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위크
강지영 외 지음 / CABINET(캐비넷)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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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위크_전건우 외 7인(정명섭, 김성희, 노희준, 신원섭, 강지영, 소현수, 정해연)

<어위크>는 편의점에 숨어 들어간 3명의 어설픈(?) 강도에게 알바생 한주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건의 발단은 중식이 음식 배달을 하던 중에 일어났다. 술에 잔뜩 취한 남성과 부딪힌 중식은 그가 흘린 ‘권총’을 우연히 줍게 되고, 친구 현우는 권총을 가지고 한방 노릴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하지만 결과는 바로 도주, 치밀한 계획도 없이 총 한 자루로 은행 차량을 탈취하려던 그들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가방에 돈을 넣은 채로 허겁지겁 눈앞에 보이는 <어위크>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특이한 알바생을 한명 만나게 된다

“편의점은 항상 이 자리에 있었어요.”-p.26

권총을 들고 강도들이 들이닥쳐도, 태연하게 행동하는 알바생 한주. 겁먹고 덜덜 떨어도 모자를 판에 본인을 인질로 잡아둔 강도들에게 먹을거리를 챙겨주고, 너스레를 떨기까지 한다.

처음 보는 편의점인데 오래전부터, 늘 여기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한주의 말.

한편, 화장실이 급해 창고로 가려던 태영은 창고에서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러던 중, 대치하던 경찰들이 요구사항을 들어주는 데까지 남은 한시간, 한주가 시간 때우기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고 한다.


그렇게 편의점이 있는 7개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7명의 서로 다른 스타일의 작가님들이 써내려간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정말 서로 다른 단편 모음집 같다.


평리원 감사 이준의 비밀스런 경운궁 화재 수사, 아파트에 잠입한 킬러, 평행우주를 배경으로 또 다른 자신과 만난 남자, 남편 살인을 계획하는 여자와 이를 애틋하게 바라보는 여인, 게임 괴담과 사람을 집어삼키는 구덩이, 아비지옥에서 몇 번이고 고쳐 죽는 남편을 구해주려고 직접 그 아비지옥에 뛰어든 아내, 그리고 자신들의 편의점을 지키기 위해 사고뭉치 회장을 찾아가 모의하는 편의점주들 이야기.

정말이지 내용들 모두 하나도 예측할 수 없었던 내용의 이야기들이었다. ‘기묘한 편의점에서 벌어지는 7일 야화’라는 점에서 예측을 했어야 했나. 사실 처음부터 기대했던 이야기와는 사뭇 달라서 당황했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발생한 화재 수사와 편의점이 어떤 관련이 있다는 걸까.

특히나 평행우주에 타임머신에 ..... SF 향기 짙게 나는 <당신의 여덟 번째 삶>은 정말 어떻게 연관 지어야 하나 엄청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편의점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풀어나갈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이야기의 중간 중간 어딘가에는 편의점 ‘어위크’가 있다. 또, 몇 편은 다소 난해해서 읽기 어려웠지만, 몇 편은 독특하기도 하고, 취향의 음산하고 미스터리한 느낌도 있었기 때문에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기대와 달라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미스터리분야에서 또 다른 한국 작가님들을 새로이 알게 된 점이 좋았던 <어위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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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미션 - 죽어야 하는 남자들
야쿠마루 가쿠 지음, 민경욱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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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데스미션_죽어야 하는 남자들> _ 야쿠마루 가쿠

출판사_크로스로드

<데스미션_죽어야 하는 남자들>에는 서로 상반되는 사명의 두 사람이 등장한다. 누군가를 죽임으로써 자신의 사명을 다하려는 한 남자와 그 사람을 잡는 것으로 자신의 사명을 다하려는 남자.

자신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머릿속에서는 그 생각만 들끓고 있었다. 자신을 절망의 바닥으로 내동댕이치고, 스미노와의 미래를 빼앗고, 자신을 이런 괴물로 만들어 버린 원흉을 인생의 마지막이 오기 전에 제거해야 한다.-p.366

자상한 이미지에 부까지. 누구 못지않게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 같던 사카키.

