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읽는 경복궁 - 궁궐의 전각 뒤에 숨은 이야기
정표채 지음 / 리얼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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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경복궁을 3번 갔다. 구 중앙청(조선 총독부 건물)이 철거되기 전에 한 번, 아이들과 2번 찾았다. 통상 그렇듯 여기가 무슨 전각이구나 하고 풍광을 둘러 보고 사진을 찍었던 게 전부였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주마간산 격이라 할 수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실감난다.

살다보면 유명한 사찰도 제법 둘러 봤다. 절집마다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 다른 것이 궁금해서 찾아 봤다. 가장 많이 보이는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신다. 부석사 무량수전은 아미타불을 모셨고, 가끔 보이는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다고 한다. 이것을 알고 나서 절집을 순례하다 보니 각각의 전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깊어가는 가을 밤에 요즘 보기 드문 흑백 사진과 알 수 없는(?) 도안이 가득한 두툼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 책 소개를 받았을 때는 그저 경복궁의 각 건물 특징을 소상히 설명해 주는 정도로 생각했었다. 책을 읽다 보니 조선왕조실록은 물론 주역에 기반한 64괘와 8패 등 조선 왕조가 이상으로 삼았던 성리학의 통치 이념이 건물 곳곳에 형상으로 구현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생각보다 많은 전각들이 복원되었고, 조만간 복원 예정에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상세한 설명이 가능한 것은 저자 정표채 선생의 범상치 않은 이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사학을 전공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사서삼경’을 수료하였다 한다. 말로만 듣던 4서와 3경을 공부한 내공으로 15년간 경복궁에서 해설가로 활약하기도 한다.

한 장 한 장 아껴가며 책장을 넘기면서 드는 생각은 내년 봄에 하루를 온전히 내어 경복궁을 둘러 봐야겠다는 결심이다. 작은 메신저 가방에 이 책과 함께 셀카봉을 챙겨 들고서 말이다. 책에 소개된 흑백 사진의 현장을 찾아서 실물을 눈앞에 두고, 책을 펼쳐 해당 부분을 지나치게 한가하게 멍을 때리며 읽는 그런 범상치 않은 여행을 꿈꾼다. 그리고 천연색으로 사진을 찍어 책 속의 흑백 사진과 대조하는 까칠함도 즐겨 보고 싶다.

솔직히 주역의 64괘와 8패를 설명한 부분은 읽어내기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하늘의 뜻을 받들어 덕치를 기반으로 하는 왕도 정치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를 건물에 나타낸 부분은 알면 알수록 대단하다. 예전에 읽은 레 미제라블에서 중세 시대에 건축물로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물론 일반 백성의 출입이 쉽지 않은 궁궐의 경우는 아마도 왕실과 관료들이 초심을 잊지 말라는 당부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조선을 개창한 선각자 정도전이 구상한 경복궁의 여러 속깊은 구상은 많은 화재와 전란, 재건의 혼란 속에서도 면면히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렀으니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책 이름 그대로 한 권으로 경복궁과 조선의 내밀한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음에 참 행복한 책 읽기다.

*** ***

근정전 조정에서 조하에 참석한 백관들은 어떻게 불렀을까? 공식적인 행사인 만큼 이름보다는 공식적인 직함을 부르는 것이 통례였다. 품계에 정1품 상계, 정3품 하계 등으로 부르지 않고 정1품 상계는 백관이면 ‘대광보국승록대부’, 종친은 ‘현록대부’, 내명부는 ‘빈’, 외명부 백관 부인은 ‘정경부인’ 등으로 불렀다.(59p)

소주방 하면 많은 사람이 으레 ‘대장금’을 떠올린다. 대장금을 궁에서 왕의 음식을 책임지는 제1의 요리사로 생각하지만, 실제 장금은 조선 중종 때 의녀로 기록되어 있을 뿐 음식이나 요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다. 소주방을 관할하던 주무 관청은 이조 소속 사옹원이다.(295~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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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어보기 부끄러워 묻지 못한 맞춤법 & 띄어쓰기 100 - 딱 100개면 충분하다! 교양 있는 어른을 위한 글쓰기의 시작
박선주 지음 / 새로운제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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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논문을 쓰다가 지도 교수에게 자주 듣던 지적이 있다. 글을 쓸 때는 군더더기가 없어야 한다. 간결하게 쓰되 주술 관계가 명확해야 한다. 만연체가 아닌 단문이 좋다. 어려운 글보다 뜻을 잘 전달하는 글이 좋다. 반백이 다 된 나이에 빨간펜 첨삭 지도를 3개월 정도 받으며 주경 야독하면서 교정과 교열, 윤문의 차이를 조금씩 배우게 되었다.

