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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평점 :
당장 화성으로 이주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가지고 가겠는가? 척박한 미지의 땅의 존재는 언제나 상상력이 풍부한 이들을 자극하기 좋은 소재다. 우리에게 익숙한 환경과 가까우면서도 섣불리 갈 수 없을 정도로 멀고, 가장 닮아 있으면서도 우리가 누리는 것 중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화성은 비단 문학계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과학의 영역에서도 '지구살이'의 많은 문제점을 해소해 줄 수단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인간이 지구 밖으로 이주하여 살아갈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제로 생명이 살아있던 땅을 찾아 지구의 기술력으로 장소를 인간이 살기 적합하게 개척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었을 것이고, 이로 인해 20세기 초부터 직역하면 '화성인' 이라는 뜻이 되는 '외계인 martian'들의 존재, 그들의 공격적, 혹은 상냥한 성향, 그리고 그 외에 지구와 너무 다른 식물생태계, 날씨, 수자원량등으로 인해 고난스러운 '화성살이'에 대한 영상이나 활자로 된 작품은 수 없이 많았다.
개중에서 외면당해온 면모는 결국 식물을 키워 식량을 조달 한다거나, 지구만큼 포용력 있지 않은 화성의 기후 체계에서 생존한다거나 하는 문제는 결국에는 답이 정해진 문제 - 즉, 현대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온도범위와 견뎌낼 수 있는 방사능의 양, 특정한 식량 식물이 자라기에 필요한 온도와 습도 수치, 그리고 그러한 환경을 제공해 주지 못 한다면 어떤 수치로 그들을 개량해 나가야 하는지 따위의 것 - 이고 정말 골치아픈건 지정학적 문제라는 것이다. 새로운 행성은 그 어떤 이익집단의 소유물도 아니기 때문에 화성으로 이주해서 땅을 정복할 의무를 진 사람의 임명, 새로운 곳으로 먼저 이주 할 희망자들 중 실제 우주선에 실을 사람들과 그 순서에 대한 선별, 그들이 화성이라는 어느 국가도 아닌 곳에서 공동체를 형성했을 때에 따라야 할 규칙의 제정 등의 문제는 머리아프게 복잡해 보이지만 낮선 것은 아니다. 이미 수 세기 전 까지만 해도 비슷한 수준의 미지의 땅이었던 남극 탐험대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목격된 과정이지만 남극에 갈 일이 없는 사람들로서는 그런 문제는 '사람이 살아가는게 다 똑같'으니까 자연스레 해결 될 것이라고 치부되기 일쑤다.
하지만 화성 이야기는 다른 이유가 실제로 지구는 점점 더 인간이 살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고 있고, 이에 대해 각종 환경단체의 노력이 성공할 지 안 할 지 모르는 상태다. 엉덩이에 도화선이 닿아서 부랴부랴 화성으로 이주하고 거기서 또 무질서한 이익 싸움으로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이 새로운 '사회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미리 지도자 뿐만 아니라 풀뿌리 차원에서도 관심을 가져 두는 것이 좋은데, 이런 현실을 깊이 있는 지식과 현실적인 상황 설정으로 조명했다는 것 만으로도 [화성과 나]는 값어치 있는 책이다.
🤍 붉은 행성의 방식
인류가 낮선 환경에서 생존하는 데에는 우선적으로 엔지니어, 의사, 그리고 식량을 연구할 생물학자 등이 필요한데 당장 숨을 쉬고 굶어 죽지 않는 데 급급해서 결국 화성이주의 밑바닥에는 사람이 별 공통점이 없는 다른 사람과 같이 살아가며 조율해야 한다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들 간의 사회적 갈등이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사망의 위협에 밀려 지연되긴 했지만 결국 인간 사회다보니 마찰이 빚어지고 화성공동체에도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살인자는 다른 장소에서 생존을 할 수가 없다 보니 죄를 짓고도 그대로 공동체에 머물렀고, 그런 그를 처벌하고자 해도 어느 나라의 법에 따라 얼만큼,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지에 대해 기준이 세워지지 않아 혼란이 빚어진다. 결국 지구의 기준으로 화성의 질서를 잡는 것은 지구처럼 행성을 국가같은 작은 이해집단으로 잘게 찢는 결과를 야기할 것이고 이는 바람직하지 않으니 화성만의 사회를 인정하고 화성만의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끝난다. 정치학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정말 크고 어려운 숙제로 보인다.
🤍 김조안과 함께하려면
SF-로맨스 소설이다. 사회가 정해놓은
틀만 빼고 전부 두각을 나타내는 김조안을 가둬 두기에 지구는 너무 답답해서 결국 그녀는 화성의 식량 자립을 도와줄 농업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발탁되어 행성간 이주를 하게 된다. 반면 그녀의 남자친구는 지구에 남게 된다. 화성으로
희망자 모두를 이주시킬 수가 없어 어떤 기준으로 이주자를 선발해야 할지에 대한 토의에 주기적으로 참여하게 되는 그는 화성으로 간 김조안과
서서히 멀어진다. 하루에
37분이 더 있는 화성의 시간을 다시 균등하게 24로
나눠도, 지구의 시간을 그대로 써도, 지구
기준으로 화성의 시간이 조금씩, 끊임없이 어긋난다는 작은 불편부터, 지구의
정치적 속박과 틀에서 벗어나 화성에선 그들만의 문명을 이루고 있다는 깨달음에서 온 소외감까지 이 두 젊은이의 간극을 서서히 벌려놓는다.
