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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도라의 도서관
크리스티아네 인만 지음, 엄미정 옮김 / 예경 / 2011년 12월

 

결과적으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읽어 내려가고 있는 책이다. 책을 읽는 여성, 문자를 아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읽어가기 위해 예술에서의 책읽는 여성의 이미지를 짚어가는 방법론이 신뢰가 간다.

이는 현재의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여성 밖에서, 그리고 여성 안에서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그리고 앞으로의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스스로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 상상하게 하는 독서가 될 것이다.

 

 

 

 

 

 

 

 

 

 

다시, 집을 순례하다
나카무라 요시후미 지음, 정영희 옮김 / 사이 / 2011년 12월

 

심플하지만 다른 면에서 파격적일 수 있었던 개인적인 공간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명건축가들의 주거용 주택... 그 안과 삶은 어떨지 궁금해서 참을 수 없다. 건축가들의 아티스틱한 거대건축물들이 아닌 이야기라는 점은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인간의 삶을 기본목표로 한 그들의 집이야기, 집, 생활을 들려줄 책이다.

 

 

 

 

 

 

 

 

 

 

 

그리고 예술은 영화를 상상했다
한창호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11년 12월 

 

영화와 다른 예술장르와의 끊임없는 대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영화 안에서 다른 예술들을 발견하는 기쁨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될 듯 하다. 혹은 영화 속 생각하지 못했던 곳에서 우리가 놓쳤던 예술작품들에 대해 등장할 지도 모르겠다. 보다 특이한 점은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영화를 텍스트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놓친 영화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사람 사는 이야기
최규석.최호철.이경석.박인하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12월 

 

다큐멘터리와 만화가 만났다. 만화로 시도되는 다큐멘터리는 현시대의 어떤 면을 보여주고 있을까.  이후 시사만화와 더불어 빛을 발하는 장르로 도약하길 바란다. 사회의 곳곳을 재현하는 현시대의 만화가들의 손길로 다시 태어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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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시의 루브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오후 네 시의 루브르
박제 지음 / 이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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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오후 네 시의 산책은 어떤 의미였을까. 휴식이자 사유의 시간, 영감을 주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저자에게도 루브르는 추억과 사유의 시공간이었을테고 오후 네 시의 루브르를 통해 그 느낌이 충분히 전달되는 듯 하다.

저자가 들려주는 여러 그림이야기를 일단 미루고 내게는 그러한 시간, 공간이 있는지 골몰하게 된다. 쌓인 책이 문득 눈에 들어온다. 잠시의 웃음이나 차 한 잔의 여유마저도 사치스럽게 여겨지는 업무에서 몸과 마음이 벗어날 수 있는 잠시의 독서시간이 내게는 그들의 오후 네시와 닮아있으리라 자족해본다.

루브르의 소장 예술품에 대해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대로 과거 식민 문화재 착취 등의 소장품 유입에 대해 비난도 있고 나 또한 반환 요구가 응당하다고 생각한다.(좀 다른 경우지만 놀리 메 탄게레와 같이 원래 있던 자리에 합성했을 때 그 아우라가 제대로 느껴지는 작품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역사 속 원화들을 직접 만나는 기쁨을 아는 이들에게 세계의 미술품을 한 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루브르를 정당화 시킬 만큼의 매력이었을 것이다. 언젠가는 세계 곳곳, 루브르만큼의 자국 예술품을 관리하는 여러 멋진 미술관에서 원화의 감동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일단 관광지로서의 루브르에 대한 인식은 잠시 접어두기로 한다.

