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침 없는 동동시 박성우의 동시로 첫 읽기 1
박성우 지음, 최미란 그림 / 창비교육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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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몇 장 넘기면서 생각했다. 아, 이거 아이들한테 시켜봐야지. 받침 없는 동시를 써보라고 활동을 시켜야겠다, 하는 마음이 단박에 들었다. 그리고 어떤 기발하고 재채있는 아이디어들이 속속 나올까, 기대도 되고 생각만으로도 벌써 재밌어졌다. 이런 책을 접하면 자꾸 이와 관련한 활동을 하고싶어진다. 나만 재밌으면 곤란하지만, 생각보다 아이들은 이런 발상의 전환을 즐긴다. 그렇게 즐기면서 동시에, 시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내가 꼭 바라는 일이다.

<다리미>

다가오지 마
다가서지 마
나, 다리미야!

얼마나 간단명료하면서도 재밌는 발상인지. 이건 생활 경고까지 함께 겸하고 있으니 일상생활에서도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혼자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도 이런 시를 지으면 장난을 치고 싶어졌다. 어떤 말장난이 가능할까, 어떤 언어유희를 써주면 좋을까, 궁리하게 됐다. 특히 받침이 없는 글자들로만 구성해서 시를 지어야한다고 하니, 자꾸만 더 받침 있는 글자들만 떠오른다. 정신 바짝 차리고 잘 생각해봐야 한다.

근데, 동시로 아니고 '동동시'는 또 뭘까? 찾아보니,

'동동시'는 어린이다운 언어 감각과 상상력, 놀이가 만나는 유년 동시를 말합니다. 아이들의 눈과 입으로 동동 들어와 동동 놀고 싶게 하는 재미난 동시입니다.

라고 설명이 달려 있다. 아, 그런 거구나. 그렇다. '동동'이라고 하면 뭔가 더 톡톡 튀고 귀엽고 사랑그런 느낌이 더 강하다. 뭔가 동동 튕겨지기도 할 것 같고, 동동 구를 것 같기도 하다. 동동 달려나갈 것 같기도 하고 동동 동그렇게 둥글둥글 어우러질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느낌을 담은 거구나, 참 잘 어울린다, 싶다. 동동시. 동시의 더 귀여운 버전이 동동시 같다.
그런 동동시의 첫 번째 시리즈가 <받침 없는 동동시>인 것은 찰떡인 것 같다. 아직 받침에 대한 감각이 쉽지 않은 아이들에게는 받침 없이도 얼마든지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이렇게 시가 쓰여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좋은 계기가 것이니까. 그래서 기발한 아이디어들이 자꾸 눈에 더 띈다.

<개미>

개미야,

오니까

허리
펴고
쉬어!

그리고 어쩜, 잃게 사랑스러울 수가 있을까. 그냥 단순히 받침 없는 시만이 아니라, 이 시 안에 따뜻함과 포근함을 모두 갖고 있는 느낌이다. 비가 오니까 개미 잠시 허리 펴고 쉬라니, 이런 마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었을까. 시인의 능력에 놀라고, 이런 시를 읽게 될 아이들의 해맑음이 사랑스럽다.