하지만 그는 아무도 모르게 강한 살인 욕구를 참고 살아가는 잔혹한 성정의 남자였다. 대학 시절 동아리 사람들과의 화기애애한 모임도, 첫사랑과의 아련한 재회도 잠시.

사카키의 머릿속에는 살인을 부추기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그를 자극하기 시작한다. 그 소리에 사카키는 성욕을 풀며 이를 억누르려하지만, 그때마다 더욱더 충동은 심해진다.

이 와중에 위암말기 판정을 받으며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지만, 치료를 만류하고 자신의 욕구를 마음껏 분출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시작된 첫 번째 살인.

그는 격렬한 쾌감에 사로잡히며 욕망에 충실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고통으로 위 언저리를 움켜쥐었다. 손톱을 세워 세게 힘을 줬다. 시야가 눈물로 흐려졌다. 이 녀석을…… 이 녀석을 몸 밖으로 긁어내고 싶다. 적어도 범인을 잡을 때까지.-p.182

한편, 살인사건을 쫓는 형사 아오이 역시 사카키와 같은 병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게되지만, 사카키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선택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몸부림치며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5계의 사냥개?“

“사건의 실마리를 잡는 후각과 범인 체포에 대한 집념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지.”-p.190

그렇게 형사로서의 감과, 범인에 대한 집녑, 사명감으로 무장한 아오이의 맹추격으로 수사망은 점점 좁혀오지만, 이와 동시에 사카키의 살인에 대한 집념 또한 강해지기 시작한다. 여기에 옛 연인 스미노와으 재회로 과거 속에 묻어 두었던 무언가가 사카키를 자극하면서 더욱더 폭주하게 하는데.

**

<데스미션>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두 남자가 살인과 체포라는 완전히 다른 행보를 보이며 그려지는 추격과 심리묘사가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가독성이 좋아서 간만에 책을 편 자리에서 바로 술술 읽어버렸던 작품이기도 했다.

이미 소설 서두부터 범인도, 시한부라는 설정도 모두 공개된 상태. 제한된 시간 안에 과연 어떤 결말이 날 것인지, 범인은 잡힐 것인지, 내일이 없는 사람이 그리는 범죄는 얼마나 잔인할 것인지. 생명을 태워가며 범인을 잡으려는 남자의 사명감은 어떤 것인지.

그런 것들이 어떻게 묘사될지 상상하며 읽는 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솔직히 사카키라는 캐릭터가 너무 욕망에 충실하게 살인을 저지르다보니, 트릭이나 알리바이가 치밀하다거나 그런 느낌은 받기 어려울 수 있다. 아오이의 수사도 은근슬쩍 주로 형사의 ‘감’에 의존하고, 그게 맞아 떨어지게 전개되는 감이 있어서 약간은 당황스러웠던 기억도 난다.

다만, 그것보다 이 두 남자가 왜 이렇게까지 목숨 걸고, 죽이고 잡으려는지 조금씩 흘려지는 밑밥. 그리고 두 인물이 겪는 인간으로서의 갈등이 흥미진진하다. 사카키는 사랑하는 연인에 대한 마음과 폭력적인 성향 사이에서, 그리고 아오이는 사명과 자녀들과의 이별 사이에서. 그 간극에서 오는 내적 긴장이 있다.

처음에는 이유 없는 사카키의 마음의 소리가 의아했지만, 세상에 이유 있는 살인은 또 어디있으랴. 그냥 싸이코패스인가. 싶다가 조금씩 풀리는 어린 시절 이야기가 또 딱하기도 하고.

물론 그렇다고 그의 행동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걸 읽으면서 괜히 살인자의 환경적 요인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하고, 그랬던 것 같다.

아오이는 사명감 넘치는 형사로 그려졌지만 한편으로는 감 믿고 행동하는 약간 막무가내에 냉정하고 매정한 아버지라는 캐릭터라는 게 묘하게 현실적이면서도 극적이었던 것 같다. 저렇게 까지 투철한 형사가 있을까. 드라마 속에 나오는 수사반장 느낌이 나서 우와, 싶다가도 현실의 아버지 같기도 하고.

