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목마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김소연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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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돌아가는 도시에서의 삶, 생활의 터전은 정글의 법칙이 지배되는 무시무시한 곳이다. 일본의 직장인 '토노 케이치'에게도 직장은 전쟁터였다. 과로사로 동료들이 나가떨어지는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낀 케이치는 과감하게 사표를 던지고 고향으로 내려 지방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케이치의 선택에 의아해 하던 사람들도 공무원 생활 9년이 지난 지금은 은근히 그를 부러워한다. 여기까지 읽으며, 직장중심의 사회생활을 해야 하는 일본의 직장인들에게 은근히 동질감이 느껴졌다. 가정생활 또는 개인생활을 직장생활의 우위에 두는 유럽과 달리 일본이나 한국의 남자들은 직장생활에 거의 전부를 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남자들은 점점 왜소해지고 스스로 소외감을 느끼기 쉽다. 

스피드가 생명인 사기업과 달리 공무원의 세계는 여유 그 자체이다. 비록 연봉은 좀 작을지언정 장래에 대한 야심만 버리면 정년이 보장되는 평온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공무원의 세계이다. 특별한 일만 없으면 칼 퇴근이 보장되고 여유있는 시간은 온전히 자기를 위해 투자할 수 있다. 이렇게 한가로운 공무원의 일상을 만끽하던 케이치에게 새로운 업무가 주어졌다. 그것은 막대한 재정을 투자하여 건설하였지만 적자덩어리로 전락하여 시의 골치덩이가 된 놀이공원을 재건하는 일이었다.

버블경제의 시대, 일본은 부동산 개발의 붐이 일었다고 한다. 민간 사업자 뿐 아니라 지방 자치단체들도 저마다 장미빛 희망으로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사업에 열을 올렸다. 이는 지방자치단체장의 정치적인 야심도 어느 정도 작용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거품이 꺼진 후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건설된 테마파크들은 대부분 애물단지로 전락하였다고 한다. 이 소설은 아마 이러한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공무원들이란 변화를 싫어하는 족속이라는 것은 아마도 세계 공통인 것 같다. 민간기업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들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공무원의 세계, 그 원드랜드의 특명 공무원들은 시민들에게 버림 받은 '아테네 마을'을 성공적으로 재건할 수 있을까?

하여간 우유부단하고 소심한 케이치는 사사건건 태클걸기가 취미인 상사와 귀찮은 것은 질색이라며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부하직원과 함께 가슴 속에서 꺼지지 않았던 작은 열정의 불씨를 되살린다. 그리고, 깨지고 부서지더라도 임무수행을 위해 동분서주 분투한다.

작가 '오기하라 히로시'는 풍자와 유머에 능하다. 광고회사 출신 답게 세련된 언어감각으로 시종 경쾌한 문체를 구사하면서도 문장의 행간 행간에 삶의 애환을 살짝 묻혀 놓는 솜씨가 좋다. 이 소설은 상황 설정과 캐릭터 묘사가 다소 과장스럽기는 하지만 스토리 자체가 결코 허황되지는 않다. 선입견 없이 편하게 읽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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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문
이시모치 아사미 지음, 김주영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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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올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된 '이시모치 아사미'는 본격 미스터리를 추구하는 작가로 읽힌다.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를 시작으로 '귀를 막고 밤을 달리다'와 '달의 문'에 이르기까지 짧은 기간에 연이어 나온 세 편의 작품을 모두 읽은 느낌이 그렇다. 본격 미스터리는 소설 속에서 보여지는 복잡한 사건이 결말에 이르러 인과관계에 딱 맞게 설명되어질 때 맛보는 짜릿함이나, 예기치 않는 결말이지만 충분하게 '납득'될 때 느껴지는 희열이 매력이다.

전작에서도 그렇게 느꼈지만 이 작가는 뭔가 기대감은 주지만, 머리나 가슴 어느 한쪽으로도 속 시원하게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 아쉽다. 이 소설은 오로지 미스터리로서의 재미 측면에서만 보면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와 '귀를 막고 밤을 달린다'의 중간 정도 위치에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문은 아직 닫혀 있는데'는 2005년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2위에 랭크되었고, '달의 문'은 2003년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후보작이라고 하니 사람들이 보는 관점은 비슷한가 보다.

이 소설에는 3개의 상황이 그려지고 있다. 첫째는 평범한 3인조 남녀에 의한 항공기 납치이고, 둘째는 납치된 항공기안에서 발생한 의문의 살인사건이고, 셋째는 납치범이 따르는 '스승님'에 의한 개기월식 이벤트가 그것이다.