난 아이도 아닌데 이런 시들에 자꾸 감동을 받는다. 물론, 꼭 아이만 감동하란 시는 아니니까. 어른인 나도 이런 시들을 보며 마음이 움직이는 걸 느낀다. 잘 모르는 사이 가슴이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 든다. 이런 느낌 때문에 동시를, 동동시를 읽는 것이겠지. 이 동동시의 다음 시리즈도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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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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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소설을 읽으며 옛날 드라마 <다모>가 생각 안 날 수가 없다. 어쩌면 이 드라마가 없었다면 '다모'에 대해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이 드라마에서의 다모도 무척 다부지고 당돌하며, 어떤 일에도 주저함이 없는 단단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마치 이 소설 속 다모 설이처럼.
왜 이렇게 겁이 없을까. 만약 비슷한 상황이라면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고 입을 열 수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설이는 왜 이렇게 무서운 것도 없이 앞만 보고 달려드는 것일까. 오빠의 무덤을 찾기 위해서라는 것만으로는, 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것만으로는 이유가 되지 않는, 설이만의 저돌적인 면이 분명 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런 저돌적인 면이 사건을 하나씩 파헤쳐나가면서 진가를 발휘하는 듯하다. 물론, 설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쉽게 사건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고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서히 설이가 한 발짝씩 깊이 개입하면서 분명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누구도 알아채지 못한 비밀이 조금씩 드러난다는 것은, 이전의 이야기와는 다른 양상의 전개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 그렇다면 과연, 이 이후의 이야기는 또 어떤 양상으로 펼쳐지게 될 것인지.
온전하게 이야기를 몽땅 다 읽지 못하고 절반 쯤 읽다 만 상황이라, 마음이 더 급하다. 설이가 뒤쫓는 상황에서 설이에게 또 어떤 위험 상황에 노출되게 될 것인지. 어쩌면 사건의 진짜를 발견하고 실망하게 될 수도 있다. 아니면 자신의 신념이 맞아들어갈 수도 있다.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설이는 쉽게 흔들리지 않고 진실의 방향으로 나갈 것이다. 그럴 줄 아는 인물이란 생각이 든다.
지금 설이의 모습은 누가 시켜서 억지로의 느낌이 전혀 없다. 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며, 자신이 결정한 것에 대해 혹은 믿음에 대해 흔들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때론 그런 노력이 자신을 상처내고 다치게 하지만, 그런 것쯤은 감수할 수 있다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어떤 것에도 제 소신을 굽히지 않게 위해 최선을 다한다. 꼭 무얼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의 이 순간에 집중하는 것일 뿐. 이것이 설이가 자꾸만 더 깊이 사건 안으로 들어가는 이유일 것이다.
이 시대는 조선시대이다. 그리고 여성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재도 그렇지만, 과거는 더욱 남녀의 구분이 뚜렷했다. 그런 시대에 남자보다 더 활을 잘 쏘고, 통찰력이 있으며 겁도 없이 나선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위해서는 잔꾀도 쓰고 위험도 무릅쓴다. 궁금하고 호기심이 생기면 무작정 달려들기도 한다. 이런 주인공의 모습은 여성의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는 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제목이 <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절반을 읽었어도 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짐작이 잘 안 간다. 천주교 박해에 따른 희생된 이들의 이름을 말하는 것일지, 그렇다면 그런 이름들의 낙원이란 것은 또 무엇일까. 어떤 모습을 낙원이란 말하려는 것일까 싶다. 소설의 후반부를 모르고 이 사건의 전말과 또 진실이 무엇인지 결말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단정지을 수 없는 궁금증만 점점 더 커질 뿐이다. 어떻게든지 후반부의 이야기를 잃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아, 궁금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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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뵈르 박사의 상담 일지 - 햄스터와 저주 인형 반올림 63
마리 오드 뮈라이유 지음, 윤예니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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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부제가 '햄스터와 저주 인형'이어서 혹시 공포물인가, 싶은 생각도 했다. '저주'라는 단어가 만들어내는 인상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다보니 그쪽과는 전혀 달랐다. 오히려 부제보다는 제목에 더 집중하는 편이 이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소뵈르Sauveur는 주인공 이름이면서 '구원자'라는 보통명사이기도 하다. 이를 이용한 오해나 말장난이 자주 등장한다.(7쪽)

박사 이름의 뜻이 제일 첫 페이지에 설명되어 있다. 구원자. 상담이 누군가에게는 그 인생을 구원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진짜 구원이 가능하기는 할까. 하지만 구원까지는 아니어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소뵈르 박사를 찾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SFR 통신사가 서비스를 재개하는 순간, 문자 메시지가 끊임없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난 여기서 뭐 하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놀랍게도 소뵈르의 눈앞에 펼쳐졌다.(312-313쪽)

