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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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을 때면 드는 생각이 있다. '작가의 내밀한 부분을 이렇게나 내가 들여다봐도 괜찮을까.' 그리고 다시, '이런 내밀함에서 나와 닿아 있는 한 면을 발견하고, 그 한 면에 기대 마음의 안정을 찾는 거지.' 하고 안심한다. 이번 책도 그런 면에서 안심이 되는 책이었다.

책을 선택할 때 책의 제목에 의미 부여를 많이 하는 편이다. 뭐든 작품의 제목이란 건 그냥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으니까. 제목에서 이 책이 담고 싶은 메시지가 함축되어 나타난다고 믿는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제목도, 부제도 모두 내 마음을 끌어당겼다.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라고 하니, 나도 이제 더 자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도 자랄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이 나이에도 더 자라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고, 나도 모르는 사이 천천히 '조금씩' 우린 자라고 있겠지 싶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거기에 '살아갈 힘'이 되어 준다니, 그리고 '사랑의 말들'이라니 그 사랑의 말을 버팀목 삼아 살아갈 힘을 얻어보고 싶다는 바람을 가져보게 만들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자신을 사랑하도록 하는 따뜻한 말들이 가득한 책이었다. 여기서 쓰인 '사랑'의 방향이 다른 이를 향하면서도 사실은 자기 자신을 향하고 있는 사랑의 말들이라 느껴졌다. 결국 나로 살아갈, 내가 살 수 있는, 다른 이와 함께 살아가게 만드는 그런 말들이라고나 할까. 스물 갓 넘은 어린 나이에 글을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부진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놓을 줄 알았다는 건, 그만큼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도 자신도 있다는 걸 뜻할 테니까. 그만큼 마음이 단단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 속에 그런 마음이 다부지게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마음이, 마음에 들었다.

한 세트라도 이기면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고, 경기에서 지면 바닥에 드러누워서 서럽게 울고, 그러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하면 금세 다시 웃고.(...) 지금 내가 아주 중요한 걸 지켜보고 있구나. 성장한다는 건 되게 멋진 일이구나.(65쪽)
_ 누군가가 힘들고 지쳐있을 때,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고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금세 다시 웃는 그 웃음을 볼 수 있도록. 슬며서 맛있는 간식을 슬쩍 건네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끔 교실에서도 별 거 아닌 작은 간식을 슬며서 손에 쥐어주면 배시시 웃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마음을 다독이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봐야겠다.

"너는 피아노를 배울 때 어렵지 않았어?"/"처음엔 저도 어려워서 많이 틀렸어요."/"틀리면 부끄럽지 않았어?"/"부끄럽지 않았어요."/"왜?"/"왜냐하면 저는 배우는 중이니까요. 원래 배울 때는요, 어려운 거예요."(97쪽)
_ 아, 하고 무릎을 쳤다. 원래 배울 땐 어려운 거지, 맞지, 했다. 부끄러움을 먼저 생각한다는 건 그만큼 주변에 더 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뜻일 터. 배움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감정이,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다. 내가 배우고 있는 중이라는 걸 스스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것도 못할 것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배울 때는 어려운 거라면, 어려울 거라고 미리 짐작해서 시도하지 않는 선택은 하지 말아야겠다.

어쩔 수 없이 아이가 보는 앞에서 귤을 입에 넣었다. 맛있다는 듯이 꼭꼭 씹었다. 손에 쥐고 있던 귤은 미지근하고 달았다. 그제야 아이는 히 웃곤 사촌 언니에게로 뛰어 갔다. 조용히 울던 사람을 조용히 웃게 해주는 존재. 아이란 그런 존재일까.(185쪽)
_ 아이들이 어려서 뭘 모를 거라는 건 어른의 착각이다. 아이는 모든 걸 다 안다. 자신이 어떻게 했을 때 어른의 마음이 달라질 수 있는지까지도 모두 다 알고 있다. 아이들은 다 알고 있지만 어른에게 모르는 척하는 것이다. 어른의 체면을 위해, 아이가 다 알고 있는 걸 어른이 모르면 체면이 서지 않을 테니까. 미지근하고 단 귤의 맛이 입 안에 도는 듯하다.

