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으로 와, 악마의 이론을 들려 줄게...
최휘현 지음 / 잇스토리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장르소설을 읽을 때면 장면 묘사가 훌륭하고 흡입력 있어서 영상이라는 다른 차원으로 표현한다면 그 또한 몰입할 수 있는 수작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그렇게 태어난다. 좋은 소설의 영상 판권이 팔리고 캐스팅을 하고 촬영을 하고 영상으로 만들어지고 영상의 소비자들은 원작이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식이다. 반면, 태생이 영상인 작품도 있다. 영상 작가. 드라마 작가, 대본 작가, 시나리오 작가 등 많은 이름이 있지만 그들은 애초에 영상을 위한 글을 쓰는데, 영상 작품은 캐스트부터 크루까지 여러 사람이 같이 만드는 작품인 만큼 책 만큼 자유롭게 쓰고, 제작하고, 판매하기가 어렵다. 잇스토리는 이런 과정에서 금을 캐 낸다. 배우 임금을 포함한 제작비를 투자 할만큼 지지는 받지 못 했지만 그 자체로 훌륭한 이야기를 가지고 역으로 소설화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나는 흥미를 느꼈다.


굉장히 낮설었다. 스릴러나 서스펜스 영상물의 경우 장면 전환이 빠를 때가 있고, 대사 없이 화면에 달라지는 앵글을 비춰줌으로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기법이 종종 쓰인다. 태생 영상 후생 활자 작품을 별개의 장르로 인정하고 이런 특징을 개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이해심으로 받아들이면 이것도 즐거울 수 있다.


이 책에는 두 편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첫 편 <악마의 이론을 들려줄게> 는 돈과 돈으로 인해 사람이 자신의 악한 버젼을 보여주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두 번째 편, <우리 집으로 와>에는 정신과 의사 조영훈이 주인공이다. 실력은 뭣도 없는데 잘 생겨서 스타덤에 올랐다는 설정 같다. 그런 조영훈이 만난 특이한 환자와 그의 비밀에 관한 스릴러이다.


가끔은 이런 작품이 당길 때가 있다. 이야기가 너무 전형적이어서 화풀이 하듯 책에다가 감정을 쏟는 것으로 기분을 풀고 싶은 날. 어디서 얼마나 화를 내게 될 지 예측이 되어 통제가 가능한 화풀이. 옛날에는 바닥에 구멍을 파고 임금님귀에 대해서 소리 쳤지만 요즘은 이런 스릴러 책을 펼치고 갑질 좀 그만하라고 외치는 추세인가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거북은 어디로 가야 할까? - 기후 위기와 지리 발견의 첫걸음 5
최재희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소년은 무조건 다 읽어야 할 책이고, 어른들은 가급적 구매해서, 아니면 최소한 도서관에서 훑어보기만이라도 해 주세요. 쉬운 책이라 훌렁훌렁 잘 넘어갑니다. 서울 휘문고 지리 선생님이 학생들을 가르치는 마음으로 쓴 책이에요.

다들 기후위기니 환경보호니 텀블러와 에코백을 써야 한다는 둥, 관공서엔 일회용품 반입 금지라는 둥 말을 하는데 왜 그래야 하는지 정확히는 모르겠고 전기와 가스값이 오르는건 정부의 운영 능력 부족이라 그저 돈만 많이 벌면 모든게 다 해결될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최근에 어떤 분이 인스타 댓글에 대놓고 "환경에 관심 없으니 에어컨 계속 틀겠다" 고 한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기후위기를 무슨 정치인 선거 정도의 이념 수준으로 생각하는 것일까요? 기후위기 음모론자들이 지구평평설자들과 같은 부류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시하고 싶은 것일까요?

이 책에서는 아주 쉽고 명확하게 일상적인 행동의 인과관계가 설명되어 있습니다. 주옥같은 설명들로 가득해서 하나 하나 옮겨오고 싶지만 그러면 책을 사서 보지 않을까봐, 그리고 저작권에 대한 우려가 있습니다. 책에 수록된 친절한 도표와 지도, 이해를 돕는 사진과 함께 알찬 설명을 읽자면 이해가 쏙쏙 됩니다. 청소년기 자녀를 위해 책을 구매하셨다면 같이 읽으세요. 슬픈 내용이 없는데도 책을 읽으면서 가슴 치며 속에 고인 눈물을 참아냈기에 그로부터 우러러나온 마음으로 북리뷰를 쓰고 있을 뿐입니다.

