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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에 바라다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일본 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생각보다 큰 섬이다. 거의 남한 면적의 84%에 이른다. 무더운 계절에는 서늘한 '여름 나기'로 떠오르고, 겨울에는 눈과 스키 생각에 한 번쯤 여행하고픈 곳이다. 이 곳에서 나고 자란 작가 '사사키 조'는 고향을 배경으로 자신의 장기를 살려 경찰이 등장하는 여섯 편의 연작 단편을 창작하였고, 이것으로 제142회 '나오키상'의 영예를 얻었다.
"스물 아홉에 처음 쓴 소설이 상을 받은 이후로 31년째 소설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30년 동안 잘 버텨 왔다"라는 말을 듣던 차에 나오키상을 받게 되었지요. 저는 이 상을 일종의 장기근속표창이라 여기기로 했습니다."
담백한 수상 소감처럼 이 작품집은 현란함과는 거리가 있고 베테랑의 묵직한 내공이 느껴진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주인공인 '센도 타카시'라는 인물과 각각 다른 이야기이지만 이야기의 저변에 한결같이 깔려 있는 '홋카이도'라는 장소가 주는 이미지였다.
후자부터 이야기하면 스키를 즐기는 오스트레일리아인이 급격히 늘어나서 '오지 마을'이라고도 불리는 리조트 마을, 한 때 이 곳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 주 원인이었지만 이제는 황량한 폐허가 되어버린 탄광 도시, 지금도 일본에서 가장 어획고가 많다는 홋카이도의 어촌 마을, 홋카이도의 또 다른 명물 경주마 생산으로 유명한 목장 마을 등 홋카이도 어딘가에 있을 법한 그런 장소들이 등장한다. 어쩐지 황량하고 쓸쓸하며 마치 오래된 모노톤의 사진에서 받는 그런 이미지로 홋카이도가 다가온다. 이는 기존에 내가 가지고 있었던 푸르거나 아니면 하얗기만 하던 홋카이도 이미지와 완전히 배치된다.
홋카이도라는 곳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얼굴들이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보여지는 이유는 이야기를 끌고가는 주인공이 휴직 중인 형사로 설정되었고, 마치 로드무비처럼 그의 발길은 홋카이도의 이 곳 저 곳을 향하기 때문이다. '센도'는 3년 전 자신의 사소한 실수에서 기인한 끔찍한 결과 때문에 심한 정신적 외상을 입고 휴직 중에 있다. 정기적으로 의사와 상담하고 때때로 의사가 권하는 휴양을 다니는 것으로 소일한다. 경찰 동료 외에는 인간관계도 별로 없는 듯하고 구체적인 가족관계에 대한 설명도 없다. 하드보일드에 나오는 정형적인 탐정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그런 캐릭터이다.
휴직 중이기 때문에 수사권도 체표권도 없는 그이지만, 과거의 민완형사를 기억하는 지인들은 그에게 혐의를 풀어 달라거나, 범인을 잡아 달라거나, 심지어 아직 사건화 조차 채 되지 않은 사건을 해결해 달라는 부탁까지 한다. 그는 형사로 일하면서 얻은 풍부한 경험과 인맥을 활용하여 자신의 관점에서 사건을 조사하고 예리한 직관력으로 사건의 진상에 쉽게 접근한다. 하지만, 항상 사건이 해결되기 직전에는 한 발 물러난다. 이런 스타일로 일관하기 때문에 이 작품집에 수록된 작품들의 미스터리의 깊이는 그다지 깊지 못하고, 경찰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만 본격적인 경찰소설의 느낌도 덜하다. 하지만, 이 작품집은 읽는 맛이 은근한, 꽤 근사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