그래서인가, 아이들과 마지막을 그려야겠노라며 놀이공원에 가는 장면은 울컥해서 슬쩍 눈물을 감췄던 기억도 난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며칠이 지나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과연 이 살인자는 죗값을 제대로 치른 것일까. 어쩌면 피해의식을 사명감으로 둔갑해서 본인의 이기심만 챙긴 것은 아닌지. 최근 온갖 살인사건이며 폭행사건이 보도되는 가운데 조현병이었다, 억울한 삶을 살아왔다 하며 유야무야 무마하려는 사람들이 스쳐가는 순간이었다.

또, 사카키 같은 사람이 현실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 작품이었다.

<위 서평은 출판사에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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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랑을 해요
못말 김요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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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랑을 해요>는 사랑이 주제인 에세이로,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다시 새로운 사랑을 앞두고 공감할 수 있는 생각들을 정리한 글이었다.

부농부농한 표지를 펼치면 아기자기하고 예쁜 일러스트가 한가득 담겨있어 제대로 감수성 자극. 센치해지는 한밤중이나 새벽에 읽기 정말정말 좋은 책이었다.

책은 ‘그런 사랑을 해요/괜찮아지는 중입니다/사람을 앓아보니 사람에 더 신중해졌다/네가 자주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이렇게 이어지는 총 4개의 파트로 나누어져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챕터 제목을 읽어보면 사랑하고 이별하고, 거기서 오는 아픔을 이겨내며 성숙해지는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만 같았다.

읽는 내내 연애와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연애 중에 느꼈던 생각들에 공감하며 읽었다.

 

서운함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서운하다는 것은 기대가 커졌다는 것이고

기대가 커졌다는 것은 마음이 깊어졌다는 의미니까요

중요한 것은 서운함을 느꼈을 때

빙빙 돌리거나

숨기지 않고 서운하다 말하는 용기에요

아무리 가깝고 두터운 사이일지라도

그는 당신이 아니고

당신 또한 그가 아니기 때문에

-p.35 <서운함>

처음에는 마냥 설레던 연애가 문득 슬퍼질 때가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분명 그 사람은 처음 모습대로 한결같은데, 괜히 덜 생각해주는 것 같아 서운해 하고, 그런 마음에 혹여 벌써 마음이 식은 거 아닌가 싶어 가슴 아프기도 하고.

저 글을 읽고 나니 내 마음의 크기와 깊이가 달라져 그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달라졌다는 건 생각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태도만 지적하려했던 자신의 태도가 조금 한심하게 느껴지고 속상했다. 요즘 들어 가장 무서웠던 건, 그 일말의 서운함 때문에 상대방의 노력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점이었고.

얼마나 연애 중에 내가 이기적이었나 싶기도 해서 움찔했다.

특히나 가장 많이 반성 아닌 반성을 하게 된 부분은 관계유지를 위한 노력에 대한 부분이었다. 사회생활 하면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책도 읽고, 선배들한테 조언까지 구하고, 스트레스 받지만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도하고, 그렇게나 신경 쓰면서 정작 소중한 사람한테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이해를 강요하지 않았나.

이 관계에 대해서 누구도 내게 약자라고 말한 적 없는데 누가 봐도 내가 약자인 것만 같았어요. (중략) 내 감저의 막연한 크기만큼 그가 나를 막연히 헤매 주기를 바랐던 거죠. 그렇게 나는 이 관계의 피해자를 자처하고 좋아하는 감정을 앞세워 그의 마음을 벼랑으로 몰았어요.

단지, 서로가 지닌 마음 그릇의 크기가 달랐던 것뿐인데, 더 좋아할 수 있는 내가 그저 더 좋아해 주면 됐던 것뿐인데. 그걸 몰라서 홀로 감당 못 할 새벽만 키웠던 것 같아요.

-p.120 <서툴렀던 시간들>

이래저래 공감과 함께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해준, <그런 사랑을 해요>.

그래도 요 사이사이 자동으로 미소 짓게 만드는 달달한 글귀들도 있었는데, <마음꽃>이라는 글이었다.

