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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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인적으로 표지에 작가 얼굴이 나온 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보통 잘생기거나 예쁜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를 덧붙여 판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이런 표지를 통해 자신의 얼굴(체면)을 걸고 이 글을 썼다는 자부심을 표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 달 후, 일 년 후> (2012,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소담출판사 펴냄)의 표지에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얼굴이 크게 나와 있다. 곱슬기가 있는 커트 머리, 짙은 눈썹, 화장기 없어 보이는 얼굴, 젖살이 남아 있는 듯한 앳된 얼굴의 흑백 사진이다. 1935년에 태어났고, <한 달 후, 일 년 후>는 1957년에 출간되었으니 표지의 이 사진은 이 책을 썼을 즈음인 20대의 사진일지도 모르겠다. 김영하 작가의 책 제목으로 더 널리 알려진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라는 말이 바로 프랑수아즈 사강이 마약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 한 말이라고 하니, 우리 사회에 사강만큼 널리 알려진 프랑스 여류 작가가 없을 듯도 하다.

책의 제목인 '한 달 후, 일 년 후'는 프랑스의 고전 비극 작가 라신의 1670년 작 희곡인 <베레니스>의 한 구절이라고 나온다.

 

한 달 후, 일 년 후, 우리는 어떤 고통을 느끼게 될까요?

주인님, 드넓은 바다가 저를 당신에게서 갈라놓고 있습니다.

티투스가 베레니스를 만나지 못하는 동안,

그 얼마나 많은 날이 다시 시작되고 끝났는지요.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지 못하는, 사랑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고,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고, 사랑해서는 안 되는 사람을 사랑하고, 한때는 서로 사랑했지만 이제는 시효가 다 되어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한 달 후, 일 년 후>에는 그렇게 사랑을 완성하지 못하고 서로의 등을 바라보는 남녀가 줄줄이 등장한다. 그것도 사랑만이 지상과제인 것처럼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고 죽을 듯이 괴로워할 만큼 사랑에 충실한 남녀가. 사랑이 한없이 가벼워진 요즘에는 찾기 어려울 만큼 자신의 사랑에 대해 헌신적이지만, 동시에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하느라 배우자를 팽개치는 무심함은 아주 잔혹하다. 이들에게 사랑은 그야말로 책임이 없는 본능일 뿐이고, '한 달 후, 일 년 후'에는 결별의 고통만이 남을 것이다.

저자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에게 고루 마음을 나누어 준다. 마음보다도 젊음으로 빛나는 육체를 따라 움직이는 자유로운 사랑 이야기는 자칫 천박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담담한 문체와 심리 묘사가 이야기를 구해 낸다.

참 오래간만에 프랑스의 감수성 사강과 그녀의 사랑 이야기를 만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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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미네이터 2 - 상 - 시간의 문을 열다 몬스터미네이터 2
아멧 자파 지음, 이영 옮김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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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도 판타지에 대한 동경은 여전하다. 빤한 현실에서 벗어나 주인공과 함께 상상 속을 헤매고 다니다 보면, 굳어 있던 머리가 풀리는 기분이라고 할까. 그중에서도 너무 복잡하고 숨가쁜 이야기는 현실마저도 무겁게 하니 사절이고, <몬스터미네이터> (아멧 자파 지음, 이영 옮김, 스콜라 펴냄) 정도면 딱 좋다.  

'몬스터미네이터(Monsterminator)'라는 단어는 괴물(monster)과 종결자(terminator)를 결합해서 만든 말로서, 이 책의 주인공인 맥피어리스 가문에 이어져 내려오는 가업이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은 몬스터들의 세계에서, 인간에게 해를 주는 나쁜 몬스터를 처리하는 일을 한다. 

