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나인경 지음 / 허블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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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나인경 장편소설. 허블. 2025.

기억, 감정, 그리고 사랑. 이 소설을 읽으며 따오른 단어들이다.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이기도 하면서 읽는 내내 생각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었던 단어들이다. 처음엔 혹시 SF인가, 하는 생각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읽으면서는 사람과 그 사람의 심리를 보여주는 소설인가, 했다. 하지만 읽어나가면서 결론을 내렸다. 이 소설은, 사랑 소설이라고. 결국 우리가 끝까지 믿고 잃지 말아야 하는 것,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라고. 그래서 읽는 내내 뭔가 불안하고 불편하고, 또 걱정되고 안타까운 감정들이,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서 한결 편안해졌다.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랑은, 전염성이 강한 감정입니다. 거대한 스토리지에 저장된 불특정 다수의 기억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 말이죠. 부지불식간에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353쪽)

그러니까 말이다. 전명성이 강해 어떤 것으로도 이 감정을 막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기술적으로 막으려고 해도 막아지지 않는 것이다. 강력한 어떤 무기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의 감정이고 사랑인 것이다. 이 정도로 실토를 했다면, 그 다음은 그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무엇이 있을까.
내내 마음을 불편하고 힘들게 했던 것이 사실은, 이 사랑을 잃고 찾기 위해 헤매고 다녔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머리의 기억은 사라졌어도 그 기억을 만들었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감정을 소거한 기억이 온전한 기억이 되지 않는 건, 모든 기억에는 감정이 없을 수 없으며, 때로 기억은 감정을 떠올리기 위한 장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감정 없이 남은 기억만으로는 기억이라고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가끔 잊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잊기 위해 노력할 때도 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이 잊어야지 하면 더 기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될수록 감정은 더 커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 모든 기억과 감정이 하나가 되어 다시 '나'가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나'가 되기 위한 과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안'과 '정한'이 각자의 삶에서 무언가 해소되지 않은 갈증을 늘 끌어안고 살았던 것은, 어쩌면 온전한 '나'가 되지 못한 그 과정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든 것으부터 도망치고 싶거나 혹은 간절하고 애타게 찾으려 하는 마음은 사실은,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둘'이 또 '하나'가 되어야만 진정한 '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감정으로 기억해야 하는데, 그 감정의 기억을 잃고 서로 헤매고만 있었던 것일 지도.
이 둘이 부러 무엇을 한 것은 없다. 그저 만났을 뿐이고, 서로를 한번에 알아봤을 뿐이고, 비로소 사랑의 감정 기억했을 뿐이다. 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만으로도 모든 시스템과 작동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힘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로서 충분했다.

두 사람은 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나갔다. 오직 이 순간에만 가능한 영원의 이야기를 시작했다.(376쪽)

소설을 읽기 전, 제목의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소설을 다 읽고 알았다.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내는 영원의 말, 그 이야기는 끝없이 계속 이어지겠구나. 그러니 안심해도 되겠구나, 하고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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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김소영 지음 / 사계절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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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어른. 김소영 에세이. 사계절출판사. 2024.

어른은 또 어떤 어른이어야 하는 걸까. 이 책을 읽으며 내내 들었던 질문이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이들에게 동일하게 던지고 싶은 질문이기도 하다. 과연, 이 세상의 어린이를 위해 어른은, 어떤 어른이어야 하는 걸까?

