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지는 중입니다
안송이 지음 / 문학테라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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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지는 중입니다_안송이

출판사_문학테라피




<괜찮아지는 중입니다>는 스웨덴에서 사는 한국인 안송이의 이야기로, 상처 속에서 더욱 견고해지는 삶의 자세를 일상 속에서 담담하게 풀어나가는 이야기였다.
  
싱글맘에 자폐증이라는 병을 가진 아들 선물과 타지에서 살아야 하는 상황. 절망적인 상황에서 그녀는 너무나도 힘들어했다. 처음에 스웨덴에 살고 있는 한국인의 일상 이야기라고 하기에, 자연스레 평화로운 북유럽을 배경으로 소탈하지만 즐거운 일상 이야기가 담겨 있을 줄 알았는데, 완전히 착각이었다.


 

*

'엄마, 아빠는 안 왔어.'
'엄마, 병원은 무서웠어.' -p.25

책을 편 지 얼마 안되어 애처로운 아이의 몇 마디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석증 때문에 응급차를 부른 저자가 아이를 태우고 병원에 급하게 갔던 이야기였다. 서문에서 이야기를 시간 순서에 상관없이 나열했다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저자의 상황을 몰랐고, 그저 아이가 많이 놀랐나보다, 그 정도로만 생각했다. 다 읽고나니 이 부분이 제일 슬펐다. 

아이를 당장 맡길 사람이 없어서, 그래서 아이가 열다섯이 되기 전까지는 응급실에 가지 않도록 기도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울컥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 공부를 위해 떠나 온 고향. 먼 타지에서 꾸린 가족. 하지만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았던 남편, 갑작스런 이별과 돌연 확인하게 된 아들의 병. 스웨덴에서 그녀가 배운 것은 인생은 절대로 교과서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  나이를 먹고, 이혼을 하면서 삶이 교과서 같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어릴 때 부모에게 사랑받고, 자라서 학교에 가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대학에 가고, 성실히 일하면 그에 맞는 대가를 받고, 내가 정직하고 다정하면 나 역시 그런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세상이 그만큼 단순하다고 생각했다.

 *  노력한 만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나이를 먹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일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부모의 사랑조차 자연의 진리가 아니었다. -p.94  

한국어로 수다 떠는 것이 너무 그립다는 일화를 보면서는 얼마나 슬펐을까, 닥친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말이 통하는 (의사소통을 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없다는 데에서 오는 고립감은 얼마나 심했을까, 이런 생각들이 연달아드니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절망감이 떠올랐다. 급기야 너무 힘들어 병원에서 상담도 받았던 저자였다. 

*  아이를 키우면서 늘 나 자신의 부족함과 동시에 겸손을, 사랑을, 그리고 아이들의 위대함을 배운다. 세상에는 무수한 위험과 괴로움이 있고 내가 막아줄 수 있는 건 너무나 적다. 아이와 나는 그런 세상에 대처하는 방법, 그 세상에서 빛을 찾아내는 방법을 함께 배워나갈 것이다. -p.120

*  가장 아픈 여름에도 선물이는 자란다. 자라나는 아이를 보면 숨 쉴 수 있다.-p.150

*  선물이의 작은 발전들은 나한테는 큰 희망이다. 큰 위안이다. 행복이다.
   선물아 엄마는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되는 구나. -p.296

하지만 저자는 이겨나갔다. 아니, 이겨나가려고 노력했다. 자신을 응원하는 주변 사람들의 힘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자신의 아이 때문이었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을 여기서 떠올렸다. 모성이란 정말 숭고하고 대단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 그런데 살다 보면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상대방에 대한 이해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나를 제일 잘 이해해줄 줄 알았던 사람이 나도 경험해서 아는데 이거 별 거 아니야, 라든가 너만 그러는 거 아니다, 라는 식으로 나오면 너무나 아프다.

  아픔 속에서 깨달았다. 공통된 경험이 꼭 이해를 부르는 건 아니라는 걸. -p. 278

이 부분을 읽으면서 반성했다. 혹은 앞으로도 계속 경계해야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내가 힘든 일을 겪었다고 해서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에 대해서 말이다. 늘 경계하려고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보다 어린 사람을 만나거나, 경험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비집고 나오는 자만심과 허영심이 있다. '응, 그래, 힘들었지, 나도 그랬어.'같은, 이해한다는 식의 표현들.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책을 읽기 시작했지, 속단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닌데 늘 그런 실수를 하고 산다. 이 책을 읽기 전에도 그러했고. 그런 부분들에 대해 반성하는 마음도 들게 해 주는 글이었다.


