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은 눈물들 이상의 것이었다.
부자들은 가난을 통계 지표로 객관화해서 이해하지만, 가난은 개념이 아니라 생활이다. 가난은 사회적 차별, 모욕, 억압이고 기회와 정보로부터의 단절이다. 가난은 희망의 부재, 목표 설정의 어려움이며 때로는 인간성의 파탄에까지 이른다.˝
<칼의 노래>의 김훈 작가가 말하는 ‘가난‘이다.
이 책은 지독한 가난의 한복판을 살아남아 스탠퍼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하게 된 자의 이야기다. 그리고 흔해빠진 ‘누구보다도 더 노력해라‘는 자기계발서의 담론이 아닌 ‘그저 운이 좋았던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며 담담하게 서술하는 회고록이다.
힐빌리란 미국의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 지역에 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백인 하층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다른 표현으로는 백인 쓰레기라는 뜻의 ‘화이트 트래시‘, 햇볕에 그을려 목이 빨갛다는 데서 유래된 교육 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미국의 시골 백인을 가르키는 모욕적인 표현인 ‘레드넥‘등이 사용되기도 한다.
가난을 되물림하는 빈곤문화는 지역과 나라와 세대를 막론하고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문란한 성, 알콜 또는 마약 중독, 폭력, 가출, 이혼, 동거, 이른 출산은 빈곤문화의 속성이며 이것은 빈곤문화를 재생산한다.
저자는 이 힐빌리,레드넥, 화이트 트레시를 이웃, 친구, 가족이라고 부르는 사람으로 이같은 빈곤문화에서 운좋게 벗어나 신분상승을 하게 된다.
저자의 말을 따라가보면 그에게는 불행의 와중에서도 천운이 따른것 같다. 마약중독에 빠져 있는 어머니, 몇 명인지도 모르는 아버지가 주는 가정환경에서는 가난을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이 책은 가난에서 살아남은 것은 물론 신분상승까지 하게된 자신의 노력을 칭찬해달라는 것은 아니다.
그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연이지만 꼭 필요한 변수와 중요성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다.
그 변수의 이름은 ‘안정‘이다. 그것이 장소가 되었던 , 사람이 되었던 간에 말이다. 비록 3년간이지만 학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준 할머니와 할머니의 집이 있었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해병대생활이 저자에게 안정을 가져다 준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마지막에 나온 ‘희망‘처럼 ‘가난‘속에서 유일한 희망은 ‘안정‘인것 같다.
<사당동 더하기 25>에서 보았던 빈곤문화의 보편성에 놀라며 가난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조은‘ 교수의 <사당동 더하기 25>를 추천한다.
안타깝게도 가난한 자들이 더 보수적인 이유는 나의 깨달음이 적어서 이 책에서는 찾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