과, 축적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구성의 변화에 집중한다.

 

자본의 구성은 가치 측면과 소재 측면의 두 관점에서 고찰된다. 가치 구성은 자본이 불변 자본 (생산 수단의 가치)과 가변 자본 (노동력의 가치, 곧 임금 총액)으로 분할되는 비율로부터 결정된다. 반면, 기술적 구성은 생산 과정에서 기능하는 소재의 측면을 다루며, 이는 사용되는 생산 수단의 양과 이의 활용에 필요한 노동량 사이의 관계로 규정된다. 전자를 자본의 가치 구성이라 칭하며, 후자를 자본의 기술적 구성이라 부른다. 양자는 긴밀히 상호 관계를 형성하는데, 자본의 가치 구성이 기술적 구성으로부터 결정되고 그 변화를 나타낼 때, 이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라 한다.

 

본 글에서 자본의 구성이라 간략히 지칭하면 언제나 자본의 유기적 구성을 의미한다. 일정한 생산 부문에 투하된 개별 자본들은 각기 상이한 구성을 지닌다. 이 개별 구성의 평균은 해당 생산 부문 총자본의 구성을 도출하게 한다. 궁극적으로, 각 생산 부문 평균 구성의 총평균은 한 나라에서 사회적 총자본의 구성을 규명하며, 이하 논의는 오로지 이 사회적 총자본의 구성을 대상으로 한다.

 

자본 증대는 그 가변적 구성 부분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부분)의 증가를 수반한다. 추가 자본으로 전환되는 잉여 가치의 일부는 필연적으로 가변 자본 (추가적 노동 기금)으로 계속 재전환되어야 한다. 다른 사정들이 불변이며, 자본의 (유기적) 구성 또한 불변이라 가정할 경우 (, 일정한 양의 생산 수단을 운용하는 데 언제나 동일한 양의 노동력이 요구된다고 가정할 경우), 노동력에 대한 수요와 노동자의 생활을 위한 재원은 자본에 비례하여 증가하며, 자본의 증가 속도가 빠를수록, 이들 요소 또한 더욱 빠르게 증가하는 결과가 초래한다.

 

자본은 매년 잉여 가치를 생산하며, 그 일부는 최초 자본에 지속적으로 편입된다. 이 편입분 자체는 이미 기능하는 자본 규모의 증대에 비례하여 매년 증가한다. 나아가, 치부욕에 대한 특별한 자극 (: 새로운 시장 개척, 새로운 사회적 욕구 발전에 따른 신규 투자 영역 창출)이 발생할 경우, 잉여 가치 또는 잉여 생산물이 자본의 수입으로 분할되는 것의 변동만으로도, 축적의 규모는 급격히 확대될 수 있다. 따라서 자본의 축적욕이 노동력 (또는 노동자 수)의 증가를 능가할 여지가 생기며, 노동자들에 대한 수요가 그 공급을 초과하여 임금 등귀가 유발될 수 있다. 앞서 설정한 전제 (자본 구성 불변)가 유지된다면, 이러한 결과는 필연적이다. 매년 전년보다 더 많은 노동자가 고용되면서, 축적에 필요한 노동력이 평상시의 노동 공급을 상회하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조만간 임금 등귀가 발생하는 시점이 도래할 수밖에 없다.

 

영국에서 15세기 전체와 18세기 전반기에 걸쳐 이러한 상황을 한탄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그러나 임금 노동자들이 다소 유리한 조건 아래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번식한다 하더라도, 이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근본적 성격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는다. 단순 재생산이 자본 관계 자체, 곧 한편으로 자본가를, 다른 한편으로 임금 노동자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대된 규모의 재생산 (곧 축적) 역시 자본 관계를 확대된 규모로 재생산한다. 이는 한쪽 끝에 더 많은 자본가 또는 더 큰 자본가를, 다른 쪽 끝에 더 많은 임금 노동자를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는다. 노동력은 자본의 가치 증식 수단으로 끊임없이 자본에 다시 결합되어야 하며, 자본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노동력의 재생산은 사실상 자본 자체의 재생산을 위한 하나의 요소이다. 노동력의 자본에 대한 예속은 단지 노동력을 개별 자본가에게 팔 수 있다는 사실로 은폐될 뿐이다. 결론적으로, 자본의 축적은 곧 프롤레타리아트의 증식이다.

