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 : 서양 편 지리로 ‘역사 아는 척하기’ 시리즈
한영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쓰다 남은 다이어리 속지랑 3색 펜을 챙겼다. 각 장별로 채색된 지도를 펼쳐 놓고 직접 손으로 경계를 그리고, 산맥과 강, 사막, 반도와 만, 해협의 이름을 적어 본다. 수십년 전 구 소련이 존속하고 있을 때와 최근의 동유럽 국경선에는 큰 변화가 보인다. 냉전이 종식되고 소비에트 연방은 러시아를 비롯한 각 나라로 분리 독립을 했다. 민족과 종교적 배경에 따라 국경선이 정해졌다. 이 와중에 서로 독립을 하지 못한 나라들은 20세기 후반에 극심한 내전을 겪기도 했다. 코소보 분쟁 등이 그러하다.

강렬한 붉은 표지가 인상 깊다. 저자 한영준은 YOU튜브 채널 ‘두선생의 역사공장’의 공장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 공장은 역사지식을 생산해내는 서당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역사공장의 학생들을 ‘두강생’이라 부르고 있다. 여느 역사 채널과 다른 점은 지도를 앞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3차원의 지구본을 2차원의 책장에 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평면 지도를 사용할 수 밖에 도리가 없다. 아쉽지만 지도를 눈으로 보고, 빈 종이에 직접 그려가며 주요 키워드를 적어보자.

그런 다음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면 넓은 모니터를 가진 컴퓨터를 켠다. 구글 어스를 실행하고, 두 선생이 언급한 강과 사막, 산맥, 반도와 만, 해협을 인공 위성의 시점으로 내려다 본다. 두선생의 길라잡이를 통해서 대륙별 지리와 국경을 먼저 접하고 그 땅에 정착(?)하여 국가를 이루고 사는 사람들의 종교와 인종 등의 배경 지식을 쌓아갈 수 있다. ‘두지세’-두선생의 지도로 읽는 세계사-를 읽으면서 러시아와 벨라루스가 서로 친한데, 왜 우크라이나와는 대립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각 장의 마지막 부분에 박스형 기사 형태로 ‘챕터 정리’를 해 둔 것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을 준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챕터 배치 순서에 아프리카 대륙이 맨 나중인 것은 아쉬움이다. 인류의 기원을 추적해 가다 보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멀게만 느껴지고, 아프리카 하면 그냥 아프리카로 생각하고 말해 버리는 그런 존재. 만약 유럽인들이 한국, 중국, 일본 사람을 그냥 아시아인으로 뭉뚱그려 말하면 어떤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이 책을 지도를 따라 그려가며 읽다보니 흩어졌던 지식들이 그룹화되는 느낌이다. 국경선의 변화 요인, 전쟁 발발의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미리 막을 사회적 통찰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 ***
바다는 인간의 이동을 방해하지만, 모험심도 자극합니다. 바다 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땅인 반도는 인간이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는 기회를 주기도 합니다. 좁은 바다인 해협은 바다와 바다 사이를 연결하는 길목 역할을 합니다. 육지 쪽으로 들어와 있는 바다인 만에서 인간은 교류하거나 경쟁합니다. (8~9p)

이 책을 읽고 지나친 ‘지리 결정론’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리 결정론은 인간과 사회의 여러 현상이 지리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이론입니다. (25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도 기억나는 충격적인 사건 중 하나다. 바로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이다. 2005년 늦가을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고 들떠 있던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진실의 문이 열렸다. 이전에 언론들은 앞을 다퉈 한국인의 젓가락질 기술이 정밀한 세포 분리와 배양의 원천 기술이라고 한껏 치켜 세웠다. 기대가 컸던 만큼 허탈과 실망은 대단했던 기억이 새롭다. 얼마 전 별세한 이어령 박사는 유작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제2권 젓가락의 문화유전자를 다룬 ‘너 누구니’를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필력을 과시한다.