삶 속에서 큰 상처를 받았지만, 그걸 극복하고 이겨나가는 과정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나간 <괜찮아지는 중입니다>.

시간 순서대로 배치되어 있지 않고, 인터넷에 쓰셨던 글을 모아서 엮어 낸 그 '순간'들의 모음이라......  드문드문 이혼 당시의 생각이나 남편(거북이)에 대한 회고가 나와서 살짝 당황스럽기도하고, 정말 힘들었나보다 싶기도 했지만, 확실히 이겨나가는 모습이 보여 읽는 동안 다행이다, 라는 생각이 계속 드는 책이었다.
 
점차 나아지는 모습과, 매순간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며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나가는 작가님의 희망적인 자세가 감동적인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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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요에게
은일 지음 / 다향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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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요에게>는 고등학교 동창인 은호와 우주가 갑작스런 이별 후 9년 만에 재회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로, 절망 속에서 두 연인이 서로 의지하고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애틋한 이야기였다.


"9년 동안 숨어 산 기분이 어땠어?"

 우주는 자신의 그림이 전시된 갤러리 안에서 9년 만에 은호와 재회하게 된다. 고등학교 동창이자 한 때 마음을 주었고, 여전히 사랑하는 남자. 이은호. 하지만 그와 관련된 과거 모종의 일과 사건 때문에 그녀는 아무말 없이 돌연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그리고 전혀 이 내막을 알리 없었던 은호는 미친듯이 9년 동안 우주를 찾아왔다.

"나만의 삶은 원래 없었어.
이미 죽은 삶이었고, 살고 싶지 않은 인생이었어.
...... 네가 나를 살렸잖아."
 
우주는 자신을 꽁꽁 가두었던 괴롭고 어두운 삶 속에서 은호를 끌어내 주었던 유일한 사람. 때문에 은호는 자신을 밀어내고 계속해서 도망치는 은호가 야속하기만하다. 하지만 절대 놓을 수 없다. 결국 계속해서 우주에게 다가서고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다.

"나는 너 사랑해.
겨우 이 말 따위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계속 사랑해 왔어."


*

  오랜만에 연달아 남자의 순정에 푹 빠졌다. <나 그리고 너>에 이어 은일 작가님의 <나의 고요에게>까지! <나 그리고 너>의 환이 조용하게, 하지만 존재감을 과시하며 지나버린 10여 년의 시간을 가만히 기다렸다면, <나의 고요에게>은호는 9년 동안 쌓인 애증과 갈망으로 여주에게 달려드는 모습이 애처롭고 짠하게 그려졌던 작품이었다.  

  이야기는 프롤로그에서 두 사람이 영국에 있는 우주의 갤러리에서 재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누가 보아도 오랜 세월 속 삭혀낸 듯한 원망과 짙은 애정이 뒤섞인 듯한 은호의 대사. 우주를 찾느라 잃어버린 9년이 매 순간 지옥이었던 은호. 궁금증을 잔뜩 증폭시켜놓고 바로 이어지는 글은 두 사람의 첫 만남이 담긴 고등학생 이야기다.

  첫장 두 사람의 첫 만남이 담긴 고등학교 이야기를 시작으로 학창 시절과 현재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나오다가 두 사람이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밝혀지는 중후반부터 현재 시점으로 거의 이어진다. 그런데 과거 이야기와 현재 시점의 두 사람의 분위기가 극명하게 다르다보니 각 시점의 이야기 자아내는 분위기가 더 짙게 느껴졌고, 두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일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궁금해서 책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어른들의 이기심 때문에 말을 잃어버렸던 어린 은호, 그런 그를 이끌어주었던 착한 우주. 너무나도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그들이었기에 둘의 사연이 너무나도 안타까웠고, 사랑하면서도 마음을 속이고 밀어내기 바쁜 우주가 짠하고, 그런 그녀 앞에서 포기할 수 없어 매달리는 은호의 모습도 애잔하니. 얘네 언제 이어지나 조급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속독을 하게 되더랬다.

