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같은 나무 하나쯤은
강재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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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카메라가 향한 곳에 있는 그 어떤 생명체에게라도 폭력이 되지 않게 사진 찍기를 즐기자고. 나무를 꺾거나 풀을 뽑아내고 찍은 사진으로 진정 즐겁거나 행복하고 성취감을 느낀다면 그건 잘못된 사진임을 알아차리자.(216-217쪽)

저자가 갖고 있는 태도를 잘 보여주는 문장이라고 생각했다. 자연, 나무를 향하고 있는 저자의 마음은 어떤 경우라도 해를 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듯하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강하게 들었던 생각이기도 하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그리고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그 영향을 고맙게, 온몸으로 받아 안아야한다는 것. 인간이 자연을 인간의 관점으로 다루어서는 안 된다는 것. 이것이 일평생 좋아하는 마음으로 자연을 사진에 담아내고자 했던 저자의 삶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감동적이었다. 이런 마음 정도는 되어야 자연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만 같아 나 자신이 작게 느껴지기도 했다.

산과 바다, 줄 중 하나를 고른다면 어디를 고를래?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고민도 하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산! 산이 좋은 이유는 딱 하나, 나무가 좋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은 것은 참을 수 없지만, 나무가 빼곡하고 무성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그런 산을 가까이 두고, 사계절 변화를 때때로 살피며 살 수 있는 지금이 참 좋다(가고 싶을 때 5분 안에 언제라도 산의 흙을 밟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그래서 이 책이 더 반가웠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책의 글보다 사진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글을 읽을 때보다 사진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어쩔 수 없었다. 글보다 사진이 주는 감동이 더 컸다. 사실, 평소 사진을 좋아하지도 잘 찍지도 않는다.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생각을 가진 적도 없었다. 나 스스로도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니까. 하지만 꼭 산에 가게 되면, 아름다운 자연을 보게 되면 손에 든 휴대폰을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내 휴대폰에는 나무, 산, 하늘, 구름 사진이 많다. 가끔 새와 곤충의 동영상까지. 이런 나이다보니, 이 책의 사진들이 더욱 와 닿았다.

모처럼 나선 숲길에서 만난 어떤 나무를 자신의 나무로 정해 보면 어떨까. 자주 찾는 곳이면 더 좋겠다. 마음에 드는 나무에 자신의 이름을 붙여 주거나 그게 조금 쑥스러우면 그냥 친구로 삼는 것 말이다.(176쪽)

그리고나서 결심했다. 쑥스럽지만, 나만 알고 있는 내 나무를 정해야겠다고. 친구 나무에게 내 이름을 지어주고 불러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는 나무를 정하면 좋을까, 책을 읽으면서도 우리 동네 나무, 우리집 뒷산의 나무들을 눈으로 그려봤다. 내일이든 모레든, 친구 나무를 찾아 동네 마실을 설렁설렁 다녀와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입춘이 금방 지났고 곧 우수가 올 테니, 봄을 준비하는 나무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코로 감각할 수 있도록 다녀와야겠다는 생각 포함해서.

다시 돌아가자. 마을 앞 서낭당을 지키는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 나 혼자 잘 사는 게 아니라 마을이 함께 잘 살기를 바라는 버팀목. 묵묵히 할 일을 하며 자신을 낮추는 '언눔'이 되자. 과도한 욕심을 내려놓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실천하자. 그것이 거짓과 폭력으로 내 배를 불리거나 일확천금을 기대하는 것보다 '소원 성취'를 이루는 훨씬 빠른 길이다.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위해.(174쪽)

올해 삶의 목표로 삼아도 좋을 글을 발견했다. 언눔, 배려하는 마음, 다 함께 잘 사는 세상. 한 그루의 나무가 되자고, 오늘 일기에 적어야겠다. 나무의 마음으로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감쌀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올해의 다짐을 적어봐야겠다.