책을 꿰뚫으며 반복되는 주제는, 대부분의 환경 문제는 온실가스로부터 발생된다는 것입니다. 화석 연료를 사용하거나, 메탄을 뿜는 가축을 기르거나, 탄소를 흡수하는 산림을 파괴한다거나 하면 지구에 이불을 덮는 효과가 나고 일단은 탄소 저장소인 빙하가 녹아서 악순환이 계속됨은 물론 빙하가 해류의 흐름을 방해해서 더욱 온난화를 가속시키는 등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재앙이 일어납니다.

평균 기온이 산업혁명 이전 대비 2도가 높아지면 30억명이 마실 물 조차 없어서 난민이 되거나 죽게 됩니다. 남은 인구도 문명의 많은 것을 잃은 채 겨우 살아남겠죠. 그 난민은 대도시에서부터 발생할 겁니다. 사하라 사막 테두리의 사막화가 평균 1년에 2.5km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울 도심 기준 매년 지하철 3 정거장 정도만큼 더 사용할 수 없는 사막이 되는 것이죠. 한반도에 사막화가 일어나면 가뜩이나 심각한 주거문제가 더욱 심화되어서 대한민국 곳곳에 구룡시(kowloon city)가 재탄생 하는것도 환상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 때 되면 대기업 사원들이 아직도 풍족한 월급을 즐기고 있을까요? 그 때쯤 되면 자원 부족과 에너지 부족, 그리고 에너지 운반 효율 부족으로 기업도 발이 묶이는 날이 와서 전시상황처럼 생존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어뵤을지도 모릅니다.

최근 도쿄 하계올림픽 때 폭염으로 철인3종경기 선수들이 기권하고 구급차에 실려가는 상황이 이슈되었는데 그 당시 기록된 지표면 온도가 50도C 였다고 합니다. 에어컨이 밖으로 내뿜은 실내 열기로 열섬현상이 가속된 탓도 크죠. 그 당시에는 지표가 그 정도 온도였지만 불과 몇 년 후에 그 온도를 목 높이에서 느낄 수도 있다는 전망이고 실제 미국의 네바다주 같은 사막 지역은 작년에도 그 정도에 근접하게 기록되었습니다. 인간이 모두 재택근무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이동하다 자연발화하는 상황도 괴담이 아니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이 책은 수익성 높은 팜유를 채취할 기름야자나무를 심기 위해 인공적으로 파괴해버린, 혹은 지구 온난화로 소멸하는 중인 열대우림을 필두로 생태다양성을 유지해야 하는 이유도 알려줍니다. 반달가슴곰이나 수리매, 도요새등이 귀여워서 보호종으로 지정하고 막대한 돈과 인력을 들여서 관리하는게 아닙니다. 곁에서 키우는 댕댕이가 아니라고 백로나 황새 따위 없어져도 괜찮다고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선 이 책을 먼저 읽고 프라우케 피셔와 힐케 오버한스베르크 공저의 <모기가 우리한테 해 준 게 뭔데?> 를 이어서 읽기를 권장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별의 건너편 작별의 건너편 1
시미즈 하루키 지음, 김지연 옮김 / 모모 / 2023년 5월
평점 :
품절


어릴 적에 지점토를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 중에 새하얀 지점토. 엄마가 어디선가 꺼내오신 식용색소를 한 방울 톡 떨어트리고 내가 그것을 받아 조물조물 반죽하다 보면 색소의 색깔이 은은하게 배던 지점토. 내가 원하는 모양과 색깔로 얼마든지 만들며 가지고 놀다가 굳거나 저녁 먹을 시간이 되어서 지점토를 치우고 나면 손에 살짝 기름진듯하게 남은 막이 어딘가 모르게 아쉬움을 자아냈다.

[작별의 건너편]은 그런 새하얀 지점토 같은 책이다. 죽음 이후의 이야기인데 너무나도 감각이 현실적이다. 사무적이고, 항상 일어나는 당연한 일 같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었을 때의 기분상태에 따라 등장인물들이 다르게 보인다. 억울한 날에는 내 주변의 제대로 작별인사를 하지 못 한 사람들이 생각나서 집의 문이란 문은 다 닫고 오열하듯 울게 하고,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등장 인물들이 세상 백치처럼 느껴져서 삿대질을 하고 싶어진다. 어떤 각도에서 봐도 공감을 이끌어 내는 옴니부스식 단편 시리즈이고, 이웃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의 삶과 억울함을 엿보는것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이 책은 독자 내면의 하얀색 지점토에 쌓인채로 굳어버린 어떤 기억을 마주할 용기를, 간접적 연습을 통해 주는데에 더 의미가 크다.

