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한국공산당 (서기원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비판이란 해부용 칼이 아니라, 무기이다.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Wed, 04 Nov 2026 22:34:48 +0900</lastBuildDate><image><title>서기원</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19987781_639217413502022451.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서기원</description></image><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정치경제학</category><title>조선 체제의 잔재: 분단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14231</link><pubDate>Wed, 04 Nov 2026 21: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14231</guid><description><![CDATA[<br>국호가 바뀐 뒤로도 87년 체제의 양당적 대립은 계속되었고, 이 시기 한국의 공화국은 분단 체제를 더욱 고착화했다. 조선의 붕당 정치와 일제의 악습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수립된 현행 정부의 국가적 기조는, 사실상 헌정 질서라는 명목하에 분단을 정당화하고 야기한 셈이다. 독일의 경우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동독의 사회주의적 가치가 현재 독일의 경제적 현실과 모순을 빚고 있으나, 과거의 정치가 퇴색할 때 혁명의 성과 또한 그 내용을 달리하며 변화한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nbsp;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언급한 “소비에트를 기억하지 않는 자는 심장이 없고, 그것으로 돌아가려 하는 자는 뇌가 없다”라는 발언의 모순은, 소비에트를 어기고 인민적 독재의 영역으로 나아간 최후를 반복할 뿐임을 증명한다. 이러한 구체제적 정치의 기반은 조선의 정치적 유산에서도 동일한 형태로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구공화국 시대를 지나 혁명의 시기를 목도하고 있음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단순한 흡수 통일이라는 무력화를 내세울 때, ‘이산가족’의 비극은 조선 체제의 유산이 불러온 경제적 비극과도 밀접하다.  &nbsp;  한국의 의회 정치는 두 조선 국가 모두를 양면적으로만 바라보았다는 점에서 역설에 착지한다. 이러한 구도하에서 집권 세력은 현상 유지를 반복하며 정부의 반동성을 강화했고, 국민 전반에 짙은 폐쇄성과 취약한 개량적 획일화를 낳았으며, 자유 경쟁의 미덕을 자본주의적 지배 수단으로 이용해 왔다.  &nbsp;  87년 체제는 사실상 유신의 잔재가 남긴 이념적 대립과 반공주의가 결합하여, 체제의 자유가 ‘자본의 제도’로 수용되는 고질적인 독점 문제를 양산했다. 특히 노동 제도의 한계 역시 구시대적 조선 정치의 그림자 아래 자행된 토지 개발, 그리고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발생했다. 이는 고립된 지역 노동 인민에 대한 체계적 계급화와, 이를 층위적으로 분류했을 때 드러나는 소득 산정의 평균적 모순을 잘 보여준다. 물론 한국에서 군주제는 폐지되었으나, 의회의 기능은 여전히 조선 체제의 구시대적 틀에 갇혀 제한적이다. 그 구습이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유포되었든 아니든, 분단된 두 국가 모두 조선 체제의 고질적인 악습만을 반복하며 역사적 반동성의 최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자명하다.  &nbsp;  서로를 비난하기에 앞서, 과거의 체제를 청산하지 못한 노동 제도와 그 주도권이 각국의 부르주아적 대표자들에게 돌아가 국가 기구를 안주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 구조는 충분히 ‘배반적’이다.  &nbsp;  차기에 부상할 집권 세력에게 더 이상의 권력적 정당성은 없다. ‘구원은 독점에 있다’는 말에 대해 ‘독점은 제국주의로 이행하는 과도기’라던 레닌의 지적대로, 제국주의적 독점과 자본에 기댄 구시대적 정치의 여파가 인민을 더욱 옥죄게 왔음을 다시 한번 증명할 뿐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시사·투고</category><title>위태로운 이중 체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10233</link><pubDate>Mon, 02 Nov 2026 23: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10233</guid><description><![CDATA[<br>현재 미국은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으며, 그 결과와 무관하게 유럽 전역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중동 전쟁의 여파가 각국 민중의 삶에 깊은 타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nbsp;의회주의가 사실상 제국주의적 통치 기능으로 변질된 프랑스의 시위 역시 단순한 생태적·기술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는 청년층을 중심으로 번져나가는 사회주의 운동의 물결과 맞닿아 있다. 선진국 대도시에서 분출되는 이러한 투쟁은 급속히 확산하며 전 유럽을 물가 폭등에 맞선 강력한 투쟁의 장으로 전환하고 있다.  &nbsp;  반면 아시아가 조용하다는 학계 일각의 진단과 달리, 이 대륙은 사회주의 체제 이행기에 수반되는 혁명적 질서의 재편을 심층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는 오히려 지금까지 축적된 부분적 투쟁의 성과들이 집약된 혁명적 결과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국 상황에 대해 장기적 전망 아래 발발할 혁명의 발아를 진단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분단 체제와 맞물린 정치 질서 전반에서, 향후 급격한 경제 악화가 결정적 변수로 대두될 것이기 때문이다.  &nbsp;  이때 중요한 것은 자국민 개개인의 ‘피신’이 아니라, 대의에 동참하는 노동자 계급의 대규모 결의와 투쟁 참가다. 이러한 민중의 요구는 결코 기존의 의회 제도 내에서 만족하여 수렴되기란 극히 어렵다.  &nbsp;  혁명의 전개 과정에서 포착되는 전 세계적 전조는, 지금까지의 ‘전쟁의 세계’를 이끌어온 구질서와 지배 체제에 대한 깊은 불신과 반발을 담고 있다. 이 거대한 격류 속에서 노후화나 청년 인구 감소 같은 세대 갈등 요소는 상쇄되며, 당면한 현실은 계급 투쟁이라는 단 하나의 지름길로 우리를 이끌고 있다.  &nbsp;  우리 당은 이 혁명의 전조를 양분 삼아 차차 전진할 것이다. 구시대의 유물인 국가와 의회 제도가 부르주아 질서를 옹호하는 반동 집단과 결탁해 있는 지금, 한국에서도 혁명의 조건은 이미 충분히 무르익었다.  &nbsp;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국가의 본질이란 인민의 계약으로 성립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혁명은 단순한 ‘표심의 이동’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대다수 인민이 직면한 참담한 현실에 대한 거부이자, 혁명적 질서에 대한 동의로 표출된다. 이 지점은 국가의 성립 기반과 국가 내 인민들 사이에 내재된 계급적 모순과 암묵적으로 충돌해 왔으며, 그것이 가시화될 때 거대한 연속적 사건이자 역사적 현상으로 발현한다.  &nbsp;  결국 자본주의의 ‘제국적 기생성’이야말로 현대 사회 체제의 본질을 규명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이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파생된 누적된 제도와 법적 문서들은 그 효력이 다하는 순간, 자본의 내적 모순을 증폭시킬 수밖에 없는 필연적 구조의 산물에 불과하다. 이 모순이 극에 달하는 시점을 두고, 한국 사회만은 무사히 넘어갈 것이라 여긴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치명적인 착각이자 과오다.   &nbsp;  이 혁명적 국면은 우리 당의 목적에 있어 중요한 역사적 계기가 될 것이다. 부르주아 지식인 집단과 그 일파는 그동안 혁명적 공산당의 존재를 간과하며 관습적인 제도권 정치에 안주하는 패착을 저질렀다. 또한 부르주아 언론은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노동 인민의 자본 노동 피로도를 외면한 채, 사태를 자극적으로 보도하며 자본의 편을 들었다. 이러한 부르주아적 선동 매체야말로 민중을 압박하고 투쟁을 방해하는 반동적 세력이다.   &nbsp;  저들은 도시의 약탈과 방화를 우려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기존 정부와 체제가 전체 인민이 아닌 독점 자본만을 위해 작동해 왔음을 상기할 때, 기존의 정부와 현 집권 세력의 정당성과 발언권은 이미 효력을 다했다. 노동 인민의 피를 수혈받으며 기생해 온 자본이 그제서야 현실에 놓인 프롤레타리아의 ‘살인’이라는 생존 위기를 목격할 때, 매체를 앞세워 논란의 불씨만 지피는 궤변만을 늘어놓고 있다.  &nbsp;  인민의 각성은 이제 더 이상 관제 언론이나 함량 미달의 시민 언론 따위에 의존하지 않는다. 피억압의 식민지 역사에서부터 ‘대한제국’이 ‘대한민국’으로 국호만 바뀐 채 집권 세력의 반동적 질서가 반복되어 온 이 탄압의 굴레를 우리는 뼈 깊이 새기고 있다. 이 시퍼런 사슬에 묶여 눈이 멀어 버린 자들, 부르주아의 영속성에 기대어 우리 당을 향한 적의를 부추기는 이 무지한 반동 세력에 맞서, 우리는 계급적 단죄와 혁명의 불길을 완성해 나갈 것이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정치경제학</category><title>야간 노동 폐지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05559</link><pubDate>Sat, 31 Oct 2026 22:1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05559</guid><description><![CDATA[<br>자본의 밤에서 노동자의 밤으로  &nbsp;  8시간 노동 법안은 체결되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란 열심히 ‘근로’함에도 부족한 보상을 채울 수 없는 이유가, 단순히 임금 조정의 여파나 여하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노동의 제한적인 여가 역시 취약한 채 이중 노동의 부과에 현대 노동자들이 종속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단순히 노동 시간의 쟁취에 머물러 있는 노동법과 협상, 또는 극적인 타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대기업들의 야간 노동의 강제에도 있는 것이다. 2022년 10월, SPC 계열 빵 공장에서 20대 여성 노동자가 새벽 야간 근무 중 샌드위치 소스 혼합기에 끼여 숨진 사고는 2인 1조 수칙조차 무시된 채 밤샘 노동으로 내몰린 현대 직장의 적나라한 현주소를 보여준 사례이다.   &nbsp;  자본의 이윤 추구는 이러한 자본주의 내적 모순이 강화됨에도, 끝까지 기생하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면서 야간 노동을 요구하는 직종의 경우에도 노동자의 밤은 노동이 아니라 여가의 보장에 중점을 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야간 노동의 사고율은 오전 시간대 노동보다 훨씬 심대한 압박을 가할 수 있으며, 수면과의 관계와 불규칙적인 생활 습관 등으로 인한 건강 악화는, 마르크스, 『자본』만이 아니라 엥겔스, 『영국 노동계급 상태』에서도 체계적으로 증명된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2007년 심야 교대 근무를 ‘2A군 발암물질’로 지정한 것이나, 미국 노동통계국 등 각종 연구에서 야간 근무자의 작업장 사고 위험이 주간 대비 최대 30~50% 이상 급증한다고 보고하는 현실은 이러한 비판이 결코 과거의 유물이 아님을 입증한다.  &nbsp;  그것은 현대에도 유효한 전근대적 8시간 노동법에서 해방되지 못한 채 일괄적으로, 또는 ‘자유롭게’ 자본의 임금 노동과 잉여 가치 창출을 위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생계형 압박이 고도화되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nbsp;  특히 한국의 8시간 노동법은 타국의 노동법에 비해서도 노동자의 결속을 제한하고, 훨씬 더 탄압적인 ‘야간 노동’으로 작동할 뿐이다. 이 점에서 최근 발휘된 ‘노란봉투법’의 여파 역시 순진한 법조계의 임시방편형 구시대적 정책일 뿐임이 증명된다. 야간 노동과 8시간 법안은, 줄여도 모자란 여가의 보장 없는, 사무 노동자들을 비롯하여, 각 계급 및 세부적인 층위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현대사의 현실인 것이다.  &nbsp;  야간 노동의 폐지는, 첫째로, 자본주의 노동의 현실을 파악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 수익을 따라잡을 수 없는 막대한 수익 창출의 복합적인 현대 구조를 해체하고, 그 실상이 전근대적인 노동법에서 비롯되었음을 법의 지배하에서 보호받지 못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생산 현장에서 표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현재에도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 순환제 근무 노동자들에게도 장기적으로 건강 악화를 초래할 뿐이며, 이러한 불상사에 대한 대처가 미흡함이 드러나고 있다. 특히 물류센터에서 주간·야간을 오가며 일하던 노동자들이 잇따라 수면 장애와 뇌심혈관 질환(과로사)으로 사경을 헤매거나 목숨을 잃은 사례는, 변칙적인 교대 체제 아래 노출된 인체가 어떻게 서서히 파괴되는지를 생생히 증명한다. 체제적 모순은 야간 노동을 비롯한 전 인민의 ‘무상한 세월’을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력한 것이어서 그들은 단순히 ‘근로’함이 국가를 위해 성실하게 힘을 쓰고, 기업을 위해 복무할 수 있다고 간주해 온 오래된 까닭인 것이다.    &nbsp;  이러한 문제는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노동법에 대한 요구들이 선진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서 관습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계기가 된다. 잠들 수 없는 고도의 압박이 초래한 결과가 불의의 사고로 이어질 때, 그것은 단순히 노동자 한 개인의 희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의 악순환의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심야 시간대 철도 관제나 장거리 화물 운송, 또는 고위험 화학 공장 등에서 피로 누적과 수면 부족으로 인한 주의력 저하로 발생한 대형 산업 재해들이 증명하듯, 야간 노동이 초래하는 불의의 사고는 한 개인의 희생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전반의 계급적 악순환으로 비화된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입장·보고</category><title>가짜 정부의 모함과 유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05390</link><pubDate>Sat, 31 Oct 2026 21: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05390</guid><description><![CDATA[<br>한국의 역대 정부는 기득권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사익을 암암리에 정당화해 왔다. 그들은 해외 순방과 조약 체결이라는 단기적 정책의 법적 허점을 이용해 집권 수단을 비공개로, 때로는 노골적으로 활용해 왔다. 특히 민주공화국의 불완전한 체제 이행기 속에서 변화에 대응하기는커녕 거대한 기득권의 물결에 휩쓸려간 한국 정부의 역사는 ‘부르주아지’ 정부라는 대통령제와 지역 발전이라는 허황된 선거 제도로 점칠되었다. 언론은 기자를 정부의 하수인으로 전락시켰으며, ‘국가’ 자체를 위해 존재하는 가짜 정부는 사법부의 해체 앞에서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nbsp;  특히 ‘정상 회담’의 성과나 무의미한 회담 결과를 과장하여 유포하는 언론의 행태는, 체제에 대한 비판을 모함과 공격으로 되받아치는 정부의 무기가 되었다. 노동 인민에 대한 반동적 성격이 짙어짐에 따라, 물가 불안 등 정책적 대책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정부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이들이 어떠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개혁주의’나 정부의 본질을 고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기득권 유지가 주는 기만책을 충분히 맛보았기 때문이다.   &nbsp;  이들은 초기에는 사회주의 약속을 내걸었으나, 이는 기존 사법적 질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낡은 주장을 변주하여 되풀이한 유산에 불과했음이 드러나고 있다. 최근 조희대 대법원장이 보여준 사법적·기득권 옹호 행태 역시 자본주의 질서에 종속된 민중에게 깊은 상실감을 안겨주었다. 당 대 당의 구도는 소수의 독점에 맞서 대다수 인민이 공동 투쟁에 임한다는 선언이어야 한다. ‘민주주의’라는 가면을 쓴 가짜 정부의 기만성은, 모순적으로 노후화된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계급 투쟁의 씨앗이 무르익고 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nbsp;  우리가 추구해야 할 당의 노선은 더욱 참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가짜 정부가 만들어 놓은 ‘의회주의’라는 형식적 제도의 강요된 선택에 부역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거부하고 억압받는 인민의 진정한 요구를 표출하는 일이다.    &nbsp;  우리가 지도자를 세우는 까닭은 한 개인에게 부역하기 위함이 아니며, 전 인민의 단결을 이루기 위함이다. 민주주의를 가장한 가짜 정부가 지금까지 헌정 질서를 위탁받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체제 간 대립과 안보를 핑계 삼아 제국주의 질서에 쉽게 편승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의 주역들이 노골적으로 희화화된 비난의 대상이 될지라도 결코 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의 위선적 위정자들은 모두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   &nbsp;  ‘여의도’를 암울하게 만든 국회의 당사자들과 그에 부역한 자들은 이제 역사의 배신자로 전락했다. 그들은 ‘찬란했던 진보’를 외치면서도 보수화된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했고, 가난한 민중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내는 데 동조하며 노동자들을 경제적으로 탄압해 왔다. 이 부역자들이 남긴 ‘적들의 유산’은 국내에 엄존한다. 그들은 인터내셔널의 유산을 위협하며, 자신들의 권리를 상속받았다고 주장하는 한 장의 종이(법적 권리)에 기대고 있다. 대형 은행의 대출 장려와 자본 기업의 이윤 추구가 결탁할 때, 그것은 인민의 생계를 더욱 압박하는 데 일조했을 뿐이다.  &nbsp;  구시대의 정치적 언어와 이를 부추기는 정부의 모함이야말로 가장 큰 위선이자 기만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입장·보고</category><title>국제 공산당 간 연락 체계 과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03276</link><pubDate>Fri, 30 Oct 2026 22: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03276</guid><description><![CDATA[<br>공산당과 비공식 활동의 증진을 중심으로<br>인터내셔널 설립 이래 각국 공산당 간의 긴밀한 연락과 동맹은 항상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어 왔다. 매체의 발달로 기존 정보의 한계를 돌파하고 이러한 국제적 연락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현대 공산주의 운동에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다. 