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공산 연구소 (서기원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비판이란 해부용 칼이 아니라, 무기이다.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un, 24 May 2026 21:23:00 +0900</lastBuildDate><image><title>서기원</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028392524800788.png</url><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서기원</description></image><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입장·보고</category><title>지배의 쇠사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4311</link><pubDate>Sun, 24 May 2026 11: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4311</guid><description><![CDATA[  &nbsp;  <br>무산 계급 억압 기구으로 전락한 법, 유산 계급 전유물이 된 제도들  &nbsp;    &nbsp;  현존 체제에 길든 노동 대중이 투쟁의 과정에서 성숙해진다는 일은, 단순히 정치적 견해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시각’과 ‘생존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뀌게되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노동 대중은 성숙해진다.  &nbsp;  ‘수혜자’에서 ‘생산의 주체’로의 정체성 전환  &nbsp;  현재의 노동자는 자신이 생산한 가치가 어디로 유출되는지 모른 채, 임금이라는 ‘시혜적 대가’를 받는 데 익숙하다. 투쟁의 과정에서 생산 현장의 경영 정보와 금융 체계를 확인하게 되면 비로소 ‘노동자의 가치가 자본가의 사적 이윤으로 고스란히 빠져나가는 구조’를 직시하게 된다. 이때부터 노동자는 ‘임금을 더 달라’는 수동적 요구자에서, ‘생산된 가치를 사회적 필요에 따라 배분해야 한다’는 생산의 주체로 스스로를 자각하기 시작한다.   &nbsp;  2. ‘각자도생’에서 ‘계급적 각성’으로의 확장   &nbsp;  자본주의는 노동자를 ‘성실한 개인’이라는 틀에 가두어 서로를 경쟁자로 간주하게 만든다. 투쟁 현장에서 마주치는 타 부문 노동자들과의 단결은 노동자가 가진 파편화된 시각을 깨뜨린다. 이는 ‘직업적 성공이 곧 구원’이라는 기존의 믿음이 깨지고, ‘금융 자본이 무너지면 노동자 역시 보호받지 못한다’는 공동 의식이 형성된다. 이는 개인적 성취에 몰두하던 의식이 공동 문제를 해결하는 집단적 역량으로 전환되는 과정이다.  &nbsp;  3. ‘권위에 대한 의존’에서 ‘직접적 역량’으로  &nbsp;  노동 대중은 오랫동안 ‘똑똑한 정치인’이나 ‘전문가’가 경제를 운영해야 한다는 관념 (전문가주의)에 길들여져 있었다. 성숙의 과정에서 노동자 평의회를 조직함에 따라 직접 현장을 운영하는 실무는 가장 강력한 교육이다. 사측의 방해를 뚫고 전산망을 관리·감독하거나, 제한된 자원을 사회적 우선순위에 따라 배분하는 실무를 직접 처리해 보면서, ‘전문가라고 불리는 자들이 사실은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며 자원을 낭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노동 대중은 이제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획득하며, 타율적 지배에서 자율적 감독자로 성숙한다.  &nbsp;  4. ‘자본주의적 반복’의 모순을 견디는 ‘혁명적 인내’   &nbsp;  그러나 투쟁은 한 번에 끝나지 않으며, 필연적으로 반동과 탄압을 동반한다. 초기에는 선거 결과나 일시적인 성과에 일희일비하지만, 투쟁이 지속될수록 노동 대중은 ‘이 모순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체제 그 자체의 질병이다.’라는 것을 학습한다. 이 단계에 이르면 노동자는 더 이상 당장의 승리에만 매몰되지 않고, 체제 변혁을 위해 작은 투쟁을 조직하고 연대를 공고히 하는 ‘전략적 인내’를 갖게 된다. 이것이 곧 혁명 계급으로의 성숙을 뜻한다.   &nbsp;  결국, 이러한 성숙은 교육으로만 이론을 주입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사적 소유’라는 울타리가 자신의 생존을 보장하기는커녕 위협하고 있다는 사실을 삶의 현장에서 매 순간 확인할 때 비로소 일어난다. 노동 대중은 ‘우리가 없으면 세상은 멈추지만, 자본가가 없으면 세상은 더 안전하게 운영된다.’는 사실을 투쟁으로, 그리고 자신의 뼈저린 삶에서도 체득한다. 이 생활이 누적된 노동 대중은 더 이상 기존 체제에 길든 ‘국민’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계급’을 직시하게 된다.   &nbsp;  유산 계급의 반동과 탄압 역시 혁명적 전진 과정에서 피할 수 없는 ‘필수 통과 의례’이다. 그러나 모순적으로, 반동과 탄압은 노동 계급의 정체성을 가장 단단하게 단련시키는 용광로이다. 기존 정권이나 자본 계급이 가하는 탄압에 맞서, 노동자 평의회가 이 힘의 모순을 도약하여 전진을 멈추지 않아야만 한다.  &nbsp;  탄압의 ‘비용’에 대한 근거를 제시한다.  &nbsp;  반동 세력이 탄압을 감행할 때, 그들에게 가장 큰 공포는 ‘물리력’이 아니라 ‘체제의 정지’에 있다. 그들이 공권력을 투입해 지도부를 검거하고 사무실을 폐쇄해도, 생산과 물류를 직접 운영하는 현장 노동자들의 손발을 모두 묶을 수는 없다. ‘노동자를 탄압하더라도, 사회의 운동은 노동자에게 달려 있다.’ 따라서 현장에서 조직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탄압이 시작되는 즉시 생산과 유통을 조직적으로 중단 (전면 파업 및 업무 거부)하면서, 반동 세력은 탄압의 대가로 사회 마비라는 치명적인 비용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탄압보다 더 큰 비용을 그들에게 치르게 한다.  &nbsp;  2. ‘중앙 집중’의 취약성을 돌파하는 ‘세포 단위의 자생력’   &nbsp;  이전의 운동 방식이 지도부 중심의 중앙 집권적이었따면, 노동자 평의회는 ‘세포 단위의 자생력’을 지닌다. 핵심 지도부가 탄압받아도 운동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각 사업장과 지역 평의회가 독자적으로 사회 운영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실천적으로는, 노동자 평의회의 연결망과 결정 구조를 수평적으로 분산한다. 특정 인물이 사라져도 평의회의 운영 방식은 노동자들의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작동한다. 이에 따라 반동 세력은 ‘머리를 잘라도 몸통이 죽지 않는’ 조직과 싸워야 한다.   &nbsp;  3. 탄압의 ‘노동 대중’의 폭로전  &nbsp;  결국, 반동 세력의 가장 큰 실수가 탄압 그 자체이다. 탄압은 노동 대중에게 ‘기득권이 얼마나 이 체제를 필사적으로 지키려 하는가.’를 체감하게 된다. 반동 세력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순간, 그들의 ‘민주주의’라는 가면은 완전히 벗겨진다. 이는 중립적이거나 체제에 순응하던 노동 대중을 변혁 세력으로 돌려세우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모든 탄압의 과정과 그들의 폭력성 역시 ‘공공 열림망’으로 실시간으로 기록한다. 탄압의 기록은 단순한 피해의 증거가 아니라, 그 체제가 왜 타도되어야 하는지를 증명하게 된다.  &nbsp;  4. ‘물리적 억압’만이 아닌 ‘노동 대중 정당성’ 확보   &nbsp;  반동 세력이 경찰이나 군대라는 물리력을 동원할 때, 노동자 평의회는 ‘사회적 관리자’라는 정당성으로 맞서야 한다. 노동자들이 생산을 유지하고 물자를 분배하는 등 사회적 필요를 실천적으로 해결하고 있을 때, 경찰이 이를 탄압하는 것은 ‘사회를 마비시키는 행위’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사회적 결핍을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탄압하는 자들은 ‘질서 파괴자’로 전락한다. 노동 대중의지지를 기반으로 한 도덕적 우위가 뒷받침된다면, 공권력은 내부적으로 동요하며 분열하기 시작한다.  &nbsp;  결과적으로 노동자 탄압은 운동의 ‘성숙도’를 시험하게 된다. 반동과 탄압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주었지만, 노동자 평의회라는 실천적 기반이 마련된 상태에서의 탄압은, 반동 세력에게 ‘제 무덤을 파는 행위’가 된다.  &nbsp;  따라서 노동자들은 탄압에서 다음을 배운다.   &nbsp;  · 조직의 견고함: 유산 계급 탄압에도, 사회적 단결을 멈추지 않는 힘.   &nbsp;  · 계급적 단결: 탄압받는 동료를 지키기 위해 하나가 되는 연대의 힘.   &nbsp;  · 체제의 본질: 사유 재산 제도가 결코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음을 체득.   &nbsp;  따라서 탄압은 전진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노동 계급이 더 높은 단계의 투쟁 조직으로 전진하기 위해 돌파해야 할 ‘전략적 관문’이다. 반동 세력이 탄압할수록 노동자들은 더욱 단단히 뭉쳐, 스스로가 사회의 주인임을 증명하는 더 큰 파업과 실천으로 응답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정권이 바뀌어도 반복되던 ‘전진의 방해’를 영구히 끊어내기 위해, 노동 대중에게 강조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구호란 무엇인가.   &nbsp;  결국, 관료 독재의 문제는 모든 변혁 운동이 반드시 마주해야 할 가장 거대한 ‘내부의 적’이다. 혁명이 외부의 탄압보다 내부의 관료화로 인해 질식하는 사례는 역사적으로도 많다. 따라서 노동자 평의회는 관료 독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핵심 기제로는, ‘권력의 고착화 방지’와 ‘운영의 투명성’에도 있다.   &nbsp;  ‘대표’가 아닌 ‘대리인’으로서의 지위  &nbsp;  · 순환 근무  &nbsp;  앞서 관료 독재는 대표자가 노동 대중 위에 군림할 때 발생하므로, 강제적 순환 근무에 따라 모든 행정 및 관리직은 고정된 직책이 아니라 순환제이다. 생산 현장의 노동자가 일정 기간 행정 업무를 담당하고 다시 현장으로 복귀한다. ‘관리 계급’이 형성되는 것을 원천 차단한다.   &nbsp;  · 즉각적 소환권  &nbsp;  대의 기구의 대표가 위임된 권한을 남용하거나 노동 대중의 의사에 반할 경우, 선거 기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즉시 해임하고 소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둔다.   &nbsp;  2. 정보 독점 방지: ‘공공 열림망’  &nbsp;  관료는 정보를 독점하여 권력을 창출한다.   &nbsp;  · 실시간 투명성   &nbsp;  모든 생산 현장 기록과 의사 결정 과정은 실시간으로 모든 노동자에게 공개된다. 관료가 숨길 수 있는 ‘영업 비밀’이나 ‘행정 기밀’은 노동자 평의회에서 존재할 수 없다.    &nbsp;  · 공동 운영 규칙에 따른 공공 질서   &nbsp;  다양한 자원 배분은 관료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노동 대중이 토의한 기준에 따른 ‘공공 규칙’으로 집행된다. 관료는 그 규칙의 ‘주인’이 아니라, 기술적인 ‘유지 보수자’로 격하된다.  &nbsp;  3. ‘특권적 보상’의 폐지  &nbsp;  관료 독재는 권력에 따르는 경제적 특권에서 기인한다.   &nbsp;  · 공동의 필요 원칙  &nbsp;  어떤 행정직도 현장 노동자의 임금 이상의 보상을 받지 못하게 한다. 이는 권력을 가진 자가 더 많은 부를 획득할 수 없는 구조로, 경제적 독식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낸다.  &nbsp;  4. 관료가 아닌 ‘사회적 도구’로서의 기구  &nbsp;  이는 정부 부처를 행정적 ‘통치 기구’가 아니라 생산과 분배를 위한 ‘기술적 중심’으로 재정의하는 것이다. 관료는 정책을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평의회가 결정한 것을 ‘기술적으로 지원’하는 도구이다. 관료가 자기 주장을 펼칠 공간을 아예 없애고, 오직 실무적 기록 및 실질적 사실을 정리하고 현장에 전달하는 기능만 수행하여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제거한다.   &nbsp;  관료 독재를 경계하는 태도: 질문과 감시  &nbsp;  역사가 노동 계급에게 주는 교훈은 ‘권력을 위임하는 순간 부패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관료 독재를 막는 것은 좋은 사람을 뽑는 행위가 아니라, 설령 나쁜 사람이 권력을 잡더라도 구조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따라서 투쟁의 과정에서 끊임없이 다음과 같은 의문을 노동 대중 스스로 제기해야 한다.   &nbsp;  · ‘우리가 선출한 대표가 현장보다 위의 권력인가.’ <br>· ‘실무 자료가 공개되지 않고 결정되는 사안이 있는가.’ <br>· ‘관리자가 현장 노동자와 다른 보상을 받고 있는가.’   &nbsp;  관료 권력이 법과 제도라는 외피를 쉽게 두르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계급 지배의 도구’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이다. ‘법치주의’라는 명목하에 관료제는 스스로를 ‘공공의 이익을 위한 중립적 관리자’로 포장하지만, 그 실상은 자본의 축적을 원활하게 돕고 노동 계급의 투쟁을 관리하는 ‘구조적 억압 기구’이다. 이를 증명하고 폭로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의 이면을 드러내는 다음과 같은 실천적 요구가 필요하다.  &nbsp;  ‘법적 중립성’의 허구성 폭로  &nbsp;  관료들은 ‘법과 원칙에 따른다.’고 말하지만, 그 법과 원칙은 애초에 사적 소유를 보장하고 노동자를 지배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에 대한 폭로 지점은 노동자가 파업할 때 법은 ‘업무 방해’로 관료의 탄압을 정당화한다. 반면, 자본 기업이 노동자의 육체를 착취하거나, 이들이 살아 숨쉬는 삶의 터전을 파괴할 때 법은 ‘경영의 자유’라는 명목으로 관료가 이를 방치하게 만든다. 관료가 적용하는 법이 ‘누구의 이익을 보호하고 누구의 목소리를 억압하는지’를 구체적 사례로 분석하여 노동 대중에게 제시해야 한다. 법이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자본가의 권리를 우선하는 ‘지배 계급의 도구’임을 드러내는 것이 관건이다.  &nbsp;  2. ‘행정적 편의주의’가 곧 ‘계급 억압’임을 입증  &nbsp;  관료는 자신들의 행정을 ‘효율적 처리’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노동자의 권리를 박탈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노동자 평의회가 요구하는 공공 실무 현황을 거부할 때 관료는 ‘행정 절차상 미비’나 ‘개인 정보 보호’ 등과 같은 법적 핑계를 댄다. 이는 결국 노동자가 권력을 갖지 못하게 막는 억압이다. 따라서 노동자의 요구가 관료의 법적 절차 때문에 어떻게 좌절되는지를 ‘절차적 장벽’이라는 이름의 억압으로 규정해야 한다. 행정 절차가 노동 대중의 연대를 꺾는 도구가 되고 있음을 끊임없이 밝혀야 한다.  &nbsp;  3. 법의 ‘사유화’와 ‘관료의 특권’   &nbsp;  법제도는 관료가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유지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관료들은 퇴임 후 자신들이 규제하던 자본 기업의 고문으로 취업하는 ‘관피아’의 사례처럼, 법적 권한을 개인적 이익으로 교환한다. 따라서 관료의 권한이 어떻게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과 결부되는지, 즉 관료 제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적 이익 집단임을 폭로해야 한다. 이는 그들이 내세우는 ‘법적 정의’가 결국 자신들의 사적 이익 및 특권임을 증명하는 것이다.&nbsp; &nbsp;4. 노동 질서의 시연, ‘무산 계급 강령’ 세우기  &nbsp;  앞서 법이 억압 기구임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법 없이도 훨씬 더 정의롭고 경제적인 사회적 질서를 노동 대중 스스로 이루는 것이다. 노동자 평의회가 현장에서 노당자들끼리 토의하여 안전을 지키고 분배를 결정할 때, 관료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이를 무력화하려 한다. 그때 노동자들이 ‘우리의 합의가 법보다 더 명확한 공동체 질서다.’라고 선언하며 관료의 간섭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기존 법과 제도가 ‘불필요한 억압 기구’임을 증명하는 실천이다.   &nbsp;  따라서 법과 제도는 관료가 자신의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신성불가침한 도구’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법이라는 껍데기 뒤에 숨어 노동 대중의 역량을 숨기는 겁쟁이들이다. 따라서 노동 대중에게 강조해야 할 핵심은 다음과 같다.   &nbsp;  ‘우리를 구속하는 것은 ‘법’이 아니라, 그 법을 무기로 삼아 생산의 주인인 우리를 지배하려는 관료들의 지배 논리’이다.  &nbsp;  이와 같이 법의 중립성을 주입하는 관료들의 언어를 걷어내고, 그들이 행사하는 행정 권력이 어떻게 노동자의 생존을 위협하는지 구체적인 생산 현황 및 실무 자료를 가지고 노동 대중에게 알리도록 번역하는 것, 그것이 곧 관료 독재라는 억압 기구를 해체하는 시작점이다.   &nbsp;  이러한 폭로에서도, 노동 대중이 기존의 법적·제도적 형식에 의존하는 것을 멈추고, 스스로의 평의회 강령을 세우기 시작할 때, 관료 권력은 그 즉시 정당성을 잃고 붕괴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이 투쟁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관료적 질서’에 반기를 들 수 있는 실천적 의제는 무엇인가.  &nbsp;  법과 제도를 논의에서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핵심 타격 지점’으로 설정하여 다루어야 한다. 다만, 그 다루는 방식이 ‘법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라는 의회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법이라는 형식을 어떻게 무력화하고 노동자 평의회 강령으로 대체할 것인가.’이어야 한다.  &nbsp;  법을 ‘사회적 합의의 고정물’이 아닌 ‘계급 지배의 무기’로 정의  &nbsp;  법은 중립적인 규칙이 아니라, 특정 시점에 승리한 계급의 단결을 위한 기록이다. 따라서 법과 제도를 다룰 때는 지금의 법은 자본가와 관료가 노동자를 지배하기 위해 만든 장치일 뿐, 사회적 정의와는 무관하며, 노동 대중이 법을 ‘지켜야 할 신성한 것’이 아니라 ‘노동 계급이 주체적으로 다시 써야 할 낡은 지배의 도구’라는 점이다.&nbsp; &nbsp;2. ‘법적 절차’를 ‘지연과 억압의 수단’으로 규정  &nbsp;  관료들이 법적 절차를 내세울 때, 그것이 실제로 사안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대중의 요구를 무력화하고 시간을 끌기 위한 수단임을 증명해야 한다. ‘관료들은 언제나 절차를 말하지만, 사실 그 절차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형식이다. 노동 계급은 절차적 정당성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라는 실질적 정당성으로 행동한다.  &nbsp;  3. ‘평의회 강령’과 ‘국가 법’의 정면 충돌 제시  &nbsp;  노동자 평의회가 현장에서 직접 의사 결정을 내릴 때, 그것은 기존 국가 법과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이 충돌을 회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조명한다. 평의회가 결정한 분배 방식이나 노동 조건이 국가의 노동관계법과 충돌할 때, 평의회의 결정이 법보다 우위에 있음을 실천으로 증명해야 한다. 법을 따르지 않는 것이 ‘범법’이 아니라, ‘낡은 법을 대체하는 새로운 사회적 규범의 탄생’임을 설득한다.   &nbsp;  4. 제도 폐지의 단계적 상정  &nbsp;  법과 제도를 무조건 폐기한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대중의 공포를 야기할 수 있으므로, 따라서 ‘어떤 법은 왜 즉시 폐기되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인 사례 (노동법, 상법 등)로 제시한다. 예시로는, ‘노동자의 파업권을 제약하는 법을 무효화하고, 그 자리에 노동자 평의회의 ‘생산 통제권’을 세운다.  &nbsp;  법을 대하는 태도를 ‘준수’에서 ‘대체’로 전환함에 따라 관료들이 법이라는 지배 수단으로 노동 대중을 억압할 때, 노동자 평의회는 ‘법보다 더 정의롭고 실질적인 공동체적 합의’를 내세워 전진해야 한다. 따라서 법과 제도는 관료가 휘두르는 지배의 쇠사슬이며, 노동자 평의회는 이 쇠사슬을 억지로 끊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 강력하고 합리적인 ‘평의회 강령’을 수립함에 따라 기존의 법 체제를 사멸시키는 과정이다. 이렇게 법과 제도를 혁명의 대상이자 대체되어야 할 ‘구체적 폐기물’로 다룬다.  &nbsp;  이처럼, 법이라는 좁은 틀 대신,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관료들이 행하는 모든 지배와 강제를 하나로 묶어 다루게 된다. 이렇게 하면 법적 정당성 논란을 피해, 관료 독재와 국가의 억압적 본질을 더 명확하게 겨냥할 수 있다. 애써 법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관료들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물리력과 행정력이라는 표현만으로도 그 본질은 충분히 전달된다.  &nbsp;  그렇다면 유산 계급 국가라는 틀 안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강조한다.  <br>· 통치의 도구  &nbsp;  국가를 관리하는 관료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nbsp;  · 억압의 본질  &nbsp;  국가가 제시하는 질서가 실상은 노동자의 직접 통제를 방해하는 기제라는 점.  &nbsp;  · 대책의 우위   &nbsp;  노동자 평의회적 운영이 국가라는 비대하고 비효율적인 체제를 대체할 때 얻는 실질적 이득.   &nbsp;  그러나 대중에게는 ‘법을 어기자’는 말보다 ‘노동자의 생산과 분배를 위해 불필요한 관료적 간섭을 걷어내자’는 표현이 훨씬 설득력 있다.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더 합리적인 운영 체계’로 대체하는 것이 지금은 기존 체제를 ‘파괴’하는 것보다 더 용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이라는 용어를 직접 노출하여 불필요한 법리적 논쟁이나 체제 순응저 사고에 빠지는 대신, ‘관료들이 운영하는 국가 기구의 행정적 억압’이라는 측면에 논의의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노동 대중 또한 법이라는 관념적 보호막에 갇히지 않고 ‘누가 현장을 운영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집중하게 된다.  &nbsp;  법이나 제도를 별도의 독립적인 논쟁으로 분리하는 순간, 논의는 ‘법치주의 내에서의 정당성’이라는 기존의 틀로 회귀할 위험이 있다. ‘법과 제도는 관료적 국가 기구가 자신들의 억압을 정당화하고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는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훨씬 더 핵심적이고 실천적이다.   &nbsp;  억압 기구의 일체화  &nbsp;  국가와 관료 기구,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는 법적·제도적 외피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억압적 유기체’이다. 이 전체를 ‘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통치 장치’로 규정하면, 법이라는 부차적인 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국가 권력의 실체를 폭로하는 데 논의의 화력을 집중할 수 있다.   &nbsp;  2. 정당성의 근거를 ‘법’에서 ‘계급의 실천’으로 전환  &nbsp;  노동자 평의회의 정당성은 법전 속 조항이 아니라, ‘사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생산을 통제하는 노동자들의 실천’에서 나온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 정당성을 찾으려 하는 순간, 지배 계급의 틀에 갇히게 되므로, 법을 단순히 ‘준수해야 할 규범’이 아닌, ‘노동자의 실천을 방해하는 외적인 억압 기구’로 확고히 규정한다.   &nbsp;  3. ‘대한민국’이라는 한계 돌파  &nbsp;  사실 한국 사회에서 법적 테두리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적 정체성으로 인해 강하게 결합해 있다. 따라서 법을 직접 공격하는 것은 자칫 노동 대중의 반발 (국가 정체성과의 충돌)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국가 기구의 관료적 억압’을 전면에 내세우면, 대중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그 자체를 부정하는 공포보다, ‘자신의 삶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관료 집단과 국가의 기능’에 대해 충분한 비판적 객관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것이 훨씬 안전하면서도 파괴력 있는 방식일 수 있다.   &nbsp;  결국 ‘법이나 제도가 무엇을 말하는가.’가 아니라, ‘국가 기구와 관료가 그 법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자의 무엇을 억압하고 있는가.’에 맞춰져야 한다. 법을 다루지 않는 것이 논의의 누락이 아니라, 법의 본질은 ‘억압 기구로서의 기능’이며 법의 권위를 근본적으로 폭로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정치권은 ‘개혁’이라는 단어를 자주 거론하지만, ‘근본적 대체’에 있어서는 유산 계급이 법을 이용하는 방식이 ‘정의의 실현’이 아닌 ‘계급적 배타성을 보존하는 성벽’으로 규정하며, 이는 경제 논리로 확장된다. 법을 도구화하는 그들의 행태를 폭로하는 것은 그들의 도덕적 파산과 정치적 무능을 동시에 드러낸다.   &nbsp;  앞서 세 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nbsp;  ‘법적 안전성’을 ‘착취의 연속성’으로 폭로   &nbsp;  유산 계급은 언제나 ‘법적 안전성’과 ‘법치’를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그들이 쌓아 올린 사적 소유와 불평등한 분배 구조를 영구히 고착화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그들이 말하는 법치란, 자신들의 지배를 영구히 유지하기 위한 ‘암묵적인 틀’에 불과하다. 