총 3부작으로 구성되는 이 시리즈의 1부는 2009년 여름에 발간되었다. '납치된 아빠를 구출하라'라는 설명을 단 이 책은, 설명 그대로 몬스터에게 납치된 아빠를 구하는 내용이다. 아빠를 구하려던 미네르바와 맥스마저 몬스터에게 잡혀 있는 암담한 상황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이 아이들이 어떻게 해서 이런 상황에 오게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이야기한다. 이 모든 이야기는 바로 아래의 이 서재에서 시작된다.


천장까지 꽉 찬 책들과 벽난로 위의 대형 초상화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별다를 것은 없는 서재의 모습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벽난로를 만진 순간, 벽난로 뒤로 아래와 같은 신비로운 공간이 나타나고, 몬스터를 연구하는 맥피어리스 가문의 연구실로 이어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미네르바와 맥스 남매의 몬스터미네이터 생활이 시작된다.


 

2011년 발간된 2부 <몬스터미네이터 2 : 시간의 문을 열다 상, 하> (2011)는 1부의 이야기와 시간의 차이를 두지 않고 바로 이어진다. 1부에서 아빠를 구출하긴 했지만, 아빠는 몬스터에게 기억을 다 빼앗겨 백지 상태가 된다. 아빠의 기억을 찾기 위해 미네르바와 맥스는 다시 모험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5대조 할아버지가 몬스터화한 데빌스톤, 식물성 몬스터인 밀그루, 대장장이 크룬스머글이 합류한다. 그런데 1부에서 죽은 것으로 나왔던 엄마가 사실은 살아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1부에서는 맥피어리스 가문의 전반적인 상황과 몬스터들의 특징을 이야기하느라 모험이 적었는데, 2부에서는 마침내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 모험을 본격적으로 개시한다. 1부는 미네르바가, 2부는 맥스가 서술하는 것도 흥미롭다. 



책에 등장하는 다양한 몬스터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한 다음, 유머러스한 퇴치법까지 싣고 있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의 이야기도 재미있지만, 해그리드가 키우던 신비로운 동물들에 관심이 많았다면, 이 부분도 흥미로울 것이다. 

<몬스터미네이터> 1부 원저는 2006년에 나왔고, 월트 디즈니 영화사에서 영화화가 되고 있단다. 그래서 <몬스터미네이터> 1부에서는 영화 스틸컷이 간간이 나와서 흥미를 더해 주었다. 그런데 2부에서는 스틸컷이 없고, 또 3부는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 2부처럼 2년이나 기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맥피어리스 가족 모험의 완성을 얼른 보고 싶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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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홍수 - 에릭 드루커의 다른만화 시리즈 4
에릭 드루커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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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슈피겔만, 닐 게이먼, 프랭크 밀러, 조 사코, 닉 혼비 같은 쟁쟁한 이들의 추천사가 아니더라도 에릭 드루커의 작품인 <대홍수> (2010, 에릭 드루커 지음, 다른 펴냄)는 아주 강렬한 작품이다. '태초에 신께서 말씀과 뉴욕을 창조하셨다… 보시니 모든 것이 쓸모없더라'라는 표지의 시니컬한 문구만큼이나 미국의 심장인 뉴욕을 통해 미국의 어두운 면을 낱낱이 드러내보이고 있다. 흑백 대비의 강렬함을 통해서 말이다. 

첫번째 이야기인 '집'은 술에 취해 TV를 켠 채 잠들었던 남자가 아침이 되어 깨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모자와 가방을 챙겨서 출근하는 남자는 지하철에서 내려 걸음도 씩씩하게 달려 올라가지만, 공장 문은 '폐쇄' 쪽지가 붙은 채 자물쇠가 굳게 걸려 있다. 삽시간에 고개를 떨군 남자는 술집과 창가와 구걸과 도둑질을 거쳐 집에 돌아오지만, 집 문에도 '폐쇄' 표지가 떡 하니 붙어 있다. 갈 곳이 없어진 그는 또다시 방랑과 매매춘과 절도와 감옥 생활과 방랑을 거치면서 점점 작아져 마침내소멸되고 만다. 

