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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의 해학 - 사찰의 구석구석
권중서 글.사진 / 불광출판사 / 2010년 3월
평점 :
작년 이탈리아 여행 중에 일부러 찾아 갔거나 우연히 들렀거나 간에 참으로 많은 성당을 구경하였다. 로마 시티투어에서 만난 가이드가 건축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여 성당 건물 뿐 아니라 양식화된 내부 시설물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기 때문에 로마 이후 다른 도시에서는 성당 건물을 '기념물' 바라보 듯 하는 것에서 벗어나 들었던 지식을 '발견'하는 소소한 재미도 느낄 수 있었다.
종교 시설물에는 그 공간을 구성하는 하나 하나의 요소에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을 모르고 그냥 지나치면 알 수 없지만, 알게 된 후 다시 보면 그 의미가 새록새록해 지는 법이다. 한국에서 역사성이 가장 깊은 종교는 불교이고, 사찰 건축물은 타국과는 다른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드러내 주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불교신자가 아니더라도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사찰 경내에 들어가거나 근처를 지나칠 것이다. 우리나라 이름난 산에는 어김없이 큰 사찰이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 우리 민족과 함께 존재해 온 사찰 건축물에 대해 너무나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엉뚱하게도 유럽의 도시를 휘적휘적 걸어다니는 중에 들었고, 불현듯 느낀 그 감정은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와도 관계가 있다.
이 책은 사찰의 구석 구석을 찬찬히 살피면서 사찰 건물과 여러 조형물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는 내용이다. 그런데, 지은이의 시각은 '해학'이라는 관점에 맞추어져 있다. 지은이는 우리 민족은 태생적으로 해학이 풍부하여 무수한 고난과 역경을 이기는 방법을 해학에서 찾아내어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씨앗으로 삼았다고 전제한다. 그래서 한국 불교미술에서 나타나는 해학성은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없어서는 안될 마음의 여유이고, 이는 경직된 마음을 풀어 주고 고단한 삶에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어 주는 부처님의 말씀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런 해학적인 요소는 인도, 중국, 일본의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한국의 사찰 만의 특징이라고 강조한다.
책 속에는 260장이나 되는 사진이 들어 있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이 사진들은 모두 지은이가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찍은 것이라고 한다. 책의 내용은 학술적인 잣대로 근엄하게 서술하지 않고 '사찰에 숨은 동물 찾기'라는 타이틀로 토끼, 거북이, 용, 원숭이, 호랑이, 불고기 등이 사찰 조형물 곳곳에 등장하는 이유를 설명한다거나, 사천왕, 금강역사, 관세음보살, 미륵불, 석등, 석탑 등 어느 절에나 다 있는 조형물들의 의미와 이를 바르게 보는 법에 대해 해설해 주는 식이다. 지은이는 사찰의 여러 모습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해설해 주고, 그것이 경전, 설화 그리고 우리의 삶에 근거하고 있는 것임을 밝히고자 노력한다.
책의 내용 중에 '그림 속에 들어간 부처님의 일대기'를 유익하게 보았다. 성당 내부에 예수님의 생애가 그림으로 표현된 성화가 있듯이 절에도 부처님의 생애를 그림으로 표현한 벽화가 어김없이 존재한다. 이것을 보면 불교든 기독교든 '그림'을 문자를 배우지 못한 일반 민중들이 종교적 가르침에 가까워질 수 있는 가장 쉬운 수단으로 생각한 듯하다. 그러므로, 종교 건축물은 그 자체가 종교적인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