**

달달하면서도 씁쓸하고, 때론 슬프지만 놓을 수 없는 것. 없는 대로 잘 살아왔으면서 한때는 전부인 것 같고 없으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하게 되는 오묘한 감정들. 특별한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다른 인간관계에서 오는 감정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것들.

연애를 하기 전까지는 공감할 수 없고 공감하기 어려웠을 글들이 너무나도 잘 스며들었던 <그런 사랑을 해요>

마냥 설레기만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내 마음을 한번 돌아보고 싶다면, 명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마음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다면, 한번쯤 고요한 저녁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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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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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트 에코의 유작인 <제0호>는 주인공 콜론나가 신문 <도마니>의 창간 과정을 담은 소설 집필 의뢰를 받으면서 일어나는 일화를 담은 소설이었다.

 

싸구려 글쟁이 노릇을 하던 콜론나 앞으로 시메이라는 이름의 주필이 나타난다. 그가 요구하는 것은 창간하기로 해놓고 끝내 창간되지 않을 신문을 내기 위해 1년 간 준비하면서 겪은 일을 이야기 하는 책의 집필이었다.

 

지방 일간지들을 상대로 기사를 쓰거나 번역일을 하던 콜론나에게 시메이의 제안은 당혹스러웠으나, 시메이의 금전적인 제안과 함께 그 '소설'을 집필하는 것의 의의를 들으면서 콜론나는 이 의뢰를 수락하게 된다. 이후 시메이가 소개한 6명의 기자들과 함께 창간되지 않을 <도마니>를 창간하기 위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책의 뒤표지에 있는 소개글만 보고서는 신문 편집부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추리해나가는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창간되지 않을 비밀스런 신문 집필, 그 배후에 일어나는 음모와 그로 인해 일어난 살인 사건. 이런 일련의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살인사건은 후반부의 이야기고, 기자들이 기사를 쓰면서 나누는 이야기가 주된 화두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책이었다.

 

* 어떤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는 모범적인 저널리즘을 실현하기 위해 내가 1년 동안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보여주면서, 결국 자유로운 목소리를 얻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모험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암시해야 합니다. -p.39

 

한편, 콜론나는 창간 과정을 소설화 하는 일을 맡게 되는데, 이 부분만 보면서도 기사 한 편이 나오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압박과 억압이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고는 했었다. 그리고 읽는 과정 내내 기사 한편의 영향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순간들도 더러 있었다.

 

* 우리는 거짓말 속에서 살고 있어.

그리고 만약 누가 너에게 거짓말하고 있음을 네가 안다면, 너는 의심 속에서 살아야 해. 나는 의심해. 언제나 의심하면서 살아. -P.62

 

또, 글을 읽으면서 함부로 판단하는 버릇과 의심하지 않는 안일주의, 편파적인 관점을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건에 대해서 어떻게 풀어 쓰는 지에 따라 다르게 되는 기사 내용들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맞아요. 신문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가르칩니다.-p.145

 

특히 주인공인 기자들의 기사거리에 대해 토론하는 내용들을 읽고 있노라면, 정말 아무것도 믿지 못할 것만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문 창간의 핵심 세력의 입맛에 맞추어 편집하고, 또 읽을 독자들의 수준과 입맛을 고려해 집필해야 하고. 이런 고민들에 대한 대화가 허구가 아닐 것만 같아서 더욱 소름이 돋았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지만, 너무나도 유명한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트 에코의 유작 <제0호>. 때문에 기대를 하고 읽었는데 생각만큼 술술 읽히지는 않았던, 다소 난해한 내용의 작품이었다. 그건 아무래도 내 어휘력 부족이나 상식 부족 탓이 더러 있었을 것 같지만. 역사적인 사건이나 그와 관련한 비유들이나 각종 작품 등등이 비유적인 표현으로 나와서 ...... 개인적으로는 읽다가 흐름이 종종 끊겼던 것 같다.

 

그럼에도 언론사에서 일어날 수 있을 법한 상황을 그려볼 수 있는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많이 안겨준 작품이었다.