두 번째 이야기인 'L'은 지하철 안에서 신비한 세계를 만나게 되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클라이브 바커의 책 '미드나잇 미트 트레인'에서는 지하철 종점에서 식인을 하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만나게 되는데, 에릭 드루커의 'L'은 아프리카 혹은 인디언을 연상케 하는 생명과 화합의 존재들을 등장시킨다. 그러나 그 환상은 사나운 개를 앞세운 경찰이 등장하면서 끝나고, 웅크린 채 맨바닥에서 자고 있는 노숙자를 지나 계단 위로 길게 드리운 남자의 그림자에서 한쪽 팔이 사라져 버린 듯한 허전함이 느껴진다. 

마지막 이야기이자 책 제목과 같은 '대홍수'는 만화를 그리는 사람이 등장해서 현실과 작품의 이야기가 뒤섞인다.
우산 없이 길을 나섰다가 비를 맞게 된 화가는 비를 쫄딱 맞으면서 걷다가 우산 하나를 사서 쓰고 집으로 돌아온다. 고양이 한 마리와 이젤 하나로 꽉 찰 듯한 좁디 좁은 집에는 비가 샌다. 비는 줄기차게 내리고, 집 안에서도 우산을 써야 하는 현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
화가의 그림 안에서는 점점 작아져가는 빙산 위에서 표류하다가 동료들에게 구조된 에스키모 사냥꾼의 이야기 다음으로 현실과 마찬가지로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이야기를 그리는데, 저 멀리 해가 빛나고 있지만 뉴욕을 뒤덮은 것은 무겁디 무거운 비구름뿐. 거센 비바람을 타고 우산째 날아간 그림 속 주인공은 롤러코스터를 타고서 놀이공원 안으로 들어간다. 그 안에는 무기를 들고 행진하는 표정 없는 군인들과, 엉클 샘, 자유의 여신상, 배트맨, 피에로, 닌자 거북이, 뽀빠이 등 미국의 문화를 상징하는 아이콘들이 가장행렬을 하고 있다. 호객꾼을 따라 들어간 마술의 집 안에서는 머리 둘 달린 남자, 칼을 삼키는 여자, 엘리펀트 맨 등 기이한 인물들이 눈을 끄는데, 여러 사람의 각광을 받고 있는 한 근육질 남자에게 새겨진 그림에 주목하게 된다. 미국 연방의 상징인 독수리와 더불어 미국을 '개척'한 사람들이 타고 온 메이플라워호는 인디언과 흑인 노예에 대한 착취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일루미나티를 상징하는 삼각형 눈 아래 약육강식의 표식이 새겨진다. 놀이공원을 떠나는 그의 눈 앞에는 공권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그려지고, 무자비한 탄압 후 비를 부르는 주동자의 손길 아래 뉴욕을 침수시키는 대홍수가 펼쳐진다.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는 작품에서와 마찬가지로 대홍수가 벌어져 있고, 살아남은 것은 노아의 방주에 기적적으로 올라탄 화가의 고양이 뿐이다. 

만화는 주로 어린이들의 동심의 세계를 대표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다른출판사에서 펴낸 다른만화 시리즈에는 사회 고발적인 내용의 만화들이 연이어 소개되고 있다. 이전에 만난 <바시르와 왈츠를> (2009, 아리 폴먼, 데이비드 폴론스키 지음)에서는 지금껏 익숙했던 이스라엘 관점에서의 이야기가 아니라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인들을 위한 내용이 나왔고, <나는 왜 저항하는가> (2010, 세스 토보크먼 지음)는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는 슬로건 아래 현실과 행동 지침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번 <대홍수>에서는 <나는 왜 저항하는가>처럼 선동적이지는 않지만, 미국의 현실의 어두움을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겉으로 드러난 문화와 평화와 민주주의 국가의 형님으로서의 미국이 아니라 알콜과 마약중독자, 노숙자의 나라인 동시에 무소불위의 권력으로서의 미국이 나타난다. 이런 미국에도 노아의 방주가 허락되고, 마침내 무지개가 뜰 것인가.
책 말미에 수록된 시인 앨런 긴스버그의 에릭 드루커 소개와 더불어, 크리스 레이니어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할 수 있겠다. 