가장 많이 들어 익히 알고 있는 ‘교정’은 오탈자, 맞춤법, 띄어쓰기, 붙여쓰기, 문장부호 등을 바로잡는 작업을 말한다. 그다음 ‘교열’은 교정 작업에 더해 중복된 단어는 삭제하고 가장 적당한 낱말로 바꾸고, 시제를 바로 잡고, 문장 앞뒤 문맥이 맞지 않거나 주어와 서술어가 서로 맞는지 문법에 맞게 바로 잡는 작업으로 신경을 써야 한다. 마지막으로 ‘윤문’은 교정과 교열에 더해서 문법은 맞지만 이해가 쉽지 않은 어려운 문장, 지나친 외래어나 번역투 문장이나 중복된 내용은 삭제하거나, 모호한 표현을 정확하게 바로잡는 과정으로 결코 쉽지 않다.

내가 쓴 글을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읽는 독자-그 사람이 누구든 간에-를 위해서라도 초안을 작성한 다음에는 교정과 교열, 윤문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구입한 책이 기본적인 오탈자나 맞춤법 검사조차 하지 않았다면 과연 기분이 어떨까. 논문 뿐만 아니다. 요즘은 손편지 대신 각종 SNS에 짧은 글을 자주 올린다. 말과 글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말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허술하기 짝이 없는 글에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그런 것을 지적하는 사람을 ‘진지충’이라고 경시하기도 한다.

과연 이래도 괜찮은 것일까? 하지만 적어도 자기소개서를 쓸 때는 모두 진지해질 것이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려고도 한다.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 먹거리와 운동에 신경을 쓰는 것처럼 말글살이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시간과 정성을 들여야 한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하는 것은 헬스장이나 글쓰기도 마찬가지이다. 잘못된 습관을 바로 잡아주고 근육을 키워주는 헬스 트레이너처럼 글쓰기 전문가 또한 작문 실력을 늘려 준다.

이번에 만난 글쓰기 선생은 모던걸 교양살롱이란 너튜뷰 채널을 운영하는 박선주 작가이다. 그의 신간 ‘맞춤법&띄어쓰기 100’은 ‘물어보기 부끄러워 묻지 못한’이란 소제목을 달고 있다. 제목 그대로 일상에서 자주 접하는 헷갈리는 100가지 문제를 던져주고 독자가 먼저 스스로 생각하고 답을 생각하도록 한다. 말을 처음 배우던 것처럼, 영어를 처음 배우던 때처럼 반복 숙달의 시간이 필요하다. 저자는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헷갈리는 맞춤법 80개와 20개의 띄어 쓰기 사례를 소개한다. 이 책은 그냥 눈으로 읽고 넘어가면 안된다. 종이와 펜을 준비하고 직접 써 보는 것을 권한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는 내 생각을 오류 없이 전달하는 최선의 도구가 된다. 다른 사람의 글을 보고 섣부른 지적을 하기 전에 먼저 내가 쓰는 글을 살펴보게 되었다. 보내기 버튼을 누르기 전에 한 번 더 확인해 보는 습관. 안전한 말글살이의 기본기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책상 위 작은 책꽂이에 두었다. 언제든 손을 뻗어 꺼낼 수 있는 위치에.

책 날개를 자세히 보면 맞춤법과 띄어쓰기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모의고사 3회분을 큐알 코드로 제공한다. 책을 읽기 전 또는 읽고 난 후에 시간을 내어 직접 풀어보면 학창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 ***
올바른 우리말 맞춤법에 익숙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맞춤법에 맞게 쓴 글을 많이 보는 것입니다. 우선 책을 많이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책을 읽으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함으로써 시야도 확장할 수 있는데요. 책의 장점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맞춤법에 맞는 말로 쓰여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2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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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여행입니다 - 나를 일으켜 세워준 예술가들의 숨결과 하나 된 여정
유지안 지음 / 라온북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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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에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나그네 인생이라 하면 왠지 낭만 있게 들리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삶의 터전을 잃고 유랑하는 처지에 있는 그런 삶이었으니. 유목민들이 계절을 따라 초지를 찾아 이동하는 것도 여행이라 하지 않는다. 대항해 시대에 미지의 땅을 찾아 긴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범선이라는 교통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인류는 산업 혁명 이후 증기기관차를 발명하고, 이후 자동차와 비행기 등 이동수단을 눈부시게 발전시켰다.