저자는 201쪽에서 한국인의 젓가락질 DNA를 과대 포장한 언론의 보도 행태를 간명하게 바로 잡아 준다. 이런 행태를 생물학적 우월성을 주장하는 일종의 우생학으로 본다. 과거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한 대독일제국의 총통 히틀러와 나치당이 저지른 전쟁 범죄를 떠올려 보면 얼마나 위험한 주장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우리 전통과 문화의 우수성을 알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다만 지나친 국수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60년 이상 장르를 가리지 않고 방대한 저작을 남긴 이어령 박사의 이야기 보따리를 경험할 수 있는 꼬부랑 고개 넘기를 시작해 보자.

이 책의 목차는 12개의 고개와 서른 개의 꼬부랑길로 구성되어 있다. 신작로와 포장된 넓은 길에 익숙한 세대는 꼬부랑길을 걸어본 경험이 드물 터다. 어릴 적 할머니랑 걸었던 꼬부랑길은 마주 오는 지겟꾼과 교차하기 쉽지 않을 정도였다. 밟아도 다시 일어서는 잡초가 가득한 길. 여름이면 강렬한 태양열에 달궈지는 검은 아스팔트 길과 차원이 다르다. 이어령 박사의 젓가락 강의를 한 고개씩 넘어가다 보면 유년의 기억이 떠오르는 데는 분명 경험치와 공감대가 겹치기 때문일 터다. 적어도 젓가락질에는 세대간 격차가 덜하다. 한국인의 식생활이 밥상머리 교육에서 대를 이어 전수되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저자의 통찰은 단순히 식사 도구로 젓가락을 설명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사람 몸에서 손에 가장 많은 뼈와 관절이 위치할 만큼 손은 정밀한 조작이 가능하다. 저자는 젓가락을 손가락의 연장으로 본다. 그래서 손가락의 ‘가락’이 ‘저+가락’이 되었다. 한국 땅에 태어난 우리는 말과 함께 젓가락질을 야단 맞아 가며 배웠다. 아마도 부모와 자녀 간의 밥상 머리 교육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당연한 것처럼 여긴 젓가락에서 한국인의 문화 유전자를 끄집어 내서 한 권의 책을 써낸 고 이어령 박사의 통찰에 감사한 마음이다.