'사토미', '마카베', '가키자키'는 자신들이 진심으로 추앙하는 스승님이 운영하는 캠프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심한 마음의 상처를 스승님의 도움으로 극복한 과거를 가지고 있었다. 스승님은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치유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를 불순한 목적으로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여러 가지 힘든 일을 겪거나 마음의 상처로 말미암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른바 '등교거부' 아이들을 위한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스승님이 유괴혐의로 경찰에 구속되어 버린다. 이러한 사태를 맞아 평범하고 성실하게 살아 왔던 세 사람이 선택한 방법은 '항공기 납치'라는 극단적인 방법이었다.

여기에서 일차적인 의문이 생긴다. 단순한 무고 때문에 발생한 돌발적인 구속사건에 항공기 납치라는 어마어마한 일로 대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문을 소설 말미까지 끌고 가는 힘을 보여 주어야 할 텐데 작가는 중도에 그 끈을 놓아 버린 점이 아쉬웠다. 또한, 항공기 납치 과정의 현실성 여부는 이 소설의 본질이 항공기 납치에 중점을 둔 스릴러는 아니라고 보았으므로 별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몇 군데 허술한 점이 보였다.

납치범에 의해 통제되고 있던 항공기내에서 발생한 살인사건과 그 해결 과정이야말로 본격 미스터리를 표방하고 있는 이 소설의 핵심부분이다. 피해자는 '사토미'에게 아기를 인질로 빼앗긴 여자였고 장소는 화장실이다. 피해자는 혼자 화장실에 들어갔고 정황상으로 결코 자살로 여겨지지는 않는데 손목에 상처를 입고 과다출혈로 사망한 것이다. 돌발적인 사태를 맞아 납치범 3인조는 마침 그 주위에 있던 한 남자를 지목하여 그로 하여금 사건을 조사하라고 지시한다. 그런데,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자마미'라는 별명으로만 불리는 남자는 냉철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그는 몇 가지 가설로 납치범이 서로를 의심하게 하도록 교묘하게 유도하기도 하지만, '마카베'를 주요 파트너로 삼아 하나씩 의문을 제기하고 그것을 해명하는 과정 속에서 살인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트릭 자체가 기발한 것은 아니지만, 납치된 비행기 속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납치범으로 부터 의뢰를 받은 아마추어 탐정이 그것을 해결한다는 설정은 참신하였다.

마지막 '개기월식 이벤트'는 납치행위와 그들이 요구사항으로 내건 조건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는 근거가 되는 중요한 요소인데, 그 이유가 미리 어느 정도 설명되기 때문에 그 긴장감이 덜했다. 그리고, 마지막 결말은 이 소설이 판타지로 빠지지 않게 해주는 중요한 장치이지만 과연 그렇게 행동해야만 하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설득력이 약했다. 이런저런 아쉬움은 남지만 본격 미스터리로 읽을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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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기행
후지와라 신야 지음, 김욱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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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지은이 '후지와라 신야'는 범상치 않은 이력을 가진 사람이다. 고교 졸업 후 도쿄로 와서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도쿄예술대학 회화과에 입학하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예술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대학을 중도에 포기한 그는 스물다섯 살이 되던 1969년에 인도로 떠난다. 이후 서른아홉 살까지 인도, 티베트, 중근동, 유럽과 미국 등을 방랑하며 보낸다. 미지의 대륙을 떠돌며 그는 자신의 발길이 닿은 곳에 남긴 자취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인도방랑'을 시작으로 그의 글은 당시 일본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진정한 여행의 가치를 표현한 작가'라는 찬사를 받으며 작가로서 사진작가로서 대단한 명성을 얻는다.

이 책은 1980년대가 저물어 가던 사십대 중반의 어느 해, 약 200일간 미국 대륙을 떠돈 기록이다. 그는 주거가 가능한 자동차인 '모터홈'을 운전하며 로스앤젤레스에서 샌프란시스코, 뉴욕, 플로리다로 갔다가 플로리다에서 다시 남부를 횡단해 로스앤젤레스까지 대략 2만 마일을 달린다. 모터홈 여행을 선택한 이유로 그는 '고속도로의 나라'라고 불리는 미국이란 나라를 자동차 안의 시점에서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술가다운 독특한 시각이다.