 

 

<이 글은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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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비주얼 클래식 Visual Classic
제인 오스틴 지음, 박희정 그림, 서민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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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은 첫 만남에서 서로에 대한 편견으로 오해를 낳고 서로 엇갈린 두 남녀의 이야기로, 사랑과 결혼 등을 둘러싼 다양한 당대 사람들의 인식과 비판적인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려낸 고전 로맨스 작품이었다.

책을 읽은 것은 처음은 아니었는데, 만화가 박희정 작가님의 삽화가 수록된 리커버 북이라는 소식에 궁금하기도 했고, 오랜만에 우리(?) 다아시 씨도 보고 싶어 읽게 되었다. 원래 삽화가 있으면 간혹 몰입을 방해해서 조금 걱정이 있었는데, 박희정 작가님이 그려준 다아시도 묘한 분위기를 풍겨내서 읽는데 색다른 묘미가 있었다.

특히 아이라이너와 눈 밑의 다크 서클이 느른하고 섹시하고 퇴폐적인 눈매를 연출해서 초반에 그려지는 오만한 이미지가 잘 느껴졌달까. (그래서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도 갑자기 리커버 북으로 읽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오랜만에 읽은 <오만과 편견>은 이전과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중학생 때 뭣도 모르고 읽었을 때는 수행평가 하느라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읽고, 대학생 때는 교양 수업으로 듣느라 논문 분석하는 것 마냥 기계적으로 읽은 것이 다였다.

처음 읽었을 때에는 신분 차이를 넘은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로맨스에 빠져서 일반 로맨스 소설처럼 읽어버렸고, 조금 나이 들고 때가 묻어 다시 만났을 때는 다아시의 재산을 환산하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영화로 만났을 때는 (솔직히 캐스팅이 조금 아쉬웠지만) 로맨스에 조금 집중했는지 그 오만한 남자가 엘리자베스를 위해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간질거리는 마음 붙잡고 봤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책을 읽을 때는 조금 다른 관점에서 읽게 되었다. 흔히 갖게 되는 편견이나 섣부른 선입견, 함부로 속단하는 것의 위험성과 인간이 지닌 성격의 결함들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주로 읽었던 것 같다.

처음 무도회에서 다아시의 발언이나 이후 빙리와 제인의 관계를 속단하고 움직인 모습들은 분명 잘한 행동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종일관 당차고 씩씩하고 자신의 신념에 확고하게 움직이는 엘리자베스 역시 마냥 옳은 것은 아니었다.

 

다아시의 나쁜 첫인상 하나로 엘리자베스는 그 이미지에 갇혀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오만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무례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단다. 때문에 어쩌면 엄청난 것들-두 사람 사이의 신분, 지위, 권력, 재산 차이 등-을 걸고 고심 끝에 했을 진심어린 그의 고백에도 상대방의 입장은 고려하지도 않고 매몰차게 거절하고 만다.

물론 다행히 엘리자베스를 위해 움직이는 모습을 통해 그의 진심을 확인하고 서로 다시 마음을 확인하고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지만. 결말을 알고 다시 읽어서 그런지, 편견에 사로잡혀 시종일관 다아시를 나쁘게만 보는 엘리자베스의 모습이 조금 불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한편, 조금씩 제 마음을 깨달으면서 쩔쩔 매는 다아시의 모습을 보는 것은 재밌었다. 전형적이고 진부한 멘트지만, ‘이런 여자 네가 처음이야.’의 고전격인 모습을 보여주신 다아시 씨의 내면 갈등은 참으로 흡족했다.

처음 고백하는 장면에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다아시의 애절한 모습이 짠한 한편, ‘그런 남자’가 절절히 고백하는 모습이 또 감동이고 만족스러워서(?) 웃다 찌푸리다 하면서 읽었기 때문.

