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마인드 - 세상을 리드하는 사람들의 숨겨진 한 가지
스탠 비첨 지음, 차백만 옮김 / 비즈페이퍼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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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7 상반기 책세상 독서단으로 활동하게 되어 서평을 남깁니다

 

자기계발서의 흔한 패턴은 내 안의 잠재력을 깨우거나 주변의 환경 변화로 더 나은 성과를 이룰 수 있다는 식이다. 오랫동안 이런 종류의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읽지 않아도 아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뻔한 내용을 굳이 책으로 확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름아닌 뚜렷한 자극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평소에 생각은 하고 있지만 마음처럼 몸이 따라주지 않을 때가 있다. 혹은 생각이 정확하게 잡히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자기계발서 안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새로운 자극을 받고 행동에 옮기는 경우도 많다.

 

<엘리트 마인드>의 저자인 스탠 비첨은 스포츠와 비즈니스 분야에서 리더십 컨설턴트 및 심리 코칭으로 명성을 쌓았다. 그가 만났던 고객들은 유수의 스포츠 선수들과 팀에서부터 CEO와 임원들까지도 해당한다. 그도 처음부터 이러한 고객들을 상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경험을 통해 마인드 컨트롤의 중요성을 깊이 느끼고 나름의 처방과 비전을 고객들에게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는 그가 성공적으로 상담하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던 사례들이 심심찮게 들어있다. 혹은 유명인들의 일화를 곁들이고 있다. 덕분에 저자가 설명하려는 주제는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자유의지, 열정, 결심, 동기는 하나같이 의식의 산물이다. 다행이도 의식은 무의식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여기에서 핵심 단어는 '능력'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다수 사람이 능력을 활용하지 못한 채 그저 무의식적으로 행동한다. (p.42)

 

책의 초입에서 저자는 의식의 능력을 키우는 방법에 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할 것을 내비친다. 의식적인 목표를 세우고 이를 이루기 위해 도전하는 과정이 자기계발서 내용의 흐름이라면 이 책은 맨 앞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어느 수준의 목표를 진지하게 세우는가에 따라 성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엘리트 마인드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믿으면 이루어진다. 허무맹랑하게 들리겠지만 저자는 의식의 단계에서 자신의 목표를 어느 수준으로 세우는가가 무척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스포츠를 예로 들면 우승을 목표로 하는 선수와 예선통과를 목표로 하는 선수의 결과에는 차이가 크다고 한다. 애초에 다른 정도의 능력을 가진 개개인이 모두 갖은 수준의 목표를 설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최고의 수준은 가늠해볼 수 있다.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면서 동시에 목표의 성취를 간절히 원하는 열망도 함께 작용한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을 자극하면서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심리코칭을 한다.

 

심리코칭이 많은 효과을 주는 분야를 꼽자면 스포츠를 들 수 있다. 신체적 요건이나 기술 외에도 정신력이라는 추상적인 힘이 결과를 좌우하곤 한다. 본문에서도 스포스 선수들과 팀 코칭에 관한 경험담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위대한 성취를 오롯이 개인의 것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위대한 성취에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담백하게 이야기한다. 동양권보다 서양 문화에서는 이런 관점이 좀 더 생소할 것 같다. 스포츠가 팀 경기도 많아서인지 위와 같은 통찰은 저자의 경험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경쟁의 의미를 짚어주는 대목은 생각거리를 남긴다. 무한 경쟁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가 않을만큼 경쟁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저자는 시핸 박사의 정의를 인용해서 이렇게 정의한다. "경쟁은 서로를 도와서 각자 자기 안의 최고를 찾아내는 것이다." 결국 경쟁의 최종적인 의미는 퇴색하지 않았지만 왜 경쟁을 하고 어떤 과정을 통해 경쟁에 참여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문구라고 생각한다. 가까이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경쟁은 다름아닌 대선이다. 대통령 후보로서 비전과 정책을 소개하고 다른 경쟁후보를 비판하는 경쟁의 장이다. 승자독식이라는 결과만 두고 보면 승리를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치열함과 못볼 꼴도 상존한다. 하지만 이 대선을 통해 후보들이 본래의 목적을 잃지 않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설득을 꾸준하게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자기계발서에 기대하는 부분과 달리 튀는 대목을 옮겨왔지만 다른 대목은 여전히 중심을 잘 잡으면서 책의 끝자락까지 독자들에게 다양한 자극과 실행지침들을 제시한다. 그 중에서 요즘 많이 공감하는 대목을 마지막으로 인용하고 싶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다.