*** ***
05 우리말에 연장이란 말이 있다. 참 재미있는 말이다. 연장을 다른 말로 하면 도구인데, '도구는 신체의 연장' 이다'라는 말도 있다. 연장이란 말 속에 '도구'라는 말과 신체의 연장'이라는 말이 한꺼번에 들어있다. 우연의 일치치고는 참으로 미묘하고 암시적인 의미가 담긴 말이다.
인간의 도구는 모두가 몸을 연장, 확장'한 것이다. 그중에 가장 먼저 쓴 도구는 신체 가운데서도 손을 연장한 것이다. 인간이 두 발로 일어서는 순간 앞의 두 발이(다리가) 손이 되고, 몸에서 자유로워진 인간의 손은 스스로 독립적인 기능을 할 수 있게 된다.(152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순간을 놓치지 마 - 꿈과 삶을 그린 우리 그림 보물 상자
이종수 지음 / 학고재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흐드러진 개나리꽃인듯 손에 쥔 신간 표지가 단정하다. 시동이 고삐를 쥔 말을 검은 말을 탄 선비가 늘어진 버들가지를 바라보는 그림이 좌하단을 채우고 있다. 꿈과 삶을 그린 우리 그림 보물상자라는 부제를 읽지 않아도 학고재란 출판사 이름 만으로도 이 책이 무엇을 다루는지 어림짐작이 된다. 국문학과 미술사학을 공부한 저자 이종수는 우리 그림을 읽어내는 탁월한 안목을 연마했다. 화가가 어떤 생각으로 이 그림을 그렸는지, 그 시대 배경은 무엇인지, 화풍과 계보를 찬찬히 설명해 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에는 덕수궁 근처 미술관과 예술의 전당 미술관에 종종 찾곤 했다. 도슨트 선생님이 설명해 주는 시간에 맞추면 그림을 보고 읽어내는 깊이가 다르다는 경험을 자주 했다. 반면 우리 조상들이 그린 그림을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예전에 읽은 고 오주석 선생의 ‘한국의 미 특강’을 읽고서 눈이 열리는 경험을 했었다. 역시 그림이든 음악이든 아는 만큼, 생각의 넓이와 깊이만큼 받아 들이고 이해할 수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길라잡이로 나선 저자 이종수의 발길과 손길을 따라 가다 보면 눈에 익히 안다고 생각하는 그림도 제법 보인다. 솔직히 처음 보는 그림이 더 많았다. 병아리를 채가는 고양이를 쫓는 남자와 아내, 어미닭의 혼비백산하는 찰나를 그려낸 ‘야묘도추’는 잘 아는 듯했으나, 저자의 설명을 곁들이다 보니 그동안 수박 겉핥기로, 주마간산하는 것처럼 대충 봤음을 고백한다. 봄나들이를 나선 병아리떼를 낚아채는 찰나의 순간을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활약한 화가 김득신은 잘 포착해 냈다. 정지된 활동사진 같다. 저자 이종수는 ‘이 순간을 놓지지 마’하고 코치를 한다. 김득신이 살던 시대를 간명하게 보여준다. 망건을 쓴 남자와 치마, 저고리를 입은 부인네. 자리를 짜던 틀과 나무로 만든 낮은 마루 등등. 한 장의 그림으로 19세기 초 조선의 어느 마을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그 뿐인가? 지난 달에 수원 화성을 다녀왔는데 ‘화성행행도병풍’(212p)를 보고 나니 1795년 정조 임금의 8일간의 화성행궁 행차 장면이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당시 최첨단의 철옹성을 완공하고 그 안에 작은 행궁까지 짓고서 죽은 아버지와 늙은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또한 국왕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장엄한 행차를 기획하고 추진한 모든 과정이 병풍 안에 빼곡하게 담겨 있다. 저지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니 국왕의 행차 모습을 큰 길에 나와서 구경하는 양반들과 평민들의 모습까지 한사람 한사람 그려진 것에 경탄을 금할 수 없다. 책에 담긴 작은 도판으로는 그림 보는 맛이 덜하다. 아무리 돋보기를 들이대도 말이다. 원본이 소장된 **미술관에 찾아갈 목표가 생겼다.

이렇듯 저자 이종수가 소개하는 26개의 보물 상자를 하나씩 열어보는-책으로 먼저 보고, 원본을 직접 찾아가 보는- 버킷 리스트를 만들어 보자. 물론 일본국에 넘어간 작품들 또한 여럿 있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아닌 개인 소장품의 경우 대면하기 쉽지 않을 테지만. 그럼에도 살아있는 동안 이 순간을 놓치지 않을 안목을 길러야 함은 꼭 그림 보는 눈 뿐만 아니라 세상 살아가는 지혜와 통찰을 말하는 것 아닌가 싶다.

*** ***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이 있다. 화가에게도 붓을 들어야 할 순간이 있듯이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은가. 그림이 전하는 즐거움. 계절이 주는 기쁨도 찰나처럼 스쳐 지나버릴지 모른다. 지금 내 마음 두드리는 그림 한 점 있다면 첫걸음이 되기 충분하다. 보물찾기를 시작해 보자. 이 봄 지나기 전에 길을 나서보는 거다. (10p)