저자는 매우 견고한 구성으로 루브르의 그림을 소개하고 있다. 작품의 이미지도 무엇보다 그림을 잘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 면에 전면으로 싣고 있고 필요시에는 부분확대도 마다하지 않았다. 작가소개와 작품의 사적배경, 용어 설명과 관련자료 제시 등 깔끔한 구성으로 작품에 접근해 나간다. 하나의 작품을 이야기하더라도 단편적으로 그치지 않고 영향을 주고 받은 작가를 소개하고 시기적인 화풍과 소재의 유행에 대해서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사례로 드는 화가도 많고 언급되는 작품도 많다. 이들은 루브르 내의 작품이기도 하고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타 미술관의 소장품들이기도 하다. 저자는 언급되는 작품과 화가를 설명하고 제시하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 또 다른 챕터에서 다루는 화가의 작품이 있으면 그 연관성을 설명하고 있어서 책의 앞뒤를 펼쳐가며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챕터간의 유기성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집중력을 대변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모든 미덕이 예술 작품을 이야기 하는 모든 책의 기본이 아닌가 싶지만 사실 이를 모두 충족시키면서 산만해지지 않는 미술서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저자의 집중력은 아마도 몸에 밴 루브르, 그리고 개인적 감상 경험을 토대로 한 작품에 대한 애정, 반복적인 감상과 연구로 인한 작품에 대한 소화력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할 수 밖에...

이렇게 쓰고 보니 저자의 작품해설이 굉장히 전문적인 지식의 나열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저자의 가장 큰 매력은 재미나게, 쉽게 읽히는 글에 있었다. 미술에 문외한인 독자라도 즐겁게 루브르 곳곳을 채우고 있는 15세기, 16, 17세기의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저자가 들려주는대로 붓을 든 화가의 마음을 이해하는 여정이 된다. 오히려 문제라면 그림들에 대한 저자의 강렬한 애정이 전달력이 좋아서 조금은 비판적으로 그림을 읽기보다는 들려주는대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림의 탄생배경을 충분한 사적자료를 통해 여러 가지 가능성 또한 놓치지 않고 있지만 그림의 감상 부분에서는 풍부한 저자의 해석이 약간의 독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또한 이 책이 공부하는 책이라기 보다 예술품과 진정 교감하는 관객의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나쁠 게 없다는 생각이며 예술작품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얼마나 교감을 시도할 수 있는가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위안을 주는지 다시금 예술의 역할 또한 실감하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그림을 제시하는 것 외에 현장, 즉 루브르에 걸린 그림과 현장을 찍은 자그마한 사진들이었다. 단 하나의 사진만을 제외하고는 타이틀 그림의 현장스케치들이었는데 이 사진들만으로 루브르에 걸려있는 그 그림만의 현장감을 온몸으로 느끼기엔 부족하겠지만 묘하게도 이 작은 사진들 덕에 책을 읽는다기 보다 그림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사진 안에서는 관객들이 그림 앞에 서 있는 경우들이 많아서 수치상으로 실감할 수 없었던 그림의 사이즈 또한 한눈에 실감할 수 있기도 했고 종종 전시장을 묘사한 글들 또한 한번도 가지 못한 루브르에 대한 간접경험이 되기도 했다.

저자의 개인적 경험에 의해 선택한 그림들이라고는 하나 소재별로 적절하게 묶여 있는 걸 보면 그 중에서도 고르고 골랐을 그림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잘 알지 못했던 그림들이 많이 소개되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는데 유럽 북구 미술과 네덜란드 미술 등이 가장 그렇다. 그 중에서도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와 더불어 델프트파에 속하는 그림들이 마음을 끌었다. 저자는 피터르 더 호흐의 술 마시는 여자시리즈에 애정을 표하고 있었는데 피터 브뤼헐의 거지들과 함께 루브르에 걸려 있을 델프트파의 그림을 직접 만나고픈 욕심이 잠시 든다. 그러고 보니 저자가 굉장히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이가 아닐까. 그림 속의 민초들에게 연민들 보내는 저자의 시선이 피터르 더 호흐나 브뤼헐과 같지 않았을까.

()’챕터에서는 관음증과 시선에 대한 문제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호기심 많은 소녀들과의 시선교환이나 저자를 압도하는 특이한 경험을 하게 한 작센의 모리스 공작 초상등 뿐만 아니라 그림 안과 밖에서의 수많은 시선의 교환을 인정하고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부분에 상당부분을 할애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시각예술에 있어서 가장 먼저, 그리고 끊임없이 관객에게 사유하게 하는 매력이 바로 이 시선의 교환에 대한 고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시선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챕터에서도 끊임없이 저자가 시도하고 있는 작품읽기방법 중 하나이다. 그림 안의 인물, 화가, 관객 간의 시선에 대한 읽기가 사실 가장 그 작품의 내면에 근접하는 방법이 아닐까.