 

성공에 왕도는 없다. 당신은 숲속에서 당신만의 길을 스스로 개척하며 나아가야 한다. 그런데 그걸 막는 것이 바로 두려움이다. 그냥 전진하라.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그리고 성공을 추구하는 과정에 매진하라.(p.292)

 

 

ps. 이 책의 구성에서 특이한 점은 본분 중간에 챕터의 내용을 한두 문장으로 요약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구성은 자기계발서가 주장하고 싶은 핵심 내용을 짤막하게 요약해서 독자들에게 강조하는 효과를 준다. 요약된 부분을 보다가 마음에 드는 부분의 본문을 읽는 방식으로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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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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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래의 인용문에 스스로를 대입해서 읊조리고 있을 것이다.

내가 평범한 40대 남자였다면 끝내 알지 못했을 것이다. ... 나는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특히 아이가 있는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사실 출산과 육아의 주체가 아닌 남자들은 나 같은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없는 한 모르는 게 당연하다.(p.170)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는 주인공 김지영씨의 일대기를 빠르게 훑어가는 일대기를 그린다. 본문 중간중간 각주가 달려있는데 흥미롭게도 각종 보고서나 연구결과 혹은 관련 서적이다. 가상의 김지영씨와 그녀를 둘러싼 가족의 일대기를 그리면서 여성의 삶을 아주 보편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실은 별 볼일 없는 한 편의 보고서가 탄생해야 하는데 흥미로운 소설이 되었다.

 

그녀의 삶은 멀리서 보면 나무랄 데 없이 평범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꽤나 험난하다. 에피소드는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데 부딪치는 세상살이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유년기 부분에서는 주인공의 어머니 삶을 배치하면서 이 소설은 2대에 걸친 시대의 변화 속 여성의 삶을 묘사한다. 어머니는 남자형제들의 학비를 보조하기 위해 공장에서 일하는 전형적인 산업화시대의 여공이었다. 결혼 후에는 김지영 씨를 비롯해서 언니와 동생을 갖는데, 실은 둘째와 셋째 사이에 낙태의 경험이 있다. 요즘 화제에 오르는 EBS의 <까칠남녀>에서도 관련된 내용을 들었는데, 낙태를 하는 비율은 보통 미혼이 많을 거라는 통념과 달리 기혼이 더 높다고 한다.

... 성 감별과 여야 낙태가 공공연했다. 1980년대 내낸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던 1990년대 초, 셋째아 이상 출생 성비는 남아가 여아의 두 배를 넘었다. ... (p.29)

보편을 묘사하는 소설이 충격을 주는 지점은 이런 데 있다. 모든 중간값을 넣으면 지극히 평범해야 하지만 얼마나 많은 평범함을 우리는 모르고 사는 것일까. 소설이라는 분류표에 들어간 보고서는 이처럼 뜨악한 평범함을 그려낸다.

 

주인공의 성장기는 한국에서 여성이 겪을 수도 있는 문제들을 그린다. 특히 직장에서, 결혼 후 가정에서 주인공이 겪는 어려움은 절절하게 다가온다. 주인공 김지영 씨는 어쩌면 복에 겨운 생활을 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녀를 잘 이해해주는 회사 동료와 상사. 그리고 남편이 있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다. 이런 환경에서도 어김 없이 마주하는 어려움은 결국 사회의 문제로 남는다. 직장에서 여성은 환영받지 못한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은 결혼 후에나 출산, 육아기에는 일터를 떠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회사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다. 같이 입사한 동기들은 성별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받는다. 핵심 업무는 점점 남성에게 집중되어 간다.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남녀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다. 2014년 통계에 따르면, 남성 임금을 100만 원으로 봤을 때, OECD평군 여성 임금은 84만 4000원이고 한국의 여성 임금은 63만 3000원이다. 또 영국 <이코노미스트> 지가 발표한 유리 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조사국 중 최하위 순위를 기록해, 여성이 일하기 가장 힘든 나라롤 꼽혔다.(p.124)