계속 하는 사람들이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나도 해볼 만하다는 걸 느낀다./그러니 다들 지금 그 자리에서 오래오래 '하던 거' 하며 살아가기를.(212-213쪽)
_ 누가 시키지도 않는데 자꾸만 뭘 하려는 사람들과 매달 만나 책으로 이야기를 나눈다. 무언가를 꾸준히 하려고 하고, 계속 한다. 가끔 서로 질문한다. 우린 왜 자꾸 하려고 할까? 이야기는 돌고 돌아, 우린 그런 사람이기 때문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런 사람들끼리라서 우린 서로를 알아보게 된 거라고. 지금까지처럼 쭉, '하던 거' 하면서 살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도 내 안에서 어떤 부분이 끝내 변하지 않을지, 그런 것들을 차분한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그런 것들이 모여 나라는 사람이 된다.(251쪽)
_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 그 사람만의 특징과 성격이 분명해지는 지점이 있다. 그럴 때 내가 그 사람을 참 잘 알고 있구나,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 누군가에게 나 또한 그런 사람이라면, 나는 그런 변하지 않는 부분들의 집합으로 '나'가 되었겠지. 그런 '나'가 좋고, 그렇게 '나'는 조금씩 자라는 거겠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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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퓨마의 나날들 - 서로 다른 두 종의 생명체가 나눈 사랑과 교감, 치유의 기록
로라 콜먼 지음, 박초월 옮김 / 푸른숲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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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조금은 강렬하단 생각을 했다. 이 강렬한 퓨마의 사진에 우선은 압도당했다고 하면 맞을 것이다. 지금껏 퓨마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가져본 적도 궁금해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사람과 퓨마 사이의 사랑과 교감이란 말에 끌렸다. 궁금했다. 과연 어떤 끌림이 서로를 연결시켜줄 수 있을까, 싶었다. 왜냐하면, 퓨마는 야생동물이란 생각이 매우 강했으니까. 무섭고 위험한 동물.
헌데 책과 함께 도착한 와이라의 엽서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강렬함보다는 순수함, 어찌보면 겁을 먹고 있는 듯도 보이고, 다른 면으로는 조금 더 친숙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무섭고 두려운 동물이란 느낌보단 더 따뜻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한편으론 귀엽기도 했다. 가만히 한참을 들여다보면 사랑스런 느낌까지도. 하지만, 내가 직접 이 동물 앞에 서게 된다면, 난 단박에 심장이 두근거릴 거고, 팔다리가 후들거릴 거고,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울상이 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공포 그 자체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절대, 난 이 파르케에 발조차 디딜 용기를 내지 못할 것이다. 애초에 봉사라는 이름으로 이 곳을 방문할 마음조차 먹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공간에서의 이야기는 너무 궁금했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물리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무척 열악한 이 곳으로 사람들을 매번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람들을 이끄는 그 힘은, 그 마음은 과연 무엇일까, 였다. 사실, 반려동물(이란 말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조금 갸우뚱하게 되지만)과 나는 거리가 멀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마음이 더 큰 것이 사실이니까. 하지만 동물에 대한 존중과 동물권에는 관심이 많아, 그들의 삶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그래서 인간의 더 큰 노력과 관심이 매우 필요하다는 것은 늘 생각하고 있기는 하다. 그래서 동물을 가족으로 대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찾는 거라는 뻔한 대답으로는 내 의문에 대한 답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을 다시 이곳으로 오지 않으면 안 되도록 하는 것일까.
이 공간에 처음 온 사람에게 하는 것이 돌보고 담당해야 하는 동물과 짝을 지어주는 거였다. 아마도 이것에 그 답이 있지 않을까. 누구와 짝이 될 것인가, 누구를 돌봐주며 누구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이 공간에서 처음 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연결이 곧 '교감'의 시작이란 생각을 했다. 결국,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만들어내는 거부할 수 없는 마음의 움직임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거겠지, 싶었다. 그래서 로라가, 또 해리가 그리고 더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기 위해 정상(?)의 삶을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이들이 과연, 자신들이 원래 있던 공간에서 정상의 삶을 살았던 것이 맞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았고 또한 현재도 그렇지 않아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오히려 이들이 동물들과 함께하는 이 공간을 정상의 삶으로 생각하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동물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란 생각을 했다. 사람이 동물을 보호하고 보살핀다고 생각하겠지만, 오히려 동물들의 보살핌으로 사람들이 힘들고 고통스런 마음을 치유받을 수 있었을 거라는 지극히 당연한 생각을 했다.
이건, 당연한 생각이 맞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짝이 되는 순간 서로가 서로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고 그 의미 속에서 서로는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우리가 사람이라고해서 일방적으로 사람이 동물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생각이 잘못이고, 그렇기 때문에 동물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주고 있는 그 마음을 우리가 알아채기까지는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뿐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그 마음을 알아채기에 충분한 시간을 보냈고, 그 시간들이 있었기에 동물들 곁에 머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기후, 환경, 동물, 지구, 그리고 위기, 멸종, 죽음, 위험, 파괴 등. 이런 단어들을 언급하고 흥분해 이야기하기 이전에, 그냥 이 책을 조용히 읽어내려가면서 로라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읽었고, 그렇게 읽으면서 마음이 벅차고 따뜻해지며, 때론 뭉클하고 감동적이었으니까. 속상하고 위태로우며 아프고 괴롭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 꿋꿋하게 다시 새로운 다음을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단단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으니까. 로라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절대, 약하고 여린 마음으로는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없으며 어느 순간이라도 강한 결단과 믿음 없이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킬 수 없을 거라는 걸 너무 잘 알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이 책을 쉽게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그리고 끝까지 이들을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도 무척 가슴 벅차게! 그런 책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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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휴먼스 랜드 창비청소년문학 120