나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캥탱 마시의 돈놀이꾼과 그의 아내’, 그리고 그 그림의 설명에서 언급된 페트루스 크리스투스의 금세공 작업실의 성 엘리기우스에서 그림안의 볼록렌즈에 매료되었다. 이는 저자가 말하는 렌즈 안의 종교적 상징에서 나아가 그림의 시선을 확대하여 프레임을 확장시키는 결과를 낳는 사례의 그림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거울을 통해 프레임 밖의 공간과 인물을 들이고, 새로운 이야기과 의미를 넣는 여러 시각예술에서의 이러한 기법들이 매번 재미나고 흥미롭다.

 

이와 같은 나의 경우에서처럼 나는 저자가 사료에 근거한 정확한 정보만을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자의 다양한 그림 이야기와 저자만의 감상과 해법은 분명 우리에게 어떻게 예술과 교감할 것인지, 단지 배경지식으로만이 아닌, 그림 속 인물과 그리고 그리는 이와의 대화와 호기심이 과거 아닌 과거, 예술품의 내면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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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파탈]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아트파탈 - 치명적 매혹과 논란의 미술사
이연식 지음 / 휴먼아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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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미술의 고상함으로 나체화와 누드화에 대한 인식은 음지에서 양지로 많이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처음은 그렇지 못했을 것이라 예상할 수 있으며 금기를 깬 몸의 재현에 대해 미술사에서의 전환점들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아트파탈은 이렇게 미술사 내에서 몸에 대한 재현에 대한 미술사의 시선, 일반인의 시선 등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며 현재 우리가 몸의 재현에 대해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있다.

인류의 몸은 변화가 없는데 몸에 대한 재현은 그 노출정도 뿐만 아니라 재현의 방법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었으며 같은 몸도 그에 따라, 그리고 매우 주관적으로 각각의 시선에 따라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 우리가 춘화라 치부하며 고상한 미술품의 대열에서 떨어뜨려 놓으려 하는 성애 혹은 나체화들과 마찬가지로 예술에서의 누드는 호기심 어린 시각적 전유물로서의 춘화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역사 속의 유물로 인정하고픈 많은 나체화들이 실상은 개인소장을 위한 춘화주문에서 탄생하였다는 것이 놀라울 것도 없다. 언제 어디서나 예술품의 가치는 시간이 흐르고 시대의 욕구에 의해 그 가치를 각각 인정받는 법이니 말이다.

 

저자의 작업을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술사에서의 몸에 대한 묘사, 성에 대한 묘사를 돌아보는 작업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에 의하면 피사체의 연출과 재현에 있어서 몸(특히 여성의 몸)에 대한 재현의 노출정도와 정숙한 분위기의 정도는 늘 논란의 여지가 있는 그림들을 기점으로 패러다임을 변화시켜왔다. 우리나라의 성애화, 풍속도에 대해 생각해 볼 일이다. 뭇 역사서를 통해 알 수 있듯 춘화는 당시에 절대 인정받지 못하는 저속한 민속문화였음이 분명하다. 메이저 예술가가 춘화를 그렸다면 이는 자신의 지위를 걸고 엄청난 금기를 위반한 것이 된다. 숱한 예술품을 수집할 능력이 되는 사대부들의 비난과 함께 당대 유교적 가치관에 반한다 하여 정치적 반역으로도 치부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민화 혹은 풍속화에서의 성애, 나체화가 보존작이 많지 않은 이유도 이와 같은 억압적인 역사를 반증하고 있는 것일게다. 유난히 성적 표현에 대한 억압이 심했던 유교적 가치관의 오랜 장기집권은 우리나라에서의 보존된 (저자의 표현대로 하자면)‘ 아트파탈의 사례가 적은 이유로 충분했다. 나는 우리의 풍속화만이 음란함에서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물론 오히려 사회적 지위가 위태로울 만큼의 금기위반의 작업이었으며 민중 안에서 얼만큼 허용이 되었든지 간에 알려진 화공으로서는 계급없는 농담과 해학의 표현을 꾀했음은 분명하다. 당시의 사회적 계급과 가치관으로 볼 때 오히려 상대적으로 음란하다고 평가를 받는 것은 더했을 시기가 아닌가.