   좋아하는 친구>연인에 순정남 코드라 너무 좋았던 <나의 고요에게>. 남주인 은호는 단연 좋았다. 좋았는데.... 그의 집착과 소유욕으로 범벅된 애증어린 대사들이 묘하게 온탕과 냉탕을 오갔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너를 찾으면서 무슨 생각까지 한 줄 알아?"
"......"

"너를 다시 찾으면, 어딘가에 너를 가둬 두자.
그래서 네가 다시는 도망가지 못하고 나만 보게 하자.
......  그보다 무서운 생각도 많이 했어.
그 긴 시간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더라."-p.60

솔직히 9년을 넘게 찾았는데 온순하게 받아주는 건 진짜 판타지라는 생각이라, 애증과 집착으로 계속 득달같이 달려드는 은호가 되레 현실감 있고 좋았다. 다만, 후반부 쯤, 우주를 시험하려 드는 모습이랑, 이 짠내나는 소금 인형이 제 딴에서 우주를 위한다고 했던 행동이 살짝 반감을 사버렸달까. 
 
여주 우주는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 여주인공 느낌이었다. 특히나 고딩 우주는 왠지 일본 순정만화에 나올 법한 착하고 오지랖 넓은 순수 열혈 청년(?) 느낌인데, 과함과 동시에 그 나이의 풋풋+사랑스러움 사이를 오갔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귀여워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재미있게 읽었던 <나의 고요에게>.
어른들의 이기심 속에서 어긋난 어린 인연이 다시 마음을 확인하기까지 애틋했고, 두 사람이 아픈 사연을 털어내며 각자의 상처를 딛고 일어나 성장하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던 이야기였다. 



<이 서평은 출판사(다향)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직접 작성한 리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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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너
박지영 지음 / 청어람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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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너>_박지영
출판사_청어람




 


"나는 기다렸어, 너" 

파리에 유학 갔던 제이는 이모의 부탁이라는 사촌 언니의 메일을 받고 8년 만에 한국에 귀국한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온 그녀를 맞이한 것은, 놀랍게도 그녀의 남자친구였던 환이었다.
 
아픈 기억을 남겨둔 채 떠나야 했던 한국, 열아홉 살의 시린 겨울에 멈춰버린 제이의 시간.
 
환의 등장으로 제이는 혼란스럽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기로 한다.

그때부터 9년이 흘렀으니까.
이제 둘은 열아홉이 아니라 스물여덟이니까.
 
하지만 긴 시간 탓인지, 계속되는 환과의 갑작스러운 재회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그런 상황에 조금의 틈도 주지 않는 환. 거기에 그녀를 기다렸다는 환의 말이 결정타로 날아온다. 제이는 그 긴 시간을 기다렸다는 환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혼란스러운 것도 잠시, 그녀 앞으로 절망적인 상황들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그래서 더욱 환을 밀어내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녀가 힘들어 할 때마다 늘 그러하듯 묵묵히 그녀의 그림자처럼 곁에서 그녀를 지켜준다. 열아홉에서 멈춰버린 제이처럼 환 역시 열아홉의 그때처럼 그대로 그녀를 지켜본다.
 
비참한 마음에 제이는 그의 마음을 밀어내려 하지만. 무의식중에 그에게 쏠리는 신경과 속절없이 그에게 흔들리는 마음 때문에 불편하다.
 
하지만 환은 그런 그녀에게 똑바로, 오롯한 자신의 감정을 아낌없이 보여준다. 그녀가 헤매지 않도록, 그녀를 가둬버린 시간에서 나올 수 있도록. 아니, 나올 때까지 굳건히 그녀를 바라보고 바라보겠다는 그 지고지순한 마음을 증명하듯이, 애틋하고 절실하게 말한다.
 
 
“......미치도록 보고 싶었는데.
...... 막상 널 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 약 스포 주의
    

   
    
열아홉의 상처로 마음을 닫아버린 채 떠나버린 제이와 그런 그녀를 묵묵히 기다린 지고지순한 순애보를 보여준 환의 이야기 <그리고 ...... 다시 너>. 시점은 1인칭 시점으로 여주인공 제이의 시점에서 전개되지만
(개인적으로) 1인칭 관찰자 시점인 것 마냥, 환으로 시작해서 환으로 끝났던 작품이었다.
 
내게는 <환 그리고 다시 환>이었던.    
    

