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린개가왔다 #정이현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0기 #서평단 #서평 #책추천

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산문. 한겨레출판. 2025.

바둑이 루돌이에 대한 책. 이 책의 마지막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이 책의 저자 인세 일부는 전남 구례의 유기견 구조 단체인 산수유독의 활동을 위해 기부됩니다.'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책이다. 이런 책의 인세가 아주 아주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다. 그리고 이 책을 가만히 읽다보면, 나도? 라는 생각도 생긴다. 지금의 나는, 작가의 루돌이와의 삶 이전과 비슷하니까.
가만히 서 있는 개를 봐도 무섭다. 산책 중 만나기라도 하면 옆으로 비켜 조심히 걷는다. 혹여나 개의 심기를 건드이게 될까봐 걱정하며 눈치를 본다. 누군가의 집에 방문할 때 혹시라도 개가 있다면, 대놓고 티는 내지 않지만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선뜻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경우는 없다. 쓰다듬기? 당연히 불가능이다. 왜 이런 내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상태다. 분명, 어린시절 개를 키우려는 시도도 있었고, 그런 개를 먼저 떠나보낸 기억도 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이리 많은 것에 겁쟁이가 됐을까. 헌데,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보니, 이런 겁쟁이에게도 희망은 있겠구나 싶다. 이런 마음이 들 정도라면, 이 책의 효과는 제대로다.

"루돌이는 내 거라고! 공식 서류가 증명하잖아!"(190쪽)

공식 서류가 증명한 작가의 개? 물론 그런 의도를 쓴 말은 아닐 것이다. 진짜 '엄마'가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작가의 의도는 분명하니까. 다만 반려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늘 걸리는 지점 중 하나가, 주인? 누구 거? 이런 개념이다. 자식도 다르지 않다. 자기 자식이라고 부모의 것인 것처럼 마음대로 자식을 휘두르려는 점도 없지 않으니까. 그런 점에서라면 다 매한가지인 것 같다. 누구의 것이 어디있나. 다 각자의 존엄으로 존재할 뿐이지. 다만, 보호의 의무를 해야할 보호자의 역할이 있을 뿐이지.
그런 면에서, 작가는 착하고 참 좋은 보호자다. 식물도 동물도 생명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부터, 어떤 생명이라도 끝까지 책임져야한다는 각오를 단단히 하고 '감당'할 줄 아니, 이런 보호자라면 기꺼이 마음을 놓아도 좋은 것이다. 게다가 모른다면 알기 위해 노력하고 공부하는 자세까지. 작가다우면서도 생명을 대하는 마음이 남다르구나 싶어 더 애정이 간다. 그래서 그런 엄마를 둔 루돌이가 참 행복하겠다는, 루돌이는 참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나는 용기를 내어 축 처진 바둑이에게 손을 뻗었다. 머리를 손끝으로 한번 쓰다듬어보았다. 그것이 녀석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직접적 접촉이었다. 바둑이의 꼬리가 천천히 흔들렸다. 낯선 장소에서 이 아이가 우리를 의지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70쪽)

'접촉'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그냥 곁에 있다는 것과, 그런 곁에서 어떤 접촉을 통해 체온을 나눈다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간에도 마찬가지일테지만 반려 동물과의 관계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여러 번 환경의 변화를 겪고 또 낯선 이들과의 시작이 어려웠던 어린 개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이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작가의 마음을 바둑이도 알았던 것이 아닐까. 아직은 서로 서먹하고 어색하지만, 그래도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은 바둑이도 알아챈 것이겠지. 쓰다듬는 작은 행위 안에서도 지켜주겠다는 마음의 신호가 전달된 것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개는 아무것도 감추지 않고 위장하지 않으니까. 그 절대 순수의 세계를 이제 나도 알게 되었다. 나의 '어린 개' 덕분에.(222쪽)

개는 감추지 않고 위장하지 않는다는 거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이런 개의 모습은 작가가 내밀어 준 작은 손길에 대한 '어린 개'의 답일 것이다. 언제까지라도 그 손길에 있는 그대로 답하겠다는 마음의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마음 따뜻해지고 몽글몽글해지는 지점이다.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이런 표현을 대놓고 받고 있는 작가가 말이다. 이런 솔직한 표현을 대놓고 받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은 매순간 충분히 행복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 것이다. 물론 산책길에서 마주치게 될 빌런만 없다면 말이다.