 

나체화, 누드, 혹은 성을 묘사한 미술사에서 작품이 가져온 논란 뿐 아니라 새롭고 흥미로웠던 미술사의 부분을 발견하는 매력이 있는 책이다. 여러 예술과 권위적 시선에 대한 책이 있었으나 여성이 알몸을 그릴 권리가 없었던 시기를 묘사한 작품이 특히 눈에 띈 것도 굉장히 흥미로웠다. 마치 알몸을 본다는 권력의 남성성을 반증하기라도 하듯 레옹 마티외 코셰로의 다비드의 화실 풍경은 미술계에서도 나체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남성적 시선의 목적을 인정하고 있다. 보고자 하는 욕구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여러 여성의 몸 재현을 비튼 것이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페미니즘 미술이라고 할 수 있는데 주디 시카고의 디너파티혹은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처럼 완연히 드러내버리기, 신비감을 없앤 신체로서의 여성의 몸은 아예 음모조차 없는 성기로 감추어 재현된 고대의 여성의 몸 재현에 대한 거부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비록 미술계 내에서 이제 몸에 대한 재현에 대한 정치적인 이슈는 여러 시각매체로 전이된 상태이지만 과거 미술에서의 몸 재현에 대해 저자의 방식대로 음란함의 시각적 기준에 대한 논란들은 현재 페미니즘 작업가들의 몸을 이용한 표현, 전위예술가들의 행위예술, 온갖 포르노와 그 구분조차 모호한 조형예술과 비디오 미술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표현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피사체를 분절하여 보는 시각보다는 피사체를 재현하는 프레임 밖의 배경과 이미지 소비자로서의 우리의 시선을 의식한다면 보다 풍부한 미술감상이 되지 않겠는가.

 

말했듯 현대사회에서의 몸에 대한 재현은 단 미술사에서만의 문제는 아니었던 것이다. 미술사 내에서의 몸 재현에 대한 논란의 전환점들이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시각매체의 등장과 실험적인 종합예술에 이르기까지 몸에 대한 재현의 허용성은 늘 뜨거운 감자이다.(최근 프로젝트 듀오 트러블 메이커의 퍼포먼스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 논란에 대해서도 여러 시선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작품 안의 묘사를 음란함으로 표현하는 동시에 그것은 예술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그만큼 예술계에서의 그 기준은 굉장히 모호하고 주관적이다. 저자가 야릇한감정을 느꼈다고 해서 모든 독자가 그에 동의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저자가 남성의 시각을 가지고 매우 솔직하게 대다수의 남성적 시선에 대해서 인정하고 있음은 매우 가치있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나체화를 다루면서 성적인 표현이 빠진 해석을 만났던 지금까지의 여러 비평들이 이상하게도 느껴질 정도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그렇다.

 

저자의 연구는 그 주제가 굉장히 구체적인 듯 하지만 방대하게 뻗어나갈 수 있는 글쓰기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미술에 대해서도 그렇고 종교화 혹은 신화화, 미술사별로 나누는 성애와, 동양에서의 춘화,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적 미술 등 저자 스스로도 본 연구가 굉장히 많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이야기와 책의 규모는 매우 단촐하다. 일단 그의 1차 연구작업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저자가 앞으로 연구할 또 다른 키워드의 미술이야기가 기대가 되며 이러한 저자의 연구가 미술에 관심이 있는 독자에게도 많은 영감을 줄 것이라 믿는다.

이 책은 미술사에서의 나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소재로 글을 분류하고 있기도 해서 시간의 순서대로의 미술사를 기대할 순 없다. 그러나 평면미술 뿐 아니라, 조형예술과 만화, 광고사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매체예술을 언급함으로써 우리가 볼 수 있는여러 시각 예술에서의 몸에 대한 재현이 얼마나 다양하며 그 해석에 있어 우리가 얼마나 성적인 잠재의식을 발동시키느냐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게 한다.