글은 어쩌면 매우 잔잔했다. 큰 사건들이 터지고 풀어나가는 글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조금 지루할 수도. 프롤로그에서부터 제이를 충격에 빠뜨렸던 중심 사건이 하나 터지기는 하는데, 그 이후부터는 큰 사건 하나 없이 오롯이 주인공 둘을 조명하며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게 놀랍게도 전혀 지루하지가 않았다. 도리어 어느새 몰입해서는 머릿속에 드라마며 순정만화며 상상하며 미친 듯이 읽었다. 나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초반부 조금 진입장벽이 있었지만, 제이의 온 신경을 두드리는 환의 존재감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속절없이 작품에 몰입하고 있었달까.
 
독자로서는 오로지 제이의 시점만 보이니, 계속해서 환을 불편해하고 미안하고, 밀어내려는 마음만 따라가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의 눈물겨운 순애보가 느껴져 버린다. 그러니 책을 넘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과묵해서 대사 몇 줄 없는데도 9년의 지극한 순정이 흘러넘치니까.
 
또, 한편으로는 제이가 왜 그렇게까지 이 남자를 밀어낼까. 혹은 꼭 밀어내야만 하는 걸까? 그런 생각도 들어서 읽기도 했던 것 같다. 작중 인물들의 이야기나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로 어렴풋이 알 수는 있지만, 이해되면서도 동시에 공감하기 어려워서였는지도 모른다.
 
아무리 보아도 9년이나 흘렀다면. 이제 제 잘못이 아닌 걸 알 것 같은데. 왜 과거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던 걸까. 계속 그랬던. 정말 모 이웃님의 말씀처럼 너무 캐릭터가 착해서일까 싶기도 했더랬다.
 
하지만 작중 대사에도 담겨있었고, 작가님이 후기에 남긴 이야기도 있던 것처럼. 우리는 타인의 감정에 무신경하고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그런 것들로 인해 고통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고민하고 쓰셨다는 게 느껴지는 글이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니 제이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아니잖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강도는 다른 거니까. 작은 일이라도 견디기 힘들 때가 있는 반면 큰일에 오히려 의연해 지기도하고. 그걸 알면서도 당시에는 나도 솔직히 이해 못했어.”-p.240
 
이런 것들을 생각하며 글을 쓰셨다니, 이분도 따뜻한 생각을 하고 글을 쓰시는 분이시구나, 그런 생각을 멋대로 해보았다.
 
 
한편, 감성 제대로 자극 당했다고 했는데, 중간 중간 많아서 다 쓸 수는 없고. ...... 개 중에 인상적이었던 게 차고 씬이었는데
(절대로 그런 장면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아니다.). 아아. 정말 간만에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애틋하게 묘사된 글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환은 그날 울었다.
 
나를 격렬히 품고 자신의 격한 감정을 쏟아낸 후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 뜨거운 눈물을 삼켰다. 어금니를 악다물고 소리 없이.
구 년 동안 묵힌 감정을 토해내듯 바들바들 떨면서.
 
나도 울었다.
-p.160~161

 
 
밀어내기 바쁘지만 속으로는 흘러가는 마음을 잡을 수 없어 안달복달한 제이와 제 마음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환. 그런 두 사람이었기에 갑자기 불이 붙은 둘의 장면치고 이야기가 다소 간단히 끝나버렸나 했는데. 뒤에서 다시 훅 들어왔다. 처음에 제이가 “잘래?”라고 하는데 이미 환한테 몰입했던 때였는지. 왜 나는 그게 세상 잔인하게 들렸는지. 너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러지마. 이러면서 읽은 기억이 난다.
 
역시나 다 쓸 수 없지만, 앞에서부터 환의 마음이 차곡차곡 쌓인 탓인지, 뒤로 갈수록 환의 애정 표현 하나하나, 간단한 대사 하나하나가 절실하고 절박하게 느껴지니 미칠 노릇이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보는 사람마냥,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은 사람마냥 제이에게 반응하는 환의 거의 맹목적이다시피 보이는 진심어린 애정 때문에 내가 괜히 절절. 안아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남자라니, 모성본능 제대로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미안하지만 남주가 너무 매력적이니 여주의 매력이 반감되는 마이너스 요소가 발생하기도!
 