특히 ‘프락치’라는 용어가 러시아 혁명 당시 비밀리에 혁명가들을 모함하던 반혁명 집단에서 유래했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 연락 체계를 단순한 ‘간첩 활동’ 정도로 치부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코뮌테른 이후로도 국제 공산당 간의 연락 체계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지녀 왔다.   &nbsp;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중국 공산당 시진핑 주석의 방한 당시 이루어진 교류는 당 대 당의 혁명적 연락이 아니라 국가 간의 정례적·단체적 협약에 불과했다. 공산당의 수장이 혁명적 공조가 아닌 부르주아적 대통령제 정부 당국과 손을 잡는 모습은 대단히 모순적이다. 언론은 단순히 그의 방한 자체에 집중했지만, 본래 공산주의 정당이라면 훨씬 정파적이고 계급적인 연락을 추구해야 한다. 국제주의적 당의 노력에 견주어 보면, 현재 당의 노력에 비하면 ‘수정주의’에 불과한 시각일 수 있다는 점이다.  &nbsp;  이러한 모순과 한계는 한국 공산주의 운동 내 연락 체계의 단절이 초래한 현실이기도 하다. 분단이라는 특수성을 지닌 한국을 찾았을 때, 시진핑 주석은 임진왜란과 『난중일기』 등 한국의 역사 자료를 언급한 바 있다. 그가 현대 저작 대신 고전을 주로 소개하는 이유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그는 이미 자국 인민들에게 『공산당 선언』의 숙독과 교육을 강조한 바 있으며, “중국은 전쟁이 아니라 문화로 성장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nbsp;  이러한 구도에서 괴테, 『파우스트』나 일부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같은 고전은 공산주의자 간의 교류를 촉진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한국의 현실과 달리, 고전에 대한 깊은 이해는 인민의 계급적·지적 수준을 파악하고 끌어올리는 중요한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nbsp;  각국 공산당을 연결하는 연락 체계는 ‘독서력과 지적 교류’도 있다. 인민이 수용하고 권장할 수 있는 혁명적·이론적 저작에 대한 관심이 깊어질수록, 혁명의 과정 또한 단순한 권력 유지의 명분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형성되는 고유한 토대이며, 부르주아 정부의 기대에 단순히 응해주는 외교적 이해관계와는 판도가 완전히 다르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오직 생명의 나무만이 푸르다”는 『파우스트』의 어구처럼, 인간과 사회를 겉핥기식 회색빛으로만 그려내는 현대의 숱한 이론적 오류들은 결코 고전의 깊이에 미치지 못한다.  &nbsp;  과거에는 서면이나 지면 중심의 방식으로 연락을 주고받아야 했지만, 오늘날은 기술의 발전 덕분에 훨씬 유능하고 정확한 정보를 신속히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조건을 활용하여 국제 공산당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평의회(소비에트)적 의의를 확장하기 위해, 현대 공산주의자들의 다각적인 비공식 활동을 지지하고 증진해야 한다. 이는 향후 혁명적 공산당의 비약적인 성장으로 이어지는 매우 유익하고 필수적인 과제가 될 것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적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01514</link><pubDate>Fri, 30 Oct 2026 00: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01514</guid><description><![CDATA[<br><br>&lt;수제&gt;&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30/pimg_639289152829809193.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01514</link></image></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시사·투고</category><title>무성한 의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00924</link><pubDate>Thu, 29 Oct 2026 19: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600924</guid><description><![CDATA[<br>도시 재개발이 가린 자본   &nbsp;  강남 부근 계룡 마을 일대가 화염에 휩싸였다. 화재 직후 주민들 사이에서는 도시 재개발을 겨냥한 의도적 사고가 아니냐는 무성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진위여부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나, 분명한 사실은 이번 참사가 주거지를 잃은 가난한 주민들에게 가혹한 생존의 압박을 안겼으며, 부실한 정부의 지원 속에서 이들이 삶의 터전을 복구하기란 요원하다는 점이다. 그것이 자연 발화이든 의도적 방하이든, 화재가 남긴 잔해 위로 인근 토지 점유권을 둘러싼 투기적 경쟁이 불씨처럼 번져나가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nbsp;  이러한 참사를 단순한 우연적 재난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자본과 공공 권력이 주도하는 도시 재개발의 진행을 가속화하는 ‘입지 마련의 방편’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도시 재개발은 자본주의적 ‘강탈에 기반을 둔 축적’의 현대판 판본이다. 주민들에게 집과 땅은 생존을 지탱하는 ‘사용 가치’이지만, 국가와 자본가에게는 오직 시세 차익을 안겨줄 ‘교환 가치’의 상품일 뿐이다. 화재는 주민들의 삶이라는 사용 가치를 순식간에 잿더미로 소멸시켜, 자본이 토지를 완전한 교환 가치의 공간으로 전환하도록 돕는 가장 야만적인 촉매제로 작동한다.  &nbsp;  발화의 원인이 자연 발화이든 투기 세력의 횡포이든, 그 결과는 언제나 토지주택공사(LH·SH)의 방관 속에 자본의 이익으로 귀속된다. 화재가 노후된 시설로 인한 자연 발화였다 하더라도, 공공 기관은 소방 기반 시설이 취약한 이 지역을 “어차피 철거할 땅”이라며 방치해 왔다는 점에서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나아가 화재로 주거지가 전소되면 공공 기관은 복구를 지연하고 ‘안전’을 명목으로 철거 속도를 오히려 가속화한다. 반대로 화재가 투기 세력의 소행이라면, 이는 저항력을 지닌 세입자들의 물리적 조직력과 점유의 증거를 하룻밤 사이에 지워버리고 명도 소송과 철거 비용을 극단적으로 단축하는 잔혹한 수단이 된다.<br>  실제로 토지주택공사(LH·SH)는 공공의 가면을 쓰고 있으나, 실상은 자본을 위해 토지를 정비하고 지대를 창출하는 ‘공공 개발자’로 기능한다. 법적 수용권을 동원해 원주민의 땅을 강제 매수하고, 용도지역 변경 (종 상향)과 인허가로 막대한 개발 지대를 창출하지만 그 이익은 공공으로 환수되지 않는다. 대기업 건설사는 ‘책임준공’과 고액의 공사비를 독식하며 ‘상표 가치 이익’을 챙기고, 지주와 투기 세력은 지분 다툼을 벌인다. 따라서 수년간의 갈등과 화재를 거쳐 완성된 신축 대단지에 다시 돌아와 살 수 있는 원주민의 재정착률은 고작 10%~20%에 불과하며, 대다수의 빈민은 도시 외곽으로 축출된다.  &nbsp;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의 화재는 단순한 ‘사고’의 범주를 넘어선다. 위험과 주거 상실이라는 사회적 비용은 전적으로 가난한 세입자와 원주민에게 전가되는 반면, 그들이 밀려난 자리의 막대한 지대 상승분과 분양 이익은 정부의 행정적 묵인 속에서 대기업 자본과 투기 세력이 독점한다. 따라서 계룡 마을의 화재 참사는 자본주의 도시가 공간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주거 빈곤층을 지워버리는 구조적 폭력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민중’이 중심이 아닌 ‘자본의 지대’가 지배하는 도시 계획이 근본적으로 철회되지 않는 한, 개발의 그늘 속에서 터전을 잃는 비극은 반복된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입장·보고</category><title>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 한 번은 희극으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94777</link><pubDate>Mon, 26 Oct 2026 22: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94777</guid><description><![CDATA[<br><br>우리 당의 전진과 노선적 차이에 대하여<br><br>전근대를 강타한 제국주의에 대해 숙고하는 동안 러시아 혁명에 대해 생각한다. 영국 공산당원이었던 에릭 홉스봄은 『제국의 시대』에서 역사적 고찰을 수행했으나, 당시 한국의 분단 체제가 안고 있던 깊은 균열 구조까지는 포착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 반면 레닌은 러시아 혁명을 두고 ‘예기치 못한 사건’이자 ‘필연적 귀결’이라 평한 바 있다. 봉건제에 매여 있던 인민이 체제 내 모순을 자각하기까지 각국 혁명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그러한 높은 경지의 역사적 도약은 결코 달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nbsp;  시선을 현대로 불리는 오늘날로 돌려보자. 우리가 ‘신냉전’이나 ‘신제국주의’의 여파를 반복해서 거론할 때, 그것이 과거 부르주아지가 규정한 ‘공산주의자’ 혹은 ‘빨갱이’라는 낙인만큼이나 부르주아적 전쟁의 일부를 구성할 수 있음을 파악해야 한다. 이는 오늘날 각국이 충돌하는 복합적인 경제 문제에서도 선명히 확인된다.   &nbsp;  오늘날 금융 자본은 전 인민의 노동을 자본에 귀속시겨 체제의 지속성을 포장하고, 인민을 회유하며, 공포를 조장한다. 이는 아시아 내에서도 제국주의의 기생적 횡포가 극에 달한 채 여전히 건재함을 증명한다. 혹자는 후기 소비에트를 두고 ‘국가자본주의’라 비판하지만, 이는 건재한 제국주의의 부상과 사회주의 공화국의 역사적 시도를 좌절시키려는 반동적 획책이었음을 간과한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사회주의노동당이 보여준 불충분한 강령적 토대야말로 우리 공산당과 갈라서는 지점이다. 그들의 행태야말로 마르크스가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나폴레옹 3세를 비판하며 언급한 “한 번은 비극으로, 다른&nbsp;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구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우스운 책동일 것이다.   &nbsp;  혁명이란 일련의 투쟁들이 모여서 나타난 결실이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이는 깊이 있는 심층적 학습과 자국 인민들이 도달한 계급적 수준의 정당한 표출이어야 한다. 이에 비하면 오늘날의 현실은 얼마나 후퇴해 있는가! 부상하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진행성에 대해 직시하지 못하는 부르주아 어용학자들이야말로 노동 인민의 가장 큰 적이다.       &nbsp;  소비에트의 전신이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에 있음을 망각한 채, 곧바로 국제 무대에 진입하여 혁명만을 열망하는 사상적 주입은 과거 비판적으로 학습되지 못했던 사회혁명당(SR)의 오류를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러한 배외주의자들은 당의 건설을 위한 합류 대신 국제적 단결의 범주에서 탈선하여 운동의 소국적인 태도를 정당화할 뿐이다.   &nbsp;  러시아 혁명 당시 사회혁명당이 사회민주노동당과 척을 지며 보였던 반동적 경향과 마찬가지로, 운동의 단편적인 순간만을 수집해 이를 대의로 포장하는 국제사회주의노동당이야말로 당의 전진을 막아서는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이러한 사상적 동요와 타협이 모여 제국주의가 공산주의자를 탄압할 빌미를 제공해 왔다, 그리고 이것이 체제 내 인민들이 스스로 자본의 굴레에 속해 있으면서도 그저 정권 교체만을 바라는 통령 정부 내&nbsp;‘노동자’로 복무하는 데 만족하고, 해방을 위한 투쟁을 감행하지 못한 채 지연되고 있는 근본적인 까닭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를 읽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92812</link><pubDate>Sun, 25 Oct 2026 23: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92812</guid><description><![CDATA[  &nbsp;  &nbsp;『분노의 포도』 집필 배경&nbsp;<br>1947년, 스타인벡은 로버트 카파와 함께 소련을 직접 방문했다. 당시 미국은 반공주의가 점차 거세지던 시기였음에도, 그는 국가의 이념이 아닌 ‘소련 인민들의 삶’을 포착했다. 이 여정을 바탕으로 《러시아 일기 (1948)》를 출간하여 이념적 편견을 거두고, 2차 세계대전 후 폐허가 된 터전(모스크바, 스탈린그라드,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을 재건하며 살아가는 소련 대중을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nbsp;  그는 대공황기 미국의 자본주의가 소작농과 노동자들을 철저히 착취하고 파멸시키는 과정을 목격했다. 따라서 집단 농장이나 노동자 자치 형태를 시도하던 소련의 체계에서 자본주의 비인간성에 맞설 투쟁점을 찾고자 했다.&nbsp;《분노의 포도》가 출간되었을 때, 미국 자본가들과 정치권은 스타인벡을 “공산주의 선전 작가”, “빨갱이”라며 거세게 비난했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주와 오클라호마주의 일부 지자치에서는 “더럽고 욕설이 난무하며, 캘리포니아 농장주들을 모욕한다”는 이유로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대출 금지 처분했다. 이 책을 금서로 지정하고 도서관에서 불태우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반면 소련을 비롯한 진영에서는 그를 ‘미국 민중의 고통을 대변하는 양심적인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가’로 높이 평가했다.  &nbsp;  스타인벡은 냉전이 한창이던 1963년에도 소련과 동유럽을 다시 방문했다. 한편 스타인벡은 《분노의 포도》를 쓰기 전,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이어지는 이주민들의 66번 국도를 직접 차를 타고 따라가며 그들의 비참한 삶을 몇 달 동안 취재했다.  &nbsp;  &nbsp;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nbsp;&nbsp;존 스타인벡,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과 대규모 모래바람 여파로 터전을 잃은 농민들의 투쟁을 그린 소설이다. 미국 대공황기 가뭄과 트랙터 중심의 대규모 기업농으로 인해 수많은 소작농이 토지에서 쫓겨났다. 주요 등장인물로는 정당방위 살인으로 복역 후 가석방되어 고향에 돌아온 주인공 톰 조드가 있으며, 그의 어머니 마 조드는 가족의 단합과 생존을 이끈다. 짐 케이시는 전직 목사 출신으로 이주민 노동자들의 현실을 깨닫고 노동 운동가로 변모한다. 샤론의 장미는 톰의 동생으로 임신 중인 젊은 여성이다.&nbsp;가석방된 톰 조드는 술집 싸움에서 정당방위로 상대를 죽여 4년간 복역한 뒤 고향 오클라호마주 살리소로 돌아온다. 고향에 돌아오지만 가뭄과 은행의 토지 압류로 집이 황폐해진 것을 확인한다. 길에서 옛 마을의 전직 목사였던 짐 케이시와 재회하는데, 케이시는 목사직을 그만둔 상태였다. 고향 집은 이미 가뭄과 은행·대기업의 농지 압류로 파괴되어 있었다. 가족들은 이웃에 피신해 있었으며, ‘캘리포니아에 가면 일자리와 과수원이 풍부하다’는 전단지를 보고 낡은 허드슨 트럭을 개조해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떠나려던 차에 톰도 합류한다. 조드 일가는 낡은 트럭 한 대에 온 가족과 전 재산을 싣고 ‘젖과 굴이 흐르는 땅’이라 불리는 캘리포니아를 향해 66번 국도를 따라 고난의 여정을 떠난다.  &nbsp;  조드 일가는 12명의 가족과 짐 케이시까지 총 13명이 트럭 한 대에 타고 서부로 이동한다. 고향을 떠나자마자 고된 여정 속에서 조부모가 고령과 가혹한 압박으로 길 위에서 세상을 떠나고, 톰의 형 노아는 강가에 남아 가족을 떠나며, 톰의 동생 샤론의 장미의 남편 코니마저 가난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치는 등 일부 가족도 이탈한다. 그러나 어렵게 도착한 캘리포니아는 기회의 땅이 아니었다. 농장주들은 전국에서 몰려든 30만 명이 넘는 이주 노동자(일명 ‘오키(Okies)’)들을 이용해 인건비를 깎고자 과잉 공급 사태를 악용했다. 그들은 임금을 형편없이 후려치고 악랄하게 착취했다. 가난한 이주민들은 밤마다 66번 국도변 임시 숙소에서 만나 음식을 나누고, 정부가 관리하는 수용소(위드패치 캠프)에서는 노동자들이 자치회를 구성해 경찰의 폭력 없이 위생적이고 인간적인 생활을 누리며 잠시 기대를 품기도 하지만, 일자리가 부족해 다시 민간 과수원 농장(후버빌)로 이동하게 되면서 일자리를 찾아 다시 유랑 노동길에 나선다.  &nbsp;  복숭아 농장에서 일하던 중, 임금 인하에 반대하며 파업을 주도하던 짐 케이시를 만난다. 그러나 임금 인하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파업 현장에서 짐 케이시는 자경단원의 몽둥이에 맞아 숨을 거둔다. 케이시의 죽음에 분노한 톰은 자경단원을 살해하고 수배자가 된다. 톰은 숨어 지내다 어머니와 작별을 고한다. 톰은 케이시가 남긴 생각, “인간은 저마다의 영혼을 가진 것이 아니라, 커다란 하나의 영혼에 속해 있음”을 깨닫고 노동 운동에 헌신할 것을 다짐하며 떠난다. 케이시의 뜻을 이어받아 굶주리고 억압받는 민중 편에 서서 싸우겠다고 약속하고 길을 나선다.  &nbsp;  수확철이 끝나도 일거리가 없는데 비마저 쏟아져 폭우와 홍수로 수해를 입고, 거처가 물에 잠기게 된다. 영양실조로 사산한 아이를 출산한 샤론의 장미와 가족들은 피신한 헛간에서 굶어 죽어가던 한 노인과 마주한다. 샤론의 장미는 아이를 잃은 자신의 가슴에서 나오는 모유를 아무것도 먹지 못한 노인에게 물려 그의 목숨을 건진다. &nbsp;소설은 톰 조드의 서사와 1930년대 미국 노동자 대중의 현실을 교차하는 구성으로 전개된다. 《분노의 포도》는 단순한 개별 가족의 수난사가 아닌, 자본주의 구조가 초래한 비극과 이에 대응하는 노동자 계급의 의식 성장을 담아낸다. 스타인벡은 개별 농장주의 악함보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비인간성을 포착한다. 소설 초반에 은행은 “피를 마시고 돈을 먹어야만 살 수 있는 괴물”로 묘사된다. 소살 내 가장 유명한 묘사 중 하나는 과잉 생산으로 인한 식량 폐기 장면이다.&nbsp;“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는데, 오렌지에는 석유가 뿌려진다. 굶주린 이들의 눈 속에 분노가 쌓여가고, 그 분노의 포도가 사람들의 영혼을 가득 채우며 수확기를 향해 익어간다.”  &nbsp;  이러한 자본의 이윤을 유지하기 위해 굶어 죽어가는 아이들 앞에서 음식을 불태우는 대공황기 자본주의의 모순이 드러난다. 마 조드는 처음에는 “우리 가족만 살아남으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점차 남의 아이들에게도 찌개를 나눠주고 길거리의 이웃을 품는다. 톰은 개인적인 복수나 생존을 도모하던 개인에서 전 민중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운동가로 거듭난다. 짐 케이시는 종교적 관념론에서 벗어나 현장 중심의 계급 의식으로 전환하는 대표적 인물이다.&nbsp;위드패치 수용소에서는 경찰이나 자본가의 압제 없이 노동자들이 스스로 규율을 만들고 자치 위원회를 운영한다. 샤론의 장미는 결말에서 자신의 아이가 비록 죽었음에도 타인을 살려낸다. 이러한 장면들은 소설 전반에서 가장 강렬한 사회적 고발이 담긴 대목이자, 자본주의의 비인간성과 과잉 생산의 모순을 드러낸다.  &nbsp;  짐 케이시는 자경당원에게 최후의 말을 남긴다.&nbsp;“너희는 너희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라. 너희는 사내아이 하나를 배고프게 만들고 있어. 너희는 너희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른단 말이다.”&nbsp;케이시는 자신을 공격하는 자경단원 개개인을 악마화하지 않고, 그들 역시 노동자를 억압하는 거대한 악순환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 죽음은 방관자였던 톰 조드를 각성시켜, 개인의 생존에서 민중 전체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투사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nbsp;도망자가 된 톰이 동굴 속에서 어머니 마 조드에게 마지막으로 작별하며 말을 남긴다.