물류 이동 뿐만 아니라 여객 운송이 활성화되면서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견문을 넓히는 여행은 귀족들의 전유물에서 일반인에게도 익숙한 일이 되었다. 비록 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넘게 국외 여행이 제한되기도 했지만, 최근에 다시 여행이 재개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직접 나가지 못할 때는 영상 매체 또는 사진이 포함된 여행 에세이를 읽는 것이 훌륭한 대인이 될 수 있다. 먼저 가서 보고 느낀 사람의 글을 읽으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고, 독자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새롭게 알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미 진부한 말이지만 여행 또한 아는 만큼 보이고,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 읽은 유지안의 여행 에세이는 담백하면서도 찰진 느낌이 있다. 여느 패키지 여행이 아닌, 그러면서도 자유로운 여행도 아닌 ‘목적’에 충실한 묵직한 여행 이야기들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다. 마치 정밀 유도 미사일 같이 평생에 추앙(!)하던 작가들의 흔적을 찾아 세계 곳곳을 수 년에 걸쳐 답사한 기록이기에 그러하다. 단지 여행이 좋고, 걷는 것을 좋아해서 떠난 여행이 아님을 프롤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평생 마음에 그리던 활자 속의 작가들-물론 쇼팽 등의 음악가, 고흐 등의 화가도 있다-의 숨결이 남아 있는 그곳을 찾아 저자는 결코 쉽지 않은 노정을 시작한다. 저자의 여정을 같이 따라 읽어가다 보면 익히 아는 작가, 음악가, 화가도 있지만, 솔직히 잘 모르는 이도 있다.

그러면 어떤가. 이번 기회에 저항 시인 나짐 히크메트라는 인물을 새로 알게 되었으니 족하지 않은가. 익숙한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사고의 저변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니 책 한 권 읽는데 들이는 공력과 시간 값 이상은 충분히 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새로운 것보다는 익숙함에 안주하려 한다. 은퇴 후 인생 제2막을 살아가는 저자의 뚜벅이 여행길을 행간으로 쫓아가다 보면 타성이 젖어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비쳐진다. 꼭 저자처럼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할때 새로운 생각을 하려 하는 시도를 해야 한다느 다짐을 해 본다.

저자는 톨스토이, 셰익스피어 등이 산책했던 길을 따라 걷고, 작가의 창작 공간을 둘러 본다. 호젓한 길을 걸으며 생각을 가다듬은 다음 정해진 시각에 ‘묵직한’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대문호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젼 없으면 불안해지는 작금의 현실과 비교해 보면 창작을 위해 그보다 많은 시간을 산책하며 생각을 가다듬고, 그 시대와 인간 군상을 작품 속에 담아낸 그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저자 유지안은 장장 900일에 이르는 여행을 통해 별처럼 빛나는 인물들의 삶의 자취를 직접 찾아가 오감으로 느낀 것을 사진과 활자로 정리하여 2차원의 지면으로 독자에게 소개해 준다. 저자가 여행을 통해 인생의 고민을 조금씩 풀어나간 것처럼 책을 읽어 나가며 위로를 받고,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받았다. 각 장별로 테마를 정하고 거기에 6~7곳의 여행지와 작가를 소개한다. 자유롭게 떠나 위로하고 치유를 받고, 긍정의 힘을 갖고 용기로 도전하고 극복하며 자신의 현재를 반추하고 미래를 생각하는 여행이 이 책의 주제가 된다. 아, 그래서 인생을 알려면 여행을 떠나라고 하는 모양이다. 1킬로그램이 안되는 책이 읽다보면 엄청 무거움을 느끼게 된다. 저자의 사유와 사람과 인생을 바라보면 통찰의 무게가 그러하다.

*** ***
책상 위에는 작가가 사용한 펜과 잉크, 신문, 놋쇠 촛대 등이 놓여 있다. 정원 숲에서 깊은 사색을 하며 생각을 정리한 작가는 이 묵직한 책상 앞에서 규칙적인 집필 활동을 했으리라. 대문호의 성실함에 숙연해진다.(103p)

