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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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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짧은 소설. 한겨레출판. 2025.
짧은 소설. 흥미로운 장르다. 우리가 보통은 소설을 길이에 따라 장편소설, 중편소설, 단편소설로 나누는데, 이 소설을 단편소설보다도 더 짧은 소설이란 뜻일 것이다. 실제로 소설이 진짜 짧았다. 근데 이 짧은 내용이 은근히 사람의 흥미와 재미를 끌어당기는 요소가 되는 듯하다. 장편소설은 긴 호흡으로 글을 읽어나가야해서 그 긴 호흡 속에 서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또 푹 빠져들었다 나올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다양한 관계와 사건, 그걸 통해 갖게되는 다채로운 생각들 속에서 마음껏 놀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이다. 반면 단편소설은 간결하고 핵심만을 간결하게 전달해서 오히려 더 강력한 후폭풍을 가져오기도 한다. 짧다고 무시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파장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오히려 장편소설보다 이야기를 곱씹으며 되돌아 다시 읽어야하는 수도 생긴다. 더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이 소설들을 그보다도 더 '짧은' 소설이었다. 짧은 건 빠르게 금방 읽을 수 있어 좋을지는 모르지만, 생각보다 독자에게 친절하지 않기도 하다. 마치 이야기를 하다 만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 흥미로운 것이다. 뭐지, 이거 뭐라는 거지,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하면서 혹여라도 내용 중 놓치고 넘어갔던 부분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도 하게 된다. 어떻게해서든 소설의 의도와 의미를 다 알아내겠다는 집념이 생기기도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냥 단순히 짧게만 쓴 소설들이 아니라, 정말 그 단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이야기 전달의 의미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느낌. 그만큼 몰입도가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지하게 각 잡고 이야기를 서술해나갔다면 그만큼 재미가 떨어졌을 것이다. 이 소설들의 묘미는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처럼 쉽게 다 말해주는 것처럼, 속내를 다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여주면서, 그런 속내가 강렬하게 다가오게 만들었다. 어떤 면에서는 엉뚱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예를 들어, <작가의 말>은 진짜 작가의 말인지, 작가의 말을 빙자한 소설인지 헷갈리는 소설(?)이었다. 대부분의 책에서 작가의 말은 보통 제일 마지막에 부록처럼 나오는데, 이 책은 중간 부분에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이건 잘 모르겠다. 소설인지, 작가의 말인지. 분명 보통의 작가의 말과 비슷한 형식과 내용을 담고 있지만, 또 이런 소설을 썼다고 해서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니 말이다. 이런 식인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진짜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고 있는 것인지 다 허구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글을 쓰는 주인공이라면 자꾸 작가의 모습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소설 속 서술자와 작가를 혼동하며 읽게되는 지점도 있었다. 소설책을 읽고 있지만 이렇게 알쏭달쏭해지는 책은, 오랜만이었다. 이런 게 재밌는 것이다.
짧아서 더 그런 것 같다. 이야기를 가만히 읽어 나가다 누군가 옆구리를 쿡, 찌르는 듯한 느낌의 소설들이 있었다. 앗, 하고 한순간 숨을 흡, 하고 멈추게 만드는 순간들 말이다.
이런 건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아뇨, 아무것도."(81쪽_'아뇨, 아무것도' 중)
"야! 주계병(조리병) 깨워!"
그렇게 전통과 현재는, 상상과 행위는 또 한번 타협하며 명맥을 유지했다. 튀김옷을 입고 노릇하게 튀겨진 채로.(155쪽_'타협' 중)
흔한 표현으로, 빵 터졌다.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웃기네, 하고 말이다. 이게 진짜 짧은 소설의 묘미구나 싶었다.
바로 우리의 정체성 말입니다. 우리는 날지 '못하는' 새들이 아니라 날지 '않는' 새들입니다. 창공을 누비는 자유를 반납하고 대지의 품에 안기기로 스스로 선택한 것이죠. 자유롭지만 공허한 하늘 대신 생명의 기운이 순환하는 흙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닭이 땅에 정착한 사연은 인간에게 노예처럼 사육당했기 때문입니다.(16쪽_'날지 않는 새들의 모임' 중)
아, 이런 게 우화구나, 생각했다. 정체성을 논하다니, 그 정체성이라는 것을 스스로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그들의 입을 통해 인간들의 세상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구나, 싶었다. 어떤 삶을 선택한 것인가, 혹은 선택이 맞기는 한 것인가, 그런 모습을 저들이 이토록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결국 집단과 단체라는 것이 어떻게 그 나머지를 배척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되었다.
이러니 이 소설들이 흥미로울 수밖에.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