가끔 마음이 퍽퍽해질 때 이 책의 사진을 들춰봐야겠다. 나무가 주는 기운을 사진으로 받아 안고, 마음을 촉촉하게 가꿔나갈 수 있도록. 올해 초, 딱 필요한 책을 읽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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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좋은 동시 2023
안도현 외 지음, 홍성지 그림 / 상상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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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가 좋다. 시를 좋아하지만 요새는 머리가 굳었는지, 시가 참 어렵다. 점점 어려워지겠지, 싶은 마음으로 쉬운 시를 찾는 건 아니다. 시를 좋아하는 마음따라 동시도 이미 좋아진 지 오래니까. 잠시 외국에 머물고 있을 때 '동시마중'을 알게 되었다. 그 동시마중을 구독하고 싶어 얼마나 마음이 조급해졌는지. 귀국하자마자 2년 구독을 했으니까. 그리고 때때로 시 필사를 하며 동시 필사도 함께 했었다. 그리고 이렇게 좋은 동시를 모아 좋은 시집을 보니, 괜히 마음이 뿌듯하다. 동시를 사랑하는 어른 독자가 있음을, 시인들도 알고 있을지. 동시를 통해 여전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기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어른 독자가 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을 살짝 가져본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온라인으로만 아이들을 만나야했던 때, 딱딱한 전달사항 외에 내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뭐가 있을까 고민했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동시였다. 내가 좋아하는 걸로 아이들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침마다 동시를 하나씩 적어 보내주었다. '오늘의 시'라는 타이틀로 매일 적어주었다. 아이들의 아주 작은 반응에도 크게 마음이 흔들렸던 기억이 새록새록. 수업에서도 동시는 자주 수업의 재료가 된다. 동시만의 재치와 유머, 그리고 뜬금없는 구석에서의 감동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되나보다. 아이들이 진지하게 동시를 해석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 괜히 내가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런 면에서, 나는 좋은 소통의 자료, 수업의 자료를 하나 얻었다. 그래서 더 기분이 좋다.

이 시집을 보면, 그동안 잘 알고 있던 시인의 이름도 보이지만 잘 모르던 시인의 이름도 눈에 들어온다. '책머리에'에 소개되고 있는 말처럼, 우리 동시에 대한 사랑이 많은 시인들을 통해 지속된다는 것이 나도 참, 좋다. 오래도록 동시 근처에서 얼쩡거릴 수 있으려면 다양하고 많은 동시가 계속 발표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래야 앞으로도 쭉, 동시들을 쏙쏙 골라 읽고 필사하고, 이야기 나주며 동시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
눈에 들어오는 시 몇 편을 필사했다. 정말, 이런 마음이라면 우리 아이들과도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없지 않을까. 뭔가 심장을 쿵, 내리누르는 구석이 여기저기에서 보였다. 이래서 동시를 읽지, 싶어지는 부분들이었다.

하지만 엄마,/내가 그 애를 때리면/그 애가 아프잖아(14쪽_고영민 '친구' 중)
그게 숲을 이루는/착한 일이었다는 것도 까먹어요(29쪽_김성민 '착한 일은 그렇게 하는 거니까요' 중)
이제야 깨닫습니다/사랑은 니가 필요합니다(64쪽_신민규 '사랑이란' 중)
밤새 내린 눈이 어쩜 무척 섭섭해/다시는 우리 마을을/찾아오고 싶지 않을 것 같다(90쪽_장동이 '걱정이다' 중)
"왜 잘못 없는 사람들이 다치고 아프고 죽는 거예요?"(100쪽_조인정 '밥을 먹어요' 중)

자칫, 동시는 아이들만 읽는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음을 알려면, 어른들도 동시를 열심히 읽어야 한다. 동시에 담아낸 그 마음을 함께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좋은 동시가 오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으며 따뜻하게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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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내 인생 도넛문고 7
윤해연 지음 / 다른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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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하얀 바탕에 레인보우의 알록달록한 색이 글씨에 입혀져 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글씨체도 예뻤다.

'길벗체'
이 표지에 쓴 글씨체는 길벗체입니다. 무지개 깃발을 처음 디자인한 '길버트 베이커'의 뜻을 잇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를 위한 '벗'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한글 최초로 전면 색상을 적용한 완성형 서체입니다.(출처: rainbowfoundation.co.kr)

어쩐지. 예쁜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

레즈비언 부부, 이다의 두 엄마 난다 씨와 온다 씨,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 보니 씨와 다월 씨, 그리고 우연. 이다와 이다의 친구인 유진과 지우. 이 소설을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어쩌면 이 소설은 이 모든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다양하고 다채로운 삶에 대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르다는 건 다양성을 의미해. 우리 모두가 한쪽 방향으로 달리면 정말 재미없잖아. 다 다른 방향으로 달려 보자는 거지. 난 이다의 부모님이 다른 방향을 향해서 달리는 분들이라고 생각해. 뭐가 어려워. 다주 단순하잖아?(143-144쪽)