김정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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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지구와 그 지구에 살고 있는 사람과 동식물들. 이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해법이 당장 만들어지지 못한다면, 이 소설에서처럼 지구는, 사람이 없는 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밀려온다. 아니, 사람이 살 수 없는 땅, 사람이 살면 절대 안 되는 땅.
지구에서 사람을 내쫓고 사람들은 떠돌이 신세가 될 것이다. 그렇게 떠도는 사람들은 그제서야 지구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살아가게 되겠지. 지구라는 공간이 지금껏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던 건지, 어떤 공간을 만들어 주었던 건지를 그제서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는 예전에 지구에 살았었지, 하는 기억을 떠올리며 지구에 돌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억을 갖고 있는 세대는 점점 사라질 것이고, 그 이후 세대에게 지구는 그저, 새로운 세상을 위한 욕망과 욕심의 좋은 도구로서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다시 지구는 또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고, 그 이용의 대가로 생명이 또 죽어가는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지구를 있는 그대로 놔두려하지 않는구나. 아직 지구에서 숨쉬고 살 수 있을 때도 그저 자신의 삶을 위해 지구는 아랑곳하지 않더니, 사람이 살면 안 되는 지구가 되었을 때에도 지구를 또다시 이용하려고만 하고 있구나. 사람의 욕심은 왜 이렇게도 이기적일까, 하는 생각. 결국 그런 욕심이 지금의 이런 미래를 상상하도록 만들었을 건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은 제 욕심을 채우는 것만 생각하고 있으니, 이 생각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싶었다.
요즘 들어 하루에 한번 이상씩은 꼭 하게 되는 말이 기후 위기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지금의 기후와 날씨, 우리의 지구와 환경은 크게 훼손되어 있고, 그 훼손의 정도가 무척 심각한 수준에까지 이른 것 같다. 이제 위기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미 파괴가 되어, 더 이상 회복은 꿈꿀 수도 없고 지금으로서는 파괴되고 있는 속도만이라도 줄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내지는 몸부림 정도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만큼 심각한데, 그런 심각성에 대한 인식을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 맞는지는 의문이다. 여러 책을 읽고,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고, 생각하고 토의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지만, 늘 맞닥뜨리는 부분은, 나 개인의 혼자 힘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건, 읽고 이야기하고 더 많은 아이들이 이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아 주는 정도이지 않을까. (아이들이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추가해야겠다.)
그래도 이 소설을 읽으며 내내 절망만 하지 않을 수 있었던 지점이 있었다. 그 첫 번째가, 그래도 사람은 생각하고 노력하고 실천하고자 한다는 것. 누군가는 이기적인 욕심으로 또다시 훼손하려 들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고 끈질기게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금 지구다운 모습을 갖출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과정을 멈추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의 손에 의해 시작된 일은 어쨌든 다시 사람에 의해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 맞을 거니까. 그리고 두 번째가, 지구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 사람이 다 내쫓겨야만 할 정도로 사람에 의해 망가지고 있던 지구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되면서 더이상 위험하지 않은 곳이 되었고, 이제는 사람이 와서 살아도 되는 따이 되었다는 것에, 조금 안심하기고 했다. (한편으로는 사람만 없으면 지구는 안전할텐데 싶기도 했고.)
그래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노 휴먼스 랜드'의 삭막하고 어두운 느낌이었다면, 다 읽은 후에는 '휴먼스 랜드'의 온화하고 따스한 느낌이 들었다. 이 따스함이 다시 지구를 뜨겁게 만들지 않을 수 있도록, 사람인 우리! 정신 좀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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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가장 위험한 곳, 집 앤드 앤솔러지
전건우 외 지음 / &(앤드)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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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집에 있다. 그렇다면 지금 가장 위험한 곳에 있다는 뜻이다. 지금 위험이 어느 곳에서 불쑥 나에게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함으로 내 공간이 잠식당한다고 생각하면, 그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악몽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1. 공간에서 도망가기 2. 정면돌파하여 무섭지 않은 곳으로 만들기 3. 공포를 애써 외면해보기 4. 악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기. 과연 이 4가지 방법 중 더 나은 것이 있을까.
어떤 것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공포는 늘 우리 삶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때가 되면 얼마든지 나에게 그 실체를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흔한 말로 병도 제일 약한 부분으로 나타난다고 하지 않나. 아마 공포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누가 살았던 집>에서도 결국 모든 것을 다 잃고 마지막으로 내몰렸을 때 공포의 집이 나타났으며, <죽은 집>에서도 가장 약한 부류의 사람들에게로 집의 공포가 찾아왔고, <반송 사유>에서도 그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는 마지막 선택지에 내몰렸던 그 집이 공포가 되었으며, <그렇게 살아간다>에서도 참을 수 없는 긴 시간에서 그 끝을 원하는 마음이 공포가 되어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을 덮쳤다.