묵직하니 마음이 무거워지는 환상과 실제의 세계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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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안드레아 데 카를로 지음, 이혜경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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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1. 기압의 변화 또는 사람이나 기계에 의하여 일어나는 공기의 움직임
2. 공이나 튜브 따위와 같이 속이 빈 곳에 넣는 공기
3. 남녀 관계로 인해 생기는 들뜬 마음이나 행동
4. 사회적으로 일어나는 일시적인 유행이나 분위기 또는 사상적인 경향
5. 남의 비난의 목표가 되거나 어떤 힘의 영향을 잘 받아 불안정한 일
6. 남을 부추기거나 얼을 빼는 일
7. 들뜬 마음이나 일어난 생각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출처 : 네이버 국어사전

뜬금없이 바람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게 된 것은, <바람이 바뀌는 곳에서의 3일> (2009, 안드레아 데 카를로 지음, 예담 펴냄)을 읽으면서 든 궁금증 때문이었다. '바람이 바뀌는 곳'은 원어인 Wind Shift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영어에서의 wind는 물리적인 바람 외에 영향력, 예감, 향기, 소문, 빈말, 소동 등의 뜻을 가지고 있었으니, 우리말 '바람'의 그 풍부한 뜻을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제목의 바람의 의미를 내 나름대로 해석하는 재미가 있었다. 

이야기는 외국의 시트콤 같은 상황에서 시작된다. 오랜 친구 넷이서 전원주택들을 사서 휴양을 즐기기로 결정하고, 부동산 중개인과 함께 집들을 보러 떠난다. 출판사 편집자인 루이자, 그의 남편이자 건축가인 엔리코, 엔리코의 고등학교 친구인 모험가 아르투로, 연극배우였다가 탤런트가 된 마르게리타. 이들은 부동산 중개인 알레시오가 모는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면서도 끝없는 전화 통화와 나름대로의 알력 싸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고 구덩이에 빠져 차가 고장나면서, 이들의 여행은 끝나고 바람이 바뀐다.
문명의 이기를 모두 거부하고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난 이들은 아주 당황하며 불편해 한다. 문명의 최일선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더러운 냄새가 나는 멍석과 담요뿐인 침실, 휴지도 없는 화장실, 약초들을 찧어 만든 약 들은 혐오감과 불신과 거부감만을 일으킬 뿐이다. 이들이 사려고 생각했던 그 전원주택 단지가 바로 이 집들이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공동체의 일원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네 명의 친구들은 저항하고 수용하고 인정하고 감탄하고 녹아든다. 그 과정에서 컴플렉스와 자기 기만과 위선이 드러난다.
공동체에도 문제가 많다. 많았던 구성원은 다 사라져서 이제 아룹, 라우로, 미르타, 가이아, 아리아, 이카로 뿐이고, 아리아는 문명 사회에 대한 동경에 물들어 있다. 주변 사람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어서 생명의 위협도 있고, 소통의 부재로 인한 고립감도 상당하다. 그러나 자연과 생명, 모성이라는 풍부함은 그들의 빈약한 식단과 허름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생생하게 살아있도록 만든다. 