이는 좀 다른 이야기지만 책 중에 언급하는 그림의 위치를 00페이지로 명시하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목차에서도 페이지를 볼 수 있으나 정작 본문에는 페이지 수가 빠져 있어서 약간의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바로 다음 페이지의 그림을 명시하는 경우이므로 크게 그림을 찾는 데 어려움은 없으나 내용 중 페이지수를 표기한 것은 불필요한 명시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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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착의 대상
아서 아사 버거 지음, 엄창호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1년 11월  

애착이라는 단어를 통해 근 현대 인류가 가져온 사회적 무의식을 읽을 수 이쓴 기회로 보여진다. 아서 아사 버거의 국내 출간 신간이 반가울 따름일 수도 있겠다. 애착의 대상을 텍스트로 한다는 점에서 새롭고 아서 아사 버거만의 견고한 고전적인 비평이론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다. 

 

 

 

  

 

 

 

우리 집, 구경할래?
토드 셀비 지음, 정신아 옮김 / 앨리스 / 2011년 11월  

 

다른 이의 집을 책으로라마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 큰 볼거리가 될 것이다. 게다가 다양한 직업과 취향을 가진 이들 특히 아티스트들의 집이라니 매력적이지 않은가. 토드 셀비의 눈과 글을 통해 멋지고 창의적인 누군가의 공간을 들여다보고 많은 영감과 즐거움을 줄 책으로 생각된다. 

 

  

 

 

 

 

프리다 칼로, 타자의 자화상
우성주 지음 / 이담북스 / 2011년 11월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을 통해 다시 프리다 칼로를 재조명할 뿐 아니라 자화상이라는 형식을 접하는 관객으로서의 사유에도 도움이 될 듯 하다. 미술 뿐 아니라 인류학 등 다양한 학문에 노출되어있던 저자의 차분한 목소리를 기대해본다. 우리는 그녀의 자화상을 타자적인 시선으로만 해석해온 것은 아닐지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 될 것이다. 

  

 

  

 

 

 

아트, 도쿄
박현정.최재혁 지음 / 북하우스 / 2011년 11월  

  

유럽의 유명미술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온 일본의 미술관 기행에 동참하게 될 기회이다. 일본 미술관에 소장된 여러 옛 미술 뿐 아니라 현대 일본 미술의 현 지점을 엿보는 데도 몫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일상에서 영화를 말하다
진성철 지음 / 시간의물레 / 2011년 11월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저자가 어떤 담론을 이야기할지 무척 궁금해진다. 영화같은 현실, 현실같은 영화 일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오히려 새삼스러울 만큼 우리에게 가까운 매체이자 그 오락성과 현실성의 경계가 모호해진만큼 저자의 일상에서 풀어내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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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싶은 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림 그리고 싶은 날 - 스케치북 프로젝트
munge(박상희) 지음 / 예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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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누구에게나 그림을 그리고픈 욕망이 있는 것일까.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지만 그림을 잘 그리고픈 욕심을 언제나 있었던 듯 하다. 내 머릿속에 있는 것, 그리고 내가 아끼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고픈 욕망 말이다. 그러나 머릿속에만 맴돌 뿐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 이 책을 보고 나니 연습도 없이 그림을 잘 그리고픈 욕망만 앞서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렇게 그림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것은 말로 표현되지 않는, 혹은 말문이 막혔을 때의 기억들을 그림일기로 쓰고 싶어서였던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런데 마침 저자의 그림일기가 등장한다. 짤막한 문장 몇 개와 장난스러운 그림 하나하나가 일기가 되고 생생한 기억이 된다. 때로는 말보다 그림이 그때의 기억을, 감정을 잘 표현해주기도 하는 듯 하다. 그래서 그림으로 하는 말에 대한 욕심이 들었던 것일까. 유난히 그림에 자신감이 없어서이기도 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겠다.

책을 읽는다고 해야 할까 본다고 해야 할까. 저자 ‘먼지’의 드로잉을 보는 재미가 있다. 수많은 병들, 다양한 사람들, 사람을 드로잉 하는 것이 항상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저자의 선을 따라 따라 그려봐도 좋은 연습이 될 것이었다. 책을 뒤적뒤적 하다가도 문득 새로 산 수채 색연필을 꺼내 들고는 끄적 끄적 거려본다. 무에 커다란 도화지를 하나의 그림으로 채울 생각을 버린다면 저자의 드로잉 공부만으로도 많은 습작이 나올 듯 했다. 그래서 버스도 그리고 새도 그리고 내 책상의 모니터도 그려본다.