이 책에 실린 4편의 소설은 어찌 보면 공포를 이야기하는 듯 싶지만, 사실은 사람의 마음을 이야기 소설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란 결국 감정인 것이고 그 감정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지.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것들에 대한 공포, 무서움, 불안함 등의 힘든 감정을 갖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모두 다양한 이유들에서 기인한다. 각자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그 다양함에 사람들은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렇게 부여된 이름과 감정이 곧 공포가 되는 것이고, 그 공포에서 발생하는 불안을 또다시 어떻게 이겨내야 할 것인지를 숙제로 안고 또다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이 소설들은 그 숙제를 찾아가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이 소설들 속의 인물들에겐 어떤 이유들이 그런 감정을 만들어냈던 것일까. 그들에게는 잘 살고싶다는 갈망, 살아야한다는 간절함, 그리고 제대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갈망, 간절함, 바람을 타고 공포는 가장 안전해야하는 곳은 집으로 찾아 들어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말을 내뱉을 때가 있다. '집에 가고 싶다.' 그건 그만큼 지금이 무척 고단하고 힘들다는 반증이고, 그래서 집은 모든 힘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집을 원하는 것이고 편안하게 두 다리를 뻗어 누울 수 있는 공간을 원하는 것이다. 그래서 집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휴식과 안정을 확보해줄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인물들에게는 더이상 집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집이 아니게 되었다. 생각만해도 소름이 돋고, 근처에도 가고 싶지 않은, 피하고 도망가고 싶은 집이 되었다.
이들에게 위험한 집을 만들어준 공포가 마치 살아 숨쉬며 가장 약한 사람들을 찾아 가장 약한 쪽으로 파고들어와 자리잡은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방법으로도 방어할 수 없도록,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잃도록 만들었다. 결국 공포가 상실을 만들고, 그 상실로 또다시 공포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더 소름이 돋는 것은, 그런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최후의 곳이 집이어야 하는데, 그런 집을 더이상 갈 수 없는 위험한 곳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른 곳이 존재하지 않는, 대안 없는 싸움에서 이들이 절대 불리할 수밖에 없도록.