작가의 생가와 주변 저택들을 걷는 시간은 마치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읽는 기분이었다. 작가가 세례를 받고 영혼이 잠들어 있는 곳, 홀리 트리니티 교회에 앉아 하루를 정리하자니 셰익스피어 시대를 걸었던 하루가 감동으로 다가온다.(20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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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의 신인류가 몰려온다 - 일생 최후의 10년을 최고의 시간으로 만드는
이시형 지음 / 특별한서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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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살아오면서 막상 닥쳐야 온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있다. 쌓아가는 적립 포인트를 보면서 나름 지혜롭게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위하면서, 괜찮겠지 하고 신용카드 할부를 하다 보면 언젠가 닥치는 고지서를 보듯. 젊을 때는 노인이 너무나 멀게만 느껴지지만 결혼과 육아, 교육이란 쓰나미로 수차례 넘어서다 보면 노화의 선발대가 찾아온다. 바로 알게 모르게 늘어나는 주름과 흰 머리들. 거기에 작은 글씨를 읽을때 눈을 저절로 찡그린다. 노안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노인이란 테두리 안으로 한 걸음씩 다가서고 있다.

지난 해 외신에서는 심심찮게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란 예측을 했다. 그러면서 전쟁이 일어나면 세계 2위군사 강국인 러시아가 단기간 안에 승기를 잡을 것이라 전망을 했다. 결국 전쟁은 일어났고 예상대로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까지 진격하여 압박했다. 코미디언 출신으로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된 젤렌스키가 도망갈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티셔츠 차림의 젤렌스키는 수도를 지켰고 자국민과 전세계를 향해 러시아의 침공에 대항할 것임을 천명했다.

객관적 전력에서 약세인 우크라이나가 효과적으로 러시아와 접전을 벌일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일까? 물론 미국 등 서방의 무기, 물자 지원도 있지만 우크라이나 지도부와 국민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동원령과 징집에 동참하여 외적에 대항하고자 뭉친 것이 우선 아닐까 생각한다. 다가오는 전운을 앞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 미리 대비하고, 국민들의 이해와 동참을 구한 것이 러시아와 다른 점이다. 반면 러시아는 준비를 제대로 하니 않은듯 전쟁이 지속되자 자중지란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90세를 넘긴 정신과 전문의사 이시형 박사의 최신작 ‘신인류가 몰려온다’를 읽으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을 떠올린 것은 최고령 사회 또한 전쟁 못지 않은 재난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직 내게 해당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순을 넘어서다 보니 노화의 전조 현상이 하나 둘 나타난다. 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님을, 아직 늦지 않았음을 노익장을 과시하는 저자의 열정어린 조언을 읽으며 공감할 수 있다.

노인이 되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3장에서 장수의 늪이라 표현한다. 누구나 오래 살기를 소망하지만 대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오히려 늪에 빠진 것처럼 재앙이 되고 만다. 책을 읽으며 크게 3가지로 정리해 봤다. 1) 심리적인 대비 2) 건강 관리 3) 재정…

몸과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음으로 느낄 때 노화는 이미 진행되고 있다. 몸이 피곤하면 쉽게 짜증을 내고 완고해질 수 있다. 이것을 이겨내려면 취미 활동과 대화를 나눌 친구가 있으면 좋다. 진정한 장수의 복은 그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부터 근력 운동을 시작하고 탐식을 하지 않는 생활을 실천해야겠다. 노인에게 재정은 쉽지 않은 문제다. 수입이 줄기 때문에 지출을 줄이는 것이 우선이다. 건강 관리를 잘 하면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가진 것을 줄여 나가고 움켜 쥐기보다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저자처럼 전문직-정신과 의사-이 아닌 일반인이라도 초고령 시대를 자기 여건에 맞춰 준비를 해나가야 한다. 제6장 ‘최후의 10년, 이렇게 준비하라’를 읽으며 인생 2막을 대비해서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맨날 음식을 사 먹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50대가 넘으면 부부 관계에도 자연스럽게 변화가 찾아온다. 아내는 여행을 갈 때 남편을 데려가려 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겪어보면 안다. 혼자가 되었을 때를 지금부터 대비해야 한다. 늦은 것 같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저자의 애정이란 조언에 힘을 내본다.