결혼 후엔 2세를 얼른 보라는 주변 어르신들의 채근과 압박을 받고 임신을 하면서 직장을 포기한다. 육아를 하면서 동시에 부업을 알아본다. 공원에서 유모차를 세우고 벤치에 앉아 1,500원 짜리 커피를 마시는 자신을 향해 직장인들은 맘충 팔자가 상팔자라고 한다. 이쯤 되면 소설에서 그리는 한국의 여성문제를 '겪을 수도 있다'면서 가정법으로 퉁치기 무색해진다. 오히려 이 소설의 빠른 호흡때문에 실제 한국여성이 겪는 문제들은 많이 생략되어 있고, 주인공의 주변 인물들은 너무 착하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인 김지영씨는 특별히 모나거나 별난 인물도 아니다. 그 반대로 무척 신중하고 조금은 내성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녀가 유별난 순간은 별안간 다른 인물로 빙의하는 이상증세를 보이는 때다. 이러한 그녀를 진단하는 40대 남성 정신과 의사는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하는 세상이 있다'고 하면서 이 소설이 말하고픈 주제를 우회적으로 들려준다. 소위 미친 사람을 통해 미처 보지 못한 세상이라는 것이 사실은 멀쩡한 여성들이 살아내고 있는 일상의 세상이라는 점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에는 주인공을 진단하는 의사의 삶을 짤막하게 실었다. 의사는 아내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을 조금씩 이해한다. 그러나 직장에서는 병원 운영을 고려해서 상담사의 후임을 미혼 여성으로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한다.이를 통해 저자는 여성문제를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여전히 진행중인 문제라고 이중의 암시를 남긴다.

  나는 아내가 그보다 더 재밌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잘하는 일, 좋아하는 일, 그거밖에 할 게 없어서가 아니라 그게 꼭 하고 싶어서 하는 일. 김지영 씨도 그랬으면 좋겠다.(p174)

  아무리 괜찮은 사람이라도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여러 가지로 곤란한 법이다. 후임은 미혼으로 알아봐야겠다.(p.175) 

 

사회문제는 한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특수한 성격의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문제나 사회적 문제를 가리지 않고 어떤 문제에 직면하는 개인은 그 문제를 짊어지고 있는 주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개인이 겪는 문제에서 이것은 사회적 문제라고 똑부러지게 골라내기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어떠한 문제제기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특수한 개인의 불만이나 잘못으로 치부하기 쉽다. 여성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만 봐도 이런 틀은 어김없이 작동한다.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에게 '꼴페미'나 '메갈'이라는 틀로 가두면 끝나버린다. 페미니즘은 큰 틀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성별로 인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불이익은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 이런 주장에 많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어떤 특별한 경험이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여성문제를 더이상 한 개인이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니라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며 시대에 따라 모습을 달리했을지언정 보편적으로 여성에게(마찬가지로 남성에게) 사회적인 문제점으로 작동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만큼 이 소설이 인용하는 평범한 여성들(과 남성들)의 삶이 달라질 것이고 그 끝은 이렇게 달라질 것이다.

후임은 이 선생처럼 훌륭한 직원으로 알아봐야겠다, 라고. 

 

 

ps.

  <82년생 김지영>은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소설의 정의에 부합한다. 통계치의 표준적인 삶이니만큼 삶도 표준적이다. 흔히 표준의 함정은 분포도나 밀도를 가리는 데서 발생한다. 이 소설의 함정이라면 삶에 표준이 어딨냐는 항변보다는 극적인 부분이 거의 없다는 데 있다. 이상증세를 보이는 주인공을 묘사하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너무도 평범한 일상이다. 다만 주인공이 여성이기에 겪는 생애 주기별 에피소드일 따름인데 사회학적 보고서 혹은 구술사가 되었다. 어쩌면 소설 자체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워보인다. 그러나 소설을 통해 말하고픈 내용을 잘 드러내면서 화두를 던지고 있는 점에서 평가를 하고 싶다.