그동안 내가 개 없이 살아온 '그저 보통의 세계'는 사실 더없는 환대의 세계였음을 알았다. 많은 여성 견주가 이 비슷한 일들을 경험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폭력의 뒤끝은 길고 상처는 잘 아물지 않는다.(140-141쪽)

이 세상은 약자가 너무 많은 폭력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되어 있다. 이유도 모른 채 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흔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똑같이 폭력으로 대응할 수 없으니 더 억울하게 당할 수밖에. 폭력을 가하는 것이 힘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일까. 어떤 것이 진짜 힘인지 모르는 이들의 생각을 바로잡아 줄 좋은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들을 한방 먹여주고 싶은 마음도 살짝 드니 말이다.

그럼에도 아직은 이런 '어린 개'와 같은 존재가 더 많다. 그래서 여전히 아름답고 가슴 뭉클하며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때 구해서 이런 날이 오네요.
봉사자의 댓글을 읽으며 눈물을 닦았다.(186쪽)

나도 같이 눈물을 닦았다. 이런 마음이 오래, 더 멀리 퍼져나갔으면 좋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가씨와 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가씨와밤 #기욤뮈소 #밝은세상 #서평단 #서평 #책추천 #소설추천 #그후에 #베스트셀러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아가씨와 밤. 기욤 뮈소 장편소설/양영란 옮김. 밝은세상. 2025.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생각해봤다. 단연, '사랑'이었다. 사랑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가의 차이만 있을 뿐, 이들이 간직하고 또 말하고 싶었던 것, 그리고 간절하게 지키고 싶었던 것은 모두 다, 사랑이었다.
사랑을 무엇이라고 하면 좋을까. 어떤 모습이나 형태를 누구나 머릿속으로 비슷하게 떠올리기 어려운, 추상적인 대상이어서 딱 하나로 정의내릴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어떤 것으로도 정의 가능한 것이 또한 사랑이다. 그러면서도 이 세상의 수많은 가치들 중 다른 가치 모두를 이길 수 있을 만큼의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랑. 그러니, 고리타분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결국, 사랑이 죄인 거다. 사랑이 아니고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연쇄작용으로 일어난 것이고, 그 안에는 지금까지 미처 깨닫지 못했던, 생전에는 확인할 수 없었던 사랑이 있었던 것이다.
이 엄청난 사랑의 향연 속에 너무 많은 죽음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사실들이 매우 오랜 시간 잘 감춰져 있다가, 우연한 계기로 혹은 의도된 계획과 전개에 의해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죽음의 사건들을 겪지 않았다면 평생의 비밀이 되어 아무도 모르고 지나갈 수 있었던 사랑이 있었다. 바로, 안나벨과 프란시스의 사랑, 그리고 이들이 목숨을 걸고라도 마지막까지 보호하고 지키고 싶었던 토마를 향한 사랑. 그리고, 리샤르의 토마에 대한 사랑까지.
솔직히 리샤르의 토마에 대한 마음이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어떤 마음으로 토마를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었을지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들의 사랑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한다. 어떤 충동과 판단이 어떤 행동과 사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는지도 이해해볼 수 있다. 하지만 제일 궁금한 마음이 리샤르다. 평생을, 아내와 아내의 연인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아이가 아닌 토마를 바라보면서 어떤 사랑이 생겼을지 말이다.

이제, 우리 가족의 운명은 당신 손에 달려 있어. 당신이 토마를 보호하고 구해줄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가진 마지막 생존자니까.(367쪽)

안나벨이 남긴 마지막 문자메시지에 고민 없이 달려가는 그 마음이 애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마저도 모두 다 리샤르의 품고 있던 사랑의 모습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들에서 사랑을 깨닫고 느낄 수 있었던 인물로 토마 외에 한 사람을 더 들라고 한다면 단연, 리샤르라고 할 것 같다.

소설의 시작은 빙카의 이야기였고, 빙카에 대한 사랑이 결국 이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을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마음으로 소설을 읽어 나갔지만, 이 소설의 사랑의 주인공은 빙카가 아니었다. 빙카는 어쩌면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알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을 것 같다. 오히려 그에게만 향하고 있던 토마나 알렉시의 서로 다른 모습의 사랑이 더 강렬했다. 더 솔직하고 순수했던 쪽이 토마, 이기적이고 욕심 가득했던 쪽이 알렉시. 이 둘의 사랑이 오랜 시간을 거쳐 이어지면서 이 모든 사건의 전말을 확인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의 지점에서 더 큰 사랑을 알게 된 것이고.

