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의 책 - 괴테에서 톨킨까지, 26편의 문학이 그린 세상의 정원들
황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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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책. 황주영 지음. 한겨레출판. 2025.

정원과 독서, 무척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한다. 이 둘은 그 단어만 들어도 살며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참 좋다. 누구의 강요 없이도 자연스레 마음과 몸이 향하게 되는, 그런 단어들이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둘이 우리에게 주는 공통점이 있고, 그 공통점이 이 책에 각 책터로 묶여있다. 치유, 사랑, 욕망, 생태. 정원의 책을 통해 배우고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가치와 태도들인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이 가치들이 어떤 작품과 어떤 장면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하나씩 다시 확인해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 읽어보지 못한 책에 대한 관심과 흥미까지 덧붙여 주고 있기도 했다. 지금은 아쉬운대로 방 안에서 작은 화분들을 바라보며 이 책을 읽었지만, 다음에는 더 넓은 정원 안에서 이 책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아마 분명, 지금 읽었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해보지 않아도 익히 당연하게 짐작할 수 있다. 정원은 너무나 그런 곳이니까.

메리에게 비밀의 정원을 들여다보고, 죽은 풀과 잡초를 제거하고, 새싹을 심으며 돌보는 것은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일이었다.(...) 메리가 정말로 회생시키려 한 것은 정원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었을 것이다.(30쪽)

자기 자신과 정원 둘 모두를 회생시키려 수 있는 것.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원인 것이다. 그러니 정원에서는 가장 중요한 생명, 즉 삶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상처받고 아프고, 그래서 사그러지는 듯한 생의 기운을 다시 살아날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가 정원이고, 그런 정원을 가꾸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의 마음을 가꾸며 회복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다른 생명을 통해 자신의 생을 보살피고 돌보는 것. 나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마음이 치유되는 것이 가능해지는 정원의 독서인 것이다.

그는 이제 아름다운 정원도, 폴리아도 없는 현실로 돌아왔다. 얄궂게도 그날은 사랑의 계절인 5월의 첫날이었고, 그는 혼자다. 이는 키테라섬과 그곳의 영원한 봄의 정원 또한 좋으나 어디에도 없는 장소인 유토피아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서 그 좋은 장소를 꿈꾸고 누리기 위해 폴리필로의 낙원을 떠올리게 하는 정원을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꿈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아니, 꿈처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계속 꿈을 좇으니까.(104쪽)

그러니까 말이다. 유토피아, 어디에도 없는 곳, 그래서 더욱 동경하고 갈망하게 되는 공간, 바로 그 꿈과 같은 공간. 분명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곳을 좋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지점이 있는 것이다. 그런 공간으로서의 정원, 그 정원을 통해 꿈꾸는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곧 사랑일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득 안고 또 다시 정원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게 되는 것이겠지. 어쩌면 그런 마음의 여정이 곧 삶인지 않을까. 그런 마음을 잃지 않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만해지는 마음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사실 이런 '작은 집'은 이런 목적으로, 유혹을 위해 설계되었고, 정원 또한 외 공간이지만 나무와 강 등으로 여러 겹으로 둘러싸여 있어 연인들을 아늑하게 지켜주는 닫힌 공간이다. '작은 집'의 정원은 사랑의 정원, 유혹의 무대다.(165쪽)

밖이면서 안이고, 열려있으면서 닫혀있는 공간으로서의 정원. 그래서 한편으로는 무척 내밀하고 고혹적인 공간, 그래서 사람의 가장 일차원적인 욕망의 발현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어내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사랑이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근원적이고 소중한 감정이고 그런 감정이 또 다른 욕망과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갈망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그러니 끊임없이 이런 유혹의 과정 안에 사람은 놓이게 되는 것이고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이 정원이 되는 것이다.

정원이 이토록 다양하게 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까지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정원은 정원으로서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이지만, 인간이 이 모든 것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 뿐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는 것이 정원의 또 다른 매력이고, 그런 정원이 그래서 여전히 인간의 삶과 함께 공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말대로, 원하는 책을 찾을 수 없어 직접 쓰는 수밖에 없었다는 말이, 책을 다 읽고나서 느껴졌다. 어디서 이런 <정원의 책>을 볼 수 있을까 싶다. 그러니, 저자의 이 책이 갖는 의미 또한 분명하겠구나, 싶다. 괜히 이 책을 만난 내가 더 뿌듯해지는 듯하다.

덧-
각 부분에 담겨 있는 정원의 그림들이 좋았다. 각 부분의 내용에 대한 잠시 쉬며 정리해볼 수 있는 여유도 함께 주는 것 같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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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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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일기. 황정은 에세이. 창비. 2025.