  한국소설은 더 이상 새롭지가 않다는 말을 들었다. 이미지를 묘사하는 능력은 섬세하지만 이야기를 직조해내는 데 힘이 부친다면서. 소설 자체를 거의 읽지 않는 입장으로서는 이러한 평가가 적절한지 알 길이 없다. 다만 최근의 소설이 그려내는 이미지가 현실의 반영이라고 한다면 하나의 가정을 해보고 싶다. 지금은 이야기가 불가능한 사회라고.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어느 곳에 뿌리내리기 보다 부유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수시로 개발하고 변신해야 하는 주체에게 세상은 서사보다 묘사로 포착하는 감각이 발달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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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정치사상 세트 (전3권) (반양장) - 전체주의의 기원 + 인간의 조건 +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박미애.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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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의 사상을 접할 수 있어서 반갑습니다. 아렌트의 다른 저작도 같은 판형으로 출간하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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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치 - 밀과 토크빌, 시대의 부름에 답하다
서병훈 지음 / 책세상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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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상반기 책세상 독서단으로 활동하게 되어 서평을 남깁니다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대한민국 정치의 풍경은 헌법재판소의 2017년 3월 10일자 판결로 그 모습이 바뀌었다. 국내 헌정 사상 첫 탄핵이 인용되었고 보궐 성격의 대선은 5월에 치러진다. 지금 한국은 때이른 정치의 봄기운이 만연하다. 이렇게 정치의 계절을 앞당긴 것은 박근혜의 실정 때문이다. 헌재의 구성원들은 대부분 보수적이었고, 판결문도 보수적 입장을 기초로 한다. 즉, 명백한 범법 행위를 하지 않고서는 추상적인 헌법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하기 힘들었다. 그리나 박근혜는 대통령 직무가 요구하는 헌법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헌재는 판단했다. 동시대의 사람들에겐 이 사건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긴 시간 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지역구 의원들에게 압박을 하면서 높은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며 이뤄낸 성과로 기억될 것이다. 추운 겨울에 광장으로 미처 나가지 못한 이들은 집에서 정해진 시간에 소등하면서 함께 했다. 냄비근성을 가진 국민들을 오래 들끓게 만들었던 원료 역시 박근혜와 최순실 및 주변의 권력형 비리 덕분이었다. 어쩌면 통치의 목적을 상실한 지도자의 행태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김기춘과 조윤선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건으로 구속되었다. 반대파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은 민주주의와 공화정체가 정확히 지양하는 것이다. 일상에서는 대부분의 이슈가 대선으로 휩쓸려 가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민주주의 자체에 약간의 불씨를 살려두고 싶다.

 

민주주의를 공부하면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자유론>의 존 스튜어트 밀과 <미국의 민주주의>의 알렉시 드 토크빌. 이 둘은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한다. 특히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는 학부생때 원문을 가지고 매주 페이퍼를 제출했던 추억이 있다. 이들을 한 데 모아서 쓴 책이 <위대한 정치>다.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만들어가는 데 사상적인 이정표를 세웠던 지식인이면서도 현실정치에 참여했다는 이력이 밀과 토크빌을 비교하기 좋은 구도로 만들어준다. 같은 시대를 살며 서신을 주고 받을 정도의 사이기도 했다. 저자는 이들의 발자취를 통해서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말을 걸고 싶어한다.

 

내가 19세기를 대표하는 사상가 밀과 토크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시대, 특히 한국의 지식인들이 보여주는 비지성적 행태에 대한 실망 때문이다. 배웠다는 사람들일수록 상업주의 시류에 영합하느라 더 정신이 없다. 이제 이 시대 이땅의 지식인들은 삶의 가치나 역사의 응보에 대한 관심을 잃어버렸다.(p.15-16)

결국 두 사람 다 자신의 정치 생활을 되돌아보며 동일한 회한에 잠겼고, 지식인은 역시 글을 써서 역사에 보답하는 것이 정답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해주었다. 그들은 사회에 진 빚을 갚되 '강단'에 충실하라고 했다. 그것이 지식인의 숙명에 부합한다고 했다. '참여 지식인' 밀과 토크빌의 말이었다.(p.22)

한국의 지식인들이 '교육과 연구'의 본분에만 충실해도 세상은 적잖이 달라질 것이다.(p.386)

 

요약하자면 '지식인으로서 책무를 되새기고 본분에 충실하자'. 내가 독해한 바로는 '교수님들, 정치권 어설프게 기웃거리지 마시고 교육과 연구부터 제대로 하시는 게 어떨까요'. 수미상관으로 저자가 건네는 말이다. 