개인적으로 나는 항상 내 죽음의 순간은 내가 모든 요소를 다 통제하는 그런 상황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죽음을 부정하는 마음이라든가, 당황스러운 감정에는 공감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세계로 건너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 갑작스럽게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은 큰 충격으로 다가오겠지. 사고를 당해 죽은 사람, 갑작스런 병세 악화로 죽은 사람 등 저마다의 억울함이 있을 것이다.

들고 있는 [작별의 건너편]은 정식 출간물의 70% 정도가 들어있는 가제본판이다. 전체 5편의 단편 중 3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얼추 계산해보니 정식 출간시에는 250 페이지 내외가 될 것같다. 각 단편의 주인공들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고, 마지막으로 이승에 못 다한 말을 다 하기 위해 주어지는 24시간동안 산 자들을 만나고 올 수 있다. 단,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만 만날 수 있고, 24시간이 지나거나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바로 환생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이 소설의 버질(Virgil)은 이름도 주어지지 않은 '안내인' 이라는 인물인데, 항상 고카페인 음료인 노랗고 까만 캔에 들은 '조지아 맥스' 캔커피를 마신다. 하도 이 커피가 자주 등장해서 PPL이 아닌가 의심할 지경이었고, 비건이 선택하지 않을 우유가 들어간 커피임에도 왜인지 그 짜릿한 단맛이 당겨서 나도 한 캔 사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체 안내인의 정체는 무엇이며 왜 이 일을 하는가? 너무도 궁금하지만 역시 합리적인 답은 그 역시 이전의 안내인의 안내를 받았을 망자인데 그냥 눌러앉았을 뿐이고, 연옥에 해당하는 작별의 건너편이라는 장소라 커피의 단맛을 느끼는게 아닌가 하다.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눈물샘을 자극할지에 대해서만 한참 궁리를 한 끝에 나온 책 같다.

정말이지, 와사비보다 매운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고양이 식당, 추억을 요리합니다 + 고양이 식당, 행복을 요리합니다 - 전2권 고양이 식당
다카하시 유타 지음, 윤은혜 옮김 / 빈페이지 / 202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닷가의 신비로운 고양이 식당에서 "추억 밥상"을 예약하면 죽은 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어릴적 병으로 떠나간 엄마, 사고로 돌아가신 오빠,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한 어린 시절 친구.. 그들은 추억 밥상의 김이 식기 전 까지는 예약자와 함께 자리하며 생전에 못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람이 있다. 부정적 감정을 꽁꽁 싸매서 묻어버리고, 감정에서 도망치는 사람과, 견딜수 없는 슬픔의 존재감 때문에 오히려 퐁당, 감정의 바다에 뛰어들어 익사하려는 사람. 후자라면 [고양이 식당] 시리즈를 읽으며 등장인물들과 공감하고, 고통스럽게 독자 본인의 슬픔과 정면충돌하는 대신, 단편 속의 슬픔에 마음을 맡기고 함께 울어나가다가 자신의 감정도 인정하고 직시하게 된다. [고양이 식당]은 그런 곳 같다.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이 절대 잘못된 일이 아니라고, 마음껏 울어도 된다고 손 잡아주는 곳.

비단 죽음이 아니어도, 어떤 종류의 슬픔과 설움을 느끼는 사람이더라도 이 책에서 그리는 허망함과 무기력함은 부족하지 않게 공감할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나를 둘러싼 수많은 죽음에 이제 무뎌질대로 무뎌졌지만 다른 종류의 슬픔, 예컨대 자기혐오, 를 느끼고 있는 입장에서, [고양이 식당] 속의 인물들이 느끼는 절망과 마주했을 때 명치를 세게 맞아 멍이 든 기분이었다.

그만큼 감정에 대한 영향이 큰 책이니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되어 있거나, 오로지 본인과 책과 본인의 감정만 함께 보낼 시간이 있을 때 책을 집어들기를 권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디스 이즈 빅
머리사 멜처 지음, 곽재은 옮김 / 스튜디오오드리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회 이미지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겪는 차별과, 고작 '이미지' 때문에 의사가 권한 것도 아닌 자기학대로 고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책을 통해 객관적으로 보았으면 한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가치가 있는' 비키니 사진을 건지기 위해 더 넓은 세상을 등지고 맑은 물인지 오수인지 판단할 생각도 없이 사회 트렌드 흐름에 몸을 맡기면서 '더 멋진 라이프스타일'을 갖는중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며 SNS에 채도를 양껏 올린 샐러드 사진을 올리고선 아래에 어김없이 WW지수 0이라고 자랑하고 본인이 채소를 좋아한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를 설득해 변화시키기도 전에 그런 생활 양식에 자신을 묶어두기부터 하는, 그런 자기학대 말이다. 우리 사회는 '섭식장애를 권장하는 사회' 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자기혐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