2024년 12월 3일, 계엄이란 상황을 인지하게 된 그 순간의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다른 일을 하고 있던 중에 전해들었다. 말도 안 된다고, 거짓말하지 말라고 큰소리 쳤는데, 사실이어서 황당했다. 2024년에, 우리가 역사에서나 배웠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고, 어이가 없었고, 또 한편으로는 공포스러웠다. 무섭기도 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작가가 날짜와 시간대별로 일기로 정리해놓은 글을 읽으니, 다시 그때의 그 기억이 되살아났다.
물론 지금은 그와 관련한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새로운 정부도 들어서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일들이 많아, 끝까지 더 지켜봐야하는 일이 되었다. 지금에서 생각해보면, 당시에는 해프닝 정도로 생각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후에 밝혀지는 사실들에서 단순히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 정도로 생각할 수 없는 정황들이 많았고, 철저한 계산과 무서운 목적이 전제되어 있었던 계획이었다는 점에서 더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런 일들 또한 시간이 지나면 역사 속 사건이 될 것이고, 그런 역사의 사건으로서 진실을 알기 위해선 이런 기록이 무척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은 '일기'라는 형식을 띠고 있다. 아마 실제로 작가가 일기로 작성해 정리해놓았던 이야기를 책으로 묶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기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해 갖고 있는 작가의 판단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보통 일기는 내밀한 특징을 갖고 있는 글이어서 누군가에게 읽히기도 위해 쓰이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기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일기를 쓰게 되고, 그 일기는 독자를 염두해두고 작성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솔직한 이야기가 담기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이 사건을 바라보는 관점과 느낌,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며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작가는 탄핵에 대해 진심이었고, 이번 일을 바라보며 문제가 해결될 수 있기 위한 어떤 행동과 실천이 이루어졌는지도 솔직히 전달하고 있었다. 서울과 파주를 오가면서까지 어떤 간절함을 갖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설명이라고나 할까. 이는 이를 보는 우리한테까지도 어떤 일들을 통해 지금의 결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기록이 중요하단 생각을 했다. 꼭 국가의 공식적인 기록물이 아니더라도, 개인의 이런 기록까지도 하나의 사건이 어떤 과정과 결과를 만들어냈으며, 그것을 바라보는 각 개개인의 관점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부분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기준에 따라 공식적으로 만들어내는 역사적 기록과는 별개로, 각 개인이 다양한 자신의 관점과 판단을 바탕으로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을 기록하고 확인해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롭게 자신의 의사를 드러내고 그 생각을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이 곧 민주주의의 기본 바탕이며, 이를 통해 다양한 생각과 가치관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우리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증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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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창비청소년문학 135
이라야 지음 / 창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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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 #이라야 #이라야장편소설 #창비 #창비청소년문학 #서평단 #서평 #책추천

파이트. 이라야 장편소설. 창비. 2025.

하람이의 삶이 짠했다. 아이들을 1차적으로 가정의 부모로부터 사랑과 지지를 받으며 사회에서 지탱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하는데, 하람이는 그것이 불가능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부모가 부모로서 아이를 보듬어주지 못하고 자신의 슬픔과 불행 안에 갇혀 지내기만 했다는 건, 어찌보면 아이를 방치한 것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람이의 처지가 안타까운 것을 넘어 화도 났다.
물론, 엄마 아빠의 아픔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옛말처럼, 예찬이를 향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있다면 하람이에 대한 사랑과 책임도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른이 해야할 몫인 것이다. 하지만 하람이의 엄마는 그 어른으로서의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물론 아빠도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어른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노력은 했으나 아이가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최소한 이 애가 잡고 버틸 만한 애정의 끄나풀 정도는 내밀어줘야 할 거 아니에요. 그것까지 외면하면 어떻게 버티라고. 어른이 왜 그렇게 모질어요."(...)
"그렇잖아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애가 자기를 얼마나 탓했겠냐고요. 내 잘못으로 엄마가 화났다, 내가 엄마를 슬프게 했다고 하면서 얼마나 자책했겠냐고요."(158쪽)

속이 다 시원했다. 권 경위의 말이 어쩌면 권 경위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대놓고 쓴소리를 날릴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주는 어른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어른들은 어떤 면에서는 아이들보다도 더 비겁할 때가 많으니 말이다. 자신의 상처 안으로 숨기 바쁘고 다른 이들에게는 상처만 보이며 모든 것에서 도망치려고만 하고. 이런 어른에 대한 권 경위의 뼈 있는 말이었단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무하, 원지는 왜 이렇게 착한지, 권 경위는 어쩌면 이렇게 다 챙겨주는지, 체육관의 관장도 원지 엄마도 이해하고 도우려는 마음이 이렇게도 강할 수 있을까 싶었다. 카페 사장님과 감초 삼촌까지도 모두가 그랬다. 버스 정류장에서 처음 보는 이들에게 옷을 건네주던 할머니마저도. 지금까지 아빠와 엄마가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하람이가 이제 마음을 놓고 진짜 삶을 편안하게, 그것도 웃으며 살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이들이었다. 이보다 더 다행인 것은 없겠다 싶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상처를 주고받는 사이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거리가 있을 것 같았고, 위로와 힘을 주는 관계에서는 서로의 마음이 같다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200-201쪽_'작가의 말' 중)