위에서는 조금 이해되었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제이의 행동이 조금 얄미웠달까. 아마 제이가 진짜 나쁜 캐릭터였으면 이 절실한 남자 마음 쥐고 흔드는 나쁜 여자였겠다 싶을 정도로, 조금 이기적으로 보이는 태도 때문에 매력이 조금 떨어졌다. 도대체 얘가 뭔데 환이 이렇게까지? 거기다 밀어내려고 다짐하면서 자꾸 환에게 여지를 주는 게 희망고문 하는 것 같아 미웠기도 했다.
 
하지만 이걸 또 역으로 뒤집으면, 읽으면서 내가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든 나를 묵묵히 지켜봐주는 남자가 있다는 든든함과 나를 나로 있게 믿어준 고마운 마음, 애틋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점. 그게 또 좋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여주 1인칭이라 남주의 시점이 궁금했을 법도 한데. 그 마음을 너무 잘 아시는지, 작가님이 남주의 시점을 크게 3번 써 주셨다. 근데 또 이게 완전 킬링 파트였다. 과거와 현재까지 변하지 않는, 오히려 더 진득해진 환의 마음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오랜만에 제대로 감성 자극했던 <그리고 다시 너>.
 
읽으면서 드라마 몇 편이 막 떠올랐다. <도깨비>에서 매번 등장하는 장면인데. 도깨비가 은탁이 해맑게 웃는 장면을 상상하는 씬. 그리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약간 옛 느낌 떠오르게 하는 바랜 듯한 장면 연출과 OST. 또 <키스 먼저 할까요?>의 회상씬들. 왠지 모르게 그런 드라마를 보았을 때의 연출이 떠올라서였는지, 글을 읽는 동안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글을 읽고 멜로망스와 김상민 버전의 <You>가 번갈아가면서 자체 재생하는데...... 가사가, 가사가 정말이지 너무 환이 같아서. 이거 들으면 계속 환이가 떠오를 것 같다. 목소리도 너무 절절해. 또, 제이 입장에서 애정하는 곡 중 하나인 다비치 버전의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도 떠올랐던 것 같다.
     
     
물론 등장인물들이 너어어무 착해서 판타지(?)스럽기도하고,
여주를 쥐고 흔들던 문제도 쉽게 풀린 느낌이 적잖아 있지만.
 
제이가 자신의 상처에서 스스로 일어나 자신의 사랑을 마주하기까지 마음과 환의 순애보가 주된 이야기였으니까. 한편으로는 군더더기 없이 둘의 감정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던 것도 같다. 또, 착한 이야기에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도 들고.
 
 
더운 여름에, 심지어 배경도 겨울. 이토록 잔잔한 글이라니. 궁금했지만 동시에 조금 걱정도 되었던 글이었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도록 글은 너무나도 지금 상황에 잘 어울렸다. 지금이 장마철이라 그럴 수도.
다가오는 태풍에 대비해서 한 권 마련해 두시는 건 어떨는지.
 
오랜만에 기교 없이 정공법(?)으로 승부한 온전한 감성멜로 <그리고 ...... 다시 너>
 
운 여름 장마처럼, 아주 조금은 답답하고 마음을 울적이게 할 수 있지만, 메마른 감성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인상적인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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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저갱
반시연 지음 / 인디페이퍼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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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무저갱_반시연 

 

 

 

“나는 괴물이 아니야. 가끔 괴물로 변할 뿐이지.”

 

 

복국집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바닥 인생을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 노력도 재능이 있는 놈이나 하는 일. 가까스로 이름없는 전문대에 들어갔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그저 ‘안쓰러운 놈’일 뿐. 점차 좁아지는 설 자리에 결국 복국집 삼촌이 되어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복국집의 폭력사건에 휘말리면서 내면에 잠재되어있던 폭력성을 깨우고 만다. 

 

 

푹. 푹. 웃으면서 죽였다.

......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순식간에 매료되어버린 그 느낌은.

......

 

드디어 내가 잘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았어. 나는 타고났다.

 

때리고 싶다.

부수고 싶다.

자꾸 속삭이지 마, 간지러워.

 

상대를 찾아.

목덜미를 물어뜯는 거야.

흐물흐물해지기 전에 꽂아 넣어.

 

하지만 누구를 상대해야 하지? -p.83~85

 

죽일 사람을 찾던 ‘나’는 함께 일하던 추영이 청첩장을 받은 이야기를 듣고 첫 번째 희생양을 정한다. 추영을 사회에 매장시켜버린 리벤지 포르노 영상을 유포했던 그녀의 전 남친. 그리고 그런 남자와 결혼한다며 청첩장을 보낸 옛 친구라는 여자였다.