각자가 선택한 각 방향으로 달려나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인생이지. 암, 그렇지! 우리 지우가 참 똑똑하네, 싶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우리는 혹시 경주마인 건 아닐까. 주변이나 옆을 보지도 못한 채 내 앞으로 남아있는 선 안의 길만을 따라 달려야 하는 경주마. 그래서 그 길 아닌 다른 길이 존재하고 있음을, 멈추거나 혹은 돌아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러다보니 내 길이 올바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못하는 고정되고 편협한 사고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지. 혹여라도 내가 그런 시선을 갖고 세상을 바라보려하지는 않을지, 스스로 경계해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오히려 당사자의 이야기를 직접 그려내려 하지 않아 더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다와 같은 청소년기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많아지고, 그 고민에 대해 어설픈 어른의 조언이나 충고를 늘어놓으려는 거였다면, 오히려 이 소설이 더 우리 사회의 편견을 대변하는 소설이 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다를 둘러싼 상황과 환경 속에서 스스로 성 정체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를 판단하고, 특히 이에 대해 다른 이에게 용기있게(물론 조금 떨리기는 했지만) 말할 줄 안다는 점이 무척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앞으로도 어떤 시선과 관점으로 이 모든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근데 어쩌냐? 난 내 정체성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싶지 않아."(142쪽)

이다의 이 말이 갖고 있는 의미가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순간 우리 사회도 사람들의 성을 둘로만 나누어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던 태도에서 벗어나 성에 대한 공개 여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변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될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마다 우리가 지금까지 갖고 있던 생각이 잘못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나마 사람들에게 알려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에 대한 이다의 명쾌한 답변. 어른들보다 낫다는 생각과 이다가 참 잘 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기특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 사회는 과연 어떤 답변을 내놓을까.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분명 그 사회에 속한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의 생각을 단순히 한 가지로만 규정해놓으려는 사회적 편견을 내려놓을 수 있기만 해도, 우리 사회가 좀 더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될 것 같다. 그러면, 진짜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다'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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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셋 2024
송지영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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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었다. 특히 소설에 마음을 빼앗겼다. 각 소설의 마지막 결말에서 깜짝 놀라기도 했다. 다시 여러번 반복해 앞뒤 이야기를 확인하기도 했다. 내가 이해한 것이 맞나, 맞게 이해했나. 충격적이기도 했고. 딱 지금의 우리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고 있는 것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더 현장감 있게 이야기를 따라갔던 것 같다.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결국, 우리네 삶이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의무감과 책임감, 하지만 그 안에서의 어려움과 힘듦. 외면하고 싶고 숨고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 모든 것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게 진짜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대놓고 그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그것이 어쩌면 사람의 도리, 양심. 이런 단어로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그래서 더 인물들의 감정에 공감할 수 있었다.

매미 소리가 멈추면, 이라고 강선숙은 생각했다. 매미 소리가 멈추면. 네가 기억하는 집에 살던 두 사람은 죽었다는 이야기를.(...) 일정한 간격으로 도돌이표처럼 재생되는 매미 소리는 윤정화가 있는 독일까지 끝을 모르고 울려 퍼지고 있었다./겨울까지./겨울이 아닌 계절까지 강선숙의 발걸음을 쫓아올 소리였다.(43쪽_'마땅하고 옳은 일'(송지영) 중)

여름 뜨겁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떠올렸다. 지금은 겨울이고. 겨울까지 울려 퍼지고 있을 그 매미 소리가, 내내 귀를 따갑게 하겠지. 그 따가움이 사실은 마음을, 심장을 쪼아대는 소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쉽게 그 매미 소리가 멈추지 않을 것 같고, 또 반대로 그 매미 소리가 조금은 더 따라다니며 강선숙을 붙들어줘도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선배는 다시 고갤 끄덕거렸고 뭔가 고민하는 듯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 다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짜깁기한 것은 자신만의 글이 될 수 없지만 꾸며 쓰는 건 다르지 않냐고. 거짓말에도 진실이, 그리고 진심이 깃들지 않느냐고./"무엇이든 그게 다 현진 씨 얘기지."(72쪽_'재채기'(성수진) 중)

숨길 수 없는 것. 참아지지 않는 것. 그게 '재채기'다. 감추고 싶지만 결국엔 들키고 마는 것. 사람 마음도, 진심도 그렇게 감춰지지 않는 것이겠구나 싶었다. 어떤 거짓으로 꾸며 써도 누군가의 눈엔 그저 그 안에 얇게 펼쳐져 있는 진실이 보이기도 하는 법. 어쩌면 다른 이들에게는 쉽게 보이는 것이 정작 자기 스스로에게는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잘 숨겼다고 생각하겠지. 그래도 결국, 큰 소리로 시원하게 재채기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분명 그러기까지의 과정이 있었기에 가능했겠지만.