이 틀 안에서는 결코 착취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유산 계급이 제도화한 법을 준수하는 것이 곧 노동 계급의 자살 행위임을 강조하고, 법적 안전성이 아닌 ‘체제 변혁의 역동성’을 새로운 사회적 가치로 제시한다. &nbsp; &nbsp;2. 유산 계급의 ‘법 도구화’로 인한 정치 세력의 ‘사유화’ 폭로  &nbsp;  유산 계급 정치 세력은 법으로 무장하여 노동자들의 저항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자신들의 부당한 이익은 ‘합법’으로 포장한다. 그들은 법으로부터 국가를 자신의 사유 재산처럼 다룬다. 그들에게 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부를 지키기 위한 사적 용도이다. 따라서 정치를 ‘국가 운영’으로 보지 않으며, 유산 계급의 이해관계를 법으로 관철하는 ‘사적 이익 추구 행위’로 정의한다. 대중에게 정치인이란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법을 악용하는 계급적 대리인’임을 상기해야 한다.  &nbsp;  3. ‘법적 권리’에서 ‘사회적 실권’으로의 전선 이동  &nbsp;  유산 계급은 법적인 권리 (사유 재산권, 경영권 등)를 내세워 모든 논의를 차단하려 시도한다.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법적인 권리’보다 ‘실질적인 노동자 운영권’이 우위에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이는 그들이 법전을 흔들며 가로막더라도, 정작 사회를 움직이는 전력, 물류, 생산 현황 등은 노동자의 손에 있다. 종잇조각에 불과한 법적 권리가 사회적 생산 현장의 현실보다 앞설 수는 없다. 이는 유산 계급에게 법적 권력이 결코 물리적 생산 현장을 장악할 수 없음을 경고하는 견제이다. 법을 든 정치 세력이 실물 경제의 주체인 노동자들 앞에서 무력한 존재인지를 투쟁 현장에서 확인시켜야 한다.   &nbsp;  그동안 유산 계급 정치 세력이 법을 이용하는 방식은, 자신들의 견고한 요새 뒤에 숨어 착취를 정당화해 왔으며, 그 법은 그들만의 편의를 위해 쓰인 기록일 뿐이다. 정치가 법으로 노동자의 전진을 가로막을 때마다, 노동자는 그 법이 정의가 아니라 단지 그들의 탐욕을 보호하기 위한 울타리임을 폭로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전진은 법적 승인이 아닌, 사회적 필요를 실천하는 노동자들의 힘으로 직접 결정한다. 유산 계급 정치 세력의 입법 로비, 사법 방어 등으로, 자신들만의 억견을 내세울 때면, 그들은 법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점이 토로된다.   &nbsp;  따라서 유산 계급의 법과 제도는 법이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범죄자를 비호하고 체제를 유지하는 역사 왜곡의 도구’로 기능해왔다는 점이다. 이를 논리적으로 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nbsp;  · ‘법적 절차’를 ‘단죄 회피 수단’으로 규정  &nbsp;  사실 쿠데타와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유산 계급이 정작 처벌받지 않은 이유는 ‘증거 부족’이나 ‘법적 시효’라는 기술적 명분 때문이다. 즉 유산 계급에게 법은 죄를 묻는 저울이 아니라, 자신들의 범죄를 ‘합법적 과거’로 세탁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법적 절차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당성을 상실한 통치자들이 권력을 보존하기 위해 만든 도피처였다. ‘법대로 하자는 말이’ 정의가 아니라 오히려 ‘범죄자가 빠져나가는 구멍’을 만드는 구실이라는 점이다. &nbsp; &nbsp;· 국가의 탄생: ‘대한민국’이라는 사법 체계와 유산 계급의 공생 관계  &nbsp;  쿠데타 세력이 법을 장악하고, 그 법이 다시 그들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순환 논리’를 지적하자면, ‘쿠데타를 일으킨 자들은 스스로 법을 만들고 해석할 권력을 차지했지만, 정작 그렇게 만들어진 법이 어떻게 그들을 단죄할 수 있는지’를 묻자면, 결국 법과 제도는 범죄자의 손에 쥐어진 몽둥이였고, 그 몽둥이는 노동자의 투쟁을 때려잡는 데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사법부와 유산 계급 정치 세력이 ‘유기적 몸체’이고, 법적 판단이 항상 계급적 이익에 따라 움직여 왔다.   &nbsp;  · ‘역사적 단죄’의 주체를 ‘법’에서 ‘노동자 평의회’로 이동  &nbsp;  앞서 강조하지만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들은 기존 체제의 법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일이다. 이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는 새로운 사회 운영 원리의 필요성을 부각하더라도, 유산 계급은 자신들이 이용한 법의 울타리 내에서 결코 심판받지 않는다. 역사의 단죄는 형식적인 법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체제 자체를 뜯어고치는 노동자들의 실천에서 시작된다. 노동자들은 그들이 만든 낡은 법에 기대어 정의를 구걸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들의 지배 체제를 해체하여 실질적인 단죄를 집행한다.   &nbsp;  유산 계급은 이제 쿠데타라는 명백한 범죄조차 ‘법적 절차’라는 이름으로 세탁해 왔으므로, 법은 그들에게 범죄를 감추는 ‘대피소’이자, 투쟁하는 옭아매는 쇠사슬이다. 제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이 비호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 이유는, 법과 제도가 그들의 이해관계에 묶여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설계된 ‘사유화된 도구’이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자는 더 이상 법의 이름으로 그들의 단죄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가 주인이 되어 생산과 분배를 직접 통제하는 평의회를 세우는 것은, 공상적이고 이상적인 관념이 아니라 그들이 오랫동안 피해 온 진정한 역사적 단죄의 시작이자 첫걸음이다.   &nbsp;  요약하자면, 법은 단순히 ‘정의의 도구’가 아니라 ‘범죄를 세탁하는 합법적 구실’이다. 단죄의 실패가 무능이 아니라 ‘계급적 유착’의 필연적 결과이므로, 법적인 심판을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되며, 체제를 대체하여 그들의 기득권을 소멸시키는 것이 진정한 단죄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법을 다루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면서, 법 체제 전체의 도덕적 파산과 유산 계급의 기만이 드러난다. 이는 곧 위선이 더 이상 선이 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입장·보고</category><title>무산 계급과 국유화</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3398</link><pubDate>Sat, 23 May 2026 20:4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3398</guid><description><![CDATA[<br><br>무산 계급과 국유화 요구&nbsp;<br>사회가 발전할수록 노동 계급의 정치적 권리는 명목상 보장될지라도, 그것이 발휘되는 실질적인 정치적 권한은 제한되기 마련이다. 사적 소유의 폐지는 단순히 개인의 생활 수단을 빼앗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노동을 지배하고 착취하는 수단이 되는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 (생산 수단에 대한 소유)’를 폐지하는 것임을 명확히 한다. 이를 한국 사회의 실천적 행동으로 전환하기 위한 과제들은 다음과 같다.&nbsp;사실 자본주의적 소유 (또는 소유 재산)와 자산의 핵심은 생산 수단을 가진 자가 노동 과정의 권한 및 통제권과 잉여 가치를 독점하는 구조다. 이를 타파하기 위한 국내 실천의 첫걸음은 주요 생산 수단과 기간 산업을 자본의 수중에서 회수하는 일이다.  &nbsp;  1. 재벌 체제 해체와 산업 시설의 공공화&nbsp;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독점 대기업 (재벌)의 소유권을 해체함을 분명히 하고, 이를 사회적·국가적 소유로 전환한다. 이는 단순한 주식 사유화가 아니라, 노동을 노동자와 국민 모두가 짊어진 ‘의무 노동’이 아닌 ‘사회적 노동’으로 전환함을 의미한다. 이는 실질적인 무산 계급 국가가 주도하는 국유화 정책 중 ‘계획 경제’를 전방위적으로 실시함을 뜻한다.&nbsp;국가 기간 산업 및 핵심 시설의 완전 국유화가 지니는 이점은 에너지, 교통, 통신, 의료, 교육 등 노동자 국민의 사회적 생존과 직결된 필수 의존 분야의 사유화를 전면 금지하게 된다. 이로부터 완전한 국유화를 달성하게 되면, 경제의 중심은 단순히 이윤 추구가 아닌 사회적 필요에 따른 계획 경제로 전환된다.  &nbsp;  2. 토지 및 부동산의 사적 소유 폐지&nbsp;한국 사회에서 자산 불평등의 가장 고착화된 원인이자 지대 추구의 중심인 토지와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현 체제 내에서는 늘 난제로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그것은 유산 계급의 변명적 구실에 불과하다. 모든 토지의 소유권을 무산 계급 국가로 국유화하게 되면 이러한 토지 매매를 전면적으로 금지할 수 있으며, 사회적 필요와 공공 이익에 따라 이용할 수 있는 권한을 마련하여 노동자 국민에게 ‘사용권’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nbsp;주택은 본래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다. 주거란 인간의 생존을 위한 기본 권리로 규정하며, 대규모 공공 임대 주택 확충 및 사적 임대업 금지만이 아니라 자본 축적의 수단으로서의 부동산 소유 자체를 완전히 소멸시킨다.  &nbsp;  3. 금융 체제의 통제와 자산 가상화에 대한 대응  &nbsp;  ‘국가 자본에 따른 신용 집중’은 자본주의 경제를 통제하기 위한 필수 행동이다. 민간 상업 은행과 대형 금융 자본을 국유화하여 사적 이윤이 집중되던 민간 은행 체제를 국가 은행 체계로 전환하고 신용을 재분배한다. 이는 단순히 부패로 점칠된 은행이 아니라, 계획 정책에 따라 노동자들로부터 철저히 통제된 은행을 의미한다. 지금과 같은 투기적 금융 상품과 주식 시장을 점진적으로 폐쇄함에 따라, 자본의 운동은 이윤 극대화가 아니라 노동 계급의 생활 보장과 사회적인 생산 계획에 집중된다.  &nbsp;  금융 자본의 심화에 대한 지적도 상당하므로, 자본과 은행이 완전히 결탁하고 디지털 자산, 파생 상품, 가치 증권 등 ‘가상화’된 형태로 존재하는 현대 사회의 조건은 국유화 논의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리며, 동시에 노동자 조직화의 방식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가상 자본’이란 이처럼 실물 생산과 분리되어 증권과 신용 체계 위에서 팽창하던 가상화된 재산을 뜻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취약성이 극대화됨에 따라 모순적으로 소유의 사회화가 진행되어 선진적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물질적 토대를 제공한다.  &nbsp;  이처럼 자본과 은행의 결탁이 고도화되어 자산이 가상화되어, 사적 소유는 거대한 독점 금융 체계라는 ‘사회적 형태’를 띠게 된다. 이는 다음과 같은 논리로 국유화 및 사회화의 당위성을 형성한다. 자산이 가상화되고 대형 은행과 금융 체계로 집중될수록, 오히려 소유는 이미 고도로 사회화된 체계를 갖추게 된다. 지금은 수많은 소생산자의 파편화된 사적 소유를 폐지하는 것보다, 이미 금융 체계로부터 고도로 집중된 가상 자본을 통째로 사회적 국유화로 전환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도 훨씬 용이하다. 즉, 금융 체계의 중앙 서버와 신용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사회 전체의 생산 수단을 통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nbsp;가상화된 자산은 실물 노동의 가치에 기반하면서도 전산 체계 내 수치나 신용 등급으로만 존재한다. 이 가상적 신용 체계가 금융 위기 등으로 인해 흔들릴 때면 국가가 공적 자금을 투입해 이들을 구제하므로, 사유 재산이 사실상 사회적 시설 기반 (인프라)에 의존하고 있음이 폭로된다. 이는 사적으로 이윤을 독점하면서 위험은 사회화하는 금융 자본을 전면 국유화하고, 신용을 전체 사회적 필요에 맞게 배분해야 하는 요구로 전환된다.  &nbsp;  현대의 가상화된 재산은 거대 금융 및 전산&nbsp;체계 (IT)&nbsp;위에서 유통되므로, 이 체계들은 대중의 상호 작용과 정보를 흡수하여 가치를 창출한다. 따라서 특수 체계 (‘플랫폼’ 등)의 소유권을 자본가 개인에게 맡겨 둘 수 없게 되며, ‘특수 체계 국유화’ 및 ‘정보 (데이터) 자산의 사회화’ 논의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낸다.&nbsp;&nbsp; &nbsp; &nbsp;결국 무산 계급이 주도하에 정치적 지배권을 장악하여 자본 계급으로부터 모든 자본을 차례로 회수해야 하며, 이러한 법적·정치적 토대 없이는 사적 소유 폐지의 실천은 어렵다. 현행 유산 계급 의회주의 체제가 아니라, 노동 계급의 가치를 대변하고 실질적인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하는 강력한 혁명 정당 및 조직이 요구되는 이유이다. 개별 사업장 단위에서 노동 조합만이 아니라 ‘노동자 평의회’와 같은 현장 통제 기구를 활성화하여 생산 과정 전체를 노동자가 직접 통제하는 역량을 증명하게 된다.&nbsp;  &nbsp;  실천적 유의점으로는 여기서 국유화는 단순히 관료주의적 국가가 모든 것을 소유하고 통제하는 국가 자본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는 국가라는 억압 기구 자체가 사멸해가는 과정 속에서, 국가 소유를 거쳐 ‘연합된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공동체’로부터 사회적 소유로 나아가는 과정임을 파악하는 것이 한국 내 실천 전개에서 가장 핵심적이다.  &nbsp;  4. 선진적 노동자 조직화와 전진 요구&nbsp;선진적인 노동자 조직에 있어 자산의 가상화와 금융화는 전통적인 공장 노동자 중심의 조직화만이 아니라, 총노동을 결집하고 선진적인 조직 형태로 나아가는 물질적 조건을 제공한다. 지금까지 가치 창출 사슬 전반을 아우르는 자본 조직화에 맞서, 이전의 노동 조직이 개별 공장이나 산업별 울타리에 갇혀 있었다는 한계를 도약해야 한다. 자본이 금융과 ‘가상 정보망 (디지털 네트워크)’으로 결탁한다는 조건에서는 노동자들 역시 ‘공공&nbsp;연결망 (가치 네트워크)’ 전체를 움직이는 조직체로 전환해야 한다. 부품 생산자, 배달 및 물류 노동자, 자료 관리자 (데이터 관리자), 금융 사무 노동자 등 하나의 자본 사슬과 같은 연쇄 고리를 파악하고, 현장에서 ‘공동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선진적 조직화의 첫걸음이다.&nbsp;금융 자본이 결국 가상 체계 (알고리즘, 특수 체계, 자동화된 신용 평가 등)로 노동을 다시 통제하려 든다면, 선진적 노동자 조직은 단순히 임금 인상 요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 체계의 설계와 운영 방식을 노동자가 직접 통제하는’ 요구를 내걸어야 한다. 생산의 물리적 과정뿐 아니라 가상화된 관리 체계 자체를 결국 노동자 평의회가 장악하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다. 현재의 금융과 은행 결탁 체제는 필연적으로 자산 버블과 부채 경제를 낳는다. 이는 노동 대중에게도 주거 부채, 학자금 부채 등의 형태로 전가되므로, 선진적 노동 조직은 공장 안의 노동자 정체성만이 아니라 가상화된 자본으로 생활 전반에 저당 잡힌 ‘채무자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를 확보한다면 더 넓은 노동 대중 운동을 기층에서 전개할 수 있다. ‘부채의 거부와 은행 유한 책임 해체’라는 요구 역시 자본의 금융적 결탁을 타격하는 동시에, 폭넓은 민중을 선진적 노동자 조직의 주도로 결집시키는 강력한 연대 고리가 된다.  &nbsp;  따라서 금융과 기술의 결합으로 자본이 아무리 가상화되더라도 그 가상의 숫자를 떠받치는 최후의 기반은 여전히 인간의 살아있는 실물 노동이기에, 체제가 고도화될수록 그 핵심 연결망을 장악한 노동자 조직의 잠재적 자본 파괴력도 더욱 커진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체제 변혁을 향한 국유화 요구가 단순한 법적 소유권 이전이 아니라, ‘금융·정보 체계의 노동자 통제’라는 선진적 형태로 구체화된다.  &nbsp;  5. 공산주의 단계에 따른 분배 원리  &nbsp;  결국 자본주의가 무너지자마자 ‘터무니없거나’ ‘이상적’이라 여겨지던 공산주의 분배가 곧바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발전 단계 (공산주의 단계)에 따라 분배 방식이 변혁된다는 점을 강조하며, 그 구체적인 분배 원리와 단계별 과정은 다음과 같다.  &nbsp;  5-1. 분배 이전의 원천 공제분&nbsp;(사회 지속과 발전을 위한 몫)  &nbsp;  많은 사람들이 국유화 직후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전체를 노동자 개인에게 100% 임금으로 돌려주어야 한다고 오해하지만, 실제로는 이는 ‘느슨하고 무책임한 생각’이다. 노동자 개인이 자신의 몫을 분배받기 전에는 사회적 총생산물에서 공동체 유지와 발전을 위해 먼저 공제해야 하는 영역이 존재한다.&nbsp;  &nbsp;  · 생산 지속 및 대비를 위한 영역: 닳아 없어지는 생산 수단의 보충분 (감가상각 비용), 생산 확장을 위한 추가 가치, 재해나 천재 지변에 대비한 예비 기금 및 보험 기금 등.&nbsp;  &nbsp;  · 공동 소비 및 사회적 충족을 위한 영역: 일반 행정 비용 (국가나 행정 기구의 관리 비용으로, 이는 새로운 사회에서 점차 최소화됨), 학교·병원 등 주민들의 공동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문화·보건·교육 기금, 노동 능력이 아예 없는 사람들 (어린이, 노인, 환자 등)을 위한 구호 기금. 이러한 공제 과정을 별도로 거쳐야만 남은 부분만이 비로소 노동자 개인들에게도 분배될 수 있는 ‘소비재의 몫’으로 온전히 주어진다.  &nbsp;  5-2. 공산주의 낮은 단계 (사회주의): 노동에 따른 분배  &nbsp;  사회주의는 그 단계상 공산주의의 낮은 단계이므로, 노동에 따른 분배가 이뤄지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막 빠져나와 여전히 그 경제적·도덕적 흔적이 남아 있는 전환기 (자본이 고도화되는 이행기나 과도기가 아님) 단계에서는 ‘능력에 따라 일하고, 노동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원칙이 적용된다.&nbsp;  &nbsp;  가령 노동자는 사적 소유가 폐지된 사회적 일터에서 자신이 제공한 노동 시간과 양을 증명하는 인증서를 받는다. 예를 들어 한 노동자가 하루 8시간 동안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을 제공했다면, 8시간 분량의 노동 가치가 기록된 인증서를 취득하며 그 가치에 따라 재화가 수령된다. 그리고 노동자는 이 인증서로 증명된 사회적 소비재 창고에 제출하고, 자신이 사회에 제공한 노동 시간과 정확히 같은 양의 노동이 들어간 소비재를 찾아간다. 이 과정에서 자본가가 중간에서 가로채던 잉여 가치 (착취)는 사라지며, 자본주의적 임금 형태는 소멸한다.&nbsp;그러나 노동에 따른 분배는 얼핏 공평해 보이지만 여전히 한계를 가진다. 사람마다 타고난 신체적·정신적 노동 능력도 다르고, 부양해야 할 가족 수도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똑같이 8시간을 일해도 누구는 더 풍족하고 누구는 더 빈곤할 수 있다. 즉, ‘형식적으로는 평등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한’ 유산 계급적 권리의 잔재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음 단계가 진행된다.  &nbsp;  5-3. 공산주의 높은 단계: 필요에 따른 분배&nbsp;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하여 물질적 재화가 넘쳐나고, 노동이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의무’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아를 실현하는 ‘제1의 생활 욕구’로 변화했을 때, 사회는 마침내 최종적인 분배 단계로 진입한다.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분배받는다.’는 이 단계에서는 더 이상 노동 시간을 자로 재듯 계산하여 분배하지 않게 된다. 모든 사회 구성원은 자신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일하고, 자신이 생활하고 자아를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만큼의 재화와 용역을 사회적 공동 축적물에서 자유롭게 가져다 쓴다. 이후부터는 가치 법칙의 완전한 소멸이 이뤄지므로, 가상화된 자본은 물론이고 가치를 측정하던 화폐나 노동 인증서 체제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며, 분배는 철저히 인간의 구체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nbsp;  6. 한국의 국유화 실천 과정에서 구체적 분배 적용&nbsp;앞서 논의한 자본과 은행의 결탁, 자산의 가상화가 고도화된 국내 현실에서 이를 실천할 경우, 분배는 다음과 같은 선진적 형태로 조직될 수 있다.   &nbsp;  기본 생활 기반의 무상 분배 (공동 소비): 국유화된 금융 자본과 재정적 기반의 잉여를 바탕으로 주거, 의료, 교육, 대중교통, 통신, 에너지 등을 노동의 대가와 상관없이 전 국민에게 즉각 ‘무상 공급’하는 영역으로 전환한다. 이는 실질적인 필요에 따른 분배를 부분적으로 조기 실현하는 방식이다.&nbsp;  &nbsp;  · 전산 정보망 및 특수 체계의 회수   &nbsp;  가상화된 특수 체계와 정보 시설망이 국유화되면, 과거 자본가들이 독점하던 수익과 지대를 전체 노동자의 사회적 기금으로 즉각 회수한다.  &nbsp;  · 노동 계획 경제 체계의 확립   &nbsp;  국가 관료가 분배를 일방적으로 관리하는 관료주의적 폐해를 막기 위해, 선진적 노동자 조직 (노동자 평의회)들이 직접 사회적 총생산에서 공제할 몫과 개인에게 분배할 소비재의 비율을 주체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는 ‘노동 계획 경제’ 체계를 수립한다.&nbsp;  &nbsp;  이러한 기존의 관료주의 독재를 막고 ‘연합된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공동체’에 기초한 올바른 계획 경제를 성립하기 위해서는, 현 체제의 경제 체제 및 체계를 끊임없이 타격하며 노동 계급의 역량을 드높이는 구체적이고 과감한 ‘전진 요구’들이 조직되어야 한다. 여기서 전진 요구란 단순히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일부 조건을 개선하는 ‘개량적 요구’가 아니라, 현 체제가 수용할 수 없는 모순을 폭로하여 노동 대중을 실제 권력 장악과 체제 변혁의 길로 전진시키는 징검다리 요구를 뜻한다. 따라서 올바른 계획 경제 수립을 위한 핵심 전진 요구들은 다음과 같다.  &nbsp;  · 노동자의 ‘영업 비밀 폐기’와 ‘노동자 주체 통제’ 법제화   &nbsp;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과 은행은 생산 비용, 원가 구조, 투자 계획, 알고리즘 소스 코드 등을 기존의 ‘영업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은폐한다. 그러나 자본의 정보 독점을 깨뜨리지 않고서는 올바른 계획 수립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대기업과 금융 기관의 자산 보유 현황, 자금 유출입 경로, 이윤율을 노동자 조직 앞에 투명하게 공개하기를 요구해야 한다. 따라서 모든 기업의 장부 및 영업 비밀을 전면 공개하고 생산 및 경영에 대한 노동자 거부권을 확보함에 따라, 현장 노동자들이 공장과 일터의 폐업, 인력 감축, 자산 매각 등을 거부하고 직접 생산 과정을 감독·통제할 수 있는 법적 권리와 노동자 권한을 요구한다. 이는 노동자들이 자본을 대신해 생산을 감독하는 ‘계획의 주체’로 훈련되는 결정적 과정이다.  &nbsp;  · ‘시간 주권’ 쟁취를 위한 노동 시간의 획기적 단축&nbsp;노동자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생계를 위한 임금 노동에 저당 잡혀 있다면, 국가와 사회 전체의 경제 계획에 대해 토론하고 결정할 정치적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할 수 없으므로, 계획 경제는 노동자의 자유 시간에 비례한다. 더욱이, 주 30시간 (또는 주 4일제) 노동제로의 전환 요구 역시 임금 삭감 없는 과감한 노동 시간 단축을 포함한다. 노동자가 기업 경영, 지역 사회 계획 수립, 노동자 평의회 활동에 참가하는 시간을 정당한 노동 시간으로 인정받아 생계 위협 없이 계획 수립에도 동참할 수 있는 물질적 토대를 제공한다. 따라서 사회적 활동의 노동 시간 인정이 보장된다.  &nbsp;  · 금융 체계의 사회화와 ‘공공 신용 계획’의 전면화&nbsp;앞서 논의된 가상화된 자본과 은행 결탁을 해체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파편화된 투기 금융을 전 사회적 생산 계획으로 지원하는 공공 신용 기구로 강제 전환해야 한다. 단일 국립 은행 설립과 화폐·신용 통제를 위해 기존의 모든 민간 은행을 단일한 국가 신용 체계로, ‘이윤’이 아닌 ‘사회적 필요와 지속성’에 따라 자금을 배분하는 ‘공공 신용 예산제’ 실시를 요구한다. 이에 따라 주식, 파생 상품 등 가상화된 금융 투기 시장을 폐쇄하고, 그 체계적 기반을 사회적 수요 (지방 소멸 방지, 기후 위기 대응, 공공 의료 확충 등)를 추적하는 ‘공공&nbsp;열림망 계획 기반’으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nbsp;  7. ‘현장 계획’의 제도화 (현장·지역·전국·평의회)&nbsp;과거 소비에트 연방 (소련)의 계획 경제는 고위 관료들로 인해 위에서 아래로 생산량을 하달하는 ‘하향식 관료주의 계획’이었다. 이를 막기 위한 정치·구조적 전진 요구가 필요하다.  &nbsp;  · 생산자·구매자 (소비자) 공동 평의회 구성  &nbsp;  개별 사업장의 노동자 평의회와 지역 주민 (소비자) 평의회가 함께하여, 무엇을 얼마나 생산하고 분배할지 현장에서부터 스스로 결정하는 구조를 요구한다.&nbsp;· 기술 계획 (디지털 계획 플랫폼)의 공공화 (공공 통제)&nbsp;  &nbsp;  현대의 발전된 정보 통신 (IT) 기술과 가상화된 특수 체계 기반(플랫폼 인프라)을 활용하여, 전 사회적 수급 현황과 자원 배분 경로를 실시간으로 투명하게 보고 (모니터링)하고 계획할 수 있는 ‘기술 계획 체계’를 요구한다.  &nbsp;  따라서 이러한 요구들은 자본 계급에게는 이윤 창출의 자유를 박탈하는 공격이 되며, 노동 계급에게는 ‘자본가 없이도 우리가 사회 전체의 경제를 더 합리적이고 계획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계급적 자각과 정치적 권력을 확보하는 계기가 된다.  &nbsp;  8. 사유 재산의 독점이 낳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모순과 평의회 민주주의 선거 요구&nbsp;현행 체제가 명목상으로는 모든 국민들에게 표를 주는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함에도, 실제로는 계급적 독점과 자본의 지배로 인해 제한적인 선거 (사실상의 유산 계급 독재)만 실시되고 있다는 지적은 사유 재산 (생산 수단)의 존재와 직결된 필연적인 결과다. 