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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나인경 지음 / 허블 / 2025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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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나인경 장편소설. 허블. 2025.
기억, 감정, 그리고 사랑. 이 소설을 읽으며 따오른 단어들이다.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이기도 하면서 읽는 내내 생각을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었던 단어들이다. 처음엔 혹시 SF인가, 하는 생각으로 읽어나가기 시작했고, 읽으면서는 사람과 그 사람의 심리를 보여주는 소설인가, 했다. 하지만 읽어나가면서 결론을 내렸다. 이 소설은, 사랑 소설이라고. 결국 우리가 끝까지 믿고 잃지 말아야 하는 것,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소설이라고. 그래서 읽는 내내 뭔가 불안하고 불편하고, 또 걱정되고 안타까운 감정들이, 이렇게 결론을 내리면서 한결 편안해졌다.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사랑은, 전염성이 강한 감정입니다. 거대한 스토리지에 저장된 불특정 다수의 기억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 말이죠. 부지불식간에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353쪽)
그러니까 말이다. 전명성이 강해 어떤 것으로도 이 감정을 막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기술적으로 막으려고 해도 막아지지 않는 것이다. 강력한 어떤 무기로도 막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람의 감정이고 사랑인 것이다. 이 정도로 실토를 했다면, 그 다음은 그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무엇이 있을까.
내내 마음을 불편하고 힘들게 했던 것이 사실은, 이 사랑을 잃고 찾기 위해 헤매고 다녔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머리의 기억은 사라졌어도 그 기억을 만들었던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감정을 소거한 기억이 온전한 기억이 되지 않는 건, 모든 기억에는 감정이 없을 수 없으며, 때로 기억은 감정을 떠올리기 위한 장치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감정 없이 남은 기억만으로는 기억이라고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가끔 잊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다. 잊기 위해 노력할 때도 있다. 하지만 신기한 것이 잊어야지 하면 더 기억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될수록 감정은 더 커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 모든 기억과 감정이 하나가 되어 다시 '나'가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모든 것이 사실은 '나'가 되기 위한 과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안'과 '정한'이 각자의 삶에서 무언가 해소되지 않은 갈증을 늘 끌어안고 살았던 것은, 어쩌면 온전한 '나'가 되지 못한 그 과정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모든 것으부터 도망치고 싶거나 혹은 간절하고 애타게 찾으려 하는 마음은 사실은,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둘'이 또 '하나'가 되어야만 진정한 '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감정으로 기억해야 하는데, 그 감정의 기억을 잃고 서로 헤매고만 있었던 것일 지도.
이 둘이 부러 무엇을 한 것은 없다. 그저 만났을 뿐이고, 서로를 한번에 알아봤을 뿐이고, 비로소 사랑의 감정 기억했을 뿐이다. 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만으로도 모든 시스템과 작동을 무너뜨릴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힘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고, 이것만으로도 이 소설을 읽어야 할 이유로서 충분했다.
두 사람은 호수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나갔다. 오직 이 순간에만 가능한 영원의 이야기를 시작했다.(376쪽)
소설을 읽기 전, 제목의 의미가 무엇일지 궁금했다. <도시의 소문과 영원의 말>. 소설을 다 읽고 알았다. 앞으로 이들이 만들어내는 영원의 말, 그 이야기는 끝없이 계속 이어지겠구나. 그러니 안심해도 되겠구나, 하고 말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