그의 화면, 변해가는 시대가 엿보이기도 한다. 호취도는 보통 매 한 마리를 우뚝 세워 제왕다운 기상을 강조하곤 한다. 그런데 장승업의 그림은 두 마리 매가 세상을 나누어 가진 형국이다. 오원의 그림 속에 불어온 시대의 바람, 그는 바다 건너의 색채와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았다. 그의 붓이 그랬던 것처럼 그의 화면도 시대의 경계에서 아슬아슬, 설렘으로 마음 졸이게 한다. (34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 - 작가를 따라 작품 현장을 걷다
함정임 지음 / 열림원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이란 쉽지 않은 제목의 신간을 읽다가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이 바로 그것이다. 무진이란 지명은 가상의 공간이지만 작가 김승옥이 유년 시절을 보낸 전남 순천의 갯벌과 갈대밭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한다. 17년 전쯤 가을 순천만 갈대밭을 직접 걸여보고 나서 1964년작 ‘무진기행’을 다시 읽었다. 안개로 뒤덮인 무진은 몽환적이고 비현실적 배경이 되어 주었다. 또한 일상 탈츨을 상징하는 공간으로 독자와 여행자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작품 속의 공간이나 작가의 숨결과 손길이 남아 있는 장소를 직접 가보는 것은 단순한 팬덤 그 이상으로 보인다. 이번에 읽은 소설가 함정임의 신간 ‘태양의 저쪽 밤의 이쪽’은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이는 문호들이 활약했던 장소와 지역을 소개한다. 저자는 직접 그곳을 찾아가 현장 사진을 찍고, 작품의 주요 부분을 소개한다. 저자는 ‘작가를 따라 그곳으로 갔고, 홀린 듯 걸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한다. 미국의 소설가 헤밍웨이가 살았던 시카고의 골목과 멕시코, 쿠바 아바나의 바다를 찾아간다. 중학생 때 지루하게(!) 처음 읽은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되는 곳엔 오늘날에도 가난한 어부가 고단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

반백이 다 되어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으니 전혀 새롭게 다가왔다. 붕어나 잉어 정도나 낚았던 나의 낚시 경험으론 거대한 만새기(dolphinfish)와의 사투가 실감이 되진 않는다. 그럼에도 작가와 소설의 배경 설명을 듣고 다시 보니 이해의 폭이 다름을 느낀다. 소설가이자 여행자인 함정임의 내공을 쫓아가기는 쉽지 않다. 책에 소개된 작가와 작품 중 생소한 것이 적지 않다. 아는 작가와 작품이 나오면 반갑지만 그렇지 않은 챕터는 당혹스럽다. 억지로 읽고 사진을 보면서 앞으로 읽어내야 할 소설 버킷 리스트를 적어 본다. 내 뜻과 욕망대로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조화와 공존을 추구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함을 문호들의 작품 읽기를 통해서 배운다.

책 이름 처럼 저자 함정임의 발길은 지구촌 곳곳을 아우른다. 모두 4부에 걸쳐 24꼭지를 풀어낸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에서 백야의 땅까지,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이스탄불에서 일본의 후지산까지, 드넓은 프랑스의 들녁과 강들은 자주 보고 들어 익숙할 느낌이다. 저자의 잔잔한 설명에 마치 나른한 오후에 책을 읽으며 뜨거운 차를 마시다 깜빡 잠이 드는 듯하다. 워낙 많은 곳과 작품을 다루고 있다 보니 한 번 읽어서 소화하긴 어려웠다. 서가, 손 가까운 곳에 두고 떠나고 싶을 때마다 꺼내 읽은 생각이다.

*** ***

파리 서쪽 미라보 다리 근처에 체류한 적이 있다. 춥고, 음울한 겨울이나 라일락꽃 피어나는 초여름이나 거리마다 은방울꽃을 파는 오월이나 센강 둑을 걸으며 미라보 다리 쪽을 바라보고는 했다. 아폴리네르와 로랑생이 내 머릿속에 없었다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일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13p)

누군가 고독이 원인이 되어 소설을 쓰고, 누군가 권태가 원인이 되어 소설을 읽는다. 고독이든 권태든 하루하루 소설을 쓰고, 소설을 읽는 행위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탐구, 모험이다. 미지의 세계는 '기억'에, 모험은 '여행'에 관계된다. 세상 어떤 소설도 이 두 가지, 기억과 여행을 근간으로 삼지 않는 것은 없다. (85p)