 

책의 나머지는? 밀과 토크빌을 덕후처럼 조사한 내용이다. 두 인물의 삶을 삶/글/우정/정치이론/정치활동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삶의 궤적을 보여주면서 각 장의 주제에 집중한다. 문학을 독해할 때 내재적 접근과 외재적 접근으로 나누어 분석한다. 이 책은 일종의 외재적 접근법을 취한다. 덕분에 밀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아내 해리엇의 영향력. 밀은 공리주의 개혁가였던 아버지를 통해 조기영재교육을 받은, 지금으로 치면 신동이었다. 그랬던 그가 사랑에 빠진 해리엇도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밀의 대표작 <자유론>의 헌사를 그녀에게 바쳤는데, 사랑과 존경 그리고 그리움이 뚝뚝 묻어나는 글이다. (해리엇은 당시 명을 달리했다) 해리엇의 생전에 밀의 모든 저작이 그녀의 손을 거쳐갔다는 점은 그녀의 영향력을 가늠케 한다.

토크빌은 프랑스의 정치권력이 급변하던 시기에 살았다. 토크빌이라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혁명과 반혁명의 와중에 그는 민주주의를 거부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으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특유의 귀족적 탁월함을 구현하기 어려운 민주주의의 단점도 같이 고민한다. 토크빌의 명민함은 민주주의의가 걸음마를 떼는 순간에 신생아가 마주할 어려움을 같이 보았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저작인 <미국의 민주주의>1권은 당시에 엄청나게 팔렸다. 1835년에 펴내고 1848년엔 12쇄를 찍으며 서론을 다시 썼고, 보급판 4천부도 그 해 2쇄를 찍는다. 이쯤에서 나는 또 한국의 19세기를 떠올린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가 왜 세계사적인 의미를 갖지 못하는가. 구텐베르크 혁명을 통해 지식이 보급된 서양에 비해 동양은 지식 정보를 독점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양반층에게도 책은 귀한 물건이었다고 하니 지식은 자유롭게 흐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첫 단락 말미에 살려둔 불씨를 가져오려고 한다. 밀의 정치이론은 오늘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뼈대를 형성한다. 4부 정치이론에서 밀의 정치사상적 얼개를 살펴볼 수 있다.

 

첫째, 주권, 즉 최고 권력이 국가 구성원 전체에게 귀속되어야 한다. 둘째, 모든 시민이 ... 정부의 일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참여를 늘려나가면 사람들의 사고가 바뀐다. 자신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라는 소속감을 가지면서 사회 전체의 이익이 곧 자기 자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생각을 품게 된다. ...... 둘째, 참여는 사람들의 지적 수준도 높여준다.

 

이처럼 밀은 참여를 사람을 변화시키는 '교육의 장'으로 받아들였다. ...... 그는 계급 이익을 극복하지 못하면 대의민주주의가 성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특히 노동자 대중이 다수의 힘으로 자신들의 당파적 이익을 관철할까 봐 두려움이 컸다. 밀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은 다를 것이라고 믿었다. 그들은 지성과 교양의 힘으로 전체 이익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따라서 밀은 식자 계급이 정부 안에서 더 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p.236-242 발췌)

 

밀은 다수에 대한 소수의 지배 가능성이 있는 직접민주주의가 아닌 대의민주주의를 옹호했다. 민주주의가 가진 약점은 다수결 제도에 내재해 있다. 다수의 의견이라고 해서 더 낫다고 보증할 수 없다. 그래서 밀은 보통의 시민들보다 뛰어난 판단을 할 수 있는 지식인을 찾는다. 그러면서도 보통의 시민이 온전한 인간성을 발휘하기 위한 조건을 고민한다. 그는 참여를 통해 시민이 정치적으로 성숙해 나간다고 보았다. 그 중간에서 지식인은 좋은 정치의 토양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밀은 지식인으로서 의회에 선출되어 현실정치에 참여했다. 그가 행했던 의회에서의 활동은 그가 평소 가졌던 생각과 다르지 않다. 자서전에서는 이 때의 활동 중 선거 개혁, 여성 참정권, 아일랜드와 자메이카 문제를 주로 거론했다.(p.296) 하지만 이런 급진적 원내활동은 뜻을 펴지 못한다. 책의 앞 장에는 1928년 영국의 여성참정권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서 여권 운동가들이 밀의 동상에 헌화하는 사진자료가 있다. 그가 얼마나 시대에 앞서 문제를 제기했는가, 또한 당시의 현실적인 장벽은 얼마나 높았던 것인가 알 수 있는 단면이다. 이후로 시간이 흘러 대중교육이 일반화되고 민주주의는 대세가 됐다. 하지만 밀이 민주주의의 바탕을 이룰 시민이 참여를 통해 성숙해져야 한다는 아이디어는 지금도 유효하다.