내 부모와 프란시스 아저씨가 살아온 여정은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주었다. 세 분의 인생은 고통과 환희, 모순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들은 때로 용기를 내 희생을 택했다. 그들은 살고, 사랑하고, 사람을 죽였다. 그들은 이따금 정념 때문에 이성을 잃기도 했지만 그런 순간마저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인생을 따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내가 물려받은 유산을 지키고, 교훈을 오래오래 간직할 결심이었다.(...) 삶은 불확실성이 관장하는 영역이고, 인간의 마음은 바람 부는 날 갈대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게 마련이니까. 우리는 그저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 모든 일들이 결국 제자리를 찾아가기를 바라면서 세상의 온갖 혼돈을 잘 견디고 있는 척하는 것 말고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397쪽)

결과적으로 잘못에 대한 죄값을 치르고 있는 사람은 리샤르를 제외하면 없다. 죽음이 죄값의 대신이라면 목숨을 잃은 사람은 있으나, 정작 토마와 막심, 파니는 조용한 일상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어찌보면 정의가 살아있지 않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직 이들에게 주어진 숙제는 남아있을 테니, '척하는 선택'을 한 이들의 삶을 계속 지켜보고 싶어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는 오지 않았다 광주 연작 2
이경혜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는오지않았다 #이경혜 #광주연작 #바람의아이들 #서평단 #서평 #책추천

그는 오지 않았다. 이경혜. 바람의 아이들. 2025.
_광주 연작 2

책을 한참 가지고만 있었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도 쉽게 열어 읽지 못했다.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 지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이미 '광주 연작'이라고 했을 때부터, 그리고 제목인 <그는 오지 않았다>를 되내면서 쉽게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웠다. 더 솔직히는 두려웠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여전히 나는 비겁하고, 선뜻 읽어내려는 마음을 먹지 못하는 한심함을 갖고 있었다. 직시하고 대면할 용기를 내기 위해 아직도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속상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쉽게 광주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소설들처럼 가볍게 읽고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되고 또 그럴 수도 없지만 말이다. 내가 뜸을 들이고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는 그 시간만큼, 주저하고 조심하려는 마음만큼, 광주를 생각하는 마음을 정돈하고 싶었던 것도 있다. 진실 앞에 고개 돌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알아나가는 것만이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일이 역사 속으로 묻히지 않을 수 있도록 거듭 읽고 말하며 기억하고 알리는 것에 게으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해야하는 것이다.

박인배인 인호. 어떤 마음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단단한 마음이 느껴졌다. 이 글을 읽으려던 나는 비겁했지만, 그는 그 삶 안에서 한 순간도 비겁하지 않았다. 매 순간의 마음에 최선을 다했고, 그 마음을 향한 행동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가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 진심이었고, 그 마음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했을 뿐인 것이다. 열심히 제 마음껏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을 뿐이고 그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고, 그 결과가 죽음이 되어서는 안 되었던 것이다.

"약속한 거여! 그날 두 시꺼정 여기로 오랑께요. 오전 근무라 두 시면 될 건디 혹시 쪼끔 늦어질지도 모른다요. 배달 나가면 늦는 수도 있응께. 그래도 꼭 기다리고 있어야 혀요. 꼭 올 거니께. 나가 약속은 절대 안 어긴당께! 절대로!"(60쪽)

인호의 삶에서 유일하게 약속을 어기게 된 마지막 약속이지 않을까.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을 그 마음이 느껴져 더 가슴이 아픈 부분이었다. 약속을 하는 인호와 순미를 보며 이토록 슬프고 속상할 수 있을까.

인호의 머릿속으로 언젠가 그랬듯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그의 아내와 아들이 떠올랐다. 다가가 그들을 안으며 활짝 웃는 홍장인의 모습도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는 지금 그들에게로 가고 있었다. 그는 그들에게로 반드시 돌아가야 할 사람이었다.(93-4쪽)

홍장인 역시 그랬던 것이다. 반드시 돌아가야 할 사람, 돌아가겠다고 약속한 사람,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 약속을 지키려 했던 사람. 어쩌면 그런 홍장인의 마음을 알았기에 인호는 달려갈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마음을 지켜주기만 위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그렇게 지켜내는 약속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본인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1980년 5월 18일. '5.18광주민주화운동'. 45년이나 지났지만, '광주가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이라며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고 말한 한강 작가의 말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아직도 광주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오래 끝나지 않는 이야기로 우리의 삶과 함께 숨쉬며 살아있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 살아있을 수 있도록 숨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지금 우리가 해야할 것이다. 소홀하지 않게 멈추지 말아야 할 우리의 숙제일 것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백해도 되는 타이밍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황영미 지음 / 우리학교 / 2025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백해도되는타이밍 #황영미 #황영미장편소설 #우리학교 #서평단 #서평 #책추천

고백해도 되는 타이밍. 황영미 장편소설. 우리학교. 2025.