정치적 구조 (국가, 법, 선거 등)가 경제적 토대 (사유 재산과 생산 양식)에 따라 규정된다면, 사유 재산 폐지와 제한적 선거 사이의 연관성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설명된다.  &nbsp;  자본주의 사회의 사유 재산 제도는 소수의 자본 계급이 생산 수단을 독점하고, 대다수의 노동 계급은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자본의 경제적 격차 및 불평등은 선거라는 정치적 영역을 왜곡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분명 1인 1표의 원칙임에도 선거를 치르고 정당을 유지하는 데에는 막대한 자본이 소요된다. 재력에 따른 정치 시장 독점으로 인해 언론 매체 장악, 선거 자금 후원, 전문 조직 (‘싱크탱크’ 등)의 여론 형성 등은 사유 재산을 쥔 자본 계급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결과적으로 선거에 나오는 후보들과 주요 정당들은 자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인물들로 제한되며, 국민들은 ‘어떤 자본가 가문의 대리인을 뽑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제한적 투표에 갇히게 된다.  &nbsp;  따라서 경제적 종속과 투표의 비자유로 인해 생산 수단을 사적 소유한 자본가는 노동자의 생산여탈권 (고용과 해고)을 쥐고 있다. 노동자가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정치적 선택을 하려 할 때, 자본은 ‘투자 철회’, ‘공장 이전’, ‘경제 위기 공포 조성’ 등으로 노동 대중의 정치적 선택을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제한하려 한다. 즉, 직장 문 앞까지만 통용되는 민주주의는 일터 내부의 사유 재산 권력 (독재)으로 인해 무력화된다.  &nbsp;  8-1. 사유 재산 폐지에 따른 정치적·실질적 선거를 해방하는 방식&nbsp;사유 재산을 폐지하고 생산 수단을 사회화한다는 것은 단순히 경제 구조를 바꾸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제한적이고 왜곡된 선거 체제를 인민 전반의 실질적이고 전면적인 민주주의로 전환하는 정치적 도약의 전제가 된다.&nbsp;  &nbsp;  정치와 경제의 분리 해체 (일터의 민주화)   &nbsp;  사유 재산이 폐지되면 생산 수단은 공공의 자산이 된다. 이에 따라 과거 자본가 개인의 독재 영역이었던 일터 (공장, 회사, 플랫폼) 내부에서부터 노동자들이 직접 감독자 (또는 관리자)를 선출하고 생산 계획을 결정하는 선거가 성립된다. 정치가 4-5년에 한 번 투표소에서만 일어나는 행사가 아니라, 생활에서도 경제 활동 전체로 확장된다.&nbsp;계급적 장벽의 소멸과 노동자 후보도 다양화&nbsp;  &nbsp;  자본 축적과 사적 소유가 사라지면 개인이 가진 재산의 크기가 정치적 영향력으로 전환되는 경로가 차단된다. 누구나 자본의 후원 없이도 자신의 정견과 사회적 필요를 바탕으로 선거에 나설 수 있으며, 대표자를 선출하는 기준 또한 ‘누가 자본을 더 잘 유치하는가’가 아니라 ‘누가 사회적 총생산을 더 합리적으로 배분하는가’로 전면 재편된다.&nbsp;8-2. 선진적 노동자 조직, 평의회 민주주의&nbsp;다음으로, 체제 변혁을 주장하는 일각에서 현행 선거를 제한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는, 유산 계급 의회 제도가 생산 현장과 완전히 분리된 파편화된 투표 방식이기 때문이다. 사유 재산 폐지와 함께 요구되는 선진적 선거 체제는 다음과 같다.&nbsp;· ‘생산 단위 기준’ 선출  &nbsp;  지역 기준이 아닌 ‘생산 단위 기준’의 선출로, 거주지 (지역) 중심의 현행 선거는 노동 대중을 파편화 (또는 원자화)시켜 자본의 여론 조작에 취약하게 만든다. 반면 사유 재산이 폐지된 사회의 선거는 노동자들이 매일 모여 토론하는 ‘일터와 생산 단위 (노동자 평의회)’를 기초로 대표를 선출한다. 이는 노동 대중이 대표의 자질을 가장 잘 감시하고 감독할 수 있는 선거 구조다.  &nbsp;  · 상시 소환권과 노동자 임금 지급&nbsp;  &nbsp;  제한적 민주주의 하의 의원들은 당선 후 인민의 통제를 받지 않는 특권 계급이 된다. 사유 재산 폐지 이후의 올바른 계획 경제 체계에서는 선출된 모든 대표자를 유권자들이 언제든 소환하여 직위를 박탈할 수 있으며, 이들에게 지급되는 보수는 숙련 노동자의 평균 임금을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여 정치의 관료화를 원천 차단한다.  &nbsp;  생산 수단의 ‘사유 재산 제도’를 그대로 둔 채 실시하는 선거는 자본의 지배를 여전히 정당화하는 거대한 장식물 (제한적 선거)에 불과하다. 따라서 사유 재산의 폐지는 경제적 잉여의 분배를 바꿀 뿐만 아니라, 유산 계급이 독점해 온 정치 권력을 해체하여 국민 또는 인민 전반이 국가와 경제의 참된 주인이 되는 ‘실질적이고 전면적인 민주주의 선거’를 성립시키는 선결 조건이다.  &nbsp;  9. 국가 관료 독재와 사적 권력 독점을 방지하는 노동자 평의회  &nbsp;  무산 계급 국유화가 ‘연합된 생산자들의 자유로운 공동체’로 나아가지 못하고, 국가 기구와 관료층이 생산 수단을 독점하여 노동자를 지배하는 ‘국가 자본주의’나 관료주의적 소유로 타락하여 부패하는 문제는 역사적으로도 (소련 사례 등) 가장 치열하게 논의되어 온 핵심 과제다. 국가 자체를 유산 계급의 공동 서무를 처리하는 위원회이거나, 계급 대립의 산물로서 소멸해야 할 기구라고 보았다. 따라서 국유화된 통제가 국가만의 일반적 소유로 굳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정치적 구조 내부에서 국가 관료의 권력 독점을 원천 차단하는 강력한 제도적·실천적 안정 장치들이 요구된다.  &nbsp;  9-1. 생산과 계획 (경영)에 대한 ‘노동자 주체 통제’의 전면화&nbsp;가장 본질적인 방지책은 법적인 소유권이 국가에 있더라도, 현장의 실질적인 관리·처분 권한인 ‘점거 (점유)와 통제권’을 노동 계급이 직접 행사하는 것이다. 기존의 국가 관료가 임명한 지배인이 공장을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 노동자들이 직접 선출하는 ‘노동자 평의회’가 자원 배분, 생산량 조절, 노동 조건 결정 등의 실질적인 통제권 (경영권 또는 계획권)을 맡는다. 단, 국가는 이 평의회들의 계획을 조절 (조율)하는 기술적 행정 창구로만 기능해야 한다.&nbsp;계획의 수립 과정에서 국가 기구와 노동자 조직 간의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이는 이중 권력 체제의 유지와 감시를 위함이다. 노동 조합과 노동자 평의회는 국유화 이후에도 국가 기구로부터 독자성을 유지하며, 국가의 행정 명령이 노동자 전체의 요구에 반할 경우 이를 거부하고 언제든 파업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한다.  &nbsp;  9-2. 국가 관료층의 특권화 및 계급화 차단 (아래로부터의 자치 원칙 또는 코뮌의 원칙)&nbsp;국가 계획 기구의 관료, 정치가, 행정 요원들의 보수를 숙련 노동자의 평균 임금 수준으로 제한한다. 이로부터 공직을 단순히 물질적 부를 축적하거나 특권을 누리는 ‘출세의 수단’이 아닌, 사회적 봉사의 영역으로 묶어둔다. 이에 따라 모든 공직자의 공장 노동자 수준 임금화가 실시된다.  &nbsp;  선출되거나 임명된 모든 행정 관료와 계획 담당자가 노동 대중의 의사에 반하는 독단적 결정을 내릴 경우에도, 임기와 상관없이 투표로 즉각 지위를 박탈하고 교체할 수 있는 상시적 통제권을 확립한다. 이는 전면적인 상시 소환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행정 및 계획 업무를 특정 전문가 집단이 독점하지 않도록 교육을 노동 대중화하고, ‘모든 사람이 교대로 관료가 됨에도 아무도 관료가 될 수 없는’ 순환 근무 체계를 지향한다. 이로부터 공직의 순환제 및 관료제가 해체된다.  &nbsp;  9-3. 계획 수립의 정보 독점 타파  &nbsp;  기존 소비에트 방식의 관료주의 계획 경제가 실패한 결정적 원인은 그러한 관료들로 인해 생산 정보 및 사회적 통계를 독점하고 왜곡했기 때문이다. 현대의 고도화된 정보·통신 기술은 이를 기술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계획 수립의 ‘디지털 민주화’와 ‘정보 독점’을 타파하게 된다.&nbsp;&nbsp;· 투명한 계획 체계 확립  &nbsp;  사회적 수치와 기록을 전면 공개하여 전 사회적인 생산 수단의 유동, 원자재 경로, 신용 배분 경로를 국가의 밀실이 아닌, 누구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공 열림망’에 기록한다.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제거하여 관료가 수치를 자의적으로 조작하거나 자원을 사적으로 유용할 여지를 차단한다.&nbsp;· 생산 정보 및 사회적 통계 (공공 열림망) 기반의 배분 체계  &nbsp;  자원의 배분 우선순위를 국가 관료의 탁상공론이 아니라, 지역 평의회와 노동자 (소비자) 평의회가 제기한 구체적 요구 수치들을 대면하거나, 거리상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면 공공 열림망으로 취합하는 방식으로 결정한다.  &nbsp;  9-4. 유산 계급 국가 폐지 단계&nbsp;결국, 궁극적 목표는 국가 권력의 강화가 아니라, 이러한 계급 분화가 점차 사라짐에 따라 억압 기구로서의 기존의 국가 자체가 불필요해져 사멸하는 것이다. 정치적 통치에서 ‘사물의 감독·관리’로의 전환으로, 국가의 기능 중 군대, 경찰, 법원과 같은 계급 억압적 기구를 해체하고, 오직 생산과 분배 계획에 따른 ‘행정적·기술적 관리 기구’로 국가의 성격을 축소시킨다. 유산 계급 국가 기구가 폐지됨에 따라, 무산 계급 국가의 기존 형태 역시 사멸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이 사멸의 수순은 유산 계급의 저항을 무력화하고 무산 계급의 정치적 지배를 관철하는 혁명적 과정이다.   &nbsp;  이에 따라 일국적 수준의 사회주의 국유화는 외부 자본주의 세계와의 경쟁 속에서 필연적으로 국가 권력의 강화를 낳고 내부의 관료화를 부추기므로, 따라서 국내의 노동자 국유화 통제가 국가주의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주변국 및 전 세계 노동 계급과의 단결을 돕고, 변혁의 공간을 국제적으로 확장해야 한다.  &nbsp;  결론적으로, 국가 소유가 국가만의 일반적 소유 (관료 독재)로 변질되는 것을 막는 핵심은 소유권과 통제권의 분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국가가 법적 명의를 갖더라도, 그것을 움직이는 실질적인 손과 머리는 철저하게 현장의 ‘연합된 노동자 평의회’여야만 지배 계급으로서의 국가 관료가 활개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으며, 이후에는 국가가 없이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주체성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김남주 </category><title>식민지 유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203</link><pubDate>Fri, 22 May 2026 22: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203</guid><description><![CDATA[<br>2026. 02. 26.&nbsp;<br> 출판사와 친일 문학   &nbsp;  식민지의 유산이 잔존한다고 했을 때, 그것은 군부 독재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유신 정권하에 정권을 잡은 이들은 정치·경제적 지위까지 독점하며 민주 공화국을 강타했다. 그들은 여전히 20세기의 ‘미시마 유키오’를 동경하며 '이광수' 등과 같은 인물의 ‘식민지 근대화론’을 미화한다. 이와 반대로, 한강 작가 ‘노벨 문학상’ 수상과 같은 쾌거나 귀감을 준 영향력도 있지만, 지금의 출판계 전반의 경영권이 법제화됨에 따라 자본 기업과 결탁되어 관련 작가의 출판 권한을 자본 기업이 결정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착오를 남긴 것이다. 이제는 작가들이 자본의 옹호를 위해 문학의 글쓰기를 대신하고 있다. 이는 식민지 청산의 문제에서 가히 ‘친일’ 행적과 다름없는 식민지적 관점이 자본의 관계에서 가장 유효하다는 말이다. 더불어, 현대 비평의 순수 문학 관점에서 피식민지 국가는 성립할 수가 없게 된다.&nbsp;&nbsp;  &nbsp;  특히 글쓰기 위한 독서 방식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 이를테면 ‘친일’을 추구하여 읽는 것과, 상대를 비판하기 위해 읽는 것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전자가 작가를 염탐하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작가가 남긴 행적을 비판하기 위해 치밀하게 독서하는 것이다. 그러한 인용 및 발췌를 토대로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활용할 여지가 남는다. 예컨대,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읽는다고 했을 때 그러한 주장에 일부 동의하는 것과, 전적으로 파헤쳐 그 모순을 체계적으로 비판한다는 것은 상반된다. 그리고 그러한 독서 행위가 과연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까. 이는 피식민지의 역사를 거친 나라에 해당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식민지 국가 내의 ‘순진한 국민’들이 반드시 거론되어야 하는 ‘역사적 논의’이다.&nbsp;  &nbsp;  이러한 편파성를 두고도 ‘중립’과 ‘평균 이윤’이라는 위치를 고수하는 자본의 시각적 착시야말로 ‘일반화의 오류’에 해당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충분히 ‘민주적’이라는 착각에 호소하며 그 자신이 보수를 대변한다고 믿는다면 그러한 갈피를 상실한 것이다. 하물며 이와 관련된 정치적 협상조차 노동자의 요구를 담아 내지 못한 채 자본가 중심의 협상 구도가 불가피했다는 식의 변명으로 일축한다면 그것을 거부조차 못하여 더 이상 실수가 아니라 이 또한 과오인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죄를 범하고 있다. 특히 민족 문학을 위시하여 주름잡던 백낙청이나 이어령 등과 같은 인물이 군부 독재 시절을 위안 삼아 '창작과 비평'을 통해 부르주아 사회의 큰 거물로 부상한 것은 문학을 팔아 상인이 된 대표적 사례가 아닐까. 적어도, 황석영 작가, 그 자신은 그러한 비평적 견해를 몹시 비판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해묵은 논쟁보다, 오히려 노동자 문학의 실천에 있다. 그것은 곧 이 전반의 모든 것을 포착하여 비판하기를 선택하여 글쓰기를 감행한다는 것이다.&nbsp;  &nbsp;  물론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그러나 과오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소속된 국가가 식민지나 피식민지였는지 정도는 구분할 줄 안다면 과거의 정권을 미화하며 예술마저 ‘상업적 홍보’의 명분으로 정당화시키는 것은 별수없는 것인가. 도대체 이 무슨 염치없는 수작일까. 동일한 부류의 자본가 집단 내 대다수의 경영권을 가진 이들도 사태의 심각성이 전무하다.&nbsp;&nbsp;다음 문장을 살펴보자.&nbsp;이 경우 타인의 미지불 노동을 착취하고 취득하는 행위는 자본 소유자가 마땅히 수취해야 할 임금으로 둔갑한다. 이러한 논리의 극치는 1859년 12월 19일 뉴욕 집회에서 미국 노예 제도 옹호론자인 변호사 오코너가 행한 ‘남부에 정의를’이라는 구호 아래 행한 연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면서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nbsp;‘여러분, 흑인을 노예 상태로 운명 지운 것은 다름아닌 자연입니다. 자연은 그에게 강인한 체력과 노동할 힘을 부여했으나, 정작 그 힘을 다스릴 지능과 일하려는 의지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청중의 박수) 흑인에게는 그 무엇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노동할 의지를 거두어간 자연은 그 대신 그 의지를 강제할 주인을 예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흑인에게 적합한 풍토 속에서 그 자신은 물론 그를 다스리는 주인을 위해 스스로를 유용한 종으로 변모시킬 주인을 점지한 것입니다. 흑인을 자연이 정한 질서 속에 머물게 하는 것, 곧 자신을 관리할 주인을 대면하게 하는 것은 결코 불의가 아닙니다. 그에게 노동을 강제하고 그 과정에서 그를 관리하며 그 자신과 사회에 유용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 주인이 투여한 노동과 재능에 대하여, 주인으로 하여금 정당한 보상을 거두게 하는 것은 결코 흑인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가 아님을 단언하는 바입니다.’&nbsp;[『뉴욕 데일리 트리뷴』1859년 12월 20일자』&nbsp;이 주장은『자본』에서 발췌된 기사 중의 하나이다. 오코너라는 이 미국 변호사는 뉴욕 시에서 ‘남부에 정의’이라는 구호로, 미국 남부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발언을 하여 청중의 박수를 얻었다. 이 발언이 현재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단순히 ‘흑인의 권리’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노예제’와 직결된 경제·역사의 기나긴 계급 투쟁의 역사를 거쳐 온 또 하나의 줄기이자 증거인 셈이다. 문장을 지나칠 때, 이러한 논거의 근거를 자칫하면 발언자의 모호한 주장으로 여겨 정당한 근거로 판단할 수 있다.&nbsp;&nbsp;그러나 분명하게 말한다는 것은 그러한 의도를 판단할 수 없는 상태에서도 온전히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현재의 논란을 부추긴다는 점을 간과한다. 이처럼 이들은 이전부터 ‘흑인을 자연적 힘’으로 규정하고, 동시에 그러한 원리에 따라 주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전제를 대놓고 말한 것이다.&nbsp;&nbsp;피식민지를 언급하기 이전에 막연한 민족 내 인종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가장 큰 핵심은 사회적 요소의 해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러한 경제·역사 분석의 본질이 정치적으로 가닿을 때 의미 있는 것이다. 현상의 외피에만 익숙할수록,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그러한 문제를 간과할 소산이 매우 크다. 과거에도 이들 중에는 ‘친일’이라는 과오를 범한 이들도 있었다. 이는 운동의 전개 과정에서 ‘불가피한 변명’과 허심탄회한 호소로 설득하지만, 실제로 그것의 판단은 피식민지의 노동자들이 겪은 문제에서 가장 크게 드러나며, 이보다 더 심각한 상태를 이어 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부르주아 지식 계급하에서 그 자신이 중간 계급의 위치에 속했음에도 노동자를 배척한 채 자신들의 작가상을 미화했다는 것이 된다. 그것은 곧 ‘노동자는 독서를 하지 않는다.’는 큰 선입견과 편견을 부추기고, 이 부르주아 작가들이 단정하는 '까막눈 노동자'라는 왜곡된 시각을 주입하여 이제는 그러한 노동자 운동의 진행을 가로막는 걸림돌 이상의 존재가 된 것이다.&nbsp;&nbsp;그들은 평생을 자유롭게 인용하고 발췌하여 마르크스·엥겔스의 몇 마디를 소개할 수 있는 충분한 지식인의 권능마저 지녔음에도 정작 자신들이 몸담은 사회 전반의 출판사에 대해 한 마디의 말도 전하지 못한 채 그저 세월을 견뎠다는 ‘정신 승리’를 보여 준 것은 오히려 그쪽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렇게 읽힌다. 그렇다면 지금의 ‘미시마 유키오’ 현상은 그것의 종언으로 읽을 것이 아니라, 고언에 해당된다. 그것은 더 이상 언급조차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일본 비평계의 순진한 가라타니 고진 씨가 그 자신이 『자본』 Ⅰ권의 서론 정도만을 잠깐 읽고는 『자본』을 온전히 읽었다고 말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그것은 존경심이 아니라, 비웃음을 받아야 마땅한 것이 아닌가. 이 지점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김윤식 평론가 역시 그 자신이 큰 과오를 범했다.&nbsp;&nbsp;  &nbsp;  출판 권력의 형성과 경영권 (주주 자본)의 관계&nbsp;군부 독재의 여파로 많은 정치적 이윤을 남기고 있는 정치권 인사 중에서도 그들의 자손들은 대대로 군주의 시녀로 지내거나, 또는 유신의 대장을 역임하고, 또는 민주주의의 우두머리를 지내면서 그러한 최정상이 주는 만족을 자손에게 물려준다. 한국은 &lt;시공사&gt;를 중심으로 형성된 출판사들이 이러한 부르주아 역사관을 정당화시키며 서민들에게 자신들의 '고귀한' 가치를 일러준다. '삼위일체'의 경영권의 중심하에 이들에 대한 부르주아 '교육'을 주입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책의 소비자들은 이러한 자본가들이 현재의 출판 문학계에 거두가 된 출신 배경 따위에는 관심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출판사의 운영도 결국 자본과 결탁되기에 그것은 매주 열리는 주주 총회의 참석만으로도, 임금 노동자들이 겨우 받는 월급의 배가 되는 기업가의 이득을 창출하는 기회가 된다면, 서민들이 남긴 주식의 손해가 결국 경영자들의 손으로, 그리고 그것이 다시 이윤의 약탈 경쟁으로 심화되어 자본가의 독점 형태를 구축하게 된다.  &nbsp;  모든 세계 은행과 더불어 '자신들의 중재 권한'을 법적으로 정당화시키고, 또는 각국의 금융법으로, 심지어 토지 및 사유 재산까지 도구화하여 자신의 소유라고 자부하고 만 것이다. 이제는 부르주아적 정신의 가치를 교육으로 치장하여 문학인들에게 정치적 입장을 수단화시키면서 노동자를 배척하고, 사상계 전반을 연출하여 &lt;교양인&gt;, &lt;문학동네&gt;, &lt;시와서&gt;, &lt;현대문학&gt; 등과 같은 여러 출판사에도 영향력을 미쳐 그들만의 연합하에 막대한 소비 경향을 부추기는 유행을 생산하면서 국내 시장의 상품 소비를 유도하고, 과대 포장된 '책'을 납품하여 결국 자신만의 교육적 목적에 합당한 사례를 주장이라 우기는 책들이 표면화된다. 실제로 1969년 5월 진행된 미시마 유키오와 전공투 논쟁이 남긴 흔적은 일본 작가가 그 자신의 '극우화'라는 일면적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식민지적 파시스트의 부흥을 지지함을 대강단에서 연설한 것에 다름없다. 그들 중 일부가 반발했으며, 그것은 미시마 유키오의 업적으로만 치부되었다. 그러한 논쟁의 여파는 존재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본 작가들의 일부만이 '친한파'라는 말을 내세웠고, 세간의 시선을 무릅쓰고 한국의 식민지적 유산에 대해 자신의 과오를 겨우 인정하였다.&nbsp;  &nbsp;  임종국의 헌신을 새기며  &nbsp;  최근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게 직접 사죄하신 무라오카 다카미스 씨가 별세하셨다. 그는 자신의 선조가 범했던 과오에 대해 책임을 묻고 피해자 분들을 정성스레 모셨다. 그것은 채만식 작가의 모호한 반성과도 비견되는 행보이다. 대부분은 일본 국민마저 이러한 역사적 피해 사실에 대해 자신들의 경제적 수탈 및 약탈 과정과 관련된다는 시각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 쉽게 식민지 근대화 및 개화론에 동화된다. 사람들은 단순히 '민주적 교육'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실상은 모호한 관념이 도배된 채 가치의 역사를 자본가 우두머리를 위한 「헌법」 기초를 토대로 삼아 정신적으로 주입시켰을 뿐이다. 그들은 지금도 언제든 토지와 사유 재산을 옹호할 수 있는 막강한 법적인 관할의 주체적 위치와 막대한 자본, 그리고 경영권을 갖고 있다. 반면, 임종국은 그 자신이 비록 친일 집안이었지만 이러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였다. 비평계에 종사하는 대부분은 저명한 가문 출신이라는 편견이 생겼을 정도로, 이러한 가문과 무관하게 말해야 하지만, 친일을 정말로 비판한다면 적어도 자신이 가진 것을 '선의의 기부'가 아니라, 노동자 국가에 환수하겠다는 지지 의사 정도라도 표명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적 시선'을 신경 쓰느라 소극적인 침묵을 보이는 것은, 그 자신의 명예를 함부로 놓기를 꺼리거나, 여태껏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활동의 종사가 지금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변명에 다름없다. 그리고 외양으로 나타난 현상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나 임종국은 결국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였고, 그것의 의미가 단순히 가문의 행적에도 있지만, 식민지의 과오를 분명하게 짚은 증명인 것이다.  &nbsp;  오늘날&nbsp;'민족문제연구소'의 존재는 단순히&nbsp;「헌법」의 위상 때문이 아니라,&nbsp;바로 그 역사적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nbsp;그래서 문학은 더 이상&nbsp;'순수하지 않은 것이다.'&nbsp;이는 모든 식민지의 국가가 존재하는 한 유효하며 그 반대의 이면에서도 꾸준하게 헌신한 이들에게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nbsp;이제는 반식민지 반봉건 사회가 형성된 기틀을 일본 국민들도 알아야 할 시기이다.&nbsp;문학이란 미국의 증권 거래소를 말하며 기껏 세계 민족의 부르주아 행사를 위한 노벨에게 바치는 것이 아니라,&nbsp;오히려 국제 무대의 가난한 작가들에게 있다.&nbsp;그렇다면 세계 문학을 소비하는 지금의 부르주아 비평가들은 자본 시장의 상인들인 것이다.&nbsp;&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김남주 </category><title>가려가든 가거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98</link><pubDate>Fri, 22 May 2026 22: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98</guid><description><![CDATA[  &nbsp;  2026. 02. 26.&nbsp;<br><br>가려거든 가거라&nbsp;&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우리 진영 안에 있는 소부르주아지에게 주는 노래 -권환&nbsp;<br>소부르주아지들아&nbsp;못나고 비겁한 소부르주아지들아&nbsp;어서 가거라 너희들 나라로&nbsp;환멸의 나라로 타락의 나라로&nbsp;  &nbsp;  소부르주아지들아&nbsp;부르주아의 서자식(庶子息) 프롤레타리아의 적인 소부르주아지들아&nbsp;어서 가거라 네 갈 데로 가거라&nbsp;홍등이 달린 카페로&nbsp;  &nbsp;  따뜻한 너의 집 안방 구석에로&nbsp;부드러운 보금자리 여편네 무릎 위로!&nbsp;그래서 환멸의 나라 속에서&nbsp;달고 단 낮잠이나 자거라&nbsp;  &nbsp;  가거라 가 가 어서!