 

유명무실한 법, 인간을 지키고 있던 규율. 그 안에서 인간 취급 받지 못하고 살아온 ‘나’는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법을 등지고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을 응징하는데 자신의 재능, 폭력이라는 정의를 행사하기로 결심한다.

 

한편, 희대의 살인마 노남용이 출소까지 21일을 앞두고 있었는데. 이를 두고 ‘차장’이란 사내는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객의 ‘보호’를 목적으로 고객에게 위해를 가한 자들을 처단하는 회사.

   

“네가 지은 죄를 말해.”

 

그는 그곳에서 ‘공포’를 무기로 활동하는 남자다.

 

 

복국집 삼촌과 차장.

어쩌면 전혀 접점이 없던 두 사내. 그들이 노남용이라는 자를 매개로 마주하게 되면서 평범하게 흘러가던 두 사람의 일상이 또 한번 새로운 전환을 맞이하게 되는데........

 

 

**

   

프롤로그부터 강렬했던 글이었다. 인간의 끝없는 어두운 내면, 절망, 광기, 욕망, 분노, 폭력, 가학성, 쾌락. 이런 것들에 대한 심리 묘사가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정의를 구현하고 고객을 보호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저자가 던지는 통렬한 메시지가 느껴져 인상적이었다.

책표지 뒷면에 또렷이 보이는, 

 제대로 된 형벌이 없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를 지킬 수 있는가?

하는 바로 그 메시지 말이다.

 

맨처음 싸움꾼으로 등장하는 ‘나’. 그는 삶에 치여 밑바닥 인생을 살다가 폭력 사건을 빌미로 자신의 재능(폭력성)에 눈을 뜬 평범하고 불쌍한 사내였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열심히 굴러도 그저 노력하는 안쓰러운 사람. 그 주변에는 버젓이 잘 사는 범죄자 때문에 자신을 숨기고 사는 불쌍한 피해자 동료뿐이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작품 표현상 행위가 잔혹하게 그려졌지만, 폭력성과 광기에 미쳐가는 그의 모습이 이상하게 납득이 가버리는 글이었다. (물론 폭력은 안 되지만!) 다만, 자신들을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법, 그 법 더러워서 등지고 차라리 짐승이 되겠노라 선언하는 그의 모습이 표면적으로는 소름을 자아내지만, 한편으로는 공감이 가서 처연하게 느껴진다.

정말 절망을 맛 본 사람의 내면은 이런 게 아닐까, 싶기도 해서 짠하기도 했고, 좌절감에 다 부서버리고 싶었던 한때 나 자신의 어두운 감정을 떠올리게 해서 묘하게 가슴아프기도 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꿈도 희망도 없는 캐릭터가 미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던 인상을 주었던 인물이었다.

 

한편, 다른 한쪽에서는 사냥꾼인 차장이라는 사내가 등장한다. 그는 고객의 보호를 주 사업으로 하는 회사의 직원이다. 그 보호는 고객의 위험 요소 제거로, 고객에게 위해가 되는 짓을 한 상대에게 얼마든지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이 차장이라는 캐릭터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남자가 엄청 신사적인 느낌으로 그려진다. 이쯤 되니 오물을 처리하는 청소부 느낌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지 위험했다. 어디까지나 모두 자신이 정한 ‘정의’를 실현하려고 얼마든지 폭력을 행사하는 자인데 말이다.

 

그런데 읽다보면 인물들의 개성에 몰입되고, 행동을 주시하게 된다. 그들의 잔혹한 실력 행사에 ‘윽’하고 놀라고 소름 돋다가도 다음에 벌일 짓(?)이 궁금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기게 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그 행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수단은 잘못되었지만 법의 처벌을 피해간 사람들이 그 대상이니까.

 

그러다가 또 이 인간들의 도 넘은 사고 관념에 혀를 내두른다. 정말 제대로 미친놈들이 판을 치는 글이었다. 그래서 읽는 동안 눈 못 뗄 만큼 재밌지만, 동시에 몇 번이고 머릿속이 피폐해져서 읽다 덮다 했던 글이었다.

다른 의미로 정말 매혹적이고 위험한 글이었다.