 

고전파 경제학은 이 명제 (자본 축적 = 프롤레타리아트 증식)를 명확히 이해했기에, 애덤 스미스나 리카도 등은 축적을, 잉여 생산물 중 자본으로 전환되는 부분 전체가 생산적 노동자로부터 소비되는 것, 또는 그 부분이 추가적 임금 노동자로 전환되는 것으로 잘못 동일시했다. 이미 1696, 벨러즈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어떤 사람이 100,000에이커의 토지와 100,000파운드의 화폐, 100,000마리의 가축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노동자를 한 명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이 부자는 노동자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노동자가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들기 때문에 노동자가 많을수록, 부자도 그만큼 더 많아진다. 빈민 (노동자)의 노동은 부자의 보물 창고이다.’

 

맨더빌 역시 18세기 초에 다음과 같은 주장을 피력한다:

 

소유권이 잘 보호되고 곳에서는 빈민 없이 생활하기보다 화폐 없이 생활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사실, 누가 노동을 하겠는가. 그들 (빈민들)은 굶어 죽지 않도록 보호되어야 하지만, 저축할 만큼은 받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최하층 계급 중 누군가가 매우 근면하고, 검소한 덕분에 태어난 지위보다 높아질 때, 아무도 그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개인과 가정을 위해 검소하게 생활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일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빈민이 놀고 지내지 않으며, 그들이 자신의 수입을 계속 지출하는 것은 모든 부유한 국민들에게 유익하다. 그날의 노동으로부터 생계를 꾸려가는 사람들에게 일을 하도록 자극을 주는 것은 오직 가난 뿐이다. 그 가난을 완화시키는 것은 현명하지만, 완전히 제거해 버리는 것은 어리석다. 노동하는 사람을 근면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적당한 임금이다. 너무 낮은 임금은 그의 성격에 따라 낙담시키거나 절망하게 만들며, 너무 많은 임금은 불손하고 나태하게 한다. 결론적으로, 노예가 허용되지 않는 자유로운 나라에서 가장 확실한 부는 다수의 근면한 빈민에게 있다. 그들은 육해군을 위한 무진장한 공급 원천일 뿐만 아니라, 그들 없이는 어떤 향략도 있을 수 없으며, 어떤 나라의 생산물도 가치를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 (물론 노동자들이 아닌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행복하게 하고, 국민을 비참한 상태에서도 만족하게 하려면, 대다수를 무지하고 가난한 상태에 묶어둘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지식은 우리의 욕구를 확대하고 다양하게 만들기 때문이며, 사람이 적게 바랄수록, 그의 욕구는 그만큼 더 쉽게 충족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직하고 명석한 두뇌를 가진 맨더빌조차 미처 파악하지 못한 지점은, 축적 과정 그 자체가 자본의 크기뿐 아니라 노동 빈민의 수 또한 증가시킨다는 사실이다. 이 노동 빈민, 곧 임금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력을 (증대하는 자본의) 가치 증식을 확장하는 힘으로 전환시키며, 바로 그렇게 하면서 자기 자신의 생산물 (이것은 자본가로 인격화된다)에 대한 자기 자신의 종속 관계를 영구화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종속 관계에 관해 이든은 그의 저서,빈민의 상태(1797)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이든이 승인하는 시민적 제도는 부자와 노동자를 구별하는 기준이 토지와 화폐의 소유가 아닌 노동에 대한 지배력임을 명확히 한다.

 

우리 토지의 자연적 산물만으로는 생활에 분명히 충분하지 못하다. 어느 정도 이전 노동의 결과 없이는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따라서 사회의 일부는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이 노동하지 않으면서도, 노동의 생산물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문명과 질서의 덕택이며, 이들은 전적으로 시민적 제도의 창조물이다. 왜냐하면, 시민적 제도는 개인이 노동 이외의 각종 수단으로부터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독립적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그 재산을 얻게 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노동 덕택이지, 자기 자신들의 뛰어난 능력 때문이 아니다. 부자를 노동자들과 구별하는 것은 토지와 화폐의 소유가 아니라 노동에 대한 지배력이다. 이 제도 (시민적 제도)는 유산자들에게 (자신들을 위해 노동하는 사람들에 대한) 충분한 세력과 권위를 부여하며, 또한 노동자들을 비참하거나 노예적 상태가 아닌 편안하고 자유로운 종속의 상태에 둔다. 이런 종속 상태는 인간성과 그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하듯이, 노동자 자신의 안락을 위해 필요하다.’