&nbsp;“어디든 사람들이 굶주린 이들을 위해 싸우는 곳이 있다면, 나도 거기에 있을 거예요. …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음식을 먹고, 우리가 지은 집에서 살 때 … 나 역시 거기에 있을 거예요.”&nbsp;이는 눈에 보이는 한 인간으로서의 톰 조드는 비록 사라지더라도, 압제받는 민중이 있는 모든 현장에 존재하겠다는 선언이다. 개인에서 민중 전체로 이어지는 순간이며, 톰 조드는 이러한 굵직한 인물들과의 생사를 겪으며 운동가로 성장해 나간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바람의 언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90491</link><pubDate>Sat, 24 Oct 2026 18: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90491</guid><description><![CDATA[<br>고비가 올 때면 시동을 멈추곤 했다. 운전대를 잡기 전에 그녀의 생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소한 것까지 알고 있었기에, 찬&nbsp;공기의 온도가 식고 있었다. 그녀에게&nbsp;유창하게 말할 줄 몰라 연신 고개만 끄덕였다. 말의 심연이 가라앉는다. 무작정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가끔&nbsp;숨바꼭질의 술래 없는 당사자가 된다. 모두가 숨진 곳에서 바람이 조용히 떠나간다. 조금씩 힘을 잃어가는 당나귀가 가까운 마을에 목을 축이기까지, 숲속에서 피운 모닥불에는 나른한 그녀의 흐릿한 모습이 빠져나간다. 유골에 떨어진 먼지가 옷깃 사이로 떨어졌다.  &nbsp;  학이 날자 모든 것이 고요했다. 한 아이가 아무것도 없는 하얀 방에 앉아 지구의 화면을 본다.&nbsp;폐허가 된 병원에 있을 때도, 인적이 없어 축축한 서커스 공연장의 관객석에 홀로 앉아 있을 때도, 무작정 마을 버스를 아무거나 탈 때도, 예정되지 않은 곳으로 훌쩍 떠났다. 이 썩은 세상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면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밀려오는 폭풍의 충동을 밀어내고,&nbsp;소용돌이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가방에 이틀치 속옷만을 챙겨 운전대를 잡았다. 비는 도로를 축축하게 젖을만큼 개운하게 훑고 지나갔다. 폐차가 예정된 구식을 끌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바람의 언덕으로 향했다.<br>식장에 초대받지 못한 이가 등장할 때만큼 당혹스러운 일이 있을까. 떨리고 있었다. 긴 추위는 백지로 채운 폭설이 세차게 쏟아졌다. 하얗게 번진 얼룩처럼 형체를 잃은 그림자가 떠돌고 있다. 언젠가 화실에서 채색을 하던 중 무취의 향을 맡은 적이 있다. 독특했다. 눈 덮인 고속도로 위에는 폐차가 쌓였다.<br>그녀의 자서전에는 정작 그의 이름이 쓰여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에는 글로는 차마 담을 수 없는 상심의 세월이 그림자처럼 번졌다. 마치 꺼져가는 불꽃을 억지로 되살려보려는 안간힘처럼, 그의 행방은 부재중 표시를 남겼다. 오늘 아침에는 아무도 깨워주지 않은 깊은 잠이 들었다. 웃고는 있지만 속이 타는 영정의 분신처럼 그는 사라졌다. 다시 시동이 걸렸다. 내내 고속도로를 달리고는 있지만, 딱히 정해진 목적지가 없다. 계속 바퀴만 굴리고 있다. 바퀴의 도르래가 심장 주위로 낙하할 때면 낭떠러지로 추락을 준비하는 중이다. 무신경함의 극치가 속도를 추월했다.<br>떨어진 차량은 절벽의 험준한 낭떠러지로 굴러갔다. 나뭇가지들이 날카롭게 송곳처럼 온몸을 찔렀다. 창백한 상태로 눈을 떴다. 마비가 되었지만 의식은 눈처럼 하얗게 서서히 잃어가고 있었다. 폭설로 폐차가 쌓인 도로에는 창백한 사람들이 일제히 누워 있다. 그중에 하나였지만, 비바람처럼 세차게 몰아치는 폭설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근처에 천막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차량 안은 무척 적막했다. 창문 틈 사이로 거센 바람이 스며들었다. 뒤집힌 차량에 바람이 샜지만 막을 도리조차 없었다. 깜빡이만 똑딱거렸다.&nbsp;멀리서 외투를 입은 한 아이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이는 뒤집힌 차량 위로 올라가 등유를 부었다. 차량에 불이 붙었다. 거센 불길이 폭설을 뚫고 있었다. 차량은 금세 불이 붙었다. 사방에서 경고등이 울렸다. 눈 덮인 폐차들 속에서 전조등이 깜빡거렸다.&nbsp; &nbsp;<br>눈앞이 아득했다. 험준한 등고선을 따라 높은 시내가 보이는 곳까지 올라갔다. 물론 그녀는 이제 없었다. 잠잠해진 심연의 눈을 따라갔다. 그 언덕의&nbsp;폭풍에 휩싸여 순식간에 행방불명이 된다면 그대로 바다가 인도해줄 것이라 여겼다. 차라리 그렇게 안도했다. 이제는 안중에도 없던 지하실의 계단으로 차츰 내려갔다. 구세계가 끝나듯, 여정에 지친 당나귀가 막사에서 잠을 청하고, 그는 바람의 언덕에서 숨을 거두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입장·보고</category><title>부르주아 법 체계와 국가의 본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89485</link><pubDate>Sat, 24 Oct 2026 00: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89485</guid><description><![CDATA[<br>자본의 가면과 계급의 저울: 부르주아 법 체계와 국가의 본질  &nbsp;  현사회에서 법판결의 결과를 두고 일희일비하는 현상 그 자체가 부르주아적 법 체계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오늘날 사법 체계는 단순히 국내적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전 세계 지배 계급과 정치가들이 자본의 기구를 옹호하기 위해 마련한 질서의 방편으로 작동한다. 그것이 단순히 시민 사회의 제도여서가 아니라, 그 제도적 한계의 본질이 ‘부르주아적’임을 증명하는 공표인 것이다. 사실상 오늘날 법 체계 전반이 자본주의적 정치 질서의 원천이 되었음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현재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는 혁명적 투쟁의 경우에도, 그 성격이 단순한 시가지의 거리 시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민 간의 동의에 따른 심층적인 조직적·사회적 투쟁으로 확장되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nbsp;  현대 법철학이 마주한 근본적인 한계는 자본주의 체제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현대 법 체계(민법, 헌법, 상법 등)가 여전히 소유재산을 옹호하는 ‘부르주아적 특징’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형식적 권리상의 동등함 뒤에는 ‘실질적 계급적 격차’의 은폐가 숨겨져 있다. 현대 헌법과 민법은 “만인은 법 앞에 동등하다”며 모든 시민에게 동일한 법적 자격과 권리를 부여하지만, 이는 부르주아적 본질에서 하나의 함정에 불과하다. 마르크스가 《고타 강령 비판》에서 밝힌 바와 같이, 서로 가진 자산과 경제적 조건이 전혀 다른 사람에게 동일한 형식적 법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실질적인 구조적 종속을 고착화한다. 재벌 대기업과 일용직 노동자가 동일한 법적 기준으로 계약을 맺거나 소송을 벌일 때조차, 법은 형식상 ‘공정성’을 가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금력과 법률적 대응력이 압도적인 자본가 계급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  &nbsp;  “각 역사적 시기마다 소유는 각각 다르게 발전해왔고 일련의 전적으로 다른 사회적 관계하에서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부르주아적 소유를 정의하는 것은 바로 부르주아적 생산의 모든 사회 관계를 설명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소유를 독립된 관계, 고립된 범주, 영속적인 관념으로 정의하는 것은 단지 형이상학이나 법률학의 환상일 뿐이다.”  &nbsp;  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정치경제학의 형이상학」, 〈토지 소유 또는 지대〉  &nbsp;  이처럼 소유 재산을 둘러싼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는 노동자가 예속화된 생산관계를 스스로의 역량으로 타파하는 것을 제한하며, 오히려 법률적 형식이라는 허구적 틀에 종속시킨다.  &nbsp;  “형법의 조문은 기껏해야 근대 공업과 경쟁이 국민의회와 제국시대에는 충분히 발전되지 못했음을 증명할 뿐이다.”  &nbsp;  마르크스, 『철학의 빈곤』, 「정치경제학의 형이상학」, 〈파업과 노동자 조합〉  &nbsp;  사유재산권 (특히 생산 수단)의 절대적 보호는 현대 법 체계가 지닌 가장 큰 모순이다. 민법과 헌법은 사유재산을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이자 신성불가침의 권리로 규정하여, 타인의 노동으로 창출된 잉여가치를 소유하고 축적하는 ‘생산 수단(공장, 토지, 자본 등)의 사유화’를 정당화하고 철저히 보호한다. 반면, 아무런 생산수단도 가지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노동력만을 팔아야 하는 대다수 무산 대중의 생존권과 주거권 등은 낙후된 사유재산권의 장벽 앞에서 빈번이 제약당한다.  &nbsp;  ‘계약의 자유’가 가진 함정 역시 이러한 노동의 상품화와 착취를 합법화하는 데 있다. 국가가 개인 간의 거래나 고용 계약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법의 대원칙 속에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맺는 근로계약은 겉보기에는 강제성이 없는 ‘자발적 합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력을 팔아야만 하는 무산자의 구조적 궁핍함을 이용한 ‘강제된 계약’에 불과하다. 현대 법은 이러한 지배와 종속의 힘의 관계를 ‘개인 간의 자유로운 합의’로 포장하여 합법적인 착취 구조를 정당화한다   &nbsp;  나아가 현대 법은 사회 구성원을 구체적인 계급이나 사회적 관계 속에서 파악하지 않고, 고립된 개인, 즉 자유롭고 합리적인 ‘추상적 법적 주체’로 상정한다. 인간을 계급적 조건(노동자, 자본가, 빈곤층 등)에서 떼어내어 단순히 권리를 가진 ‘개인’으로 규정하여, 자본주의 사회가 낳은 구조적 불균등과 계급 격차를 개인의 능력이나 선택 문제로 전가해 버린다. 또한 공·사법의 이원화로 경제적 지배를 은폐한다. 헌법·형법 등의 ‘공법’ 영역과 민법 등의 ‘사법’ 영역을 엄격히 분리하여, 자본가들이 공장이나 기업 안에서 노동자를 지휘·감독하고 통제하는 경제적 권력 행사를 ‘사적 자치’라는 명목으로 국가의 규제와 민주적 통제로부터 보호한다. 즉, 자본주의 경제 내부에서 벌어지는 실질적인 독점과 지배를 ‘정치와 무관한 사적 영역’으로 은폐하는 역할을 한다.  &nbsp;  에브게니 파슈카니스가 『법의 일반 이론과 마르크스주의』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법의 본질은 상품 교환”이다. 현대 법 체계 역시 시장에서 상품을 사고파는 자본주의적 교환 관계를 전제로 성립했기 때문에, 겉으로는 ‘보편적 정의와 인권’을 표방하면서도 실상은 자본주의적 생산관계를 유지·재생산하고 자본의 지배를 안정화하는 가장 정교한 이념적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nbsp;  이러한 모순에 맞서 소비에트 초기에는 노동 현장의 분쟁을 심리하는 ‘공장 재판소’의 개념이 실천적 구상으로 제시되었다. 고용주와 노동자가 직접 선출한 대표들로 구성된 공장 재판소는 형식주의에 치우쳐 장기 소송이 만연한 일반 법원과 달리, 노동 현장의 실정과 고용주의 기만 수법(임금 체불, 부당 전근 등)을 정확히 이해하여 노동자에게 훨씬 공정했다. 또한 노동자들이 직접 법을 적용하고 집행 과정에 참여하여 국가 운영과 공공 문제에 독립적으로 주도하는 방법을 체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공장 재판수가 노동자들의 계급 의식을 고양시키고 정부 관료의 독점적 권위를 약화시킬 것을 두려워하여 이를 서류함에 처박아 두고 시행하지 않았다. 결국 공장 재판소와 같은 제도는 노동자에게 절설히 필요하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체제 아래에서는 온전히 실현될 수 없으며, 언론과 집회의 자유, 그리고 노동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총체적 정치 투쟁의 일부로서만 쟁취될 수 있다.   &nbsp;  지배 계급의 이익과 특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 문제를 왜곡해 온 부르주아 사상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발전 단계를 되짚어봐야 한다. 레닌의 《국가에 대한 강연》이 지적한 바와 같이, 국가가 영원히 존재해 온 것은 아니다. 원시 공산주의 사회에는 관습과 도덕적 권위가 사회를 유지했을 뿐, 타인을 영구적으로 지배하는 강제력인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가 계급으로 분화되면서 노예 소유 사회에서는 노예 소유주가 노예를 억압하는 기계로, 봉건 사회에서는 영주가 농노를 예속하는 기계로 국가가 진화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역시 봉건제를 무너뜨린 자본가 계급이 ‘자유’와 ‘법 앞의 동등’을 표방하며 세운 국가이나, 그 실상은 사유재산과 임금노동 제도를 유지한 채 다수의 무산 대중을 착취하고 지배하는 정치적 도구에 불과하다.   &nbsp;  이러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보통 선거와 의회주의를 수단 삼아 모든 사람이 평등한 것처럼 선전하지만, 자본의 힘이 사회를 지배하는 한 이는 허구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할수록 자본의 지배는 더욱 노골화되며, 국가는 계급 억압의 도구로 작동한다. 따라서 노동 계급은 부르주아 국가의 보편적 평등이라는 허항된 거짓말에 현혹되지 않고, 국가라는 강제력 기구를 장악하여 부르주아 권력을 전복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 착취 구조를 완전히 철폐하고 계급이 사라진 사회가 도래할 때, 비로소 인간을 억압할 필요성이 소멸하여 국가라는 기구는 역사 속에서 고철 더미로 폐기하게 된다.  &nbsp;  이러한 역사적 전환점 속에서 공표된 소비에트의 《법원에 관한 제1호 칙령》은 제정러시아 및 부르주아 임시정부의 사법 체계를 전면 해체하고 최초의 사회주의적 사법 기관을 구축하는 역사적 결단이었다. 제1조, 제3조로 기존 일반 법률 기관(지방법원, 항소법원, 상원 등)과 사법 관료주의 체계(수사관, 검사, 변호사 제도)를 전면 폐지했다. 이어 제2조와 제4조에 따라 노동자·병사·농민 소비에트의 민주적 선거로 선출된 판사와 배심원으로 구성된 ‘인민 법원’을 설치하고, 검사와 변호인의 역할을 도덕적으로 청렴한 모든 인민이 수행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또한 기존 법률은 ‘혁명적 양심’ 및 ‘혁명적 권리관’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한시적으로 준수하게 했으며, 소비에트의 법령이나 당의 강령에 위배되는 구법은 철저히 무효화했다. 특히 제8조에 의거해 반혁명 행위, 폭리, 투기, 사보타주 등을 전담 재판할 ‘혁명재판소’를 설치하여 신생 소비에트 정권을 방어하고자 했다.   &nbsp;  이 칙령은 부르주아 사법 기구를 단순히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부숴버리고, 인민의 사회적 참여와 ‘혁명적 양심’에 기반한 새로운 사법 체계를 세우겠다는 선언이었다. 현대의 법 체계가 사유재산 제도의 근본적 모순은 배제한 채 오직 돈이 오간 지엽적인 현상만을 문제 삼기에, 이에 맞서는 혁명적 투쟁의 필연성은 조르주 상드의 문구로 요약된다.   &nbsp;  “전투냐, 죽음이냐; 피로 얼룩진 투쟁이냐 사멸이냐, 이것이야말로 냉혹하게 던져진 문제로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피터 왓킨스, 《코뮌 (파리, 1871년)》 관람평</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84235</link><pubDate>Wed, 21 Oct 2026 11: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84235</guid><description><![CDATA[  &nbsp;  피터 왓킨스, 《코뮌(파리, 1871), 2000년 작》은 1871년 세계 최초의 프롤레타리아 자치 정부였던 ‘파리 코뮌’의 탄생과 몰락을 다룬 작품이다. 약 5시간 45분 (345분)에 달하는 긴 상영 시간 동안 영화는 단순한 역사극에 그치지 않고, 파리 코뮌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현대 매체 간의 관계를 파격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nbsp;  영화는 보불전쟁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패배 직후, 피폐해진 프랑스 민중의 삶에서 출발한다. 1871년 3월 18일, 티에르가 이끄는 프랑스 임시정부(베르사유)는 파리 인민들로 구성된 국민방위대의 대포를 압수하려 한다. 그러나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여성들과 민중이 이를 저지하고, 군대가 발포를 거부하면서 봉기가 시작된다. 위협을 감지한 임시정부가 베르사유로 도피하자 파리 인민들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거를 거쳐 자치 정부인 ‘파리 코뮌’을 선포한다.   &nbsp;  코뮌 정부는 집세 면제, 제빵 노동자의 야간 작업 금지, 무상 및 종교 분리 교육, 여성 권리 향상, 공장 노동자 공동 운영 등 사회 혁명 정책들을 쏟아낸다. 그러나 동시에 전시 상황에서의 행정적 미숙함, 지도부 내 이념적 분열, 여성 참여에 대한 일부 보수적 한계 등 내부적인 균열도 함께 드러낸다.  &nbsp;  이후 프로이센과의 협력으로 전열을 정비한 베르사유 정부군이 파리로 진격해 들어온다. 5월 21일부터 28일까지 이어진 ‘피의 일주일’ 동안  코뮌 인민들은 바리케이드를 치고 격렬히 저항하지만, 압도적인 무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진다. 결국 약 3만 명에 달하는 파리 인민과 노동자들이 무차별 학살당하면서, 파리 코뮌은 72일간의 역사를 뒤로한 채 비극적으로 막을 내린다.   &nbsp;  이 영화의 특징은 1871년이라는 역사적 현장에 ‘현대 방송 매체’의 존재를 개입시킨 시대착오적 연출이다. 극 중에는 두 개의 방송 취재진이 등장한다.  &nbsp;  코뮌 TV (민중 방송): 마이크를 들고 바리케이드 위를 직접 누비며 여성, 어린이, 가난한 노동자, 군인들의 목소리와 열망을 대담 형식으로 담아낸다.   &nbsp;  베르사유 TV (기득권 방송): 정제된 방송실에서 고급 정장을 입은 보도 진행자와 취재원이 코뮌을 폭도와 무정부주의자로 몰아가며 선전 선동과 가짜 뉴스를 보도한다.  &nbsp;  19세기 역사극에 현대의 촬영 장비와 뉴스 진행자가 등장하는 이 구조는 대중 매체가 역사를 다루고 편견의 틀을 씌우는 방식을 풍자했다.  &nbsp;  또한 영화는 장시간 연속 촬영 방식을 활용해 카메라로 파리의 골목과 바리케이드 사이를 천천히 훑고 다닌다. 345분이라는 방대한 상영 시간 덕분에 주인공 몇 명에게만 조명이 집중되지 않고, 거리의 아이들, 방직 공장 여성, 정부군 병사 등 모든 출연진에게 고루 발언권이 주어진다. 관객은 6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72일간의 역사를 마치 ‘실시간 생중계’로 목격하는 듯한 깊은 생동감에 빠져든다.  &nbsp;  무엇보다 서늘한 충격을 주는 대목은 화면 속 열기 외적으로 등장하는 검은 자막이다. 코뮌 인민들이 화면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을 때, 화면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떠오른다.  &nbsp;  “이 증언에 나오는 21세 여성 노동자는 5월 24일 베르사유 정부군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게 된다.”   &nbsp;  “이 병사는 진압 후 신원 미상 상태로 대량 매장지에 묻힌다.”  &nbsp;  민중의 모습과 그들의 비극적 최후를 미리 알리는 자막의 대비는 관객에게 깊은 충격을 선사한다.  &nbsp;  감독은 전문 배우 대신 약 300명의 비전문 일반인을 기용했다. 이들은 단순한 보조 출연자가 아닌 영화의 공동 창작자였다. 신문 광고, 전단지, 사회 단체 등을 거쳐 모집된 출연진은 실제 선반공, 교사, 우체부, 간호사, 노조 활동가, 알제리·아프리카계 이민자, 실업자, 학생 등 현실에서 약자나 노동자 계급으로 살아가는 프랑스 인민들이었다. 