기다림 속에 삶은 흘러간다. 인생도 흘러간다. 아무것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 아무것도 없었던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작가와 작품에 새겨진 지도의 흐름을 따라간다. 태어난 곳의 침대와 방, 책상과 창, 부엌과 계단, 뜰과 오솔길, 강과 바다. 언덕과 고원, 산과 계곡, 성과 누옥, 시장과 카페, 광장과 골방, 그리고 거리, 거리들, 모두 누군가 스치듯 살다 간 곳들이다. 흔적이 남아 있기도 하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도 하다. (336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마고 데이 - 하나님의 모습을 찾아서
구유니스 지음 / 비엠케이(BMK) / 202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러시아가 인접한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어수선한 때에 읽은 담백하고 거룩한 책 한권을 소개한다. 러시아 정교회를 믿는 두 나라는 정치, 경제, 지정학적 이해관계 때문에 전쟁을 벌이고 있다. 군대에 아들과 남편을 보낸 여인들의 기도에 온 몸이 떨리는 듯하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 주님의 한결 같은 사랑으로 내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선 사람들은 자신의 유한함을 체감할 수 밖에 없다. 포탄이 언제 어느 방향에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한계에 봉착한 인생은 자비와 긍휼과 은혜를 구할 따름이다.

‘이마고 데이’라는 생소한 제목을 가진 책. 그림 보는 것을 좋아하고 영감 있는 기도를 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 하는 저자 구유니스의 그림 묵상집이다. 이마고 데이는 하나님의 모습을 30여 편의 그림 안에서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다. 성화하면 글자 그대로 거룩한 그림이다. 하여 중세 미술의 대부분은 거대한 성당 천정이나 벽면을 장식하는 대작으로 제작했다. 그 시절에는 문맹인 사람이 많아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성화를 그렸다고 한다.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그려진 성화의 이미지는 거룩 그 자체다.

그러나 저자 구유니스가 신작 ‘이마고 데이’에서 소개하는 30여 편의 그림들은 기존의 성화에 대한 선입견을 깬다. 그림이나 음악 등 예술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작가의 의도와 그 시대적 배경을 아는 것이 좋다. 이 책에 소개된 한 작가 중 눈에 띄는 마르크 샤갈, 조르주 루오의 작품에 눈이 간다. 특히 조르주 루오의 투박한(?) 터치는 눈길 뿐만 아니라 분주한 마음의 발걸음도 멈추게 한다. 118쪽을 가득 채운 조르주 루오의 ‘피난’이란 작품은 과거가 현재이자 미래인 것을 보여 준다. 실제 전쟁을 겪고 삶의 터전을 떠나 긴박하게 피난길에 오른 사람들의 고통을 어찌 모두 체감할 수 있을까?

사순절 기간 중 마르크 샤갈의 연작 ‘성서 메시지’ 중 ‘인간의 창조’ (20p)를 보고 읽는 경험도 새롭다. 한 장의 그림에 성서의 주요 내용을 동화책 삽화처럼 담아내는 내공에 감탄을 한다. 여기에 저자의 잔잔한 설명을 곁들이면 보이지 않던 이야기가 마음 속에 들려 온다. 이런 저런 일로 마음이 무겁고 힘들 때 조용한 시간과 장소에 앉아 그림을 보고 저자의 설명에 마음의 귀를 기울여 보라. 이마고 데이. 절대자의 모습을 찾는 여정이 결코 혼자 가는 외로운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 ***

글을 쓰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성화를 대하는 나의 첫 관점과는 다르게 글이 흘러가서 새로운 결론이 생겼고, 연관이 없는 작품들이 같은 주제로 모아졌습니다. 그리고 그 주제들은 평소 관심이 없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5p)

과학에서 하늘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땅이 움직이는 것을 알았을 때에도 물질 세계의 겉보기는 거의 변함이 없었고, 해석이 불가능했던 오류와 오차들이 조정되었습니다. 승천의 묘사도 예수 그리스도가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경험하는 사람들 앞에서 생명의 세계가 닫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일 수 있습니다. (137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