 

 

그리고 그 ‘미친놈’의 끝판왕 노남용. 제 멋에 취해 폭력에 잠식 되어가는 복국집 청년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포를 휘두르지만 신사적이고 자기 관리 철저한 멋진 중년의 남자로 그려지는 차장도. 모두 무서웠지만, 노남용은 정말 물건이었다. 정말 이 캐릭터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 캐릭터 때문에 작가님을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나 말해줄까요. 당신이 그냥 평범한 병신이었다면 이쯤에서 돌려보낼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아니거든요. 당신 그런 거 아니잖아요. 인간 그만뒀잖아요. 사람을 몇이나 죽였는지 비린내가 진동을 해요.

흥분이 돼서 견딜 수가 없어요. 쉽게 끝나지 않을 거고, 저는 당신이 찾아온 게 너무 원망스러우면서 사랑스럽고 그래요.”-p.274~275

 

 

 

가학성이 있지만 동시에 고통을 받으면서 쾌락을 느끼기도 하는 남자. 강간에 살인에, 무수한 범법 행위를 저질렀는데 부자에 나름 엘리트다. 그래서 더 무서운 남자다. <리턴>의 오태석과 김학범이 지금까지 본 캐릭터 중에 제일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인생 또라이 캐릭터를 제대로 만나버렸다. 비틀린 성정에 가학 기술에 지능까지 탑재하니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던 것이다.

 

스포라 말할 수 없지만 뒷부분에 나오는 남용의 술래잡기(?) 정말 읽는 내내 심장을 쫄깃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중간 중간 나오는 ‘선생님’이라는 존재는 이 흥분된 분위기를 잠시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는 것 같지만, 이 역시 가만 생각해보면 무섭다. 죽음이라는 안식을 가져다주는 선생님. 사신의 낫을 든 천사 같은 모습이랄까. 그런 기괴한 형상이 떠오르는 캐릭터였다.

 

그리고 앞서 형벌 없는 사회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면, 이 선생님의 이야기에는 죽음에 대한 저자의 메모가 따라 붙는데. 잔잔하게 죽음에 대해 풀어놓은 메시지가 마음에 남긴 파장이 어마어마했다.

 

 

사실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 아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고통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는 인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갈망하는 쪽에 가깝다. 그런 까닭에 나는 인간과 죽음 사이에 놓인 고통을 치워준다. 그들이 비굴해지지 않고 자존심을 지킬 수 있게끔 명예의 경계를 지켜준다. p.75

 

 

이런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달리는 끝은 정말 상상 불가다. 예측불허 반전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고 이용하는 사람들, 결국 누가 자신의 목표를 이룰 것인가.

 

 

끝까지 긴장감을 놓을 수 없는 <무저갱>이었다.

 

스릴러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꼭꼭 추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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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무삭제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0
존 스튜어트 밀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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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_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에서 말하는 ‘자유’란 시민적 자유 또는 사회적 자유다. 사회가 발전하고 시민의식이 성장하면서 시민들은 자유를 얻게 되었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런 자유를 제한하는 권력이 존재해 왔다. <자유론>에서는 그와 같은 권력의 본질과 한계에 대해 논의하고, 개인의 행복을 위한 자유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결국 사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개인의 자유를 실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유에 대한 담론은 시대가 지나면서 그 양상을 조금씩 달리해 왔다. 과거 자유는 정치적인 지배자들의 폭정으로부터 보호받는 것으로, 그 당시에는 지배자들의 권력에 대한 제한을 의미했다. 하지만 인류 사회가 발전하고 정치의식이 성장하면서 ‘지배자’의 위치에 있던 국가 권력을 지닌 자들이 국민의 대리인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 양상에서 그 ‘지배자’들은 국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사회에서 ‘자유에 대한 억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국민의 의지’라는 것이 결국 ‘다수의 의지’로 변질되면서, 다시 ‘다수의 폭정’이 나타났다. 지배적인 여론이나 정서의 폭정과 같은 사회적으로 다수인 자들이 행사하는 억압이 자유를 제한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과 부합하지 않는 개성이 발전하는 것은 막으려 든다. 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정치, 종교, 교육 등을 통한 각 분야, 사회 제도와 규범 등에서 나타난다.
 