&nbsp;작은 새앙쥐 같은 소부르주아지들아&nbsp;늙은 여우 같은 소부르주아지들아&nbsp;너의 가면 너의 야욕 너의 모든 지식의 껍질을 짊어지고]]></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김남주 </category><title>메아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92</link><pubDate>Fri, 22 May 2026 22:3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92</guid><description><![CDATA[<br>2025. 04. 16.&nbsp;<br>&lt;메아리&gt;  &nbsp;『레닌을 회상하며』  &nbsp;"1906년 5월 24일, &lt;물결&gt;은 폐간됐다. 그러나 이틀 뒤로, 1906년 5월 26일, &lt;전진&gt;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발행했다. &lt;전진&gt;은 1906년, 6월 15일까지 있었다. 1906년, 6월 22일, 볼셰비키 새로운 기관지 신문, &lt;메아리&gt;를 출판할 수 있었다. &lt;메아리&gt;는 1906년, 7월 7일까지 있었다."   &nbsp;예시: 당 기관지, &lt;메아리&gt; 1호.  &nbsp;&nbsp;주제: 마르크스주의와 미학.   &nbsp;자유 기고. 단 적절한 논리를 충실하게 담아낸다.  ]]></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김남주 </category><title>들판에서 휘날리는 불꽃</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87</link><pubDate>Fri, 22 May 2026 22: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87</guid><description><![CDATA[<br>2025. 04. 16.&nbsp;<br>탄핵을 기념하는 촛불이 아니라 시체를 불태울 횃불이 더 필요하다고 느낀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김남주 </category><title>적기를 내걸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86</link><pubDate>Fri, 22 May 2026 22: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86</guid><description><![CDATA[<br>2025. 04. 16.&nbsp;<br>적기를 내걸고.  &nbsp;  빨치산&nbsp;(파르티잔) 역사,&nbsp;  &nbsp;  붉은 깃발을 세운 &lt;게릴라전&gt;처럼,&nbsp;  &nbsp;  <br><br>]]></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그녀에게,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77</link><pubDate>Fri, 22 May 2026 22: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77</guid><description><![CDATA[  &nbsp;  그녀에게, <br> 『자본』이라는 대작을 하나 마쳤습니다. 번역이라기보다 검수에 가까운 또 다른 여정이었습니다. 문득 그대에게 별도로 이 지면의 자리를 빌려 짧은 문구라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몇 년간 잠시 미쳐 있었습니다. 수많은 문자나 연락보다, 그대와 마주했던 찰나의 순간이 저를 버티게 한 유일한 힘이었습니다. 강산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지만,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는 그대 변화마저도 당신이라는 존재 일부는 아닐런지요.&nbsp;&nbsp;  &nbsp;  가끔은 여성의 권리조차 지키지 못하는 제가 무슨 자격이 있나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매일 써 내려가는 글은 결국 부재하는 편지로만 남고 맙니다. 기둥 하나 붙잡고 생사조차 모를 이에게 보내는 이 터무니없는 일에 한숨 짓기도 하지만, 불우하여 우울했던 제 시절은 그대와 인연으로 인해 비로소 의미가 생겼습니다. 예비군 시절에 가끔 힘들 때면 속으로 당신 이름을 크게 불러도 보았습니다. 이마저도 우스운 일입니다.&nbsp;  &nbsp;  결국 그대가 남긴 말처럼, 제가 태어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서울 인파 속에 치이다 보면, 그대와 떨어져 있던 그 모든 시간이 가끔은 '잃어버린 시간'이 됩니다. 한때는 부담스러웠을 일들도 이제는 조금씩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마도 그 잃어버린 시간들이 비로소 그대와 온전해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nbsp;  &nbsp;  세상에는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나 봅니다. 삶을 위해 치열하게 싸우듯이, 안주했더라면 당신과 보낸 시절은 진작 잊혔을지도 모릅니다. 바다를 보며 애태우던 날들과 기도가 부질없음을 깨닫던 그 순간에도, 문득 그대가 떠오르면 언제든 곁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고 싶습니다.&nbsp;  &nbsp;  못다 한 이야기는 그날을 위해 남겨두겠습니다. 기댈 곳 없는 나그네인 줄 알았으나, 가장 낮은 곳의 평민이겠지요. 농담입니다. 그대가 임금 노동이라는 사슬에서도 진정으로 해방되기를 바랍니다.&nbsp;  &nbsp;  2026. 05. 09.]]></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권두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74</link><pubDate>Fri, 22 May 2026 22: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74</guid><description><![CDATA[<br>2026. 05. 02.&nbsp;<br> 5월의 밀실 &nbsp;화물 안에 놓인 칸막이 속에 여기 사람 하나 누워 있다.말을 잃은 사람들의 찰나에도 혈관이라는 줄기가 펴고 있다.땀이 모여 빛의 장관을 이루지만, 밀실의 세상에는,한 어머니는 택배원 아들을 잃었다.&nbsp;굳건하게 자라날 이들은 가벼운 수풀 사이처럼 스치고,뜬 눈으로 눈을 감는다.&nbsp;남을 대신할 사람을 찾으며 숫자에 눈이 먼 광인들은선봉을 잃으며 애틋하게 빈 자리를 채운다.우리는 죽은 노동자. 산 자들의 세상에는 우리가 없다.우리는 배운 것이 없는 사람. 똑똑한 자들에게도 우리가 없다.&nbsp;두 눈에 철심이 박힌 노동자가 까막눈이 될 때조차,상식은 노동자를 버렸다. 저기, 제 앞가림만 밝히는 양복쟁이들은,비천한 것을 잃으며, 자신의 상식을 떠든다.&nbsp;&nbsp;아, 굳건해야만 하는 것이다.힘든 시련을, 모진 인내를, 그리고 고된 땀을 붉은 피로 채우려면,더욱 강인해져야만 하는 일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자본의 도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68</link><pubDate>Fri, 22 May 2026 22: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68</guid><description><![CDATA[<br>2026. 03. 21.&nbsp;<br>자본의 도시 <br>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찾아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온 도시는 화염의 천국이었다.  &nbsp;  문학의 시녀들은 둔하여 자신의 말을 쓸 수 없었고,라스베거스에 펼쳐진 신기루가 마천루를 장밋빛으로 가렸다.그곳은 자신의 조각을 새긴 기풍있는 가문의 벽화를 자랑한다.당신이 영웅이라면 영원한 동상이 될 것이다.  &nbsp;  응답하라. 여기는 포화.시장통에 『성경』이 조각보처럼 찢기고,예언서가 먼지처럼 흩날리며,유러피안이 유토피아를 말한다.&nbsp;&nbsp;카스트로가 죽었고, 미국이 부활했다.재림을 앞세운 군단이 시내를 폭격하며 깔끔하게 정복할 때,파괴된 국민들은 식민지에 환호한다.  &nbsp;  희망은 양면이 없는 동전 던지기.종말의 서막을 앞당긴 화살은 군주로 향하고,폭격기가 터뜨린 잔상은 지배자의 흉터를 남긴다.&nbsp;  &nbsp;  당신은 누구를 응원하는가.]]></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소련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67</link><pubDate>Fri, 22 May 2026 22: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67</guid><description><![CDATA[  &nbsp;  2026. 03. 21.&nbsp;<br><br>소련가   &nbsp;  1977.&nbsp;  &nbsp;  영광 있으랴, 우리의 자유로운 조국이여,&nbsp;민족 단결의 든든한 보루여!&nbsp;레닌의 당은 인민의 힘이며,&nbsp;우리를 공산주의의 승리로 인도하노라!  &nbsp;  폭풍우를 뚫고 자유의 태양은 우리에게 빛났고,&nbsp;위대한 레닌은 우리의 길을 밝혀주었네.&nbsp;그는 인민들을 정의로운 헌신으로 일으켜 세웠고,&nbsp;노동과 투쟁으로 우리를 고취했노라.  &nbsp;  공산주의 사상의 불멸의 승리 속에서&nbsp;우리는 조국의 앞날을 보노라.&nbsp;영광스러운 조국의 붉은 깃발에&nbsp;우리는 언제나 남김없이 헌신하리라!]]></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사조 진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61</link><pubDate>Fri, 22 May 2026 22: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61</guid><description><![CDATA[<br>2025. 08. 30.&nbsp;<br>무산 계급 문화 대혁명  &nbsp;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있어 예술이란, 내용적으로는 시대 정신을 담아내기도 하지만, 그 자신이 특수성을 자꾸만 드러내는 작품일수록, 소모적인 예술일 뿐이다. 물론 잔인한 말이다. 하지만 무산 계급의 공통적인 요구를 담아낸다는 점에서는 작품에서도자꾸만 식민지나 여러 지면으로나, 내용 상의 이유를 들어서, 예술가들에게도 교육을 요구하거나, 정작 작품에 대해 충분히 비판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예술이 아닌 셈이다. 그 판단은 관람하는 독자가 과연 누구에 따라서도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작품을 만든 사람에게는 과연 어떠한 생각으로, 그 대상을 누구에 대한지를 제대로 밝히지 않는다면, 그건 소수를 위한 작품으로 남을 여지도 앞으로는 충분해진다. 저작권을 가지는 출판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차이가 어느 정도냐면, 예전에 중국에서 발생한 '문화 대혁명'과 관련된 배경을 알게 됐을 때, 보이는 반응에서도 충분히 보여질 수 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와 관련된 배경적인 지식과 문제 인물에 대한 의식에 따른 관심도 저절로 생겨나듯이, 특히 예술 작품에서는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점을 밝혀낼 수 있다면, 특히 자본주의에 따른 현대화로부터 잊어버렸거나, 죽어가던 개념도 충분히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되는 예술일수록, 창조보다 파괴가 더 쉽다.    &nbsp;  특히 플레하노프도 훗날 당신이 사회배외주의로 빠지기 이전에도, 일찍부터 마르크스주의 미학에 대한 높은 시각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전 혁명가들은 예술에 대한 관심과 철학적인 조예도 매우 높았고, 훌륭했다. 자국의 뛰어난 문학을 외울 정도로 접했으니, 그 지식을 일찍부터 수용해서 함양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에서는 '문화 대혁명'이 홍위병으로부터 이뤄진 문화재 훼손과 파괴라는 결과를 생기도록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지만, 공산주의 예술에 대한 함양이라는 측면이라는 시각에서 보자면, 기존의 전통적이고, 담론적으로 머물렀던 문화를 새롭게 창시한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과 파급력에 있어서는 또 다른 시각도 충분히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수준은 북조선만큼 이색적이더라도, 질적으로는 한참 낮은 수준으로 보일 따름이다. 물론 인민 예술의 발생을 인위적으로도 막을 수는 없다는 점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현대 예술의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 근대 인상주의, 현대 미술, 추상적인 담론들이라는 관찰된 개념을 지나볼 때도 공통점을 충분히 추론해볼 수 있다. 그것이 매우 계급적인 시각에 있어, 시대적으로, 특히 대중 인민들에게도 더욱 난해해지고, 복잡하게 전개되지는 않았었나. 특히 예술의 현실적인 요구와 맞물려서, 대중 인민들에게 더 어려워졌다는 책임를 지적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래도 국내 문화재에 대한 역사적인 관심과 반환에 대한 요구와 조예도 깊어진만큼, 봉건적인 전통 문화에 비해볼 때면, 그동안 혁명 문화를 수용하지 않았던 결과를 염두하고 있다. 어느 정도는 그 한계가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부르주아지로부터 한정되고 있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히려 수입된 서적들에 더욱 의존하고, 무산 예술가들이 직접 창작한 창조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시각적인 제한만을 오히려 강화하는 방식으로, 또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 대한 배척에서도, 주관적인 감상에 치우친 경향과 비평에만 몰두한 결과를 오래 전부터 지적했지만, 지금은 앞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심히 우려하는 바이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있어 국내 문화는 자본주의와 상업성이 가진 문화적인 개념으로부터 모호하고, 쉽게 침투할 수 있다는 점을 실감한다. 그러나 앞선 예술의 목적에 있어 충분한 인민 대중에 대한 계급 투쟁의 함양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자신들의 시각마저, 주관적인 현상으로만 머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해본다.   &nbsp;무산 혁명의 시금석  &nbsp;  시험 지면에서도 자주 나오는 예술 비평에서, 객관식은 단순히 선택 사항이 아니다. 자신의 계급적인 시각에서도, 예술에 대해 과연 어떻게 바라볼 수 있는가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런 체계적인 미학적 교육을 받지도 못하고, 또 답하지도 못한다면, 그 예술가는 좋은 예술가라 부를 자격도 없으며, 심지어 소수의 입맛을 맞추는 미학적인 운동을 대변하는 주체들도 부상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 증명은 전적으로 자신이 아니라, 만든 사람인 본인에게도 있다. 여기서는 마르크스주의에 있어 계급 예술이란, 바로 예술가의 성취하는 목적이자, 비로소 그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여부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국에서는 현실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안주해서는 해체하기만 하는 예술가들이 더 많아졌다는 말이기도 하므로, 자본주의에 있어서는 반대로도,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만 해서 예술에 대한 정의가 아니라, 그 대상이 누구에게 있었는지를 물을 필요도 있다. 따라서 그들만의 예술이 더욱 저급해지기 전까지는, 더 이상 현실적인 고민 하나 없던 예술에 대해 과연 가난한 예술인지를 부를 수 있었는지도 충분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앞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있어 예술가는 자신의 멋대로가 아니라, 그 고민을 더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면 좋겠다. 모든 인공 지능이 그 영역을 대신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 세상에서, 어쩌면 예술가들에게도 현실에 대한 노력을 더더욱 요구하게 된다. 새로운 예술가라면 충분히 많아졌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우리에게는 정말로 어떤 예술가들이 과연 필요한가. 이에 대해서는 그동안 창작은 없고, 소비만 남은 우리 예술계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시대극이라는 단면</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59</link><pubDate>Fri, 22 May 2026 22: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59</guid><description><![CDATA[<br>2025. 05. 22.&nbsp;<br>시대극이라는 단면.   &nbsp;  영화의 역사:&nbsp;1990-2000]]></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에이젠슈타인, 《10월》을 시청하며,</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07</link><pubDate>Fri, 22 May 2026 22: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07</guid><description><![CDATA[  &nbsp;  에이젠슈타인, 《10월》을 시청하며,   &nbsp;  에이젠슈타인&nbsp;에이젠슈타인 《10월》 (1927)은 1917년 소비에트 10월 혁명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소련 정부의 위촉을 받아 제작된 무성 영화이다. 존 리드,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원작으로 삼아, 2월 혁명부터 임시 정부의 수립, 그리고 볼셰비키 10월 혁명의 전개 과정을 다룬다. 이 작품은 전작인 《전함 포템킨》 (1925)에 이어 혁명 영화로 선정된다.&nbsp;영화는 개별적인 영웅 서사를 배제하고 무산 계급에 초점을 맞춘다. 역사적 사실을 충실히 재현하는 사실적 기법을 사용하면서도 시각 효과를 드러냈다. 《10월》은 10월 혁명 당시 멘셰비키와 임시 정부가 내세운 ‘신과 조국’라는 관념을 폭로하고, 교차 편집했다. 종교적 권위가 이중 권력에 더해 야만적이고 허황된 기만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시각적으로 이끌어낸다. 여기서 임시 정부의 수장 케렌스키는 권력의 정점에 올랐지만, 계단을 오르는 장면 사이에는 기계 장치로 움직이는 ‘화려한 공작새 인형’이 꼬리를 펴는 장면이 있다. 이는 케렌스키의 정치적 성격을 고발한다. 이처럼, 《10월》은 단순한 역사 기록만이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로 어떻게 인간의 계급적 의식을 자극하는 투쟁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증명한다. 당시 혁명적 역동성을 시각적으로 충실히 표현한 걸작으로 평가받는다.&nbsp;에이젠슈타인 외에도, 푸도프킨, 롬, 코진체프 등 소련 영화 사실주의 시기를 이끈 다수 감독들이 존재한다. 특히 에이젠슈타인은 학생들에게 영화 수업 당시 영화 이론을 설명할 때 엥겔스 문학론으로 이끌었으며, 발자크, 『고리오 영감』을 핵심 분석으로 설명하였다. 이는 1956년 파리 영화 작가 제1회 국제 대회 당시 영화 작가의 ‘도덕적 권리’와 ‘창작의 자유’보다 앞선 것으로, 영화를 단순히 예술 작품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요구한 것이 아니라 선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1956년 흐루쇼프의 스탈린 비판 격하 운동 이전의 소비에트보다도 앞선 것이었다.&nbsp;기본적으로, 에이젠슈타인이 활동한 초기 소비에트는 영화 정책으로 조직·선전론이 존재했음에도, 그것이 단순히 선동적인 수준만이 아니라, 교육적 수준으로까지 이끌어왔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은 논리적 단계와 구체적인 역사적 관계에서도 실천했다는 점이다. 이는 에이젠슈타인이 활동한 국립영화대학 (VGIK) 강의에서도 강조한 바 있다.&nbsp;소련 영화사&nbsp;레닌이 1919년 8월 27일에 서명하여 소련 영화사의 공식적인 출발점으로 기록된 법령으로는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 (RSFSR) 인민 위원회의 「사진 및 영화 산업의 국가 이관에 관한 법령」이 있으며, 흔히 「영화 국유화 법령」이라 불리는 법령이다. 해당 조치는 민간이 소유하고 있던 영화 통상 및 산업 전반의 주권을 노동자·농민의 국가로 강제 귀속시킨 유물론적 조치였다. 레닌은 교육 인민 위원회의 관할인 크룹스카야와 함께 모든 사진 및 영화 무역, 영화 기자재 생산, 그리고 전국의 극장 체계를 교육 인민 위원회의 직속 관할로 이관했다. 당시 룬차르스키가 이끌고 있었으며, 실질적인 영화 행정의 관리와 검열 기틀도 레닌 아내인 크룹스카야가 주도했다.&nbsp;법령은 1919년에 공표되었으나, ‘소련 영화의 탄생’은 1920년대 초로, 이는 ‘전시 공산주의’ 시절이었기에, 물질적 파탄으로 인해 영화를 찍을 생지 (필름), 카메라, 현상액 등과 같은 원자재 역시 완전히 고갈된 상태였다. 대다수의 극장은 전력난으로 문을 닫았고, 기존 영화인들은 망명길에 올랐다. 이 시기 국가가 생산할 수 있었던 것은 선전용 단편인 ‘아지트카’나 뉴스릴 (뉴스 영화)에 불과했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 정책 (NEP) 시행 이후, 생산 수단이 1921년 부로 복구되면서 영화 산업에도 숨통이 트였다. 필름 수입과 극장 재개장으로 재정이 확보되었고, 1922년 법령을 개정·보완하면서 국영 영화사인 ‘고스키노’ 등이 설립되어 물질적 토대가 정비되었다.&nbsp;법령 서명 (1919년)은 선언적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내전이 끝나고 재정·기자재 등 물질적 기반을 마련하면서 1920년대 초중반에 이르러서야 에이젠슈타인, 푸도프킨, 베르토프 등이 활동하며 ‘소비에트 영화’를 성취할 수 있었다. 배급사는 《모스 필름》으로 모스크바에 위치한 대형 규모를 자랑하는 국영 영화 제작사 겸 배급사이다. 해당 배급사는 1919년 「영화 국유화 법령」과도 닿아 있는 역사적 산물이다. 1920년대 초, 국유화된 민간 영화 제작사 한존코프와 몰리에프의 촬영 시설이 소비에트 기구로 들어가면서 기틀이 마련되었다.&nbsp;앞서 《10월》은 ‘사회주의 사실주의’ (또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기반한다고 평가되지만, 실제로는 정착된 사상이 아닌 혁명적 사실주의에 가깝게 실천하여 표현되었다. 당시 소비에트 영화들도 현재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nbsp;따라서 이 지점에서 알 수 있는 소비에트 영화의 역사적 특징을 세 가지로 나누어 서술한다.&nbsp;1. 소비에트 탄생&nbsp;관련 문헌에서는 지역 및 공장 노동자 대표자 협의회 (소비에트)에서 장차 수립될 기구의 보이기 시작하고 혁명의 날이 다가오던 바로 그 시점을 소비에트 영화 역사의 발전 기점으로 명시한다. 이는 소비에트 영화의 역사가 1917년 10월 권력 장악 이후 단순히 국가의 지시에 따라 사후적으로 급조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노동자·농민 자치 권력 기구인 소비에트가 먼저 형성되고 확대되는 정치적·계급적 하부의 성장과 피할 수 없이 맞물려 자라나기 시작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nbsp;2. 전위 (프롤레트쿨트) 조직과 볼셰비키 지도부&nbsp;1917년 9월, 상점 공장 위원회의 중앙 협의회가 주도하여 사회주의와 무산 계급 이념을 논의하기 위해 소집한 노동자 교육 조직들의 회담은 역사적으로 장차 소련 초기 예술 운동을 주도하게 될 프롤레트쿨트 (이하 무산 계급 전위 조직)의 최초 집회였다. 볼셰비키 핵심 지도부가 직접 참석하면서, 이 최초의 모임에는 국영 영화 행정의 교육 인민 위원에 루나차르스키, 칼리닌, 사모일로프 등 볼셰비키 중앙 인사들이 직접 출석했다. 이는 볼셰비키 정권이 수립되기도 전인 당대 혁명 전야부터, 당의 최고위 정치 지도자들이 노동 계급의 조직화와 사상 투쟁 역시 당의 핵심 전략적 과제로 직접 선도하여 조직했음을 입증한다.&nbsp;3. 혁명 전야 결의안과 ‘영화 제도적·정책적 정체성’ 선제 확립&nbsp;이 모임에서 수많은 현재의 논의들은 공식적인 ‘결의 서한’으로 작성되었으며, 이 결의안 내에는 이미 ‘영화에 관한 구체적인 항목’이 독립적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혁명 발발 전인 1917년 9월에 이미 노동자 결의안에 영화도 포함되었다. 볼셰비키와 무산 계급 조직들이 영화를 자본주의적 오락이나 단순한 시각 예술로만 단정하지 않았음을 뜻한다. 이들은 영화를 무산 계급 이념을 전파하고 인민을 교육할 수 있는 ‘제도적 선전·교육 매체’로 명확히 규정하고, 혁명 정부 수립 이전부터 이미 이를 정책적 기획의 범주에도 넣어 준비하고 있었다. 따라서 역사적 결론에 따른 이 지점에서 도출되는 소비에트 영화의 특징은, 소비에트 영화가 혁명 이후 단순히 우연히 탄생한 예술이 아니라, 1917년 10월 혁명 직전 볼셰비키 지도부 (루나차르스키 등)와 노동 계급 조직이 결성한 최초의 전위 조직에서 이미 제도적·정책적 결의안의 핵심 항목으로 선제 채택되어 정권 수립과 동시에 출범할 수 있도록 철저히 기획된 정치적·조직적 산물이었다는 점이다.&nbsp;《10월》&nbsp;영화 《10월》은 단순히 겨울 궁전을 습격하는 물리적 폭력만을 다루지 않는다. 에이젠슈타인은 공장, 거리, 그리고 전선에서 노동자와 병사들이 계급적 각성을 이루며 치열하게 논쟁하는 ‘정치적 토론’을 매우 비중 있게 다루었다. 이는 혁명적 사건을 재현하면서, 영화 구조의 총체성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상기한다. 이에 따라 영화 내 케렌스키를 폭로하는 방식에는 그의 정치적 본질을 단순히 비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실상에 대한 사실로 다룬다. 특히 영화 후반부, 임시 정부를 사수하기 위해 겨울 궁전에 배치된 유산 계급 출신의 여성 군대는 단순히 무자비한 적군으로만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혁명 앞에 결국 자신들의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는 장면으로, 그러한 체제 아래에 종속된 여성의 입체적인 모습도 다룬다. 영화 속 케렌스키 (임시 정부 수반)는 그의 정치적 성격과 마찬가지로, 이중적인 모습이며 ‘최정점의 장면에서 제자리걸음을 하지만,’ 그가 계단을 오르는 동일한 장면을 기계적으로 수없이 반복한다. 실제 시간선으로는 이미 꼭대기에 도달했어야 하지만, 케렌스키는 끊없이 계단을 오르며 ‘역사의 정체이자 퇴행’이라는 시각적 구조를 드러낸다.&nbsp;&nbsp;케렌스키는 웅장한 겨울궁정 문 앞에 서서 거드름을 피우거나, 나폴레옹 동상처럼 한쪽 손을 군복 상의에 집어넣는 특유의 자세를 취한다. 