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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도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공중그네"로 "오쿠다 히데오"를 처음 읽었을 때(알라딘에서 덤으로 끼워 준 "인더풀"까지)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었지만 정작 그에 대한 인상은 그저 그런 내지는 비슷비슷한 일본 대중소설가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남쪽으로 튀어"를 읽으며 그가 마음에 들었다. "남쪽으로 튀어"는 주인공 "우에하라 이치로"에게 일방적으로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음에도 아주 유쾌하게 읽은 소설이다. 다음으로 "한 밤중에 행진"을 읽고는 "이 작가의 생산물은 독자에게 기본적인 재미는 주는구나"라고 느꼈다. 드디어,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져 급기야 "오! 수다"라는 기행문까지 구해 읽었다.
연보를 보면 그는 1959년 생인데 1997년 "우람바나의 숲"이란 소설로 데뷰했다고 하니, 비교적 늦은 문단 데뷰이다. 작가가 되기 전 이력이 기획자, 잡지 편집자, 카피 라이터, 구성작가 등 다양한데, 이 작품은 바로 작가가 되기 전 "오쿠다 히데오"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실제 그러한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지만("작가의 말"등 후기가 없으니) 내 개인적인 느낌은 분명 이 소설은 젊은 시절 그와 그 주변의 인물로부터 소재를 가져왔으리라 생각된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대학 재수를 위해 상경한 열여덟 봄부터 서른을 앞둔 스물아홉 겨울까지의 도쿄생활의 기록이다. 그의 청춘 이야기는 연대기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하루 동안의 이야기 6편 속에 그의 청춘을 담아 낸다. 마치 앨범 속에 꽂힌 사진 한 장에 담긴 찰라의 한 순간 속에 수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듯이 그 하루 하루의 이야기를 통해 지방에서 상경하여 "수도 시민"으로 변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야기의 도약과 단절을 통해 여백이 주는 미학을 살린 세련된 구성이라고 생각된다.
이 작품 속에 그려진 주인공의 특정한 하루는 주인공에게도 특별했지만, 공교롭게도 70년대말 80년대 일본의 사회상을 엿 볼 수 있는 날들이다. 작품의 첫 편을 장식하는 1979년의 6월2일은 고교야구의 괴물투수 "에가와"(예전 한국의 최동원과 비교되곤 하던 야구선수이다)의 프로 데뷰전이 있었고, 주인공은 첫 사랑을 시작한다. 1978년 LP 100여장을 챙겨 도쿄로 상경한 첫 날은 "캔디스"(일본소설에서 몇 번이나 본 적이 있어 이제는 친근한 여성그룹)의 해체 콘서트가 있었다. 1980년 "존 레넌"이 죽던 해, 그는 대학을 중퇴하고 광고 대행사에서 좌충우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그리고, 어느 듯 초년병 시절을 마감하고 "일"을 장악하여 정신없이 "일"에 열중하던 이듬해 9월30일은 88년 올림픽 개최지가 그의 고향 "나고야"가 아니라 "서울"로 결정이 된 날이다. 1985년 정초에 그는 어머니가 멋대로 정한 맞선자리에 나가, 동갑내기 맞선 상대와 알콩 달콩한 하루를 보낸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역사적인 1989년 11월 그 날에는 서른을 바라보지만 아직 독신이고, 사회인으로서 자리를 잡았으나, 이에 비례하여 먹고살기의 환멸도 느끼는 주인공은 친구의 "총각파티"에서 진탕으로 취한 친구들과 함께 처음 도쿄로 올라왔을 때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이미 소설 속 주인공의 나이도 훌쩍 지나쳐 버렸지만, 이 소설을 읽다 보니 나의 지난 날들을 떠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시큼 달콤했던 청춘의 기억들, 소설 속 누군가의 말처럼, "청춘이 끝나고 인생은 시작된다" 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