 

덧붙여, 이든은 18세기 애덤 스미스의 제자들 중 유일하게 주목할 만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다. 지금까지 가정한 축적 조건, 곧 노동자들에게 가장 유리한 상황 하에서는, 자본에 대한 노동자들의 종속 관계는 견딜 만한, 또는 이든의 표현대로, ‘편안하고 자유로운형태를 띤다. 이 종속 관계는 자본의 증대에 따라 내포적으로 심화되지 않고, 오직 외연적으로 확대될 뿐이다. 자본의 착취와 지배 영역이 자본 자체의 크기와 이에 종속되는 사람들의 수에 비례하여 확장된다. 노동자들 자신의 잉여 생산물 (지속적으로 증대하며 끊임없이 추가 자본으로 전환되는 부분) 중 더 많은 몫이 지불 수단 (임금)의 형태로 이들에게 환원된다. 이 덕택에, 노동자들은 자신의 소비 범위를 확대하고, 의복, 가구 등의 소비 재원을 소폭 증대시키며, 심지어는 약간의 준비금까지 형성할 수 있게 된다.

 

노예의 경우, 의식주 및 대우가 개선되고, 페쿨리움 (고대 로마 노예의 일부 재산)이 증가하더라도, 노예의 종속 관계와 착취가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임금 노동자의 종속 관계와 착취 역시 소멸하지 않는다. 자본 축적의 결과로, 노동의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사실상 임금 노동자 자신이 이미 만들어낸 금 사슬 (자본)의 길이와 무게로 말미암아 그 사슬의 긴장이 약간 완화됨을 의미할 따름이다. 이 문제에 관한 논쟁에서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특징적 차이가 흔히 간과되었다. 노동력은 구매자 자신의 개인적 욕구 충족을 위해 구매되는 것이 아니다. 구매자의 목적은 자기 자본의 가치 증식이며, 이는 그가 지불한 것보다 더 많은 노동이 포함된 상품 (따라서 그가 지불하지 않은 가치 부분이 포함된 상품)의 생산으로부터 실현된다. 잉여 가치의 생산 또는 이윤의 획득이 이 생산 양식의 절대적 법칙이다. 노동력은 생산 수단을 자본으로 유지시키고,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자본으로 재생산하며, 지불받지 않는 노동으로 추가 자본의 원천을 제공하는 한에서만 판매될 수 있다. 따라서 노동력 판매 조건은, 노동자들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노동력의 끊임없는 재판매의 필연성과 자본의 형태로 부를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것을 내포한다.

 

임금은, 그 성격상, 항상 노동자 측에서 일정한 양의 지불받지 않는 노동을 제공하는 것을 수반한다. (노동일 연장에 따라) 노동의 가격 (시간당 또는 개수당 임금)이 하락하는데도 임금이 증가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임금의 증가는 기껏해야 노동자가 제공해야 할 지불받지 않는 노동의 양적 감소만을 의미할 따름이다. 이 감소는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점까지는 결코 도달할 수 없다. 임금률을 둘러싼 폭력적 충돌 (애덤 스미스가 지적했듯이, 고용주가 대체로 승리하는)을 도외로 할 때, 자본 축적의 결과, 노동의 가격이 등귀하는 일은 다음 두 경우 중 하나를 의미한다.

 

첫째, 노동의 가격이 등귀하더라도, 축적의 진행이 방해받지 않고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우이다. 이는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스미스가 지적하듯이,

 

자본 이윤이 감소한 이후에도, 자본은 계속 증가할 수 있으며, 심지어 이전보다 더욱 빠르게 증가할 수 있다. 이윤율이 낮은 거대 자본은 이윤율이 높은 소규모 자본보다 일반적으로 더 신속하게 증식한다.’

 

[국부론(): 121]

 

둘째, 노동 가격의 등귀로 인해 이윤이라는 자극이 감소하여 축적이 약화되는 경우이다. 이로 인해, 축적률 (잉여 가치 중 자본으로 재전환되는 부분의 비율)은 감소한다. 그러나 이 감소와 더불어, 그 원인이었던 자본과 착취할 수 있는 노동력 사이의 불균형 (곧 착취할 수 있는 노동력의 양을 초과하는 자본의 양) 역시 해소된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생산 과정의 기구는 생산 과정 자체가 만들어낸 일시적인 장애물을 스스로 제거하는 원리를 갖춘다.

