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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 - 열정 용기 사랑을 채우고 돌아온 손미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손미나 지음 / 삼성출판사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글쟁이가 아닌 유명인이 쓴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자신의 글이 아닌 대필작가의 글에 이름만 얹은 책을 굳이 찾아서 읽을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글쟁이의 기준은 글의 수준이나 종류를 불문하고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직업이냐 여부에 달려 있다. 글 쓰는 일을 자신의 업으로 삼았다면 최소한 다른 사람이 쓴 글에 자기 이름을 내걸지는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다. 글쟁이로서의 자존심을 믿기 때문이다.
벌써 세 권이나 나왔다는 지은이의 여행 책을 처음으로 읽게 된 것은 선입견의 탓이다. 유명 아나운서라는 지은이의 이력이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마이너스 요인이 된 셈이다. '아르헨티나'를 다룬 여행책이 흔하지 않아 이 책을 선택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다. 아름다운 아나운서가 또 하나의 이력을 추기하기 위해 쉽게 낸 책은 아니다. 사소한 여행의 일상과 그 나라와 그 곳 사람들의 이야기가 잘 조화된 흥미로운 여행담이다.
책 속에 지은이가 스페인 유학 시에 특강을 들은 적이 있었던 아르헨티나의 언론인 '마르틴 카파로스'와의 만남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가 쓴 여행기의 일부를 소개하면서 한 나라에 대하여 온전히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이야기라고 한다.
"한 나라를 말로 설명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는 혼란, 다양성, 차이와 동질성, 증오와 恨, 미련과 애착, 國歌, 국기, 국경, 공유하는 지도자, 그리고 공유되는 삶의 가치나 목표. 이런 것들을 과연 몇 몇 단어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마르틴 카파로스는 비록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졌지만, 자신의 모국에 대해서도 이렇게 정의 내리기 어려움을 고백하는데 약간 머물다 지나가는 이방인의 눈으로 어떤 한 나라를 온전히 설명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여행 이야기는 지은이의 시각이 중요하다. 아르헨티나에 대한 지은이의 시각은 한 곳으로 치우침이 없이 균형이 잡혀 있다.
'지구 저편에서 내가 만난 세상'이라는 제목의 제1장은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 곳곳에서 포착한 풍경의 조각 조각을 통해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들려준다. 한때 손 꼽히는 경제 부국에서 몰락한 나라, 오랜 독재의 상처가 남아있는 나라, 마라도나로 상징되는 축구의 나라, 한 번 맛보면 절대 그 맛을 잊을 수 없다는 '아사도'의 나라, 그리고 보르헤스의 나라가 바로 아르헨티나이다.
그리고, 아르헨티나는 탱고의 나라이다. 지은이는 제2장을 모두 탱고에 할애한다. 그이는 단지 탱고를 구경만 하는 것을 넘어 그 곳에서 직접 탱고를 배워서는 춤꾼들이 모인다는 밀롱가의 플로어에서 마침내 탱고와 하나가 되는 가슴 벅찬 경험을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만난 한국의 평범한 직장인에서 탱고 댄서로 인생의 행로를 바꾸어 카를로스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청년의 이야기기도 여운을 남긴다.
이 책에는 사람들과의 만남과 헤어짐의 사연, 우연과 인연으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들이 흥미롭게 전개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람과 사람들간의 감정의 교류, 따뜻한 교감이 인상적이었다. 후반으로 갈 수록 이런 부분이 많이 부각되는데,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과 함께 여행작가로서 손미나를 돋보이게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