특이한 점은 베르사유 정부군이나 기득권층 역할을 맡은 사람들 역시 실제 보수적 정치 성향을 가진 일반인이나 언론인들을 모집했다는 것이다.  &nbsp;  배우들은 촬영 전 수개월 동안 역사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파리 코뮌 학습 토론회에 참여했다. 각자 맡은 인물의 사회적·경제적 배경을 연구한 이들은 정해진 대본을 외우는 대신, 감독이 던져주는 특정한 상황 (“빵 값이 올랐다”, “정부군이 진격해 온다”) 속에서 자신이 연구한 인물로서 자발적인 즉흥 연기를 펼쳤다. 영화 촬영장은 제작진이 완벽히 통제하는 연기 공간에 머물지 않고, 출연진들이 실제로 화를 내고 상대의 말을 끊으며 논쟁하는 하나의 ‘정치적 공론장’으로 기능했다.   &nbsp;  영화 후반부로 갈수록 배우들은 ‘4차원의 벽’을 깨고 1871년의 역할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온다. 그리고 촬영기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자신의 진짜 모습 (현대 프랑스의 노동자, 이민자, 학생 등)으로 돌아와 오늘날 사회 문제 (세계화, 대중 매체 독점 및 왜곡, 인종차별, 신자유주의 노동 조건, 교육 문제, 실업난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인다.   &nbsp;  “저는 사실 알제리 출신의 이민자 노동자입니다. 제가 맡은 1871년 노동자의 빈곤은, 2000년대 프랑스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저의 삶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nbsp;  과거의 역사적 사건과 현대 출연진의 실제 삶이 한 화면에서 교차하는 순간, 영화는 단순한 연극에 머물지 않고 시대를 가로지르는 기록극으로 전환된다.  &nbsp;  이들의 동지애는 촬영장에서 끝나지 않았다. 완성도 높은 민중극을 만들어낸 출연자들은 영화 완성 후 대형 매체나 배급사가 영화를 외면하려 하자, 직접 영화 수입/배급 협동조합을 결성하여 자체 상영회를 열고 언론 매체 비판 운동을 이어갔다.   &nbsp;  《코뮌》은 단순히 지나간 옛 역사를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역사적 사건과 현대적 매체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불꽃으로 대중 매체의 독점적 편견의 틀을 고발하며, “150년 전 민중들이 피 흘려 싸웠던 가치들이 과연 지금은 이루어졌는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nbsp;  345분 동안 관객을 투쟁의 장벽 한가운데로 불러앉히는 이 혁명적인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더 나은 사회를 향한 민중의 열망은 왜 역사 속에서 지워졌는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스스로 되묻게 만든다. <br><br>&lt;《코뮌》 포스터&gt;&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21/pimg_63928179771114064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84235</link></image></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구차한 변명</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83462</link><pubDate>Tue, 20 Oct 2026 23: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83462</guid><description><![CDATA[<br>기계 언어를 다루다 보면 그것이 외래어라는 사실을 종종 인지하게 된다. 상거래에서도 ‘표준 우리말’이라는 기치 뒤에서, 수입산 기계어에 익숙해진 채 뜻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용어들을 무자비하게 남용한다. 단순히 문맹을 벗어나 아름다운 순우리말을 쓰자는 상투적인 주장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구사하는 언론의 말을 보면 그들의 언어는 그들만의 기득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만들어진 폐쇄적인 ‘은어’에 가깝다. 실제 우리말의 구성 비율을 보면 한자어가 50~60%, 고유어(순우리말)이 20~30%이며, 외래어 및 혼용어는 5%~10% 남짓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국민의 약 77.9%가 외국어와 외래어를 훨씬 더 많이 접한다고 응답한다. 자본의 논리로 도배된 상업·홍보성 문구가 매체를 점령하면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언어의 폭이 극도로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nbsp;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검수할수록, 정치인들과 자칭 ‘자유 지식인’들이 만들어내는 수사가 얼마나 구차한 변명에 불과한지 알게 된다. 그들은 막대한 연봉을 누리면서 사회의 실질적 기둥인 노동자를 은연중에 폄하한다.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지지자들과 결탁해 선동을 일삼는다. 정작 자신들의 정당성에는 침묵한 채 오직 자신들만의 ‘정의’를 내세우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의 실체란 본디 속물적이고 지저분할 뿐이다. 우리가 ‘계급’이라는 개념을 처음 배울 때조차, 사회는 전문 용어와 외래어로 포장된 뜻 모를 기계어를 주입식으로 반복 학습시켰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그들이 외치는 ‘순수한 우리말’이라는 구호조차 또 다른 구차한 변명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nbsp;  ‘나만 잘 먹고 살면 되지’는 안일한 태도가 모여 사회를 이룰 때, 자유는 끝내 인간을 배신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자본의 언어가 주입한 극소수의 언어에 불과하며, 그것을 방관하는 사회의 일원들 역시 이러한 구차함이 묻어난 글과 말로 저마다의 상아탑 속에서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다. 이 방관에 대해 단순히 ‘심심함’이라 말하기에는 얼마나 유치한가.]]></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정치경제학</category><title>대자본 기업 철수 요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76268</link><pubDate>Fri, 16 Oct 2026 2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76268</guid><description><![CDATA[  &nbsp;  <br>해외 거대 자본이 국내에 통상과 원조를 요구하는 까닭은, 제국주의적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한 명분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 특히 미국과 서구의 제국주의 자본이 주식 발행과 금융 수탈을 매개로 한국 진출에 열을 올리는 까닭은, 한국의 생산과 무역 구조를 자국 자본의 종속물로 예속시키려는 전략적 의도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제국주의 자본의 침투는 국내 핵심 독점 기업의 지분을 장악하여 매년 막대한 잉여 가치를 배당금의 탈을 쓰고 본국으로 수탈할 뿐만 아니라, 국내 노동 민중을 향한 초과 수탈을 한층 극심하게 만든다. 대외 의존이 심화할수록 제국주의의 식민지적 수탈 대상이 될 여지가 커진다는 마르크스의 『자본』 속 지적은 여전히 확고한 유효성을 지닌다.  &nbsp;  그러나 토마 피케티의 수식적 자산 불평등 분석이나 마이클 로버츠의 통계적 이윤율 측정, 데이비드 하비의 공간적 수탈론 따위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단순한 ‘분배의 불균형’이나 ‘실증적 수치’, 혹은 ‘외형적 강탈’로 축소한다는 점에서 계급적 생산 관계를 부차화하는 경제주의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이들 개량주의적·실증주의적 진단과 달리, 마르크스주의 정론이 지목하는 모순의 본질은 ‘자본가 계급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잉여 가치 착취’ 그 자체에 있다. 따라서 자립적인 자생적 생산 기반을 수립하지 못하는 한, 제국주의 자본의 확장은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인 ‘가치 증식의 위기’와 ‘노동 대중의 빈곤화’를 가속화할 뿐이며, 그 결과 노동 민중의 삶은 개별화된 생존 경쟁 속에서 철저히 파편화된다.    &nbsp;  제국주의 자본을 매개로 추진되는 전방위적 경제 원조는 실상 국내 생산품보다 서구 독점 자본에 유리한 기술 규격과 생산 표준을 강요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이러한 기술과 수입에 대한 종속은 단순한 에너지 자원 문제를 넘어, 의식 산업과 매체를 매개로 민중의 의식 구조 전반을 잠식하고 흡수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속박 아래서 대외 무역 의존도가 고착될 경우, 그 귀결은 생산력의 정체와 장기적 경제 침체로 나타난다. 이는 증권 시장과 투기 자본에 몰두하는 현대 금융 제국주의와 결합하여 전 세계적 독점체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노동 민중에게 심대한 위협이 된다.   &nbsp;  따라서 기존 종속 이론이나 현대 수치 중심의 경제학이 빠졌던 국가 간 대립이라는 경제주의적 착시를 깨부수고, ‘자본 대 노동’이라는 계급 투쟁의 본질을 바로 세워야 한다. 이 관점에서 ‘제국주의 대자본 기업 철수 요구’는 단순한 배타적 민족주의의 구호가 아니라, 계급적 해방을 위한 투쟁의 도구이다. 한국 GM 공장의 기습 폐쇄나 해외 사모펀드의 자본 도피 행태가 증명하듯, 제국주의 자본의 진출은 시혜가 아닌 착취와 수탈이었음이 명백히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제국주의 대자본과 국내 독점 자본의 생산 수단을 상환 없이 무상 몰수하여 사회화하고, 노동자 위원회에 기반한 계획 생산 체제를 수립하며, 국제적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단결에 기초한 물자 교환(무역)을 실현하는 것만이 인민 경제를 수탈로부터 해방하고 사회주의적 자립 생산을 이뤄내는 유일한 길이 된다.   &nbsp;    &nbsp;  참고 자료  &nbsp;    &nbsp;  · 피케티, 토마 (Piketty, Thomas), 『21세기 자본』 , 2014.  &nbsp;  - r &gt; g 공식을 기반으로 한 장기적 세습 구조 실증 분석으로 자산 불평등의 수치적 심화를 폭로했으나, 그 모순의 본질인 ‘자본가 계급의 노동자 계급에 대한 잉여가치 착취’라는 생산관계를 외면하고 단순한 분배 불평등으로 축소하여 개량주의적 조세 개혁에 머무르고 마는 한계를 명백히 드러낸다.  &nbsp;    &nbsp;  · 로버츠, 마이클 (Roberts, Michael), 『The Long Depression』, 2016.   &nbsp;  - 주요 G20 국가 및 세계 자본의 장기 이윤율 하락 수치 통계화로 세계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을 실증 수치로 증명한 의의가 있으나, 지나치게 실증주의적·통계적 측정에 매몰되어 이에 맞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체적 계급 투쟁과 혁명적 실천을 부차화하는 경제주의적 오류에 빠져 있다.  &nbsp;    &nbsp;  · 하비, 데이비드 (Harvey, David), 『신제국주의』, 2005.   &nbsp;  - 현대 자본주의의 ‘강탈적 누적’ 및 공간적 다변화 이론은 제국주의적 자산 약탈의 외형을 포착했으나,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을 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가치 증식의 위기가 아닌 외형적 강탈 및 공간적 재편으로 국한시켜 자본주의 본연의 계급적 착취 구조를 추상적 도식으로 치부했다는 저술적 한계를 보인다.  &nbsp;    &nbsp;  · 한국은행 / 금융감독원, 『2022~2025년 외환지출 및 외국인 주식투자 현황』, 한국은행·금융감독원 공시 자료.   &nbsp;  - KOSPI 주요 독점 기업의 외국인 지분율 50%~60% 대 유지 및 매년 수조~10조 원 규모의 해외 배당금 유출 실증 통계로 해외 금융 자본으로의 부 유출을 수치화하고 있으나, 단순한 자본 이동 및 수지 균형 수준에서 통계를 집계할 뿐 이 수치가 노동 민중에게 가해지는 ‘초과 수탈’의 결과물임을 밝히지 못하는 제도권 통계의 한계를 안고 있다.  &nbsp;    &nbsp;  · 전국금속노동조합 한국GM지부,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보고서: 해외 ‘먹튀’ 자본의 실상과 노동자 생존권 파탄』, 금속노조, 2018.   &nbsp;  - 2018년 GM 본사의 이윤율 방어를 위한 일방적 군산 공장 폐쇄 및 대량 실직 기록으로 해외 다국적 대자본의 일방적 자본 도피 행태를 기록했으나, 이를 해외 자본의 개별적 도덕적 해이로 바라볼 뿐 제국주의 자본과 국내 부르주아 국가 권력의 결탁 구조 및 생산수단 무상 몰수라는 계급적 과제로까지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한계를 보인다.  &nbsp;    &nbsp;  ·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EU Commission),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및 기업 지속가능성 공급망 실사 지침(CSDDD) 이행안』, EU Official Publication, 2023.   &nbsp;  - 서구 중심의 생태·노동 기술 규격 및 통상 표준 설정으로 표면적으로는 ‘지속적 발전’과 ‘환경 보호’를 내세우고 있으나, 실상은 서구 독점 자본의 기술 독점을 공고히 하고 종속국의 생산 체계를 속박하는 현대 제국주의의 신형 규제 장벽임을 은폐하고 있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정치경제학</category><title>도시 제국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76258</link><pubDate>Fri, 16 Oct 2026 23: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76258</guid><description><![CDATA[  &nbsp;  <br> 도심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신의주와 평양 지방은 물론, 국내 서울의 한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성외곽 지역들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인위적으로 가공·발전했다. 자본주의 체제의 도입으로 진행된 급격한 산업화와 그로 인해 파생된 무계획적 개발의 실체는, 결국 부르주아 시민층의 편의만을 위한 소수의 공간으로 독점되었으며 인위적인 가공을 거쳐 확장되었다. 도심의 상·하수도 시설과 지하 수도의 건설 역시 자연스러운 강의 물길을 차단한 댐과 강 유역의 개발에 그치지 않고, 불안정한 초고층 건물과 지하 교통 시설 등을 무모하게 확장한 결과였다. 1960~70년대 청계천, 만초천 등 30여 개 자연 하천의 복개 및 암거화, 그리고 여의도 윤중제 건설을 위해 밤섬을 폭파하고 모래톱을 콘크리트 호안으로 직강화한 역사적 사료들은 공간을 인위적으로 가공하고 수계를 통제한 대표적 실증 사례다. 이는 2000년대 대통령 정부 정권하에서 극비리에 진행된 도시 계획 건설 통제의 일면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nbsp;  도시개발사업으로 위장된 이러한 ‘도시 제국’의 허점은 현재도 지속적으로 폭로되고 있다. 상·하수도 시설을 비롯해 가로수 문제, 부지 일대의 고층 아파트 건립, 그리고 지속되는 주택 부족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설명된다. 인구가 감소함에도 주택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원인은 정치경제학적 문제와 밀접하지만, 동시에 공간적 점유 측면에서 소수의 제국적 독점을 강화하여 부르주아 국가의 통제적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전국 주택보급률이 이미 100%를 넘어 103% 내외에 달하는 공급 포화 상태임에도 서울의 자가점유율이 40% 대에 정체되어 있다는 통계 수치는, 주택 문제가 단순한 ‘양적 공급의 부족’이 아니라 자본이 주도하는 ‘점유와 분배의 독점’ 문제임을 입증한다. 신규 공급되는 주택은 실거주 노동자가 아닌 자산가층과 다주택자에게 집중 소유되어 임대 상품화되었으며, 지대와 시세 차익을 수탈하는 수단으로 고착화되었다.  &nbsp;  이러한 도시들은 과거부터 자신들의 식민지성을 강화하기 위해 사적으로 법적 강화를 무단 동원하는 방식으로 부족함을 보충해 왔으며, 서울 중심지를 비롯해 수도 이전 등을 빌미로 도시 제국의 확장을 위한 방편을 구축해 왔음을 증명한다. 국가는 토지 수용권과 용도 변경, 비상법적 제도를 동원하여 자본의 개발 이익을 법적으로 보호한 반면, 실질적으로 거주해 온 세입자의 주거권은 박탈했다.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의 수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방 도심의 경우에도 부족한 인구수를 대체한다는 명분 아래 도심 편의시설을 무모하게 확장하거나, 사업성에 치중한 건설 방식으로 기존의 자연경관마저 도시 제국의 일부로 흡수하며 밀어내 버렸다.  &nbsp;  이 지점에서 데이비드 하비의 『반란의 도시』는 참고할 만한 저작이지만, 해당 작업이 지닌 경제주의적 오류는 서울이라는 소도시에서 발생한 무모한 도시 확장을 완전히 설명하지는 못하는 한계를 보인다. 하비의 ‘자본 2차 순환론’은 과잉 축적된 자본이 건설 및 부동산으로 이동하며 도시를 재편한다고 보았으나, 이는 영토와 공간적 규모가 비교적 큰 자본의 도시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경제주의 오류는 인민주의적 오류와 맞닿아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서울과 같은 동아시아 압축 성장 도시에서는 시장 자본의 내재적 동학에 앞서, 국가 공권력 (발전 국가)이 이념적·정치적·군사적 통제 목적으로 강북 제한과 강남 개발 등 공간을 강제 재편한 ‘국가 주도형 통제성’이 강력하게 작용했다.&nbsp;그러나 핵심은 도시 제국의 역사가 자본주의 역사와 발맞추어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부르주아 권력성을 보여주는 공권력 통제를 위해서도 도시의 기능은 인민을 통제할 수 있는 매우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과정에서 도심의 기틀을 떠받치던 달동네와 쪽방촌 등 하층민의 주거 공간은 ‘도시 정비’라는 명목으로 철저히 파괴되었다.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을 시작으로 1980년대 목동·상계동 합동재개발 철거 투쟁, 그리고 2009년 용산 참사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는, 토건 자본의 개발 이익과 국가 공권력이 결탁하여 세입자와 원주민을 도시 외곽 및 반지하·고시원 등의 열악한 거처로 폭력적으로 축출해 온 생존권 투쟁의 기록이다.&nbsp;소도시에서 출발한 서울의 모습은 자본주의 경제가 보여주는 화려한 도시의 미관 뒤에 숨겨진 현실 노동자들의 거주지 문제를 비롯해, 도시 제국이 걸어온 실제 역사를 명확히 보여준다. 현대 도시 개발 정책은 미개척지를 정복하고 원주민을 축출하며 수탈을 정당화했던 신제국주의적 관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화려한 초고층 빌딩과 도심의 불빛은 공공의 자연 수계를 차단하고, 소수 부르주아 자산가층의 공간 독점을 강화하며, 노동자 계급을 ‘내부적 유배’ 상태로 내몰며 구축된 ‘도시 제국’의 폭력적 실체를 가리는 장식물에 불과하다.  &nbsp;  &nbsp;참고 자료  &nbsp;  &nbsp;· 서울시정개발연구원 (현 서울연구원), 『서울시 복개하천 생태복원 기본구상』, 서울시정개발연구원, 2003, pp. 24-25. (서울 시내 30여 개 주요 하천의 복개 및 암거화 역사와 도시 하수도화 과정 분석)&nbsp;- 해당 자료는 서울 시내의 복합 단지 건설과 생태 복원에 있어 하수 기반 처리 시설의 조사를 진행했으나, 국가 정부가 임의로 주도한 정책적 결정 방식을 그 한계로 지목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닌다.&nbsp;  &nbsp;  · 손정목,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 1~5』, 한울, 2003. (1960~1970년대 한강 개발 계획, 여의도 윤중제 건설 및 밤섬 폭파 등 국가 주도 공간 가공의 사료적 기록)&nbsp;- 이는 서울의 도시 계획의 발전 기록에 주목한 저작이지만, 실상은 경제주의적 한계를 포착하지 못한 실작에 불과하다.  &nbsp;  &nbsp;· 통계청, 『2022~2024년 주택총조사: 인구·가구·주택 기본 집계』,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 (전국 주택보급률 102.1%~103.5% 대 대비 서울 자가점유율 47.9%~48.3% 대의 구조적 격차 실증 자료)&nbsp;· 한국도시연구소, 『주택 공급 정책과 주거 불평등에 관한 연구』, 한국도시연구소 보고서, 2021, pp. 12-38. (대규모 주택 공급이 서민 주거 안정으로 이어지지 않고 다주택자·자산가층의 임대 상품으로 독점되는 정치경제학적 기제 분석)&nbsp;· 국토연구원, 『지방도시 도심 재개발 및 도시재생 정책의 한계와 과제』, 국토연구원 연구보고서, 2020, pp. 55-82. (지방 혁신도시 및 원도심 재개발이 인구 유입보다는 토건 자본의 이익과 자연경관 파괴로 귀결된 실증 사례)&nbsp;- 위 사례들은 주택 보유지에 대한 소득 측정 방식의 구조적 격차가 여전히 ‘평균 수치’에 의존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한계를 보인다. 방대한 통계청 자료에 비하며 부실하다는 지적을 면하기 어렵다. &nbsp;  &nbsp;  · 김진균·조희연 편, 『한국 사회의 계급과 국가』, 한울, 1990. (토지 수용권 및 비상 제도를 동원한 국가의 사적 자본 비호와 법적 통제 기제)&nbsp;- 이러한 분석은 토지 수용권 및 비상 제도를 거론하기는 했으나, 실상은 토지의 사유 재산화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하고 민주적 기틀 하에서 수렴된 정책적 통일론으로 수렴하고 말았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nbsp;  &nbsp;  · 하비, 데이비드 (Harvey, David), 『반란의 도시: 도시의 권리를 위하여』 (강현수 역), 자음과모음, 2014. (자본의 2차 순환 및 공간적 다변화 이론)&nbsp;- 『반란의 도시』는 도시 계획의 공간적 점유 문제를 거론한 문제작이지만, 그의 경제주의적 접근 방식은 명확한 한계를 드러낸다. 결과적으로 자본주의적 계급 격차 문제를 온전히 규명하지 못하고 추상적·개념적 도식으로 접근했다는 점에서 저술적 한계를 명확하다.&nbsp;  &nbsp;  · 배준식·임동근, 『서울도시계획의 역사』, 동녘, 2015, pp. 102-145. (서구 자본 동학 중심의 하비 이론이 지닌 한계를 지적하고, 한국 발전국가 공권력의 정치·군사적 공간 강제 재편 특수성을 분석한 연구)&nbsp;· 조명래, 『현대도시론: 자본·공간·생태』, 한울아카데미, 2018, pp. 210-245. (신자유주의 도시개발 정책이 지닌 신제국주의적 원주민 축출 관성과 공간적 계급 축출의 최종 형태 비판)&nbsp;- 이러한 연구들의 한계는 자본의 공간적 점유 방식이 아닌, 다른 이유의 사례를 들어 그 특수성을 거론하는 데 그치고 만다는 점에 있다!  &nbsp;    &nbsp;  · 강인철, 『한국의 빈민운동과 도시투쟁사』, 한울아카데미, 2011, pp. 88-160. (1971년 광주대단지 사건, 1980년대 목동·상계동 합동재개발 철거 투쟁의 역사적 궤적)&nbsp;·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용산참사 진상조사 보고서: 신자유주의 도시개발과 국가폭력』, 한울, 2010. (2009년 용산 4구역 재개발 강제 진압 및 세입자 생존권 박탈의 기록)&nbsp;- 당시의 폭력적인 진압 방식을 고려할 때, 이러한 시민권과 참사의 관계를 단순히 시사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무용지물이다. 오히려 요구되는 지점은 진상규명위원회가 제대로 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며, 도심 내 지역 위원회조차 전무하다는 수도의 명확한 한계를 짚어내는 일이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정치경제학</category><title>자본주의 체제와 범죄의 상관관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72747</link><pubDate>Thu, 15 Oct 2026 01: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72747</guid><description><![CDATA[<br>자본주의 체제와 반동적 범죄의 구조적 실태<br>자본주의 체제와 고도의 범죄율 사이에는 매우 높은 상관관계가 존재하며, 이는 과거 여러 혁명 이론적 저술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특히 현대 사회에 이르러 발생하는 ‘묻지마 범죄 (이상동기 범죄)’는 세대를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출현한다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반동적 범죄의 실상은 가해자 개인의 비도덕적 일탈이나 심리적 이상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할 수 없으며, 정치경제학적 구조 요인으로 접근할 때 비로소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정치적·경제적 변동이 극심해질수록 범죄 양상이 급격히 증폭하는 까닭은, 시장 경쟁 구도에서 밀려난 취약 고령층의 계급적 몰락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 66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40% 내외에 달하며, 2024년 경찰청 범죄 통계에서는 60세 이상 고령층 피의자 비중이 18.8%를 기록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20대 피의자 비중을 추월했다. 특히 최근 5년간 71세 이상 고령층의 절도 범죄가 약 68% 폭증한 지표는, 사회적 생산 기구에서 배제된 고령층이 생존을 위협받는 현실을 단적으로 입증한다.   &nbsp;  자본주의 체제 내 계급 간 경쟁이 심화할수록 구조적 가장자리에 몰린 이들일수록 범죄 조건에 취약해진다는 점은 명백하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모순적으로 감옥을 선택하는 생계형 범죄나, 불특정 다수의 피해자를 낳는 ‘묻지마 범죄’는 모두 이들의 경제적 취약성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나아가 정치적 변동 속에서 이들이 구조적 격차를 체제적 층위에서 자각하고 혁명적 동력으로 전환할 계급 의식 능력을 상실했다는 점을 드러낸다. 실업 상태에 처했거나 정년퇴직자, 혹은 장기간 노동 시장에서 이탈해 있는 ‘룸펜’ 상태의 집단에서 나타나는 범죄율 상승은 단순히 가해자가 일으킨 법적 불안정 상태로만 볼 수 없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내 정치적 지형 및 기존 법적 조치의 한계를 드러내며, 부르주아적 국가 기구가 방관해 온 공권력과 경찰력 통제의 근본적 한계를 명확히 수렴한다.   &nbsp;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정년퇴직이나 신체적 노화로 노동 생산성을 상실한 고령층은 ‘상대적 잉여 인구’로 전락한다. 부르주아 국가 기구의 부실한 제도적 안전 기구만을 제공함에 따라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은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의도적으로 법적 불안정 상태를 야기하기도 한다. 법무부 수용자 통계에 따르면 교도소 재소자 중 저소득층 및 무직자의 비율이 70% 이상을 차지하며, 65세 이상 수용자 수 역시 최근 10년 사이에 2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형벌 기구여야 할 교도소가 모순적으로 최소한의 의식주와 의료 보장을 제공받는 ‘대체 기구’로 전락했음을 보여주는 ‘빈곤의 사법화’ 현상이다.  &nbsp;  한편, 장기 구직자나 실업자로 구성된 ‘룸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의 증가는 무동기 범죄의 직접적인 동인으로 작용한다. 자본주의 노동 시장에서 배제되어 파편화된 개인들은 공동체적 연대나 조직화의 기회를 잃고, 체제 모순을 자각하여 혁명적 동력으로 전환할 계급 의식을 상실하게 된다. 대검찰청과 경찰청의 이상동기 범죄 피의자 분석에서도 가해자의 70% 이상이 장기 무직이나 일용직 상태였으며, 극심한 사회적 고립에 처해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매체로 인해 가중되는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적 배제 속에서, 체제 모순의 원인을 정확히 타격하지 못하는 이들의 분노는 불특정 다수나 무고한 대상을 향한 무차별적이고 반동적인 폭력의 형태로 일그러져 분출된다.  &nbsp;  이와 같은 자본주의적 범죄 원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포착된다.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는 전체 형법범 중 65세 이상 비율이 20%를 상회하며, 출소 후 생계 수단이 없는 고령층이 식료품을 훔쳐 교도소로 재입소하는 생계형 절도 (만비키) 현상이 고착화되었다. 동시에 사회적 노동 시장에서 완전히 탈락한 장기 은둔·무직 계급이 자행하는 길거리 무차별 난동인 ‘토오리마’ 범죄가 지속적인 사회적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 역시 극단적인 신자유주의적 계급 분화와 취약한 의료 보장 체계로 인해 노년층의 의료비 파산 및 생계형 범죄가 급증하고 있으며, 사회적 소외와 총기 유통이 결합하여 연간 수백 건의 무차별 대량 총기 난사라는 치명적인 형태로 발현되고 있다.  &nbsp;  결국 현대 사회에서 분출하는 노인 범죄와 묻지마 범죄는 자본주의 체제 내의 정치적 지형과 국가 사법 기구가 지닌 근본적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국가 기구가 계급적 분화의 구조적 원인을 도외시한 채 경찰력 강화나 형벌 수위 상향과 같은 응징적 통제 조치에만 의존하는 것은 부르주아 기구의 방관이자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사회적 생산 기구에서 밀려난 잉여 인구와 룸펜 계급의 범죄를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사법적 통제에 머무르는 대신, 세대를 아울러&nbsp;정치경제학적 비판적 층위에서 사회적 생존 보장 체계를 재건하고 계급적 배제와 분화를 해소하는 혁명적 변혁이 필수적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입장·보고</category><title>민족 문제에 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68664</link><pubDate>Mon, 12 Oct 2026 23: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68664</guid><description><![CDATA[  &nbsp;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nbsp;  &nbsp;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제기될 때, 그것은 결국 ‘국가’라는 틀로 포섭된다는 근본적 한계를 지닌다. 그러나 이 국가의 본질이란 추상적인 언어적 담론에서 벗어나는 순간, 특수한 문제에서 보편적인 문제로 변질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한국인’이라 칭할 때의 국적은 사실상 민족의 일환으로 작용하는 한계를 지님과 동시에, 부르주아 국가인 ‘대한민국’으로 수렴된다는 한계를 함께 가진다. 마르크스주의가 투쟁해야 할 지점이 바로 여기다.  &nbsp;  이와 관련하여 스탈린,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는 이론적으로 참고할 만한 대목을 제시한다. 이는 사회민주주의적 한계를 직시하게 함과 동시에, 계급 투쟁적 관점에서 ‘민족 문제’가 정체성으로 고착화되는 순간을 포착해낸다. ‘한국인’에 대한 추상적 담론에 머무는 사회학자들의 편견 어린 시선과는 달리, 마르크스주의자는 적극적으로 국제주의를 지지하고 인터내셔널의 대의를 옹호하는 한에서만 자신의 당위성을 증명할 수 있다. 이는 당 내부의 사정에 기인하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핵심은 부르주아 국가 체계로 포섭되는 현상에 맞서 노동자 국가의 방향성을 현실의 프롤레타리아트가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라는 중대한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는 데 있다.   &nbsp;이 문제는 비단 한국인의 정체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피식민지 및 제3세계의 민족의 경우에도 ‘민족 문제’로 발생하는 제반 분쟁에 대한 해석은, 결국 부르주아 질서로 포섭된 국적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지지 표명’에 그쳐서는 안 되며, 현상의 전개가 ‘자본주의적 객관적 본질을 얼마나 포착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민족 문제는 단지 언어적 구상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 현상과 결합된 사회·정치적 본질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에서 출발해야 옳다.   &nbsp;  특히 사회민주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오류가 중첩되어 폐쇄적인 사회배외주의로 낙오하거나 수정주의적 변절로 이어지는 경향이 다수 포착된다. 자본주의 국가 내 갈등이 심화되는 현 상황일수록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국제주의적 노력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스탈린, 『마르크스주의와 민족 문제』를 언급하는 이유는 강력한 국가 통제에 대한 원칙을 지지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국제주의적 비판점을 명확히 하여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탈피하고 전 노동 계급으로 합류해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 국가에 종속된 노동 계급이라는 공허한 모순을 지적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주체가 되는 국제 질서를 객관적으로 분석해야 할 필요성을 증명하는 일이다.   &nbsp;  ‘국민성’과 ‘민족 자결권’을 다룰 때 주의해야 할 점은, 피억압 민족의 해방 투쟁에 대한 단편적인 지지 표명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민족 해방 운동은 혁명 투쟁의 진전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를 철저히 유념할수록 자국 내에서 발생하는 계급 분화 현상을 우선적으로 목격하고, 그 전개 과정을 파악·분석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는 관념론적 수사와 절연함과 동시에, 노동 계급의 실질적 단결을 위한 당면 과제에 집중함을 의미한다.   &nbsp;“자국의 민족 문제란 곧 프롤레타리아 국제 문제이다.”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점이다. 국가 권력이 자행하는 노동 계급 탄압과 운동 저지, 그리고 과거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선진적 노력을 왜곡·폄하하는 시각에 대해서도 단호히 투쟁해야 한다.   &nbsp;  현대의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철학의 빈곤’은, 마르크스가 『철학의 빈곤』에서 비판했던 소부르주아적 경향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그 결과 국가 내부에서의 관료주의적 타협, 그리고 농촌·농민 내부의 계급적 분화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전근대적 시각을 반복할 뿐이다.&nbsp;독립과 민족 해방이라는 틀에 갇혀 노동 계급 투쟁의 전말을 직시하지 못하는 현대 ‘인민의 벗들’에 대한 경고는 여전히 유효하다. 반동적 계급 시각을 습관적으로 답습하는 부류를 끊어내지 못하고 방관하는 당파적 한계 극복을 위해서라도, 부르주아 경제의 실체를 국내 정세에 연관하여 깊이 분석해야 한다.   &nbsp;  행동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이론적 분석을 소홀히 할 경우, 운동은 결국 관념론적 단상에 그치고 만다. 현대 사회로 진입할수록 산업 발달의 조건은 한층 선진화되었음에도 이론이 도리어 후퇴하는 이유는, 민족 문제를 여전히 부르주아 국가의 시각 내에 국한하여 해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시각과 단호히 절연해야 한다.&nbsp;  &nbsp;  코민테른과 인터내셔널의 역사적 의의를 되짚지 못하는 자들, 자본주의 체제 내에 안주하며 전 인민의 노동 해방 투쟁을 방해하는 ‘문명자’들의 체제 타협적 습관이야말로 가장 노골적인 노동 계급에 대한 배반이자 질타이다. 이는 ‘타협주의’이자 ‘수정주의’에 고착된 체제 안주적 태도일 뿐이다.  &nbsp;  인민을 대변한다는 명목의 공화국에서조차 민족성만을 강조한 채, 인터내셔널의 취지와 국제 노동 계급의 단결을 호도하고 실패한 역사를 되풀이하는 ‘어리석은 노인’들의 정치는 현대 ‘인민의 벗들’이 보여주는 노동 해방 각오조차 무기력한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하다. 이는 한국 인민 사회에서 ‘수령제’가 보여주는 또 다른 형태의 무산 계급 분단적 비극일 뿐이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김남주 </category><title>노동 해방의 숨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61820</link><pubDate>Thu, 08 Oct 2026 23: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61820</guid><description><![CDATA[<br>시인의 흔적을 찾아서<br>문득 전라도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경상도 일대는 자주 방문했지만, 전라도 광주와 해남 땅긑마을로 향하는 길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일주일 남짓의 여정을 계획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김남주 시인의 생가와 묘역을 직접 둘러보고 싶어서였다.  &nbsp;  여정의 시작은 시인의 생가가 있는 해남이었다. 작은 고속버스가 드물게 다니는 해남의 한 시골 마을. 배차 간격이 긴 버스를 기다리기보다 택시에 올라타 기사님께 김남주 시인의 생가로 가달라고 부탁드렸다. 기사님은 “요즘 같은 세상에 젊은이가 김남주 시인을 찾아가다니 대단하다”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차를 몰았다.  &nbsp;  도착한 곳은 정말 논밭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그 한가운데 작은 초가집 한 채가 덜렁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 앞에 서 있는 시인의 동상은 무엇보다 우직하고 당당했다. 생가 옆에 무성하게 자란 대나무 숲, 그리고 그가 겪었던 오랜 옥고의 세월을 증언하듯 보존되어 있던 감옥의 흔적을 마주하니 묵직한 여운이 밀려왔다. 치열했던 그의 땀이 생생했다.  &nbsp;  광주로 이동하여 찾아간 곳은 5·18민주묘지였다. 여러 민주화 주역들이 안장된 그곳에서 안내원분의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군부 독재 시절의 잔혹한 진압과 희생자들, 그리고 아직도 신원을 찾지 못한 채 남아있는 수많은 비극의 참상을 접했다. 예전에 서울에서 방문했던 ‘서대문 형무소’나 ‘대공분실’과는 또 다른 무게감이었다. 화면으로 접할 때는 재를 뿌리는 추모 공간 정도로만 생각했으나, 직접 눈으로 확인한 그 넓은 땅 전체가 묘역이라는 점이었다. 세대 간의 시간 차이로 그 시절을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왜곡되지 않은 시선으로 역사의 숨결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었다.  &nbsp;  이어 김남주 시인의 기념관이 있다는 모 대학교 인문 강당을 찾았다. 교무실에 사정을 전하여 내부를 둘러볼 수 있었다. 그곳에는 생전에 출판된 그의 시집들과 보존된 기록물들이 가지런히 전시되어 있었고, 시인의 발자취를 다시 한번 새기는 계기가 되었다. 해남으로 다시 내려가 둘러본 땅끝 마을의 바다는 아득할 만큼 넓었다. 케이블카 대신 경사를 따라 직접 걸어 오르며 마주한 바다, 그리고 유리가 깔린 전망대 바닥 너머의 풍경은 장관이었다. 마침 그곳을 지나던 행군 군인들을 촬영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스산하리만치 긴 버스 대기 시간과 드문 배차 간격을 겪으며, 이곳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들과 학생들의 정주 여건이 쉽지만은 않겠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nbsp;  다시 광주 시내로 돌아와 5·18 유적들을 살펴보았다. 