"아메리카의 풍경은 그 대부분이 현대의 풍경이다. 광대한 대지는 있지만, 아무 것도 없다. 역사도 없다  ……  무섭게 깨끗한 신흥주택가의 풍경. 대로 맞은편에서 빛나는 대형 주유소의 황색 전등. 도시에 숨은 사람들의 군상. 미국의 거리와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고독  ……  나는 과연 여기서 살 수 있을까"

여행은 한 나라의 전반을 파악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본래적으로 가지고 있는 몇 가지 특성을 포착한다. 그는 여행 중에 마주친 미국인들이 현실에서 유리된 '시뮬레이션'과 '판타지'를 유난히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에 착안하여 코카콜라, 맥도널드, 미키마우스, 팝 아트 등과 같은 미국문화의 대표적인 아이콘도 가상현실이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나아가 그는 미국이란 나라 자체가 거대한 '모조품'일지도 모른다는 대담한 결론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코카콜라가 그러했듯이 미국식 자본주의는 '언제나, 어디에서나, 누구나 대량으로 즐길 수 있는 기분 좋은 가상현실'이라는 상품으로 20세기 세계를 석권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상현실'이라는 미국의 聖性이 청년시절 여행한 인도와 이슬람의 '현실' 또는 '자연'이라는 聖性과 완전히 대조적이라는 사실이 지은이의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인류가 오랜 세월동안 복종해 온 聖性은 가상현실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聖性에 밀려 나가고, 미국식 쾌감원칙이 동서양의 벽까지 허물어 버린 오늘의 세계를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다. 현대문명에 대한 묵직한 성찰의 힘이 느껴지는 책이다. 황량한 길 위에서 담아 낸 아메리카 대륙의 표층과 고적한 인간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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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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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지난 2006년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선택' 이후 소설부문 베스트셀러에 추리소설이 상위권에 오르기는 참 오랜만의 일이다. 이 소설은 출간되자 곧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몇몇 미스터리 사이트에서 화제가 되었고 서평도 줄줄이 올라왔다. 스포일러에 대한 염려 때문에 읽지 않은 추리소설에 대한 서평은 대충 훑어보고 마는데, 이 소설은 믿을 만한 미스터리 매니아 사이에서도 대체로 평이 좋아 필독서로 찜해 놓았다가 마침내 읽었다.

자세한 출판사의 사정이야 알 수 없지만, 이 소설에 대해 어느 정도의 기대는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일본에서도 출간이후 '제29회 소설추리 신인상', '2008년 미스터리 베스트10 1위', '2009년 서점대상' 등 독자와 평단의 호평을 함께 받은 화제작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성공한 작품이 한국에서는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왕왕 있는데 이는 원작과의 출간시차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 원작이 발표된 당시에는 참신한 기법과 당대의 사회적 이슈를 잘 반영하였더라도 몇 년의 시간이 경과하면 웬지 낡아 보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경우에는 거의 원작과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 소개되었기 때문에 소설의 배경이나 다루고자 하는 주제가 생뚱맞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책 읽기의 몰입감이 탁월하다는 점이다. 사건자체가 복잡하다거나 기발한 트릭을 구사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원동력은 먼저 정제된 문장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또 한가지는 소설 초반에 마치 폭탄이 터지는 듯한 강한 임팩트를 독자에게 안기고, 충격적인 사건 이후의 진행과정을 각기 다른 화자의 시각을 통해 묘사하기 때문에 단순한 사건에 숨어 있는 단순하지 않는 진실들이 한 꺼풀씩 벗겨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성은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와 유사한 면이 있지만, 이 소설은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화자의 주관적인 감정이 많이 개입되어 있는 점이 다르다.

중학교 여교사로 근무하는 '유코'는 봄 방학을 앞둔 종업식 날, 담임으로써 이런 저런 소회를 얘기하던 중 얼마 전 불행한 사고로 죽은 자신의 어린 딸이 실은 살해 당했고, 그 범인은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있는 누군가 중에 있다는 폭탄발언을 한다. 시간마저 얼어 버린 듯한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감정을 절제하고 담담하게 사건의 전모를 들려준 후 유코는 법률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어린 범인들에게 자기만의 방법으로 죄의 대가를 묻는다. 이상이 제1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처럼 제1장 '성직자'는 어린 딸을 잃은 유코의 고백으로 이루어진다. 시종 담담한 어조로 묘사되는 불행한 사건의 전말과 유코가 선택한 결말은 정말 충격적이다. 제2장 '순교자'는 담임 선생님이 충격적인 고백과 함께 교단을 떠난 후 남겨진 학생들 사이에서 1학기 동안에 일어나는 사건들이 반장인 '미즈키'의 시각으로 묘사되고, 제3장 '자애자'는 범인으로 지목된 소년B의 어머니가 쓴 일기형식으로 충격적인 그 사건의 후일담이 다른 각도에서 반복된다. 제4장 '구도자'에서는 소년B가 알고 있는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고, 제5장 '신봉자'는 소년A의 시점에서 사건이 재구성된다. 그리고, 마지막장인 '전도자'에서는 다시 유코의 고백에 의해 사건의 전모가 전복된다.          