바람은 수시로 바뀐다. 라우로와 아룹 들에게 공동체를 만들도록 했던 바람4는, 바람6과 7에 의한 다섯 명의 여행자를 포용하고, 그 안에서는 바람3도 잠깐 존재한다. 바람1이 부는 Wind Shift는 이들 각각에게 존재하는 바람5를 날려보내면서 자유롭게 해방시킨다. 그 바람이 바람7이 될지 삶의 전환이 될지는 그들 각각에게 달린 문제겠다.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이들 각각의 차이를 보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고, 이런 상황에 만약 놓인다면 나의 선택은 어떨지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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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암자를 찾아서
이봉수 지음 / 자연과인문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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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이라는 단어에서는 고독과 자유라는 느낌이 풍겨 나온다. 제대로 된 섬에 가 본 적이 없는 내게 섬은 꿈과 같은 곳일 뿐, 그 안에서 느끼는 단절감과 그만큼의 자유는 사실 실감 나지 않는다. 한 치 건너 두 치라고나 할까.
참,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쯤 강화도 옆의 석모도에 갔다온 적이 있었다. 회사의 단체 야유회를 석모도로 갔는데, 차들도 함께 타는 엄청 큰 배를 타고서 저기 보이는 섬까지 십여분 간 것이 고작이라서, 섬이라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런 데다 사람은 또 어찌나 많은지 보문사에 가는 길은 인산인해를 이루어서, 가도 가도 끝없는 돌계단을 올라가면서 사람에게까지 지쳐버렸다. 그러니 굳이 맨 위에 올라가서 돌에 새긴 마애석불좌상을 보았으면서도, 마애석불 좌상이 석실 나한전과 함께 보문사가 관음기도 성지임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조각상임을 알지 못했고, 약수가 나오는 샘과 수령이 600년 된 거대한 향나무를 보지 못했다.  

<섬에 있는 암자를 찾아서> (2009, 이봉수 지음, 자연과인문 펴냄)는 섬기행 칼럼니스트인 이봉수 님이 '낯설고 아득한 길 위에서 무소의 뿔처럼 홀로 찾아가는 길' 20곳을 소개한다. 섬을 여행하다 만난 이순신 장군의 흔적, 그 흔적과 사적을 찾아 섬들을 여행한 것이 벌써 10년째인데, 그런 섬 여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은 경남 통영에 있는 오곡도에 섬 여행을 위한 베이스캠프를 마련할 정도로 섬과 여행에 대한 저자의 사랑이 크다. 그렇게 섬을 여행하다 보면 숙박시설이 없을 정도의 작은 섬에도 가게 되는데, 그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 찾은 곳이 암자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처럼 섬과 암자가 연결되는 것이다.
연화도 보덕암, 미륵도 용화사, 사량도 옥련암, 완도 신흥사, 오곡도의 명상수련원, 거금도 송광암, 흑산도 광조암과 관음사, 남해도 운대암, 욕지도 용천사, 거제도 신광사, 백령도 연화정사, 강화도 전등사, 울릉도 성불사와 독도, 석모도 보문사, 마라도 기원정사. 널리 알려진 섬들도 있고, 처음 들은 곳도 있었는데, 홀로 가뿐히 떠나는 여행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 번잡하지 않고 단출하다.
절이나 암자에 대해 간략한 역사를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하나하나 세세하게 묘사하지는 않는다. 염화미소를 요구하는 것일까, 스님들과 나눈 대화도 중요하지 않은 듯 생략된다. 이 책의 주인공은 섬도, 암자도 아닌, 바로 그 길들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섬에 찾아가기까지의 길과 섬에서 암자를 찾아가기까지의 길, 암자에서 다시 속세로 돌아오는 길의 느낌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리고 각 글의 마지막에는 저자가 지은 시들이 실려 있어서 여운을 더한다.

도시의 절은 규모가 크다 보니 분업화된 기업 같은 곳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다녀온 섬들의 암자는 규모가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아서 확실치 않지만 스님 혼자서 화두를 붙잡고 계시는 곳도 있을 정도로 고즈넉했다. 밤 깊도록 차를 마시며 나눈 말씀들이나 정성스런 점심 공양을 들면서 나눈 말씀들이 궁금했다. 여백의 미를 추구하신 것인지, 암자와 섬에 대한 설명이 미진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암자와 섬에 대해 나는 이미 매료되었나 보다. 어떤 인연으로 해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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