무하랑 셋이 있는 단톡방을 만들고 이름까지 지었다. '파이트!'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이 구호가 우리의 시작도 알리는 거라고 했다.(180쪽)

하람이 말고도 무하, 원지까지. 이 아이들이 나아갈 세상은 어떤 어른의 비겁함도 없는,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나가도 되는,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그러니 지금까지 갖혀 있는 마음의 굴레는 여기서 끝!

'파이트!' 이제 다시 시작해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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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의 말들 -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행복
은한 지음 / 문학수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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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의말들 #은한 #문학수첩 #서평단 #서평 #책추천

해금의 말들. 은한 지음. 문학수첩. 2025.
_가장 가까이에서 만나는 행복

해금켜는 은한, 영상을 봤다. 사실 해금, 이라고 말만 들었지 이렇게 생긴 악기에 이런 음색이 나오는 줄 잘 모르고 있었다. 아, 가끔 이 비슷한 소리를 어디선가 들어봤던 것 같은데, 이게 해금이었구나, 싶었다.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기는 하다. 물론 어떻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다르겠고 또 어떤 곡조로 연주하는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내가 듣고싶은 대로 마음을 따라가며 듣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그런 마음으로 듣고싶어서, 그렇게 들린다고 말하는 것일 수도 있다.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관심이 갔다. 국문학을 전공했고, 임용고시를 준비했고. 나와 비슷한 구석이 많아 더 관심이 갔던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과정이 있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노력들을 했을 것인지, 너무 짐작이 되어 더욱 그랬을 수도 있다. 시험을 보기까지, 그 시험에 실패하고 또 시험을 보려는 마음을 먹기까지, 어떤 각오를 다져야했을지 너무도 잘 알 수 있어서. 그리고 실패 후 어떤 마음에서 자신에게 1년의 유예 시간을 주게 되었을 지도 조금 짐작이 갔다.
그런데 신기했다. 그런 과정 속에 결론이 해금이라니. 그리고 궁금했다. 해금이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거지, 싶어서.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전문적인 해금 연주자의 길로 들어설 수 있었을까, 싶어서. 결과적으로만 본다면, 마치 해금 연주자가 되기 위한 길의 과정을 거쳐 결국 이렇게 된 것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해주고 있는 그 과정은 그리 만만치 않았고, 그 과정을 안다면 선뜻 나설 수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자도 그런 모든 것을 예상하고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닐테니, 겪으면서 알게 된 많은 고충과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일 뿐. 하지만 그 과정을 써 내려가는 저자의 태도가 그리 나쁘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런 저런 일들에 대해서 별 거 아닌 것처럼(물론 그 일들을 겼던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너무도 태연하게 많은 일들에 반응하는 느낌이, 글에서 느껴졌다. 글을 읽으며 어떡해, 어떡해, 하는 마음보단 그랬구나, 와 어쩜 그런가, 하는 마음이 더 컸으니까.

"남들 눈치 보느라 아무것도 못 한다면 제 행복은 찾을 수 없겠지요."(69쪽)

이 태도가 저자가 지금의 거리 연주자, 해금 연주자가 되어 10년을 살 수 있었던 근간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대학 전공을 해야하고, 그 전공을 살려 자신의 일을 찾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마치 세상을 잘못 살고 있는 것처럼 보는 세상 사람들의 잘못된 시선에서 자기 스스로를 보호하고 다독여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큰 힘이, 이런 마음가짐이지 않을까. 그렇지! 남들 눈치 보느라 시간 다 쓸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판단 안에서 휘둘리기 시작하면 어떤 것도 제 의지대로 해 나가는 것이 불가능해질 테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삶에 대한 태도가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저자는 가만 있지 않는 사람이다. 한 가지를 하고 나면 또 다른 한 가지를 도전하고, 그 도전으로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일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그 다른 것들에 자신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역량과 능력을, 그리고 배우고 익힌 것들을 연결시켜 나간다. 하나에만 안주하지 않고 또 다른 것을 향해 힘을 쏟을 준비가 이미 마음 속에 가득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사실,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공간, 특히 거리에서 오로지 홀로 나를 보인다는 것이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쉽지 않으니, 처음 시작부터 저자는 남달랐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으며, 나라면 이렇게 못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다. 그래서 감탄하며(때론 말도 안 되는 상황과 사람들의 태도, 말에 화를 내며) 읽게 된 것 같다.

