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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긴 만남 - 시인 마종기, 가수 루시드폴이 2년간 주고받은 교감의 기록
마종기.루시드폴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2007년 여름, 루시드 폴(Lucid Fall)이란 이름으로 작업했던 음악활동을 접고 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갓 서른을 넘긴 청년은 대서양 건너 미국에 살고 있는 아버지 뻘 되는 老 시인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의 시를 좋아하여 항상 시집을 곁에 두고 마르고 닳도록 읽을 정도였다는 젊은 뮤직션은 한 출판기획자의 주선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거대한 '시인'이자 '음악인'과 이메일을 매개로 만남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대서양 건너 마종기 선생님께 편지 드립니다"
이 문구를 첫 문장으로 루시드 폴이 먼저 자신의 근황을 담아 보낸 메일에 시인이 다정한 답장을 보내면서 교류가 시작되었다. 이 십대 젊은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낯 선 이방의 땅에서 의사로 일하면서 틈틈이 모국어를 조탁하여 시를 써왔던 시인과 역시 유럽의 한 대학에서 유학 중이었던 젊은 뮤직션은 편지를 통해 아름다운 소통을 이루어 내고 서서히 서로에게 스며든다. 1년 반 남짓 대서양을 사이에 둔 이 둘이 털어놓는 이야기 속에는 각각 자신들이 살아온 사적인 이야기에서부터 모국을 떠나 있는 사람들 만이 느낄 수 있는 고독, 삶에 대한 위로와 예술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 있다.
1인 그룹 '루시드 폴'은 맑고 투명하다는 의미의 'Lucid'와 가을이란 단어 'Fall'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는 또래 세대의 취향과는 드물게 포크를 음악적 기반으로 삼았다. 그의 음악은 어쿠스틱 기타의 맑고 투명한 선율 속에 아름답고도 서정적이며 철학적이기도 한 노랫말을 속삭이듯 나직하게 들려주는 것이 특징이다. 1993년에 '거울의 노래'로 제5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했고, 모던 록 밴드 '미선이'에서 활동하면서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2001년에 나온 1집 'Lucid Fall'과 2002년 발표한 미선이 'Drifting Again 1.5' 앨범이 경향신문 선정 한국 100대 명반에 선정된 실력있는 뮤직션이다.
그는 시인을 꿈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음악은 아무 노래나 들어 보아도 한결같이 그림이 되고 시가 되는 듯하다. 가령, "종이배처럼 흔들리며, 노랗게 곪아 흐르는 시간, 어떻게 세월을 거슬러, 어떻게 산으로 돌아갈까, 너는 너의 고향으로 가네, 나의 하류를 지나" (나의 하류를 지나), 또는 "새벽녘 내 시린 귀를 스치듯, 그렇게 나에게로 날아왔던 그대, 하지만 내 잦은 한숨소리, 지친 듯 나에게서 멀어질 테니" (새) 등 대중적인 가요와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다.
마종기 시인은 인간의 생과 사를 항상 가까이에서 지켜보아야 하는 의사라는 직업과, 모국어에서 멀어 질 수 밖에 없는 외국에서의 생활이 창작의 주요 모티브로 작용한다. 이로 인해서 그의 시는 같은 세대 한국 시인들과는 조금 다른 시적 감수성이 담긴 작품들이 많다.
노 시인과 젊은 뮤직션 사이에는 36년이라는 시간의 벽이 존재한다. 급격하게 변화를 거듭한 한국사회에서 36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둘은 살아 온 환경도, 향유한 문화도 달랐고, 일 개인 앞에 우뚝 선 시대정신도 달랐지만 서로의 마음을 연 소통을 통해 세대를 넘어 싹 트는 따뜻한 연대감을 보여 주고 있다. 개인적으로 루시드 폴의 내면 풍경을 볼 수 있어 좋았던 책 읽기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