그래도 이런 로맨스도 재밌었지만 역시나 제목이 제목인 만큼, ‘오만과 편견’에 대해 캐릭터가 뱉는 대사나 내면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난 오만함이란 인간에게 아주 흔한 결함이라고 생각해.” - p.35

엘리자베스의 시점으로 주로 전개가 되다보니, 으레 ‘오만’한 사람은 다아시와 같은 상류층, 소위 가진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조금 강하게 느껴진 것도 사실이었다. 실제로 작품 속에 나타난 빙리 양이나 캐서린 드 버그의 모양새가 그러했던 것도 있었고.

“내가 한 행동이야말로 정말 비열했어! 난 사람 볼 줄 아는 안목이 있다고 자부했지!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자만했어! 언니의 너그럽고 공평무사한 마음을 자주 비웃었어.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의 흠을 찾고 불신하면서 내 허영심을 세웠어. 이제야 그걸 깨닫다니 너무 창피해! 사랑에 빠졌어도 이렇게 덮어놓고 판단력을 잃지는 않았을 거야.”-p.320

하지만 그런 ‘오만’에 대한 생각 역시 너무 프레임에 갇혀 있던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엘리자베스가 자신의 잘못을 깨달으면서 느낀 ‘자만심’, 오만과 자만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저 대사를 읽으면서 나 역시 엘리자베스처럼 자신의 판단을 믿고 실수했던 날들이 떠올라 조금 부끄러워졌다.

오만함은 어떤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있는 것인데, 저마다의 편견 속에 자신이 그러한 것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혼.

재산이 많은 남자가 미혼일 경우 사람들은 누구나 마치 당연한 진리처럼 그에게 아내가 필요하다고 믿는다.-p.9

이제 너무나도 유명해진 오만과 편견 첫 문장.

다아시와의 로맨스도 로맨스지만, 오만과 편견 전반에 걸쳐 담긴 ‘결혼’에 대한 사실적이고 풍자적인 이야기가 또 작품을 읽는 내내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분명 시대적 배경이 달라서 지금과 차이가 있는 부분도 있지만, 소름 돋게 별반 다를 바 없는 결혼에 대한 태도나 인식이 담긴 부분들도 있다. 어떻게든 결혼을 시키려고 아등바등하는 베넷 부인의 행동은 아직도 눈살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아직도 그런 태도가 남은 경우가 있다는 게 조금 소름이었고, 여전히 충격인 것은 리디아의 결혼을 축하하는 사람들의 태도. 이 부분은 아무리 다시 읽어도 충격적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또, 콜린스와 엘리자베스의 결혼이 무산된 것으로 하소연하는 베넷 부인의 태도라던가, 줏대 없이 재산 좀 있다고 허세 부리며 ‘결혼해주겠다.’고 덤비던(?) 콜린스의 캐릭터도 영영 밉상 캐릭터로 남을 듯. 하지만, 그런 콜린스의 물질적인 면모를 보고 결혼을 선택한 샬럿의 태도를 아주 비난할 수도 없기에 조심스러운 점들.

이런 부분들은 솔직히 이제 슬슬 결혼 접어드는 시점에서 다시 읽으니 너무 현실적으로 다가와서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나는 제인이 잘되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 그리고 제인이 내일 당장 그와 결혼하든, 1년 열두 달 동안 그의 성격을 파악한 두에 결혼하든 똑같이 행복하게 지낼 거라고 믿어. 결혼해서 행복은 순전히 운이거든.

두 사람의 성격을 서로가 아주 잘 알고 있다거나 결혼 전부터 두 사람이 잘 맞는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건 절대로 아니야. 성격이란 늘 변하게 마련이라서 나중에는 서로에게 질릴 정도로 완전히 달라져 버리기도 하거든.” - p.39

그리고 결혼할 사람에 대한 생각들. 요새 친구들과 나누었던 대화 주제라 그런지 너무나도 대사 하나하나가 예리하게 다가왔다.

사랑은 어떻게 찾아오는 걸까. 어떤 사람하고 결혼하는 것이 옳은, 아니 좋은 걸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오만과 편견의 잣대로 타인을, 타인과의 관계를, 감정을 함부로 속단해버린 것은 아닐까.

이제는 마냥 로맨스 소설만으로 읽을 수 없었던 <오만과 편견>이었다.

 

 

 

  <위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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