그러나 그가 당당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거대한 황제의 문과 조각상들 사이에 낀 그가 얼마나 작고 초라한 ‘정치적 인간’에 불과한지를 포착한다. 혁명의 열기가 거세질수록 케렌스키는 집무실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 본모습이 드러나지만, 볼셰비키는 완벽하게 절제되고 조직적이다. 볼셰비키 노동자들의 집단적 움직임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체제의 몰락을 예견한다.&nbsp;이처럼, 케렌스키가 거만하게 문을 열고 들어서거나 훈장을 자랑할 때, 앞서 에이젠슈타인은 이 장면에 태엽 장치로 꼬리를 활작 펴는 ‘화려한 황금 공작새 인형’의 장면을 교차 편집했다. 이 장면으로, 케렌스키를 내실은 없고 ‘겉만 번지지르한 기계 인형과 같은 인물’임을 시각적으로 구성하였다. 단순히 ‘악인’으로 박제된 것이 아니라, 반복 편집에 따른 운동 거부와 기계적 충돌, 압도적 왜소화로 정교한 허영 가득한 인물로 완전히 해체시킨다.&nbsp;마야코프스키가 이전에 지적한 대로, ‘영화는 연극을 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연극, 배우의 예술에 문을 열어줄 것’이라 예견했다. 이처럼 무대 예술은 단순히 모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신체로 표현할 수 있는 운동과 발성, 그리고 역동성을 증명한다.&nbsp;또한 1917년 4월 3일, 레닌이 독일 정부가 주선한 열차를 타고 망명지에서 돌아와 페트로그라드의 핀란드역에 도착했던 역사의 결정적 순간 (망명 환국)과, 그것을 기록하려 했던 당대 촬영 장비들의 물리적 한계를 증언도 있다. 당시 현장에 파견되었음에도, 기차 연착과 야간의 어둠이라는 물질적·기술적 한계 (당시 필름의 낮은 감도와 야간 조명 장비의 부재 등)로 인해 레닌의 도착과 장갑차 위에서의 연설을 단 한 장면도 촬영하지 못했다. 에이젠슈타인 《10월》은 ‘기록의 부재’를 딛고 10년의 세월 이후 영화적 기법으로 되살린다. 당시 유럽의 영국과 프랑스 대사가 레닌을 경고하는 각서를 제출하고, 외무부 차관은 신문으로 레닌을 ‘독일의 첩자’로 몰아세우는 등 중상모략을 폈음에도, 당시 핀란드역 광장은 인민들로 가득찼다.&nbsp;1917년 4월 3일, 레닌이 핀란드역에 도착했을 당시,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기에, 스위스에서 망명 중이던 레닌과 볼셰비키 일행은 러시아를 전쟁에서 이탈시키려는 목적을 가진 독일 정부의 전술적 협조를 얻어 열차를 타고 러시아 경내로 진입했다.&nbsp;당시 영국과 프랑스 대사는 러시아 임시 정부 외무 장관에게 레닌의 귀국에 대해 강력한 경고 각서를 제출했다. 임시 정부 외무부 차관 역시 관제 언론으로 레닌에 대해 ‘독일 정부의 호의를 받은 첩자’이자 ‘배신자’로 규정하며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중상모략 기사를 대대적으로 유포했다. 유산 계급 언론의 대대적인 반대 선전에도, 임시 정부의 전쟁 지속 정책과 식량난을 참을 수 없던 페트로그라드의 노동자, 병사, 수병 등 수만 명은 볼세비키 조직의 주도하에 핀란드역 광장에 집결하여 결국 레닌을 환영했다.&nbsp;이처럼, 1917년 당일 밤에 촬영이 실패했던 해당 장면은 국영 영화로 상영되기까지 ‘10년’이라는 물리적 세월이 걸렸다. 이 10년은 소련이 내전 (1918-1922)을 종식하고, 새로운 경제 정책 (NEP)으로 영화 촬영 재정과 야간 조명, 고감도 필름 등 기술적 생산 수단을 복구하는 데 걸린 필수적인 기간이었다.&nbsp;1927년, 소련 정부는 10월 혁명 10주년을 기념하는 국책 사업의 일환으로 에이젠슈타인에게 《10월》 제작을 위촉했다. 에이젠슈타인은 1917년 당일 밤 볼찬스키 분과가 촬영하지 못해 10년간 공백으로 비어 있던 ‘핀란드역 도착과 장갑차 연설’을 당대 생존자들의 증언과 사료를 바탕으로 현장에서 완전히 재현해 냈다. 따라서 《10월》은 1917년 당대 촬영 기술의 낙후성으로 인해 유실되었던 레닌이 귀국한 역사적 실재와 물증을 10년 후 복구된 소련의 기술력을 동원하여 중대한 역사적 기록의 중요성을 지닌다.&nbsp;그렇다면 제시된 1917년 10월 혁명 직전의 일지들과 볼셰비키 권력 장악 과정은 에이젠슈타인 영화 《10월》 (1928)의 중후반부를 구성하는 가장 핵심적인 역사적 서서의 뼈대이자 실재했던 물증들이다. 투쟁 전야에 열린 ‘프롤레트쿨트 (전위) 모임’에서 무산 계급 영화의 혁명적 역할이 사전에 기획되었다. 에이젠슈타인은 영화 초반부터 임시 정부를 옹호하는 유산 계급 및 관제 언론의 중상모략을 보여준 뒤, 이와 완전히 대조되는 공장과 전선 노동자·병사들의 치열한 토론 장면을 배치했다. 이는 유산 계급적 유흥으로서의 영화·예술 산업을 배격하고, 계급 투쟁의 역사를 시각적 영화로 드러낸다.&nbsp;10월 10일, 레닌 참석 하에 무장 봉기가 결정되고, 12일 군사혁명위원회가 구성되었으며, 15일 각지 소비에트가 권력 이양을 찬성했다. 이에 맞서 임서 정부는 7월 시위 관련 볼셰비키들을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영화 내 장면으로는 임시 정부 수장 케렌스키의 독단적인 체포령과 군사 행동 지시, 그리고 이에 대응하여 지하에서 은밀하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볼셰비키 군사혁명위원회의 조직 단계를 교차 편집으로 보여준다. 각 도시의 소비에트가 권력 이양에 찬성하는 모습도 장면으로 재현된다.&nbsp;10월 24일, 임시 정부는 무장 봉기를 저지하기 위해 군사 학교 사관생도들을 동원하고, 노동자 구역과 중심지를 차단하기 위해 페트로그라드의 모든 교량 (다리)을 폐쇄·인양했으며, 소비에트와의 전신 연락을 차단했다. 영화 내 장면에서는 임시 정부의 명령으로 페트로그라드의 거대한 교량들이 위로 두 갈래로 갈라져 열리는 장면이 등장한다. 에이젠슈타인은 이때 다리 위에 쓰러진 노동자의 시신과 죽은 말, 그리고 인양되는 다리 틈새로 강물에 떨어지는 무산 계급 신문의 장면들을 배치하여, 임시 정부가 노동 계급을 물리적으로 격리하고 탄압하려 했던 10월 24일의 역사적 실재를 강력하게 고발했다.&nbsp;10월 22일, 소비에트의 명령으로 출항 보류 조치를 철회했던 순양함 오로라호는 24일 군사혁명위원회로부터 전술적 핵심지인 네바강으로 진입하여 닻을 내리라는 명확한 작전 명령을 접수하고 공세에 동참했다. 영화 내 후반부에는 거대한 순양함 오로라호가 네바강의 어둠을 지나 육중하게 진입하여 겨울 궁전을 향해 정조준하며 닻을 내리는 역사적 장면이 존재한다. 이는 실제 오로라호 군함과 수병들이 혁명의 물적 강제력으로 작용했던 사실을 그대로 시각화한 것이다.&nbsp;10월 24일, 변장을 한 레닌은 혁명 사령부인 스몰니 연구소에 무사히 도착하면서 군사혁명위원회 공세는 결정적인 사령탑을 얻고 밤샘 봉기로 직행했다. 무장한 노동자들과 군사혁명위원회 대원들이 스몰니 연구소 복도를 가득 메우고 긴박하게 명령서를 주고받는 전화 (전쟁의 불길)의 사령부 내부가 사실적으로 드러난다. 밤늦게 도착한 레닌과 함께, 겨울 궁전 함락 총공세의 신호탄이 떨어지기 직전의 역사적 긴장이 스몰니 연구소 장면 속에 그대로 보존되어 존재한다.&nbsp;결국, 1917년 2월 혁명으로 인해 차르 제정이 붕괴되었고, 식량 배급에 분노한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가 군대의 동조로 이어지면서 로마노프 왕조의 차르 니콜라이 2세가 퇴위했다. 영화 내에서는 인민들이 차르의 거대한 동상을 밧줄로 묶어 땅바닥으로 끌어내려 산산조각 낸다. 이는 봉건제 권력의 물리적 파괴라는 역사적 선언이다.&nbsp;1917년 3-7월에는 차르 퇴위 후 유산 계급 중심의 임시 정부 (케렌스키 주도)가 들어섰으나, 인민의 요구인 ‘빵과 평화’마저 거부하고 제1차 세계대전을 지속 강행했다. 영화 내에서는 케렌스키가 차르의 겨울 궁전 계단을 끝없이 올라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권력을 시각화하고, 전선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의 시신과 기계 부속품을 교차하여 임시 정부의 전쟁 범죄를 폭로한다.&nbsp;1917년 7월, 임시 정부의 전쟁 지속에 결국 분노한 노동자와 병사들이 페트로그라드에서 대규모 무장 시위를 벌였으나, 임시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이를 유혈 진압하고 볼셰비키를 불법화했다. 영화 내에서는 임시 정부의 명령으로 페트로그라드의 다리들이 일제히 들어 올려지며 노동자 구역이 고립되는 7월 4일의 유혈 진압 순간을 가장 정밀하게 구현했다. 다리 틈새로 늘어진 죽은 말과 강물로 빠지는 노동자들의 선전물은 당대 진압의 물증이다.&nbsp;1917년 8월, 코르닐로프 장군의 반동 군사 쿠데타가 발발했고, 군부의 총사령관 코르닐로프가 혁명 세력을 전멸시키기 위해 페트로그라드로 군대를 진격시켰다. 케렌스키 정부는 무능했고, 결국 볼셰비키 적위대가 전면에 나서 적을 설득하고 철도를 차단해 쿠데타를 무혈 저지했다. 영화 내에서는 코르닐로프의 군대가 진격하는 장면에 나폴레옹 조각상과 종교적 우상들을 배치하여 제정 부활을 노린 반동 세력의 본질을 폭로하고, 볼셰비키 노동자들이 전선에서 적군 병사들을 계급적으로 설득해 반동을 무력화시킨 과정을 담았다.&nbsp;1917년&nbsp;10월&nbsp;24-25일,&nbsp;군사혁명위원회의 지휘 아래 적위대와 수병들이 전신국,&nbsp;기차역 등 핵심 보루를 장악했다. 10월&nbsp;25일 밤&nbsp;9시&nbsp;40분,&nbsp;순양함 오로라호의 공포탄 신호와 함께 임시 정부의 마지막 거점인 겨울 궁전에 대한 총공세가 감행되어 각료들이 체포되었다.&nbsp;영화 내에서는 실제 역사적 장소인 겨울 궁전 내부와 광장에서 수천 명의 실제 적위대 생존자들을 동원해 궁전의 거대한 철문을 지나 진입하는 함락의 순간을 담았다.&nbsp;이는 제2차 전 소비에트 대회에서 레닌이&nbsp;‘노동자·농민 혁명을 완수했다.’라고 선언하는 장면으로 귀결된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존 리드,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읽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05</link><pubDate>Fri, 22 May 2026 21:5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105</guid><description><![CDATA[  &nbsp;  존 리드, 『세계를 뒤흔든 열흘』을 읽고, <br> 볼셰비키: 평의회 다수파의 부상  &nbsp;  존 리드, 『세계를 뒤흔든 열흘』 미국 출신 기자가 본 러시아 혁명으로, 20세기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두 차례의 혁명을 겪었다. 니콜라이 2세를 퇴위시킨 2월 혁명과 임시 정부를 전복시킨 10월 혁명이 그것이다. 미국의 기자 존 리드는 2월 혁명 소식을 접한 후 급히 러시아로 향했고, 이 과정에서 10월 혁명의 전조와 진행 과정을 밀착 취재하여 기록을 남겼다.&nbsp;그의 『세계를 뒤흔든 열흘』은 레닌이 ‘러시아 혁명의 전개를 폭로한 책’이라며 노동자들에게 직접 추천했다. 이 책은 1917년 10월 혁명 (구력 10월, 신력 11월) 전후 열흘간의 급박한 과정을 집중적으로 다루기에, 당시 러시아 권력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nbsp;1917년 2월 혁명으로 로마노프 왕조와 기존 봉건제가 무너진 후, 러시아는 사회는 두 개의 권력이 대립하는 이중 권력 상태에 놓였다. 하나는 케렌스키가 주도하는 임시 정부였다. 자유주의 자본가들과 온건 사회주의자들로 구성된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의 지속을 주장했다. 다른 하나는 노동자와 군인들의 자치적 평의회 기구인 소비에트였다. 소비에트는 ‘모든 권력을 평의회로!’라는 핵심 구호를 내세우며 인민들의 실질적인 지지를 받았다.&nbsp;혁명 세력 내부에서도 노선 차이로 인한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레닌과 트로츠키가 이끄는 다수파인 볼셰비키는 타협 없는 즉각적인 무산 계급 혁명과 전쟁 중단을 선언했다. 반면 맨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중심의 온건파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가 여전히 전쟁 중이며 사회주의 혁명을 완수하기에는 미숙하다는 판단하에, 전쟁을 지속하려는 임시 정부와 협력하는 길을 택했다.&nbsp;이러한 격동의 상황 속에서 존 리드는 권력자들의 연설에만 주목하지 않았다. 참호 속의 군인, 공장의 노동자, 거리의 전차 운전수들이 나누는 말까지 집요하게 기록하며, 지배 계급이 무너지는 순간 인민의 의식이 어떻게 혁명적으로 변모하는지 추적했다. 혁명은 단순히 무력 충돌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볼셰비키 총사령부였던 스몰니와 시의회인 두마 등에서 밤새도록 이어진 정파 간의 대대적인 토론, 연설, 소책자 전쟁으로 권력의 정당성이 이동하는 과정은 이를 증명한다. 저자는 이 모든 역동성을 철저한 계급적 관점으로 직시했다.&nbsp;러시아의 경제적·군사적 혼란은 1917년 11월 7일에 갑작스럽게 분출된 것이 아니다. 이미 1915년부터 시작된 경제 붕괴와 전선의 무기 부족, 대규모 후퇴, 식량 부족, 그리고 1916년의 제조업 및 수송업 마비는 차르 궁정의 부패한 반동 세력이 독일과 독자적인 평화 조약을 맺기 위해 고의적으로 감행한 사부타주 공작의 결과였다. 인민들은 이 파괴적 행위를 3월 혁명 (2월 혁명)으로 저지했다. 이 과정에서 당시 재산을 소유한 유산 계급은 차르의 권력을 빼앗아 자신들이 주도하는 프랑스·미국식 입헌 공화국이나 영국식 입헌 군주제를 수립하고자 갈망했으나, 인민들이 바라는 것은 진정한 사업 및 농업 민주제였다.&nbsp;러시아 노동자들이 폭력적이라는 당대의 비난에 대해 존 리드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혁명적이었으나 결코 폭력적이거나 독단적이지 않았으며,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실제 바리케이드를 구축하고 자본 계급과 끝까지 싸울 준비를 마친 주체였다.’ 인민들은 한 폭군을 자본가라는 다른 폭군으로 대체하는 불확실한 특권을 위해 목숨을 바치거나 투옥·추방의 위험을 더 이상 감수하려 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외세와의 전쟁이라는 위기 속에서도 정치 혁명과 사회 혁명이 태동했고, ‘다수파’인 볼셰비키가 승리를 거두었다.&nbsp;레닌을 인민 위원장 (의회장)으로, 트로츠키를 외무 인민 위원 (외무장관)으로 하는 내각의 구성은 3월 혁명 직후부터 필연적으로 성장한 결과였다. 당시 서구 사회는 러시아 노동자들의 이러한 ‘무지’를 비난했으나, 정작 이들은 1,200만 명이 넘는 협동 조합을 안정적으로 운영했고 평의회 체제를 스스로 구축할 만큼 뛰어난 조직력과 역량을 증명했다. 혁명적 이론과 실천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고도로 단련된 주체였던 셈이다.&nbsp;물론 볼셰비키 앞에는 케렌스키 임시 정부, 코르닐로프 반란과, 두마 의회와의 등 온갖 적들과 난제가 산적해 있었다. 혁명가들이 의회 투쟁을 감행하는 과정에서 유산 계급의 조직적인 사보타주도 잇따랐다. 그들은 소비에트를 무너뜨리기 위해 교통 체계를 마비시키고 내부 소요를 조장했으며, 공장 위원회를 탄압하고자 공장을 폐쇄하고 연료와 원자재를 빼돌렸다. 전선에서는 군 위원회를 와해시키기 위해 군사적 패배마저 묵인했다. 그러나 이러한 반동적 책동은 오히려 볼셰비키의 계급 투쟁과 소비에트 수립에 정당성을 실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nbsp;반면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같은 온건 사회주의 파벌들은 러시아가 사회 혁명을 수용하기에는 경제적·교육적 여건이 여전히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무리한 권력 장악이 구체제의 복원을 부르는 반동을 초래할까 두려워 권력 행사를 기피했다. 러시아가 서구식 의회 국가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믿는 이들은 유산 계급과의 협력을 요구하며 자본가들의 요구에 맞춰 자신들의 강령을 양보했다. 온건 사회주의자들은 유산 계급을 필요로 했으나 정작 유산 계급은 그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고, 결국 볼셰비키가 허울뿐인 타협을 뒤짚었을 때 온건 사회주의자들은 재산 소유 계급인 유산 계급의 편에 서서 혁명에 반발했다. 존 리드는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반복되는 ‘일반적’ 현상임을 지적한다.&nbsp;결과적으로 볼셰비키는 단순히 파괴적 폭도 세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당시 러시아에서 유일하게 건설적인 강령을 지니고 이를 실현할 조직적 힘을 갖춘 정당이었다. 그들이 제때 정권을 잡지 못했다면, 12월에 독일 제국군이 페트로그라드와 모스크바에 주둔하며 러시아는 다시 차르의 전제 지배 아래 신음했을 것이다. 혁명 정부 수립 후 1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유산 계급은 이를 ‘모험주의적 경향’이라 폄했으나, 볼셰비키는 이미 대농장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할 체계, 노동자가 산업을 통제할 공장·작업장 위원회와 노동 조합, 그리고 지방 행정을 담당할 전국의 노동자·병사·농민 대표 평의회 (소비에트) 구조를 완비해 두고 있었다.&nbsp;이처럼,&nbsp;볼셰비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 있으나,&nbsp;러시아 혁명이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사건이자 보편적인 세계적 현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nbsp;존 리드는 미국 출신의 기자라는 한계를 도약하여 철저한 현장 취재로 당시 러시아에 고조된 혁명을 깊이 이해했으며,&nbsp;이는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평의회&nbsp;(소비에트)가 지닌 본연의 역사적 해방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길잡이를 제공한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바르뷔스,『포화』를 읽고</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99</link><pubDate>Fri, 22 May 2026 21: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99</guid><description><![CDATA[  &nbsp;  바르뷔스,『포화』를 읽고 <br> 낙원의 그림자  &nbsp;  노동 문학이란 노동자를 위한 문학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문학은 단순히 비평적 묘사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노동 문학의 서술자가 노동 현장에 종사하더라도 고도의 예술적 성취가 목적이 아닌 노동 계급의 해방이라는 목적에 가장 부합해야 한다. 현대 문학이 소수의 예술로만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반면에, 노동 문학에서 문학의 성취는 노동자로부터 비로소 완성될 뿐이다. 그 묘사의 표현은 작가 자신의 주관적 한계가 있더라도, 그 내용의 서술에 있어서는 객관적인 서술 역시 요구된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읽을 시간도 없이 바쁘며, 노동 계급을 대변하여 발언할 수 있는 언어조차 제한된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그런 점에서 바르뷔스의 『포화』는 상당 부분 전쟁 문학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 주체 역시 노동자에게 있다는 점에서 노동 문학으로 읽을 수 있다.&nbsp;  &nbsp;  레닌은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하여』(1916-1917), 『제3인터내셔널의 과업』(1919)에서 바르뷔스의 『포화』에 대해 거론한다. 그는 상당 부문 당대의 자국 문학만이 아니라 국제 문학까지 두루 틈내어 읽었다는 점에서, 이러한 비평적 고찰의 수준에 머무는 것이 아닌, 실질적으로 노동자가 당면한 혁명적 과제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하면서 거론된다. 이 소설이 다른 전쟁 문학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병사의 참혹한 전쟁의 실상을 단순히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전투원으로 참가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세계 대전에 참전하게 된 프랑스의 '베르트랑' 보병 분대의 일화를 담아낸다.&nbsp;  &nbsp;  이 분대원들은 참호 속에서 오랜 전쟁 기간 동안 자신들이 전쟁을 벌이는 목적에 대해 자문하기 시작한다. 그 과정은 단순히 민족 간의 갈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닌 지배 계급으로부터 희생되는 피지배 계급의 위치를 서서히 자각하기 시작하는 과정에서 서술된다. 주 배경은 프랑스의 북부 및 북동부 인근 참호 전선으로, 이곳에서 가장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 이 전선의 참호 속에서 분대원들은 전쟁의 무자비한 전개만이 아니라 이마저도 단조로운 반복으로 적응하게 되는 고도화된 전쟁의 성격을 부각시킨다. 이곳에서 시체와 부상자들에 대한 목도는 정점에 달한다. 이들은 프랑스군이지만, 적진인 독일군 상대 역시 단순히 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닌 지배 계급을 위한 전쟁임을 암시한다. 그런 점에서 단순히 전쟁 문학이 아니라 계급 문학이라 부를 수도 있다. 어떤 이유로든, 이러한 원수를 생산하는 대부분의 전쟁은 지배 계급을 공고하게 유지하기 위한 토대가 된다. 프랑스군의 분대장 베르트랑은 독일인인 칼 리프크네히트에게 응답이라도 보내듯이, '이 전쟁 위로 우뚝 솟은 리프크네히트'를 부르며, 독일의 전쟁 공채 선언에 유일한 반대를 던진 자각으로, 이 소설의 서사 주체가 병사인 노동자에게 있음을 드러낸다.  &nbsp;  전쟁의 성격을 민족 간의 갈등이 아닌 본질적인 계급 간의 문제로 묘사한『포화』는 이 전쟁의 장본인에 대한 진정한 성격을 자문하고 투쟁 대상을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비록 이 소설은 두 국가 간의 전쟁을 묘사했지만 병사이자 노동자의 관점 역시 명료하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신부의 세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97</link><pubDate>Fri, 22 May 2026 21: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97</guid><description><![CDATA[<br>2025. 11. 03.&nbsp;<br> 결혼이라는 전쟁과 평화  &nbsp;  톨스토이,『전쟁과 평화』를 애독할 때마다, 극 중 볼콘스키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된다. 두 남자를 사이에 둔 여인의 구도만큼 비극적인 서사는 없기 때문이다. 그는 러시아 제국의 참전 용사로, 자신의 온갖 감정을 전장에서 치렀다. 결말부는 베주코프와 로스토바가 맺어지지만, 이러한 구도는『안나 카레니나』에서 두 인물 사이의 갈등이 초래하는 자살과는 또 다른 비극적 의미를 지닌다.&nbsp;<br>이처럼, 경쟁은 비단 이성 간의 관계를 넘어선 전기·화학적 현상처럼 다가온다. 서로가 같은 사람에게 매력을 느낄 때, 동시에 감정에 빠지는 일은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한다. 특히 나타샤 로스토바나 안나 카레니나처럼 매력적인 인물이라면 그러한 양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는 인간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죽음을 맞이한다는 의미를 지닌다.&nbsp;  &nbsp;  필자 또한 마음속으로 결혼하고 싶은 상대가 있었지만, 어떠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섣부른 판단을 내렸다. 연애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그러한 매력을 넘어서 살아야 한다는 의미가 생긴다면, 그것은 서로에 대한 서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교훈적인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진정한 신랑과 같은 인물은 볼콘스키처럼 용기 있는 사람일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삶에서 그 값을 치렀기 때문이다. 그 희생이 단지 국가나 연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인간의 시도는 두 번 이상 있을 수 있지만, 인간의 삶은 단 한 번 주어진다. 그렇기에 '다음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nbsp;  &nbsp;  신부의 세계가 갈증과 갈등을 안고 있을 때,&nbsp;아주 드물게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준다. 이는 오직 여성만이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너무 쉬운 허락이 요구하는 연락 두절을 뜻한다. 필자는 밤에 죽음이 가까워짐을 느끼고는 한다. 그래서 그 시간대는 작업에 집중하기에 매우 적합하다. 그렇지 않다면, 삶은 대체로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이 작업의 또 다른 이유일 것이다. 언젠가 분명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때는, 필자는 기대를 저버린 말과 함께 더 독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글은 그 전에 남기는 자신과의 서약이 아닐까. 그래서 신부의 세계는, 때로는 잔인하다. 도무지 애증을 느낄 수조차 없는 한 인간처럼,&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우리말 문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93</link><pubDate>Fri, 22 May 2026 21: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93</guid><description><![CDATA[<br>2025. 09. 09.&nbsp;<br>  가설이지만, 언어란 지배 수단으로는 매우 효과적이다. 국내에서도 문자에 대한 연구는 많아도, 정작 계급을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고 지적한 사람들은 매우 드물다. 그러나 우리말 연구는 많아졌다. 바깥에서는 외래어가 아닌 우리말 쓰자는 움직임들도 더 세졌다. 그러면서 세종 한글이나 창제했다고 기원이나 떠들고는 초기 집현전, 근대 말모이 같은 여러 언어 운동들은 정작 빼버린다. 언어로도 선구적인 사람을 강조하지, 모여서 조직한 집단을 잘 기리지는 않는다.   &nbsp;  주로 한자어로 풀이해보자면, 한자어나 영문 표기를 쓰지 말자고 내세워도, 표기를 대체할 언어는 부족하다. 그러나 쉽게 만들어 볼 수도 있다. 자주 드는 예시로는 페미니즘이 있다. 여성주의로 바꾸기만 한다면 끝날 언어일까. 다음으로는 우리말로 새롭게 바꿔야만 하는 문제가 있다. 왜냐하면, (者), 곧 놈이라는 말은 주로 사내에게 쓰이는 말이기도 하고, 여성주의자라고 한다면, 뜻을 퇴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랜스젠더도 같다. 성전환이라는 표기가 그대로 있음에도, 용어를 잘 쓰지는 않는다. 주로 외래 언어를 더 많이 쓰는 형국인지라, 주로 용어들이 생겨난 원인을 두고 딸을 위한, 딸에 대한 말이기 때문이라는 배짱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리고 언어를 영문과 한문으로만 고치고는 난해한 언어만 골라 쓰는 아주 '괴랄한' 철학자들도 있다. 