인류가 존재한 이래 어린이는 언제나 '있었습니다'. 누구나 한때 어린이였고, 누군가는 지금 어린이이니까요. 저는 과감하게, 인류의 역사를 어린이의 역사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127쪽)

그러니까 말이다. 어린이는 늘 있었고, 우리도 모두 어린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 세상의 어린이를 싹 지워놓고 생각하는 듯한 어른들의 행태에 인상을 쓰게 되는 것이다. 요즘 자주하는 생각 중 하나다. 어른은 모두 어린이를 경험하고 어른이 된 것인데도, 왜 어린이의 시기를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걸까. 어린이의 생각을 왜 모르는 걸까. 어린이의 존재와 그 가치를 왜 인지하지 못하는 걸까.
가장 솔직하고 가장 지혜로우며 가장 맑은 생각이 어린이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어린이의 이야기에 답이 들어 있고 그 답을 따라가다보면 어른이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결과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는 알지만 어른은 모르는, 그런 생각의 길을 어린이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면, 어린이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하고 값진 것인지. 어른들은 여전히 지금도 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시간이 지나면 크고 생각이 달라진다. 어린이의 생각과 청소년의 생각, 그리고 어른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누군가의 생각이 꼭 맞는 것이니 그 생각을 따라야한다고 한다면, 결코 어른의 생각이 정답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어린이의 낮은 시선과 솔직한 판단이 가장 정직한 답을 향해 갈 수 있는 지름길일 수 있겠다는 생각. 하지만 이런 생각을 너무 많은 사람들은 잊고 지내는 것이다.

"그런데 슬픔을 왜 나눠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이상했어요. 슬픔을 나누면 슬픈 사람이 많아지잖아요."(217쪽)

그러니까 말이다. 슬픔을 왜 나눠야 한다고 하는지를 어린이는 궁금해 한다. 그리고 묻는다. 혹시 어른들은 이런 궁금증을 언제 가져봤을까. 그리고 언제 이 궁금증의 답을 생각해봤을까. 어쩌면, 어른은 이런 질문조차, 궁금증조차 품어보지 못하고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런 고민 없이 마치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남들 앞에 서 있기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어린이의 마음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그런 어른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아이들과 '노 키즈 존'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종종 나눈다. 과연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궁금해서, 그리고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까 이야기나누고 싶어서. 일부는 어린이의 편에 그리고 또 일부는 어른의 편에 서서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과정에서 결국, 어른의 잘못이 제일 크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곧 어른이 될 이 아이들의 이 생각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나도 그런 생각에 어울리는 어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한 번 더 하게 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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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지음, 이미영 옮김 / 책깃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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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 클레어 풀리 장편소설/이미영 옮김. 창비교육. 2025.

이 정도라면 진짜, 웬만해선 죽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최고령의 삶인지 않을까. 처음의 그 긴장이나 걱정은 온데간데 없고, 이제는 무엇이든 제대로 해보지 않고는 못 버틸 것 같은 열의만 남았다. 분명 문제 투성이인데, 이 문제 투성이를 이들은 최고령답게 척척 해결해 나간다. 거침도 없다. 그러니 계속 이렇게 나아가는 수밖에. 이런 클럽이라면 나도 끼고 싶다.

맙소사. 대체 이 사람들은 지금까지 그녀 없이 어떻게 지내왔을까? 그리고 그녀는 어쩌다 사람들이 비상시에 도움을 청하는 부류의 여자가 된 걸까?(312쪽)

대프니만 있다면 뭐든 다 해결해줄 것 같다. 여기저기서 대프니를 찾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니까. 헌데 가만히 보면, 그럴 수밖에 없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속이거나 감추려들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기보다는 앞을 향해 나가는 쪽이다. 그리고 이미 대프니는 이 사교 클럽을 통해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했다. 지기와의 나름의 거래도 그랬고, 아트와의 에피소드도 마찬가지였다. 리디아를 변신시키는 과정에서도 조금의 걱정도 없었다. 그저 자신의 생각대고 해 나가면 그 뿐. 어떤 것에도 다른 목적을 끼워넣지 않았다. 그러니, 대프니만 있다면 무엇이든 문제 해결! 지금까지의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는 것처럼 대프니는 이제 계속 바빠질 예정인 거다.

