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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명화 수록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54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외젠 들라크루아 그림, 안인희 옮김 / 현대지성 / 2024년 2월
평점 :
악마에게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갖고 싶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이 있을까요?
요한 볼프강 괴테의 <파우스트>는 그런 상상을 실현한 작품이에요.
욕망에 휩싸이지 않는 인간은 세상 어디에도 없기에
인생엔 매 순간 악마의 유혹이 존재하고,
악마의 손을 잡을지 말지 결정하는 선택의 연속인 것 같아요.
<파우스트>는 괴테가 23살에 집필하기 시작해 생을 마감하기 전인 82살에 탈고,
무려 60년의 세월을 바쳐 완성한 작품이에요.
'천상의 서곡'에 신과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를 놓고,
인간은 본디 선한 존재인지 악한 존재인지를 두고 내기를 하는 장면이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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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노력하는 한 헤매기 마련이지.
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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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 들어보셨죠?
신이 파우스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오는 구절인데요,
노력하는 사람은 방황하지 않을 것 같지만
노력과 방황은 필연적인 관계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신은 선한 인간이라면 아무리 충동(=방황)에 휩싸여도
올바른 길을 잃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파우스트는 죽을힘을 다해 철학, 법학, 의학, 신학을 공부했지만
예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었어요.
정통 학문에 한계를 느낀 파우스트는
금기시되는 영역까지 손을 뻗으면까지 지적 욕망을 채우려 했지만
지식 그 자체보다 자연의 흐름을 느끼고,
우주를 조망하여 본질을 깨닫고자 하는 욕망은 당대 학문 수준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꿈이었어요.
신이 보기에 파우스트는
희망을 좇아 노력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괴로워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메피스토펠레스가 볼 땐 아니었어요.
도달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하고 싶을 만큼 강렬한 지적 욕망에 휩싸여있었고,
병적인 상태에 이른 파우스트 앞에 악마 메피스토펠레스가 접근합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한 파우스트에게 다가가 책만 보지 말고 바깥세상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보라고 조언해요.
그러면 책을 통해 알고 싶었던 것, 세상의 본질, 인간 삶의 의미 등을 구체적으로 보게 될 거라고요.
악마의 충고를 듣고 세상 밖으로 나온 파우스트는
악마와의 계약으로부터 얻은 젊음으로 악마가 보여주는 세상에서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순수하게 자란 소녀, 마르가레테를 보고 반하는데요,
무수한 거짓말과 신분 조작으로 그녀의 마음을 얻게 된 파우스트는
육체적 욕망에 시달리면서 선을 넘는 행동을 하고 맙니다.
마르가레테에게 수면제를 쥐여주며, 이걸로 어머니를 잠들게 하고 함께 뜨밤을 보내자고 해요.
악마와 동행을 시작하고부터 신의 존재는 흐릿해지고,
학문에 몰두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랑만을 갈구하는 파우스트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온갖 학문을 섭렵한 현자가 작품 내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휘둘리는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더라도, 아무리 오랜 시간 수양하더라도
본능에 덜 휘둘릴 순 있어도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온갖 쾌락을 경험하며, 더 많은 것을 손에 넣기 위해 애쓰는 파우스트를 통해서
괴테가 과도한 성취욕구는 강박증을 낳고, 세상을 비인간적인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욕망이 나쁘기만 할까요?
극단적 선택을 하려고 했던 파우스트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한 건 다름 아닌 메피스토펠레스였잖아요.
욕망은 잘 다스리기만 하면 삶의 의욕과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해요.
자신 안에 계속 생기는 악한 마음에 괴로워하며 좌절하기보다
우리 자신이 불완전한 존재임을 받아들이고, 선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편이 더 나은 것 같아요.
순간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에 빠질 순 있어도 자신의 악행을 반성하며 끊임없이 선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할 수 있는 최선의 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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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는 괴테가 살았던 삶, 시대, 지식과 사상이 그대로 담겨 있으면서도
그 시대에 그치지 않고 현대까지 영향을 미쳐 우리 시대의 모습을 반추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시 고전이 다르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우스트>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문학이라 평가받기도 하는데요,
시중에 나온 수많은 번역본 중에서도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의 <파우스트>를 선택한 이유는
원작의 정체성과 리듬을 고스란히 살려 가장 잘 맛깔나게 번역했기 때문이에요.
또 괴테가 직접 그린 희귀본 일러스트와 더불어
스토리에 맞는 거장들의 명화와 함께 읽는 것이 색다른 즐거움이었어요.
괴테가 23살에 집필하기 시작해 60년의 세월을 바쳐 완성한 <파우스트>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지 꼭 읽어보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