 

노동 가격은 다시 자본의 자기 증식욕에 적합한 수준 (이 수준이 임금 등귀 시작 전의 평균적 수준보다 낮거나, 같거나, 높든지 관계없이)으로 하락한다. 따라서 첫째 경우, 노동력 (또는 노동 인구)의 절대적 또는 상대적 증가율이 감소했기 때문에 자본이 과잉이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자본의 증가가 착취할 수 있는 노동력을 부족하게 만든다. 둘째 경우에도, 노동력 (또는 노동 인구)의 절대적 또는 상대적 증가율이 커졌기 때문에 자본이 부족하게 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자본이 상대적으로 감소했기 때문에 착취할 수 있는 노동력 (또는 그 가격)이 지나치게 큰 것으로 간주된다.

 

바로 이러한 자본 축적의 절대적 운동이 착취할 수 있는 노동력의 양적 상대 변동을 나타낼 뿐임에도, 노동력 양 자체의 독립적인 운동이 축적을 야기하는 것처럼 오인된다. 수학적 표현을 빌리자면, 축적률이 독립 변수이고, 임금률은 종속 변수이며,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산업 순환의 공황 국면에서 상품 가격의 일반적 저하가 화폐 가치의 등귀로 나타나고, 번영 국면에서 상품 가격의 일반적 등귀가 화폐 가치의 저하로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이 사실로부터 이른바 통화주의는 가격이 높을 때는 과도한 화폐가, 낮을 때는 부족한 화폐가 유통하기 때문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러한 통화주의자들의 무지와 사실의 완전한 오인은, 위의 축적 현상을 첫째 경우에는 임금 노동자가 너무 적기 때문이고, 둘째 경우에는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경제학자들의 오류와 매우 흡사하다.

 

이른바 자연적 인구 법칙의 근간을 이루는 자본주의적 생산의 법칙은 간단히 말해, 자본 축적과 임금률 사이의 관계는 (자본으로 전환된) 지불받지 않는 노동과 (추가 자본의 운동에 필요한) 추가적 지불받는 노동 사이의 관계로 환원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것은 결코 두 개의 서로 독립적인 양 (자본 크기와 노동 인구 수) 사이의 관계가 아니라, 결국 동일한 노동 인구의 지불받지 않는 노동과 지불받는 노동 사이의 관계에 불과하다.

 

노동자 계급이 제공하고, 자본가 계급이 축적하는 지불받지 않는 노동의 양이 급속히 증가하여, 그것이 자본으로 전환되기 위해 지불받는 노동의 비상한 추가가 필요한 경우, 임금은 등귀한다. 그리고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지불받지 않는 노동은 임금 등귀에 비례하여 감소한다. 그러나 이 감소가 자본을 길러내는 잉여 노동이 더 이상 요구되는 양으로 제공되지 않는 지점에 도달하면, 반작용이 즉시 시작된다. 곧 수입 (잉여 가치) 중 자본화되는 부분은 감소하고, 축적은 쇠퇴하며, 임금의 등귀 운동은 장애에 직면한다. 결국 임금의 등귀는 자본주의 체제의 토대를 침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점차 확대되는 규모의 재생산을 보장하는 한계 내에 머문다. 따라서 (경제학자들로부터 자연 법칙으로 신비화된) 자본주의적 축적 법칙이 실제로 표현하는 바는, 노동 착취도의 어떤 감소와 노동 가격의 어떤 등귀도 (자본 관계의 끊임없는 확대 재생산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자본주의적 축적의 성격 자체로부터 배제된다는 점이다. 이는 물질적 부가 노동자의 자기 발전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노동자가 현존 가치의 증식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존재하는 생산 양식에서는 피할 수 없는 결과이다. 종교에서 인간 자신의 두뇌의 산물이 인간을 지배하듯이, 자본주의적 생산에서는 인간 자신의 손의 산물이 인간을 지배한다.