표지에 저 세 아이가 그려져 있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저 아이들을 품고 있는 싱그러운 풍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과연 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그 이야기를 통해 아이들은 어느 만큼 또 성장할 수 있었을까 기대가 됐다. 교복을 입고 있는 아이들의 저 발랄하고 생기있는 에너지가 예뻤고, 이런 아름다움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다 읽은 입장에서, 이 아이들은 역시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고, 싱그런 시기를 지나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지민이뿐만 아니라 태오도 현서도 이 아이들이 함께 보내는 시간들 속에서 자라고 있있고, 예승이와 루리, 그리고 도하도 지금의 이 시간들을 잘 통과해 나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왜? 내 뒷담화 신나게 하고 다녀서 찔려서 그래? 야, 윤도하! 네가 나한테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부터 해. 그게 순서야. 악감정이 있네 마네 묻는 건 나중이라고."(...)
"미안!"
천지가 개벽할 노릇이다.(206쪽)

작가의 생각이 맞다. 이렇게 천지가 개벽할 정도니까. 진짜, 아이들은 다 예쁘다. 물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쁜 건 사실이다.

2019년 이후 작가와의 만남 자리에서 수많은 청소년을 만났다. 그중에 대중문화와 미디어에서 소비되는 이미지를 가진 아이는 한 명도 없어서 신기했다. 아이들이 참 예쁘다는 소리를 많이 하고 다녔는데, 중학교 교사인 친구는 내가 예쁜 아이들을 만나서 그렇단다.(222쪽_'작가의 말' 중)

꼭 예쁜 아이들만 만나지 않아도 그 아이들이 어떤 예쁜 모습을 갖고 있는지를 봐줄 줄 안다면, 그 아이들은 아이들대로의 예쁜 구석을 지니고 있다. 그걸 어떤 식으로 보여주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이, 한결같이 예쁜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이 시기를 어렵게 지나고 있다. 다양한 고민과 갈등,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기대와 떨림 등을 경험하며 청소년 시기를 지나게 된다. 그 많은 감정들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좌우하게 되는지 스스로 생각할 새도 없이 겪게 된다. 아주 잠깐 사이에도 마음이 쉽게 바뀌고 친구 관계도 달라지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겪으며 조금씩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이 정리된다.

따져 봐야 소용없다. 세상 모든 사람의 입을 다 틀어막을 수도 없고, 나에 대해 좋게 평가하는 사람만 있을 거라는 기대도 접어야 한다. 게다가 예승이가 뭐라고. 그 아이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인물이 아니다.(75쪽)

지민이가 그새 많이 컸구나, 싶은 부분이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립되어 따로 떨어졌다고 느끼며 힘든 시간을 지나오면서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루리에게 먼저 말을 걸고 손을 내밀 줄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그 시간들이 다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이전보다 훨씬 단단해지고 있다는 느낌.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상처받지 않고 자신의 아픔을 잘 회복해낼 줄 아는 힘이 생겼구나 싶었다. 그리고 이런 힘은 지민이뿐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서도 조금씩 발견됐다. 다음 학년도 같은 방이면 좋겠다는 루리, 학생회장에 당선된 현서, 뜬금없기는 하지만 미안하다고 사과할 줄 알게 된 도하, 폭력 사안 이후 차분해진 예승이, 그리고 용기 있게 미국행을 선택해 새로운 환경으로의 도전을 시작한 태오까지.
처음의 지민이었다면 선뜻 고백할 마음을 먹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것에도 서툴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지민이는 한층 단단해졌기 때문에 건강한 고백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난 네가 좋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냥 좋아. 그런데 좋아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고백하고 사귀는 건가? 그런데 내가 아닐까 봐 고백 못 했던 건 아니야. 차이는 건 상관없는데...... 그냥, 너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 그런데 말한다고 뭐 달라지나? 에이, 너 곧 미국 가는데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201쪽)