비현실적이고 실체 없는 존재에 대한 공포나 두려움보다, 사람들의 가장 약한 곳으로 파고들어오는 공포라는 감정이 더 무서웠다. 언제 어느때 나의 가장 약한 부분으로 어떻게 공포가 찾아올 지 알 수 없어 더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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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의 최후 북멘토 그림책 14
난주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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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엄마다. 나도 아이들에게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한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도 이런 생각을 했을까?

<잔소리의 최후>라는 제목만 보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과연 그 최후는 어떻게 될까? 너무 궁금했다. 나도 곧잘 아이들에게 잔소리(인줄도 모르고 하게 되는 잔소리)를 하니, 나의 최후일 수도 있지 않을까. '최후'라는 단어가 뭔가 무겁고 기분을 서늘하게 만들기도 했다. 분명, 아이가 엄마의 잔소리를 듣다듣다 최후에 어떻게 되었을 거라는, 혹은 그 잔소리가 퍼지고 퍼져 나중에 결국 엄마와 아이에게 어떻게 되었을 거라는, 뭔가 그런 불길한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도 그림책인데, 아이들과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인데, 설마 험한 이야기가 담기기야 했을까, 싶은 마음으로(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을 듬뿍 담아) 읽기 시작했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안심이 되는 그림책이었다. 이건 어쩌면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엄마의 입장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또 한편으로는 이 아이의 생각과 마음이 정말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은 좀 뭉클했다. 보통은 잔소리 듣기 싫어, 하거나 혹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무시의 방법을 쓰거나일텐데, 이 아이는 어쩜 되돌려주기 위한 노력을 이토록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 노력이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엄마를 쫓아다니는 이 아이를 나도 함께 쫓아다닐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어, 그런데 좀 귀찮네.
엄마를 계속 봐야 하잖아.
놀고 싶은데......

그러다 이 문장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이건, 잔소리하는 엄마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니까. 계속 보고, 신경쓰고, 걱정하고, 관심을 가져야만 할 수 있는 거니까. 이건 해본 사람만 아는 건데, 싶었다. 뭔가 (잔소리하는) 내 마음을 이해받은 것 같기도 해 심장이 살짝 쿵, 했다. 감동이었다. 누군가 아주 사소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감정을 알아채주고 공감해주면 순간 긴장이 풀리며 떨리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계속 봐야 하'는 마음, 계속 보게 되는 마음, 보고 싶은 마음이라는 걸 이렇게 알려주다니. 이때부터는 그대로 푹 빠져 그림책을 읽게 됐다. 그리고 이제, 정말 궁금했던 그 '최후'가 나올 테니 더욱 궁금한 마음으로 한장 한장 소중하게 넘겼다.

엄마도 나를 계속 지켜본 거네.
다칠까 봐, 나쁜 일 생길까 봐!

이 그림책에서 제일 좋은 페이지를 찾았다. 이 그림책 전체 중에서 제일 좋은 부분을 고르라고 한다면, 나는 이 부분이다.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매 순간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지켜보고 잔소리했던 엄마의 모습들. 아이에게 이해받은 엄마의 잔소리라고나 할까. 엄마의 마음을 알아준 아이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이 장면에서 잔잔하고 애틋한 배경 음악이 어디선가 들리는 듯도 했고, 그동안 아이를 키우면서 있었던 많은 장면들이 스쳐 지나가며 괜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이 그림책은, 엄마의 필독서 목록에 넣어야 할 듯!

이런 <잔소리의 최후>라면 아무래도 잔소리 좀 더 해도 될 듯하다. 이 세상의 아이들이 이 얘기를 듣는다면 격하게 거부하겠지만. 그런 상상을 하며 혼자 웃었다. 이런 상상마저도 즐거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덧-
그런데, 반대로 아이의 잔소리가 더 늘었다면? 아이가 엄마 못지 않게 계속 잔소리를 늘려간다면, 이건 좋은 걸까? 엄마의 잔소리를 이해받은 것처럼, 아이의 잔소리도 들어줘야 할 것 같은데... 왠지 이 생각이 들면서, 잔소리가 좋은 건가 아닌가에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내가 하는 것은 좋지만, 또 들으려고 하니 좀... 난처해지는 생각에, 이런 생각을 하는 내 자신이 또 웃기기도 했다. 이 그림책, 재밌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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