번역에 대한 언어를 계급 수단으로 특히 지배계급도 쓸 수 있다고 못 보거나, 그저 손 맞잡는 연대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추종하는 일부 여성주의 운동가들도 타협주의와 지배계급적인 시각도 밝혀지겠지만, 더욱 심각하게 드러난 까닭이다. 비슷한 예시로는 공산주의 운동을 공산주의'자' 운동으로 표기하는 경우다.   &nbsp;  쓰는 말에서도, 우리말을 강조하는 다른 글들을 읽어봐도 말바꿈들은 나름대로 참신하긴 하다. 그러나 모든 교과목으로는 학습이 아닌 단지 시험을 위한 용도로만 제작했고, 어려운 말들을 풀어내지도 못한다. 도대체 시험을 수단으로 사교육 시장은 넓어지는데, 정작 혁명에 대한 흥미는 잃어가는 모순은 어디에서 기인하던가. 바로 언어를 만들어봐도, 지배계급들은 언어를 자본화된 생산 수단으로 이용하고는 꾀를 부리고, 사람들에게 쉽게 타협하기만 하고, 혀만 나불거리는 언어를 홍보하거나 팔도록 하기 때문이다.    &nbsp;  노동자라는 말 대신에 일꾼이라는 말도 있음에도 잘 쓰지는 않는다. 아직은 우리말로 바꾸는 번역들이나 움직임은 매우 어색하거나 적다. 그리고 국어가 바로 우리말이라고 예찬하는 국문학자, 문학가들은 한자어만 골라 쓴 행태를 부려왔음에도, 정작 글에 대해서는 거리낌마저 없다. 심지어 외래어라는 인식조차 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대중들은 얼마나 더할까.   &nbsp;  우리말에 대한 대표적인 예시로는 노동자를 들고 싶다. 세상에는 남성 노동자들만이 아니라, 여성 노동자들도 있다. 그러나 모두 일꾼으로 나온다면 좋겠지만, 현실이란 또 다른 싸워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노동자도 노동자지만, 노동계급, 노동가로 주로 표기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저 주어진 일을 하는 노동자들보다는, 더욱 무산 독재를 요구하고, 계급으로 싸워낼 줄 아는 노동가들도 더욱 많아져야만 한다. 두서 없겠지만, 노동자든, 노동가든, 노동계급이든, 일꾼이든, 부질 없는 노력이더라도, 자본가들만 판 치는 국내를 보노라면, 그들에게도 맞서 참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 프롤레타리아트, 무산계급이라는 많은 이름들이 있기 때문이다.  &nbsp;  특히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있어 번역 연구는 참 어렵다. 매일 같이 들인 노력에 비하면, 문학과 비평은 자유도라도 높지만 실질적인 통계에 기반한 논문이나 서적이라면 번역에 공을 들이기가 어지간히 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중에 유통이 되는 자료를 수집할 때마다, 가장 큰 문제로는 바로 번역 문제를 꼽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주어와 서술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논리적으로 비약된 문장과 비문의 사용, 외래어에 대한 대체어도 없는 개념의 모호한 정의, '의', '가', '것'과 같은 수식어를 포장하는 조사의 빈번한 사용, 그리고 '표준' 국어에 따른 맞춤법과 띄어쓰기와 같은 선택이 아닌 필수 규정을 들 수 있다.    &nbsp;  언어란 말을 먼저 배우고 지식을 습득하지만 그러한 규정은 참고할 뿐이다. '표준'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언어를 남용하자는 말도 아니다. 왜냐하면, 가장 큰 문제는 다른 언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숱한 전문 용어에 대한 정의와 제시되는 설명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가 특히 독자들에게 충분히 잘 옮겨졌을 때는 매우 올바르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거꾸로 이전의 서적이나 문서에서 나오는 글쓰기의 방식이 매우 모호하다는 점을 반증하기도 한다.   &nbsp;  문학이라면 좋은 글과 나쁜 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연구에서는 다르다. 밝히고자 하는 문제가 무엇이고, 사실에 대한 통계를 어떻게 제시할지 충분히 보여 주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전체 본문과 결론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갈피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거나, 문제를 도통 알 수 없을 때 수정이 요구된다. 특히 언론 보도에서 보이는 글쓰기의 방식은 처참할 뿐인데, 기자가 평론으로 쓴 글에서도 여전히 위와 같은 문법을 지키지 않아서 전달이 명확하지 않는 경우도 여럿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언어 작업은 기술하는 부분에서도 신중을 요하므로, 오히려 인공 지능 검사기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게 더 알맞기도 하겠다. 그리고 이러한 문장을 기술하는 노력에서 본인은 쉼표를 빈번하게 쓰는 습관이 있지만, 지금은 이를 정정하면서 문장의 간격이 현저하게 줄기도 했다.   &nbsp;  아무리 난해한 문장이라도 많은 개념들이 내포하고 있다. 물론 본인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석하지 못한 본인의 책임이라고 내세울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까다로운 자신의 생각일 뿐이다. 그러한 자신의 생각마저 아무리 단편적인 글에서도 말하고자 하는 바를 풀어내서 정리하는 습관을 들이지 않는다면, 더욱 축약된 언어 생활과 헷갈리는 단어만 인용하는 데 그치고 만다. 언어 생활에서 순수한 우리말의 변환은 좋은 시도일지라도, 그 한계는 연구에서 분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주장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말은 과학이다. 최소한 우리말을 연구하는 국문학자나 문헌학자가 아니더라도, 구체적으로 글쓰기가 자유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객관적인 표기에 대한 문제라는 관심을 유도할 수는 있어야 하지는 않을까. 국어 '표준'에 대한 정의가 다만 시험을 위해 어려운 문장을 더욱 어렵게 쓰고자 모국어가 있지 않다. 국어 사용이 체계적이었다면 오히려 선택의 비중도 분명 이렇게 비좁지는 않다. 아무래도 읽기에 대한 답을 고르는 해석만 배우고, 작문 쓰기가 소홀한 우리 국어 생활의 실태는 아닐까. ]]></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문학·미학</category><title>박경리, 『시장과 전장』을 읽고,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90</link><pubDate>Fri, 22 May 2026 21: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90</guid><description><![CDATA[<br>2024. 09. 12.<br>‘박경리는 &lt;시장과 전장&gt;을 쓰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는 남몰래 울었다. 전쟁에 대한 상처가 생각나서 괴로웠기 때문이다. 만드는 건 새로운 일이었다. 만들 때, 음향, 색채, 모양은 결정된다. 시간은 작품에다 멎는다. 작가는 혼자만 영광을 안아본다. 세상이 생겨도 생활만 있었는데, 소설가로 태어나 글을 쓸까를 생각하면 절망했다. 비록 슬픈 이야기라도, 전쟁이라는 비극을 겪고, 적으면서 박경리는 시와 같이 아름답다고 여겼다. 문자에 대해서 언어와 글은 사랑, 외로움, 예술, 모든 걸 생겨나게 했었고, 언어 장벽에도 갇혀 서로를 알아가지도, 알지도 못하고, 그리워만 하다가 그림자만 밟고 간다. 따라서 언어와 글자는 진실은 아니다. 자뭇 예술가란 언어라는 길을 캐려다 창조자에게 가까워지려는 염원만 남기고 가는 사람이다. 육이오라는 작품 배경 속에서, 사실에 대해서는 상상이라는 재표현으로 다시 글로 표현하고자 했다. 박경리는 여태까지 주로 부정적인 인물 밖에는 그릴 수 없다가도, 이기화를 그리면서, 긍정했다.’  &nbsp;                                     씨름장&nbsp;  &nbsp;  ‘문학을 처음 읽을 때는 먼저 해석들을 참조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맛을 알아가지 못한다면&nbsp;문학에 대한 정보를 담은 해석들도 무용지물이다. 문학에서 해석한 글들은 사람들이 주로 생각하는 작품에 대한 인상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이란 늘 시대를 염두해두기 때문에&nbsp;적어도 좋은 작품을 잘 읽는다는 건, 어쩌면 맛을 알아가고, 작품을 이해하고자, 해석들을 알아가는 즐거움이 아닐까. 그렇다. 문학이란 독자라는 우리들에게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작품과 씨름하면서도, 스스로, 작품에 대한 언어에 대한 해석들을 늘려가는 배움이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문학은 실천이고, 배움으로, 모여진 또한 이론이다.’  &nbsp;  북한 삼팔도  &nbsp;  지영은 기석을 만났다. 지영의 개 이름은 미미다. 기석은 안경을 꼈다. 지영은 선생이고 늘 어디로 자주 간다. 용산역, 개성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연안행에서 기동차를 타고 떠났다.   &nbsp;  지령  &nbsp;  여자를 어디를 가다가 쓰러졌고, 기훈을 만나서, 차 안에서 의사를 불러서 빈혈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여자는 남자를 매우 싫어하고, 동성애에 대해서도, 썩어빠진 남자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곰보 사나이는 문둥이에 판다는 놀림거리라는 상처가 있었다.&nbsp;기훈이 만난 여자는 여자도 남자를 닮은 사람은 싫어한다.  &nbsp;  푸른 보리  &nbsp;  지영은 힐끗 쳐다보는 남자를 지나, 초라한 양옥집 앞으로 간다. 교장선생을 만난다.&nbsp;지영은 하숙집 구할 때까지 기숙사에서 신세 지기로 하고, 결혼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nbsp;<br>* 달구지: 짐수레.<br>지영 성씨는 남씨다. 정순이도 같이 부임했다. 정혜숙은 교감이다.   &nbsp;  밀짚모자와 나비  &nbsp;  K다방에서 하기훈은 신흥상사 오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접견한다. 하기훈이 만난 전에 만난 사람은 이가화다. 18호실 아파트 색시이고,   &nbsp;  행복의 이야기  &nbsp;  지영은 김인자에게 보고를 받고, 기석을 만났다. 이 선생은 정순이 남편이다.&nbsp;지영은 김인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친구의 염세자살을 듣는다.  &nbsp;  “그럭저럭 십여 년 전의 일이구먼, 동경서 함께 공부할 때 일이었으니까. 나하구 함께 하숙을 했는데, 아주 총명하고 얼굴도 예뻤어요. 그 애가 자살을 했거든. 바로 나하구 함께 자면서 말예요. 그런데 그 애가 노상 하는 말이 이 세상에는 누구나 바라는 그 파랑새가 없다는 거예요. 치루치루 미치루는 산을 넘어 파랑새를 찾아갔다가 못 찾고 집에 와서 파랑새를 보았다 하지만 그건 바보였을 거라는 거예요. 제일 바보들이 회색새를 파랑새라 믿고 살고, 그 다음 바보들이 때때로 회색 새로 보면서 파랑새로 볼려고 애를 쓰고, 그 다음 눈이 바로 박힌 사람들이 제대로 회색을 본다는 거예요. 제일 바보가 인생을 속아 살아서 병신이지만 저 자신은 좋고, 다음은 비겁하고 미련스런 인생을 살고, 세 번째는 숫제 아무 것도 없다는 거예요. 진리는 공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애는 세 번째에 속하니 자기는 아무래도 죽을 수밖에는 없다는 거죠.” … “아니, 그렇게 말한 게 아니오. 살아갈수록 그 애 한 말이 생각이 난단 말이에요. 아무튼 우리는 그 세 가지 중에서 어느 것에든 속하지 않겠냐 그 말이오. 그러니까 눈이 푹푹 쏟아지는 밤이었구먼. 요나카 소바의 그 구슬픈 가락도 들려오지 않고 마냥 눈만 쏟아지더군. 그날 밤 잠은 안 오고 해서 우린 눈길을 헤치고 행길로 나갔어요. 겨우 군밤을 사갖고 와서 먹었는데 그 애는 자꾸, 혼자서 웃지 않겠어요? 하도 이상하여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 행복은 없어도 그걸 안다는 게 멋이 있어 웃는다는 거예요. 그러다간 인생이 멋 없어 못 살겠다 하곤 또 노래를 부르는 거예요. 이튿날 그 애는 병원에서 죽었어요. 약을 먹었지 뭐예요?”  &nbsp;  남지영, 김인자, 정혜숙, 정순이, 모두 염세자살 이야기를 듣는다. 김인자도 자신의 이모부가 해방 이후 사업에서 큰 돈을 벌었지만, 고독하다는 이유로, 자살을 해버렸다.  &nbsp;  이후 석산 선생..]]></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무정부주의자에게 고함</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70</link><pubDate>Fri, 22 May 2026 21: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70</guid><description><![CDATA[  &nbsp;  2026. 05. 16.&nbsp;&nbsp;‘무정부주의자’만큼 가장 지독한 말도 없다. 무정부주의자는 그 자신을 지칭하는 모든 언어적 정의를 거부하며, 종국에는 소속된 집단마저 부정하는 극단적 결론에 도달한다. 그들은 무산 계급의 논리에서 공산주의자의 일원으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국가의 존립 근거 자체를 부정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키며 운동의 결을 달리했다. 이러한 부정의 정치는 모순적으로, 그들이 무산 계급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산 계급 및 소유 계급의 논리를 따른다. 그들이 유산 계급의 일원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일종의 역사적 현상이다.&nbsp;그들은 현상의 본질을 간파하는 구도자를 자처하나, 노동 운동의 실천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순은 그들의 사상적 한계 역시 여실히 드러낸다. 모든 투쟁의 형식을 거부하며 유창한 지적 유희를 누리던 푸르동의 후예들은 ‘국가’와 ‘소유 재산’에 대한 정의조차 불분명하게 방치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소시민적 자유를 옹호하는 하위 세력으로 전락했으며, 그것이 ‘가장 반란적인 세력’이라는 수식어는 그들의 사상적 극단성이 맺은 오명이 되었다.&nbsp;독립 국가의 건설 과정에서도 예찬받던 그러한 무정부주의자들이 정작 노동 해방의 국면에서는 국가 체제 내 유공자로 흡수되는 양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이 공산주의자 탄압을 피해갈 수 있었던 원인은 오히려 국가가 그러한 무정부주의자들의 소시민적 성격을 체제 안정의 요소로 포섭했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무정부주의자들은 지역적으로 도처에 존재했으나, 결정적인 계급 투쟁의 순간에는 체제에 안주하는 폐쇄적 태도를 보인다. 이는 그들이 발전적이라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모순을 은폐하려 했기 때문이다.&nbsp;오늘날의 개인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로 변모하기가 더 쉬운 이유는 그 논리가 명료해서가 아니라,&nbsp;다분히 추상적이고,&nbsp;개념적인 언어 뒤로 비무장한 가장 취약한 집단이기 때문이다.&nbsp;그들은 역사 발전에 맞서며 무산 계급의 실천적 요구마저 외면하고 말았다.&nbsp;그들은 이른바 선구안이 아닌,&nbsp;반대로 유산 계급의 일부로 극찬되기도 하며,&nbsp;그것이 결국 유산 계급 자신의 논리에 맞춘&nbsp;'모험적'&nbsp;시도들로 인해 비롯되기도 한다.&nbsp;그들이 시장 경제의&nbsp;'교환', '노동', '가치'&nbsp;등을 논변하면서도 정작 그러한 낡은 정치경제학의 유산을 철폐하지도 못하는 한,&nbsp;무정부주의는 체제주의를 보완하는 수사에 머물 뿐이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감언이설</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68</link><pubDate>Fri, 22 May 2026 21: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68</guid><description><![CDATA[  &nbsp;2026. 05. 13.&nbsp;<br> 감언이설은 남의 비위를 맞추거나, 이로운 조건을 꾀는 말을 뜻한다. 이 말을 김어준, 유시민, 조국과 같은 인물들이 자유 언론에 기대어 온갖 음모론과 터무니도 없는 설전을 벌이며 정치에 대해 친근하게 발언한다. 그들은 가끔 자신의 서적을 출판하여 '고전'을 강조하고, 자신들이 새로운 사상의 주역인 양 떠들어대는 꼴을 보게 된다. 사탕발림같은 소리와 더불어 오늘도 정부 예찬과 약간의 책동을 말하며 계급적 희롱을 일삼고 있다. 그리고 친분이 두터운 서평가들을 인질로 그러한 '감칠맛'으로 포장한다.&nbsp;  &nbsp;  14시간 이상 자본가들과 협상을 해야만 하는 노동자들에게, 그 자신의 이익을 위해 복무한다고 말하는 주요 언론사들이 여전히 없는 체를 하며, 노동자들이야말로 소유자라는 '기가 막힌' 논변을 내리며 그들의 이익을 강변하고 있다. 고작 소수인 한 인간 때문에 지금도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사이에도, 일부 국민들은 주가 안정에 대한 방어와 깊은 안도에 안주하며, 전 세계의 전쟁을 볼모로 자신의 생계 노동을 대신할 조그마한 불로 소득을 챙기고자 밤을 지새우고 있다. 그것이 일종의 재미가 되고, 자신이 자본의 투자자가 될 수 있다 위안 삼으며, 사람들은 경제학을 공부하고, 경영학을 배우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정부가 주입하는 국민에 대한 또 다른 아편에 불과하다. 특히 연령대와 무관하게 이 취약한 국민들은 그러한 주식이라는 아편에서 약간의 수익을 얻거나, 자신의 주린 배를 조금은 채울 수 있는 방식을 터득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제한적이고 한정적이다.&nbsp;  &nbsp;  아무도, 정부가 유도하는 주식의 가치와 그것의 한계를 여전히 짚어내지 못하고 있다. 놀랍게도, 어떠한 신문 논설에서도 그러한 말들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국민들은 이 정부가 주는 아편에 심취하기라도 한 것일까. 그들에게는 투쟁에 대해 잊게 만들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바로 자본을 주는 것임을 터득한 정부가, 이번에는 국민들을 우롱하기 시작한다. 불과 선거를 치른 국민들은 다음 정부에 대해 비난을 가하면서도 정작 소득 분배에 따른 국가가 주는 보조금에 감사해 하며 힘찬 보도에 속아 또다시 안도한다. 평화·안녕·행복 등 혀가 긴 가치를 나열하고,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그그다음에도, 정부는 국민들에게 또다시 감사하다 말하며, 선거에 대한 감사를 전하고, 뒤에서는 노동자들을 희롱할 수 있는 가장 극악무도한 방식을 수단으로 가족의 해체와 온갖 사상을 주입시킬 수 있다. 그것은 기술의 발달 덕분에 자신들의 소유 전반으로 가로채 그것을 이용하고자 시도한다.  &nbsp;  아, 인간이여, 언제까지 어리석은가. 그리고 독서의 편식도 이제는 주식에 '몰빵한' 빈 잔고와 함께 애꿎은 책만 나무라며, 자신들은 나약하다고 여기며 자책만 하고 있는 꼴을 보면서 똑같이 우스워하고만 있어야만 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저들은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며, 국가의 정상화를 유지할 수 있는 발판을 찾아 갖은 애를 쓰고 있다. 두 체제가 똑같이 지배자의 국가를 경영하고, 운영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 사이에도 두 사람은 마치 이산가족처럼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미련만 남은 운명을 사랑이라 여기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애틋한 것만이 우정으로 남았고, 결국, 처벌 수위도 낮은, 심지어 마땅한 형벌도 없는, '쿠데타를 모의한 자'들에게는 자유라는 '빨간줄'만 그어졌다.&nbsp;&nbsp;  &nbsp;  그들의 사탕발림은 시대를 막론한다. 시간이 흘러도, 그렇게도 뻔뻔하고, 비열한 장난을 치며 국민 정책을 우롱한다. 다음 선거를 치르기 위하여, 그나마 차지할 수 있는 의석수를 확보하기 위하여, 끝까지 두 체제가 부패할 수 있다는 점을 더욱 자처하기 위하여, 그것을 은폐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자부가 그 극단에 치달을 때조차도, 우리는 차분하게 그러한 미친 광경을 또다시 목도하고 있다.&nbsp;&nbsp;  &nbsp;  좌파라 자칭하던 반동 분자들이 이제는 '가족 파괴범'이 되어 '보수주의자'라 떠벌린다. 그 피해자란 또다시 국민들이다.&nbsp;&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기록의 중요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64</link><pubDate>Fri, 22 May 2026 21:3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64</guid><description><![CDATA[<br>2026. 05. 05.&nbsp;<br>기록장&nbsp;자주 글을 쓰려 노력하는 자세는, 말할 수 없는 이들이 요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민주주의가 정착될수록 꾸준한 독서와 성찰이 요구되는 이유는, 단순히 지식을 과시하거나 '가진 것'을 자랑하기 위함은 아니다. 그러나 언젠부턴가 우리 사회는 독서를 일종의 자랑거리로 여기는 풍토가 자리 잡았고, 정작 기록의 주체가 되어야 할 이들의 자리는 극소수만이 독점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박식하게 지식을 쌓는다는 것이 개인에게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그것이 곧 타인과 사회 전체가 유익한 것은 아니다.&nbsp;  &nbsp;  근래의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은 매체의 발달과 인간 통제를 위한 고도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이러한 인간의 취약한 심리에 기대어 이를 더욱 자극시키는 쪽으로 발달된다. 그것은 본연의 창조를 실현할 수 있는 방식도 아닌, 오히려 그러한 학문이 지닌 자체의 난점으로 인해, 인간이 스스로 생각할 줄 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가 인간 노동에서 벗어나 비평할 시간이 주어져야 하지만, 그 비평이란 단순히 소수의 학자들에 국한된 비평의 시간도 아닐 것이다. 모든 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고,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단순히 특혜나 계몽의 수준이 아니라, 노동의 수준에서 다시 발휘되기 때문이다.&nbsp;  &nbsp;  그렇다면 '기록'이란 무엇인가.&nbsp;기록장은 삶의&nbsp;‘오답 노트’이다.&nbsp;우리는 늘 노동에 대한 자격을 심사받으며&nbsp;그러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교육만을 받아왔다.&nbsp;그것을 체제의 순리라 여기며 다시 취업하고,&nbsp;또다시 소중한 사람을 잃는 과정에서도&nbsp;노동의 가치를 되묻기보다 오히려&nbsp;동료&nbsp;노동자를 비하하며 살지는 않았는가. 이제&nbsp;노동자의 삶에도 단순한 생계 보장 임금만이 가득찰 것이 아니라, 자신의&nbsp;인생을 스스로 심사하고 되돌아볼 수 있는&nbsp;‘오답 노트’로서의&nbsp;기록이 요구된다. 독서와 기록이 진정으로&nbsp;‘가난한 노동자’가 될 준비를 마친 이들에게 성찰의 시간으로&nbsp;채우기를 바란다.<br>‘가장 민주적인 사람이 독재를 말할 때, 우리는 무엇을 요구하는가.’]]></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서기장에게,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55</link><pubDate>Fri, 22 May 2026 21: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55</guid><description><![CDATA[  &nbsp;  2026. 04. 27.&nbsp;<br>서기장에게, <br> 당을 이끌어갈 서기장 동지에게,&nbsp;먼일이 될지도 모르나, 당과 인민을 위해 헌신하고 있을 귀하에게 이 글을 남기는 것이 시대적 소명이라 봅니다. 자주 어떤 글을 쓸지 고민합니다. 문득 잠시 숨을 고르다가, 당신에게 직접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nbsp;언젠가 만원의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중, 운전기사로부터 너무 앞에 있어 거울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권력이란 결코 자신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누군가의 시야를 가리는 장애물이 될 때 그 정당성을 잃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당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를 잊지 마십시오. 때로 인민들이 정치적 판단에서 미숙해 보이거나 날 선 의문을 던질지라도, 그것은 무지가 아니라 그들의 생존이 걸린 절박한 목소리임을 헤아려야 합니다.&nbsp;한국의 역사를 보더라도, 정부 수립 이후 처절한 투쟁으로 쟁취한 민주화의 결실을 결국 부르주아 계급이 독점해버린 뼈아픈 사례를 우리는 목격했습니다. 반공이라는 구호 아래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혁명가와, 국가 권력이 은폐하려 했던 수많은 정치 공작의 희생자들이 존재합니다. 이들의 의연한 죽음은 오늘날 우리가 딛고 선 토양입니다.&nbsp;1990년대 소련 연방의 해체 이전에도, 레닌은 우리에게 ‘소비에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잊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누가 권력을 잡느냐’는 문제만이 아니라, ‘무엇이 권력을 만드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비록 소비에트가 권력 투쟁과 부패로 인해 사멸했다는 비판이 있을지라도, 자본주의의 모순이 잔존하는 한 소비에트의 대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nbsp;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일하고 있습니다. 여가를 보장받고 정당한 임금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는 이들은 가장 소외된 무산자 계급입니다. 오늘날의 공산주의 운동이 국가 사회주의의 한계나 내부적 변질로 인해 수정되고 왜곡되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럴수록 혁명의 고전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고전 속에 담긴 근본적인 원칙은 당신이 길을 잃었을 때 가장 명확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입니다.