그리고 마지막까지도 소뵈르 박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위한 사람들의 연락이 끊이지 않는 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유에 소뵈르 박사는 이곳에 다시 돌아와야 했을 것이고 그것을 제대로 알아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이의 마음을 구원한다고는 하지만 소뵈르 박자 자신도 많은 상처와 아픔, 쓰린 과거를 안고 있다. 그리고 그런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또 다른 사건으로 나타나며 본인 스스로도 무척 힘든 시간을 견뎌야하는 상황이 됐다. 마치 소뵈르 박사를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의 상황.
그리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를 찾기 위해, 자신의 처음 시작점으로 간 것이다. 어찌 보면 모든 문제는 다 처음의 시작점에 그 해결의 실마리가 있을 수 있다. 무언가가 발생했다면 분명 그 발생의 이유가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쫓다보면 결국 그 시작의 중요한 지점에서, 그 동안 놓치고 있던 것을 발견하게 되곤 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마음들에는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자해, 인종차별, 성정체성, 우울 등 우리가 쉽게 지나치면 안 되는 문제들이 넓게 나타나고 있다. 이 문제들의 해결을 소뵈르 박사가 모두 해줄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의 문제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다가가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시작을 찾아주기 위한, 도움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역할을 해내기 위해 소뵈르 박사가 매일 정신없이 바쁘다. 조금씩이나마 소뵈르 박사가 좀 덜 바빠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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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시블의 소녀 - 제1회 위즈덤하우스판타지문학상 수상작 텍스트T 13
전훌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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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꿈의 관계를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흔히 현실이 진짜고 꿈은 가짜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겠다. 꿈이 진짜, 사실은 현실이라고 생각하는 삶은 또 다른 꿈일 뿐. 100년 동안 꾸게 되는 거부된 꿈을 잠시 꾸고, 진짜인 꿈의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렇다면 이 100년의 현실을 어떤 마음으로 살아내면 되는 것일까. 혹은, 어떤 마음으로 꿈의 세계로 돌아가면 되는 것일까.

"거부된 꿈은 언제 시작되려는 걸까? 너무 오래 기다려서 이젠 지치려고 해. 그 꿈을 꾸기 전까진 지치면 안 되는데."
"뭐?"
"거부된 꿈 말이야. 검은 폭풍. 기억 안 나?"
지운이가 의아한 얼굴로 쳐다봤다.(...)
"그래, 그게 이 꿈이야. 현실이라는 꿈. 한밤중에 괴물이 나타나서 목을 조르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꿈이지."(254-255쪽)

현실이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을 때가 있다. 어떤 것에도 흥미를 찾을 수 없고 그저 하루하루 자신을 스스로 가두며 사는 아이들이 있다. 마치 있는 듯 없는 듯, 누구와도 어떤 것에도 관심을 기울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생활. 그런 생활에 점점 지쳐가며 고립되기를, 혼자되기를 바라는 아이들이 있다. 꼭 아이들만이 아닐 수도 있다. 어른도 마찬가지. 밖으로 나가기보다는 안으로 숨는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래도저래도 우리의 현실이란 삶은 고통이 수반되는 삶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이라는 이름의 '거부된 꿈'을 깨운 건 죽음이었다. 죽음은 깊은 잠에 드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 같기도 했다.(256쪽)

그렇다면, 이런 현실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견뎌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쩌면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과해 우리가 진짜 가야하는 세계로 잘 넘어가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세계에 대한 간절함이 이쪽과 저쪽의 꿈의 세계를 넘나들게 만들고, 그 꿈의 세계를 꼭 지켜내야할 이유와 의지를 만들어주게 되는 것이다. 꿈은 분명 또 다른 현실이고, 그 현실은 다시 꿈으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강력한 힘을 만들어 주니까. 무엇이 진짜고 가짜고를 따지는 것이 이젠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 나에게 무엇이 가장 소중하고 간절히 지켜내야 하는 것인가를 알아채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의 죽음보다 더 깊은 진실을 찾아야 해요. 황제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래야 '살아 있음'을 견딜 수 있으니까요. 그 진실을 찾기 위해 폐하는 가장 소중한 걸 희생해야 할지도 모릅니다."(158쪽)

그게 바로, 진실. 진실을 찾기 위한 과정의 '살아 있음'을 견디는 삶. 이 삶을 잘 견뎌야 진짜 진실의 가치를 찾을 수 있고, 그 가치를 통해 연결된 세계에서의 자신이 해야할 일과 가야할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그 일과 길이 될 것인가는 스스로 찾는 수밖에. 그것을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결국 꿈이지 않을까. 꿈을 통해 이어지는 꿈과 꿈의 경계의 경계, 그 경계의 넘나듦 속에 그럼에도 잃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것은 무척 중요할 것이다. 자신의 존재와 삶이 어떤 것으로부터 비롯되었고 또한 어떤 세계의 시작이 될 수 있는지도 스스로 알아내야 할 것이다.