특히 당시 헬기 사격의 총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건물을 올려다보았을 때는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nbsp;  &nbsp;  이번 여정은 겉으로 보기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유적지를 둘러본 역사 탐방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여행은 오롯이 김남주 시인을 기리고 그의 발자취를 추적한 여정이었다.  &nbsp;  광주와 해남은 여전히 깊은 여운을 준다. 그 여운이란 단순히 ‘민주화’라는 거창한 정치적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우직한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혁명의 숨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nbsp;<br>&lt;김남주 시인 동상&gt;<br><br>&lt;광주 내 5·18 추념탑&gt;<br><br>&lt;광주 5·18 광장&gt;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08/pimg_63927097646317806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61820</link></image></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기록 해방</category><title>자본과 소생산자의 몰락</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61617</link><pubDate>Thu, 08 Oct 2026 21: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61617</guid><description><![CDATA[<br>길 위에서 마주한 자본<br>사업이 불안정할 때 지인을 초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2023년 무렵, 정규직으로 입사했던 첫 회사를 퇴사하고 생계를 유지할 여력조차 바닥을 치던 때였다. 사업도 어느덧 끝물을 향해 가고 있었다. 사업장 바로 옆 구역에는 대형 기업형 카페가 들어섰다. 대자본을 쥔 유명 기업가가 찾아왔을 때 지인과 직접 방문해 보았지만, 소자본으로 버티던 사업장은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점심 무렵 찾아오는 동네 지인들이나 간간이 들르는 여행객만이 자리를 채울 뿐이었다.   &nbsp;  본의 아니게 사업장 대표를 맡고 있었으나, 훗날 사업을 정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탕감받기 전까지 사업장에 갚지 못한 대출금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중소 사업장의 경우, 이처럼 누적되는 채무를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가업처럼 사업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 비극이 종종 발생한다.   &nbsp;  당시 아파트에 거주하면서도 사업장 옆 작은 별채에서 가족과 분리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배달업체의 수수료와 배달료를 감당하기엔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판단해, 배달 영업을 가장 먼저 중단하자고 제안한 것도 본인이었다.    &nbsp;  그 무렵은 초기 AI 기술이 막 개화하던 시기였다. 평소 영문학 교수의 논문을 구독해 읽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신행정주의’, ‘기계에 대한 불안’을 다룬 메일과 영상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영상 매체 ‘알고리즘’은 디스토피아적인 콘텐츠로 이끌었고, SNS 역시 자극적인 기계 문명의 암울한 전망을 끊임없이 띄어주었다. 고립된 공간에서 접한 그 정보들은 심리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나중에야 깨달았다. 하얀색 긴 옷을 입고, 아파트 안 대형 칠판에 적어 두었던 수많은 단상들을 지우며 점차 기계처럼 강박에 사로잡혀 가고 있었다는 것을. 사업에 대한 불안은 어느새 ‘기계가 언제가 자신을 삼켜버릴지도 모른다’는 망상으로 번져갔다. 지금 돌이켜보면 AI 시대를 맞아 직장을 떠나는 노동자들의 불안이나 당시 본인이 겪었던 망상들은, 지배 계급이 은연중에 부추긴 시각이 아니었을까 싶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비로소 가질 수 있게 된 시선이다.  &nbsp;  결국 배달 영업을 끊고, 사업장 문 앞에 임시 휴업을 알리는 표지판을 걸어둔 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힘든 시간을 어떻게든 이겨보려는 절박한 시도였다. ‘붉은 라디오’로 시작하여 글을 게시하기 시작한 것도 2023년 무렵이었다. 가까웠던 지인과의 연락마저 두절되자 심리적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고, 가족과의 갈등도 깊어졌다.  &nbsp;  첫 번째 걸음은 첫 회사를 향해 나선 길이었다. 사업장에서 출발해 중산간 도로를 지나 북동쪽으로 올라갔다. 약 22~24km 달하는 먼 길이었고, 5시간 반에서 6시간 반가량이 걸리는 고된 여정이었다. 물 한 모금 없이 앞치마만 두른 채 길을 나섰다. 이었다. 이른 점심에 출발했찌만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중간에 화장실이 급해 염치 불구하고 타인의 집 문을 두드렸다. 실례가 되지 않도록 화장실을 깨끗이 청소하고 용변을 보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 직접 바느질해 만든 컵 받침대를 가지고 그 집을 다시 찾아가 감사의 마음을 전했던 기억이 난다.  &nbsp;  걸으면 금방 도착할 거라 생각했던 길이었지만, 이른 점심에 출발해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는 이미 해가 기울고 있었다. 당시 걸어가던 길목은 주위의 나무를 밀어내고 도로를 건설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쌩쌩 달리는 차들 옆을 걷는 것은 매우 위험했다. 그렇게 도착한 첫 회사 터에는 그토록 아끼던 나무가 이미 뿌리째 뽑혀 있었다. 깊은 실망감을 안고 다시 돌아섰다. 돌아오는 5시간 반 동안 차선 불빛들이 아스팔트 위에서 마치 자궁의 형상처럼 피어오르는 환영을 보았다. 탈진 직전의 순간,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nbsp;  한적한 야밤, 캄캄한 도로를 혼자 걸어가는데 소형차 한 대가 불빛을 비추며 다가왔다. 운전자는 위험하다며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물었다. 집으로 가는 중이라 답하자, 가로등이 나오는 도로까지 헤드라이트를 비춰주며 안내해 주었다. 곧이어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다가왔다. 생전 처음으로 경찰차를 타고 사업장까지 이송되어 돌아왔다. 그 후로도 한동안 운전 중 좌회전만 고집하거나, 맨발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근처 학교 운동장을 정처 없이 거니는 등 기행을 이어갔다. 사업의 불안 속에서 일자리를 잃고 사회 밖으로 내던져진 자의 방황이었다.   &nbsp;  바닷가를 바라보며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라디오에 기대어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이번에는 시내까지 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도상으로 섬 절반을 하루 만에 돌겠다는 무모한 시도였다. 걸음은 망설임 없이 떼어졌다. 95~105km에 달하는 거리, 꼬박 24~26시간이 걸리는 먼 길이었다. 여전히 물 한 모금 없이 앞치마 하나만 두른 채였다.  &nbsp;  한겨울의 해안 도로에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 불빛만 남았을 때는 엄습하는 추위에 ‘이대로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공포가 밀려왔다. 마침내 공항 근처에 다다랐을 때 비행기 소리가 귓가를 울렸고 소방서의 모습도 보였지만, 사람들을 피해 계속 걸었다. 한밤중에 앞치마를 두르고 걸어가는 본인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들이 있었지만, 오직 걷는 데만 집중했다.  &nbsp;  시내에 도달했을 때는 이미 하루가 지나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겨울이라 물도 마시지 못한 채 버티다, 앞치마 주머니에 들어있던 지폐 몇 장으로 편의점에서 간신히 간식을 사 먹었다. 하루 전 공항에 도착해 본인을 찾고 있을 가족들 생각이 나, 공항 전화기를 빌려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몇 번이나 사라진 자식 때문에 덜컥 겁이 났었다던 부모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선하다.   &nbsp;  이러한 무모한 수행 같은 걸음에도 사업은 나아지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하루라도 자리를 비우면 버틸 수 없는 구조였고, 동네 지인들이 그토록 아끼던 공간이었음에도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기를 끄고 세상을 차단해 버렸다. 소자본으로 시작해 10년 넘게 이끌어온 가계 사업이었지만, 노후화된 시설과 대자본의 공세 앞에서 한 개인인 소생산자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훗날 마르크스, 『자본』을 공부하며 그것이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nbsp;  도시로 넘어온 지금도 그때의 무리한 시도와 심리적 불안이 가끔 떠올린다. 끊임없이 더 많은 돈을 추구하는 굴레가 어떻게 인간의 존엄을 망가뜨리는지 깊이 실감하고 있다. 거대 자본을 쥔 이들은 한 개인으로서 사업장을 직접 운영하며 자신의 모든 세계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결코 해보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불가능한 사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59900</link><pubDate>Wed, 07 Oct 2026 23: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59900</guid><description><![CDATA[<br>최근에는 공산주의자들의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이들의 생애는 처음부터 비극을 내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순히 질병이나 낭만적인 연애와는 거리가 먼, 투쟁 속에서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극 때문에 공산주의자의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언제나 사랑과의 이별을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되곤 했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이는 공산주의자들의 사랑이 실패했음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르주아적 사랑이 제도와 결합하고, 결국 이별을 반복하여 사랑의 실패를 초래했음을 보여줄 뿐이다. 물론 사랑에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사랑은 오직 서로 간의 깊은 우정 속에서 피어날 뿐이다. 이 지점에서 과거의 인연이란, 공산주의자들에게도 그저 스쳐 지나간 흔적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닐까.  &nbsp;  여성이 페미니스트의 시각에서 벗어나 자신이 공산주의자임을 자각하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면, 그것은 자본 체제의 종식을 목도하는 때일 것이다. 계급적 위선으로 포장된 ‘가능한 사랑’은 노동자를 시혜적으로 바라보지만, 모순적이게도 진정한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들며 인간을 체제에 안주하게 한다. 이는 인간의 나약함을 증폭시켜 개인의 사사로운 시각에 머물게 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자본주의적 사랑과 ‘이별’하고 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과거의 시각과 폐단은 자연스럽게 소멸하지 않으며, 새로운 시각의 자리에는 짙은 부르주아적 독백만이 남을 뿐이다.  &nbsp;  예전에 한 호텔에서 값비싼 식사를 한 적이 있다. 그곳은 무제한으로 음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지만, 막대한 낭비와 폐기물을 생각하면 집밥보다 무의미한 일이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유지되어 온 가정과 가족의 존재에 반하여, 페미니스트들은 고독을 장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인간이 마주하는 ‘가능한 사랑’에 안주한 나머지 ‘불가능한 사랑’을 생각하기를 꺼렸던 태도는, 결국 그들에게 독약과도 같은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고 있다. 그것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니다. 빈약한 죽음을 담보로 소비된 사랑을 장려하는 시대에, ‘불가능한 사랑’은 영화 매체조차 담아낼 수 없는 현실의 투쟁 속에서 비로소 실현된다.  &nbsp;  수많은 이들을 남몰래 만나며 타인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것만으로는 인간의 근원적 결핍을 채울 수 없음을 안다. 온갖 사적인 비밀로 도배된 불가능한 사랑의 끝에는 오직 고독한 인간만이 남을 뿐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가능한 사랑’이란 계급적 차이나 의식적 수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당신의 것을 내가 나눈다”는 실천 속에 존재한다.   &nbsp;  ]]></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시사·투고</category><title>부분적 사형제 도입의 필요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59748</link><pubDate>Wed, 07 Oct 2026 22: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59748</guid><description><![CDATA[<br>사형제를 둘러싼 도덕적·윤리적 논란은 혁명의 본질을 가리는 구실에 불과하다. 우리는 혁명적 형벌로서 사형제 도입의 당위성을 적극 주장한다. 부르주아 법체계는 무고한 민중을 억압해 온 반면, 정작 처발받아야 할 자들에게는 심판을 유예하며 민중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혁명기의 사형제는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트의 억압 기구가 아니다. 그것은 부르주아지를 단죄하는 민중의 혁명적 재판이어야 한다. 한국의 신흥 부르주아지가 자본의 본원적 축적과 사유 재산을 사수하려 할 때, 생산 수단을 전유한 프롤레타리아트가 전 세계 부르주아지를 청산하기 위해 혁명적 사형제를 단호히 결정하는 것은 역사적 필연이다.&nbsp;  &nbsp;  제국주의와 대자본이 야기한 사회·경제적 해악은 명백하다. 단순히 감옥에 가두어 방치하는 온건한 처벌 방식으로는 부르주아지에 대한 진정한 단죄가 될 수 없다. 자본의 결탁과 인적·물적 영향력을 보존한 채 감금되는 것은 반혁명적 복권의 여지를 남겨둘 뿐이며, 이는 민중의 피해와 계급적 수탈을 근본적으로 청산하지 못한다. 혁명적 사형제는 과거의 무차별적 숙청이 아니며, 단순한 경제 성장 가속화 수단도 아니다. 이는 지배 계급의 반혁명적 유산을 청산하고 역사를 진전시키기 위한 단계적이고 결정적인 단죄이다. 평화적 해법이라는 소시민적 착각은 대자본의 생산 수단 독점을 눈감아주는 결과만을 낳을 뿐이다.&nbsp;  &nbsp;  자본주의 국가의 법적 기준은 주로 하층민이 저지르는 ‘거리 범죄’를 집중 처벌하지만, 실제 사회적·경제저 피해 규모는 부르주아지 (기업 및 대자본가)가 저지르는 범죄가 월등히 크다. 노동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임금 체불 역시 중대한 범죄 행위임에도, 형사 처벌보다는 민사상 합의나 과태료 처분 정도로 유야무야되는 것이 현실이다.&nbsp;이처럼 사법 체계가 계급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는 사실은 통계적으로도 증명된다. 소액 절도나 생계형 범죄를 저지른 하층민의 구속 및 실형 선고율은 매우 높은 반면, 수천억 원대 배임·횡령을 자행한 대기업 총수나 자본가에게는 집행유예, 보석, 사면이라는 특혜가 압도적인 비율로 부여된다. 전 세계 교도소 수감자의 80~90% 이상이 하층 계급 및 소외 계급 출신이라는 구조적 통계는 자본주의 형법 기구의 본질을 폭로한다. 결국 현행 법 체계는 자본가의 범죄를 ‘경영상 실수’나 ‘비폭력 범죄’로 포장하여 보장하는 반면, 소외 계급의 범죄만을 선별적으로 단속하고 진압하는 계급적 도구에 불과하다.&nbsp;우리는 부르주아 정부의 법집행이 무능과 범죄에 불과함을 입증한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직접 집행하는 혁명 재판만이 무고한 이들을 희생시켜 온 부르주아 '평화 정치'의 허구를 폭로하고,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유일한 길임을 선언한다. 부르주아지의 위선은 분야를 막론하고 점차 노골적이고 해악적인 본색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맞서는 우리의 과제는 더 이상 일방적 순종이 아니라, 자본의 계급적 수탈 방식에 대한&nbsp;역사적 소명을 다하는 단호한 투쟁이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시사·투고</category><title>공공재의 부분적 유료화 비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52978</link><pubDate>Sat, 03 Oct 2026 22: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52978</guid><description><![CDATA[<br>최근 OTT나 AI 등 기술 매체가 기획·개발 단계부터 ‘유료화’를 전제로 삼는 현상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기술 발전이 어떻게 공공재를 사적 소유물로 취급하는지를 보여준다. 본래 이러한 매체와 기술은 사회적 생산 수단이자 공공재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특히 AI·AGI (인공일반지능) 등의 유료화는 거대 자본의 사적 이윤 창출과 독점을 위한 민영화 기제 및 투자 수단으로 손쉽게 변질될 위험을 안고 있다.   &nbsp;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기술 매체의 사용 자체를 단순히 거부하는 방식만으로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에 맞서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 기술주의자들이 제기하는 거부론이나 비판은 때로 공허한 ‘종말론’을 부추기는 데 그치거나, 모순적으로 자본이 형성한 상품성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기술 사용을 거부하는 소극적 태도는 공공재를 부분적으로 유료화하며 사적 이윤을 정당화하려는 자본의 점유 시도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다는 점에서 명확한 한계를 지닌다.&nbsp;  &nbsp;  오늘날 대기업이 주도하는 AI 기술 등은 정치적·법적 권리를 바탕으로 자본가가 그 소유권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에서 비롯된다. 노동자나 대중의 통제권이 부재한 상황에서, 자본 기업은 공공적 가치를 지닌 기술마저도 부분적 유료화로 이윤 창출의 도구로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 내부의 개별 노동자나 대중이 이러한 유료화 공세에 맞서 반대 목소리를 내기는 결코 쉽지 않다. 기업 경영진이 지닌 법적 권한과 거대한 법률 조직, 그리고 투자 유치를 명분으로 기술 발전과 공공재의 상품화를 정당화해 왔기 때문이다.&nbsp;나아가 기술의 유료화는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계급만이 첨단 기술을 활용해 생산성을 독점하는 ‘기술적 소외’를 정착시킨다. 