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의 문으로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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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었던 글과는 확연히 달랐다. 미지의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진 느낌. 지나치게 길고 끊기지 않아서 시작과 끝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신기한 것은 읽기 시작하면 워터파크 미끄럼틀에 올라탄 기분. 돌아갈 수 없다는 찰나의 후회와 함께 신나게 미끄러지다 풍덩 빠지면서 브레이크가 걸린다는 점이다.

얇은 책이지만 금방 읽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불안함 때문이었다. 책을 덮을 때마다 잔상은 진한데 메세지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았다. 숨겨놓은 복선이나 메세지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확신에 좀처럼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깨달았다. 이 책은 깨어서 생활하고 있는 중에 꿈이 수시로 침범하는 ‘꿈 증상’을 겪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현실과 꿈의 경계가 지워진 문장이 범람하고, 펼쳐진 상황에서 인과관계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찾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문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넘어가야 마지막 장에 다다를 수 있다.

수능 국어가 낳은 주제 찾기 방식에서 벗어나는 순간 이 작품만이 가지고 있는 불확실성에서 오는 자유로움, 꿈과 현실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을 비로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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