대프니는 생각했다.(...) 친구 사귀기, 이건 다섯 살짜리 아이도 할 수 있다고!(26쪽)
이건 전부 시간 낭비였다. 현재도 즐기지 못하고 과거도 인정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겠는가?(69쪽)

하지만 이미 대프니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애초에 시작부터 이미 결심이 서 있었다. 다 알고 있었고, 대프니의 생각 안에서 이미 결론이 나 있었다. 현재를 즐겨야 하고, 과거도 인정해야 하고, 그래야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이 문장이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지금이 아니고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대프니는 이 생각을 그대로 실천으로 옮기기만 했을 뿐이다. 아주 충실하게. 그랬더니, '지금'이 된 것이다!

솔직히, 소설의 처음 시작이 죽음이어서 충격이었다. 이렇게 금방 사람이 죽다니. 결국 이 사고가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 시작이었고, 이 시작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죽음이 오히려 사람들을 살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는 것. 관계로 이어져 내일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는 것이 아이러니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죽음과 사고를 이용하려는 사람들과 그 안에서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돌파하려는 이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도 느껴졌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그 동안 어떤 마음과 생각을 꼭꼭 숨겨놓고 살아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다 가 아니고 그 안에 남들에게 보이지 않으려는 비밀스런 이야기가 잔뜩 감춰져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게도 여겨졌다. 누구나 겉으로는 다른 이의 삶이 더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실제 그 안을 들여다보면 나와 다른 식의 문제를 안고 있을 뿐 더 낫거나 모자란 것 조차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을 확인하기 위한 사교 클럽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함께 모임으로써 자신을 조금 더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될 수 있는 클럽.

저렇게 나이 많은 사람이 저토록 가볍게 중앙분리대를 뛰어넘을 수 있을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18쪽)

이렇게 되니, 중앙분리대를 뛰어넘은 나이 많은 사람이 누구인지 너무 궁금해졌다. 이 이후에 또 어떤 일들이 벌어졌길래 저 나이 많은 사람은 훌쩍 뛰어넘어 도만친 것일까. <웬만해선 죽을 수 없는 최고령 사교 클럽>이니 더 이상 누군가가 죽을 수는 없을 것 같고, 이들 중 어떤 누가 지금의 이 상황을 또 다시 돌파하려는 것일지, 이후의 이야기가 더욱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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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투라 CULTURA 2025.05 - Vol.131, 어린이문화
작가 편집부 지음 / 작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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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쿨투라 CULTURA. Vol.131(2025 05). 도서출판 작가.
_Culture & Art Magazine

잡지를 얼마만에 읽어보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다. 생각해보면 대학시절 때까지도 곧잘 잡지를 보곤 했었는데 말이다. 가장 최근에는 영화나 혹은 시사 잡지를 읽기는 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리고 꽤 시간이 지난 예전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다보니 이런 잡지의 형태를 지닌 물성의 종이책을 손에 쥐어보는 느낌 자체도 신기하면서 재밌었다고나 할까. 이런 잡지는 괜히 책 한쪽을 말아쥐고 얼굴을 갸웃한 채 여유로운 자세로 읽어줘야 어울릴 것 같다. 각잡고 읽으면 그 맛이 떨어지는, 그런 느낌. 사설이 길어지는 걸 보니, 오랜만에 만난 잡지가 반갑고 또 살짝 흥분한 듯하다. 잡지에 실린 광고까지 꼼꼼하게 봤을 정도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잡지가 무겁지 않고 내 작은 손안에 쏙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손안의 잡지를 넘기고 또 넘겨도 끝없이 신비한 이야기가 쏟아지는 그런 환상적인 세상을 꿈꾸었습니다.(51쪽_'새로운 미래를 만나게 해준 어린이잡지'(손정순) 중)

어린시절은 집에 만화 잡지 한 권만 있어도 오랜 시간 지치지 않게 신이 나던 시절이었다. <보물섬>. 이걸 안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뿌듯해지는 기분이 들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친구였다. 그때의 기억을 살짝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해봤다. 과연 요즘 아이들은 어떤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까. 당연히 많은 미디어매체와 함께 하겠지 싶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말에 동의한다.