이는 지식과 생산 수단에 대한 접근 권한을 자산 규모에 따라 제한하여 사회적 격차를 구조적으로 고착화한다.&nbsp;자본 기업이 아무리 ‘할인율 적용’이나 ‘구독 방식의 정당성’을 포장하더라도, 유료화 전략의 본질은 개인적 자본 수탈에서 사적 이윤 추구를 정당화하는 기제에 불과하다.&nbsp;  &nbsp;따라서 개별적 수준에서 유료화 제약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공공재의 사적 점유에 동의해서는 안 되며 기술 발전에 따른 결실이 사회 전체에 분배될 수 있도록 구조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기술의 이점은 개인이 비싼 비용을 치르고 사서 쓰는 상품이 아니라, 만인이 누릴 수 있는 공공의 자유여야 한다. 이는 현대 예술계에서도 저작권을 둘러사고 벌어지는 법적·정치적 분쟁의 사례에서도 잘 드러난다. 기술 발전이 가속화될수록&nbsp;사용자에 대한 기술적 제약을 강화할 것이 아니라,&nbsp;이를 독점하려는 자본에 맞서 공공재로부터 사적 이윤을 취득하지 못하도록 사회적 통제와 제한을 강화해야 한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입장·보고</category><title>당의 전진과 국유화 강령</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49977</link><pubDate>Fri, 02 Oct 2026 01: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49977</guid><description><![CDATA[<br>당의 전진과 선진적 사회주의 투쟁을 수행하시는 일꾼 여러분, 당이 추구하는 노선과 운동의 장기적 전략적 전환을 위해 몇 가지 핵심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nbsp;  모든 혁명 운동에는 반동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러한 자명한 사실 속에서 우리는 반동성과의 투쟁 중 포착되는 소부르주아적·유토피아적 성향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이는 혁명적 노동 운동에서 저항적 수습이 일시적 단계에 그치거나, 민주주의의 탈을 썼으나 본질은 전제 정부와 다름없는 부르주아 정부의 실태가 반복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nbsp;  최근 『노동자 연대』는&nbsp;현 부르주아 정부를 향해 ‘줬다 뺐는다’라는 표현을 쓰며 혹독한 비판을 가했다. 한편 정파 ‘전진’ 내에서는 1960~80년대 그리스, 아르헨티나, 유고슬라비아 등에서 시행되었던 국유화 방식을 바탕으로 생산 수단을 먼저 점유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노동자 연대』의 비판점이 노동자 계급의 자각된 조직적 투쟁과 정치권력 쟁취가 빠진 ‘자본주의 국가 주도 국유화’의 한계를 지적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노동 운동 투쟁의 무게 중심이 단순히 국유화에 따른 생산 수단 점유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nbsp;  레닌은 1921년 『제3차 코민테른 대회』에 이르기까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계급적 결집뿐만 아니라 경제 문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일부 기사에서는 레닌의 국유화에 대한 우호적 시각만을 단편적으로 서술하지만, 그 본질은 자본주의 국가가 가질 내적 모순과 위력을 명확히 파악하고 제3차 코민테른 및 노동자 인터내셔널의 중요성을 꾸준히 강조했다는 데 있다.  &nbsp;  신자유주의 도입에 따른 민영화나 관료주의적 행정에 대한 지적은 현대 자본주의 국가를 바라보는 일반적 시각에 불과할 수 있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점은 자본주의 체제 내 인민들의 저조한 계급 의식 수준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재교육을 논할 때, 노동자 계급의 무지를 탓하는 부르주아적 시각을 답습해서는 결코 안 된다.  &nbsp;  제1차 세계대전과 크론슈타트 반란 등 소비에트 내외의 중대한 시련이 상충했던 1921년의 상황을 기억해야 한다. 국유화 논쟁과 관련하여 마르크스와 엥겔스 역시 『토지 문제에 관하여』 등에서 실질적인 토지 소유화 및 투기·투매 행태에 대해 엄혹한 비판을 가한 바 있다. 국유화의 전개는 노동자들이 부르주아 정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직접 정치 권력을 획득할 때 비로소 성립한다. 아직 이러한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고 반동성이 장기간 지속된 체제 하에서는 인민들의 즉각적인 동의를 얻기 어렵다.  &nbsp;따라서 당의 전망은 단순히 국유화를 외치는 허황된 구호에 국한되지 않는다. 당의 노선은 자본주의적 선거 제도나 법적 틀 안에서의 권력 획득에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전 노동 인민의 단결에서 비로소 출발한다.   &nbsp;  ‘전진’이 추구하는 방향이 단순히 자본주의 체제 내의 협동조합, 단순 국유화, 일부 노조와의 타협에 머무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를 조속히 본격적인 사회주의 투쟁으로 전환할 것을 긴급히 요구한다. 노동자 권력 획득이라는 과제는 관념적 구상이나 시간의 경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계급적 폭력에 노출된 노동 인민의 실질적 투쟁과 봉기를 요구한다. 현장의 일시적 파업이나 선동 구호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체제에 종속된&nbsp;사회적·구조적 본질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nbsp;  우리는 과거의 반동적 굴레에 안주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선은 오직 불편한 현실을 직시하는 데 있다. 우리의 투쟁은 자본주의 체제 내 부르주아지에게 국유화를 구걸하는 소수의 요구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결집하여 선언하는 참된 국유화 강령이 되어야 한다.<br><br>]]></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정치경제학</category><title>세계 자본 경제의 수축</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47925</link><pubDate>Wed, 30 Sep 2026 23: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47925</guid><description><![CDATA[<br>뉴욕 증시의 하락세와 세계 자본 경제의 수축<br>최근 미국 뉴욕 증시의 하락세와 세계 자본 경제의 수축 현상은 단순한 금융 변동이나 계절적 악재로 설명할 수 없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가 지닌 구조적 모순이 표출된 결과이다. 미 연준의 매파적 긴축과 국채 금리 급등, 고용 및 소비 지표의 둔화는 실물 생산 부문에서 이윤율이 하락한 상황을 드러낸다. 기술 혁신과 자동화 (IT·AI) 설비 투자로 인해 불변 자본 (c)의 비중이 가변 자본 (v)에 비해 크게 늘어나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상승이 진행되었으며, 잉여 가치의 유일한 원천인 노동의 비중을 축소시켜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을 촉진했다. 이러한 실물 이윤율의 저하를 상쇄하기 위해 형성되었던 가공 자본 (주식·부동산)의 거품은 고금리와 실질 구매력 약화라는 벽에 부딪히며 본격적인 평가절하 단계를 맞이하고 있다.  &nbsp;  이러한 체제적 모순은 지정학적 충돌과 제국주의적 대립을 매개로 더욱 계급적 폭력으로 분출된다.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군사적 긴장과 이란 지정학적 위기는 석유 및 물류 등 필수 불변 자본 (c) 비용을 폭증시켜 기업의 이윤율에 직접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다. 레닌이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핵심 자원 수송로와 시장 독점을 둘러싼 국가 대립은 자본의 세계적 순환을 가로막는 병목을 형성하며,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중앙은행의 고금리 유지를 강제한다. 이는 노동자의 실질 임금을 침식하여 유효 수요 부족과 과잉 생산 위기를 심화시키는 한편, 증시 시장에서 가공 자본의 이탈을 가속하는 계기로 작동한다.  &nbsp;  장기적 관점에서 이러한 뉴욕 증시의 하락은 ‘팍스 아메리카나 (Pax Americana)’로 대표되던 미국 지배권의 구조적 쇠퇴와 맞물려 진행된다. 제조업 기반을 해외로 이전하고 금융화 및 달러 지배력으로 유지해 온 미국 경제는, 실물 가치 창출의 한계 속에서 가공 자본에 지나치게 의존해 왔다. 이러한 우위성의 균열은 증시 상장사들의 통계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천문학적인 설비 투자 (c)를 집행했으나 단기적 잉여 가치 실현에 난관을 겪는 독점 기술 자본 (빅테크) 및 반도체 기업들이 급격한 평가절하을 겪고 있으며, 고금리로 신용 압박을 받는 소형주 지수 (러셀 2000)와 가계 부실 위험에 직면한 금융·소비재 업종이 큰 낙폭을 기록하는 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를 보여주는 통계적 증거이다.   &nbsp;  지표명통계적 사실노동 생산성과 임금의 격차 미국 정책연구소(EPI) 분석에 따르면, 1979년부터 최근까지 미국 노동자의 실질 생산성은 약 60% 이상 증가한 반면, 실질 시간당 임금은 약 15~18% 상승하는 데 그쳤다. 이는 노동자가 창출한 가치의 대부분을 자본가가 잉여 가치 (m)로 흡수했음을 증명한다.총생산물 가치 내 노동 소득 분배율 하락미국 노동통계청(BLS) 통계에 따르면, 미국 국민 소득 중 노동소득 점유율은 1970년대 약 64%에서 최근 56~57% 수준으로 구조적 하락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 부의 창출에서 가변 자본 (v)으로 돌아가는 몫이 크게 축소되었음을 의미한다.착취율 (m/v)의 극대화미국 제조업 및 비금융 기업 부문 전체의 임금 총액 대비 기업 이윤 및 자본소득의 비율인 착취율 (m/v)은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노동자가 자기 생존에 필요한 시간 (필요 노동 시간)보다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시간 (잉여 노동 시간)의 비중이 역사상 최고 수준에 달해 있다. &nbsp; &nbsp;증시 하락으로 대표되는 가공 자본의 파열은 실물 경제의 이윤율 하락을 증명함과 동시에, 자본가 계급이 이윤율 방어를 위해 노동자 계급에 가하는 수탈을 극대화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미국 경제분석국 (BEA)과 노동통계청 (BLS) 등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비금융 기업의 이윤율은 장기적인 하락 추세를 그리는 반면, 노동자의 실질 생산성 증가율에 비해 실질 임금 상승률은 턱없이 미달하여 노동 소득 점유율이 구조적으로 하락해 왔다. 이는 자본이 착취율 (m/v)을 극대화하여 이윤율 감소를 저지하려 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실질 소득 감소와 신용 카드 및 자동차 대출 연체율의 급증은, 노동자 가계가 고금리 조건 속에서 신용 수탈과 파산 위기로 몰리고 있음을 입증한다.  &nbsp;  미 연준 (Fed)의 고금리 및 긴축 정책은 부르주아 경제학이 주장하는 편파적인 ‘물가 안정 수단’이 아니라,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를 억압하고 자본의 이윤을 수호하기 위한 계급 투쟁의 도구이다. 연준이 목표로 하는 ‘노동 시장 과열 수습’의 본질은 마르크스가 명시한 ‘산업예비군’을 인위적으로 창출하는 것이다. 고금리를 동원하여 경기 후퇴를 유도하고 실업의 공포를 유포하여 노동자 계급의 저항력을 무력화하고 임금 상승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1980년대 초 폴 볼커 연준 의장이 20%에 다하는 극단적인 고금리로 10.8%의 실업률을 유발하며 노동조합을 해체하고 신자유주의 착취 체제의 문을 열었던 ‘볼커 쇼크’와 마찬가지로, 현재 제롬 파월 체제의 긴축 역시 이윤율 위기를 노동자의 희생으로 돌리려는 동일한 계급적 공격이다. 다만 오늘날의 노동자 계급은 노조 조직률의 추락과 높은 가계 부채로 인해 볼커 시대보다 훨씬 취약한 생존 조건에 놓여 있다.  &nbsp;  나아가 최근 자동화 및 AI 기술에 대한 폭발적인 투자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 (c/v) 상승을 정례 없는 속도로 가속화하며 산업 예비군의 양상을 재편하고 있다. 독점 기술 자본 (빅테크) 자본이 자동화 생산 수단 등 불변 자본 (c) 투입을 급증시키는 반면 지식·사무 노동력 (v)을 축소함에 따라, 과거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전문 노동자들마저 유동적·잠재적·정체적 산업예비군으로 전락하고 있다. 노동자 계급의 대규모 예비군화는 재직 노동자에 대한 임금 억제와 노동 통제의 무기로 활용된다. 그러나 모든 자본가가 가변 자본을 줄이고 불변 자본 (AI)에 집중할수록, 노동자의 구매력 저하로 인한 과잉 생산 위기가 깊어지고 가치 창출의 원천이 축소되어 체제 전체의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은 더욱 심화된다.   &nbsp;  ]]></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입장·보고</category><title>자본주의 체제의 균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44310</link><pubDate>Tue, 29 Sep 2026 21: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44310</guid><description><![CDATA[  &nbsp; 부르주아적 시민 사회는 시민 교육과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주입하는 담론으로 도배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이 표방하는 ‘선진적 노동 의제’의 실상은 노동자 해방이 아니라, 자본의 계급적 억압에 맞선 투쟁을 가로막는 장벽에 불과하다. 마르크스주의가 결여된 시민 교육은 반동적 노동관을 답습하는 동어반복일 뿐임이 자명하다. 이러한 비생산적 담론의 반복은 사회주의 전진을 저해하는 요소일 뿐이다.&nbsp;부르주아적 시민 사회가 추구하는 자유론의 한계는 마르크스가 『자본』에서 이미 명확히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자본주의 체제 내의 역학 관계 속에서 시민 사회가 결국 반동적 질서로 흡수된다”는 점을 명시했다.   &nbsp;  이러한 균열은 한국 상황에서도 결코 특수한 예외가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라는 틀 안에서 노동 의제에 대한 관심이 직간접적으로 표방된다 하더라도, 사회주의 체제가 부재한 공허한 민주적 수사는 마르크스주의를 왜곡한다. 결국 노동 계급의 투쟁을 단순한 제도적 법제화, 시민 사회로의 흡수, 노조의 관료적 의존성에 매달리게 만들어 노동 계급의 사회주의적 전진을 지속적으로 방해할 뿐이다.  &nbsp;  이러한 자본 체제의 균열은 현대 전제 정부 국가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기존 학계와 담론 체계는 이러한 조짐을 ‘인정 투쟁’이나 ‘신유물론’적 접근으로 포섭하거나, ‘이념적 국가 기구’ 식의 해석에 그치는 관념론적·수사적 공리공론에 빠져 있다. 부르주아 시민 사회의 질서는 결코 ‘교양’스럽지도 ‘우월’하지도 않으며, 이는 자본 체제 내에서 생산되는 제반 담론과 소부르주아적 모임 등에서도 여실히 확인된다.   &nbsp;  전(全) 노동 계급은 이러한 부르주아적 시각과 철저히 단절해야 한다. 시민 사회 내부에서 추구하는 체제적 사고의 그늘에는 언제나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존재하며, 노동 계급의 시각은 부르주아적 틀에 갇혀 있지 않다.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적·역사적 유물론을 간과한 채 시민 사회의 관념론에 매몰되고 부르주아적 자유관으로 도피하는 것은, 모순적으로 계급 투쟁의 전면에서 부르주아지와의 철저한 단절 및 전투적 유물론으로의 전환이 왜 필요한지를 입증할 뿐이다.  &nbsp;  부르주아 시민 사회와 전제 정부의 관계는 언제나 동일한 역사적 궤적을 반복해 왔다. 이들은 부를 축적한 자본가들과 전근대적 귀족의 수혜를 누려온 역사관을 유지한 채 계급적 교육을 장려하고 있다. 시민 사회 내에서 자행되는 노동 계급에 대한 억압과 무의미한 소부르주아적 단상들은, 한국 시민 사회가 지향하는 이상적 모델이 결국 부르주아적 질서로의 귀속을 반복할 뿐임을 보여준다. 이 같은 자본 체제의 균열은 체제 내 노동 계급을 억압하고, 나아가 타국 인민에 대한 수탈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nbsp;  이러한 시민 사회 담론의 공허한 반동성은 자명하다. 따라서 노동 계급은 계급 투쟁에 있어 부르주아 시민 사회 이론과 완전히 단절하고, 독자적인 프롤레타리아 노선인 마르크스·레닌주의적 공산당 강령의 입장을 명확히 표방해야 한다. 전 노동 계급은 노골적인 부르주아 시민 사회의 기만과 책동에 더 이상 휘둘리지 말고 전투적 투쟁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nbsp;  ]]></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정치경제학</category><title>여성 해방을 위한 당의 실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42302</link><pubDate>Mon, 28 Sep 2026 23: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42302</guid><description><![CDATA[  &nbsp;자본주의 체제 내 가부장적 구조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 일부 부르주아 여성주의는 개혁적 의식 제고나 제도 개선 수준의 한계에 봉착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실존적·관념적 고찰의 한계와도 맞물려 있다. 특히 일부 여성 철학자나 성학자들의 추상적 인식 체계는 여성 대중의 동요를 혁명적 실천으로 끌어올리지 못하고, 오히려 체제 내적 미봉책에 의존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해석에 반대하여』류의 저작들이 추구하는 ‘전근대적’ 단상이나 모호한 어휘는, 세대 갈등을 전 사회적으로 확장하며 민주화 열망을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질서로 편입시키기려는 시도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nbsp;  정희진를 비롯한 일부 여성학자들의 담론 역시 실질적인 여성 해방과는 거리가 먼 비생산적 논의를 반복하며, 부르주아 계급 질서를 옹호하는 성격을 명확하게 띤다. 자본주의 체제 내 여성은 이미 심각하게 계급적으로 분화되어 있다. 그럼에도 이들 담론은 여성을 단순한 ‘소비의 주체’로 규정하는 오류를 범하며, 대다수 민중 여성의 지지를 받기보다는 소부르주아 중간 계급에 호소하는 신여성적 한계를 답습한다. 이는 남한 정부가 추진하는 성평등 정책의 ‘체제 내적 흡수’ 기조와도 직결되어 있다.   &nbsp;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은 이러한 비논리적 체계성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성’의 수용이나 부르주아 질서를 위한 ‘공권력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여성의 신변을 위협하고 불안을 자극하는 구조적 폭력을 방치·조장한다. 이에 가담하는 언론 역시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한다. ‘여성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우거나 관념적·종교적 환각에 기댄 여성주의자들의 책략은 프롤레타리아 여성을 대변하지 못하며, 이들을 자본주의 체제 내로 강제 편입시킬 뿐이다.  &nbsp;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여성이 겪는 추가적 지출 부담은 크게 (1) 필수 생필품 및 위생용품 비용, (2) 노동 시장 편입 및 고용 유지를 위해 강제되는 노동력 유지 비용, (3) 신변 안전 확보를 위한 주거 및 추가 비용 등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비용은 여성이 노동 시장에서 노동력을 판매하거나 생존·고용을 유지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구조적 지출이다. 