&nbsp;언젠가 당신이 서기장의 직무를 수행하게 된다면, 그것은 오직 무산 계급 혁명을 위해 헌신해야 할 엄중한 과제일 뿐입니다. 당신의 자리가 곧 당신의 인격을 규정할 수 있습니다. 대의를 잊는 순간, 당신은 인민의 지도자가 아니라 한 명의 독재자로 추락할 뿐입니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잃을 것이라고는 쇠사슬뿐이며, 얻을 것은 세계입니다. 이들의 요구를 가슴으로 듣고 행동으로 말하는 서기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nbsp;  노동의 가치가 훼손되지 않고, 땀 흘리는 자의 노력이 마땅히 보장받는 일을 완수하시길.&nbsp;익명의 서기가 남김.&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민주당의 한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48</link><pubDate>Fri, 22 May 2026 21: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48</guid><description><![CDATA[  &nbsp;  2026. 03. 28.&nbsp;<br>‘민주당의 중도 성향이 바른 길은 아니다.’  &nbsp;  이 지점에서는 대부분의 야당 견해를 제외했을 때, 되도록 쉽게 말하고 싶다.  &nbsp;  ‘지금은 여당이 된 민주당만이 민주주의를 대변하는 정당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소위 말하는 정치병에 오염되었다.’  &nbsp;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민주당을 지지하는 분들의 오래된 프레임이 궁금했다. 이들은 보수 진영에서 양산한 지역 갈등 프레임을 여전히 대통합 기제로 여긴다는 점에 있다. 이는 민주당에 소속된 대통령 내외분께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자신들은 보수 진영의 정치적 피해자라는 기제가 한국에 오랫동안 '트라우마'로 각인된 탓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이 자명해 보인다.&nbsp;&nbsp;  &nbsp;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가치를 추구하는 이익 집단이라 한다면, 단순히 지금의 두 양당 간의 관계가 여전히 상호 간의 정치적 청산이 아니라 집단적 보존에 치중된다면, 그들은 한 나라의 장래를 두고 살리는 길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적 갈등의 씨앗을 더욱 부추기는 일이 될 것이다.&nbsp;&nbsp;  &nbsp;  특히 민주당은 자신이 불리한 상황에 직면하면 언제나 주권자인 시민 유권자들에게 호소하는 경향이 매우 짙었다. 한국에서는 선거철만 되면 정당 간의 이동 비율의 격차가 가변적으로 유달리 상승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고 서민들이 체감하는 국민적 불안감만 더욱 가중시킬 따름이다.&nbsp;  &nbsp;  앞서 '아무리 그래도 국힘보다는 민주당이 더 낫다.'는 논리 속에는 '민주당만이 민주주의를 구원한다.'는 정치적 기제로 편승되기가 매우 쉽다는 점이다. 이러한 견해를 갖고 있다면 상당히 심각한 논리적 오류에 직면하게 된다.&nbsp;  &nbsp;  물론 한국의 유권자들은 대체로 선거철에는 자신의 정치적 무관심을 표하더라도 특히 신중해진다. 자신의 지역구에 속하는 정치인들을 가리는 선거이기 때문에, 이 두 양당만이 대표성을 띠는 현실이라면 대안적인 선택지를 살펴보지 못할 가능성이 더욱 컸던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다당제도 아닌, 양당제만을 여전히 표방한 점에서, 그 자신의 논리적 순환의 모순을 보인다.  &nbsp;  이처럼, '선의의 구원자'가 된 민주 당원들에게 특히 이러한 '영웅 놀이'에 몰두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그 격차는 시민 유권자가 아니라, 그 외의 정치적 집합체에서도 배제되신 분들에게 가장 해당되는 말이다. 특히 민주당의 앞날을 숙고하시는 분들이라면 이를 염두할 필요는 있다.]]></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고문의 역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44</link><pubDate>Fri, 22 May 2026 21:3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44</guid><description><![CDATA[  &nbsp;  2026. 03. 28.&nbsp;<br>박종철 열사는 인연이 깊은 인물이다. 지금은 민주화 기념관으로 알려진 '남영동 대공분실'에는 과거 민주 인사들을 비롯한 고문을 받았던 일부가 이곳에 소속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을 개인적으로 방문한 적도 있었고, 훗날 시내 전역으로 확장된 민주화 운동 당시 군대로 인한 총격 또는 감금 및 고문 등으로 인해 사망한 인물 중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출판사가 세워지기도 하였는데, 『박종철 출판사』가 바로 이곳이다. 선량하고 무고한 그를 추모하기 위한 의도도 있었지만, 이곳은 사회·과학 서적을 보급하고, 독립하여 운영되는 서점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곳에 출판된 책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맑스·엥겔스 선집』이었으며, 최근 선집의 출판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그 출판사이다. 과거에 비해 이러한 서적이 뒤떨어진 이유가 90년을 기점으로 좌익을 표방하는 이들이, 서서히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전면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이 출판사는 그 명성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nbsp;  &nbsp;  '탁 치니 억!'하였다고 말한 어느 고문관이 사망하였다. 당시의 발언은 큰 파장을 일으켰고, 그는 사망하기 전까지 목사로 활동하였다는 소식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그러나 추모가 그러한 기념의 일부가 되는 순간, 그 의도와는 달리 더욱 사회적 문제를 희석시키는 경향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비록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지워진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이러한 국가적 폭력에 힘입어 그것을 자행한 이들이 정작 치한에 방조한 '보안법'의 역사로 인해 발생했다는 사실을 많이 간과하곤 한다. 단순히, 국가적 차원에서는 순국 기념의 의미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국가의 견해이고, 대중들은 실제로 희생자 분들이 민주화에 헌신하기 전에 평범한 사람이었음을 깜빡 잊곤 한다.&nbsp;  &nbsp;  이처럼, 인간에 대한 고문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 미국 뉴욕주에는 &lt;중세 고문 박물관&gt;이 있다. 이곳에는 중세 시대의 기술을 자랑하는 '화려한' 고문 방식들을 많이 소개하고 있다. 한 근대 철학자가 감옥 내의 정신병을 다루기 이전에도, 중세가 전반적으로 '암흑기'라 불리는 이유를 볼 수 있다. 민주화 시기 이전에 유럽의 뛰어난 기강을 자랑한 '르네상스'의 부상과 이후에 근대적 국가관을 중심으로 자행되었던 '제노사이드'라 명명되기 이전에도,&nbsp; 《액트 오브 킬링》으로 잘 알려진 1965년 인도네시아 대학살 당시에도 이러한 고문의 기술들은 오히려 해당 국가들로부터 통제되어 자행되었다는 사실에는, 그 잔혹한 이면까지 세계적으로 보도될 수 없는 지점들이 상당수가 존재한다.&nbsp;'산 자들이여 따르라'라는 말이 무심할 정도로, 죽은 자들이 방치된 이 고문의 역사는 '숭고한 진리'를 말하기 이전에 마주해야 할 투쟁의 역사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국가가 '안보'를 말할 때 온갖 비속어로 맺어진 조약과도 같다.&nbsp;지금도 국가 간 전쟁을 개시할 때는 포로에 대한 감금 및 고문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은 현재의 부르주아 역사가 은폐하고 싶은 '어른의 사정'인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평범한 사람에서 무고한 사람이 된다.&nbsp; &nbsp;&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인공 수단과 자동화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39</link><pubDate>Fri, 22 May 2026 21: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39</guid><description><![CDATA[<br>2026. 02. 26.&nbsp;<br> 자동화  &nbsp;  지금까지 공학자들은 기계어에 대한 이해를 개념적으로 고찰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진법적 신호에 의한 '컴퓨팅'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그것이 미래형 사고에 입각하다는 발상에서 논의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프로그램 언어의 전반이 종교와 관련된 개념이라는 일부 지적은 기각된다. 오히려 그것은 자연 언어부터 파생된 부르주아적 정의 내에서 수용된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프로그램이란 단순히 '강령'이라는 번역이 아닌, 그것의 시스템이라는 지배 체제를 가동시키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는 점이다. 프로그램 언어는 기계의 언어가 아니라, 그것을 정의하기 위한 인간이 그것을 관념적으로 사고한 사상적 언어의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부르주아 사상가들의 일부로 잔존하여 '인지'라는 관념의 일부를 구성한다. 이는 용어 및 개념적 정의부터 상이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고대 철학자들은 이러한 차이가 동일한 것이라 간주했다. '짐승과 기계'의 연구부터 그것의 지배 논리의 질서를 인간에게 대입하며 사고된다고 보았으며, 그것의 오류 전반은 기계 수단에서 인공 수단의 진화로 변천하는 과정, 곧 생산 수단으로 확립된다는 점을 간과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컴퓨터를 가동시키는 전선들의 집합은 독일의 초기 가내 수공업인 면직물 공업에서 유래한 측면이 강하다. 실감의 조직적 구조가 옷감을 형성하듯이, 그러한 물질적 생산력의 기반이 지금의 기계적 사고를 이루는 자연 언어라는 점을 해명하지 못한 것이다.&nbsp;  &nbsp;  초기 애플사의 컴퓨터는 이러한 혁신적인 상품을 발명하였다. 그것은 오락의 발전과 더불어, 밖에서 놀던 아이들을 모두 실내로 불러 교육적으로 통제화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전환이었다. 컴퓨터 이전 '텔레비전'의 생산은 '매체'의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부르주아지를 위한 도구적 수단으로 변질시킬 수 있게 되었고, 자신들의 사유 재산을 정당화시키며 인간의 시각을 통제하는 가장 효율적인 사물이 되었다. IT 산업 및 반도체가 지금처럼 부흥하기 이전부터, 스티브 잡스, 스티븐 워즈니악, 빌 게이츠, 제프 베이소스, 젠슨 황 등과 같은 인물, 그 다음 세대의 샘 올트먼, 마크 주크버그, 다니엘 에크, 일런 머스크 등을 필두로 전개된 미국의 기술자 시절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이 지점에서 게이브 뉴웰과 리처드 스톨먼은 기술진의 사태를 앞서 판단했다. 특히 리처드 스톨먼은 이러한 기술진의 사태에서 '모든 개인에게 자신만의 사이트가 보급될 것이라' 짧막하게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사이트의 개발은 자본의 '부분적 유로화'에 따른 진입 장벽으로 인해 이러한 정부 접속 자체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nbsp;  &nbsp;  현대의 인공 기술자들은 독일의 '디자인'의 다수에서 영감을 받아 상품에 적용시키고자 하였지만, 그것을 놀이로 대하지 못하였다. 결국 그들은 이마저도 자본의 놀음으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기술적 발전에 따른 인간의 '뇌'를 탐구하였고, 뇌의 일정 기능을 통제하여 마비시킬 수 있다는 측면을 활용하여 더욱 강력한 인공 지능을 발달시켰지만, 그 자신의 수명 연장 기술과 더불어 그러한 인간의 미래 연구는&nbsp; 뇌 자체의 연구와 결합되어 그 발생적 구조가 복합적인 측면에서 사고된다. 곧 현대 인공 기술자들은 인간의 부정의 원인을 해명하고자 그것의 부정 자체를 '오류'로 단언하였다. CIA의 고문을 받던 카진스키는 결국 그 자신이 옥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고 기술주의에 대한 우려를 강력하게 표명하였지만, 지금도 인공 지능 자체가 인간의 언어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의 발생은 그것이 인공 지능의 수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성한 '가공 언어'로 판단되며 결국 그들의 주관을 물질 자체로 환원시키는 오류, 곧 기계적 유물론의 토대를 닦는다. 기계적 유물론이란 일부 부르주아 기술자들이 내재한 사고방식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들의 기술적 우위보다, 그 자신의 무지를 서서히 드러낸다는 측면에서 더욱 깊은 오류를 내재한다.&nbsp;  &nbsp;  이 지점에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을 기술자가 아니라, '디자이너'라고 표현하였지만, 그는 결국 '디자인'을 상업화시켰다. 하물며 독일의 '바우하우스'의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했음에도, 정작 유럽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의 '디자인 철학'을 기업가의 상업성에 활용하여 '애플'을 주도했다는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그러한 업적을 스스로 다했다는 대중의 착각에 의존하고 있었다. 지금의 애플은 '바우하우스'보다 못한 목표를 가진 채 기존의 제품 생산을 반복하는 형태인 자본주의화 시킨 '선구적인' 장본인이라 판단된다. 따라서 스티브 잡스 역시 애플의 창시자가 아니라, 모방자에 다름아님을 밝힌다. 그것의 수익성을 오히려 자신들의 기회로 창출할 수 있다고 여긴 '지적인 상인'이 그에게 가장 걸맞는 표현인 것이다. 이것이 발달된 형태는 '실리콘 벨리'를 중심으로 형성된 이공계의 신화적 부흥에 힘입은 미국 사회의 일론 머스크의 행보가 가장 단적으로 부각된다. 일론 머스크 그 자신의 공화당 지지 행보가 초래한 '화성 탈출 계획'마저 대중의 인지도로 그나마 버티는 이 현대 기술자들의 부상의 이면에는 어쩌면, 미국 사회의 '달러'를 통한 화폐 가치와 기업 가치의 동반 상승이 아닌, 처참한 기술적 몰락과 야만성을 보여준다.&nbsp; &nbsp;  &nbsp;  아카이브&nbsp;  &nbsp;  현재의 IT 기업가들은 자신들의 업적을 천문학적인 막대한 지분을 자신의 명의로 소유한 채, 사유 재산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된다. 그들이 바로 기능 자본가들이다. 반도체라는 산업 자본과 IT라는 상업 자본의 결합으로, 기술적 수단을 매체로부터 매개하여 전방위적으로 대중들을 홍보하고, 그에 따른 막대한 비용을 투입하면서도 노동의 생산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노동자 전반에 대해 생계를 위협하는 방식으로, 그러한 '설계'에 개입하게 된다. 중간 관리자들은 그들의 물신성을 숭배하는 부르주아지 집단에 소속되기도 하면서 경쟁 사회를 통한 독식 구조를 바라며 고군분투하게 된다. 이러한 경쟁들이 모여 결국, 부르주아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보안 업체 집단까지 별도로 고용하고, '해킹'과 '범죄' 사이에서 이러한 기술력을 합법화시킬 수 있는 '유능한 인재'들을 교육적으로 배출하게 된다. 그들은 업무에 가담하면서 이러한 '유능한 인재'를 지휘할 수 있다는 착각까지 범하며 광범위하게 이들의 기술력 전반을 지배하고자 하는 시도와 더불어 자신들만의 '아카이브'라는 업적의 수단으로 위안을 삼는다. 그것이 현재의 부르주아 언론들이 바라는 인공 기술의 범위를 증폭시켜 자신들의 지분의 확대와 사적 이윤 추구의 법적 명분을 더욱 정당화시키도록 홍보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 사회에 진입한 자본가들은 정치화라는 경제적 지위까지 차지하며, 자신들을 보호하는 무장된 (임베디드) 장비를 착용한 상태로 치외 법권을 옹호하며 자신들의 폭력까지 정당화시키는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오히려 무력한 존재들이기에 그들에게 별도의 비용까지 과감하게 지출하게 된다. 곧 경제적 예산 낭비의 형태는 그들에게 지출되는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보호 수단'인 것이다.&nbsp;  &nbsp;  그들에게는 인력의 동력을 무한한 기계가 대신한다는 이 모순, 곧 노동력의 체납된 지불이 이제는 국가 전번에 채무로 초과되었다. 그들은 노동자라는 존재를 '추상화'하거나, 이들의 투쟁 자체를 제거 및 삭제했으며, 노동자가 '자본화'된 상인들만이 남을 것이라는 지극히 자본가적 발상을 추구한다. 각국의 명문대를 나온 기술자들은 작은 사무실에서 앉아 자신들의 흥미를 사업화시킬 명분을 찾게 되고, 그것의 공공 발전마저 저해시키는 사익화된 수단들을 찾는 과정에서 부르주아지의 생산 수단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한다. 그것의 시작이 바로 '컴퓨터'라는 본체의 탄생이었다. 이러한 '모델링'의 작업은 결국 그들의 '사유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가상 화폐'의 전면 추상화 작업인 셈이다. 그것은 '은행'을 대체할 수도 있고, 자신들의 자본의 생산 수단을 개척하는 방식으로, 고정된 부르주아 설계는 현재의 국가 사회 전반의 기틀을 '전멸'시킬 수 있는 종말을 부추긴다. 도메인의 생성부터, 비즈니스 역량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는 '고객 맞춤 서비스'란 개인 용역까지 고용하여 '자동화'의 도입을 통한 소비만으로 충당되는 자본가 기업의 정당성을 공포하고, '황폐화'된 세상까지 최후의 종언을 자신의 승리라 자부하게 된다.&nbsp;  &nbsp;  프로그램&nbsp;  &nbsp;  초창기 '프로그래밍' 언어는 단순한 명령어였지만, 그것은 이제 막대한 이윤 추구를 위한 무제한적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그러한 사고조차 가닿기 힘든 고유한 물리 계산법을 더하여 개발 언어에 대한 자유를 부르주아지의 언어로 변환시킨다. 그것은 곧 언어의 '수정'이며, 자본가들의 독창적인 언어를 뇌와 전류의 연결로부터 인간의 심리 기제를 '조종'한다는 '기계적 유물론'으로 환원된다. 관념의 중독처럼 '독창적인' 연구를 중단하지 못한 일부 수학자 및 과학자들은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부르주아 간의 경쟁에서 심화된 전쟁의 발전을 이끌고, 그들만의 법이 곧 강령이 되는 '짐이 곧 왕이다.'라는 군주제 선언을 현대화시킴으로 인해 지배 사회의 매체 전반을 통제할 수 있음을 선포한다. 그것은 머나먼 미래의 노동자이 소멸할 '선언문'과 '강령'으로 작동하고, 그들만의 맞춤 우상 숭배 대상이 '물신 숭배'의 지배 대상으로 구체화 되어 자본의 사고에 종속된 그들은 자본가 '강령'의 노예에 불과하게 된다. 그들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강령을 제시하고 처리하지도 못하도록 무지한 존재들로 규정하고 말았다. 이러한 기괴한 무지함이 보여준 결과가 바로, 자신들이 자본주의를 지배하고 있다는 객관적 대상 자체로의 '자본가'라는 존재임을 망각하고 만 것이다. '프로그래밍 언어'란 결국 자신들이 작성할 수밖에 없는 명령·지시의 도구화를 대체하고, 간편화할 수단을 찾게 되고, 그것을 '기계'에 대입하여 '스크립트', '구조 형성'에 매우 획기적인 기반을 마련할 노동자들을 요구하고, '자동화' 작업을 위한 무제한의 이윤 창출을 위한 가상 화폐 및 암호 화폐를 고안하게 된다. 그것은 금융 · 주식 전반에서 자신들의 명의를 이전시킬 수 있는, '기밀 문서'등과 같은 증거 자료를 삭제하고, 도덕성의 검증조차 자신들의 쪽수로 밀어붙일 수 있는 막강한 변호사들, 그리고 기술진들이 합세하여 '프로그래밍'시키고, 잉여 가치 창출을 위한 수단들을 끊임없이 검증 없이 '합법화'시킨다.&nbsp;  &nbsp;  각국의 부르주아지 전반에서 '오라클'의 관리 및 동작과 터미널을 통한 '웹'의 생성과, 처벌받지 못한 비범죄화된 존재들을 사회적으로 용인하고, 이들을 통합시켜 금융 전반에서 경영 관리자들의 데이터 자료 입력과 비효율적인 관리 생성 체계를 입출력하게 된다. 주식 선물 및 옵션, 그들의 서버 및 통신망을 제어 및 관리하면서 상품에 붙는 세금에 대한 무역 과세를 높이고,&nbsp; 이러한 부르주아 금융 통합 체계를 달성하게 되면서 '뱅킹'과 '모듈'의 일부를 복잡화시킨다. 그들의 '데이터 베이스'는 부르주아만의 독창적인 연구소이다. 그것은 입력·출구 방식에서 '컴퓨터 언어' 전반의 설계를 자신들의 이윤 추구의 획기적인 발상으로, 노동자의 노동력을 끊임없이 소모시킬 수 있는 임의적 기준을 재정립하게 된다. 이는 군대 및 경찰에 의한 국가 폭력과 '프로파일링'을 통한 경찰 치안의 방관에 대한 기록 말소 효과와 국가 중앙 수사국 및 정보국, 그리고 단속국의 기밀 문서 등과 같은 은폐되었던 대량의 기밀 문서 유출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자국의 금융 전반을 지배할 수 있는 가상 발전 체계를 '가상 서명' 방식의 동의 요구를 수동적으로 제어하며 그러한 작동 방식을 '무지한' 노동자들에게 요구하게 된다. 결국 노동자 간의 경쟁 심화 현상은 이러한 중간 관리자들의 위치가 부르주아지 집단의 일부로 소속된 상태에서 국가법과 그 형식하에 암묵적인 동의까지 요구한다. 그것은 단순히 정부 전산 시스템의 불필요함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 세금' 관련 문제를 노동 계급에 엄격하게 한정시키며, 부르주아 자신들만의 강령을 노동자들이 처리할 행정 업무로 주입시킨다.&nbsp;  &nbsp;  시스템&nbsp;  &nbsp;  정부의 전산 시스템의 관리자들의 기술은 금융 전산 시스템의 프로그램들과 동일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한다.' 관리자들 간의 '엔지니어링'이란 지배 체계를 공고히 하기 위한 별도의 '안보망'을 구축하면서 국방 전산 시스템 등 치안 유지를 위한 일부 시스템을 구축하며 인간의 사고 전반을 부르주아 사회에 통폐합시킬 수 있는 비효율적인 교육 방식을 채택하게 된다. 그들은 그것을 '기억한다.' 다만, 자본가 그 자신의 시스템을 기만하고, 자신들의 범죄를 은폐시킬 수 있는, 식민지의 수탈의 역사적 기록을 '삭제'시키고, 자본에 의한 산업 발전이라는 인공화된 기억을 주입하면서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고대하게 된다.&nbsp; 그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해 더욱 고도로 발전한다. 이러한 통제하에 각국의 범죄자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의 원인이 가난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정신 질환에서 오는 것이라 믿는다. 특히 프롤레타리아트 범죄자들은 관리 대상으로, 그리고 일반인들과 분리된 존재라는 규정으로 인해 범죄 문학의 생산은 심화되어 결국, 이러한 체제 일환의 원동력을 기회로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선 노동자를 살해하는 부르주아지를 위한 범죄자로 거듭난다. 그들의 살해는 곧 시스템의 주역인 부르주아지들의 기회가 된다. 모든 물적 거래는 '가상화'되고, '자동화'되어 그것에서 보호받아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라는 착각'이 자본가 간에도 전파된다.&nbsp;  &nbsp;  기계화란 부르주아 사회와 격리된 상태에서 자신들의 안전을 보호받는 시스템의 질서를 유지하고자 반대로, '새로고침'을 취한다. 현대 사회는 자본주의 시스템을 손쉽게 제도화하여 체제화시키고, 부르주아지 가문에 종사하는 더 유능한 인력을 발탁하여 그들만의 출신 성분의 기틀을 다질 수 있는 명분을 더욱 생산한다. 부르주아 자신의 범죄 기록을 말소하고, 그것과 무관한 범죄자들의 흔적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자의적·임의적 처리가 기능하면서 '아무것도 사고하지 못하는' 범죄자들은 무일푼으로 자본의 노동에 종사하는 임금 기계의 일부로 활동하게 된다. 모든 이들은 '디바이스'의 일부만이 자신의 전부라 가정하며 부르주아 논리가 무엇인지도 평생을 가닿지 못한 채 방대한 데이터 더미에 갇히거나, 목적을 잃은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이 노동자라 생각조차 할 수 없도록 자본가의 통제를 받는다. 자본 관리의 인공화가 더욱 진행됨에 따라 이들을 통제하기가 더욱 쉬워진다. 이들의 신분증이 곧 자본주의 사회인 것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급은 더욱 세분화되고, 이러한 각층의 구성원들은 시간의 변화가 마비된 채 군대의 시간처럼 비효율적인 관리 수단의 대상으로, 또는 '무결성'된 결함없는 인간만이 남는 특정 인종 및 성별만이 잔존하도록, 소수 부르주아지들에 의해 '감시'되고, '도촬'된다.&nbsp;  &nbsp;  이러한 문법들의 조직은 '데이터 스토리'가 되고, 기밀 코드를 작성하고, 그들만의 언어를 동작시키는 새로운 컴퓨터 언어를 끊임없이 요구한다. 사생활 보호를 명분으로 바이러스를 늘리면서 결과적으로, 바이러스 노출을 위협하여 별도의 프로그램 설치를 요구하게 된다. 동작 언어를 활용하여 노동자에게 기능적 복종을 요구한다. 이러한 부르주아가 생산 수단을 소유하는 방식과, 최근 '화성인 탈출 계획'까지 인간이 도달하는 '최고의 경지'가 아니라, '최악의 역사'가 기록됨에도, 그러한 자본가의 자존심이란 자본 사회의 심화된 개인 경쟁과 정치적 자금줄을 형성하여 부르주아 지식인 출신 노엄 촘스키 그 자신이 창안한 '변용 언어'와 컴퓨팅의 대입의 기여로, 이러한 '수동적 존재'를 인위적으로 '자동적 존재'로, 자신의 모호한 주장과 행적을 숨기고, 이러한 교제를 정당화하는 '선구적인' 변절자로 남는다. 부르주아지 전반의 네트워크를 위한 프레임워크, 라이브러리, 유지 보수의 Solid (SRP, OCP, LSP, ISP, DIP), 와이어 샤크, 테라포밍, 트래픽 제어, 하드 웨어 관리 및 물리 구조 방정식 등 복잡 언어의 존재는 인공 생성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애자일에 의한 비즈니스 소통 방식은 SRE, ARM, GIC, 트랜스포머, 블랙 박스 등 이러한 광범위한 제어 기능들을 토대가 사물의 통제 원인으로, 기능 고장을 방지하기 위한 대부분의 예방책을 차선책으로 간주하여 사고 충돌의 원인을 일시적으로 제거한다. 그것은 결국, 이러한 복잡 언어의 개념을 계속해서 요구하는 부르주아 유학파 출신의 기술자들이 의도한 개념 혼동을 초래하고, 노동자 간의 모호한 정의에 의존한 채 사고 방지가 사고 유발이 되는 '기적의' 원인으로 규정된다.