이런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것, 그런 솔직함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줄 아는 것. 그런 면에서 태오는 아직 조심스러운 면이 남아 있는 것 같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이 아이들이 조금 더 크고 성장한 후에, 자연스레 스스로 이 감정에 대한 답을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은 언제라도 표지 그림처럼 밝고 맑은 웃음으로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급하거나 답답하지 않다. 오히려 안심이 되고 기분이 좋아진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샌드힐 스토리에코 2
하서찬 지음, 박선엽 그림 / 웅진주니어 / 2025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샌드힐 #하서찬 #웅진주니어 #청소년소설 #서평단 #서평 #책추천

샌드힐. 글 하서찬/그림 박선엽. 웅진주니어. 2025.

탈출. 지훈이 형과 함께 했던 집에서의 탈출, 다시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했던 탈출. 지훈의 두 번의 탈출이 이 이야기를 전반을 이끌어가는 중심인 듯하다. 탈출은, '어떤 상황이나 구속 따위에서 빠져나옴.'의 뜻을 갖고 있는 단어다. 지훈에게는 폭력이 난무했던 공포의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그리고 타인의 잘못된 기대에 의해 제 삶을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구속에서 빠져나오려는 탈출로 보인다. 지훈에게 벌어진 이 모든 상황이 그저 답답하고 고통스럽게만 느껴진다. 이런 고통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탈출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훈의 마음에 공감이 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 잃게 된다는 것, 그것도 자신으로 인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죄책감은 무거운 마음의 짐으로 다가올 것이다. 어쩌면 지훈이 조각하는 병정들은 그런 지훈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유일한 도구일 것이다. 하지만 그 마저도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이 없게 된다면, 지훈은 더 이상의 희망을 생각할 수 없게 되겠지. 마지막 남은 끈을 쥐어잡고 있던 힘이 모두 사라지면, 지금까지 겨우 견디고 있던 그 마지막 힘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마지막 힘을 쥐어 짜 지훈은 자신이 가야할 곳을 향해 가는 선택을, 그 탈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장 같은 친구도, 라희처럼 마음을 내어 줄 친구도 없었다. <샌드힐> 속 지훈에게는 그런 친구들이 있다. 나는 그 인물들을 통해 치유되었다.(185쪽_'작가의 말' 중)

작가의 말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훈이 외롭고 슬프고 아프기만 했던 것은 아니라는 것에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분명, 고통 속에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에 한없이 흔들리는 마음을 바로잡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지훈과 눈 마주치고 웃어주며 함께 이야기나누고 동행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 사실은 이런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지훈이 더 이상 무너지지 않고 다시 일어설 힘이 생겼을 것이다. 지훈의 입에서 '희망'이란 단어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힘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지훈에게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쉽게 사라지지 말아야 한다는, 분명 가야만 한다는 그런 이유. 그 이유를 만들어 준 존재 또한 친구들이었다.

나는 장의 편지를 접었다. '우리는 영원히 친구야.' 나는 중얼거렸다. 가슴에 있는 얼음 조각 하나가 녹는 기분이었다.(179쪽)
이제 진짜 잠을 잘 것이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날 것이다. 자는 동안 라희가 사라질까 봐 손을 꽉 잡았다. 손이 따뜻했다. 라희도 내 등 위에 엎드렸다.(182-3쪽)

여전히 지훈의 곁에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이 만들어주는 따뜻함으로 지금껏 힘겹게 버티려고만 하고 있던 차가웠던 지훈의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릴 수 있는 것이다. 따뜻함의 온기가 다시 지훈을 감싸고, 그 따뜻함으로 다시 내일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겉에 생긴 상처는 약을 바르고 치료하면 언젠가는 낫는다. 흉터는 생기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흉도 옅어진다. 하지만 안에 생긴 상처는 약을 바를 수도, 쉽게 치료할 수도 없다. 치료가 된다고 해도 보이지 않는 흔적이 오래 간다. 지훈의 마음 속 상처는 무척 깊다. 그 깊은 상처를 한순간에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다. 어쩌면 평생 사라지지 않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후 지훈이 대해 걱정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 있다. 분명, 서서히 조금씩, 상처는 작아질 것이고 차가웠던 마음도 따뜻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무척 불안하고 마음이 불편했다. 지훈에게 계속 나쁜 일들이 거듭될까봐 조마조마하고 아팠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내려놓고 지훈의 삶에 '희망'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지훈이 이제 그만 아프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겼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