   

25-2. 자본 축적·집중과 유기적 구성 변화

 

경제학자들 자신의 의견에 따르면, 임금를 야기하는 것은 사회적 부의 현실적 규모나 기존 자본의 크기가 아니다. 오로지 축적의 끊임없는 증대와 그 증대 속도일 뿐이다 (스미스, 국부론, 1, 8). 지금까지의 고찰은 자본의 기술적 구성이 불변인 채 증대가 발생하는 축적 과정의 특수 국면에 한정되었다. 그러나 축적 과정은 이 국면을 넘어 다음 단계로 진행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일반적 토대가 일단 확립되면, 축적 과정에서 사회적 노동의 생산성 발전이 축적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가 되는 시기가 도래한다.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노동 임금을 상승시킨 바로 그 원인, 곧 자본의 증가는 노동 생산력을 증가시켜 더 적은 노동량으로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게 하는 경향이 있다.’ 


[국부론(): 113-114]

 

자연 조건 (토지의 비옥도 등)과 독립적 생산자들의 기능 (생산물에 질적으로 나타남)을 제외하면,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 수준은 동일한 노동 강도로 일정한 시간에 노동자가 생산물로 전환시키는 생산 수단의 상대적 규모로 표현된다. 이처럼 노동자가 전환시키는 생산 수단의 양은 그의 노동 생산성에 비례하여 증대한다. 이 생산 수단들은 이중의 역할을 한다. 어떤 생산 수단의 증가는 노동 생산성이 증대한 결과이며, 동시에 어떤 생산 수단의 증가는 노동 생산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조건이 된다. 예를 들어, 공장제 수공업적 분업과 기계의 사용은 동일 시간에 더 많은 원료와 보조 재료를 노동 과정에 투입하게 하는데. 이는 생산성 향상의 결과이다. 다른 한편, 사용되는 기계, 광물성 비료, 배수관 등은 생산성을 향상을 위한 조건이 된다. 그러나 (생산 수단에 결합되는) 노동력에 대비한 생산 수단의 양적 증대는 (조건이든 결과이든) 노동 생산성 향상의 표현이다. 따라서 노동 생산성의 향상은 노동이 움직이는 생산 수단의 양에 대비한 노동량의 감소로, 곧 노동 과정의 객체적 요소에 대비한 주체적 요소의 양적 감소로 나타난다.

 

자본의 기술적 구성의 이러한 변화 (곧 생산 수단에 활력을 주는 노동력의 양에 대비한 생산 수단의 양적 증대)는 이번에는 자본의 가치 구성 (곧 자본 가치의 가변적 구성 부분을 희생하는 불변적 구성 부분의 증대)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어떤 자본이 시초에 50%가 생산 수단에, 50%가 노동력에 투하되었으나, 이후 노동 생산성의 증대에 따라 80%가 생산 수단에, 20%가 노동력에 투하되는 경우와 같다. 자본의 가변 부분에 비한 불변 부분의 점진적 증대라는 이 법칙은, (상이한 경제적 시기를 비교하든, 동일 시기의 상이한 나라들을 비교하든) 상품 가격의 비교 분석으로부터 모든 단계에서 확인된다. 가격 중 소비된 생산 수단의 가치를 대표하는 부분 (곧 불변 자본 부분)의 상대적 크기는 축적의 진전에 정비례하며, 노동에 대한 지급을 대표하는 부분 (곧 가변 자본 부분)의 상대적 크기는 축적의 진전에 반비례한다.

 

자본 기술적 구성의 이러한 변화 (곧 생산 수단에 활력을 부여하는 노동력 대비 생산 수단의 양적 증대)는 자본 가치 구성 (가변적 구성 부분을 희생하는 불변적 구성 부분의 증대)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방적업에 투하된 자본 가치 구성은 18세기 초 불변 자본 1/2, 가변 자본 1/2에서 현재 불변 자본 7/8, 가변 자본 1/8로 변화하였다. 현재 일정한 방적 노동이 소비하는 원료 및 노동 수단 등의 양은 18세기 초 대비 수백 배에 달한다. 이는 노동 생산성 향상에 따라 노동이 소비하는 생산 수단의 양은 증가하지만, 그 양에 비례하여 가치는 감소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산 수단의 가치는 절대적으로는 증가하나, 그 양의 증가에 비례해 증가하지는 않는다. 결과적으로, 불변 자본과 가변 자본 사이의 차이 (가치 구성)는 생산 수단의 양과 노동력의 양 사이의 차이 (기술적 구성)보다 훨씬 완만하게 증대한다. 전자의 차이는 후자의 차이와 함께 증가하지만, 그 증가 정도는 현저히 낮다.