앞으로 저자의 모습을 가끔 찾아보게 될 것 같다. 지금은 어떤 곳에서 어떤 곡을 연주하고 있을지, 또 다른 어떤 도전들을 하고 있을지, 응원하는 마음으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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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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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짧은 소설. 한겨레출판. 2025.

짧은 소설. 흥미로운 장르다. 우리가 보통은 소설을 길이에 따라 장편소설, 중편소설, 단편소설로 나누는데, 이 소설을 단편소설보다도 더 짧은 소설이란 뜻일 것이다. 실제로 소설이 진짜 짧았다. 근데 이 짧은 내용이 은근히 사람의 흥미와 재미를 끌어당기는 요소가 되는 듯하다. 장편소설은 긴 호흡으로 글을 읽어나가야해서 그 긴 호흡 속에 서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또 푹 빠져들었다 나올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다양한 관계와 사건, 그걸 통해 갖게되는 다채로운 생각들 속에서 마음껏 놀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반면 단편소설은 간결하고 핵심만을 간결하게 전달해서 오히려 더 강력한 후폭풍을 가져오기도 한다. 짧다고 무시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파장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장편소설보다 이야기를 곱씹으며 되돌아 다시 읽어야하는 수도 생긴다.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소설들을 그보다도 더 '짧은' 소설이었다. 짧은 건 빠르게 금방 읽을 수 있어 좋을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기도 하다. 마치 이야기를 하다 만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 흥미로운 것이다. 뭐지, 이거 뭐라는 거지,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하면서 혹여라도 내용 중 놓치고 넘어갔던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도 하게 된다. 어떻게해서든 소설의 의도와 의미를 다 알아내겠다는 집념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냥 단순히 짧게만 쓴 소설들이 아니라, 정말 그 단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이야기 전달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느낌. 그만큼 몰입도가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지하게 각 잡고 이야기를 서술해나갔다면 그만큼 재미가 떨어졌을 것이다. 이 소설들의 묘미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쉽게 다 말해주는 것처럼, 속내를 다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면서, 그런 속내가 강렬하게 다가오게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엉뚱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작가의 말>은 진짜 작가의 말인지, 작가의 말을 빙자한 소설인지 헷갈리는 소설(?)이었다. 대부분의 책에서 작가의 말은 보통 제일 마지막에 부록처럼 나오는데, 이 책은 중간 부분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건 잘 모르겠다. 소설인지, 작가의 말인지. 분명 보통의 작가의 말과 비슷한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지만, 또 이런 소설을 썼다고 해서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이런 식인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진짜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고 있는 것인지 다 허구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글을 쓰는 주인공이라면 자꾸 작가의 모습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소설 속 서술자와 작가를 혼동하며 읽게되는 지점도 있었다. 소설책을 읽고 있지만 이렇게 알쏭달쏭해지는 책은, 오랜만이었다. 이런 게 재밌는 것이다.

짧아서 더 그런 것 같다. 이야기를 가만히 읽어 나가다 누군가 옆구리를 쿡, 찌르는 듯한 느낌의 소설들이 있었다. 앗, 하고 한순간 숨을 흡, 하고 멈추게 만드는 순간들 말이다.

이런 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아뇨, 아무것도."(81쪽_'아뇨, 아무것도' 중)

"야! 주계병(조리병) 깨워!"
그렇게 전통과 현재는, 상상과 행위는 또 한번 타협하며 명맥을 유지했다. 튀김옷을 입고 노릇하게 튀겨진 채로.(155쪽_'타협' 중)

흔한 표현으로, 빵 터졌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웃기네, 하고 말이다. 이게 진짜 짧은 소설의 묘미구나 싶었다.

바로 우리의 정체성 말입니다. 우리는 날지 '못하는' 새들이 아니라 날지 '않는' 새들입니다. 창공을 누비는 자유를 반납하고 대지의 품에 안기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죠. 자유롭지만 공허한 하늘 대신 생명의 기운이 순환하는 흙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닭이 땅에 정착한 사연은 인간에게 노예처럼 사육당했기 때문입니다.(16쪽_'날지 않는 새들의 모임' 중)

아, 이런 게 우화구나, 생각했다. 정체성을 논하다니, 그 정체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그들의 입을 통해 인간들의 세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구나, 싶었다. 어떤 삶을 선택한 것인가, 혹은 선택이 맞기는 한 것인가, 그런 모습을 저들이 이토록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결국 집단과 단체라는 것이 어떻게 그 나머지를 배척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되었다.

이러니 이 소설들이 흥미로울 수밖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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