오랜만에 판타지문학을 경험했다. 소설을 읽으며 살짝 눈이 조금 더 떠지고 힘을 주게 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무르시블의 세계와 그 세계를 지탱하고 또 지켜내기 위한 과정, 그 속에서 드라마가 이어나가는 현실과 꿈, 꿈이 또 다른 꿈의 세계와 연결되며 그 과정에서 견뎌야하는 살아 있음의 삶에 대한 가치까지. 환상적이고 흥미로우면서도 계속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간들을 곱씹어 생각해보게 만드는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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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역사적인 도서관 - 우리 근현대사의 무대가 된 30개 도서관 이야기, 제30회 한국 출판 평론상 출판평론 부문 우수상 수상작
백창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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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아! 이런 책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감격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도서관과 관련한 이만큼의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도서관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 한 권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만큼 방대하고 전문적이며 또 흥미로운 책은 드물 것 같다. 한 부분씩을 읽어 나가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우리의 도서관은 곧 우리의 역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내내 하게 됐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함께 울고 웃고, 숨쉬고 살아온 모든 것이 다 도서관에 담겨 있었다. 도서관이 그저 책으로만 그치지 않고 우리나라의 운명과 결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새롭게 깨달았다. 단순히 생각했을 때는 도서관은 오히려 나라 혹은 정치와는 크게 상관없이 존재하고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기록이라는 것은, 특히 과거를 기록하고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사사로운 목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도서관의 역사는 오히려 너무도 반대였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다. 도서관이어서 더욱 모든 역사의 굴곡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받았어야 했다는 걸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그래서 도서관의 역사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할 것 같다.
우리나라는 무척 험난한 역사를 갖고 있다. 특히 일제 강점기, 전쟁, 그리고 군부 독재에 심지어는 종교까지. 어느 한 순간도 순조롭고 평온하게 지내온 시기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굴곡이 무척 심한 역사다. 그런 역사에서 고통받고 피해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또한 그런 역사에서 우리가 다시 일어나 움직일 수 있도록, 목소리를 모으고 함께 할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해준 공간 또한 도서관이었다. 힘들게 그 자리를 버티면서도 늘 학생과 시민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며 마지막까지도 힘을 보태준 것이다. 어쩌면 도서관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역사를 다시 바꾸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낼 수 있지 않았을까. 도서관이 단순히 책의 보관소만이 아님을 확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한 것이다.

도서관은 어떤 공간이어야 할까.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개방적인 곳이어야 할 것이고, 시민들이 어떤 것도 모두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많은 장서를 통해 지금까지의 기록이 모두 모일 수 있는 학술적인 역할도 담당해야 할 것이고 누구나 쉽게 찾아갈 수 있는 위치상의 조건도 무척 중요할 것이다.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목적으로 이용되지 않을 수 있도록 독립적이기도 해야 할 것이고, 또한 공부를 위한 공간이 아닌 책을 위한 공간이어야 할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도서관만큼 쉽게 숨어들 수 있고 또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곳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힘들고 생각이 복잡할 때, 혼자 조용한 공간에서 무언가에 골똘하고 싶을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이 도서관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열람을 위한 공간이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이든, 다 좋다고 생각한다. 독서실의 역할을 하는 도서관이 특이한 것이라면 우리나라는 그런 특이함을 함께 갖고 있음을 특수성으로 삼아도 좋지 않을까.
나의 학창시절도 그런 칸막이 시립 도서관과 함께였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아이들 도서관으로 향한다. 학교에 또는 마을에 그런 공간이 있다는, 언제라도 향할 수 있는 곳이 있어 그 공간에 자신을 맡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서관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에도 시선이 가겠지. 이런 저런 책들을 펼쳐 읽어보고 되겠지, 그리고 그렇게 책이 주는 행복감을 알게 되겠지, 싶은 마음인 것이다. 책에 둘러싸인 공간에 앉아 한참 시간을 보낼 때의 기분을 알게 되면 다시 도서관을 찾게 될 테니까. 그리고 그 도서관에서 또 새로운 이야기와 미래를, 그리고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나가게 되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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