 

축적의 진전이 가변 자본 부분의 상대적 크기를 감소시킬지라도, 이는 가변 자본 부분의 절대적 크기의 증대를 결코 배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자본 가치가 초기 불변 자본 50%와 가변 자본 50%로 분할되었으나, 이후 불변 자본 80%와 가변 자본 20%로 변화한 상황을 가정한다. 이 기간에 최초 자본이 6,000원에서 18,000원으로 3배 증대했다면, 가변적 구성 부분 또한 1/5만큼 증대한다. 이는 종전의 가변 자본 3,000원이 이제 3,600원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에 대한 수요를 20%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종전에는 20%의 자본 증대로 충분했지만, 이제는 최초 자본의 3(18,000)가 요구된다.

 

4편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 발전은 대규모 협업을 전제하며, 이 전제 하에서만 노동의 분할과 결합이 조직될 수 있고, 생산 수단은 대규모 집적으로부터 절약될 수 있다. 또한, 물질적 성질상 공동으로만 사용하는 노동 수단 (: 기계 체계 등)이 출현할 수 있으며, 방대한 자연력이 생산에 이용되고, 생산 과정이 과학의 기술 공학적 응용으로 전환될 수 있다. 상품 생산이 지배적인 제도라면, 곧 생산 수단이 개인의 소유여서 수공업자가 고립적으로 자립 생산을 하거나, 또는 자립 생산 수단이 없어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판매하는 상황이라면, 앞에서 언급된 전제인 대규모 협업은 개별 자본의 증대로부터만, 또는 사회적 생산 수단과 생활 수단이 자본의 사적 소유로 전환되는 정도에 따라서만 실현된다. 상품 생산의 토대 위에서는 대규모 생산은 자본주의적 형태로만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개별 상품 생산자들의 수중에 일정한 자본이 축적되는 것이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전제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수공업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이행하는 동안, 이러한 축적이 발생했다고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축적을 시초 축적이라 부를 수 있다. 이는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적 결과가 아니라 그 역사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초 축적 자체가 어떻게 발생하는지 연구할 필요는 아직 없다. 그것이 단지 출발점을 이룬다는 것만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 토대 위에서 발달하는 사회적 노동 생산성의 향상 방법은 어느 것이나 동시에 잉여 가치 (또는 잉여 생산물)의 생산을 증대시키는 방법인데, 이 잉여 가치는 다시 축적의 형성 요소가 된다. 따라서 그 방법들은 또한 자본으로부터 자본의 생산 방법 (곧 자본의 축적을 촉진하는 방법)이 된다.

 

잉여 가치가 자본으로 끊임없이 재전환되는 것은 생산 과정에 투입되는 자본의 크기 증대로 나타난다. 이 증대는 곧 생산 규모 확대의 기초가 되며, 이는 노동 생산성 증진 방법의 기초, 나아가, 잉여 가치 생산을 촉진하는 기초로 작용한다. 따라서 일정한 자본 축적이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전제 조건이라면, 이제 역으로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은 자본의 가속적 축적의 원인이 된다. 결과적으로, 자본 축적에 따라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이 발전하고, 생산 방식에 따라 자본 축적이 발전한다. 이 두 경제적 요인들은 (서로 주고받는 자극에 비례하여) 자본의 기술적 구성에 변화를 일으키며, 이 변화로 인해 가변적 구성 부분은 불변적 구성 부분에 비해 점점 더 축소된다.

 

모든 개별 자본은 그 규모와 관계없이 생산 수단의 집적이며, 이에 상응하여 노동자 집단을 지휘한다. 모든 축적은 새로운 축적의 수단이 된다. 자본으로 기능하는 부의 양이 증대함에 따라, 축적은 개별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부의 집적을 증대시키며, 이로부터 대규모 생산의 토대와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토대를 확대시킨다. 사회적 자본의 증대는 다수의 개별 자본의 증대로부터 이루어진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각 개별 자본은 사회적 총자본에서 차지하는 몫에 비례하여 증대하며, 그 증대와 함께 생산 수단의 집적도 증대한다. 동시에 가지들이 최초 자본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독립적 자본으로 기능하기 시작한다. 특히 자본가 가족들 사이의 재산 분할이 큰 기능을 하며, 이로 인해 축적과 함께 자본가의 수 또한 대체로 늘어난다. 축적 그 자체와 동일한 이 유형의 집적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특징지어진다.