이내 사서 선생님은 밝은 표정으로 "아무리 책을 안 읽는 분위기라도 읽을 아이들은 다 읽어요. 저기 보세요."라고 말했다. 책 읽는 아이들 모습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그렇게 듬직하고 예뻐 보일 수 없었다.(44쪽_'책이 있는 어린이날'(함영연) 중)

그러니까 말이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 중에도 진짜 책을 좋아하고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해 안절부절 못하는 아이도 있다. 그 정도로 책을 읽는 건 시대가 지났다고 사라지는 즐거움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있어 소중한 친구 중 분명 책도 잡지도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런 즐거움을 계속 줄 수 있도록 동시로 동요도, 책도 그리고 잡지도 꾸준히 우리 곁에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도 아주 많이 말이다. 언젠가부터 어린이 동화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초등학생들이나 읽는 수준 낮은 책, 이란 선입견을 아직도 아이들은 갖고 있다. 내가 만나는 중학생들에게 동화나 그림책을 내밀면 늘 듣는 말. 하지만 그 이야기를 직접 접해보지 않으면 제 맛을 알아내기 어렵다. 그렇게 아이들과 동화부터 읽어나가기도 한다. 그럴 때 드는 생각은, 이런 동화, 동요, 동시를 어른들까지도 함께 즐겼으면 좋겠다는 것. 이 이야기들에 우리가 쉽게 흘려 넘겼던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치가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걸, 이미 어른이 된 우리는 너무 금방 까먹는다. 그게 참 안타깝다. 이 좋은 것을 말이다.

쿨투라를 처음 넘기고 만난 미술 작품에 눈이 커지고 깜짝 놀랐다. 앗, 그제야 이 작품들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너무 실제같아서 조금은 섬뜩한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론 뮤익이 만든 작품들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무얼까. '극사실조각의 안티 리얼리즘: 론 뮤익이 만든 실재'란 제목이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감상자가 보자마자 숨이 멎을 만큼 극사실주의 묘사로 완벽히 마감된 뮤익이 조각이 '표상'이라면, 그가 작업실에서 혼자 점토로 빚으며 포착하려 애쓰는 것은 '깊이'라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16쪽)

어쩌면 작가는 조각을 만드는 그 긴 시간 자체를 하나의 현실적 삶의 가치를 빚어내는 예술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깊은 곳에서 조용히 자신의 작업에 몰입하고 몰두하는 작가의 삶이 곧 작품인 것. 그렇게 하나씩 쌓아올리다보니 많은 작품을 선보이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만큼만으로도 충분히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를 다 담아낸 것은 아닐지.