박근혜 정부의 탄생은 보통선거를 통해 엄연히 민주적 절차를 거쳤다. 다수의 선택을 받은 이 정부는 정말 보잘것 없는 정치를 보여줬고,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묘사하던 한국의 정치지형을 순식간에 역전시키는 기적을 행하였다. 정치와 기적의 간극은 밀이 경계했던 민주주의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치권력을 주었던 이도, 잘못된 권력사용을 이유로 다시 회수한 이도 시민이다. 이번 탄핵이 있기까지 광장의 역할을 스스로 마음껏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 집단지성 같은 말은 좋아하지 않지만 광장에서 보여준 차분함은 여론의 역풍까지도 고려한 집단적인 인내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투표는 참여를 보장한다. 투표를 하면서 시민들은 민주주의의 실천을 배운다. 광장은 참여를 보장한다. 광장에서 시민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으며 정치적 역량을 가늠한다. 대의제와 참여와 관련된 문제의식은 오늘날에도 완성된 정답이 없다. 그래서 사회적 현실에 맞게 민주주의를 변화시킬 동력을 밀은 시민의 참여에서 찾고있는 지도 모른다.

 


덧1.이 책은 보조자료로도 활용가치가 높을 것 같다. 저자가 밀의 저작을 많이 번역했고, 밀의 전집을 준비하고 있다 하니 기대가 된다. 이미 밀의 저작을 다수 번역하셨더라. 

 

덧2. 잊혀진 이슈긴 하지만 민주주의와 관련해 국정원과 군의 선거개입은 정말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특히 작금의 국정원은 설립취지에 걸맞는 임무를 수행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 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측면이 적기 때문에 반대로 대리인의 역할을 충실하게 하지 않아도 될 유인은 많아진다. 감시하고 평가할 제도적 장치가 거의 없다고 보인다. 보수주의자를 자청하는 이들이 이 사건을 두고 나라가 무너질 것처럼 걱정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 한국의 자칭-보수주의가 얼마나 사상적 뿌리가 약한지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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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입자 - 우주가 답이라면, 질문은 무엇인가
리언 레더먼 & 딕 테레시 지음, 박병철 옮김 / 휴머니스트 / 2017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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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서평단에 선정되어 서평을 올립니다

 

한 달 전 쯤 강유원 씨의 <숨은 신을 찾아서>를 읽고 글을 남겼다. 함축적인 글이라서 저자의 생각만큼이나 내 생각도 끼어들 공간이 많았다. 저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곡해나 오독을 맘껏 했으리라. 그런데 이번에도 읽은 책이 하필 <신의 입자>!! 제목만 보면 창조의 비밀을 파해치는 종교서적으로도 손색 없지만 과학을 다룬다. 그것도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는 실험물리학자의 눈으로 본 과학개설서. 물리를 돌이켜보면 생각나는 공식이 F=ma인데, 힘은 질량과 가속도에 비례한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그리고 관련 문제를 열심히 풀었던 기억이 난다. 일상은 물리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적어도 저러한 물리문제는 잊고 산 지가 오래다. 그런 내게 과학이라니, 물리라니. 생각하지 마라. 외우고 풀고 오답노트를 만들어야 하나.