따지고 보면 기사는 내가 이곳까지 오는 동안 떠올렸던 말들을 대신 해준 게 아닌가. 그리고 나는 송주에게서 들었어야 한 말을 해버린 셈이었는데. 어쨌거나 내가 내 입으로 했던 말 때문에 왜 이렇게 화가 치미는 건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아 참을 수가 없었다.(111쪽_'기다리는 마음'(정회웅) 중)

가만히 보면 너무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처지에서 생각하고 말하다보면 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오히려 내가 객관적으로 보이게 된다. 물론, 그게 쉽지 않아서 문제지만. 그리고 서두르지 않는 마음 속에서 결국 알아채게 되는 마음이 있다. 그걸 너무 늦게 않게 알게 되었구나, 싶었다.

덧-
머리가 굳었나보다. 폭넓지 못하거나. 시가 어렵게 다가왔다. 지금 내 마음 상태가 그런가. 조급하고 긴장되고 다급한 건지, 천천히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시를 읽으며 자꾸 내가 읽혔다. 심호흡을 하고,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읽기!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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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영 케어러와 홈 닥터, 각자도생 사회에서 상호의존의 세계를 상상하다
조기현.홍종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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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세상을 한번 휩쓸고 지나간 이후 가장 관심이 가는 단어가 '돌봄'이었다. 세상이 험해지고 어려워질수록 가장 취약한 부분에서 문제는 가장 먼저 나타나는 법이니까. 그런 측면에서 '돌봄'이 우리 사회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가장 어려운 지점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코로나19의 시대가 지났다고 하지만, 우리는 안다. 절대 그 이전의 시대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것을. 그 이유는, 어느 부분이 어렵고 힘들고 문제가 발생하는 지점인지를 너무 명확하게 알아버렸기 때문에, 문제의 한복판으로 다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이제는 직진. 앞을 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찾아 나아가는 수밖에. 그렇다면, 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편집자와 두 저자가 나누는 대화 속에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문제 의식이 있었다. 결국 돌봄이라는 건 잘 사는 문제, 잘 죽는 문제와 직결된다는 느낌이었다. '돌봄'의 개념을 확대하여 생각해보면, 결국은 삶과 죽음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가 누군가를 돌본다는 것은 단지 아프고 병들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돌보는 주체이면서 또한 돌봄을 받고 있는 대상이기도 하다는 인식이 가장 중요할 것 같다. 그러니, 돌봄을 남의 이야기라고 가볍게 넘기면 안 된다는 거다.
다만, 지금 그 돌봄의 의무와 책임, 내지는 상황으로 인하여 나의 주체적인 삶에 영향을 받는가의 여부가 이 '돌봄'을 얼마만큼 가깝게 받아들일 것인지의 문제와 닿아있는 듯하다. 이는 경제적인 면뿐만 아니라 자존감 혹은 자아실현 등에 있어서의 관점과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을 것이다. 결국, 돌봄으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 '나'를 돌아볼 여유가 있는가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늘 부딪히는 현실적인 문제가 가족이다. 가족이라는 의무의 테두리와 책임이 결국 돌봄의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 부담시키는 악순환의 첫 시작일 듯. 특히 여기에는 청년의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 노인의 문제로까지 이어진다고 봤을 때, 결국 가족이라는 이름 하나에 지워지는 무게가 얼마나 큰 가를 실감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뭔데? 속 답답할 정도로 수없이 질문을 던져보지만, 답이 선뜻 나오지는 않는다. 주고받는 대화를 속에 다양한 대안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그 대안들이 우리 사회에 딱 적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가에 대해서는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웠다. 저자들의 대화에서도 어떤 방향이 이상적인지는 알고 있지만,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또다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계속 나오고 있음을, 그래서 그 많은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되지 않는 이상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맞다. 명료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어렵다. 또한 이런 대화의 목적은 어떤 정책이나 사업을 실현시키려는 데 있지 않으니까. 이들의 대화를 가만히 쫓아가며 든 생각은, 결국 우리 사회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상황을 인지하고 인식하는 것부터가 중요하다는 생각. 그리고 그런 생각에 대해 사람들은 모여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것, 느끼는 것, 필요한 것, 어려운 것, 그리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고, 어떻게 해 나갈 수 있으며, 누구의 도움과 관심, 배려가 필요하고, 그 안에서 우리 사회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과 개인이 감당해야 할 부분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 그래서 이런 생각이 확산되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않는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만큼은 할 수 있도록 실제로 움직일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이 참 의미있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사회에서 '관계' 없이는 살아가기 어려우니까. 어떤 식으로든 우린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라고 한다면, 우리의 삶은 있는 그대로 '돌봄'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돌봄'을 우리의 가장 가까운 곳으로 끌고 와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우선순위에 밀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알고, 말하고, 움직여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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