🤍 위대한 밥도둑
화성이라는 지구와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지구의 먹거리를 구하지도 못 하고 지구와 물건, 혹은 생물의 교환이 절대 쉽지 않은 상황, 그리고 지구의 식재료를 기를 수도 없는 시점에서 화성 이주자들은 저마다 기억 속에 있는 지구의 소울푸드를 그리워한다. 어설픈 한국 식당밖에 없는 외국에 살면서 느끼는 소울푸드 그리움도 괴로운데 정기적으로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이면 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별개의 세계에서 느끼는 갈망은 얼마나 괴로울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주인공은 입이 짧아 그다지 먹고 싶어하는 것이 없어 화성 생황에 적응하기 매우 유리해 보이지만 어느 날, 하필 그 많은 한국 음식 중에서 그는 대체재로 이미테이션 하기도 어려운 '간장게장'을 먹고 싶어한다. 결국 그는 여섯 시간이나 여행을 해 행성의 대체음식 전문가가 있는 곳으로 가는데, 마치 사막에서 죽어가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굴을 먹고 싶다고 하니 그를 불쌍히 여긴 사람이 계란 노른자에 양념을 하여 굴의 맛을 흉내냈다는 '프레리 오이스터' 이야기가 생각났다. 아무리 잘 포장해도 생활이 굉장히 제한적이고 자기 생의 범위에서는 희망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에서 화성 이주민들은 절박하게 지구를 그리워 하고 있을 것이다.
정말 잔인하릴만치 간장게장의 묘사가 생동감 있다.
🤍 행성봉쇄령
화성과 지구 사이를 오가며 승객과 화물을 실어나르는 큰 셔틀 우주선에 격추 위협에 대한 메시지가 전달된다. 요는, 다음 지구 방문 스케줄 때 픽업하기로 예정된 승객 모듈을 픽업하지 말라는 것이다.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사일을 쏘아 셔틀을 공격하겠다는 협박이다. 단편 내에서는 정확히 어떤 이유로 어떤 국가에서 이런 요구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벌어진 일만 놓고 보면 우주로 인류의 생활 반경을 넓히는 것에 대한 또 다른 걱정거리가 보인다. 우주선은 통행의 효율성을 위해 무기 등을 탑재하기가 어렵고 광활하게 개방된 우주에서는 미사일 등의 공격을 피해 낼 방법도 없다. 이런 조건 하에 단편에서 나온 것 처럼 스멀스멀 국가들이 영공의 연장선상에 군사 시설과 설비를 띄우고 언제든 이익을 위해 돌발행동을 할 수 있는 위협이 생긴다면 이는 어떤 기준으로 어디의 주도로 어떻게 제제를 가할 것인가? 기술 발전에 따른 새로운 전쟁의 모습을 보여준 단편이었다.
🤍 행성 탈출 속도
표면적으로는 화성에서 나고 자란 화성인과 지구에서 나고 자란 지구인의 장거리 연애 이야기다.
그런데 이 단편에 등장하는 지구에서 이주해 온 아이들과 주인공의 갈등 등으로도 살짝 비춰졌지만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확신을 얻고 싶어하고 본능적으로 '내 무리'와 '다른 무리'를 구분한다. 이해관계의 작은 간극이 생기면 그 틈을 본능의 끌이 파고들어 결국 차별, 배척, 그리고 이 작품에서 암시한 것처럼, 국가간 전쟁이 일어났고, 그런 국가간 전쟁의 전철을 밟고 행성간 전쟁으로 귀결될 수 있다. 표면적인 이공학적 지식의 중요성에 가려 실질적으로 사회를 운영하는 사회학적 능력의 중요성이 간과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 나의 사랑 레드벨트
그다지 멀다고만은 할 수 없는 과거에 현재 대도시를 여럿 거느린 국가의 도시화 과정이 그동안 집약된 기술과 지식으로 훨씬 축약된 형태로, 하지만 모형처럼 꼭 닮아 있는 모습으로, 화성에서 전개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단편. 특히 개발 제한 구역을 지구의 그린벨트를 따라 레드벨트라 명명한 것과 그런 개발 제한의 이유가 지구와 화성에서 어떻게 다른지, 그 분야에 깊게 관여된 화성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지구의 환경파괴, 그리고 그로 인한 온난화가 가속되고 인류가 더 이상 편히 생존할 수 없는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거시적으론 탄소세나 탄소할당제부터 미시적으로는 일회용품 사용 규제까지 환경파괴를 늦추거나 뒤집는 노력보다는 어쩌면 늘어난 인구를 감당할 새로운 행성에의 정착이 인류 존속의 유일한 답일지도 모르는 현재에 재난구호 상황과 똑같이 지구인이 '돌봐줘야 할' 새로운 '아기 국가', 그것도 지원을 한 번 하는데만 해도 막대한 비용이 드는 그런 상황을 현재 지구의 각 분야 종사자와 일반 시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런 환경에 적응해 나갈지 배명훈 작가가 상상한 그 세계에 대한 깊은 고찰이 [화성과 나]에 담겨있다. 작가는 실제로 외교학을 석사까지 전공하고 화성 이주의 국가론적 면모에 관한 국책연구를 맡아 수행한 만큼 이 주제에 이야기 하기에 바탕이 탄탄한 인물이고, 그렇기에 이 책이 다른 화성 주제의 소설들과 차별화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어서 읽기 좋은 도서로는 플라톤의 <국가 The
Republic> 과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Leviathan>, 그리고 비문학인 베른허 폰 브라운 저자의 <화성 프로젝트 The Mars Project>가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