정물화, 인물화, 풍경화 등의 단어가 아니라 오브젝트 드로잉, 라이프 드로잉, 로케이션 드로잉이라는 용어라서 조금 더 친근했던 건 아닐까. 전문적인 기술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말을 지껄이듯 그림도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지껄여보라는 게 아니었을까. 연필이나 붓을 들고서 아무것도 그리지 못하는 자신을 북돋는 듯한 저자의 말이 힘이 된다. 아무도 보지 않을나만의 스케치북이라 생각하니 더욱 그렇다.

저자가 제시한 드로잉들을 보니 점들이 만들어낸 면과 다양한 색의 그 면만으로도 아름다운 드로잉이 된다. 이 부분을 책의 중간 부분에 있는데 스케치에 자신이 더욱 없다면 책의 순서 없이 면과 색부터 따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형태를 온전하게 잡는 것보다 색과 기하학적인 나만의 면으로 무늬를 만들어내고 나만의 스케치북 표지를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이 책은 수많은 미술도구를 소개하고 있기도 하고 직접 만들어보는 스케치북을 다양하게 만드는 법까지 제시하면서 매우 미술학습적인 면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나는 저자의 의도가 결코 미술학습에 그 목표를 두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림에 자신이 없는 일반인들에게 그 어떤 것도 그림그리기의 대상이 될 수 있고 자신만의 표현법을 찾는 영감을 주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드로잉의 방법은 꼭 저자의 순서가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맞거나 흥미가 좀 더 가는 분야를 공략해서 나만의 표현법을 만든다면 더 멋진 드로잉이 되지 않을까. 얼마나 닮게 그렸냐는 것이 우리의 작은 그림들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은 되지 않을테니 말이다. 얼마나 나만의 표현을 하고 있는지, 그림으로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무엇을 느꼈는지, 우리가 어떻게 기억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일테고 저자도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최근 장미셀 오토니엘의 전시회에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는 완벽한 공예품이 아니라서 버려지고 부러 파손되는 유리들을 모아 자신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누군가에게는 표현의 방법이 되고 의미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으리라. 우리의 드로잉이, 그림언어가 다른 누군가에게 의미일 것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나의 표현의 욕구를 표출하고 매끈하진 않아도 내가 직접 내 기억을 표현한다면 그것으로 가장 큰 의미가 아니겠는다. 저자 ‘먼지’는 드로잉을 위주로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해도 괜찮다며 다독이지만 사실 드로잉 뿐 아니라 어떻게든 표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더욱 강렬하다. 참으로 위로가 되는 저자의 메시지이다.

말했듯 이 책은 저자의 일기를 엿볼 수 있기도 하고 그의 여행기를 볼 수 있기도 하다. 덕분에 책을 보는 재미가 더했던 듯 하다. 조그마한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저자의 여행기와 일기라니 말이다. 일기 속의 저자의 캐릭터가 참 귀엽기도 하고 하나하나가 멋진 캘리그라피가 되는 텍스트들도 멋지다. 저자가 이끌어주는대로 잘라붙이기도 하고 선으로만, 면으로만 이것저것 끄적거리는 연습은 정말 우리의 드로잉 실력을 높여줄 것 같기도 하다.

당장 졸업앨범을 꺼낸다면, 수많은 맥주의 종류를 접한다면, 마트에 종류별로 한 골목 가득 쌓인 통조림의 종류를 본다면... 이걸 다 그려야 하나라는 부담이 생길 수도 있으니 하나의 스케치북이라도 여러 방법과 소재를 시도한 2011년 11월~12월의 스케치북을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일기여도 좋고 스크랩이어도 좋고 과거를 기억하면서 앨범사진 중 하나여도 좋겠다. 일단 연필을 들어보는 거다.

나는 일년에 몇병 사지 않는 와인 맛을 구별하려고 병을 그리기도 했고 말로 하면 재미 없는 나의 황당한 경험을 친구에게 이야기 해주려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물론 정말이지 형편없는 그림이었지만 나중에 그 그림들이 나를 웃게 하고 소중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제목처럼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 책은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우려는 이들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나를 위로하는 나의 또 다른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자, 그림 그리고픈 욕망에 영감을 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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