 

첫째, 다른 조건이 같다면, 사회적 생산 수단이 개별 자본가들의 수중으로 더욱 집적되는 것은, 사회적 부의 증대 정도로부터 제한된다. 둘째, 각 특정 생산 부문에서 활동하는 사회적 자본은 (서로 경쟁하는 독립적 상품 생산자로 대립하는) 다수 자본가들 사이에서 분할되어 있다. 그러므로 축적과 그에 수반되는 집적은 다수의 지점으로 분산될 뿐 아니라, 개별 기능 자본의 증대는 새로운 자본 형성과 기존 자본의 분열로부터 방해를 받는다. 최종적으로, 축적은 한편으로 생산 수단 및 노동 지휘의 집적 증가로 나타나며, 다른 한편으로 다수 개별 자본가들 상호간의 배척이라는 양면성을 보인다.

 

사회적 총자본이 수많은 개별 자본으로 분열되거나 그 분열된 조각들이 상호 배척하는 현상은 그들 사이의 흡수로부터 상쇄된다. 이 자본들의 흡수는 생산 수단과 노동 지휘의 단순한 집적 (축적과 동일한 의미의 집적)이 아니다. 그것은 이미 형성되어 기능하는 자본들의 집적이며, 그 개별적 독립성의 파괴, 자본가로부터 자본가의 수탈, 그리고 다수 소자본을 소수 대자본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이다. 이 흡수 과정이 앞선 집적 과정과 구별되는 지점은, 흡수 과정은 이미 존재하고 기능하는 자본들의 분배 변화만을 전제하며, 따라서 그 적용 범위는 사회적 부의 절대적 증대나 축적의 절대적 한계로부터 제한받지 않는다는 점이다한 곳에서 어떤 한 사람의 수중에 자본이 대량으로 증대하는 것은, 다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본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축적·집적과 구별되는 진정한 집중이다. 이 자본 집중의 법칙 또는 자본이 자본을 흡수하는 법칙을 여기서 자세히 전개할 수는 없다. 몇 가지 사실만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경쟁전은 상품 값을 싸게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상품 값이 싸지는 것은,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노동 생산성에 의존하며, 노동 생산성은 생산 규모에 의존한다. 그러므로 대자본은 소자본을 격파한다. 또한,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의 발전에 따라 일반적인 조건에서 사업을 경영하는 데 필요한 개별 자본의 최소 금액이 증대한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따라서 비교적 작은 자본은 대공업이 산발적으로나 불완전하게 장악하고 있는 생산 부문으로 몰려든다이곳의 경쟁은 적대적인 자본들의 수에 정비례하고, 그 크기에 반비례해 격렬해진다. 경쟁은 언제나 다수 소자본가의 멸망으로 끝나며, 그들의 자본은 부분적으로는 승리자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부분적으로는 사라진다. 그뿐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의 발전과 함께 전혀 새로운 힘인 신용 제도가 등장한다.

 

[엥겔스: (이하는 마르크스가 불어판에 넣은 내용을 바탕으로 엥겔스가 제4독어판에 추가한 것이다. CW35 (Progress Publishers, 1996)에는 이 추가분 전체가 CW 편집자의 실수로 빠져 있다.)]

 

이 신용 제도는 처음에는 축적의 겸손한 조수로 은밀히 등장하여, 사회 표면에 거액 또는 소액으로 흩어져 있는 화폐 재원을 보이지 않는 실로 개별 자본가 또는 연합한 자본가들 (: 주식 회사)의 수중으로 끌어모은다. 그러나 신용 제도는 곧 경쟁전에서 새로운 무서운 무기로 변모하며, 결국에는, 자본 집중을 위한 거대한 사회적 기구로 전환된다.