물론 과거에는 국가의 질서 유지를 위한 목적으로 자유를 통제하기도 했다. 하지만 개인의 자유가 해악을 가져오지 않는 한, 국민 스스로, 혹은 정부를 통해서든 자유를 막을 강제력을 행사할 권리는 없다. 개인의 의사 표현을 막는 행위만으로도 현재부터 미래,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 해악을 주는 행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견해가 옳은 것은 아니다. 억압하고자 하는 견해가 옳을 수도 있고, 오류일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사상 앞에서 토론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 인간의 판단이 지니는 모든 힘과 가치는 그 판단이 틀렸을 때에 바로 잡을 수 있다는 데 달려 있다. _p.65
 
* 각각 진리의 어느 부분을 반영한 다양한 의견들이 제시되고 격렬하게 충돌하는 것은 해로운 것이 아니다. 도리어 진리의 절반을 담고 있는 어떤 의견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억압되고 있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가공할 해악이다. _p.128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그로부터 나오는 문제도 다양해지는 상황이다. 답이 떨어지는 수학이 아니고서야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토론해야 한다. 나와 반대의 의견도 들어야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부터도 그렇고, 반대의 의견을 듣기란 어려운 일이다.

이 역시 관습과 같은 것에 얽매여서 자신도 모르게, 소수의 견해라는 이유로 타인의 자유를 좀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자유론>은 이 역시 경계한다. 많은 독창성을 지닌 사람들이 관습과 전통 때문에 사장되는 천재성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기 때문이다.
 
 
* 천재라는 말 자체 속에는 이미 그들이 다른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개성이 강하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래서 사회가 자신의 구성원들이 각자의 개성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 마련해 놓은 몇 가지 정형화된 표본들은 천재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아주 심한 억압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거기에 적응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가 않다. _p.153
 
 
사회가 만들어 놓은 표본 때문에 억압을 느끼는 천재들로부터 사회는 유익을 얻을 수 없다. 결국 계속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유를 억압하는 사회는 발전 가능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자유론>은 어떤 권력에 대해서든, 개인의 자유는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지 않는 한 절대적이라는 이야기를 여러 가지 사례와 반론 등을 통해 제시하고 있었다. 여기부터는 조금 책의 중심 내용에서 샐 수 있지만, 나는 이 책이 ‘국가에 대한 개인의 자유’와 같은 정치적인 부문 말고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근육의 힘과 마찬가지로,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힘도 오직 사용할 때에만 커진다. 단지 다른 사람들이 어떤 것을 믿는다는 이유로 그것을 믿고, 단지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한다는 이유로 그 일을 한다면,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능력들은 전혀 훈련될 수 없다. _p.140
 
* 어떤 사람의 욕망과 감정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강력하고 더 다양하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질을 더 풍부하게 지니고 있고, 따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나쁜 짓을 할 수도 있기는 하지만 분명히 더 많은 좋은 일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강한 충동은 활력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다. _p.142
 
* 지금은 인간의 본성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개개인의 충동과 선호가 지나치게 많고 활발하다는 사실이 아니라, 도리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다. _ p.144
 
 
사회가 복잡해지고 그를 이루는 구성원들이 다원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자유롭지 못하고 다수에 억눌려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공동체 의식이 강한 동양 문화권이라서인지, 아니면 그곳에 살고 있는 ‘나’만 심한 건지 모르겠다. 의사를 표현할 때 주변의 눈치를 심하게 보거나 어떤 판단에 대해 일반적인 견해를 먼저 생각할 때가 많다.
 
이처럼 글을 읽다가 나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 자유를 억눌러 왔던 상황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계속 그런 상태라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이는 책에서 경계하는 모습이 아니어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자보, 시위, 선거 등 다양한 형태로 자유를 표현하기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 가하면, 나처럼 자유롭게 의사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나 상황 때문에 통제 받아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종종 보았다. 다양한 개성이 존중받는 사회라지만, 동시에 그 개성이 모두 비슷한 길로 걷고 있는 사회 일면을 보면 또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속에서 함께 걷고 있는 나로서는, <자유론>이 주는 자유의 의미가 지금 사회에 더욱 곱씹어 봐야 할 중요한 논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개인적으로는 19세기 중반에 정리한 이 작품이 지금의 사회 문제도 적용된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조금 한심한 소리일 수 있지만, 지금이라도 이 작품을 필두로 다른 고전들도 차근차근 읽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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