이 소설은 원래 '성직자'라는 제목의 단편으로 발표되었다가 장편으로 개작하였다고 하는데, 단편 추리로써 '성직자'는 소름 끼칠 정도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비하여 2장에서 6장에 이르는 부분은 독자들의 선호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 '미나토 가나에'는 이 소설이 처녀작이라고 한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첫 작품을 이 정도 수준으로 써낼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재능이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작가의 다짐과 같이 데뷰작이 대표작으로 남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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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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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있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자칭 만화지상주의자인 지은이는 주간 만화잡지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 유명 만화잡지의 편집장을 지낸 후 만화와 관련된 여러 일에 두루 경험한 현장과 실무를 겸비한 대표적인 만화 전문가이다. 이 책에서 지은이는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 만화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올해로 탄생 100년을 맞이한 한국만화의 역사를 한 시대를 풍미한 대표적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캐릭터는 서사 장르에서 흔히 '작중 인물'과 '인물의 성격'이라는 두 가지의 의미로 사용된다. 그런데, 대개 인물과 성격이라는 개념은 분리되지 않고 함께 쓰이는 경우가 많다. 즉, 캐릭터는 '인물이 내포하고 있는 성격', 혹은 '성격의 외연이 되는 인물'이라는 두 가지를 공유할 때 완벽하게 정의될 수 있다. 그런데, 만화에서는 이러한 캐릭터의 의미에 더하여 인물의 회화적 특성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서사성과 회화성을 동시에 수용하고 있는 만화의 본질상 만화 속 캐릭터는 인물의 내면과 외형적인 모습을 모두 담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화에 있어 캐릭터는 다른 구성요소에 비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인공 캐릭터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할 정도로 만화 창작에 있어서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에 만화가는 멋진 캐릭터 창조에 공을 들인다. 캐릭터가 만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점은 독자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보았던 만화의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해 내지 못하더라도 그 만화 속 캐릭터의 이미지는 놀랄 만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 책을 찾아서 읽는 독자들은 대개 어려서부터 만화보기를 좋아했었을 것이고, 지금도 만화를 즐기거나 즐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별로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어린 시절 '소년중앙', '어깨동무'와 같은 어린이 잡지 별책부록에 들어있는 만화 속 이야기 세계에 빠졌을 것이고, 부모님 몰래 만화 대본소에 출입하다가 걸려 혼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조금 더 커서는 사방 벽면을 돌아가며 빽빽이 꽂혀 있는 만화카페에서 시간을 보낸 기억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런 경로로 독자들과 만났던 추억의 캐릭터들을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40~50년대에 나왔던 '코주부' '고바우' '라이파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알고 있거나 좋아했었던 것들이라 추억을 되살릴 수 있어서 좋았다. 먼저, 70년대 어린이 잡지에서 만났던 얼굴들이 반가웠다. 소년중앙에는 '꺼벙이' '번데기 야구단'이 나왔고, 어깨동무에서는 도깨비 감투의 '혁이'와 요철발명왕 '요철이'를 만날 수 있었다. 반항아 '독고탁'은 배경을 달리하여 여러 잡지에 등장하였는데 어깨동무에 나왔던 '아홉개의 빨간모자'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위에 언급된 것 외에도 '도전자 하리케인', '타이어 마스크', '바벨2세', '태양을 쳐라' 등과 같은 인기 만화와 그 캐릭터들이 인상적이었는데 후에 이것들은 일본 만화의 캐릭터를 베낀 것으로 알려져서 실망했었다. 또한, 대본소에서 만났던 '땡이'도 좋았고 어린 마음에도 참 유니크한 작품세계라고 생각했던 '김민'의 '불나비'도 기억에 남는 캐릭터이다.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했던 캐릭터는 '이강토'이다. 어깨동무에 연재되었던 어린이 만화 '태양을 향해 달려라'에서 처음 만났던 이강토는 소년만화, 성인만화의 주인공으로 변신하면서 독자들과 더불어 같이 나이를 먹어 갔다. '카멜레온의 시'를 읽으며 고독할 수 밖에 없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공감하고, '아스팔트의 사나이'를 보면서 고단한 직장생활 속에서 판타지를 꿈꾸었다.

이 책은 한국 만화에 대해 깊이있는 지식을 주는 책은 아니지만,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저 마다 만화에 얽힌 추억을 생각나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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