 

자본주의적 생산과 축적의 발전에 비례하여 집중의 가장 강력한 두 지렛대인 경쟁과 신용 또한 발전한다. 이와 함께, 축적의 진전은 집중될 소재, 곧 개별 자본을 증대시킨다. 동시에 자본주의적 생산의 확대는, 한편으로는 거대한 사업 (이 실현을 위해 선행된 자본 집중이 필요하다)에 대한 사회적 욕구를 창출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에 필요한 기술적 수단을 만들어낸다. 그러므로 오늘날 개별 자본들을 끌어모으는 흡수력과 집중의 경향은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하다. 집중 운동의 상대적 크기와 힘이 어느 정도는 이미 달성한 자본주의적 부의 크기와 경제 기구의 우월성으로부터 결정된다 하더라도, 집중의 진전은 결코 사회적 자본 규모의 적극적 증대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다음은 집중과 집적의 차이점이다. 집적은 확대 재생산의 다른 명칭에 불과하지만, 집중은 단순히 기존 자본의 분배를 변화시키면서, 곧 사회적 자본의 구성 부분들의 양적 편성을 단순히 변경시키면서 일어날 수 있다. 한 곳에서 한 사람의 수중에 자본이 거대한 양으로 증대할 수 있는 것은, 다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의 수중에서 자본이 강제로 빼앗겼기 때문이다. 어떤 일정한 산업 부문에서, 거기에 투하된 모든 개별 자본이 단 하나의 자본으로 합병한다면 집중은 극한에 도달한다. 일정한 사회에서는 사회적 자본 전체가 한 사람의 자본가 또는 하나의 자본주의적 기업의 수중으로 통합될 때에만 이러한 극한에 도달한다.

 

 

집중은 산업 자본가들에게 그들의 사업 규모를 확대할 수 있게 하면서 축적을 보완한다. 이 사업 규모의 확대가 축적의 결과이든 집중의 결과이든, 또는 집중이 합병이라는 폭력적 방법으로 수행되든 (이 경우, 어떤 자본이 다른 자본들을 흡수하는 주도적인 중심이 되어 개별적 응집력을 파괴하고, 그 파편들을 끌어 모은다), 아니면 이미 형성되었거나 형성 과정에 있는 다수 자본들의 융합이 주식 회사 설립이라는 더 부드러운 방법으로 진행되든, 그 경제적 효과는 동일하다.

 

어디에서나 기업체들의 규모 확장은 많은 사람들의 집단 노동을 더 포괄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출발점이 되며, 또한 그들의 물질적 추진력을 더 폭넓게 발전시키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곧 관습적인 방식으로 운영되는 고립적인 생산 과정을, 사회적으로 결합되고 과학적으로 설계되는 생산 과정으로, 점차적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축적 (재생산이 원형에서 나선형 운동으로 이행하며, 자본을 점진적으로 증대시키는 것)은 집중 (사회적 자본 구성 부분들의 양적 편성만을 변경시키는 것)에 비해 분명히 매우 느린 과정이다. 약간의 개별 자본들이 축적으로부터 증대되어 철도를 부설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면, 세계에는 아직도 철도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집중은 주식 회사로부터 이를 순식간에 수행하였다. 집중은 이와 같이 축적의 작용을 강화하고 촉진함과 동시에, 자본의 기술적 구성 변혁 (가변 자본을 희생하며 불변 부분을 증대시키고, 이에 따라 노동 수요를 상대적으로 감소시키는 것)을 확대하고 촉진한다. 집중으로부터 하룻밤 사이에 융합되는 자본량은, 다른 자본량과 마찬가지로 (물론 더 급속하게) 재생산되고 증대하며, 이리하여 사회적 축적의 강력한 새로운 지렛대가 된다. 따라서 사회적 축적의 진전에 관해 논할 경우, 우리는 오늘날 거기에 집중의 작용을 암암리에 포함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일반적 축적 과정에서 형성된 추가 자본 (24장 제1절 참조)은 특히 새로운 발견과 발명, 그리고 산업적 개량 일반의 이용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기존 자본 역시 언젠가는 완전히 갱신되어야 할 시기에 도달하며, 그때에는 종래의 형태를 벗고 기술적으로 완성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렇게 되면, 더 많은 기계와 원료를 운용하는 데 더 적은 노동만으로 충분하게 된다. 이로부터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노동에 대한 수요의 절대적 감소는, 이 갱신 과정을 통과하는 자본이 자본의 집중 운동으로부터 이미 집중되어 있을수록, 분명히 그만큼 더 심화된다. 따라서 축적 과정에서 형성된 추가 자본은 그 규모에 비해 더욱더 소수의 노동자를 흡수한다. 다른 한편으로, 새로운 구성으로 주기적으로 재생산되는 기존 자본은 종전에 고용했던 노동자들을 더욱더 많이 축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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