*** ***

노인 문제가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나이는 75세부터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노화가 시작된다. 85세 이상이면 진단은 물론 치료도 아주 까다롭고 어려워진다. 이 나이가 되면 노인은 작은 변화에도 엄청난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28p)

무슨 병이든 앓고 잘 낫지 않으면 죽음을 향하고 있다는 뜻이다. 슬프고 잔혹한 일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생애 한 번은 찾아오는 공평한 운명이기도 하다. 그럴 때 인간은 비로소 처음으로 알게 된다. 내 발로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던가. 시원하게 배설할 수 있다는 것도 얼마나 대단한 일이었던가.(103p)

그래서 요즈음은 어떻게 사느냐보다 말년에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숙제로 떠오른다. 웰 리빙도 중요하지만 웰 다잉도 잘 챙겨야 한다. 옛말에 죽는 복도 타고난다고 했다. 살아 있는 한 삶의 의미가 살아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건강 타령을 하지만 마지막에야말로 건강해야 한다. 건강하게 죽어야 한다.(1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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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 김춘수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김춘수 지음, 조강석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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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고사 세대. 가을철이면 교내 시화전이 열렸다. 자작시 또는 유명을 떨친 시를 그림과 함께 손 글씨로 적어 패널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한다. 단골로 김춘수의 꽃이 빠지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십대 후반 떨리는 가슴을 그이만큼 담백하게 담아낸 시어가 있을까 싶었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이 되고 싶다’

방과 후에 학교 도서관에 자리를 깔고 책을 읽고 매주 한 번씩 써클 모임을 하던 소년은 어느덧 반백을 넘어가 인생 후반전을 살아가고 있다. 그 시절 내게 다가온 김춘수의 꽃은 아직(yet)인 상황이었다. 국어 시간에 색색의 형광 펜으로 그어가며 소재와 주제, 시상을 해부하듯 분석하던 땀내 나는 남자 교실의 설익음 또한 기억에 생생하다. 세월이 흘러 잊혀지지 않는 눈짓을 보낸 사람을 만나 꽃길을 걷기도 하고,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런 삶의 모습들이 모여 이야기가 되었다. 시인은 이런 미묘한 변화를 시어로 박제한다.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은 시인 김춘수 탄생 백주년을 기념한 시그림집이다. 책으로 엮은 시화집인데 여섯 분의 현역 화가들이 시상을 따라 그린 작품이라 대부분 2022년작이다. 그림마다 보고 읽는 느낌이 다르다. 김선두 화가는 화가 이중섭을 그렸다. 김춘수의 시 ‘내가 만난 이중섭’과 함께 김선두가 먹으로 그린 그림을 보노라면 이중섭의 눈물이 배어나오는 듯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한 뼘씩 지우고 있는 이중섭. 동경에 사는 아내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기에. (111쪽을 보라)

김춘수는 1948년 첫 시집 ‘구름과 장미’ 발간 이후 17번째 시집 ‘쉰한 편의 비가’를 2002년에 펴낸 뒤 2004년에 타계한다. 엮은이 조강석은 김춘수의 일생에 걸친 시 여정을 한 권으로 시화집으로 묶어 냈다. 목차에서 60년 넘는 시인의 발자취가 시집과 선별된 작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워낙 긴 세월 작품 활동을 하다 보니 시인의 작품 세계 또한 변천을 겪게 되는데 부록으로 있는 ‘작품 해설’에서 길라잡이를 해 준다.

시를 좀 더 이해하고 시인이 보고 느낀 시상을 공감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인의 살았던 시대와 만났던 사람. 그에게 영향을 준 책과 작가들. 살았던 동네를 찾아보는 노력들이 있다. 그런 노정의 결실이 문학과 여행이 융합된 에세이로 출간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현대를 사는 6명의 화가가 시인의 대표작을 묵상하며 그려낸 그림들이 독자에게 색다른 감동을 준다. 아는 만큼 더 깊게 느낄 수 있다.

시집을 넘기며 대부분 처음 접하는 작품이라 좀 더 음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럽지만 시를 챙겨보지 않은 메마른 심성이 드러나는 셈이다. 시와 그림집에 담긴 60년 넘는 시인의 쉼 없는 창작 여정을 훑어 보며 한 작은 결심. 매스 미디어는 다이어트를 하고 여력을 책 읽기에 써야겠다는 소박한 다짐을 해 본다.

*** ***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은 김춘수가 1956년 버스 안에서 우연히 본 신문 국제면에 실린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소련은 1956년에 무장 군인들을 동원해 폴란드와 헝가리의 반공산주의 운동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김춘수가 본 사진은 그 과정에서 희생당한 어린 소녀의 것이었다. 시는 이 사건을 극화하면서 이데올로기와 폭력이 개인의 삶을 훼손시키는 현장을 생생하게 고발하고 있다. 나아가 헝가리에서 자행된 폭력은 비단 한 국가의 특정한 개인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한국전쟁 혹은 그 이전에라도 한국의 소녀에게도 언제나 일어날 수 있음직한 일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178-1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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