김지하 타계 3주기. 김지하 시인이 남긴 작품과 가치와 사상을 제대로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의 '추모 좌담'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모든 이야기를 다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조금은 어렵기도 했다. 시인의 작품들을 꼼꼼하게 살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과 작품들을 감당하기에 내가 갖고 있는 시대적 인식이나 가치관이 제대로인지를 반성하게 했다. '타는 목마름으로' 외의 작품들에 대해 다양한 측면으로의 접근을 해보지 못했다면, 이제라도 차근히 그 결을 따라가볼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이 평생토록 하고싶었던 이야기가 분명 작품들에 남아있을 것이니, 이 좌담을 계기로 하나씩 살펴보는 경험을 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외에 드라마, 영화, 여행 등 다양한 문화적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는 이 잡지가, 참 귀하고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우리의 문화적 이야기를 모두 담아내고 있는 것을 보며 생각했다. 그렇지, 잡지란 이런 거지. 다채로운 키워드를 가지고 각가지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는 것. 깊이 파고들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도 좋을 이야기들의 총집합. 마치 이 한 권을 가지고 여러 권의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그 시작점. 그러면서 지금의 시대와 문화적 현상에 대한 관점을 세워볼 수 있도록, 안목을 제공해주는 역할까지. 지금까지 잡지가 갖고 있는 장점에 대해 간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혼자 생각했다. 잡지가 갖고 있는 순기능을 제대로 경험했다는 느낌. 이제부터라도 다시 알아가보는 시도를 해도 좋을 듯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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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이름들의 낙원
허주은 지음, 유혜인 옮김 / 창비교육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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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를 읽었을 때는 다모 설이 파헤쳐나가는 사건 수사가 흥미롭기만 했다. 과연 진짜 범인은 누구고 어떤 이유에서 이런 일들을 벌이는 것인지, 그 과정을 설이 하나하나 집요하게 확인해나가는 과정이 긴장감을 주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며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기만 했었다. 하지만 이 소설을 다 읽고나서는 다른 감정이 더 크게 자리잡았다. 바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것. 무엇이 살아가는 동력이 되어 작용하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 그리고 어떤 것을 향해 우린 나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고민.
우리는 모두 살아간다. 목적을 분명히 하며 살아가기도 하고 혹은 잘 모르겠는 삶에서 자신을 내맡기고 그저 나아가는 방향대로 최선을 다 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어느 쪽이 되었든, 우린 분명 살아가고 있으며, 그런 삶이 자연스레 다시 '나'가 된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일이 되어가는 방향과 그 과정에서의 영향이 고스란히 나의 삶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나'는 내가 살아가는 것일까 혹은 그저 '나'로 살가지는 것일까.

수사관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다면서, 바로 너처럼 탐구심 강하고 투지로 가득한 사람이 훌륭한 수사관이 된다고 하셨지.(475쪽)

꼬시는 말이라고 해도 이 말에 자신을 다시 들여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특히나 자신의 삶에 있어 어떤 확신을 갖고 행했다기 보단 이끌림에 의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어느 한 방향을 향하고 있게 된다면 더욱, 내가 가는 방향에 대해 나 자신에게 어떻게 힘을 줄 것인가를 잘 판단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설은, 이미 자신의 어느 곳에 힘을 주어 앞으로 향해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스스로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애초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을 수도 있지만 다만, 쉽게 발견할 수 없었을 뿐. 하지만 그 발견을 위해 설은 스스로 자신을 사지로 내몰았고 그 과정에서 남들과 다른 쉽지 않은 선택과 행동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들이 지금의 설이가 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타고난 것이든 스스로 노력한 것이든, 분명한 건 설이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잃지 않으려 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강씨 부인의 생사는 끝내 알아내지 못했다. 그녀가 이끌던 동정녀 공동체 회원들은 모두 배교를 거부해 감옥에서 맞아 죽거나 참수형, 교수형, 또는 사약을 받는 사사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실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결코 비겁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472쪽)

이 소설은 천주교 박해를 주요 소재로 삼고 있다. 이런 사건들을 마주할 때마다 드는 생각 또한, 어떠한 소신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도 위험하고, 또 숭고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나의 삶을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나가고자 할 때 우리가 잃지 말아야하는 것이 무엇인가도 생각해보게 한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또 어떤 것에 굴복하지 말아야하는 것인가를 우린 때때로 판단하게 되고, 그런 판단이 자신의 삶 전체를 흔들게 될 때에도 과연 우린 우리의 소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

가만히 보면, 이 소설의 인물들은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인 이들이었다. 자칫 자신이 믿는 가치가 가까운 이를 해치는 결과를 만들게 되더라도 감히 그 신념이 훼손되지 않는 쪽의 선택을 했던 것이다. 쉽게 기울지 않기 위해 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애써 자신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의 결과가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것과도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지켜낼 수 있었던 가치들이 분명 그 안에 담겨 있었다. 그래서 이 소설이 단순히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의 해결 과정만을 따라가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자신의 삶을 바로 세워나갈 것인가를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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