&nbsp;&nbsp;  &nbsp;  이러한 소스 코드 (원인)과 오픈 코드 (결과)는 결국 자본의 유로화 방침을 제공하기 위한 자본가들만의 코드가 된다. 그것의 생성은 곧 자본의 독점 수단을 위한 일종의 방편과 독점의 재부상과 같으며 그것의 무상화가 아니라, 수익 창출을 위한 '부분적 유료화'를 프로그램에 확대한다. 결국 인공 수단은 제어하지 못하고, 자본가들의 통제만 강한 '자유로운 네트워크'가 기능하여 마치 '원자력의 통제'가 '양자 컴퓨터'의 접촉된 계산과, 핵 융합 회로의 건설을 '정당하게' 추진하며 지배 계급 간의 전쟁을 부추기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한 위험성과 경고는 기술진 내에서도 기밀로 부쳐지고, 그것을 세간에 공개한 이들은 '의문사'를 초래하고, 도리어 자본주의의 동력 자체의 활성화로 '희생된다.' 이들의 의문은 '블랙스크린'으로 가려진 채 세부 조사마저 은폐된다. 그것은 자체로 붕괴된 핵 폭발의 위험성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의 폭발성', 그 실체인 것이다.&nbsp;  &nbsp;  클라우드&nbsp;  &nbsp;  '모든 것을 공유하고, 전유하고, 연결한다는' 이러한 만능의 자연적 무한성을 닮은 '클라우드 서비스'가 USB보다 못한 메모리 칩의 수준에서 발전하여 그들의 세부 정보와 자료들의 민감한 모든 '영상 및 사진'들까지 첨부하게 되면서 그들만의 소유 전반을 관리하고 형성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클라우드'가 아니라, 뜬구름인 것이다. 이러한 '모국어'의 말살 사태를 보기까지 클라우드의 집단적 형성은 부르주아에 의한 정신 질환, 아니 오히려 정신 병원에 수용되어야 할 대상이 바로 그들임을 증명하고 만 것이다. '클라우드' 속의 세상에서 진보를 자치하고, 선의를 위장한 채 자신의 성욕을 담는 그릇까지 클라우드 서비스에 의존하고 요청한다. 그것의 일상은 밀접하게 공유되고, 희화화되고, 자신의 시각을 계급적 구분이 아닌, 이를 희석한 혼재된 '사이트 내의 구성원'으로, 이를테면 '마이크로소프트'가 아니면 하드웨어를 구매할 수 없는, 곧 '마이크로소프트'만이 전부인, 그것을 제작한 노동자들이 아니라, '빌 게이츠'의 명의로 도배된 경제적 클라우드의 부르주아 속성을 대변하게 된다. 그리고 원대한 '실리콘 밸리'의 제자들은 새로운 꿈을 찾아 정치적 입지의 영역까지 확장시키고 있다. 그들의 음향을 조정하고, '클라우드' 서비스를 공유하여 저작권 전반의 모든 소유를 자신들의 이름으로 환원시켜 '자유롭게 공유'하고, 상품에 대한 물신 숭배의 대상으로, 노동자의 범죄를 더욱 부추기고, 자신들의 과오를 가리는 식으로 모든 계급적 논의를 희석시키며 배제시킨다. 그들은 출판물 및 서적에 대한 관리까지 저작권을 독점한다. 예술 자체가 이제 그들만의 소유 대상이 된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작업물에 대한 창작 의욕까지 망각한 상태로 '클라우드'의 일부가 되어 자본가에게 독점화된다. 그것이 곧 음향 제어, 소리 통제가 유도하는 가장 큰 함정이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곧바로 '음소거'하는 것. 인플레이션을 통제하여 통계상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 자본 화폐의 배후에 물가 폭증과 노동자의 필연적 죽음이 발생한 것. 그것은 족쇄를 자신에게 채우면서 자유롭다 말한다.&nbsp; &nbsp;  &nbsp;  개발진&nbsp;  &nbsp;  개발진들은 그 자신이 임금 노동자임에도, '화폐 가치'보다 더한 잉여 노동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만다. 이들은 결국 '서버'라는 영화에 고용된 자막의 일부분이며 부품일 뿐이다. 금융업계의 발달로 인해 그것을 제어할 통제 권한이 있음에도, 자본가 집단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그들 중 일부는 '성실하게 일하여' 관리자의 일부로 겨우 가담하여 자회사를 위한 출판에도 손을 뻗는다. 그러한 평가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평생의 연금 보장과 주택 대출을 갚기 위한 노고로 치환되어 자신의 생존을 위한 지름길이라 평하며 소개한다. 개발진들은 자신들의 영업 기밀까지 기업 간 거래 수단이 되어 상품으로 교환된다. 그것은 물론 불법이지만, 모든 국가들은 이러한 불법을 합법화시키는 명분들도 '정상화'시킨다. 개발진들은 자신들의 상품을 개발하기 전까지 '밤샘 노동'을 더하여 주·야간과 일정한 임금 보수를 받는 대가로, 그리고 성실한 신분의 진급을 위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들의 '이상'에 투자할 가치로부터 남은 연금을 수령하며 노후에 만족하며 평생의 시간을 개발과 더욱 무관해진, 사내의 상사와 고객 맞춤의 명령을 받고, 자본가의 '수익 창출'을 위한 노동 수단을 활용하게 된다. 그들이 소모되면 부품의 역할을 완수하고, '보수가 아니면 대안이 없는 식'의 논리를 구축하여 오히려 더 폐쇄적인 인간으로 변모한다. 그들의 자녀에게도 자신의 가치를 주입시켜 자신들이 소외된 존재라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평생을 잊고, 자신이 노동자라는 사실마저 잊고 산 채, 정치적으로는 당시 링컨이 처했던 남·북 전쟁과 노예제 앞에 선 공화당보다 더 처참한, 자본가를 살리고자 공화당 내 '경제적 민주화'를 노예처럼 외친다. 그것은 이제 그들이 생산한 '인공 수단', 즉, 자본가의 생산 수단의 일부가 됨을 방관하게 된다. 그리고 부르주아지를 지지하며 '민주주의'로 인해 '행복'하다고 말한다.&nbsp; ]]></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불우한 시절</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32</link><pubDate>Fri, 22 May 2026 21:2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32</guid><description><![CDATA[<br>2026. 02. 15.&nbsp;<br> 새로운 세대   &nbsp;  국민학교 시절이 아닌, 초등학교를 다녔고 공립의 의무를 완수하기 이전에, 공립과 사립이 잔존하여 '야간 자율 학습'과 '교내 체벌과 학교 폭력'이 대두된 시점은 2008-2013 무렵이었다. 지금과 같은 교내 모습과 큰 차이를 보였을 정도로, 초등학교 이전 세대들은 30-50명 정도가 수용되는 학교는 19세기의 각축장과 닮았고, 서서히 노동 인구가 감소하여 지금과 같은 교실을 보이게 되었다. 지금은 한 학급당 10-20명 정도가 수용되지만, 예전에는 10-11반이 초과되는 학교가 많이 존재했다.&nbsp;  &nbsp;  국민학교 출신들은 방과후에는 대가족 어르신들의 집안일을 돕거나, 명절이면 분비는 큰댁의 차례상을 지내며 잔치날보다 더 분주하고, 번거로울 정도로 집안일을 많이 치렀던 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이것이 유교적 영향이 깊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전통 방식이란 오히려 가난한 백성일수록 차례상을 자신의 형편에 맞게 지냈다. 그것이 '전통적'으로 해석된 고질적인 차례상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고정됐다고 볼 수 있겠다. 이처럼, 학생들에게 방학과 명절은 대체로 반가운 날이지만, 학교를 간다는 것 자체가 노동과 다를 바 없어진 지금의 사회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nbsp;  이 세대들의 공통점이라면 오래되고 습한 나무 바닥의 작은 가시에 찔리거나, 교내 청소를 학생들이 담당한 적이 있었다. 외국인 학생들은 이를 도저히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19세기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낙후된 교실의 환경과 지저분한 놀이터에서 가난한 아이들은 비싼 학원비를 감당하고, 자신의 자유를 곧 '성적의 기준'이라 여기면서 자라 왔다. 그것이 곧 지금의 '어른'이 된 이들이 체감하는 삶에 대한 깊은 소외와 맞닿아 있다.&nbsp;  &nbsp;  그럼에도, 이들 중 일부는 그것에서 이탈했다고 볼 수 있는 '홈스쿨' 교육을 별도로 받거나, 사교육을 그만두었고, 공교육의 대안을 고려하여 성적을 중심에 두지 않는 자유 교육관을 가진 부모들도 존재했다. 이들은 자신이 유명한 명문대를 나왔음에도, 사교육 시장의 형성까지 어느 정도 체감했기에, 그것에 일부 반대를 표하며 자녀들을 학교 생활 내에서, 또는 그러한 박탈감을 더 이상 겪지 않도록 노력했던 것도 일부분 사실이다. 지금도 현 세대 부모들은 자녀의 학원과 양육에 대해 똑같은 고민을 안고 있지만, 그것은 '결혼과 자녀'에서 부담의 의무로만 여기는 고정된 관념에 대한 불만으로 표출되어 밀집하여 나타나고 있다. 이들은 임금 노동 생계를 유지하면서, 그것을 그만두어 자녀 양육의 분배를 주위와 나누고 싶어한다. 이는 결혼 생활의 유지 비용마저 개인의 책임으로만 한정하여 감당하기 어려운 '소득의 격차'마저 줄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nbsp;  &nbsp;  사실 아이들은 긴 초등학교의 일정 수준의 의무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노동 현장에 들어가기 위해 사회적 평균 조건을 따지고, 이러한 국공립과 사교육의 대립이 남긴 허점은, 자신들의 이익이 먼저인 '자본의 문제'와 실질적으로 직결되고 있을 때조차 대학 교육의 실상을 체감하게 된다. 현실적으로, 교내 성적을 1위한 것은 자신에게만 중요한 것이다. 특히 기계 공학자에 대한 진로를 가진 이들은, 그러한 부모에게 교내 성적을 대단히 중시하는 경향을 물려받았다. 그러한 부모의 '안정적 바램'이 일부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협소한 시각'일 뿐이다. 이·문과로 분리해서 사고하는, 또는 대학의 '융복합화'를 위해 더욱 사회적 평균의 수준을 상향 조정하는 방식을 부추기고 전제한 결과가 결국 시장화된 대입 시험 문제의 결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업의 형성'과 '성적에 대한 고집'이 빚은 '취업'의 실태와 '자포자기'의 측면도 생겨났다. 이는 곧 '생계가 아니면 대안은 없다.'는 극단적인 사회적 시각이 사회 전반에 형성될 우려가 있다.&nbsp;  &nbsp;  앞으로 학교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닐 것이다. 4년제가 꼭 인생을 좌우하는 의무가 아니듯이, 지금의 정규 교과를 반복한다는 것이 불합리하고, 비효율적인 기초의 인식들도 저변에서 확대되고 있다. 그것은 세대의 차이로 인한 부모의 간극이 자본의 '현대화'에 따른 극심한 피해를 남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일제식 국가의 통제하에 잔존하던 일정 시간에 태극기를 보며 애국가의 곡조를 듣는 관습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다닌 부모들은 야간 자율 학습이라는 그 고역을 그만두고 싶은 기조가 생겼다. 이러한 세대 차이로 인한 간극은 '자본 사회'로 편입되기 위한 극심한 경쟁 및 충돌을 빚었고, 그것은 서로 간의 '타협할 수 없는 산물'을 거쳐 가족 구성원의 일부가 된다. 이는 곧, 한국 사회가 가부장적 전통 사회에서 곧바로 식민지에 의한 제국주의 과정을 거쳐왔던 산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다.&nbsp;  &nbsp;  이를테면, 반드시 정규 교육을 마치지 않더라도 노동 현장에 종사하거나 사회적 관계를 맺는 데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자격과 계산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대우하는 태도와 독서를 중시하는 풍조에서 자라날 수 있다. 따라서 교실보다 도서관이 앞으로 더 중요한 자양분인 셈이다. 결국 이전 세대가 각자 안고 있던 부모의 고민이 이제는 더 이상 '개인의 고민'만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이상적인 단상'일 뿐인 것일까. 자신의 직업과 진로의 적성이 생계로 인해 지금까지 불일치되는 지점에서, 미술을 하려면 학원을 다니는 그러한 편협한 시각이 모여 지금의 '예술가'를 '천재'와 '재능'의 영역으로만 치부하여 한정하고 말았던 것이다. 적어도, 아이들은 각자의 성장통을 겪더라도 일정한 나이가 되면 그 세대와 독립하여 자신의 둥지를 떠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은 아이들을 '새장의 둥지'나 '개구리의 우물'만이 이 세계의 전부라고 여긴다.&nbsp;  &nbsp;  '아이들은 학교와 대학이 아니라, 도서관과 놀이터에서 자라야 한다.'&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벼루를 갈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31</link><pubDate>Fri, 22 May 2026 21: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31</guid><description><![CDATA[<br>2026. 02. 12.&nbsp;<br> 시대 정신   &nbsp;  지금까지 시대정신이라 함은 때때로 헤겔이 언급한 이상적인 '위인'을 말했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하나의 주제에 대한 다른 일화 정도를 전하려 한다. 분단 시대가 도래하기 전부터 고려를 패망시키고, 조선은 중앙 집권의 기틀을 일찍 다졌다.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를 침략했을 때 군주제의 유지하에 더 큰 부를 가져다 주겠다는 일본의 영토 밀약에 서명을 한 고종과 순종 부자는 결국 일본의 황태자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한반도의 외부 침략을 지금까지 정당화하는 일부 증거로 남게 되었다. 그로 인해 한국에서도 이러한 군주에 의한 계약 서명이 아직도 유효하다고 믿는 인간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한반도 내 더 큰 식민지적 혼란을 추구하게 만든 원흉이라는 것도 어느 정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모든 일본 민족에 대한 혐오를 표시해서는 아니다. 다만,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그것에 복무한 이들에게 가장 해당되는 말일 것이다.&nbsp;  &nbsp;  결국 6.25를 기점으로 분단에 의한 두 국가가 성립되었고, 한 진영은 스탈린의 지도하에, 또 다른 진영은 미군정의 치하하에 분리되는 상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중요한 지점이 있다면 신분 제도가 폐지됨에 따라 기존의 토지 일대를 점유하고 있던 봉건 귀족들은 미국과의 원조 끝에 치부를 맞이한 무역 상인들과는 달리 하향된 신분 속에서 갈림길을 맞이하였다. 그들은 기존의 중간 계급보다 못한 상태에서 붓만 다룰 줄 아는 신세로 전락했다. 일부는 양반 세력과 결탁하여 국가 왕조의 부활을 기대하며 대한 제국에 복무했지만, 일부는 결국 농민의 길을 택하였고, 지금까지 '선비'라는 이름을 감추면서 이러한 귀향을 벗삼아 농민들과 함께 지내기로 결심하게 된다. 이 추측이 맞다면 일부는 경주 및 안동 지방에 여러 분포한 성씨 가문들이 대체로 명문 가문들이 많았지만, '패가망신' 당한 채 농촌 지방으로 이주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농민 공동체를 구성하게 되었다는 일부 주장도 타당하게 된다.&nbsp;  &nbsp;  무산 계급 역사의 상실  &nbsp;  그러나 왕조 성씨와 일반 성씨가 동일한 성씨라고 하더라도, 계보에 의한 구분이 오히려 일제에 의한 족보가 훼손된 상태에서 그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오히려 봉건 왕족의 잔재였다고 밝히고 싶다. 중요한 것은 프롤레타리아트 신세로 전락한 이들은 선비나 농민이나 가릴 것 없이 어울려 공동체를 구성했다는 점은, 조선 왕조 사회와는 다른 풍경을 보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구성원들은 지금도 일부 남아 독립 운동에 종사하거나, 때때로 국가를 위해 희생을 치르기도 하였지만, 그것을 이 자리에서 논하는 것은 조금 실례가 될 수도 있겠다. 아무튼, 정치적 진영에 의한 민족지들은 북을 선택한 이들조차 비슷한 성씨가 많이 분포했으며 이들 중에서도 일본 제국주의를 선택한 이들에 대한 처벌이 어느 정도 이뤄졌는지는 아직 사실 파악을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에 의한 재산의 수탈 과정과도 일치하며, 지금의 '친일파'라고 불리던 재산을 불리는 존재들에 대한 한국의 잔재를 매우 세부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nbsp;  &nbsp;  봉건 제도는 이런 식으로 제국주의가 침략을 했을 때의 모순적인 상황을 고스란히 자본주의와 함께 재건하면서 더욱 혼란스러운 수습기를 거치도록 만들게 된다. 그들은 오히려 국가를 옹호하는 논리를 펴거나, 때때로 국가보다 더한 대한 제국을 기리면 기렸지 이러한 혼란을 정체시키도록 만든 측면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장기간의 군부 독재까지 도입한 국가 헌정 사상의 일부를 이루었고, 미군정 치하에서 제작된 헌법의 기틀 아래에서 민주주의가 '합당한' 제도 자체로 정착하고 말았다. 제도는 곧 경제 제도로 설명해야 함에도, 민주주의라는 이념 자체를 제도로 만든 관념적 모순은 이러한 현대 국가적 상황에서도 그대로 잔존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그동안 계급적 구분의 부재가 초래한 결과는 오히려 '영친왕'의 사례에서도 보여주듯이, 그들의 후손들이 여전히 잘 생존하여 더 많은 사회적 훼손을 야기한 측면도 배제할 수 없다. 그들은 '자수성가'했다고 말하지만 미군과의 무역에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지금의 자본의 기업을 설립하여 부흥하였고, 그것은 여전히 계급적 차별 및 정치적 폭력까지 정당화시키는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배후의 권력이 되며 곧 부르주아 독재의 일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아무리 친노동자 출신이더라도, 이는 사회적 신분 및 출세가 그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계급적 위치'가 그 자신을 만드는 것이다.&nbsp;  &nbsp;  계급 투쟁  &nbsp;  그러면 계급 투쟁은 일단락된 것인가. 그것은 지금까지 부르주아지들의 독단적인 의회 정치가 벌이고 있는 국가 쟁탈전의 그늘하에, '서민을 위한 정책'을 피겠다고 말한 한 '포퓰리스트'의 구도에서 지금의 군부 독재의 장본인을 부정하면서도, 정작 부르주아지의 일부로 견제 및 통합된 사회적 시각은 어떻게 설명되는가. 그것은 오히려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계급적 위치로 설명된다. 그동안 프롤레타리아트는 정녕 누구를 기리며 맞설 도구조차 없이 항복을 선언해야만 했던 것인가 (!) 그것은 일본의 수탈을 지켜보고, 아니, 창씨개명에 겨우 의존해야만 살아남던 지금의 상황과 과연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한 이들의 전 생애는 지금까지 두 국가론에 갇혀 서로와 마주보지도 못하고, 부르주아 견제도 아닌, 평생을 자본의 굴레에 갇혀 살았다고 언제쯤 말하게 될까.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이러한 노고와 활동을 전개한 가난한 출신의 '프롤레타리아트'이야말로 오히려 이 시대정신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인 것이다.&nbsp;  &nbsp;  '작은 이익을 보고 들이친다면, 큰 이익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nbsp;  [충무공, 『난중일기』, 갑오년 (1594)].]]></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국제 노동자 협회</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22</link><pubDate>Fri, 22 May 2026 21: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22</guid><description><![CDATA[  &nbsp;  2026. 02. 05.<br> 인터내셔널의 의의  &nbsp;  19세기의 세계 역사를 다루는 이들이라면 '인터내셔널' 창립을 보게 된다. 물론 노래는 들어봤어도 의미는 모를 수도 있기에, 매회마다 주기적으로 개최된 이 행사는 인민들의 보통 선거제에 의한 선출 방식이 아닌, 각국 노동자들의 추천 방식으로 채택된 노동계 인사들이 연단에 모여 안건을 논의하면서부터 시작하였다. 주요 안건은 산업 발달기의 자본가를 어떻게 상대할 것이며, 노동자의 요구를 담은 제안서를 토대로 강령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가 주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오랫동안 숙련된 노동자들이었으며, 자신들의 처지에서 분명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인터내셔널의 창립 배경이 현대에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각국 정상들의 '국제 기구'를 자임하는 지금의 UN 정도의 역할과 경쟁 사회 진입에 승리한 자본가 개인의 계보적이고 독점적인 부흥에 앞서, 이들은 노동자의 역할에 대해 실질적으로 자문하여 토론하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처한 각국의 상황을 보도보다 빠르게 연락을 취했고, 이에 대처하여 교류할 수 있었다.&nbsp;  &nbsp;  이들은 노동자의 역할에 대해서도 숙고하여 결과적으로 노동자들의 정치적 정당 건설까지 앞서 이루었다. 이러한 시도가 현재에는 비록 붕괴된 시점이지만, 20세기까지 비교적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비결도 있다. 노동자들이 이 국제 기구에 전원 가입하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뜻을 모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자신들의 처지에서 다루어진 심도 깊은 강령과 안건을 제시하였고, 지금도 그 선언문은 여전히 유효한 의미를 남기고 있다. 이처럼, 국제 노동자 협회의 설립 및 운동 배경이 노동자 개인의 독단적 성향에서 형성된 노동 사회에 대한 착각으로 여긴다면, 인터내셔널의 의의를 되새겨 보는 일은 중요하다.&nbsp;  &nbsp;  전 세계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국가 및 지역마다 개별적인 배경 또는 특수한 상황에 따라 노동자 투쟁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을 두고 필연적이라 부른다면 이러한 자발적 노력 이전에, 도대체 노동자를 위한 정치적 조직 건설이 왜 필요한지를 어느 정도 아는 것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된 시점에서 유효한 의미를 지닌다. 지금의 자본가들은 '포브스', '다보스', '이코노미스트' 등과 같은 유명지와 포럼을 토대로 경제적 협의체를 구축하였기에 자본 계급만의 독점적인 자본 구조 역시 형성된다. 전 세계의 자본가들이 고도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자본의 혁신을 자랑하는 시점에서, 당면한 노동자들은 자신을 요구하거나 표현할 수 있는 건설적인 '국제 기구'와 매체가 점차 부족해지는 현상은 비단 국내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자본 사회에 연쇄적으로 묶여 있는 전 세계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인질을 삼는 '잔혹한' 정상 전쟁의 이면에서도 충분히 드러난다.&nbsp;&nbsp;  &nbsp;  이처럼, 한 개인의 노동자가 지닌 생각은 점차 중요해진다. 특히 자신이 노동 계급의 일부임을 자각함은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상호 간 자신의 상황에 보태어 전 세계 노동자의 단결에 대한 인터내셔널 기구의 '필요' 역시 요구된다.&nbsp;&nbsp;]]></description></item><item><author>서기원</author><category>학습·배움터</category><title>강령을 위한 전제</title><link>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18</link><pubDate>Fri, 22 May 2026 21: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02839252/17292018</guid><description><![CDATA[<br>2026. 02. 04.&nbsp;<br>1. 지금까지 사전적 용어는 그 표기가 잘못되었다.&nbsp;&nbsp;  &nbsp;  2. 본래 헌법은 국가의 유지 기능과 통치 기구의 보존을 위함이다. 즉, 헌법은 폐기된다.&nbsp;  &nbsp;  3. 기존의 선거 제도는 정치적 자유에 따른 보통 선거권이 주어졌지만, 선출된 의원들로 인해 적합하지 못하다.&nbsp;  &nbsp;  4. 1인 1표 제도가 동등하게 주어지더라도, 확률적인 의존도가 강한 투표제는 그 선거 제도의 한계이다.&nbsp;  &nbsp;  5. 대의제에 따른 노동권 역시 자본주의 순환에서 자본가 간의 경쟁 및 격차를 심화시킨다.&nbsp;  &nbsp;  6. 모든 국가 원수는 '인민의 적'이다. 임기는 보장될 수 없다.&nbsp;  &nbsp;  7. 소비에트는 우리말로 '평의회'라는 뜻이다. 노동자들의 추천하에 채택된 노동 인사들은 노동자 평의회의 심사를 받게 된다.  &nbsp;  8. 자본주의는 자발적으로 붕괴되지는 않지만, 언제나 내재적인 모순이 존재한다.&nbsp;  &nbsp;  9. 모든 법률의 권한은 '일시적'이며, 그것은 곧 노동 인민과의 충돌이다.&nbsp;  &nbsp;  10. 국방력과 공권력은 지배적이지만, 인민 전반의 반발을 일으킨다. 따라서 징집제는 무의미하다.&nbsp;&nbsp;  &nbsp;  11. 모든 생산력의 주인은 노동자이다. 이들은 일정 소득이 없는 무산자가 자립할 수 있도록 '무조건' 지원해야 한다.&nbsp; &nbsp;  &nbsp;  12. 주택 시장은 붕괴된다. 반대로, 이는 곧 주택의 보급이다.&nbsp;  &nbsp;  13. 경제 제도는 시장 경제가 아닌 계획 경제로 대체된다.&nbsp;  &nbsp;  14. 아이들은 입시 제도를 비판하여 거부할 권리를 가지며, 자유로운 교육관을 선택할 수 있다. 단, 기초 노동자 학습 필수&nbsp;  &nbsp;  15. 노동은 더 이상 의무가 아니다.&nbsp;  &nbsp;  16. 모든 기존의 고위직 장관 및 의원들은 사퇴해야 한다. 그리고 심사된 하위직 노동자 인사들로 대체된다.&nbsp;&nbsp;  &nbsp;  17. 모든 강령은 노동자 간에 충분히 비판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nbsp;&nbsp;  &nbsp;  18. 모든 은행 및 주식은 '몰수의 대상'이다.&nbsp;  &nbsp;  19. 의료 및 교통은 논쟁 대상이 아닌 전면 무료화이다.&nbsp;&nbsp;  &nbsp;  20. 모든 기술의 자유는 노동자의 무료 수단이다.&nbsp;  &nbsp;  21. 매회 주기적인 국제 행사 및 노동자 추모제를 개최한다.&nbsp;  &nbsp;  22. 노동자에게는 인종 및 국적이 없으므로, 각국의 침략 및 모략 의사도 없다.&nbsp; &nbsp;  &nbsp;  23. 노동자 간 불상사 및 피해가 발생할 경우, 중재 위원회를 구성해 노동자 심의에 따른 '사형까지' 결정하여 하부에 보고한다.&nbsp; &nbsp;]]></description></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