결국 저임금·비정규직에 집중된 여성 노동자는 월 수입 대비 과도한 지출을 강요받으며, 이는 체제 내 계급 분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nbsp;  특히 프롤레타리아 여성이 취약한 지위에 내몰리는 이유는 단순한 소비 행위 때문이 아니라, 체제가 강제하는 ‘소비 형태와 구조’에 있다. 이는 단지 계급 격차라는 눈앞의 현상에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 체제가 자연적 생산 및 가부장적 구조와 결합하여 여성의 생산 동력을 자본 축적에 지속적으로 동원하는 방식과 직결된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구조적 폭력을 명확히 지적하는 한편,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생산하는 담론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사회주의적 노선의 우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nbsp;여성의 계급적 단결은 필수적이지만,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계급적 분화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가가 여성의 생산성을 독려하는 방식은 자본주의 생산 동력의 확장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이러한 부르주아적 공권력과 국가 기관에 대한 비판적 토론의 부재는 상류층 여성만을 위한 형식적 교육과 기회의 평등으로 귀결되며, 이는 계급적 차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폭력을 가중시킬 뿐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내 여성 해방의 의의는 여성주의 담론이 양산하는 ‘타자성’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적 혁명 실천 속에서 노동자 여성이 주체성을 획득하도록 이끄는 데 있다. 이는 사회주의자들에게 부여된 가장 핵심적인 과제이다.&nbsp;당의 실천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전면적 단결이자, 프롤레타리아 여성 해방을 향한 전진에 있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체르니셰프스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읽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40373</link><pubDate>Sun, 27 Sep 2026 23: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40373</guid><description><![CDATA[<br>체르니셰프스키의 생애   &nbsp;  체르니셰프스키는 사제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신학 대신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해 유물론 철학과 공상적 사회주의를 흡수했다. 이후 당대 최고의 진보 잡지인 『현대인』의 편집을 맡아 사회 비판적 논설과 비평을 쏟아내며 청년들의 사상적 지주로 떠올랐다. 1861년 러시아 농농해방령이 농민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자, 혁명적 농민 운동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1862년 제정 러시아 당국에 체포되었다. 페트로파블롭스크 요새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 그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 『무엇을 할 것인가?』 (1863)를 집필했다. 1864년 ‘시빌 공판 (가짜 사형 집행 의식)’을 거쳐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시베리아에서 고된 유배 및 강제 노동 생활을 했다. 건강이 극도로 악화된 후 1883년에야 고향 사라토프 부근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nbsp;  『무엇을 할 것인가?』  &nbsp;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소설은 감옥에 갇혀 있던 체르니셰프스키가 집필한 작품으로, ‘새로운 사람들(신인류)’이라 불리는 급진적 진보 지식인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노동 조합 공동체를 다룬다. 주인공 베라 파블로브나는 속물적이고 가부장적인 부모의 압박과 원치 않는 정략결혼 위기에 처해 있다. 이때 그녀의 남동생 가정교사이자 의학도인 드미트리 로푸호프가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선다. 로푸호프는 베라에게 법적·사회적 독립을 제공하기 위해 위장 결혼을 제안하고, 두 사람은 형식적인 부부가 되어 부모의 집을 떠난다.  &nbsp;  독립한 베라는 경제적 자립을 위해 여성 노동자들을 모아 봉제 작업장 (협동조합)을 설립한다. 이 작업장은 기존 자본주의 공장과 달리, 모든 노동자가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고 경영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구조이다. 베라는 단순한 경제적 자립에서 여성들이 교육을 받고 자존감을 되찾는 공동체 공간으로 발전시킨다.  &nbsp;  소설에는 베라가 꾸는 네 가지 주요 꿈이 등장한다.&nbsp;  &nbsp;  첫 번째 꿈에서 베라는 어둡고 습기 찬 지하실에 갇혀 다리가 마비된 상태로 누워 있다. 이때 신비의 여신 (‘민중에 대한 사랑’ 혹은 ‘해방’)이 나타나 그녀의 손을 잡자, 베라의 마비가 풀리고 지하실 밖으로 나와 들판을 달리게 된다. 여신은 베라에게 “사람들을 감옥에서 풀어주라”고 당부한다. 이 꿈에서 베라는 억압에서의 해방과 자립을 깨닫는다.  &nbsp;  두 번째 꿈에서 로푸호프와 베라가 들판을 거닐고 있다. 들판에는 이삭이 자라고 있지만, 관리되지 않아 황폐해진 땅과 기름지고 풍요로운 땅이 대비되어 나타난다. 꿈속에서 이성적 판단과 자연적 순리가 대화를 나누며, 어째서 어떤 땅은 황폐하고 어떤 땅은 결실을 맺는지를 설명한다. 이 꿈에서 자연과 이성의 조화를 이해한다.  &nbsp;  세 번째 꿈에서 베라는 자신의 비밀 일기장을 읽어주는 여신의 목소리를 듣는다. 일기장에는 베라가 자신도 모르게 숨겨왔던 진심이 적혀 있다. 베라는 자신을 구출해 준 첫 남편 로푸호프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을 느끼고 있지만, 그것은 사상적 동반자로서의 감정이자 부채의식일 뿐 성적·감정적 울림을 주는 ‘진정한 연애 감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꿈에서 베라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는다.  &nbsp;  네 번째 꿈에서 베라는 여신의 안내를 받아 인류 역사 속 여성의 지위 변화를 살펴본 뒤, 미래의 사회주의 유토피아를 목격한다.   &nbsp;  베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로푸호프의 친구이자 의사인 알렉산드르 키르사노프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보통의 통속 소설이라면 질투와 갈등이 일어났겠지만, 로푸호프는 ‘합리적 이기주의’ 철학에 따라 행동한다. 소유욕이나 질투로 베라를 구속하는 것은 모두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로푸호프는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자살한 것처럼 위장한 뒤 미국으로 떠난다. 이후 베라와 키르사노프는 정식으로 연인이 되어 서로를 존중하는 사상적 동반자이자 연인으로 살아간다.   &nbsp;  소설 중반에 등장하는 라흐메토프는 일반적인 ‘새로운 사람’에서 ‘헌신적인 혁명가’의 전형이다. 그는 오직 민중의 해방과 혁명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자신의 모든 사사로운 욕망, 편암함, 사랑까지 포기한다.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참아내기 위해 뾰족한 못이 박힌 침대에서 자는 등 극단적인 금욕주의와 훈련을 거친다. 작품 전체에서 비중은 크지 않지만, 당대 러시아 청년들에게 가장 강력한 혁명적 모범을 제시한 인물이다.  &nbsp;  훗날 미국에서 돌아온 로푸호프는 다른 여성과 결혼하여 베라·키르사노프 부부 근처로 이사한다. 두 부부는 서로 깊은 우정을 나누며, 이상적인 공동체와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nbsp;  체르니셰프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 (1863)는 단순히 한 편의 문학 작품에서 19세기 러시아 사회를 흔들고 러시아 혁명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가장 강력한 정치·사회적 선언문으로 평가받는다.  &nbsp;  새로운 사람들 (신인류)라는 행동하는 지식인상을 제시하여 소설은 관념적 논쟁에만 머물던 기존 1840년대 세대 (‘잉여인간’)와 달리, 이성과 행동으로 삶을 주도하는 1860년대 진보 청년층 (‘신인류’)의 모델을 제시했다. 베라, 로푸호프, 키르사노프 같은 인물들에서 이기주의와 타인에 대한 봉사가 대립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합리적 이기주의’를 보여주었다. 금욕과 철저한 자율 훈련으로 자신을 단련하는 라흐메토프는 당대 청년들에게 ‘민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전천후 혁명가’의 완벽한 표상이 되었다.  &nbsp;  가부장적 억압이 극심했던 당대 러시아 사회에서 이 소설은 여성의 인권과 경제적 자립을 최초로 정면 다룬 작품 중 하나이다. 부모의 압제나 정략결혼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방 수단으로 ‘위장 결혼’을 제시했다. 베라가 만든 봉제 작업장은 단순히 돈을 버는 곳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착취 없이 이익을 나누는 생산자 협동조합이자 여성이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공간이었다. 이는 러시아 여성 운동과 초기 사회주의 운동의 시험대가 되었다.  &nbsp;  이 소설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러시아 혁명가들의 ‘지침서’ 역할을 했다. 1870년대 “민중 속으로 (브나로드)”를 외치며 농촌으로 내려간 수많은 청년들이 이 책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받았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입장·보고</category><title>당의 이론적 오류와 관련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38359</link><pubDate>Sat, 26 Sep 2026 22: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38359</guid><description><![CDATA[<br>정치적 성향을 막론하고, 당 내 특정 집단이 저지르는 마르크스에 대한 노골적인 왜곡은 엄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이는 공산당이 추구하는 이론적 모범에 대한 심각한 모욕이자 훼손이다.   &nbsp;  특히 자본주의 체제 내 매체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평생에 걸쳐 규명한 ‘자본주의 분석과 세계 부르주아 질서에 대한 통렬한 반박’을 두고 ‘실패한 사상’이라는 딱지를 붙여 자신들의 이론적 궤변을 정당화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체제적 모순을 깊이 파악하지 못한 채, 자본주의의 수혜를 누리는 지식인층 학자들과 손잡고 마르크스의 ‘단편성’에만 집착하는 태도는 그들이 정치적 기득권과의 타협이 케케묵은 수준에 도달했음을 폭로할 뿐이다.   &nbsp;  이들은 ‘마르크스주의의 재해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소시민적 연대나 노조 민주화 등을 합리화하고, 기존 정권과의 일시적 타협을 도모하고 있다. 급기야 마르크스의 과학적 분석과 당시 러시아 노동자들의 역사적 경향마저 ‘실패’로 단정 짓는 논리적 파단을 저지르고 있다. 그러나 운동권에서 사회주의 운동으로 나아가는 것은 당 내 투쟁이자 공산당의 확실한 일보 전진을 의미한다. 마르크스라는 대의명분 아래 그의 평생에 걸친 연구가 정확했음을 인정해야 한다.&nbsp; &nbsp;&nbsp;『공산당 선언』을 주의 깊게 읽은 독자라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국제노동자협회에서 제시했던 선언의 참뜻을 알 것이다. 즉 “당의 전진을 가로막는 반동적 경향”에 맞서 엄중히 투쟁하고 “부르주아적 이상에 대한 반박”을 전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결코 안일하고 귀찮은 일이 아니며, “끈질기고 집요하게” 걸어가야 할 길이다. 이러한 반동적 경향들은 늘 ‘전통적 색채’나 ‘진보적 수사’를 들먹이며 자신들을 합리화해 왔으며, 자본주의 체제와 국가가 발전함에 따라 더욱 노골적으로 논변을 ‘수정’하고 ‘변질’시켜 왔다.&nbsp;따라서 독자라면 원전이 갖는 중요성을 끊임없이 자문하고, 이를 실천하는 데 게을러져서는 안 된다.&nbsp;<br>엥겔스는 마르크스 추모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nbsp;  “마르크스는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당당한 자부심으로 그의 평생의 과업을 돌아볼 수 있는 한 그는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엥겔스,『제2인터내셔널 폐막 연설』 中  &nbsp;  단순히 마르크스를 입맛대로 요약하여 재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남긴 평생의 유산과 노고를 되새기는 실천이야말로 우리 당이 추구해야 할 가장 정확한 노선이자 선구적인 조직 투쟁의 결집이다.   &nbsp;  만국의 부르주아지를 심판하자! 그들의 녹슨 사슬은 ‘현대화’로 둔갑한 전근대적 자본의 비참한 결말일 뿐이다. 공산당의 전진에는 오늘날 계급 투쟁의 역사가 함께하고 있으며, 이는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사명이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한국 경제의 파산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35583</link><pubDate>Thu, 24 Sep 2026 23: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35583</guid><description><![CDATA[<br>"한국의 경제적 파산은 단계상 충분히 예정된 것이지만, 그것을 대비한 중도 보수층의 집결 역시 몰락의 국면이 예고된다."&nbsp;<br>자본이라는 구체제의 숨결이 지도자 개인을 거두어 가듯이,&nbsp;&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시사·투고</category><title>노동 제도의 구조적 모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35459</link><pubDate>Thu, 24 Sep 2026 22: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535459</guid><description><![CDATA[<br>취업 지도 제도와 노동 시장의 구조적 모순<br>한국의 대표적인 취업 지원 제도인 국민취업지원제도와 공공 고용 서비스는 청년과 구직자들에게 경제적 유인을 제공하는 사회적 측면에도, 실질적 취업 연계의 부족과 형식적 운영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감사원 검사 결과》와 《한국고용정보원》 등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참여자의 30%~40% 이상이 고용복지플러스센터 등의 상담 프로그램이 단순 수당 수급 조건을 채우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그치며 실질적인 구직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응답했다. 수당 지원 등 경제적 만족도는 높은 반면, 일자리 프로그램이나 알선 서비스에 대해서는 희망 직종과 무관한 단순 사무 및 행정 알선에 불과하다는 부정적 평가가 지배적이다. 실제로 제도 종료 후 6개월 이내 취업률은 50%대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1년 이상 고용 유지율은 50% 안팎으로 떨어져 단기 및 전전형 취업이 반복되고 있다. 아울러 국비 지원 직업 훈련 수료자 중 훈련 분야와 실제 취업 직종이 일치하는 직무 연계율은 30%에서 40%대에 불과해, 양적 확대에 비해 질적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이다.  &nbsp;  이러한 형식적 한계는 단순한 행정적 미숙함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고용 제도가 결합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이며, 전 세대에 걸친 노동자 박탈 현상으로 고착화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에서 취업 지원 제도는 개별 노동자의 장기적 역량 개발보다 ‘몇 명을 시장에 재배치했는가’라는 수치적 실적에 집중하며, 구직자를 저임금 및 단기 노동력을 공급하는 상품화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또한 수당 지급에 엄격한 구직 활동 조건을 걸어두어 구직자를 주체적인 노동자가 아닌 행정 절차의 통제 대상으로 취급한다. 이로 인해 청년층은 양질의 노동 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채 단순 보조직을 전전하며 역량 축적 기회를 박탈당하고, 중장년층은 평생 쌓아온 경력과 존엄성을 부정당한 채 하위 노동 시장으로 강제 이동하는 이중 하향 취업을 겪으며, 노년층은 죽을 때까지 저임금 노동을 지속해야만 하는 생존형 노동 박탈로 이어지는 전 세대적 고용 불안정을 겪게 된다.  &nbsp;  제도가 형식적이고 관료적인 양상을 띠는 원인은 운용하는 행정 체계의 내적 구조와 자본주의적 시장 질서 속에서 목표가 왜곡된 결과에 기인한다.   &nbsp;  첫째, 고용센터와 민간 위탁 기관의 성과 평가가 단기적 취업률 숫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여, 상담원과 기관은 구직자의 작성이나 일자리의 질을 고민하기보다 채용이 쉽고 퇴사율이 높은 일자리에 우선 알선하게 된다.   &nbsp;  둘째, 신공공관리론에 따라 고용 서비스를 민간에 대거 위탁하면서 최저가 입찰과 영리성 추구가 도입되었고, 이로 인해 개별 맞춤 상담 대신 서류 양식 채우기나 형식적 전화 상담 등 최소한의 요식 행위가 구조화되었다.   &nbsp;  셋째, 상담원 1인이 수십에서 백여 명의 구직자를 담당하는 과중한 업무로드 속에서, 상담원들은 진정성 있는 진로 설계를 포기하고 수당 지급 기준 검토나 부정수급 방지 서류 확인 같은 형식적 행정 처리자로 전락했다.   &nbsp;  넷째, “구직자가 수당만 받고 일하지 않을 것”이라는 도덕적 해이가 작동하면서, 제도의 중심축이 역량 강화 지원이 아닌 구직 활동 증명을 요구하는 감시 및 통제 행정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nbsp;  이러한 관료화와 형식화는 단기적 행정 예산 낭비만이 아니라 노동 시장 전체에 심각한 장기적 해악을 끼치고 있다. 우선 구직자들이 하위 노동 시장에 갇히는 고착화 현상이 발생하여 사회 전반의 소득 양극화가 심화된다. 특히 급변하는 고용 조건 속에서 기업들은 신입에게마저 ‘즉시 전력감이 되는 중고 신입’이나 다름없는 연차별 실무 경력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으나, 형식적 취업 지원 제도는 이러한 현실을 외면한 채 구직자들을 단기 알선과 부실한 훈련에 머물게 하여 심각한 경력 단절을 유발하고 있다.   &nbsp;  이처럼 체계적인 경력 형성이 차단된 노동자들이 다시 노동 시장에 유입될 때, 기업들은 오히려 이들에게 더욱 까다롭고 과도한 경력직 수준의 ‘스펙과 요건’을 들이밀며 진입 장벽을 높이고 있어, 구직자들은 일자리를 구할수록 오히려 더 깊은 미숙련화와 고용 불안의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또한 높은 퇴직률과 재실업의 무한 반복 속에서 국가 전체의 노동력과 노동 생산성이 저하되며, 청년층의 경우 제도에 대한 불신이 학습된 무력감으로 이어져 구직을 포기하고 비경제 활동 인구로 돌아서는 역효과를 낳는다. 자본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보조금과 제도를 활용한 저비용 노동력 돌려막기에 안주하게 만들어 근로 조건 개선과 기술 혁신 등 체질 개선 유인을 완전히 상쇄시키며, 결과적으로 현행 취업 지원 제도는 노동자의 삶과 숙련을 보장하지 못한 채 자본의 유연화 요구만을 나타내면서 노동 시장의 양극화와 노동 생산성 하락을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