 

다행히도 이 책은 문제집이나 논문이 아니다. 물리학의 역사를 다룬다. 총 9장 구성에서 전반부인 5장까지가 물리학의 최소단위인 원자를 찾기까지의 여정을 과학사의 큼지막한 발견들로 잘 버무려냈다. 6장부터 9장까지는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한 신의 입자를 찾아낸 과정을 그린다.(이 책의 전체 여정을 초간단 역사로 정리한 표가 p.590-591 에 있다. p.589 도 참고.) 저자는 700 쪽에 가까운 이야기를 꽤나 유려하게 풀어낸다. 중간에 나오는 저자의 유머 덕분에 책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이런 부분은 과학책에 대한 장벽을 그나마 낮춰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과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도 눈길을 끈다.

 

대중은 결코 나약한 집단이 아니다. 정치인이나 사회평론가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발언을 하면 가차 없이 융단폭격을 퍼붓고 잘못을 바로잡는다. 그러나 '과학'이라는 간판을 내걸면 대중은 한없이 나약해진다. ...... 가장 큰 요인은 과학을 불편하게 생각하거나 과학이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잘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일반대중은 과학을 '확고한 법칙과 신념으로 건조된 난공불락의 요새'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그러나 내가 장담하건대, 과학은 그 어떤 분야보다 유연하다. 과학의 목적은 현상유지가 아니라 혁명이기 때문이다. (p.352-353)

 

미안하게도 저자가 직접 관여한 신의 입자를 찾는 원정단에서 길을 잃었다. 정말이지 저자는 자기가 몸담고 있는 입자물리학의 현재를 최대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최신의 물리학은 내 기준에서는 너무나도 많은 발견을 했다. 나는 고전물리학조차 버겁다. 그래서인지 가장 재밌게 읽었던 부분이 고전물리학을 설명하는 전반부다. 물리교과서에서 실험하는 내용이 먼 옛날 갈릴레이 갈릴레오가 했던 실험이었고, 주기율표로 친근한 멘델레예프 이름도 보인다. 그냥 익숙한 이름이 나와서 재밌다기보다 물리학의 발견이 법칙으로 정립되기까지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다보니 꼭 옆에서 같이 발견해 낸 공식같기만 했다. 과학 공부를 이렇게 역사 속에서 설명해주면 훨씬 흥미롭지 않을까. 전반부의 물리학 역사원정대를 따라 여행하는 것만으로도 매력적이다. 후반부는 이론물리학자들과 대비되는 실험물리학자의 삶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막간c에서 저자가 성공했던 실험을 들려주는 대목은 특히 흥미로웠다. 그간의 정립된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증거를 찾아낸 실험은 저자의 푸념처럼 생고생하는 현장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는 과정에서 성공했기에 훈훈하게 끝났지만, 실패했던 실험들은 훨씬 많았을 것이다.

 

책을 읽어나가는 내내 마음 한 켠이 씁쓸하기도 했다. 근현대에 이룩해놓은 물리학의 혁혁한 성과들을 접하면서 그 시기에 조선-한국은 어땠나 비교를 해보면 뭔가 아득해지는 느낌이다. 서양의 네트워크 내에서 성과들만을 기술한 것이 아닌가 의심도 해보지만 과학 분야는 이론이나 실험의 결과물이 사상에 따라 바뀐다고 볼 수는 없기에 서양이 주도권을 갖고 있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책을 통틀어 내가 찾은 한국인은 벤 리(이휘소) 한 명이다. 과학에까지 국적놀이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 기초과학이 무너진다는 걱정을 들은 지 오래다. 일본에서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꾸준히 받을 때마다 국내를 되돌아보는 뉴스가 한가득이다. 만성 걱정으로만 끝나지 않고 과학의 발견이 주는 기쁨을 많은 이들이 누리는 환경을 만들 때는 언제인가. 이런 과학책을 뒤적거리는 일도 하나의 실천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덧. 저자가 물리학자(과학자)로 사는 즐거움을 말하는 대목이 인상깊었다.

다른 사람이 발표한 아름다운 이론을 어느 순간 갑자기 이해하면서 기쁨과 성취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강렬한 순간은 우주의 비밀을 스스로 발견했을 때이다. 상상해 보라. 당신이 새벽 3시에 연구실에 혼자 남아 방정식과 씨름을 벌이다가 문득 심오한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그 순간, 당신을 제외한 70억 명의 인류 중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 얼마나 짜릿하고 강렬한 경험인가!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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